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마지막 주에 두 명의 미국인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미국 남부 출신이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한국계 미국인 전순태,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베츠 헌틀리는 나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80년 광주항쟁은 우리를 잇는 끈이었고, 우리는 한국의 평화와 정의를 함께 염원했다.
전순태
나는 1980년부터 1982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살면서 처음 전순태를 알게 됐다.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가방 가게를 운영했는데, 광주항쟁 이후 현지 한인 사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각성의 일환으로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기로 결심했고, 북한의 고향땅을 찾은 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 씨는 한때 방문이 금지됐던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많은 한국인들을 도왔다. 이후 그는 한국계 미국인 영화제작자 디앤 보르셰이 림과 램지 림의 한국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잊혀진 전쟁의 기억에 출연하면서 약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영화 웹사이트 중 전 씨에 대한 소개페이지 참조). 영화제작자 림 씨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전 씨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전순태는 우리 영화의 핵심 출연자로서, 그의 인생 이야기는 한국전쟁의 참담한 실상과 끔찍하게 지속되는 한국의 분단,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염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국의 해방과 평화 통일을 위해 싸운 위대한 투사였다.
전 씨의 고향 개성은 38선 이남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지배를 받게 됐다. 영화에서 전 씨는 1950년 6월 개성의 한 저수지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했던 수영 시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저수지에 총탄이 떨어지고 기관총과 박격포 쏘는 소리에 잠이 깬 그는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휴전 회담으로 개성이 봉쇄 되는 바람에 전 씨는 개성 밖에, 전 씨의 아버지는 개성 안에 발이 묶였고, 그는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전 씨는 남자형제 둘과 여자형제 하나와도 생이별을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196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거의 20년 후, 그가 첫 북한 방문을 한 뒤에 나는 그를 인터뷰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가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 시기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 시대는 정치, 사회적 혼란기이자 국가의 분단상황을 타개하려는 열망이 큰 시기였다.
그는 “나는 행렬의 맨 앞에 있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게 행운이었죠. 그러나 4.19 이후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밤이건 낮이건 모든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당시 통일에 관한 메시지가 남북 학생들 사이에 오갔으며, 판문점에서 양측 회담을 열기 위한 계획이 준비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논의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소장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금지시키면서 돌연 중단됐다. 전 씨는 “박정희가 역사의 흐름을 막았다”고 슬프게 말했다. 1980년, 전두환이 유사한 방식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박정희의 쿠데타를 떠올리게 했고, 전순태 씨는 다시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에 뛰어들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자주 방문했던 시기 외에 그는 남은 일생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
6월 26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숨을 거둔 베츠 헌틀리 목사는 아내 마사와 함께 광주에서 장로교 목사로 여러 해 일을 했다.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에서 의사 겸 원목실장으로 일하던 당시 그는 전두환의 특수부대가 자행한 학살과 그 이후 계엄군으로부터 광주시를 해방하기 위해 일어난 광주항쟁을 목격했다.
당시 광주에 머물고 있었던 많은 외국인들과 달리, 헌틀리 목사와 그의 아내는 광주를 떠나 피신하라는 미국 정부의 권고를 거부했다. 그들은 오히려 계엄군의 공격을 피해 찾아온 사람들을 피신시켜 주었다. 지난 7월 7일, 광주 MBC는 헌틀리 목사의 공헌을 기리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헌틀리 목사 부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광주 항쟁의 직접적인 목격자들이었다. 1981년 2월, 나는 2달 간의 방한 일정 말미에 광주를 방문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의 선교사 친구들을 통해 헌틀리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헌틀리 부부는 나를 자신들의 집에 따뜻하게 맞이했다. 당시 헌틀리 목사의 집에서 나는 며칠을 지내며 광주항쟁의 희생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과, 광주 시민들이 총알, 곤봉, 군화, 총검에 당한 끔찍한 부상을 직접 들었다.
헌틀리 부부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전두환의 광주 항쟁 진압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탐사를 시작했다. 헌틀리 부부를 방문한 지 15년 후, 나는 마침내 광주항쟁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 문서 더미(‘체로키 파일’을 말함-역주)을 입수했다.
내가 입수한 문서 중 하나는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로 보낸 외교전문이었다.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선호하는 ‘폭동’이라는 거짓 단어를 쓴 것이었다. 해당 문서에 나오는 내부자는 익명으로 처리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헌틀리 목사의 증언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문서는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은 인간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다.
헌틀리 목사는 이런 인상적인 구절을 남겼다.
우리가 광주에서 본 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의 집회를 지나치게 탄압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1773년 영국 본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에서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사건. 이는 이후 미국독립혁명의 발단이 됐다 -역주)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그는 또 “5.18은 공산주의자의 선동이나 침투, 또는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게 아니었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광주항쟁이 시민들의 정의와 민주주의 요구에 기반한 항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광주항쟁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안타깝게도 미국 정부는 헌틀리 목사의 증언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헌틀리 목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와 광주 시민들은 모두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전순태 씨와 베츠 헌틀리 목사 모두 특별한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부디 두 분 다 영면하시길.
REMEMBERING TWO AMERICANS – ONE KOREAN, ONE SOUTHERN – WHOSE LIVES TOUCHED KOREA
The last week of June, 2017, saw the deaths of two Americans – one of them Korean, the other from the US South – who in separate ways had a profound impact on the people of Korea. Chun Sun-tae, who lived in California, and Betts Huntley, who was from North Carolina, also influenced me deeply. Our common bond was the Gwangju Uprising of 1980 and our mutual concern for peace and justice in Korea.
CHUN SUN-TAE
I first knew Chun Sun-tae when I lived in the San Francisco Bay Area from 1980 to 1982. At the time, he was running a luggage store in Oakland, California, and had become very active in the local Korean community in the aftermath of the Gwangju Uprising. As part of his political awakening, he decided to visit his family in North Korea, becoming one of the first of many Korean-Americans to go back to their homeland.
Over time, Mr. Chun helped many Koreans visit the once-forbidden North. He later gained a modicum of fame when he starred in Memory of Forgotten War, a documentary about the Korean War by the Korean-American film makers Deann Borshay Liem and Ramsey Liem (here is a section on Mr. Chun from the film’s website). In a tribute on his Facebook page, Mr. Liem wrote:
“Chun Sun-tae was not only a critically important participant in our film – his life story so vividly brought to life the hard realities of the Korean War, the terrible unending division of Korea, and the longing for family reunion – but a great fighter for Korea’s liberation and peaceful reunification.”
Mr. Chun was from Kaesong, a village that was south of the 38th parallel but ended up under communist control after the war. In the film, Mr. Chun talks about a swimming outing to reservoir he made with his friends in Kaesong in June 1950. “The next day, he awakes to bullets dropping in the water and the sound of machine guns and mortar fire, and discovers Kaesong is occupied by the North Korean army. When Kaesong is later sealed off for peace talks, Chun is left on the outside while his father is trapped inside the city; he never sees his father again.”
Mr. Chun also left behind two brothers and a sister. After going to college in Seoul, he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in 1964. Nearly two decades later, I interviewed Mr. Chun after he made his first trip North. To my surprise, I learned that he had been a college student in Seoul during and after the 4.19 uprising against the dictator Rhee Syngman, a period of ferment and yearnings for an end to the country’s division.
“I was on the front lines,” he told me. “I was lucky to survive. But after April 19, all I remember, day and night, all we were talking about was reunification.” He said that messages about unification were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students from South and North, and plans were being made for grand meetings of both sides in Panmunjom.
But all that stopped abruptly after the May 16, 1961, coup d’etat by General Park Chung Hee, who declared martial law and banned any contact with the North. Park “blocked the course of history,” Mr. Chun told me, sadly. Memories of Park’s coup were triggered in 1980 when General Chun Doo Hwan seized power in a similar crackdown, driving Chun Sun-tae to be politically active again. Except for his frequent visits to his family in North Korea, he lived in California for the rest of his life. He died there during the last week of June.
REV. DR. CHARLES BETTS HUNTLEY
Betts Huntley, who died in North Carolina on June 26, served with his wife Martha as a Presbyterian missionary in Gwangju for many years. In May 1980, while working at the Gwangju Christian Hospital as a doctor and a chaplain, he witnessed the massacre by Chun’s Special Forces and the subsequent uprising in which Gwangju citizens liberated their city from the martial law army.
Unlike many foreigners in Gwangju at the time, Rev. Huntley and his wife refused US government pleas to leave the city. Instead, they sheltered people who came to them for safety from the marauding martial law troops. On July 7, Gwangju’s MBC television broadcast a special tribute to the missionary honoring his service to the city.
Rev. Huntley and his wife were the first direct witnesses to the Gwangju Uprising I met. In February 1981, I visited Gwangju at the tail end of a two-month visit to South Korea. I had heard about the Huntleys through missionary friends of my parents in Seoul, and they welcomed me to their home. I spent several days there, and heard first-hand from Rev. Huntley and his wife about huge number of casualties and the terrible wounds caused to Gwangju citizens from bullets, clubs, boots and bayonets.
With that information, I began my quest to discover the truth of what occurred in Gwangju and the role played by the United States in General Chun’s suppression of the uprising. Fifteen years after my visit to the Huntleys, I obtained the collection of declassified US government documents that finally told the true story about the US role.
One of the documents I obtained was a cable from US Ambassador William Gleysteen to the State Department titled “Insider’s Account of Kwangju Riot,” using the false term about the uprising favored by the US government. I instantly recognized the account as the work of Rev. Huntley, even though he was not identified. But it humanized the uprising in ways the US government never did.
In one memorable passage, Rev. Huntley wrote, “What we saw in Gwangju was a demonstration of free people pushed too far. I liken it to the Boston Tea Party.” He added: “The May 18 incident was not communist-inspired or infiltrated or infected.” He knew it was a peoples’ uprising, based on citizens’ demands for justice and democracy (his report is attached in PDF format).
Unfortunately, the US government paid little attention to his account. But without the help of Rev. Huntley in 1981, I may never have obtained my documents. I and the citizens of Gwangju therefore owe him a great deal.
Both Chun Sun-tae and Betts Huntley are examples of how ordinary people caught in extraordinary events can influence history. May they both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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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에서 엽기적인 폭행과 가혹행위가 장기간 일상적으로 발생했지만 내부에서 묵인, 은폐돼 온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드러났다. 지난 8월엔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와서 피해 병사들의 진술까지 받아갔지만 두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최근 해병대사령부가 운영하는 해병대 휴양시설인 덕산스포텔, 일명 덕산대에서 복무 중인 해병대 병사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 피해 자술서를 입수했다. 이 자술서엔 덕산대 부사관들이 사병들을 상대로 자행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이를 묵인한 과정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뚝배기 집게로 병사 혀 잡아 당기기, 주방용 가위를 병사 입과 귀에 대고 자른다고 위협하기,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 꺾는 동안 웃으며 노래 1절을 부르기, 목공용 공구인 타카를 병사를 향해 쏘기, 빨래 건조대 봉에서 뽑은 철심을 허벅지나 팔에 튕기기, 술을 마시고 들어와 병사의 머리에 야구배트를 크게 휘두르기, 글러브를 끼고 권투를 하듯 병사 때리기 등등.
이 같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발생한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와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피해 병사들의 피해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덕산스포텔을 찾았다.
객실과 연회장, 골프장 등이 딸린 군 복지시설, 해병대원 20명 복무
서울에서 약 두 시간 거리. 산비탈에 걸쳐 있는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 본부대 본부중대가 직접 관리하는 군 복지시설이다. 이 곳은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는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바로 앞에는 골프장이 있고 노래방, 목욕탕, 한실과 양실을 겸비한 객실, 그리고 150명은 거뜬히 수용하는 연회장과 룸, 식당이 들어선 4층 복합건물이다. 현역, 전역 해병대 관계자뿐 아니라 민간인도 10% 부가세를 붙인 가격이면 이용할 수 있다. 음식과 주류도 저렴하고, 객실 이용료도 보통 휴양시설보다 싼 편이다. 그래서인지 3성 장군인 해병대사령관부터 가족 단위 민간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다.
▲ 주말 저녁은 대부분의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회식장소로 찾는다.
덕산스포텔은 상사 1명, 중사 3명 등 4명의 부사관과 사병 16명, 그리고 민간인 군무원까지 총 25명이 근무한다. 병사들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주로 이 모 중사(26)에 의해 자행됐다고 진술했다. 부사관 4명의 직무는 관리관, 시설관, 보급관, 보좌관으로 나뉜다. 이 중사는 시설관이다. 그는 올해 봄 덕산스포텔으로 근무 명령을 받았다. 이 중사는 덕산스포텔에 빠르게 적응했고 “내가 이곳의 실세”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혀 잡아당긴 집게로 주방 일 해야 하는 병사들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에는 피해 당사자로서 쓴 진술도 있고, 동료 병사가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내용도 담겨있다. 취재진이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 수십 장을 분석해보니 이 중사가 자행한 폭력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타났다. 구타와 도구를 이용한 폭력 및 가혹행위, 그리고 성희롱이 섞인 언어폭력이었다. 특히 조용하고 겁이 많은 병사들이 주요 폭력의 대상이었다. 다음은 한 피해 해병의 진술서 내용이다.
나는 과업지 후임과 같이 항상 폭행을 당했다. 주먹과 팔꿈치는 기본이고 때로는 도구를 이용해 때리기도 한다. 도구는 가위, 집게, 야구방망이, 가느다란 철봉 타카 등 많다.
뚝배기 집게
▲ 뚝배기 집게
또 다른 피해 병사는 지난 4, 5월 경 이 중사와 단 둘이 사무실에 있다가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한다. CCTV는 물론 다른 병사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중사는 뚝배기 집게를 들고 이 병사의 혀를 집게로 잡아 당겼다. 다음은 진술서 내용이다.
이oo 중사가 혀를 내밀라고 하여 혓바닥을 잡고 당겼습니다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과정에서 이 병사를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재확인했다. 그는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증언했다.
혀를 내밀라고 해서 이렇게 내밀었더니 더 내밀라고 해서 (집게로) 집어서 당겼습니다.
가위
▲ 덕산스포텔 주방용 가위
지난 8월 중순 쯤 덕산스포텔 프론트에서 근무 중이던 한 피해병사는 이 중사에게 가위로 위협을 당했다. 점심을 같이 먹지 않고 먼저 먹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술과 귀에 가위를 들이대며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동료 사병은 이렇게 진술했다.
가위로는 후임의 신체 일부를 자른다고 했습니다.
병따개
▲ 덕산스포텔 병따개
병따개로 괴롭힘을 당한 병사도 있었다.
상습적으로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서 꺾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많이 당했습니다.
병따개 가혹행위는 다른 병사들도 여러번 목격했다.
병따개로 손가락을 꺾어서 당한 병사가 아파하면 웃으면서 중사 이OO는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노래가 1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손을 꺾고 있는 거죠.
야구배트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야구배트
알루미늄 야구배트도 동원됐다. 이 중사는 야구방망이로 병사들의 팔, 다리는 물론 머리도 가격했다고 한다.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팔을 가격했습니다. 정말로 다른 후임, 선임도 있는데 퍽퍽 소리나서 이걸 이렇게 세게 때리냐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야구배트를 휘둘렀다는 목격 병사의 증언이다.
술을 먹고 스포텔에 온 이OO 중사가 시설근무를 서고 있는 000 해병에게 욕설과 야구배트로 머리를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고..
빨래 건조대 철심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빨래 건조대 철심
가느다란 철봉은 빨래 건조대의 살인데 허벅지를 주로 때렸습니다.
쇠막대기로 팔뚝을 휘둘렀습니다. 아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너 번 더 때렸습니다.
타카
▲덕산스포텔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
목공용 공구인 이른바 ‘타카’는 벽에 포스터를 붙일 때나 건물 벽을 세울 때 사용한다.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는 디귿자 형 심을 박는 일반 타카와 바늘처럼 생긴 심을 쏘는 에어 타카 등 2종류였다.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듯 타카를 병사들에게 쐈다고 한다.
타카라고. 스테이플러같은 것인데, 좀 센 스테이플러인데, 그것을 사람한테 쏘는 거죠. 일반 타카는 스테이플러가 좀 센 정도인데 콤프레셔 연결해서 쓰는 타카도 있는데 그건 캔음료에 쏘면 캔음료가 빵꾸날 정도의 강도인데 그걸 사람한테 쏘는 거죠. 총처럼.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에서 시설관 이 중사를 만났다. 그는 병따개와 야구배트, 타카로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유를 묻자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장난을 쳐서”라고 답했다.
새벽에 술 취해 들어와 근무 중인 병사에게 가족 성희롱도
해병대사령부 덕산대 내에서 일어난 언어폭력, 성희롱 발언도 병사들을 괴롭혔다.
새벽 근무를 서고 있는데, 중사 이OO와 중사 최OO가 술에 취해 스포텔에 왔습니다. 노래방을 이용하고 새벽 3시 30분에 누나를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요구를 하길래 저는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누나에게 물어보겠다며 상황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 되는 듯했으나 중사 이OO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을 취하면서 “네 덕에 한 번 하겠네”라며 성희롱을 했습니다. 저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표정을 굳히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병사 진술서
방관과 은폐, 그리고 제보
덕산스포텔에서 근무하는 해병 부대의 책임자는 관리관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는 장 모 상사다.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이곳에서 일어난 폭력과 가혹행위 일체를 부인했다. 그는 병사들과 “매일 고충상담을 하고 있다”면서도 병사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사 오OO과 상사 장OO 모두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방관만 하며 상황을 회피하고 넘어가려고만 했다.
피해병사 진술서
덕산스포텔 근무 해병 16명은 이렇게 절망 속에서 군생활을 지속했다. 그런데 지난 7월, 박찬주 육군 대장의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여론이 비등해졌고, 8월 말 덕산스포텔에도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나왔다. 사령부 감찰팀은 병사들에게 “우리는 사령관 직속 기관이기 때문에 다른 간부나 누가 터치하는 게 없고 바로 사령관님한테 보고한다. 우리가 다 해결해줄테니 문제 되는 것들 다 써라”고 말했다고 했다. 병사들은 설문조사지를 받아 들고 꼼꼼하게 부사관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와 간부들의 근무태도 불량, 갑질 등을 작성해서 사령부 감찰팀에 제출했다.
병사들은 곧 변화가 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병사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중 마침 연회 차 이곳을 방문한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덕산대 감찰 결과를 보고받았는지 물었다. 하지만 전진구 사령관은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며 “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전 사령관은 덕산스포텔에서 음식 조리와 서빙, 시설 관리 등을 담당하는 해병대원들이 상습적인 폭행과 가혹행위,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고 있는 시기에도 각종 모임과 행사, 연회 등을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해병대는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되고나서야 덕산대 가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해병대는 피해 병사들을 보호하고, 부사관들의 폭력과 묵인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바꾸고 싶어서. 솔직히 걱정도 많이 했고 지금도 걱정이 되는데. …알려진다면 제대로 된 조사나 제대로 된 처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령부가 지척에 있는 작은 해병 부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려온 병사들이, 도저히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두 달이 넘게 고민하고 피해 진술서를 쓰며 외부에 제보를 결심하고 결행했던 날, 뉴스타파에 보내 온 간절한 바람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군내 폭력과 가혹행위 관련 제보를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통해 받고 있다.
한국마사회가 화상경마장 내 외국인 도박단 활동을 묵인, 방조해 2백억 원 대의 국부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외국인 프로 도박단 6개 팀이 지난해 6월부터 워커힐 화상경마장에 상주하면서 경마를 통해 모두 210억 원을 딴 것으로 드러났다. 도박단은 국적 별로 대만 3명, 프랑스 4명, 홍콩 4명, 중국 4명, 영국1팀 6명, 영국2팀 6명 등 모두 27명로 구성됐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워커힐 화상경마장은 전국 31곳의 화상경마장 가운데 유일하게 내국인의 출입이 금지된 외국인 전용 공간이다.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워커힐 화상 경마장이 운영을 시작한 후 올해 9월까지의 매출액은 1979억 원이다. 하루 평균 베팅액은 9억8000만 원. 이 가운데 일반 관광객의 베팅액 242만 원을 제외하면, 외국인 도박단 27명이 1인당 평균 3600만 원 가량을 경마에 베팅했다. 이는 워커힐을 제외한 화상경마장 30곳의 1인당 평균 베팅액 58만 원의 60배가 넘는 액수다.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외국인들이 같은 기간 환급받은 돈은 모두 2189억 원. 베팅 원금 1979억원에 각종 세금 등을 제외하고도 무려 210억 원을 수익을 거뒀다. 24억 원을 베팅한 지난 2월 5일에는 모두 50억 원을 환급받아, 하루만에 26억 원을 따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한국 경마 고객들에게 피해가 돌아간 것이다.
외국인 도박단들의 환급률은 평균 110%로 전체 평균 환급률 70.3%를 크게 웃돌았다. 환급률이란 게임에 걸린 판돈 가운데 우승마를 적중시켜 배당금으로 돌려 받는 금액의 비율이다. 워커힐 화상경마장을 제외한 나머지 33개 발매소의 환급률은 69.5%에 불과했다.
외국인 도박단들은 수십에서 수백 배의 고 배당에 집중 베팅하면서 소액·중복 베팅을 통해 세금을 피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지난해 10월28일 제주 경마장에서 벌어진 제4경주.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외국인들은 5900만 원을 베팅해 9배가 넘는 5억6000만 원을 환급받았다. 이 가운데 복승식 게임에서는 구매 마권 4508장 중 3304장이 적중했고, 삼복승식에서는 2만9601장 중 4505장이 적중했다.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평균 입장인원이 36명인 것을 감안하면 복승식에는 1명 당 평균 92장, 삼복승식에 125장의 동일한 마권을 산 것이다.
내국인들의 경우 1경주당 마권을 10만원까지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구매 한도 자체가 없다. 굳이 번거롭게 동일한 마권을 100여장씩 따로 살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마권을 소액으로 나눠 분산 구매한 이유는 바로 세금 때문이다.
이달 경주의 복승식 배당률은 151.1배, 삼복승식은 124.6배다.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한 경우 환급금의 22%를 기타소득세와 지방소득세로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워커힐의 외국인들은 환급금이 10만원 이하인 경우 과세하지 않는 소득세법의 예외규정을 악용, 몇 백원 단위로 베팅을 해 최대 9400여만 원의 세금을 피해갔다. 배당률이 100배를 넘지 않는 게임에서는 환급액이 2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소액으로 분산 구매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했다.
이 때문에 올해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기타소득세 납부 실적은 전국 발매소 중 최하위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워커힐 화상경마장에서 발생한 환급액은 1505억 원이었으나 기타소득세 납부액은 3억9000여만 원에 불과했다. 환급액 대비 기타소득세 납부비율은 0.26%로 전체 34개 발매소 가운데 꼴찌였다.
이 같은 꼼수는 마사회의 지원 또는 묵인이 있어 가능했다. 외국인 도박단들이 마권 자동 구매 프로그램과 마권 마킹 프린터를 통해 한꺼번에 수백에서 수천장의 마권을 분산 구매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취재가 끝날 무렵 마사회 직원들이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마사회 관계자는 “외국인들의 마권 자동 구매 프로그램 사용을 중단시키고, 워커힐 VIP룸에 설치된 구매표 마킹 프린터 사용도 제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박단의 실체를 알면서도 지난 1년여 동안 묵인한 이유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외국인 도박단들은 지난해부터 경마외에 경륜과 경정으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시도했으나, 외국인에게 전용공간과 별도의 발매 창구 등을 제공하는 것은 특혜 시비 등의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제안을 거부한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의 처신과 대비된다.
한편 뉴스타파가 입수한 마사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현명관 전 마사회장이 외국인 전용 화상경마장 설립을 지시했다.
뉴스타파는 해병대 덕산스포텔 내부 제보를 바탕으로 취재한 결과, 가혹행위 뿐만 아니라, 주류와 음료 등의 재고관리와 매출 과정, 영수증 처리가 의혹투성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두 장의 영수증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숫자의 음료와 주류가 한꺼번에 계산되어 있다. 두 영수증은 모두 9월 14일에 결제됐는데, 먼저 21시 28분에 콜라 180병이 판매됐다. 16분 뒤, 소주 110병과 맥주 10병도 결제됐다.
음식과 함께 계산됐지만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든 양의 술과 음료가 계산된 또 다른 영수증도 있다.
28명이 참석해 회정식 28인분 등을 주문한 것으로 돼 있는 9월 5일 영수증에는 소주 66병, 맥주 40병, 사이다 13병, 콜라12병 총 131병의 음주류가 계산됐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숫자의 음료와 주류가 계산된 영수증들이 덕산스포텔에서 결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가 내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결제 직전 손님이 영수증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기존 주문을 취소하고, 그 금액만큼 술과 음료를 판매한 것으로 조작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해병대 덕산스포텔에서 근무하는 해병 간부들이 지인들에게 무료로 줬던 술과 음료를 다른 손님들의 주문에서 메꿨다는 것이다.
또 덕산스포텔에 있는 노래방이나 연회장 대여처럼 무형의 서비스를 판매할 때 노래방, 연회장 항목 대신 주류 등을 판매한 것처럼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노래방 비용으로 무려 30만 원 어치 영수증을 발급하고 소주와 맥주 120병을 판 것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제보에 따르면 주류뿐 아니라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도 간부들의 지인에게 무료로 제공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사관들의 지인이 덕산스포텔에서 불고기 덮밥 5개와 제육덮밥 6개를 주문하면, 주방으로 주문서가 들어간다. 그리고 한 시간 쯤 뒤, 주문취소 영수증이 발급된다. 이에 따라 지인에게 무료 제공된 식사는 매출에 잡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덕산스포텔 현장을 처음 취재한 다음 날, 대담하게도 부사관들이 또 재고를 메꾸기 위해 영수증을 조작했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그날 군 관계자 등 5명이 회식을 했는데, 3만 원짜리 회정식 5개를 먹고 가져온 술을 마셨지만 영수증은 곱창전골 2개와 소주 36병으로 계산됐다는 것이다.
해병대사령부는 덕산스포텔 내부의 매출 조작과 가짜 영수증 처리 의혹 등과 관련한 뉴스타파의 질의를 받은 후,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병대가 가혹행위 묵살과 은폐 의혹, 그리고 내부 비리 문제를 자체적으로 투명하게 밝힐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 한국 어선과 선원 송환 결정 -어업도중 북한측 수역으로 넘어 -북,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어선과 선원 송환 -흥진 391 북한 동부 지정수역에서 한국측에 인도 중국 국영통신사인 신화사가 지난 21일 새벽, 어업도중 북한 동부 해역 북한측 수역을 침범해 억류되었던 흥진 391호 어선과 선원들을 27일 18시에 한국측에 송환할 것이라는 조선중앙통신사의 발표를 인용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조사 결과 흥진호는 ...
뉴스타파는 해병대 덕산스포텔 내부 제보를 바탕으로 취재한 결과, 가혹행위 뿐만 아니라, 주류와 음료 등의 재고관리와 매출 과정, 영수증 처리가 의혹투성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두 장의 영수증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숫자의 음료와 주류가 한꺼번에 계산되어 있다. 두 영수증은 모두 9월 14일에 결제됐는데, 먼저 21시 28분에 콜라 180병이 판매됐다. 16분 뒤, 소주 110병과 맥주 10병도 결제됐다.
음식과 함께 계산됐지만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든 양의 술과 음료가 계산된 또 다른 영수증도 있다.
28명이 참석해 회정식 28인분 등을 주문한 것으로 돼 있는 9월 5일 영수증에는 소주 66병, 맥주 40병, 사이다 13병, 콜라12병 총 131병의 음주류가 계산됐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숫자의 음료와 주류가 계산된 영수증들이 덕산스포텔에서 결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가 내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결제 직전 손님이 영수증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기존 주문을 취소하고, 그 금액만큼 술과 음료를 판매한 것으로 조작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해병대 덕산스포텔에서 근무하는 해병 간부들이 지인들에게 무료로 줬던 술과 음료를 다른 손님들의 주문에서 메꿨다는 것이다.
또 덕산스포텔에 있는 노래방이나 연회장 대여처럼 무형의 서비스를 판매할 때 노래방, 연회장 항목 대신 주류 등을 판매한 것처럼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노래방 비용으로 무려 30만 원 어치 영수증을 발급하고 소주와 맥주 120병을 판 것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제보에 따르면 주류뿐 아니라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도 간부들의 지인에게 무료로 제공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사관들의 지인이 덕산스포텔에서 불고기 덮밥 5개와 제육덮밥 6개를 주문하면, 주방으로 주문서가 들어간다. 그리고 한 시간 쯤 뒤, 주문취소 영수증이 발급된다. 이에 따라 지인에게 무료 제공된 식사는 매출에 잡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덕산스포텔 현장을 처음 취재한 다음 날, 대담하게도 부사관들이 또 재고를 메꾸기 위해 영수증을 조작했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그날 군 관계자 등 5명이 회식을 했는데, 3만 원짜리 회정식 5개를 먹고 가져온 술을 마셨지만 영수증은 곱창전골 2개와 소주 36병으로 계산됐다는 것이다.
해병대사령부는 덕산스포텔 내부의 매출 조작과 가짜 영수증 처리 의혹 등과 관련한 뉴스타파의 질의를 받은 후,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병대가 가혹행위 묵살과 은폐 의혹, 그리고 내부 비리 문제를 자체적으로 투명하게 밝힐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10월 25일 ‘해병 잡는 해병대’ 뉴스타파 보도 이후, 해병대 덕산스포텔에서 벌어진 엽기적 가혹행위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가해자 이중사는 결국 구속됐다. 해병대사령부는 또, 이중사의 가혹행위를 묵인해온 부사관 3명은 보직해임 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 병사들은 추가 피해가 없도록 보호 중이며 지난 8월 병사들의 내부고발을 묵살한 사령부감찰실 소속 소령도 처벌할 예정이라고 해병대사령부는 밝혔다.
그러나, 해병대의 공식 발표에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해병대사령부 중간수사결과에 따르면, 덕산스포텔 감찰을 담당했다는 “해병대 감찰실 소령은 ‘전반적 설문 내용이 부대 근무에 다소 힘든 부분이 있지만 만족한다’로 나왔다며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덮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해병대사령부 추광호 정훈공보실장은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8월 29일날 스포텔 인원들 설문했습니다. 소령이 설문했는데 소령이 그거를 자기가 그냥 처리해버렸어요. 보고를 따로 안하고 내용에 대한 후속조치를 안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자체도 자기 서랍에 넣어놓고 있던 거죠.
하지만 당시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 이후 전 군에 일제 조사가 실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장 감찰을 담당한 소령이 피해 설문지를 서랍에 넣고 덮어버렸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병대 병사들의 감찰 관련 진술서 내용은 해병대 해명과도 큰 차이가 있다.
피해병사 A
“감찰실에 다 적어 올리고 달마다 하는 설문지에 늘 적어봐도 소용이 없기에 이렇게 글을 써 올립니다”
피해병사 B
“참다참다 참지못한 ㅇㅇㅇ해병은 감찰실에서 조사가 왔을 떄 이러한 내용들을 적었지만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없어져 버렸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해병대 가혹행위 보도 이후 현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덕산스포텔을 찾아갔다. 병사들을 괴롭히던 가해자와 구타 가혹행위를 묵인해온 부사관들은 더이상 자리에 없었고, 병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어떻게 될 지 궁금해요. 이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 다른 부대로 간다거나 변화가 있는건지 그런 것들이…
피해병사 C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해병대 가혹행위 사건과 관련해 감찰 보고 누락 경위 등에 대해 직권 조사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마사회가 화상경마장 내 외국인 도박단 활동을 묵인, 방조해 2백억 원 대의 국부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외국인 프로 도박단 6개 팀이 지난해 6월부터 워커힐 화상경마장에 상주하면서 경마를 통해 모두 210억 원을 딴 것으로 드러났다. 도박단은 국적 별로 대만 3명, 프랑스 4명, 홍콩 4명, 중국 4명, 영국1팀 6명, 영국2팀 6명 등 모두 27명로 구성됐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워커힐 화상경마장은 전국 31곳의 화상경마장 가운데 유일하게 내국인의 출입이 금지된 외국인 전용 공간이다.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워커힐 화상 경마장이 운영을 시작한 후 올해 9월까지의 매출액은 1979억 원이다. 하루 평균 베팅액은 9억8000만 원. 이 가운데 일반 관광객의 베팅액 242만 원을 제외하면, 외국인 도박단 27명이 1인당 평균 3600만 원 가량을 경마에 베팅했다. 이는 워커힐을 제외한 화상경마장 30곳의 1인당 평균 베팅액 58만 원의 60배가 넘는 액수다.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외국인들이 같은 기간 환급받은 돈은 모두 2189억 원. 베팅 원금 1979억원에 각종 세금 등을 제외하고도 무려 210억 원을 수익을 거뒀다. 24억 원을 베팅한 지난 2월 5일에는 모두 50억 원을 환급받아, 하루만에 26억 원을 따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한국 경마 고객들에게 피해가 돌아간 것이다.
외국인 도박단들의 환급률은 평균 110%로 전체 평균 환급률 70.3%를 크게 웃돌았다. 환급률이란 게임에 걸린 판돈 가운데 우승마를 적중시켜 배당금으로 돌려 받는 금액의 비율이다. 워커힐 화상경마장을 제외한 나머지 33개 발매소의 환급률은 69.5%에 불과했다.
외국인 도박단들은 수십에서 수백 배의 고 배당에 집중 베팅하면서 소액·중복 베팅을 통해 세금을 피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지난해 10월28일 제주 경마장에서 벌어진 제4경주.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외국인들은 5900만 원을 베팅해 9배가 넘는 5억6000만 원을 환급받았다. 이 가운데 복승식 게임에서는 구매 마권 4508장 중 3304장이 적중했고, 삼복승식에서는 2만9601장 중 4505장이 적중했다.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평균 입장인원이 36명인 것을 감안하면 복승식에는 1명 당 평균 92장, 삼복승식에 125장의 동일한 마권을 산 것이다.
내국인들의 경우 1경주당 마권을 10만원까지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구매 한도 자체가 없다. 굳이 번거롭게 동일한 마권을 100여장씩 따로 살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마권을 소액으로 나눠 분산 구매한 이유는 바로 세금 때문이다.
이달 경주의 복승식 배당률은 151.1배, 삼복승식은 124.6배다.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한 경우 환급금의 22%를 기타소득세와 지방소득세로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워커힐의 외국인들은 환급금이 10만원 이하인 경우 과세하지 않는 소득세법의 예외규정을 악용, 몇 백원 단위로 베팅을 해 최대 9400여만 원의 세금을 피해갔다. 배당률이 100배를 넘지 않는 게임에서는 환급액이 2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소액으로 분산 구매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했다.
이 때문에 올해 워커힐 화상경마장의 기타소득세 납부 실적은 전국 발매소 중 최하위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워커힐 화상경마장에서 발생한 환급액은 1505억 원이었으나 기타소득세 납부액은 3억9000여만 원에 불과했다. 환급액 대비 기타소득세 납부비율은 0.26%로 전체 34개 발매소 가운데 꼴찌였다.
이 같은 꼼수는 마사회의 지원 또는 묵인이 있어 가능했다. 외국인 도박단들이 마권 자동 구매 프로그램과 마권 마킹 프린터를 통해 한꺼번에 수백에서 수천장의 마권을 분산 구매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취재가 끝날 무렵 마사회 직원들이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마사회 관계자는 “외국인들의 마권 자동 구매 프로그램 사용을 중단시키고, 워커힐 VIP룸에 설치된 구매표 마킹 프린터 사용도 제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박단의 실체를 알면서도 지난 1년여 동안 묵인한 이유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외국인 도박단들은 지난해부터 경마외에 경륜과 경정으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시도했으나, 외국인에게 전용공간과 별도의 발매 창구 등을 제공하는 것은 특혜 시비 등의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제안을 거부한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의 처신과 대비된다.
한편 뉴스타파가 입수한 마사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현명관 전 마사회장이 외국인 전용 화상경마장 설립을 지시했다.
해병대에서 엽기적인 폭행과 가혹행위가 장기간 일상적으로 발생했지만 내부에서 묵인, 은폐돼 온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드러났다. 지난 8월엔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와서 피해 병사들의 진술까지 받아갔지만 두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최근 해병대사령부가 운영하는 해병대 휴양시설인 덕산스포텔, 일명 덕산대에서 복무 중인 해병대 병사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 피해 자술서를 입수했다. 이 자술서엔 덕산대 부사관들이 사병들을 상대로 자행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이를 묵인한 과정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뚝배기 집게로 병사 혀 잡아 당기기, 주방용 가위를 병사 입과 귀에 대고 자른다고 위협하기,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 꺾는 동안 웃으며 노래 1절을 부르기, 목공용 공구인 타카를 병사를 향해 쏘기, 빨래 건조대 봉에서 뽑은 철심을 허벅지나 팔에 튕기기, 술을 마시고 들어와 병사의 머리에 야구배트를 크게 휘두르기, 글러브를 끼고 권투를 하듯 병사 때리기 등등.
이 같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발생한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와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피해 병사들의 피해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덕산스포텔을 찾았다.
객실과 연회장, 골프장 등이 딸린 군 복지시설, 해병대원 20명 복무
서울에서 약 두 시간 거리. 산비탈에 걸쳐 있는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 본부대 본부중대가 직접 관리하는 군 복지시설이다. 이 곳은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는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바로 앞에는 골프장이 있고 노래방, 목욕탕, 한실과 양실을 겸비한 객실, 그리고 150명은 거뜬히 수용하는 연회장과 룸, 식당이 들어선 4층 복합건물이다. 현역, 전역 해병대 관계자뿐 아니라 민간인도 10% 부가세를 붙인 가격이면 이용할 수 있다. 음식과 주류도 저렴하고, 객실 이용료도 보통 휴양시설보다 싼 편이다. 그래서인지 3성 장군인 해병대사령관부터 가족 단위 민간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다.
▲ 주말 저녁은 대부분의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회식장소로 찾는다.
덕산스포텔은 상사 1명, 중사 3명 등 4명의 부사관과 사병 16명, 그리고 민간인 군무원까지 총 25명이 근무한다. 병사들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주로 이 모 중사(26)에 의해 자행됐다고 진술했다. 부사관 4명의 직무는 관리관, 시설관, 보급관, 보좌관으로 나뉜다. 이 중사는 시설관이다. 그는 올해 봄 덕산스포텔으로 근무 명령을 받았다. 이 중사는 덕산스포텔에 빠르게 적응했고 “내가 이곳의 실세”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혀 잡아당긴 집게로 주방 일 해야 하는 병사들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에는 피해 당사자로서 쓴 진술도 있고, 동료 병사가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내용도 담겨있다. 취재진이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 수십 장을 분석해보니 이 중사가 자행한 폭력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타났다. 구타와 도구를 이용한 폭력 및 가혹행위, 그리고 성희롱이 섞인 언어폭력이었다. 특히 조용하고 겁이 많은 병사들이 주요 폭력의 대상이었다. 다음은 한 피해 해병의 진술서 내용이다.
나는 과업지 후임과 같이 항상 폭행을 당했다. 주먹과 팔꿈치는 기본이고 때로는 도구를 이용해 때리기도 한다. 도구는 가위, 집게, 야구방망이, 가느다란 철봉 타카 등 많다.
뚝배기 집게
▲ 뚝배기 집게
또 다른 피해 병사는 지난 4, 5월 경 이 중사와 단 둘이 사무실에 있다가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한다. CCTV는 물론 다른 병사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중사는 뚝배기 집게를 들고 이 병사의 혀를 집게로 잡아 당겼다. 다음은 진술서 내용이다.
이oo 중사가 혀를 내밀라고 하여 혓바닥을 잡고 당겼습니다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과정에서 이 병사를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재확인했다. 그는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증언했다.
혀를 내밀라고 해서 이렇게 내밀었더니 더 내밀라고 해서 (집게로) 집어서 당겼습니다.
가위
▲ 덕산스포텔 주방용 가위
지난 8월 중순 쯤 덕산스포텔 프론트에서 근무 중이던 한 피해병사는 이 중사에게 가위로 위협을 당했다. 점심을 같이 먹지 않고 먼저 먹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술과 귀에 가위를 들이대며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동료 사병은 이렇게 진술했다.
가위로는 후임의 신체 일부를 자른다고 했습니다.
병따개
▲ 덕산스포텔 병따개
병따개로 괴롭힘을 당한 병사도 있었다.
상습적으로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서 꺾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많이 당했습니다.
병따개 가혹행위는 다른 병사들도 여러번 목격했다.
병따개로 손가락을 꺾어서 당한 병사가 아파하면 웃으면서 중사 이OO는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노래가 1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손을 꺾고 있는 거죠.
야구배트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야구배트
알루미늄 야구배트도 동원됐다. 이 중사는 야구방망이로 병사들의 팔, 다리는 물론 머리도 가격했다고 한다.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팔을 가격했습니다. 정말로 다른 후임, 선임도 있는데 퍽퍽 소리나서 이걸 이렇게 세게 때리냐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야구배트를 휘둘렀다는 목격 병사의 증언이다.
술을 먹고 스포텔에 온 이OO 중사가 시설근무를 서고 있는 000 해병에게 욕설과 야구배트로 머리를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고..
빨래 건조대 철심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빨래 건조대 철심
가느다란 철봉은 빨래 건조대의 살인데 허벅지를 주로 때렸습니다.
쇠막대기로 팔뚝을 휘둘렀습니다. 아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너 번 더 때렸습니다.
타카
▲덕산스포텔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
목공용 공구인 이른바 ‘타카’는 벽에 포스터를 붙일 때나 건물 벽을 세울 때 사용한다.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는 디귿자 형 심을 박는 일반 타카와 바늘처럼 생긴 심을 쏘는 에어 타카 등 2종류였다.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듯 타카를 병사들에게 쐈다고 한다.
타카라고. 스테이플러같은 것인데, 좀 센 스테이플러인데, 그것을 사람한테 쏘는 거죠. 일반 타카는 스테이플러가 좀 센 정도인데 콤프레셔 연결해서 쓰는 타카도 있는데 그건 캔음료에 쏘면 캔음료가 빵꾸날 정도의 강도인데 그걸 사람한테 쏘는 거죠. 총처럼.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에서 시설관 이 중사를 만났다. 그는 병따개와 야구배트, 타카로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유를 묻자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장난을 쳐서”라고 답했다.
새벽에 술 취해 들어와 근무 중인 병사에게 가족 성희롱도
해병대사령부 덕산대 내에서 일어난 언어폭력, 성희롱 발언도 병사들을 괴롭혔다.
새벽 근무를 서고 있는데, 중사 이OO와 중사 최OO가 술에 취해 스포텔에 왔습니다. 노래방을 이용하고 새벽 3시 30분에 누나를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요구를 하길래 저는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누나에게 물어보겠다며 상황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 되는 듯했으나 중사 이OO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을 취하면서 “네 덕에 한 번 하겠네”라며 성희롱을 했습니다. 저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표정을 굳히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병사 진술서
방관과 은폐, 그리고 제보
덕산스포텔에서 근무하는 해병 부대의 책임자는 관리관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는 장 모 상사다.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이곳에서 일어난 폭력과 가혹행위 일체를 부인했다. 그는 병사들과 “매일 고충상담을 하고 있다”면서도 병사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사 오OO과 상사 장OO 모두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방관만 하며 상황을 회피하고 넘어가려고만 했다.
피해병사 진술서
덕산스포텔 근무 해병 16명은 이렇게 절망 속에서 군생활을 지속했다. 그런데 지난 7월, 박찬주 육군 대장의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여론이 비등해졌고, 8월 말 덕산스포텔에도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나왔다. 사령부 감찰팀은 병사들에게 “우리는 사령관 직속 기관이기 때문에 다른 간부나 누가 터치하는 게 없고 바로 사령관님한테 보고한다. 우리가 다 해결해줄테니 문제 되는 것들 다 써라”고 말했다고 했다. 병사들은 설문조사지를 받아 들고 꼼꼼하게 부사관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와 간부들의 근무태도 불량, 갑질 등을 작성해서 사령부 감찰팀에 제출했다.
병사들은 곧 변화가 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병사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중 마침 연회 차 이곳을 방문한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덕산대 감찰 결과를 보고받았는지 물었다. 하지만 전진구 사령관은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며 “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전 사령관은 덕산스포텔에서 음식 조리와 서빙, 시설 관리 등을 담당하는 해병대원들이 상습적인 폭행과 가혹행위,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고 있는 시기에도 각종 모임과 행사, 연회 등을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해병대는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되고나서야 덕산대 가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해병대는 피해 병사들을 보호하고, 부사관들의 폭력과 묵인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바꾸고 싶어서. 솔직히 걱정도 많이 했고 지금도 걱정이 되는데. …알려진다면 제대로 된 조사나 제대로 된 처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령부가 지척에 있는 작은 해병 부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려온 병사들이, 도저히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두 달이 넘게 고민하고 피해 진술서를 쓰며 외부에 제보를 결심하고 결행했던 날, 뉴스타파에 보내 온 간절한 바람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군내 폭력과 가혹행위 관련 제보를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통해 받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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