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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부자, 박기순과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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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부자, 박기순과 박영철

익명 (미확인) | 월, 2017/08/07- 14:23

친일인명사전을 차근차근 들추다 보면 형제, 부자, 조손, 사촌 등 혈연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함께 실려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박기순과 박영철이 그런 경우다. 국가도 이들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다. 전북 전주에서 미곡상으로 시작해서 조선을 대표하는 재벌로 성장하기까지, 그리고 친일파하면 떠오르는 ‘명성’을 얻기까지 이 부자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신도시 개발 특수를 누리다
박기순(朴基順, 1857~1935)의 장례식을 전하는 신문기사(<매일신보>1935.10.6)에의하면,그는 40세가 넘어서야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생전에 1만 5천여 석을 넘길 정도의 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79세에 사망했으니 그의 재산 형성 시점은 일본인들이 경제침탈을 본격화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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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순과 취향정(醉香亭). 취향정은 박기순이 1917년 자신의 환갑을 기념해 전주 덕진공원 내 연지에 세운 정자다.

 

박기순은 열두 살에 부친을 여의고 어느 상점의 사환 노릇을 하다가 미곡상으로 독립하였고, 전주평야의 미곡을 군산에서 인천으로 내다 팔아 큰 이득을 얻었다. 이를 기반으로 토지를 사들여 만석꾼의 이름을 얻었고, 당시 전라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토지왕’이 되었다.(<삼천리>,1931)특히박기순은신도시‘이리’(지금의익산)개발과정에서막대한시세차익을얻었다. 오늘날의 강남 개발이나 수도권 신도시 개발의 벼락부자를 떠올리게 한다.
일찍이 일본 자본은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인 만경강 일대 호남평야에 주목했다. 강제병합 후 그들은 이 비옥한 평야지대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식민지 수탈경제를 구축해 갔다. 

181920년대 이리역 주변 모습

지대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식민지 수탈경제를 구축해 갔다. 그 과정에서 군산과 전주를 사이에 둔 식민도시 이리가 개발되었다. 1914년 1월 호남선이 경성-대전-이리-나주-목포로 연결되
었고, 그해 11월에는 이리와 전주를 잇는 전북경편철도가 개통했다. 10여 호에 불과하던 작은 마을 ‘솜리’는 가로로는 군산과 전주, 세로로는 경성·대전과 목포를 잇는 교통 중심지로 거듭났다. 신도시 이리 개발은 식민지경영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는 총독부 권력층의 의도와 일본인 대토지자본가들과 박기순과 같은 일부 조선인자본가들의 적극적 개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박기순은 신도시 및 역세권 개발의 혜택을 온전히 누렸다. 원래 박기순의 소유 토지는 전주도심이 아니라 외곽지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주로 이리역, 구이리역, 대장촌역, 삼례역, 전주역, 신리역 등 경편철도 연변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그는 신도시·경편철도·역세권 개발로 이어진 토지가치 상승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그의 토지는 1930년 현재 685정보였고, 사망하기 2년 전인 1933년 조선신탁주식회사에 320만평을 신탁했는데 당시 토지 시가는 150만 원에 달했다.
그렇다고 떨어지는 감을 누워 받아먹은 것은 아니다. 박기순은 전주경편철도설치기성회 회장을 맡아 전주-이리간 경전철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철도가 개통한 후 1916년에는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 이사까지 맡았다.
개발에 필요한 기부도 아끼지 않았다. 1912년부터 1919년 사이에 박기순은 호남선 부지, 전주-군산 간 도로부지, 전주-영동 간 도로부지, 전주 덕진공원 건설비, 전주 다가공원 방천석축, 전주 다가교 가설비 등을 기부했다. 그 덕에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 10세트와 감수포장 등을 받았다. 자신이 소유한 땅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차역과 시가지가 개발되도록 총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도 잘 관리했다. 여산군수, 조선식산은행 이사, 전주면협의회 의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까지 지역 유지들이 일제 협력을 통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밟아갔다. 특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전북자성회를 조직한 점이 주목된다. 당시 3.1운동을 방해하고 저지할 목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반대 단체가 조직되었다. 자제단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북자성회 규약에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는 자를 배척하며, 그러한 자가 있다면 곧 본부장이나 지부장에게 밀고할 의무’를 명시했다. 박기순은 이 단체의 조직에 앞장섰고, 전주지부의 지부장을 맡았다.

여기에 아들 박영철(朴榮喆, 1879~1939)이 힘을 보탰다. 박영철은 1912년 8월부터 1918년 9월까지 전북 익산군수를 지냈다. 신도시 이리가 개발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즉 박영철은 신도시 개발과 주변지역을 잇는 도로 및 철도 개설에 있어서 관권 즉 조선총독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실행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식민권력을 등에 업은 부자의 콤비플레이는 그들을 일약 전북을 대표하는 갑부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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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업은행 은행장 시절의 박영철(52세)

 

이제는 중앙이다
터닝포인트는 조선상업은행이었다. 1931년 박영철은 전국적 지점망을 가진 대형은행인 조선상업은행의 은행장 자리를 꿰찼다. 전북을 주름잡던 박기순-박영철 부자는 조선을 대표하는 자산가로 도약한 것이다.
1920년 박기순은 전주에서 삼남은행을 설립했다. 미곡상을 거쳐 신도시 개발에서 축적한 막대한 토지자본이 금융자본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전주 지역 대지주와 유지들이 대주주이자 경영진으로 참여했다. 그렇지만 삼남은행이 성장해 가는 몇 년 동안 박기순은 대주주와 중역들을 차츰 물갈이해나갔다. 기존 주주들이 매도한 주식은 박기순 일족이 사들였다. 1925년 무렵이 되면 본인이 사장이자 최대 주주였고, 아들 박영철을 비롯한 박준철, 박판철, 박신철 등 일가붙이가 대부분의 주식을 소유했다. 삼남은행은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주식 세습구조의 한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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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조선상업은행

 

박기순은 삼남은행을 경영하면서 전북경편철도, 전북잠업, 전북축산주식회사 등의 이사로 참여했다. 은행가로서 그 재력을 토대로 다른 분야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의 기업활동은 전주를 넘어 익산, 남원, 군산 등지로 확대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각종 공직과 사회단체, 학교조합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이제 박기순은 전북 지역을 대표하는 자본가이자 유지로 성장했으며, 1924년에 중추원 참의에 임명됨으로써 그의 명망과 사회적 입지는 한층 더 공고해졌다.
중추원 참의가 되고 전북을 대표하는 지역유지가 되었지만, 박기순의 경제적 기반은 여전히 지역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 한계를 뛰어넘어 전국적 레벨의 자본가로 발돋음하는 것은 아들 박영철의 몫이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의 길을 걷던 박영철은 강제병합후 행정관료로 변신했다. 처음 부임한 곳이 전북 익산이었고 앞서 보았듯이 신도시 이리 개발과정에 힘을 보탰다. 조선총독부 지시에 철저히 순응하면서도 행정가로서의 자질을 발휘하여 신도시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익산군수에 이어 도참여관, 도지사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때 박영철은 새로운 도약을 모색했는데 바로 중앙 재계로의 진출이었다.
함경북도 지사를 마지막으로 관계에서 물러난 박영철은 박기순으로부터 삼남은행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곧바로 조선상업은행과의 합병을 단행했다. 1928년 5월 당국의 인가를 받은 은행 합병으로 조선상업은행은 전국 지점망을 가진 대형은행이 되었고, 삼남은행은 6개월 뒤 단행된 ‘신은행령’(자본금 200만원 이상의 주식회사가 아니면 은행 업무를 할 수 없음)의 파고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의 금융정책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할수 없었을 발빠른 대처였다. 박영철은 조선상업은행 부행장에 취임했다. 지역 관료출신인 박영철이 본격적으로 중앙 재계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조선상업은행 은행장자리에 올랐다. 이제 그는 토지의 민영휘, 금광의 최창학, 방직의 김연수와 함께 조선인 4대 재벌로 불렸다.(<삼천리>, 1932) 박영철은 차츰 자신의 입지를 넓혀 갔다. 1930년에는 조선미곡창고회사 이사, 1932년 10월에는 조선철도회사 이사에 선임되었다. 이어 1932년 12월 조선신탁주식회사 이사가 되었다.
이 회사는 경제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신탁업무를 담당했다. 박기순이 이 회사에 320만 평(시가 150만 원)의 부동산을 신탁했으므로 박영철의 기반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 밖에도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맥주회사, 북선제지화학공업주식회사 등의 중역을 맡았다.
조선의 4대 재벌이라 해도 총독부 권력과의 돈독한 관계는 필수였다.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확전해 가는 동안 박영철은 조선국방의회연합회,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경성부육군병지원자후원회 등 일제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의 주요간부로 활동했다. 또 조선미곡조사위원회, 조선산업경제조사회, 임시교육심의위원회, 저축장려위원회, 물가위원회, 시국대책조사회 등에 참여하는 등 총독부의 식민통치 파트너로 활약했다. 이제 박영철은 “한상룡과 함께 중앙의 중요한 지위에서 활약하는 조선 문제의 대표자”란 평판을 얻었다.(<시정25년기념 약진지조선>, 1935)
한시에서 드러나는 친일의 진정성 박영철은 일제강점기에 군수, 도지사, 중추원 참의를 비롯한 고위 관공직을 역임했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적극 협력한 친일파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또 조선 재계에서 알아주는 전국구 재벌이었다. 그렇다 보니 박영철이라고 하면 친일파 재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박찬승 교수는 박영철을 일러 ‘전방위 활약을 보인 친일파’라 표현했다.(<친일파99인>,1993)그런데 박영철은 많은 한시와 여행기, 그리고 회고록을 남긴 문학인이기도 하다. 현재 <백두산유람록(白頭山遊覽錄)>(1921),<아주기행(亞洲紀行)>(1925),<구주음초(歐洲吟草)>(1928),<오십년의 회고(五十年の回顧)>(1929),<다산시고(多山詩稿)>(1932,1939)와같은 저작이확인된다.
친일파들이 하는 흔한 변명 중 하나가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는 것이다. 내심으론 일제의 통치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일제 권력의 위협과 강제 앞에서 한 개인이 저항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허접한 변명에 불과하다. 특히 박영철의 시와 산문처럼 내면의 목소리가 담긴 문학작품은 그런 변명을 일축할 분명한 증거가 된다.
<다산시고>를보자.다산(多山)은박영철의호다.박영철은1932년에자신의한시를모아이 책을 펴냈고, 그후에 쓴 시를 합쳐 1939년에 다시 같은 제목의 책을 냈다. 모두 859수의 한시가 실렸는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 가운데 대략 100여 수를 친일작품에 해당한다.

  風雲日露兩交兵 풍운처럼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니
  東亞安危在此行 동아시아의 안위가 여기에 달렸구나
  萬里從征投筆起 만리 출정길에 붓 던지고 일어서니
  誰知定遠是書生 정원후(定遠侯, 班超 33~102)가 서생임을 누가 알리요
 〈종군일로전역 從軍日露戰役, 1904〉

박영철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러일전쟁에 종군했다. 그때 지은 시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을 동양과 서양의 대결로 인식하고, 동양의 평화는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하는데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초를 떠올렸다. 후한시대 학자였지만 무인으로 자원해 서역 흉노원정에 용맹을 떨친 반초처럼 자신도 붓을 던지고 일본의 대륙 진출에 공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서구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동양인들은 일본을 중심으로 연대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하기 위해 내세웠던 이른바 ‘대동아합방론’에 정확히 부합한다.
박영철은 일본에 공감하여 그들의 조선 통치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식민지 건설에 적극 협력하였다. 박영철이 추구하는 세상은 일본제국주의의 번영과 함께 했다. 따라서 일본의 통치에 저항하고 독립을 추구하는 행동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역사 발전을 돌이키려는 것으로 보았다.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함경북도 참여관이던 박영철은 “신정(新政) 이래 생명재산의 안전 또는 교육 민업의 발달은 구한국정치에 비할 바가 아님은 누구라도 이의 없을” 것이니 성과 없는 무모한 운동은 그만두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이란 것도 두 민족이 같은 수준에 이르면 권리의무에 차별이 없어질 것이란 희망도 피력했다.
박영철에게 조선은 ‘일본 내지가 연장된 곳’이었다. 동민회(同民會) 활동은 그런 생각의 실천이었다. 동민회는 ‘철저한 내선융화의 실현을 통한 아시아민족의 결합’을 주장하며 참정권 청원 운동을 벌인 단체다. 즉 제국 신민의 일원이란 의식의 내면화를 기반으로 조선인들에게도 일본 국정에 참여할 권리를 달라는 요구였다. 서구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1928년 시베리아열차를 타고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유럽 각지를 돌아본 후 박영철의 감상은 이런 시로 표현되었다.

  白黃人種各西東 백인종 황인종이 각기 서양과 동양을 차지해
  文字方言互不通 문자와 지역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欲求平和長久策 평화를 이루려는 장구한 대책은
  先須全亞結心同 먼저 모든 아시아가 한 마음으로 뭉쳐야 한다.
  〈세계대세 世界大勢, 1928〉

러일전쟁 한복판에서 가졌던 박영철의 다짐은 20여 년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이 재현되었다. 이제 일본과 조선을 넘어 동양이 하나가 되어 서구 열강을 막아내야 한다. 드디어 일본 제국의 성장과 번영이 중국대륙으로 뻗어 나가니 박영철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었다. 아래는 1932년 만주국에 가서 발표한 경축시, 그리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공략하는 일본군대를 찬양하는 시다.

  滿洲九月下天兵 9월 만주에 하늘의 군사가 내려오니
  一境簞壺老幼迎 노유를 막론하고 밥 싸들고 환영한다.
  革舊而今新政好 옛 제도를 혁파하니 이제 새 정치가 좋아서
  三千萬衆得蘇生 삼천만 민중들이 다시 살아났도다.
  〈축만주신건국 祝滿洲新建國, 1932〉

  北京戰捷又南京 북경을 점령하고 남경을 함락하니
  萬里山河旭日隆 만리산하에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네
  赫赫皇威光四表 혁혁한 천황 군대의 위세 사방에 빛나니
  東洋自此保平和 이 때문에 동양이 평화를 유지하는구나
  〈황군위문가 皇軍慰問歌, 1937〉

1937년 박영철은 경성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가 되었다. 시에서 보듯 그는 일본과 조선이 하나이고, 더 나아가 만주와 중국도 일체라는 대동아공영론을 확신하고 있다. 일본 군대는 침략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정치를 구현할 해방자였다. 만주의 민중들을 다시 살린 일본 군대는 하늘이 내린 천병이요, 중국대륙을 점령한 천황의 군대는 동양의 평화를 가져올 평화유지군이었다. 일제의 전쟁은 동양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성전이었다. 당연히 조선 사람도 신성한 일본의 전쟁에 동참해야 했다. 1938년 조선지원병제도가 실시되자 중추원 참의 박영철은 “반도민의 국민관념에 신기원을 그은” 것으로 평가하고, 신성한 의무를 위해 “부디 모범적이고 개인이나 가정에 치부가 없는 자신 있는 사람이 지원”하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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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 시절 박영철.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박영철 총영사는 북중국과 몽고 각지를 순회하며 일본군을 위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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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유람록>과 <아주기행>

 

박영철은 시 외에도 기행문과 회고록 등을 남겼다. <백두산유람록>은박영철이전라북도참여관이던 1921년에 출간한 것으로 백두산 기행문과 시를 엮은 것이다. <아주기행>은강원도지사 시절에 발간한 기행문으로 백두산·지리산·한라산 등 국내여행지와 일본·대만·간도·블라디보스톡·만주·몽고·중국 등 해외를 견문한 것이다. <구주음초>는1928년암스테르담올림픽을 참관하기 위해 3개월에 걸쳐 아시아·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남긴 기록이다.
<오십년의회고>는박영철이51세되던1929년에낸 회고록이다.한글이나한문이아닌일본어로 썼으며, 본인의 행적보다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주 독자층으로 일본인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조선 멸망의 원인을 우리 민족에게 돌리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특권계급의 창궐과 관리의 부패, 정의와 공적 도의의 전멸 등을 꼽았고, 무기력하고 나태한 민족성, 낮은 문화와 생활수준을 지적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사대주의적 자학사관에 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애호가이자 수장가 박영철
박기순·박영철 부자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박순(朴淳)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본래는 양반이었지만 점차 가세가 기울어 박기순 대에 이르러서는 평민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그렇지만 미곡상으로 시작해 ‘토지왕’으로 이름을 날리는 등 형편이 나아지자 한학에 관심을 쏟았다. 1935년 박기순이 사망할 때 그의 집에는 3만여 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한다.
박영철도 일본에 유학가기 전에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는데, 이후 한시를 즐겨 짓고 한문으로 저작을 남기는 등 한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인지 고서화와 시문 등 전통예술에 큰관심을 기울였다. 경성 소격동 144번지(현재 정독도서관 앞 선재미술관 자리) 박영철의 저택
에는 추사 김정희와 오세창 등의 그림과 글씨, 고려자기 등이 널려 있었다. 1930년과 1932년에는 동아일보사가 개최한 조선고서화전람회에 유명한 고서화를 다수 출품하기도 했다. 조선에서 손꼽히는 거부를 이룬 경제력이 그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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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화휘>와 <근역서휘>

 

그런데 박영철을 단순히 수장가로만 평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당시 박영철은 위창 오세창의 지도를 받아 <근역화휘(槿域畵彙)> 3책과 <근역서휘(槿域書彙)> 35책을 펴냈다. <근역화휘>는 조선초기부터 말기까지 그림 67점을 수록한 것으로 안견의 그림으로 전하는 산수도, 신사임당의 그림 등이 실렸다. <근역서휘>는 조선시대 명현의 글씨를 망라한 책이다.
흩어져 있던 고서화를 모으고 위창의 안목에 기대 가치 있는 작품들을 책으로 엮었으니, 우리문화유산의 정수들이 실렸다고 평가된다. 특히 1932년 5월에는 <연암집(燕巖集)>을 17권 6책으로 간행해 냈다. 학계에 ‘박영철본 <연암집>’으로 잘 알려진 책이다. 그동안 필사본으로만 전하던 <열하일기>와 <과농소초> 등 연암 박지원의 저작을 최초로 공간하여 세상에 알렸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으며, 내용 또한 매우 정확하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펴낸 국역 연암집도 박영철본을 대본으로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39년 박영철이 사망한 후 유족은 경성제국대학에 115점의 유물을 기증했다. 자신의 수장품과 진열관 건립비를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하라는 박영철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거기엔 <근역화휘>, <근역서휘> 외에도 김정희, 이황, 정약용, 정선, 김홍도, 장승업 등의 작품이 포함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이를 기초로 경성제국대학진열관을 건립했고, 이를 인수한 서울대학교는 1946년 부속박물관을 개관했다.
박영철의 인생에서 <근역화휘>, <근역서휘>, <연암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인물이면서도 결과적으로 그는 우리 전통문화를 수호하는 데 일조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어 보인다.
박영철이 고서화를 수장한 것은 한학에 관심이 컸고 한시와 서화 등을 즐겼던 그의 성정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또 자신의 수장품을 조건없이 기증하고 심지어 전시실 건립비까지 쾌척한 사실은 문화애호가이자 수장가로서의 모범을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박영철이 수장품을 기증한 곳이 서울대학교가 아닌 경성제국대학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일전쟁에서 일본 군대가 승승장구하던 때였다. 박영철은 조선의 문화와 예술 역시 일본이 건설할 ‘대동아’의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민족의 유산, 그래서 다시 찾아야 할 가치가 아니었다. 일본이 대동아주의를 내세우며 추구한 동양성의 한 축을 담당할 미래 가치였다.

아버지와 아들, 친일파의 오명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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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이 친히 장례식에 쓸 폐백과 제물을 내렸다는 <동아일보> 1939년 3월 15일자 기사.

 

1939년 3월 뇌일혈로 갑자기 사망한 박영철에게 일본 천황은 친히 장례식에 쓸 폐백과 제물을 내리고 훈2등 욱일중수장을 추서했다. 당시 박영철의 사망으로 뇌일혈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의학박사 김성진은 “뇌일혈이란 대체로 지식계급에 많은 병입니다. 그 이유는 혈액이 몰려오는 기회가 노동자보다는 훨씬 많기 때문에 출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혈압이 높아져서 혈관이 파열되어 뇌에 출혈을 일으키게 됩니다. 장소가 뇌인만큼 위험하고 또 뇌를 많이 쓰는 저명인사에게 많게 됩니다. 대체로 비대하고 술과 고기를 많이 먹는 이에게 많은 병으로 노동자에게는 좀 드문 병입니다.”(<매일신보>1939.3.15)라고설명했다.
뇌일혈이 노동자보다 지식계급에 많은 병이라는 설명은 지금의 의학상식으로선 동의할 수 없지만, ‘비대하고 술과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설명은 일견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아마도 박영철의 비대한 몸집을 염두에 둔 설명인 듯하다. 박영철의 사진들을 보면 그의 체구 변화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깊어짐과 함께 박영철의 몸집도 비대해져 갔던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땅에서 지배자에게 코드를 맞춘 삶으로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해방 후 그들의 고백처럼 세상이 뒤바뀔 줄 몰랐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 부자가 나란히 치욕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줄은 짐작이나 했을까. 대를 이어 친일한 사람들 중 아랫대의 누군가는 해방을 맞아 일제의 패망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박기순-박영철 부자처럼 해방 전에 목숨이 다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이 계속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친일로 이룬 부를 누리다 삶을 마쳤다. 하지만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게다가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친일파라고 평가받는다면 그 치욕이 배가되지 않을까.

∷ 권시용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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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지난 22일 사무국에서 올린 자유게시판 글쓰기 기능 원상복구 공지와 관련)

1. [알림]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기능에 문제가 생겨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속히 원상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무국. 4. 20 

2. [알림] 지난 20일부터 자유게시판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삭제되어 기능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로부터 방금 원상 복구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 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무국 4.22 

자유게시판 글쓰기 차단에 대한 사무국의 위 해명을 보며

알림 1 관련:

제가 지난 19일 날 쓴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게시판 글쓰기 차단 유감(아래 참조)에 대한 대응인 듯, 사무국에서 올려놓은 해명 글을 보니 참..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저 글을 쓰기까지 5일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지난 15일 일요일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려하니 글쓰기 버튼이 사라져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게시판 글쓰기를 차단했나 싶었고, 다른 문의할 사안도 있고 해서 그날부터 집행부 사무총장 등에게 못 올리기 시작한 15(일요일)부터 19일 목요일까지 조세열 사무총장에게 전화와 문자를 하루도 안 빠지고 했는데도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없었습니다. 박수현 실장에게도 했고, 임소장님께도 전화와 문자 드렸지만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5일 후 항의글을 쓴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사고인지 조작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가 발생했으면 우선 회원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게 우선 아닌가요? 

그런데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 

거기에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인사가, 연구소를 비방하는데 악용하니, 현혹되지 마시라”? 이게 어느적 문법입니까?  이게 지금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의 수준이자 집행부수준이고, ‘민족문제연구소수준인거지요?

회원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구태 언어들을 쏟아내는 오만방자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사무국방학진 사무국장이 다시 돌아왔지요? 

알림 2 관련:

지난 20일부터”? 일시 중지됐다구요? 어처구니 없습니다. 제가 5일을 기다려 저 항의글을 쓴게 19일입니다. 매사에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지요?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냥 넘어가니 

컴퓨터 전문가(박사)에게 물어보니 “웃기는 얘깁니다.  그런 일이 갑자기 왜 일어납니까? 손을 대니까 일어나지요…” 합디다. 이번엔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 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해커가 할 일 없어 민문연 홈피에 침입해 들어와 자유게시판 글쓰기버튼을 삭제하고 도망간다?? 프로그램 오류? 그러시겠지요 

여인철이 비판글을 계속 올려대니 보기 싫어서 차단하려고 했다가, 아래의 항의글을 SNS에 올리니 부랴부랴 복구시킨 건 물론 아니었지요? (토요일/일요일에 기꺼이 작업해주신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 사장님께 부디 감사의 말씀을 전달해 주십시오.)

————————-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게시판 글쓰기 차단 유감 

지난 일요일(4. 15) 민문연 집행부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글쓰기를 막아놨습니다. 혹시 외부인에게 글쓰기를 제한한 것인가 생각해서 회원으로 다시 들어가 시도를 했지만 역시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의에 질문을 보내려했더니 그 질문자체를 수령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아래 사진 참조) 

이제 민족문제연구소가 회원의 글쓰기까지 막는 지경에 이르렀나요?저는 전국의 회원들에게 지금의 민문연 내부사태의 실상을 알리고 바로잡으려 힘들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어 일부 SNS와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통해 저의 의견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원 중에서도 극소수가 이용하는 자유게시판 글쓰기까지 막는다?

독재정권의 체제유지 수단인 언론탄압을 연상케하는 조치를 지금 21세기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집행부가 취하고 있다니 

저는 이에 문의하고 항의하기위해 조세열 사무총장과 박수현 연구실장에게 며칠간 전화와 문자를 해도 받지 않고, 소장께 해도 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거대한 권력집단처럼 되버린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와의 싸움을 혼자 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회원의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밖에 못합니까? 

그런 치졸한 방식으로 저의 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제 주장의 부당성에 대해 논박해주십시오.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현주소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조세열 (?) 사무총장 그리고 이 사태를 뒤에서 보고 계실 임헌영 소장님, 부디 회원들과의 유일한 소통 통로인 자유게시판 접근 차단을 중지하십시오 

집행부든 운영위원이든, 아니면 전국의 13,000 회원 중 어떤 누구든 저의 주장이 삿된 것임을 입증하고 제가 설득된다면 저는 공개사과하고 이 싸움을 중단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 핵심들과의 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2018. 4. 19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9) 여인철

목, 2018/04/2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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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동행}

오늘 아침 한겨레21 기사를 읽고 가슴이 참 따뜻한 느낌입니다.

한사람의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의 앞날을 응원하고 칭찬합니다.

그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참 멋진 뒷모습으로 기억할게요. 고맙습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5240.html

목, 2018/04/2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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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오디오)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내일을 여는 역사 팟캐스트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출연 : 방학진, 홍남화, 이득우

목, 2018/04/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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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와 10기 규정개정 소위 모두 참여한 김재운입니다

개정조문 해설 초안을 작성도 제가 했으니 개정 경과에 대한 설명은 제가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여 글을 올립니다

 

왜 개정을 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이지는 해설에 나와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질문도 내용보다는 정관개정의 경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문서 형태로 운영위에 처음 보고된 것은 20173분기(923) 때입니다. 20169기 규정개정소위를 경과에 넣은 것은 여인철전운영위원장이 같이 논의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하냐라고 읽기를 바라서 넣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정도로 사악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간을 읽을 사람도 많지 않고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정관개정은 불합리한 조항을 상식에 맞게 수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2016년에는 왜 규정개정 소위(위원: 정한봄소위원장, 오홍석, 김재운)가 만들어 졌느냐하는 것입니다. 20159기운영위원회가 출범하고 다룬 안건은 강세형전지부장으로부터 출발한 지부활동과 운영에 관한 건과 여인철운영위원장이 제기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간의 위상과 관계에 관한 문제가 다입니다. 매번 운영위원회가 갈등 속에 수많은 토론을 했고 결론은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였습니다.

 

아마 규정개정소위가 자기 역할을 다했다면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과 비슷한 결론이 났을 것입니다. 운영위원회 위상을 가지고 회의 때마다 각 주장이 존재했었고 다수의 운영위원은 지금과 같은 주장을 해 왔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했을 뿐 논의는 지속돼 왔고 규정 개정으로 명확히 하려는 노력은 계속돼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규정개정소위원회는 한차례 회의 후 정한봄 전지부장의 막말 파문으로 김재운 오홍석 위원이 소위 위원을 사퇴했고 더 이상의 논의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노선 또는 두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 다수의 운영위원들이 현재의 내용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다고 집행부에 의해 운영위원 전체가 굴복하여 하수인 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관개정은 오랜시간 고민과 논의의 결과물입니다. 내용에 관해서도 할말은 많으나 기존에 정리한 해설서로 대신합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목, 2018/04/2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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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4월 15일, 일요일부터 조세열 사무총장, 박수현 실장(일부에서 총장직무대행이라는 소문이 들림), 박한용 실장, 그리고 임헌영 소장님한테까지 전화와 문자를 계속 해왔는데, 오늘까지 10여일에 걸쳐 한번도 소통이 안 되었습니다.

대체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집행부를 이끌어 가시는 주요 보직자 분들이 저와의 전화통화를 10일 넘게 거부하고 답이 없으신건지 의아합니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소문에 의하면 ‘사퇴’를 했다는데 그 사퇴의 의미가 무언지, 사무총장이라는 ‘보직’ 사퇴인지 아니면 연구소 ‘퇴직’을 의미하는 사퇴인지.  사퇴를 했다면 왜 공지가 없는지.

그리고 박한용 실장은 4월 1일부로 연구소를 ‘사직’해서 나갔다는데 느닷없는 ‘사직’의 이유는 뭔지?

박한용 실장의 사퇴(사직)는 연구소 ‘민족사랑’지 4월호에 공지를 올리면서 조세열 사무총장의 ‘사퇴’는 밝히지 않는 이유는 뭔지…집행부의 연구소 운영이 떳떳하거나 투명치 않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이 느껴집니다.  이제라도 통화나 문자로 답을 바랍니다.
2018. 4. 25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9대) 여인철

목, 2018/04/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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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답변은 운영위원회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질문하신 것이 글에서도 밝혔지만 규정개정 경위에 대한 것이라 제가 적격이겠다 싶어 글을 쓴 것입니다. 저 또한 서명에 동참 사람이기에 책임있는 답변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답을 한 것입니다

2.
여인철 전위원장이 규정개정에 참여했는데 이제 다른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16년에는 어떠한 결정도 한바가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언급한 이유는 운영위 내에 다른 주장이 존재하였던 것과 여러 형태로 어떨 때는 격렬하게 어떨 때는 논의테이블에서 대립하기도 하면서 논의를 해왔고 규정을 개정하여 명확히 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배경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서명에 참여한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전 위원장이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소의 문제를 외부에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여론을 조성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연구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조직 파괴행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3.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1달만에 게시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도 부족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 신중하게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부당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려 합니다.

  4.
규정개정소위원회는 민족문제연구소 정관운영위원회 내규를 다루는 소위였습니다. 그래서 작명을 을 따서 규정개정으로 하였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정관(이사회 의결, 총회 승인사항) 개정의견을 이사회에 요청한 것이고, 운영위원회 내규 개정은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의결하였습니다. 총회에서는 정관만 다루어 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설을 붙임하여 게시한 것입니다.

  5.
정관에 나타나는 쟁점은 3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운영위원회의 입장은 해설을 붙였으니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운영위원회는 임원 선출에 있어서 추천권을 갖는다.’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임원 추천이 운영위원회만이 가지는 배타적 고유권한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란이 되었습니다. 운영위원회 뿐 아니라 이사장이나 이사회도 임원 추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 규정을 개정하기 전이라도 운영위원회 권한에 관한 사항이니 운영위원회 결정으로 유권해석을 하자고 하였으나, 처리하지 못하고 내규 개정할 때 함께 다루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임원추천이 운영위원회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해서 여인철 전 위원장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또한 제가 임원은 여러 단위에서 추천하고 이사회에서 의결해야 한다고 해서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영위원의 다수가 여러 안 중에 데 좋겠다고 하는 안으로 판단하여 결정한 것입니다. 공식 기구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전문성과 다양한 의견을 가진 회원들이 참여하는 논의 단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연구소 발전의 원동력이 될테니까요. 이후에는 규정개정 소위나 다양한 사업 단위에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정관 개정은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에 관해서는 누구라도 만나서 책임있게 설명하고 또 다른 견해도 들을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 기구는 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이번 사태는 정관개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 모두 저의 개인적 견해임을 밝힙니다.

목, 2018/04/2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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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김점구입니다.

먼저 답변에 감사드리고 문의, 의견, 제안 드립니다.

1.
제 문의는 운영위원회의 게시물에 대한 것이고, 저는 운영위원장님께 문의드렸습니다.
운영위원장님께 문의한 이유는 특정 운영위원이 아닌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공식 답변을 듣고 차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운영위원회의 공식 입장 여부를 다투는)가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의 답변을 운영위원회의 공식 답변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답변 부탁드리며,
답변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제안 하겠습니다.

2.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4월 24일 자 게시물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에서는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라고 밝히셨고
같은날 게시한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에서도 정관을 대상으로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여인철 전 위원장이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이 제안되고 논의되는 과정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하면서, 이유도 없이 연구소 지도부와 집행부를 공격하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여인철 전 위원장이 불과 몇 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할 정도로 기억력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의 의도성도 의심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은 “그러한 행간을 읽을 사람도 많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이 의문을 가지는 회원이 많은지 적은지는 그 누구도 확인 또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저와 같이 의문을 갖는 회원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이 양측이 극단의 대립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단어 하나 말 한마디는 현 상황의 원인과 배경을 궁금해하는 회원들은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린 게시물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저는 제 게시글이 혹여라도 제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 여러 번 다시 읽어보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한 단어나 문장은 최대한 수정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3.
운영위원회의 게시물은 여인철 전 위원장 등이 주장하는 의혹 또는 문제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공식적인 글이기 때문에 정확해야 하고, 오해의 소지도 없어야 합니다.

또한, 여인철 전 위원장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면 정확한 팩트를 근거로 반박하여 회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밝히실 때 충분히 고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운영위원회는 4월 24일에 올린 게시물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에서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라고 밝혔고
같은 날 올린 게시물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에서도 <정관>을 대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답변을 보면 <정관>이 아니라 <규정>을 대상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이고, 그마저 ‘정한봄 전 지부장의 막말 파문’으로 오홍석, 김재운 위원이 사퇴하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는 현 정관 개정 건과 무관합니다.

결론적으로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4월 24일 자 두 개의 게시물을 통해 가진 의문 가운데 하나인 ‘여인철 전 위원장이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정관>도 아닌 <규정>을 논의했고 그마저 중간에 중단된 2016년도 9기 운영위원회를 논의 과정에 포함한 운영위원회의 의도성에 대한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5.
여인철 전 위원장의 표현 즉,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 청산’ ‘하수인’ ‘집행부의 들러리’ ‘지부회원의 자율과 권위를 무시하는 폭거’ 등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회원도 있고 적절했다고 생각하는 회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영위원회는 여인철 전 위원장을 향해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 ‘수준이하의 낮 부끄러운 행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여인철씨의 음모적 속성’ 등으로 표현했고 이에 대해서도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회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운영위원회는 표현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그러한 표현을 쓸 정도로 제기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여인철 전 위원장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밝히셔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극단의 표현을 주고받으며 논쟁하는 것은 우리 연구소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고, 현 상황을 해결하는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6.
총회 이후 우리 정관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자구 수정이 필요한 조항은 물론 독소조항이라고 할 만한 조항도 일부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운영위원회 뿐만 아니라 일반 회원도 참여하는 임시 기구를 신설하여 논의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 기구 신설을 제안합니다.

목, 2018/04/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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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 문의에 대해 답변 주신 김재운 운영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제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저는 김재운 운영위원님의 사적 의견을 듣고자 문의한 것이 아닙니다.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된 글에 의견을 밝히고 의문이 있어 이민우 운영위원장님께 문의한 것입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이 당시 상황을 100% 완벽하게 알고 있더라도, 운영위원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 사견일뿐입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의 답변은 참고만 할뿐 그 어떤 판단을 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
이민우 운영위원장님!!

총회 이후 전개되고 있는 현 상황은 <정관 개정의 건> 자체가 아니라 (일반 회원은 알 수 없는) 해묵은 갈등이 표출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몇 년전 대충의 내막은 들었지만,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연히 해소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회를 전후하여 일어난 여러 상황을 보면서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현직 운영위원이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다투는 모습은 제가 알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전현직 운영위원들이 모습을 목도하는 회원들은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운영위원은 각 지부 회원을 대표하고, 운영위원회는 회원을 대표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식 기구입니다.

운영위원회는 현 상황에 대하여 입장을 밝혔지만, 의문 해소가 아니라 의문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래서 위원장님께 의견을 밝히고 문의와 제안을 했으나 아직까지 답변이 없습니다.

위원장님이 본 게시판을 매일 확인하지 못해서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

제 게시물을 위원장님께 전달하셔서 위원장님이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원장님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2018.4.26

회원 김점구

목, 2018/04/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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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개정 경과가 궁금할 줄 알았는데….

운영위원장님의 생각이 궁금한 거였나요.

운영위원회의 입장은 다시 회의를 해야 하니 시간이 걸릴텐데

운영위원장님에게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메모해서 문자 주세요.

전달하겠습니다

금, 2018/04/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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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하고 폭넓은 인정의 정치가 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의 두 손을 맞잡았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고 외세의 간섭으로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분단된 세월이 70년이 넘어간다.

그 긴 세월동안 우리민족이 겪어야했던 세월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던가. 남에서는 일제의 잔제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군정의 통치 받았고, 오늘날에는 주한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며 껍데기만 자주독립국가의 모양새를 갖춘 정도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이명박에 이르는 분단적폐 세력에 의해 미국으로부터 대리 통치를 받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죽임 당했던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주독립 국가 완성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실현을 위한 발자욱에는 우리 민중들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가 함께 한다. 수 많은 고문과 탄압 그리고 학살의 배후에는 언제나 미국이 승인, 방조, 묵인한 사실이 있다.

한반도 이남에 주한미군을 주둔시켜 분단적폐 세력을 등용하여 대리정권을 세워 통치한 학살자 미국! 범죄집단 주한미군을 이 땅에 주둔시켜 남북의 화해와 단결을 끝까지 방해하려는 미국!

그런 미국과의 판갈이 싸움에서 73년 동안 북은 끝까지 싸웠으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핵무력완성 국가로 세계적인 지위가 달라졌다. 전 세계 민중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행보에 주목하며 사회주의 강국, 핵무력 강국의 북과의 교류만남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이 우리민족의 자랑으로 되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이 같은 세계질서를 증명한다. 또한 미치광이 장사꾼 트럼프조차 김정은 위원장에게 꼼짝달싹하지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너무나 통쾌한 모습이다.

여전히 외세의 영향으로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 크게, 대담하게, 따뜻하며 진정성 넘치는 손을 끝까지 내밀어 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의 깊이는 어디에 있는가! 핵무력 완성으로 세계를 좌우하는 정치력을 확보한 북이 여전히 분단적폐 세력들이 활개치고, 미국의 입김에 눈치보는 남을 한 품에 안아 두 손 내밀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분단으로 고통받는 남북해외 전민족의 민중들의 삶을 지켜 내고자하는 마음이 아닐까.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여전히 북 사회와 김정은 위원장의 참된 면모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4. 27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그리고 합의된 선언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북 사회와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어린 마음을 제대로 알기 시작해야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한 인정의 정치로 만들어진 역사적인 4. 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민족의 핵무력을 더욱 공고히 하며, 남과 북의 지혜를 모아 전체 한반도에 분단적폐세력을 몰아내고 학살자 미국의 죄 값을 받아내자!

 

금, 2018/04/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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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연구소에서 자유게시판 이용을 의도적으로 막은 사실이 전혀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4월 26일에도 게시 글이 등록되지 않고 순서가 바뀌는 등 오류가 발생한다고 한 회원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내부에서는 해결이 어려워 전문가들의 진단을 받아 근본 대책을 강구하려 합니다. 앞으로 문제가 있을 때는 담당자인 저에게 알려 주시면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금, 2018/04/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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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글을 정관 개정 과정을 궁금해 하는 것으로 읽으셨다면 제가 표현이 부족해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관 개정 경과를 문의한 이유는 운영위원회가 발표한 두 개의 게시물에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425일자 게시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minjok.or.kr/archives/97379)

정관 개정 과정은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였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갈등의 원인과 배경입니다.

저는 지금 혼란 그 자체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언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 수년동안 운영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쌍방이 극단의 표현까지 동원하며 다투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도대체 무엇이 진실입니까?

2.
무엇에 대한 실망인지요?
실망이란 무엇인가 바라던 일이나 뜻이 원하는바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알아보는 제게 실망하신 것인가요?
저는 오로지 전.현직 운영위원이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다투는 문제의 원인과 배경이 궁금할 뿐입니다.

실망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다른 궁금한 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3.
지금 운영위원장님 개인의 생각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제가 운영위원장님께 문의한 이유도 앞선 게시물에서 충분히 밝혔습니다.

운영위원장은 운영위원회를 대표합니다.
저는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운영위원장님께 묻는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이 아니라면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누구한테 들어야 할까요?

4.
운영위원장님께 드리는 글은 게시판에 올렸고,
지난 게시물에서는 김재운 운영위원님께 전달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5.
사적 의견이지만 김재운 운영위원님께서 말씀해주신 정관 개정 과정은 많은 참조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모르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알고 계시는 일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시기 당부드립니다.

6.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분은 운영위원장님입니다.
운영위원장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해결 노력을 촉구합니다.

금, 2018/04/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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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구님이 요청하신 것은 25일 글에서도 제일 끝에

  문의 및 요청입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요청했으며 두 번째 글에서도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 기구 신설을 제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정관개정에 대하여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궁금한 것은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갈등의 원인과 배경입니다.’ 라고 하십니다.

  지금의 사태를 연구소의 갈등과 원인과 배경이 부닥히는 것이라고 보신다면 저는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글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연구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조직 파괴행위라고 보고 있거든요. 운영위원회의 입장문도 그러한 입장에서 발표된 것이구요.

지금 연구소에 위해를 끼치려는 시도에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연구소를 사랑하시는 만큼 그 뜻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금, 2018/04/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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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8/04/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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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을 위한 소송 건 > 이북의 고위 여성정치인을 정부 통일 연구기관의 고위연구자가 국가의 중앙 뉴스 에이전시에서 명예훼손

 

 

늘 진보적이고 올바른 정의 실현의 선두에 서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정상회담을 중계하던 YTN 뉴스채널에서 정부 통일연구원의 고위급 연구자가 크게 상식과 법을 파괴 했습니다.

 

 

여기 한 2분 쯤에서 이북의 고위 여성정치인에게 얼굴ㅇㅇ 이라고 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법과 여론 등으로 심판 할 수 있을런지요?

 

요즘 같은 미투와 통일 열풍 속에 지금 막 뜨고 있는 아이돌 여자멤버에게도 얼 굴 ㅇㅇ 이라고 못 할텐데 말입니다..

민주당의 추 미 애 의원에게 얼 굴 마 담 이라고 한 것과 비슷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 통일 연구기관의 고위연구자가 국가의 중앙 뉴스 에이전시에서 발언한 것이니 반드시 크게 이슈화 되어서, 엄벌해야 합니다.

 

꼭 검토해 주시고 심판의 물고를 열어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통일연구원에서 세금으로 월급을 받을 고위직원이 그런 반통일적 발언을 하고 다닌다는게 용서 하기 힘든 사안 인 듯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진행이나 협력 가능한 사안인지 검토를 부탁 드릴 수 있을런지요?

 

고맙습니다

일, 2018/04/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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