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총독부박물관이 오후 4시만 되면 문을 닫는 까닭은? – 전쟁 따라 출렁이던 총독부 관리들의 출퇴근 시간 변천사

지역

총독부박물관이 오후 4시만 되면 문을 닫는 까닭은? – 전쟁 따라 출렁이던 총독부 관리들의 출퇴근 시간 변천사

익명 (미확인) | 월, 2017/08/07- 15:19

[식민지 비망록 27]

주5일근무제가 정착된 요즘에는 거의 사용할 일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기성세대의 머릿속에 제법 남아 있는 언어습성의 하나로 ‘반공일(半空日)’이란 것이 있다. 이를테면 반만 쉬는 휴일, 즉 토요일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표현의 초기 용례가 궁금하여 관련 자료를 뒤져봤더니, <독립신문> 1898년 11월 29일에 공일과 반공일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눈에 띈다.

[통상회 일자 개정] 돌아간 일요일에 독립협회 회원들이 통상회를 하는데 공의하여 가로되 일요일은 7일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공일인데 공일은 세계 각국에서 사람마다 쓰지 않고 의례히 쉬는 날이어늘 독립협회 통상회를 항상 공일에 하는 것이 대단히 불가하니 이 다음부터는 공일 전날 토요 반공일에 통상회를 하기로 영위 작정이 되었다더라.

이것 말고도 일요일을 가리켜 예배일(禮拜日)이라고 한 표현들도 곧잘 보인다. 1880년대 서양 각국과 맺은 수호통상조약 말미에 붙은 ‘통상장정(通商章程)’에 조선의 항구에 입항한 선박이 24시간 이내에 해관에 신고하는 규정과 관련하여 이때 “예배일과 정공일(停公日; 공무를 정지하는 휴일)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는 구절이 으레 포함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일요일이 공휴일로 정착된 것은 언제부터의 일이었을까? 이에 관한 자료를 세밀하게 살펴보지는 못했으나, <관보> 1895년 윤5월 12일자에 수록된 각령(閣令) 제7호 ‘각 관청 집무시한’ 제4조에 “일요일은 전일(全日) 휴가를 작(作)하고 토요일은 정오(正午) 12시로부터 휴가를 작함”이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아직은 태양력(太陽曆)이 정식 채택되기 이전의 시절이었지만 이 당시에도 이미 쉬는 날로서 일요일의 존재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각령 제7호 각 관청 집무시한에 포함된 내용으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관리들의 출퇴근시간이다. 조선시대에는 흔히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에 따라 ‘묘사유파법(卯仕酉罷法: 묘시[오전 5시~7시]에 출사하고 유시[오후 5시~7시]에 퇴청하는 방식)’이 통용되었다고 하는데, 이 원칙이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도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국 504년(1895년) 윤5월 10일 각령 제7호의 각 관청 집무시한

31

33<관보> 1895년 윤5월 12일자에 수록된 「각령 제7호 각 관청 집무시한」이다. 여기에는 일요일에 종일 휴가, 토요일에 반나절 휴가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것을 보면 계절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아침 9시 또는 10시에 출근하여 오후 3시 또는 4시에 퇴근하는 방식으로 점심시간을 빼면 하루 5시간 근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름철 근무시간으로, 정오가 되면 퇴근하여 반나절만 일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직무에 지장이 없는 한 대개 여름휴가를 즐겼던 것으로 나타난다.
대한제국 시절의 관리들은 개국 504년 각령 제7호의 적용을 받았으나 1908년 7월의 각령 제6호로 개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때에도 몇 가지 세부사항이 바뀌었을 뿐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의 하절기에 오후 1시에 퇴근하는 근무방식은 변함없이 지켜졌다.
이왕 말이 난 김에, 일제 통감부에 속한 관리들의 근무형태도 함께 살펴보았더니 1906년 7월 14일에 제정된 통감부령 제22호 ‘통감부 및 소속관서의 집무시간’이란 자료가 눈에 띈다. 이것을 보면 6월초에서 9월말까지 집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정오 12시까지이고, 나머지 기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단,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규정은 1907년 10월 27일의 통감부령 제40호로 개정되었는데, 계절별로 근무시간의 재조정과 더불어 여름철 반나절 근무기간이 7월 1일에서 9월 20일까지로 축소되었을 뿐 대체적인 윤곽은 종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와 소속관서의 집무시간에 관한 규정은 새로 제정되었는데 1910년 12월 12일의 총독부령 제59호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이때 하절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기에는 평일 퇴근시간이 오후 4시로 일괄 단축 조정되었고, 그 이후 1911년 12월과 1912년 3월에 걸쳐 관련 규정이 잇달아 부분 개정된 적이 있었다.

34

<조선총독부관보> 1910년 12월 12일에 수록된 ‘총독부령 제59호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 집무시간’. 평일은 대개 오후 4시에 퇴근하고, 하절기에는 정오까지만 근무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요컨대 일제강점기의 총독부 관리들은 통상 오후 4시에 퇴근하며 여름철에는 반나절만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근무형태였다. 예를 들어 1915년 12월에 경복궁 안에 개설된 총독부박물관(總督府博物館)의 경우 열람마감시간은 오후 4시로 정해졌는데, 이는 총독부령에서 정한 총독부 및 소속관서의 집무시간에 그대로 맞춘 탓이라고 풀이된다. 

36

<조선총독부관보> 1915년 11월 19일에 수록된 「총독부고시 제296호 조선총독부박물관 설치」 관련 규정. 이것을 보면 관람마감시간이 총독부와 소속관서 집무시간에 맞춰 오후 4시로 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와중에 1922년 7월에는 총독부와 소속관서의 집무시간에 관한 총독부령이 전면 개정됨에 따라 여름철 및 토요일 반나절 근무제가 폐지되고 그 대신에 1년 통산 20일 이내 휴가를 부여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1924년 6월 28일에 총독부령 제37호가 고시되어 토요일과 하절기(7.21~8.31. 사이)에 정오 12시까지 근무하는 형태가 부활되었으며, 이 시기에 20일 이내의 여름휴가도 함께 주어졌다.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의 집무시간 개정 연혁

38

이때 정비된 집무시간에 관한 내용은 적어도 규정상으로는 일제 패망에 이르는 시기까지 유효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였는데, 문제는 역시 전쟁이었다.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이 확산되자 전시동원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발맞춰 근무시간 변경의 조짐은 <매일신보>1938년7월10일자에수록된 「하기 반휴제 폐지(夏期 半休制 廢止)」 제하의 기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사변 발발 이후로 작년 여름에는 조선 안의 각 관청에서 반나절씩 휴식하던 것을 시국관계 사무방면에 종무하는 인원만은 폐지되고 평상시와 같이 사무를 보았는데 사변 1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는 총독부에서는 사변 관계 사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무가 분망하므로 금년 여름에는 반휴(半休)를 총독부 부령으로써 전폐할 방침을 결정하고 오는 21일부터 실시할 터이라 한다.

39

중일전쟁으로 인해 총독부 소관 관청이 일제히 여름철 반휴(半休)를 폐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매일신보> 1937년 7월 18일자 보도내용

여기에서 보듯이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총독부 소속관원들은 더 이상 여름철 반나절 근무제라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였다. 이때 하절기 반휴제의 철폐는 총독부령의 개정으로 명문화하지는 않았고, 다만 정무총감이 해마다 관통첩(官通牒)을 내리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러한 시국 변화에 맞물려 1937년 12월에는 겨울철 출근시간을 종전의 오전 10시에서 9시로 한 시간 당기는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으로 다시 한 번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되자 1942년 11월 1일 총독부령제275호 ‘전시중(戰時中)의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의 집무시간에 관한 건’이 제정되어 평일 퇴근 시간이 오후 4시에서 5시로 늦춰졌고, 토요일의 경우에도 정오 12시에서 오후 1시로 조정되었다. 이듬해인 1943년 7월에는 하절기 반휴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두 달 후인 9월에는 토요일 반나절 근무제도가 사라졌다. 일제의 패망이 완연해진 1944년으로 접어들어 총독부 관리들은 전시중 하절기 20일 휴가제의 철폐를 맞이한 데 이어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40

<조선총독부관보> 1942년 7월 18일자에 수록된 정무총감 발신 관통첩(官通牒) 내용. 여기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여름철 집무시간은 단축 없이 평상시처럼 실시한다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해방 이후 시기에는 1949년 6월 4일에 제정된 ‘대통령령 제125호 공무원 집무시간 규칙’에 따라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의 대원칙이 확립되었고, 그 이후 여러 차례 규정 개정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이러한 근무형태가 정착된 것으로 나타난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일제의 침략전쟁이 없었더라면, 나아가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 자체가 애당초 없었더라면 이 땅의 관공서 관리들은 적어도 출퇴근시간에 관한 한 “오후 4시 퇴근에, 여름철 반나절 근무”와 같은 태평성대를 여전히 누리고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贈善友(증선우)

 

同生同死約(동생동사약)

盡信固愚痴(진신고우치)

四處盈奸黨(사처영간당)

君余被誕欺(군여피탄기)

 

착하고 어진 벗에게 지어 주다

 

함께 살다 같이 죽자 약속했음을

다 믿으니 정말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간사한 무리 가득한지라

그대도 또 나도 속임을 당하였소.

 

<時調로 改譯>

 

함께 살다 같이 죽자 그리 약속했음을

그대로 다 믿으니 참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奸黨인지라 둘 다 속임당했소.

 

*善友: 착하고  또 어진 벗  *同生: 함께 삶.  함께 남  *同死: 같이  죽음  *愚癡:

매우 어리석고  못남. ≒치욕(癡慾).  삼독(三毒)의 하나. 四相에 의혹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름 *四處: 사방(四方) *奸黨:

간사한 무리. ≒간도(奸徒) *誕欺: 속임. 거짓말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8:22
260
0

 

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이 뜨겁습니다. 

여기에 법원도 최근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지난 9월 15일, 서울고등법원은 한국사 교과서 6종의 집필자 12명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과연 국가권력은 교육내용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우리 헌법이 교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신은 무엇인지, 판결의 쟁점을 짚어보며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수정명령 항소심 적법 판결  

수정명령,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드는 마법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 2015. 9. 15. 선고. 2015누41441 수정명령취소
판사 지대운(재판장) 강영훈 박창제 

 

 

김선휴 간사

김선휴 참여연대 시민감시팀 간사, 변호사

 

 

 

현재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용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정교과서이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직접 또는 위탁하여 편찬하고 모든 학교가 이를 반드시 사용하여야 한다. 반면 검정교과서는 민간에서 집필한 도서에 대해 교육부장관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 검정합격을 결정하면, 각 학교가 합격된 검정도서 중 해당 학교에서 사용할 도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다양하고 탄력적인 내용의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며 교사와 학생의 교재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교육부장관이 검정에 합격한 6개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하여 내용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예를 들면, 국군의 거창양민학살을 서술한 부분에 대해 ‘균형 잡힌 서술을 위해 북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실례도 제시하라’, 북한의 주체사상을 소개한 부분에 대해 ‘학생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으므로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 노선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대내통합을 위한 체제유지전략이었음을 서술하라’,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 운동’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다’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다니’를 ‘극단으로 치닫는 강압정치’로 수정하라는 것 등이다. 

 

이에 위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법적 근거가 없고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므로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고 인정하였고,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1심판결을 거의 그대로 원용하면서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을 정당화해주었다.

 

이미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의 내용을 교육부장관이 수정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이는 근본적으로 ‘국가권력이 교육내용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또한 국가권력의 교육내용 개입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면,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와 요건이 필요한가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국가와 교육의 관계에 대해 규정한 헌법에서부터 찾아보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 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헌법 제31조 제4항)

 

헌법의 위 규정은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의 기초인 만큼 외부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영향 받지 않도록 교육자나 교육전문가에 의하여 주도되고 관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행정권력에 의한 교육내용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요구 또한 위 헌법규정에서 도출된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도 “국정교과서제도는 정부의 행정관료에 의하여 교과내용 및 교육내용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어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위 헌법규정과 모순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헌재 1992. 11. 12. 89헌마88 결정).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를 나타내는 헌법이 교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이와 같은 기본 관점을 전제로, 이 사건 판결이 과연 이러한 헌법정신에 충실한 판결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쟁점 ① 법률유보원칙 : 검정 권한이 있다면 수정 명령을 내릴 권한도 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쟁점은 법률유보원칙 위반 여부, 즉 교육부장관의 이 사건 수정명령이 법률에 근거를 둔 것인지 여부이다.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1항은 교육부장관에게 검정도서의 ‘수정’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령의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은 교과용도서의 ‘범위·저작·검정·인정·발행·공급·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교과용 도서의 ‘수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 때문에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법률’에 근거한 것인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검정권한’에는 본질적으로 ‘그 내용을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수정하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쉽게 말해 ‘검정은 수정을 포함’하기 때문에 ‘검정’의 근거규정인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 ‘수정명령’의 근거조항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 사건 수정명령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수정명령권한까지도 검정권한에 포함된다는 해석은, 검정권한의 내용과 범위를 너무 확대해서 해석한 것은 아닐까. 검정교과서제도를 채택한 취지는 헌법이 천명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하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대법원 2011두21485 판결 참조). 그렇다면 국가의 검정권한의 내용과 범위는 국가의 교육내용에 대한 개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향(내용의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확대 해석하기보다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쟁점 ② 절차적 적법성: 검정절차의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였는가? 

 

행정부와 법원의 판단대로 내용의 실질적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도 교육부장관의 검정권한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와 같은 수정명령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인지, 이 사건 수정명령은 그와 같은 절차를 거친 것인지 여부가 두 번째 쟁점이다. 

내용의 실질적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을 내리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에 대해서는 2013년 대법원에서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역시 검정을 마친 교과서에 대해 교육부장관이 내린 수정명령을 다툰 사안이었는데, “(수정명령이)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새로운 검정절차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으므로 검정절차상의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시하였던 것이다(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1두21485 판결 참조). 
 

이 사건 수정명령을 내리기 위해 교육부장관은 새로운 검정절차를 다시 거치지는 않았고, 대신 ‘수정심의위원회’라는 것을 구성하여 심의를 진행한 뒤 수정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이 ‘수정심의위원회’의 위원 선정방식, 위원구성, 소집절차와 심의방식 등이 교과용도서심의회의 경우와 거의 동일하게 이루어졌으므로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라고 인정하였다. 심의기간이 비교적 단기간이라거나 수정심의회의 심의사항 및 수정심의회 위원의 인적사항이 비공개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지나치게 형식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다.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있어 특정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그 절차의 보장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위 2011두21485 판결에서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요구하는 이유가 “그렇지 않으면 행정청이 수정명령을 통하여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거나 잠탈할 수 있”기 때문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절차와 ‘유사한 외관’을 갖춘 절차를 거쳤다는 점만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정절차를 둔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여야 한다. 따라서 법원은 단순히 수정심의회의 의사/의결정족수, 기초심사와 본심사의 분리운영, 위원의 분리구성 등이 교과용도서심의회와 거의 유사하게 이루어졌다는 외관의 판단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수정심의회 절차의 투명성, 수정심의회 구성원의 다양성, 교육행정권력으로부터의 일정한 독립성, 심의회 내에서의 충실한 토론과 의견 개진 및 이를 위한 충분한 기간 등이 확보된 절차였는지, 그래서 검정절차를 둔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였는지를 더욱 면밀하게 판단했어야 한다. 재판이 있기 전까지 수정심의회 및 그 사전절차에 대해 거의 공개되지 않았고, 재판과정에서도 그 절차의 부실함, 불투명성이 드러났음에도 절차적 적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판단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쟁점 ③ 재량 일탈·남용: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 수 있는 재량?

 

이 사건 판결의 마지막 쟁점은 재량의 일탈·남용 여부, 즉 이 사건 수정명령이 교육부장관에게 주어진 재량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판단이다. 

법원은 검정권한에 포함된 수정권한을 ‘그 내용을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수정하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수정명령은 ‘교육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 ‘적합한 것’으로 바꾸도록 하는 범위에서만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이 사건 수정명령들이 “오해 또는 오인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없애거나 고치도록 한 것”, “중요한 사안에 대한 서술의 비중을 다른 쟁점과 균형이 맞는 수준으로 늘리기 위한 것”, “학생들에게 보다 완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재량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르면 법원은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이 “교육적합성”을 갖추지 못해 검정도서로서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본 것은 아니다. 다만 법원이 보기에는 수정명령이 서술의 균형을 맞추고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향이기 때문에 수정명령대로 고쳐도 무방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사실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이 교육적합성을 갖추지 못한 정도라면 불과 3개월 전 더욱 엄격하게 진행된 검정절차에서 합격했을 리도 만무하다.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A)과 수정명령의 내용(B)에 대한 선호나 가치평가를 떠나서, 만약 A와 B 모두 검정교과서로서 교육적합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면, A를 반드시 B로 바꾸도록 강제하는 수정명령은 ‘교육적합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A라는 내용의 교과서도, B라는 내용의 교과서도 검정교과서 제도 하에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계속 강조하는 바와 같이 헌법정신과 검정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교육적합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서술의 순서나 분량, 자료의 취사선택, 세부적 표현 등은 역사학자이자 교육전문가인 저자들에게 맡겨진 자율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명백하게 교육적합성을 상실한 것도 아닌 검정합격도서에 대해, 교육부가 지엽적인 서술 순서나 세부적인 표현까지 고치도록 명령하는 것을 재량의 이름으로 허용한다면, 이는 결국 검정교과서 제도를 수정명령을 통해 국정교과서와 같이 운영할 수 있는 재량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 

 

바람직한 해결을 기대하며 

 

사실 문제의 발단은 첫 번째 쟁점인 법률유보원칙 위반에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 교과서제도에 대해 법률단계에서 전혀 정하지 않은 채 포괄적으로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하고 있다 보니, 수정권한의 존부와 범위, 필요한 절차가 모두 해석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행정권의 자의적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교과서제도의 중요한 내용들을 법률의 단계에 구체화시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그와 같은 입법적 개선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면, 법원은 존재하는 법령을 최대한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해석함으로써 행정권의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제동을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보다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 2012/10/07- 15:14
259
0

wp-content/uploads/2017/09/201709.pdf

화, 2017/09/12- 21:22
259
0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9강 식민통치 마케팅 – 박람회와 기념축전 ③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8/11- 15:36
258
0

[민문연 역사강좌] 제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 산미증식계획 ②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8강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 산미증식계획 ②
강사 :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화, 2017/07/25- 18:32
25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