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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의 진실 공방과 한국정부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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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의 진실 공방과 한국정부가 할 일

익명 (미확인) | 월, 2017/08/07- 14:36

서경덕 교수가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영상을 홍보해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가 유네스코산업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중 한국인 등의 강제동원 관련 시설에 ‘역사의 전모’를 밝히라고 일본정부에게 권고한 사항을 이행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상에는 몇 가지 부정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영상에서는 군함도에 강제동원되어 죽은 한국인이 120명이라 한다. 그러나 1984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찾아낸 〈화장인허증하부신청서(火葬認許證下附申請書)〉 등 일명 ‘하시마자료’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하시마에서 죽은 한국인은 123명이다. 여기에는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사망한 수가 64명이니 굳이 따지자면 강제동원 희생자는 50여 명이라 해야 맞다.
영상에 사용된 사진들도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누워서 탄을 캐는 장면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정확한 연도와 지역을 알 수 없다.

25

사진①


이 글은 2017년 7월 25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군함도의 진실 공방과 한국 정부가 할 일〉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분량상 싣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면서 기고 후에도 계속 유포되고 있는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기 위해서다.


 

(사진①) 한겨레신문에 글을 썼을 때는 연도 미상의 후쿠오카탄광에 는 연도 미상의 후쿠오카탄광에서 일하던 일본인 광부라 했으나 이 또한 정확하지 않다. 유사한 사진으로 훈도시를 입고 누워서 탄을 캐는 사진도 있다.

26(사진②) 이 사진도 자주 한국인 강제동원피해자 사진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메이지시기 치쿠호탄광에서 탄을 캐는 일본인 광부의 모습이라 한다. 누워서 탄을 캐는 광부의 구도와 이미지가 거의 같기 때문에 두 사진이 혼용되고 있다. 영상에는 폭행을 당해 등에 상처가 나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쓰였다. 1926년 <아사히카와신문>에 실린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은 홋카이도 나카가와군에 있던 노동자 합숙소에서 학대당한 토목노동자를 찍은 것이라 한다.(사진③)
서교수가 사용한 사진①과 사진③ 모두 폭력과 학대, 열악한 노동조건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실태를 직접 증명하는 사진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받은 차별과 학대, 가혹한 노동조건 등의 실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은 없다. 통제된, 그리고 전쟁 홍보만 허용되던 시기에 그런 사진 자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1920~30년대 일본 언론의 고발로 확인된 이런 사진들을 통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증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내친 김에 몇 가지만 더 지적해두자. ‘어머니 보고 싶어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라는 글이 탄광벽에 적힌 사진이 있다.(사진④)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탄광노동자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한때 언론에서도 많이 쓴 장면이다. 그러나 이 사진은 훗날 강제동원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탄광을 방문한 조사단들이 연출하기 위해 쓴 걸 찍은 것이라 한다. 그러니 굳이 사용해서 시비를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앙상한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네 명의 한국인 사진도 강제동원 피해의 증거로 이용되고 있다.(사진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신기수(辛基秀)의 사진집 <韓國倂合と獨立運動>(1995)에따르면,1945년10월 효고현 오쿠보형무소를 출옥한 조선인들로 강제동원 피해와 직접 관련이 없다.
통계상의 잘못도 있다. 군함도와 함께 등재된 다카시마탄광에 한국인 4만 명이 강제동원되었다는 통계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건 실무자의 단순 실수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외교부가 강제동원지원위원회에 관련 정보를 요청할 때 위원회 직원이 4천 명을 4만 명으로 잘못 적어 보고했다. 나중에 수정되긴 했으나 언론과 인터넷상에는 잘못된 숫자가 이용되었고, 지금도 계속 인용되고 있다. 한 가지 더, 일제시기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가 700여 만 명이라고 한다. 이 수치를 사용할 때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까지 과거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공식문서를 기초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중국,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강제동원된 노동자는 최소 72만 명, 군인․군속으로 끌려간 청장년이 최소 36만 명, 일본군‘위안부’ 등 여성 동원이 십수 만 명으로 해외로 강제동원 수가 최소 12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1~3개월 단위로 한반도내에 동원된 이른바 ‘도내동원’의 연 인원이 600여 만 명도 있다. 따라서 국내외를 포함해서 총동원된 700여 만 명이라는 수치는 집집마다 한 명씩 동원되었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다만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대상이 됐던 피해자는 ‘해외동원자’들이었고, 노무현정부 때 지원(사실상의 보상)을 받은 피해자들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도내동원의 경우 그 실태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인 데다 식민지 시기를 살았던 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법을 통한 진상규명과 지원 대상에서 뺀 것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강제동원의 피해를 말할 때 대상자는 120여 만 명이라 해야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숫자 몇 개 사진 설명 하나 잘못되었다고 강제동원의 본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들은 오류나 실수를 공격하면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처럼 군함도의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려 한다. 아니면 피해자들의 주장에 흠집을 냄으로써 한국의 주장이 과잉된 민족 감정에 근거하고 있어 뭔가 사실을 과장하거나 날조하고 있다는 불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국내는 모르겠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이게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문제다.
군함도를 놓고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 정부와 우익은 세 가지 여론전을 펼칠 전망이다. 첫째, 2015년 유네스코 총회 석상에서 일본대사가 인정한 한국인 강제노동(forced to work)은 국제법에서 규정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 1910년 일본에 의한 조선 ‘강제병합’이 합법이며, 따라서 1938년의 국가총동원법과 1944년의 징용령에 의한 동원 역시 합법이므로 강제노동의 예외규정(전시하의 동원)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군함도에서 한국인들은 차별 받지 않고 일본인과 사이좋게 지냈다는 당시 거주자들의 회고나 미담을 적극 발굴하여 알릴 것이다. 여기에 낙성대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발표한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과 일본인 노동자들 사이에는 민족별 임금차별이 없었다. 다만 노동의 숙련도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홍보전에 나설 것이다. 한국의 연구자가 강제동원에 따른 민족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서니 일본으로서야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셋째, 한국은 사태를 과장하거나 심지어 엉터리 자료를 만들어 역사를 왜곡·날조함으로써 일본을 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증거로서 서교수의 광고 영상이 좋은 먹이감이 된 것이다.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이 점에선 한국의 언론들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강제동원 피해 통계를 두고 벌어지는 진실 논쟁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게 있다. 그것은 가해자인 일본정부와 기업이 스스로 진실을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진상규명 대부분은 모두 피해자와 한일의 시민단체가 수십 년간 싸워서 얻어낸 것들이다. 여기에는 한국정부의 책임도 크다. 특히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최악이었다. 피해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직접 일본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유골조사와 봉환 문제를 협의해 해결의 물꼬를 텄지만,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초은행에 1945년 이전 일본 내에서 일했던 한국인 우편저금 통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는 모른 체 했다. 국제법에 따르면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국가가 지배국가로부터 관련 문서를 인계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 한다. 식민주의 극복을 위해 지속적인 진상규명과 자료 공개, 기념․기억 사업과 교육 등 새 정부가 해야 할 긴 목록 가운데 하나다.
영화 군함도가 개봉되었다. 무더운 여름이 더 더워질 것 같다.

∷ 김민철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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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9/0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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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일본군 군복을 입고 일본도를 쥐고 있는 박정희 사진을 “박원순이 만든 빨갱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작한 박정희 대통령 사진으로 선동질을 하고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던 보수단체 나라사랑바른학부모실천모임 대표 방자경 씨가 법정 구속됐다.

10월 12일 서울 북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이성호)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징역 4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하고 방 씨를 법정 구속했다.

문제가 된 사진은 일본의 누리꾼이 조작한 것으로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설립한 단체가 아닐뿐더러 “사진이 합성된 가짜”라고 감정한 친일문제 전문연구기관이다.

▲ 박정희 사진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는 방ㅇ경씨의 트윗

민족문제연구소는 3년간에 걸친 재판 끝에 지난 4월 12일 대법원의 원심 확정으로 500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아낸데 이어 형사소송 1심에서 방 씨의 유죄를 인정받음으로써, 무차별적인 음해에 단호히 대응하여 징벌한다는 무관용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2016년 서울북부지검이 불기소처분을 내리고 2017년 서울고검이 항고를 기각했는데 서울고법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어렵사리 재판이 진행됐다.”고 밝히고, “앞으로도 건전한 비판과 학술적 토론은 언제든 수용하겠지만 무분별한 허위사실 유포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에 참여했던 서석구 변호사가 민사소송에 이어 형사소송에서도 방 씨의 변호를 맡아 눈길을 끌고 있다.


※관련기사

☞연합뉴스: [단독] 일본 누리꾼이 조작한 ‘박정희 친일사진’ 법정까지 간 사연 (2017.1.13)

☞경향신문: [단독]검찰 불기소 처분한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사건···법원 “공소 제기하라” (2017.5.24)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합성사진 조작 관련 명예훼손소송, 2심 승소와 스프레이 테러 형사조정
(2018.1.25)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박정희합성사진 조작관련 명예훼손 재판에서 연구소 최종승소 (2018.4.20)

금, 2018/10/1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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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노동자 건강의 법과 현실> 이라는 강좌의 내용이다.  산재와 직업병에 대해서 법적인 인정기준을 알고보상받는 방법론에 대해서 아는 것도 필요하겠지만이 번 강좌는 그 이면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1강 에서 의학적 의료적 건강담론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2강에서는 노동운동과 노동자건강권 운동의 관계

이 지면에서 소개하는 것은 3강 법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4강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알바,하청노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학문적 운동적 연구와 노동현장에 대한 관리감독 영역을 두루 경험 하고다시 학교로 돌아가 안전과 환경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이어서 지금 이 시간 노동현장의 최전선에서 부조 리와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있는 두 노동자와의 대화를 들려드리고자 한다법을 공부하든 그렇지 않든 노동과 건강의 현실 너머 정치사회적 맥락을 이 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법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굴뚝청소부와 미친 모자장수

 

제가 재야연구소에서도 일하고, 정부에서도 일해 보고 이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되었다. 법에 대해서는 법학개론만 들은 사람인데 법조인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웃음). 근래의 동향부터 얘기해보겠다. 세월호 사건 이후 세 개의 법안이 통과되었다. 안전을 다시 보려고는 하는데 좌충우돌 하는 상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안 내놓고 있다, 사실 실정법 속에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대표적으로 좋은 법이다. 법의 철학과 원칙을 외국 에서 베낀 거라 내용이 좋다(웃음). 세월호 사건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다. 일련의 큰 사고들이 있어 왔다. 그리고 뻥 터진 거다. 저는 그 시작을 20128LG화학 공장 폭발사고로 본다. 주목받지 않은 사고인데, 다이옥산 이라는 인화성 물질, 이것을 OLED 만들 때 추출 회수하는 것인데, 다이옥산 증기가 인화성 물질이라 폭발할 수 있다. 대기업인 LG 마저도 제대로 못해서 폭발이 일어나고 11명이 돌아가셨다. 후속보도는 그 기업에 지역도서관에 책을 기부했다는 이야기가 후일담으로 나오더라. 20129월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13127 삼성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났다. 여론도 악화되었다. 우리 사회는 더 큰 사고가 일어나서 앞의 사고를 잊게 한다, 앞의 기업들은 얼마나 좋아할까. 사람들은 이걸 노동안전의 문제로 받아들이나? LG 사건은 망각했고, 구미는 환경문제로 받아들였다. 삼성도 환경안전의 문제로 봤다. 삼성과 대중 모두 노동안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경안전의 문제가 없진 않지만 기업, 노동안전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안전논의, 정상인가. 최근 많이 나오는 이름, 하인리히 법칙은 사고의 법칙이다. 사고가 발생하는 매커니즘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이야기이다, MAJOR INJURY 1이 있을 때 MINOR INJURY 29, NO INJURY ACCIDENT300 이라고 정리했다. 이건 75,000건의 산재를 분석한 거다. 1931년에 출판했는데, 미국 산재보험이 민영보험인데 책 쓴 사람이 보험사직원이었다. 이 사람은 (학자가 아리라) 돈을 벌려고 쓴거다. 사고를 바라보는 과학적 법칙이 최초로 산업재해로부터 나왔다. 안전은 어느 부처에서 해야 할까. 국민안전처? 거기서 뭘 하겠나, 국민이 들어갔으니 국가보단 나은 것 같지만, 구조를 중심으로 하겠다는 거다. 비전문가들은 안전으로 퉁치지만 예방은 전혀 다른 거다. 잘못된 조직이다.

 

이렇게 모을 것 같으면 여기에 예방하는 조직들도 가져다 붙여야 한다. 실제 예방 업무는 20개 부처에서 다 한다. 안전을 나눠보자. 해상안전 교통안전 환경안전 식품안전 노동안전 제품안전 시설안전 이것들이 다 독립적으로 있나. 겹쳐 있다. 법은 적용범위가 서로 있는데 상충 안 되게 하려고 하지만 모든 곳에 들어가는 감초 안전이 있다. 노동안전이다. 생산의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들, 그 겹치는 지점, 자본주의는 생산을 하기 때문에 모든 위험은 생산에서 나온다. 노동안전은 하인리히가 드러내주기도 했지만 제1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비율도 높고, 모든 불안전 상태를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 동향은 이 노동안전을 쏙 빼놓고 한다. 일부러 빼는데 한 몫 하는 곳이 정부, 그 중에서도 바로 노동부다. 심지어 판교 환풍구사태도 노동부는 관계당국이 된다. 피해자들이 야근을 했기 때문에. 산재 여부도 논란이 된다. 노동부가 거기 갔다. 감독관이 갔다. 노동부가 관계당국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경제부처인양 행동한다. 문제가 터지면 책임져야 하니까 하지 않는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노동자안전 관련 정부기구가 독립해야 움직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 그게 핵심적 문제다. 노동안전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안전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작부터, 사회법의 시작이다. 노동법 중에서도 실은 노동안전이다. 노동법 역사를 말하면 안전의 원칙이 도출된다. 유럽의 안전법들이 그렇게 입안이 되었고 철저한 원칙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노동법의 역사는 다들 아실텐데, 최초의 노동법은 공장법이다. 1833년 공장법을 말하는데, 이 때 근로감독관을 최초로 임명했다. 앞서서 최초의 노동법은 1799년 단결법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단결금지법이었다. 사실 노동법이 아니다. 1824년에 단결금지법을 금지하는 법안이 나온다. 1802년의 법이 하나 있다. 구빈원이 거리에 있는 부랑아들을 강제 수용해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교도소였다. 어린 아이들은 일을 더 시켰다. 아이들을 대공장에서 가혹하게, 16-17시간 일을 시켰다. 헬스(환기-주로 면공장이라) 모럴(교회 갈 시간이라도 주고 일을 시켜라)는 법이다. 사실 노동안전보건법이다. 아이들이 죽거나 병든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1776년 국부론이 나오는데 국부론이 나오기 1년 전에 최초의 직업성 암이 밝혀진다. 굴뚝청소부. 왜 굴뚝 청소가 갑자기 필요해졌을까. 산업혁명 영향으로 이 때부터 가정에서 석탄을 때야만 했다. 석탄 질이 나빴다. 부산물도 유독하고. 당시 기차가 달리고 철강, 엄청난 고열을 필요로 하는데, 나무가 좋은 연료였지만 다 써버렸다. 석탄도 많고 하니, 코크스 오븐 방법을 개발해서 석탄을 쓰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 굴뚝의 지름 평균 46센치. 굴뚝 청소부가 드나들었고, 어린 아이 여야만 했다. 이 아이들에게 질병이 생겼는데, 무슨 암이었을까. 고환암. 피부암에 속하고, 숯검댕의 피부노출이 극심하게 되면서 고환 밑이 변색되고 사마귀가 나면서 암이 되고, 전이가 일어나서 매우 고통스럽게 죽는 병이다. 1775년 퍼시벌 포트 라는 외과의사가 밝혀내는데, 당시 굴뚝 청소부에게는 폐암이 더 많았을 건데, 그 때 고환함을 진단했고, 국회의원으로써 국정감사를 했다. 1788년에 가서 굴뚝청소부 법이 만들어진다. 몇 살 이하 어린이는 굴뚝에 올리지 말자고 했다, 8살이다. 고환암은 양반이었다. 청소하는데 불을 때서 불에 타죽거나 질식으로 죽는 게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독일은 같은 시스템에서 안 걸렸다는데, 갑옷을 입혀서 피부노출이 안 되었다고 한다. 이게 최초의 노동안전보건법이다. 1788-1802년 이 때 만들어진 노동법이 다 노동안전보건법이다.

 

13-4 굴뚝청소부.jpg 

<사진. 좌측 그림, 영국의 굴뚝청소부 (http://fyeah-history.tumblr.com) / 

우측 그림, 굴뚝청소부의 작업 모식도 (wikipedia)>

 

산재보상법을 보자. 그 사이 노동시간에 대한 법이 만들어지고, 1884년에 보상법이 최초로 나온다, 독일 비스마르크가 어떤 사람인가. 빨갱이 사냥꾼이다. 극렬 우파가 보상법을 왜 만들었을까. 유럽의 공산주의 유령에 노동자들이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산재법을 만든 거다, 공산주의에 감염되지 않도록, 산재는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팔 잘리고 목숨을 잃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다. 노동자들은 공제회를 만들었는데, 비스마르크는 이걸 자기 걸로 한 거다. 산재는 체제를 위협했다. 여담을 하자면 <레미제라블>도 산업재해 때문에 일어났다. 왜 빵을 훔쳤나. 누나를 도와야했다, 누나는 엄마 같은 존재였는데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으니까. 아버지의 직업은 가지치기 노동자였는데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보상을 못 받았다. 배경은 1800년대 초다. 그래서 레미제라블이 성립이 된다

 

여기 보면 산재 얘기 많이 나온다.1847년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나. 섣달 그믐날 성냥 팔던 소녀가 얼어 죽는 얘기. 안데르센 평전을 보면, 성냥팔이 소녀가 그려진 판화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당시 풍속화에 굴뚝 청소부도, 성냥팔이 소녀도 등장한다. 그림을 보면 턱이 무너져 있다. 성냥 공장에서 쫓겨난 아이들이다. 쫓겨날 때 먹고 살라고 성냥을 준거다. 당시 성냥이 엄청난 유해물질, 인이다. 노란 인을 썼는데, 이걸 먼지처럼 마셨다. 뼈가 제일 약한 곳부터 녹아내린다. 그게 바로 인턱. 대표적 직업병이다. 이 소녀들은 이 병으로 죽었다는 얘기다. 과도한가? 안데르센이 받은 판화에 인턱 인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 일본의 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해석 책에도 이 말이 나온다.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를 보면 다 상상 속의 인물, 그 중 실존인물이 하나 있다. 실제로 당대 영국에 많았던 사람, 직업병의 당사자, 매드 해터, 미친 모자장수라고 번역이 되는데, 모자 장수는 모자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쫓겨난다. 왜 미쳤을까. 모자를 만들 때 양가죽에서 털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어떤 물질에다가 담그고 양털을 끓여야 한다. 무두질이라고 하고, 태닝이라고 한다. 그 물질은 신경독성이 있는 중금속, 수은이다. 수은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미백효과도 있다. 앨리스에 나오는 매드 해터는 실존인물이다. 그 동네에 모자공장이 많았다. 사고는 얘기꺼리도 안 된다.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고전을 읽어라. 찰스 디킨스의 이야기는 보고이다. 그런 예가 허다하다. 원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성냥팔이 소녀들이 죽어가고 1908년 황인이 금지되고, 빨간 인이 대체물질로 개발됐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37조에 금지물질, 맨 위에 있다. 역사가 묻어있다. 1919ILO가 탄생한 해인데, 이 때 8시간 노동이 기준이 되는데, 저는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이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안전보건과 관련된다. 노동은 인격과 분리할 수 없다. 인격의 기초는 생명이다. 자유권도 건강 생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 원칙을 천명한 사건이다.

1974년 영국 안전보건 관련 법들이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안전보건법의 원칙이 있다. 첫째,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분명하게 한다, 특히 생명을 좌우하는 안전보건에선 더 그렇다. 둘째, 사전예방의 원칙이다. 보호구를 먼저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하거나 위험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다. 셋째,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98%의 사고가 막을 수 있는 재해라고 한다, 2%만이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고라는 것이다. 공식문서에도 inccident라고 쓴다. 넷째, 양립불가의 원칙이다. 안전규제가 여기저기 다를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원칙이 법에 담겨있다. 이 법은 1989EU가 산업안전의 원칙으로 선언하면서 유럽전역에 퍼지고 여기서 위험성평가가 나온다. 일본이 유럽의 스탠다드를 따르면서 한국 법에도 들어온다. 이런 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보겠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에 제정되고, 90년 전면 개정되었는데 그사이엔 법실효성이 없었다. 1953년 안전보건이 근로기준법에 들어가고, 1961년에 대통령령으로 안전보건규칙이 만들어졌다. 90년 개정에는 문송면, 원진 사건이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장은 총칙, 2장에 안전보건관리체제가 나오는데 이게 조직이다. 아까 말했듯이 권한 책임이 일치되어야 한다, 2장에 13조 안전보건관리책임자 14조 관리감독자 순서로 책임이 큰 순서로 나오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국민의식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것이다. 의식은 개인의 문제로 보는 거 아니냐. 법은 조직으로 되어 있다. 총칙에도 책임소재라는 말이 명확히 들어가 있다. 책임소재라는 말이 들어가는 데가 두 개의 법, 산업안전보건법과 식품법이 있다. 책임의 소재는 누구에게 있냐, 법률 주어가 85% 이상 사업주다, 왜 사업주인가, 사용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더 넓은 개념인데, 사업주는 법인이 되는 거다. 조직이 움직여야 하는 법이라고 저는 해석한다. 사업주가 처벌 대상이 된다.

사법처리와 행정처분, 행정처분은 과태료이고 사법처리가 많은데 이걸 사업주가 받는 거다. 피의자가 법인이 되는 거다, 그럼 행위한 사업주 사람은 어떻게 되나 양벌규정이 들어간다. 이번에 검찰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기업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법인이다. 대부분 형법이 개인으로 되어있는데 자본주의 시대에는 조직이 일을 저지른다. 책임을 분산시키고, 법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법인은 감옥을 갈수가 없다, 벌금을 낼 수 있는데 지금 산업안전보건법에 1억 이하로 되어 있다. 662가 최고 형량인데 삼성도 1, 5인사업장도 1억이다. 그래서 삼성은 사내하도급을 쓰고 거기서 사람이 죽으면 최고형량이 1천만원이 된다. 영국, 미국은 고의성이 농후하고 반복적이면 1000만 달러 이상으로 되어 있다. 삼성이 1998년 괌공항 리모델링 공사 하다가 한국노동자 1명이 사망했을 때 860만 달러 벌금을 받았다(현재 환율 기준 93억 정도). 그렇게 혼이 나고 나서 삼성건설은 좀 달라지긴 했다. 하여튼 법인이 책임자다. 이런 위계를 산업안전보건법은 명확히 하고 있다. 그 아래조항들은 기술법이다. 법령집이 두껍다, 행정규칙이 72개인 법이 있나. 지침까지 합치면 캐비넷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다.

 

대단히 복잡하면서도 영양가가 없다. 노무사도 포기하고 시험 본다. 변호사는 이 법 이름을 듣지도 못했을 거다. 법조인이 없으니 법이 개발되겠나. 개악이 이루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기술법이라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 1,2장이 제일 중요하다. 책임소재가 다 나와 있다. 시시콜콜한 3,4장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큰일을 그르친다. 감독관을 보자면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 따로 300명 정도 되고 일반 근로감독관이 1200명 정도 있다. 300명의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은 113개 조항을 다 활용하고 있고, 근로감독 15년을 한 감독관도 늘 새롭다고 말한다.(웃음) 내용이 많아서 어렵다. 감독관은 늘 300명이다. 이중 행정직이 50%. 이분들은 대부분 5년 미만이다. 암담하다. 제가 17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도 사업장에 가면 암담한데 여긴 늘 새로운 업종을 봐야 하고 내가 못 보던 라인을 봐야 하는데, 서류만 보고 하는 실정이다. 조직과 인력 문제가 있다.

 

감독관이 하는 일은 예방업무와 조사업무인데 예방업무는 감독, 조사업무는 재해조사. 감독은 정기 수시 특별감독이 있다. 행정대상은 계획을 짜서 감독한다. 사법조치, 행정조치 있는데 2012년부터 즉시 과태료 행정을 시작하니 구글에 산업안전보건법 검색도 폭주하더라. 산업안전보건법은 상당부분 과태료다. 90년 이전에는 사법조치였는데 사법조치가 너무 어렵다, 일도 10배 더 많다, 증거채증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작업이다. 실효성이 없다. 과태료는 죄도 아니고 일도 적다, 과태료가 많아졌다.

 

감독을 하려면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는데 산재보험 가입하면 시스템에 올라간다, 영국은 사업자등록 내고 동시에 안전보건청에 등록을 한다. 우리는 산재보험 가입을 안 하면 통계추계가 안 된다. 원칙이 없다, 생각이 없다. 법은 잘 되어 있는데 행정을 잘못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 행정의 문제가 또 뭐냐면 감독대상을 선정할 때 전년도 재해율을 갖고 한다. 얼핏 생각할 때는 재해가 높으면 감독을 받아야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보험을 타먹은 죄로 너 때문에 감독이 왔잖아이렇게 된다. 산재보험이 무과실이고 사회보험인데 이게 두려운 대상이 되어 버린다. 미국은 산재가 민영보험이라 개별사업장이 산재 얼마나 타 먹는지 알수 없다. 통계는 표본사업장을 통해 수집한다. 사고가 있는데 누락하면 패널티를 세게 간다. 개별 사업장을 타겟팅 안 하고 위험업종을 추려서 무작위 감독을 나간다. 산재보험 타 먹었다는 낙인이 없고 보고를 소홀히 하는 문제는 덜 발생한다. 안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보고하지 않는 문제는 한국이 가장 심각하다. 한국 사고율이 만인율 1.23명 정도 된다. OECD 1~2위다. 재해율은 0.57%. 독일이 3%. 우리가 재해율이 12%가 되어야 한다. 더 심한 곳이 건설이 다. 왜 더 심화되냐 하면 산재보험과 산업안전보건법이 밀착되고 자료도 공유되면서 감독 문제가 일어난다. 건설산업에 환산재해율이 있고, 국토부 법에는 재해율 갖고 시공감액기준이 있다. 이게 분명이 대규모 업체의 재해, 중대사고를 줄이기는 했으나 언더리포트를 많이 발생시켰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어마어마하게 관심을 갖는다. 사망사고가 나면 곱하기 10으로 환산되는데 대법원 가서 무죄가 되면 없는 일이 된다. 대기업이 변호사 사서 끝까지 가는 이유다. 대기업이 이걸 따라하는데 하도급사 신임도 평가를 이걸로 한다. 하도급사

가 절대로 보고를 안 한다. 이게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거다, 나쁜 관행을 국가가 그만두지 못하니까, 원칙적으로 잘못되었다.

 

,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재보험이랑 너무 밀착되어 있다, 보상은 자유롭게 돼야 하는데 이게 막히고, 안전을 한다는 명목 아래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산재를 산재로 얘기해야, 실제 우리 규모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지금 1년 산재가 10만명 수준으로 나오는데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근로환경조사 해 보면 연간 250만명이 산재라고 나온다, 문제의 규모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다.

 

산재보험법 이름도 업무상재해보상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산재는 훨씬 폭이 넓다, 그 중 인정 받는 게 적을 수도 있고, 산업재해는 격의 없이 리포팅 될 수 있어야 한다. 감독도 그렇게 맞추어 가야 한다. 이렇게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재가 많은 건 알지만 Not In My Desk, 나 나가고 나서 하라는 거다. 언제 해야 할까. 청와대에서 결심해야 한다, 문제를 드러내고 출발하자 해야 한다.


* 참고 

 [유럽방문기]베를린 런던 헬싱키,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가다

http://laborhealth.or.kr/38115

수, 2016/03/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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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ly_head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근현대사 부분입니다. 과연 근현대사 부분의 집필은 누가 맡게 될까요?

뉴스타파 취재진이 지금까지 전국 일반대학의 역사 전공 현직 교수들의 국정 교과서에 대해 밝힌 입장을 취합해 확인한 결과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단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스타파가 국정 교과서 반대 선언을 하거나 집필 거부 선언을 한 역사 전공 현직 교수들의 명단을 바탕으로 전국 90개 일반대학의 역사 관련 128개 학과와 교육부 산하 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교수 등 총 690명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국정 교과서 반대’나 ‘집필 거부’를 선언한 교수는 모두 537명으로 전체의 78%에 달했습니다.

2015111802_01

특히 연세대 사학과와 고려대 사학과, 서울대 역사교육과 등 59개 과에서는 교수 전원(301명)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 성명에 참가하지 않은 교수 가운데는 참여 의사는 있었지만 성명서를 낼 당시에 출장 중이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또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불참한 교수도 많아 실제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교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근현대사 전공 현직 교수 가운데 96%가 국정화 반대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교수 149명 가운데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교수는 모두 7명이었습니다. 7명을 모두 확인해 보았더니 이 가운데 4명(지수걸[공주대 역사교육과],박종린[한남대 역사교육과],박환[수원대 사학과],김영미[국민대 국사학과] 교수)은 출장이나 기타 이유로 성명에 참여하지 못했을 뿐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역사 전공 현직 교수 가운데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모두 73명이었습니다. 결국 근현대사 전공 현직 교수 96%(73명 가운데 70명)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이 됩니다.

남은 3명은 건국대 한상도 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정영순 교수 등 3명입니다.

이 가운데 권희영 교수와 정영순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속해있는 한국현대사학회 소속으로 그동안 국정교과서에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건국대의 한상도 교수는 독립운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MB 정부 때 국사편찬위 편집위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11월 12일 한국학중앙연구원·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 주최한 광복70주념 기념 학술대회에서 정영순 교수와 한상도 교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국정화 반대입장을 밝히지 않은 근현대사 전공 교수 3명을 추려냈는데 그 가운데 2명이 국책기관 주최 행사에 함께 참가했다는 것은 사실 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취재진의 질문에 정영순 교수는 “집필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집필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한상도 교수도 국정 교과서 찬반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모른다”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 지난 11월 12일 서울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광복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정영순, 한상도 교수에게 뉴스타파 홍여진 기자가 국정 교과서와 집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이쯤되면 왜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교과서의 집필진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지, 왜 역사 전공 학자 이외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교과서 제작에 참여시키는지 이해가 갈 만합니다. 국편이 집필진을 현직에서 은퇴한 명예교수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을 중심으로 찾는 것도 현직 교수 가운데서는 집필자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또 교과서를 심의할 편찬 심의위원에 대해서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으로 보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측은 오는 20일까지 집필진 구성을 끝내겠다고 밝혔지만 “집필진 명단까지 공개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국편 위원장도 교육부 장관도, 취재진이 만나 직접 물었지만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 지난 11월 12일 서울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광복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김정배 국편 위원장이 국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 뉴스타파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영상입니다.

아래의 표는 각 대학 역사 전공 교수들의 국정화에 대한 반대 현황입니다.

– 정원을 파악할 때 명예교수와 특수신분 교수는 제외했습니다.
– 공개적인 성명으로 입장을 표명한 교수 만을 집계했습니다.
– 여러 전공이 함께 있는 학부나 학과의 경우 역사 전공 교수의 숫자를 정원으로 잡았습니다.
– 누락되거나 수정이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는 연락을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외에도 서울교대 사회교육과와 상명대 교양학부, 대구한의대에도 성명에 참여한 역사 전공 교수가 있었지만 정원 파악이 불가능해 #표로 표시하고 계산에서 제외했습니다.

학교 정원 반대
가톨릭관동대 역사교육과 3 0
가톨릭대 국사학과 4 3
강릉원주대 사학과 5 5
강원대 교양학부 2 2
강원대 역사교육과 5 5
강원대 사학과 6 5
건국대 사학과 6 5
경기대 사학과 5 0
경남대 역사학과 6 1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고고학 3 2
경북대 역사교육과 7 3
경북대 사학과 9 9
경상대 역사교육과 5 5
경상대 역사교육과 5 5
경상대 사학과 8 7
경성대 사학전공 3 3
경인교육대 사회과교육과 역사전공 3 3
경희대 사학과 9 9
계명대 사학과 7 4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고고학 9 4
고려대 역사교육 4 4
고려대 사학 5 5
고려대 한국사학 9 9
공주대 역사교육과 5 0
공주대 사학과 6 2
광주교육대 사회과교육 역사담당 2 2
광주대 관광경영학과,영문학과 3 3
국민대 국사학과 9 6
군산대 사학과 5 3
단국대 외국어대 역사학과 5 5
단국대 문과대 사학과 6 6
단국대 교양학부 8 5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5 1
대구교대 사회과교육과 3 1
대구대 역사교육과 4 4
대구한의대 아동복지,호텔관광 # 2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5 5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부 역사전공 3 2
덕성여대 사학과 4 4
동국대 역사교육 4 4
동국대 사학과 5 4
동국대(경주) 국사학과 4 2
동국대(경주) 고고미술사학과 5 1
동덕여대 국사학과 5 5
동아대 사학과 6 4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7 0
동의대 사학과 4 4
명지대 미술사학과 4 3
명지대 사학과 7 6
목원대 역사학과 3 3
목포대 고고학과 4 0
목포대 사학과 7 7
부경대 사학과 6 5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2 2
부산대 고고학 5 5
부산대 역사교육 6 6
부산대 사학 12 11
부산외국어대 역사관광학과 4 4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6 5
상명대 교양학부 # 1
서강대 사학전공 11 8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역사전공 3 3
서울교육대 사회교육과 # 1
서울대 역사교육과 7 7
서울대 동양사학 8 7
서울대 고고미술사학 9 7
서울대 서양사학과 9 5
서울대 국사학과 12 11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8 8
서울여대 사학과 4 4
서원대 역사교육과 5 5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4 4
성균관대 사학과 11 10
성신여대 사학과 5 5
세종대 역사학과 2 0
수원대 사학과 4 0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8 7
순천대 사학과 5 5
숭실대 사학과 6 5
신라대 역사교육 4 4
신라대 역사문화학과 4 4
아주대 사학과 6 6
안동대 사학과 6 5
연세대 사학과 13 13
연세대(원주) 역사문화학과 5 5
영남대 역사학과 5 4
우석대 역사교육 3 2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6 6
원광대 사학과 4 3
원광대 역사교육과 5 5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3 2
이화여대 사학과 7 5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5 0
인천대 역사교육과 3 3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한국사 담당 2 2
인하대 사학과 6 4
전남대 인류학과 고고학전공 3 3
전남대 고고학,전문대학원 4 4
전남대 역사교육 6 6
전남대 사학 11 9
전북대 역사교육과 3 2
전북대 사학과 8 3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9 4
제주대 사학과 6 6
조선대 역사문화학과 7 7
중앙대 역사학과 5 5
진주교육대 사회과교육 역사담당 2 2
창원대 사학과 6 6
청주대 역사문화학과 4 3
총신대 역사교육과 4 0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역사담당 2 2
충남대 국사학과 4 4
충남대 사학과 7 7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6 3
충북대 사학과 6 4
충북대 역사교육과 6 4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8 8
한국외대 사학과 7 7
한국학중앙연구원   10 8
한국해양대 유럽학과 1 1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2 2
한남대 사학과 4 4
한남대 역사교육과 6 5
한림대 사학과 8 3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9 9
한신대 국사학과 5 5
한양대 사학과 6 4
홍익대 역사교육과 4 0
수, 2015/11/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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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꽁떡 어플이랑 채팅사이트 여러개 쓰면서..

나름 어디가 꽁떡하기 좋았는지 정리해 볼겸 끄적거려봄.

 

 

1. 달*한**

 

실시간 다수 매칭이라서 경쟁 타야함 막판에 긴장감 오짐

처음이 어렵고 살아남으면 이후로는 수월함

요즘은 심사가 까다로워져서 새로운 남여 유입이 없어보임

 

 

2. ㄷ단*

 

한창 랜덤채팅 인기탈때 흥했던 곳으로 홈런후기도 많았고

나같은 평민들도 이곳에서 꿀 많이 빨았음 최근에 다시 깔아봤는데

사람도 없고 조건글로 넘쳐난다. 쪽지 보내고 기다리다 보면 간혹

월척이 뜨기는 하는데 여유 시간 많을때 해야함 강태공들이

많으니 월척 톡아이디 받으면 곧바로 다른쪽으로 이어가야함

 

 

3. 슈**ㅌ

 

여긴 작년에 핫 했음 이메일로만 가입하고 먼저 접속한 사람을

밀어주는 매칭 방식이라서 일반 랜덤 방식이랑 확실히 틀려 가끔

재미 보는데 기다리기 짜증나면 기본 택시비 정도로 만날 수 있음

 

 

4. 쎄**

 

최근에 누가 기혼녀 만난 후기썰 올려 유명세 탄 곳으로

짧은 거리순으로 먼저 매칭돼서 경쟁타며 시간뺏길 염려가 적음

요즘 유행하는 채팅이고 만나서 꽁떡하기까지는 여기가 가장 쉽다

조건거는 일부 생계형 여성들 차단하고 대충 쪽지만 몇개 날려도

바로바로 답장옴 의외로 오전에도 많고 여자들도 찾기 귀찮으면

가까운 거리순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기다리면 쪽지도 먼저 온다

 

(좌표: http://bit.ly/2MGyBQ5 (PC 가능))

 

 

지금 대학생들 공강 많아서 사람도 많고 나는 4번 같은 경우가

귀찮게 설치 안해서 좋고 목적이 확실한 애들로 걸러져 있어서 쉽다

간혹 근거리에 30대 후반이 보이기는 하는데 지금은 들어가서 근거리

접속자만 봐도 20대 여자가 더 많다는걸 확실히 알 수 있다

 

목, 2018/11/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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