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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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1) ‘내역사’ 시즌 5: 20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김일성편
☞ (12.01) ‘내역사’ 시즌 5: 20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송진우와 한민당
☞ (11.24) ‘내역사’ 시즌 5: 사북항쟁 40주년 특집 방송 “1980년 4월 21일~24일까지의 기록”
☞ (11.17) ‘내역사’ 시즌 5: 19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박헌영편
☞ (11.10) ‘내역사’ 시즌 5: 18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여운형편
☞ (10.27) ‘내역사’ 시즌 5: 17화 2부 “해방후 우리군은 숙군과정을 통해 어떻게 정치군인이 되었는가?
☞ (10.20) ‘내역사’ 시즌 5: 17화 1부: “해방후 우리군은 어떻게 창설되었나?
☞ (10.13)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2부
☞ (10.09)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한글날 특집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지켰나?’
☞ (10.06)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확 바뀐’ 한국사 개정 교과서와 함께 사용될 수업 보조 교재

올해도 탁상용 역사 달력을 만들었다. 재작년 2018년에도 ‘현대사 달력’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 그땐 기말고사가 끝난 뒤 겨울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작업했다면, 올해는 코로나로 교문이 닫혀 아이들의 재능을 활용할 수 없었다.
대신 올해 새로 부임해온 동료 교사와 의기투합했다. 그는 전공에 대한 자긍심과 수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청년 교사다. 같은 역사 전공자로서, 그는 나의 후배 교사이기 앞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걸어가는 도반으로서, 배울 점이 많은 스승 같은 존재다.
그도 역사 교사로서 2020년 올해를 허망하게 보내는 데 대한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해를 넘기기 전에 뭐라도 하자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고, 내년 달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하자고 뜻을 모았다. 재작년과는 달리 예산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봤다.
연초 다양한 교육 활동을 위한 예산이 잡혀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손발이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야 했다. 교육 활동은커녕 준비를 위한 모임조차 쉽지 않았다. 학교마다 불용 처리하여 반납하거나, 비대면 수업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게 고작이었다.
특히,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라 이곳 광주에선 학교마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물거품이 된 상황이다. 하다못해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일조차 연기해야 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행사였는데 말이다.
일제강점기 인물을 달력에 넣기로 했다

아이들의 손은 빌릴 수 없지만, 역사 교사 둘이서 만들면 시간은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주제를 정하고 관련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등의 작업 설계도를 함께 그렸다. 다만, 머릿속에 구상한 디자인을 컴퓨터로 편집하는 것은 달력 제작 업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재작년엔 주제를 해방 후 현대사 속 사건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잡았는데, 올해는 바로 앞선 일제강점기를 다루기로 했다.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우리 사회 적폐의 뿌리가 친일 잔재 청산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얼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 아닌가.
알다시피,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친일의 후예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거듭나 장구한 독재 권력을 구축했다. 그들이 수많은 정적과 시민들을 학살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해온 것이 우리의 핏빛 현대사 아닌가. 오죽하면 6.25 전쟁이 ‘친일파들의 해방 전쟁’으로 귀결됐다고 한탄할까.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하되, 내용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면면을 다루는 것으로 정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역사는 인물사다. 아무리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도, 그와 관련된 인물의 자취가 없다면 한낱 껍데기에 불과할 테다. 우리는 사건이 아닌 사람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
인물을 선정하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우선, 2015 개정 교과서에 수록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배열해보았다. 달력이 그저 책상 위의 장식품이 아니라, 역사 공부에 도움을 주는 보조 교재로 활용될 수 있으려면, 교과서 내용과 연동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다.
더욱이, 내년에 쓰일 한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 위주여서 이번 달력과 조응하기 쉽다. 참고로, 이번 개정 교과서는 내용과 구성이 이전의 것과는 판이하다. 4개의 대단원 중에 3개가 개항기 이후의 역사, 곧 근현대사로 채워졌다. 곧, 1단원의 범위가 선사시대부터 조선 말까지다.
다른 교과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1년 전에 모두 바뀌었는데, 한국사는 한 해 늦춰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도입이 전격 추진되다 온갖 분란을 일으키며 취소되는 사달을 겪은 탓이다. 사회적인 갈등을 겪은 만큼 새 교과서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착착 진행되던 작업이 난관에 부닥쳤다. 월별로 당대의 인물을 끼워 맞추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인물의 면면도 고려해야 하는 데다 월별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 무척 까다로웠다. 가독성을 위해서 한 달에 7~8명 넘게 배치하는 건 무리였다.
해당 인물과 인연도 없는 일자에 무작정 배치할 수도 없어 고민이 컸다. 우선, 생몰 일자와 관련 사건의 발생 일자를 일일이 조사했다. 신뢰도를 위해 국사편찬위원회나 민족문제연구소 자료 등을 기본으로 삼았고, 인터넷 백과사전의 내용은 교차 검토 과정을 거쳤다.
삼척동자도 아는 인물만 대상으로 한다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관련 자료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그럴 거였다면, 애초 달력 작업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교과서의 보조 교재로 활용되려면, 잊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것이 취지에 더 부합한다고 여겼다.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선, 반대편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인물도 다루는 게 효과적이다. 하여 드문드문 월별 빈자리에는 그들의 행적을 끼워 넣었다. 여성과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도 소홀히 다룰 수 없었고, 당시 활약한 외국인까지도 챙겼다.
교사 본인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은 없었다

사실, 이번 개정 교과서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낯선 이름의 독립운동가들이 여럿 등장한다는 점이다. 당장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별도로 소개한 단원이 눈에 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바퀴로 연대와 경쟁을 거듭하며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음을 알려주려는 노력도 돋보인다.
인물의 선정과 자료 조사, 배열에만 꼬박 일주일 넘게 걸렸다. 큰 산은 넘었지만, 정작 달력에 기록될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 남았다. 해당 인물의 사진을 챙기는 한편, 백과사전 등에 수록된 행적을 핵심만 뽑아 요약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누어졌다. 그는 달력에 삽입할 사진 자료를 챙기며 도안을 구상했고, 난 선정된 인물의 행적을 한 줄로 정리하는 작업을 맡았다. 비록 힘든 작업이었을지언정 교사로서 큰 도움이 됐다. 고백하건대, 일제강점기의 인물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없다.
신경 써야 할 건 또 있었다. 사진 자료 등의 저작권 문제가 바로 그것. 가져다 써도 되는 자료인지를 법적으로 따져보는 건 교사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하여 채택한 교과서 속 자료를 우선 사용하고, 없는 건 정부 기관 등에서 가져왔다. 돌다리도 두드려본다는 심정으로 교육청에 문의하기도 했다.
달력의 뒷면도 비워둘 순 없었다. 앞면을 인물로 채웠으니, 뒷면은 그달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루기로 했다. 말하자면, 3월엔 3.1운동을, 6월엔 6.10 만세운동을, 9월엔 한국광복군 창설을, 11월엔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하는 식이다.
이 또한 모두가 다 아는 뻔한 사건만 올릴 순 없었다. 가능하면 사회주의 계열이 주도했거나, 당시엔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 등에 관심을 두고자 했다. 한편, 일제강점기 문화재 도굴 행위와 같은 이면까지도 담아보려 무진 애를 썼다.
1941년 12월에 있었던 호가장 전투와 해방 직전 7월에 벌어진 부민관 폭파 사건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소개한 건 그래서다. 또, 신라 금관이 최초로 출토된 때가 1921년이었다는 것과 함께 졸속으로 발굴된 까닭에 많은 역사적 진실이 묻히게 됐다는 사실도 기록했다.
일제강점기 때의 일은 아니지만,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도 부러 11월 달력 뒷면에 소개했다. 발간일이 11월 8일이어서다. 굴절된 우리 현대사가 친일 잔재 청산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점을 알리려는 게 달력을 제작한 취지인 만큼 빼놓을 순 없었다.
보름 넘는 작업 끝에 얼개가 완성됐다. 정리한 내용을 업체에 건네고 원하는 디자인을 상세히 설명했다. 업체는 생소한 주제인 데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애를 먹었다. 탁상용 달력 디자인을 고집한 그들과 수업용 보조 교재여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가 소통에 혼선을 빚은 것이다.
디자인이 확정되고 교정을 마치니 출력은 일도 아니었다. 불과 며칠 만에 달력이 완성되어 학교로 배달되었다. 개정 교과서로 배울 내년 신입생들에게 나눠줄 선물이니, 겨우내 교무실에 소중히 보관할 참이다. 달력을 받고 나니, 올해의 허망함이 조금이나마 가신 느낌이다.
내친김에, 예산이 확보되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내년엔 온전히 ‘현대사 속 여성’을 주제로 달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세상의 반은 여성이라는데, 교과서에 등장하는 여성은 여전히 채 1/10도 안 되는 것 같다. 자료를 찾는 게 쉽진 않겠지만, 이런 일은 힘들고 어려워야 제맛 아니겠는가.
<2020-12-14> 오마이뉴스

“지금 전국의 한국전쟁 기념시설을 찾아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범죄의 현장에 승전비를 세웠다. 이곳 아산의 민간인 학살도 가해자들에겐 여전히 공적으로 되어 있다.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민간 차원에서도 역사를 다시 재구성해 평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시기다.”
지난 2019년 5월, 충남 아산서 열린 민간인 학살 유골 발굴 개토제 현장에서 만난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연구소장은 전쟁 승리로 기록된 역사의 뒷면을 파헤치고 있었다. 신 소장은 경찰과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국방부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와 전국 각지에 세워진 승전비와 기념관엔 승리한 전투로 왜곡된 채 기록돼 있다면서 이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성과를 ‘전쟁의 그늘’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신 소장은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 온,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고양에서 벌어진 금정굴 사건을 접한 이후 사건 진상규명과 함께 전국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해 왔다. 그는 지난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했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위원으로 일했다.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마친 지금도 금정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는 그동안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멈춘 시간 1950’, ‘전쟁범죄’, 국민은 적이 아니다’, ‘진실, 국가범죄를 말한다’,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 등 10권 넘는 책을 출간하며 한국전쟁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진실을 다뤄왔다. 이 중 한국전쟁 전후로 학살당한 민간인 1만4천343명의 명단을 수록한 책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시상하는 제12회 임종국상 학술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10권 넘는 책을 쓰며 추적해 온
민간인 학살의 진실
그가 이렇게 10권이 넘는 책을 쓰면서까지 한국전쟁, 그 가운데서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게 계기는 무엇일까?
“진실화해위원회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활동 기록은 그 기관의 활동이 멈추면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사라지게 된다. 일제 하 강제동원 조사나 친일파 조사, 의문사 조사, 친일재산 환수 조사 등의 기록은 그때뿐이었다. 그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그동안 무엇을 했길래 다시 원점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일까? 지금 가동되고 있는 사회적참사조사위원회나 5.18진상조사위원회에서도 여전히 같은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제가 몸 담았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조사부터 평가와 반성, 성과의 확대 작업이 필요함을 느낀다. 저는 개별 피해를 넘어 지역과 더 나아가 전국적 사건의 해석, 세계적 공통점 비교 분석까지 계속해 나갈 생각이었고, 역사적 진실에 대한 평가도 중대한 목표였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오랜 기간 민간인 학살을 추적해온 그였지만 ‘전쟁의 그늘’을 출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려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혀내기도 어렵지만, 승전으로 기록된 역사를 뒤집어 그것이 학살이었음을 밝혀내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국가보안법과 분단체제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에선 ‘이적(利敵)’이란 공격이 언제 날아들지 모를 위태로운 연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이 될까봐…….
청년은 물론 어린이, 여성, 노인까지 학살
“고양 금정굴 사건의 경우도 전쟁 시기 발생한 전투의 하나였다는 주장이 있었다. 저는 ‘1950년 10월이면 전선이 북쪽으로 훨씬 넘어가는데 뭔 헛소리야’라고 주장했고, 민간인 학살을 부수적 피해의 하나로 돌리려는 책임 회피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역을 확대하면서 보니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50년 7월 집중되었던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남은 청년들이 적이 될까봐 우려해서 저지른 대량 학살이었고, 1.4후퇴 시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린이, 여성, 노인들을 집중적으로 학살한 사건들이 발견되었다. 가해자들은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래의 적을 제거하는 행위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신 소장이 연구를 진행하고, 책으로 출간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가해자인 경찰과 국군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연구를 하며 당시 학살이 적을 제거하는 전투행위처럼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또, 정확한 학살자 규모를 파악하고자 하는 차원의 연구이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자는 100만 명 이상이라는 주장이 많았지만, 실제 확인되는 기록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쓴 ‘한국전쟁사 4권’ 760쪽에는 이승만 정부 당시 비상경비사령부가 1950년 6월부터 10월 사이 106만 명의 민간인이 피살되었다고 발표한 내용이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기에, 100만 명 넘게 학살됐다는 주장이 거짓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확인이 되지는 않는 것일까?
“‘한국전쟁사’가 말하는 ‘적’, ‘인민군’은
민간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사’와 각종 기록, 현장 증언 등을 종합한 신 소장의 결론은 학살이 전투로 뒤바뀌어 기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먼저 토벌 작전(1950년 9월 이후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남한에 고립된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한 전투)의 피해에 대한 기록을 봤다. 예상했던 것에 대부분 일치했다.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인데 노획물은 소총 몇 자루에 기관총까지 등장했다. 전투로 위장했던 것이다. 제가 최근 직접 조사한 사례는 곡성이었다. 화려한 전쟁 공원으로 보아 대단한 전투가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증언은 달랐다. 과장되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심지어 인민군 주력 부대와의 전투로 기록된 것 중에서도 민간인 학살을 전투로 둔갑시킨 사례가 많았다고 신 소장은 말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그는 가장 유명한 전투로 손꼽히는 화령장 전투, 낙동강 전선의 전투, 인천상륙작전 등을 꼽았다.
“화령장 전투에는 패잔 인민군을 소탕한다면서 사살한 마을 주민들이 확인되었다. 전투 역시 일방적으로 우마차를 공격한 것이어서, 이를 전투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낙동강 전선의 전투는 실제 피란민의 죽음이 더 많았다. 너비 7~8 키로미터의 주민 거주지를 소개했으니 해당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것이라며 영흥도와 덕적군도에서 벌어진 섬 주민 학살 사건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인민군도 없었고 인민위원회라 해봤자 한 달이나 있었는지 의문스러운 지역이었다. 그리고 수시로 해군 첩보부대들이 드나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전쟁사는 총살당한 섬 주민들을 ‘적’으로 만들어놨다. ‘한국전쟁사’가 말하는 ‘적’, ‘인민군’은 민간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피란민과 민간인이 인민군으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인민군 범죄로 둔갑···….
“전쟁이라기보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에서 신 소장은 여러 사례와 각 지역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앞서 소개했듯이 피난민, 주민 등이 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다. 충북 영동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처럼 미군이 민간인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잠입했다며 폭격과 기관총 발사로 민간인들을 살해한 것을 ‘한국전쟁사’는 인민군이 지뢰지대를 통과하면서 피란민을 앞세워 지뢰를 제거하려 했던 행위로 왜곡했다. 하지만, 1999년 AP통신의 보도로 인해 학살의 진실이 세계에 알려졌고, 인민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임이 밝혀졌다.
아울러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도 다뤘다. 1950년 10월 1일 국군의 북진 이후 후퇴하던 12월 초까지 이북 지역에선 민간인 학살, 폭격 등에 의한 인명 피해(부상자 포함) 등으로 268만 명이 고통을 겪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건은 신천 학살 사건이다. 미 1군단 24사단 19연대가 진입하면서 벌어진 이 사건의 피해자는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3만 5천 명이 넘는다. 당시 신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피해였다.

이런 사건들은 한국전쟁의 성격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한국전쟁은 민간인 피해가 군인들의 사상과 비교해 훨씬 많았던 전쟁이었다.
“전체 한국전쟁 피해자 600만 명 가운데 민간인은 350만 명에 이른다. 부상자까지 포함한 통계지만 사망자과 실종자만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여기에 전쟁 초기 8개월만 비교하면 더욱 큰 차이를 보인다. 남한 지역의 경우 국군 피해 8~9만 명에 민간인 피해가 100만 명을 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민간인 학살 사례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형무소 재소자 사건, 후퇴하는 인민군 측에 의한 사건, 수복 후 부역 혐의 사건, 미군 폭격 사건, 1.4후퇴 시기 예비학살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등이다. 이는 전쟁이라기보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태도만 본다면 친위 쿠데타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학살이 전공으로 뒤바뀌면서 학살 가해자에게 훈장이 내려지기도 했고, 국립묘지에도 안장됐다. 이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
“학살이 전투로 둔갑되었다는 주장은 아직까지 저만 하는 것 같다. 국방부가 스스로 알아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지만 거짓 기록 위에서 70년 동안 특권을 누려왔던 고급 장교들이 사과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라도 한국전쟁사를 역사의 영역에 포함시켜 일반 연구자들의 연구와 논문 발표를 유도해야 할 것 같다. 전쟁사의 진실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한국전쟁사와 전투사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불경으로 여기는 풍토가 빨리 사라져야겠다.”
인민군, 좌익세력 등이
자행한 ‘적대세력 사건’도 조사 필요···….
하지만, 우익이 저지른 사건을
인민군이 저지른 사건으로
조작하는 등 왜곡 심각
이런 풍토와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체 때문인지 민간인 학살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일각에선 좌익이나 인민군도 학살을 저질렀다면서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 학살을 희석하려 시도하곤 한다. 상대편 역시 학살을 저질렀다고 해서, 우리 국가가 저지른 학살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 소장은 인민군과 좌익세력 등이 자행한 이른바 ‘적대세력 사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게 남한 군경이 저지른 사건에 대한 왜곡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초 조사한 화순 지역 사례를 들며 민간인 학살이 우익과 좌익 모두에 의해 벌어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쟁 전 국군의 토벌 작전 학살이 있었지만, 이는 인민군의 점령기 동안 큰 보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피해는 수복하는 국군과 경찰에 의해 발생했고 이를 피하려고 입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총살당하든가 소개지역으로 이동했고 토벌 국군은 마을에서 빠져나갔다. 마을은 소수지만 다시 입산했던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 청년들은 가족들을 학살당한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는 공격이 쉬운 마을 내부 배신자를 상대로 보복을 한다. 얼마 뒤 다시 토벌 국군이 마을에 진입했다.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악에 바친 빨치산으로 살아남았다. 이들은 체포되거나 죽을 때까지 투쟁한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악순환이 벌어졌다. 모두 죽을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이 유형의 사건들은 수복 후에 발생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인민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이라고 기록됐지만, 실제론 경찰 측 치안대가 주민을 학살한 사건을 조작한 사례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사건이 고양 지역의 타공결사대 사건이다. 1950년 9월부터 11월까지 고양경찰서 신도지서의 치안대 활동을 보조해온 조직이 이후 군검경 합동수사본부 김창용 본부장에게 연행된 뒤 좌익조직으로 조작된다. 결국 이들 타공결사대에게 학살당했다는 100여 명의 주민들은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과거사와 관련해 풀어야 할 과제가 아직 많지만, 10년 만에 다시 가동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아직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출범을 선언하긴 했지만, 국민의힘이 야당 몫인 위원 4명의 추천을 아무런 이유없이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추천을 해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신 소장은 “과거청산을 반대하는 분들이 9명의 위원 가운데 4명이나 차지할 예정이다. 그 중 한 분은 상임위원으로 민간인 학살 사건 조사를 총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실규명 결정을 받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분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정밀한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피해가
분단 상황에서 내전 또는 국제전 중
독재 권력에 의해 벌어진
전쟁범죄, 반인륜범죄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독재를 극복하고 분단 상황을 극복하여
민주주의와 통일, 평화를
이루는 것으로 여긴다”
신 소장은 2기 진실화해위에 대해 이런 바람을 전했다. “민주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신청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2기 위원회는 처리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새로 나타난 사건들을 조사하는 것에 그치는 위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기 위원회의 연장으로 과거 청산 작업 완성이 자기 임무라고 생각한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덮는 곳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 살려내는 것이 임무다. 전쟁 시기는 물론 이후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열사, 희생자들을 역사 속에서 되살려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3년 뒤에는 조사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거나 권한이 없어서 못했다는 말보다는 과거 청산의 다음 단계로 가자는 말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일은 2기 위원회의 출발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일일 것이다.”

지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활동한 이후 10년 간의 작업을 통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의 시기별, 유형별, 지역별 분석을 해온 신 소장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역사적 의미와 가해자, 가해 행위 분석을 통한 재발 방지 연구에 도전하고 있다. 제 인생에 이 과제를 마칠만한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습니다만, 여기에 더해 이후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 과정의 연속성을 규명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저와 제 주변 인사들의 인생도 이 과정에서 만나 어우러져 왔다. 당시 희생당한 친구들도 있고 여전히 실종 상태에 있는 친구도 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했지만 결국 여전히 실종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저는 조사관이기도 했지만, 신청인의 입장에서 가진 분노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제가 겪었던 시대 역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70년 전에 벌어진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이 이후 현대사의 열쇠라고 믿고 있는 저로서는 이후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 전쟁의 연장선 상에서 재해석에 도전해 보고 싶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과거를 이야기하냐고 말한다. 하지만, 신 소장은 진정 미래로 나가기 위해 넘어야 산은 민간인 학살 등 과거사라고 강조한다.
“저는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피해가 분단 상황에서 내전 또는 국제전 중 독재 권력에 의해 벌어진 전쟁범죄, 반인륜범죄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독재를 극복하고 분단 상황을 극복하여 민주주의와 통일, 평화를 이루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저는 이 운동이 광범위한 관심과 지지 속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민주화운동하는 분들이나 통일운동가, 평화운동가, 심지어는 인권운동가들조차 주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역사 영역에서는 거의 소외되어 있고, 과거사라며 특별한 분야로 제한하는 경향이 큰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과거사 영역을 더 확장시키지 못하는 저를 더 반성하게 된다. 곧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20-12-15>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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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5) ‘내역사’ 시즌 5: 22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이승만편
☞ (12.08) ‘내역사’ 시즌 5: 21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김일성편
☞ (12.01) ‘내역사’ 시즌 5: 20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송진우와 한민당
☞ (11.24) ‘내역사’ 시즌 5: 사북항쟁 40주년 특집 방송 “1980년 4월 21일~24일까지의 기록”
☞ (11.17) ‘내역사’ 시즌 5: 19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박헌영편
☞ (11.10) ‘내역사’ 시즌 5: 18화 “해방 후 3년”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여운형편
☞ (10.27) ‘내역사’ 시즌 5: 17화 2부 “해방후 우리군은 숙군과정을 통해 어떻게 정치군인이 되었는가?
☞ (10.20) ‘내역사’ 시즌 5: 17화 1부: “해방후 우리군은 어떻게 창설되었나?
☞ (10.13)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2부
☞ (10.09)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한글날 특집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지켰나?’
☞ (10.06)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2020-12-16> 뉴스파타
☞기사원문: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4부 <실천>
※관련기사
☞뉴스타파: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3부 <진실>
☞뉴스타파: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2부 <기자>
☞뉴스타파: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1부 <불씨>
☞한겨레: “식민학문 깨뜨린 학자이자 약자 향한 애정 담아낸 언론인”
☞광주MBC: 리영희 특별대담 3부, ‘저널리스트로서 펜으로 싸워온 반세기’
☞광주MBC: 리영희 특별대담 2부, ‘우상의 파괴자로 거듭나다’
☞광주MBC: 리영희 특별대담 1부, ‘식민지 소년에서 저널리스트로’
☞한겨레TV: 2008년, 원로에게 길을 묻다-리영희 선생편
☞광주MBC: 리영희 타계 10주기, 추모특집 방송, ‘대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역정’
☞한겨레TV: 2010년, [추모영상] 우리시대 사상의 은사 ‘리영희’
☞KBS역사저널 그날: 역덕이슈 오늘 I 39 리영희, 사상의 은사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박철홍 시의원 문제제기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알리자”

“비석군의 어떤 비석 주인공은 친일행위를 했고, 애국지사도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같이 모아 두다 보니 마치 모든 비석의 주인공이 공적이 있거나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민족과 나라를 배신했던 사람의 비석을 모두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그 비석의 주인공이 어떤 친일행적을 했는지는 알 수 있도록 해놓아야 한다. 애국지사 비석과 같이 있다 보니 혼동이다. 더구나 왜적과 싸운 역사가 뚜렷한 진주성 안에 친일인사의 비석이 있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이 17일 진주성 비석군에 있는 일부 비석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이날 박철홍 진주시의원도 진주시의회 정례회 5분자유발언을 통해 일부 비석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헤야 한다고 제시했다.
진주성 비석군에 친일행적 정태석·정상진·정봉욱 있어
진주성 안 경절사와 청계서원 앞에는 ‘비석군’이 있다. 1973년 문화재보호협회 진주지부가 당시 진주성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놓았던 것이다.
비석군에는 ‘1604년 이수일 진주목사 음애비’와 ‘1656년 성이성 목사 청덕 유애비’를 포함해 30여 기가 있다.
비석군에는 친일행위가 있는 인사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정태석(鄭泰奭), 정상진(鄭相珍), 정봉욱(鄭奉郁)이다.


정태석(진사)은 지주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당시 진주 최고액 1만188원을 기부했고. 1938년 진주 유지들의 모임인 ‘연재계’ 회장으로 300원의 국방성금을 헌납했으며, 1938년 <조선시보>에 ‘전승신년’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5년과 1938년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상장을 받았다.
정상진(창씨명 烏川相珍)은 지주이면서 실업가로, 193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 민간공로자 표창으로 은잔을 하사받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5000원을 기부했으며, 1938년 3월 <조선시보>에 ‘황군 대승의 봄을 맞이하다’라는 제목의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또 그는 1939년 <매일신보>에 ‘황군의 무운을 바라는’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9년 3월 26일 조선특별지원병 진주후원회 고문으로 선출됐다. 1940년 1월 1일 <매일신보>에 ‘축 황기 2600년 신춘’을 게재했고, 1940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합방 30주년 민간공로자 표창’을 받았으며, 1941년 <매일신보>에 ‘흥아유신’을 축하하는 시국광고 게재 등의 친일행위를 했다.
정봉욱은 1918~1930년 내동면장을 지냈고, 1921년 <매일신보> 주최로 일본 시찰을 다녀왔으며, 1933년 ‘기원절’에 일장기 게양을 독려하고, 1940년 ‘동아의 건설에 유도(儒道)정신을 발휘’라는 경남유도연합회 결성식에 진양군 대표로 참가했다.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쪽 3.1독립운동기념비 옆에는 ‘정표환(鄭杓煥) 시혜불망비’가 있다. 그는 지주로, 1914년 12월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木杯)와 밭 130평을 하사받았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5000원을 기부하고. 1939년 1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황군의 무운을 바라는’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이밖에 비석군에는 일제강점기 때 면장과 구장을 지낸 김종백(金鍾百) 면장, 정승주(鄭承周) 면장, 이○열(李○列) 평거구장의 비석도 있다.

박철홍 시의원 “진주성은 자랑이지만 한이 서린 곳”
박철홍 시의원은 이날 자유발언에서 비석군에 대해 설명하면서 “임진왜란 계사년 전투에 7만 민관군이 장렬히 순국한 진주성은 우리에게는 자랑이지만 한이 서린 곳”이라고 했다.
그는 “친일인사의 시혜비가 진주성 안에 있다는 사실은 부끄럽고 치욕이지만 이를 알리고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알리자는 의견을 피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방 후 친일파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독립운동가를 대신해 권력을 장악하고 지배층으로 자리잡았다”며 “오랜 세월이 흘러 이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는 사라졌지만 진주 명승지에 이름을 새긴 그들의 잘못된 행위와 친일인사의 시혜비가 진주성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잊지 말자는 취지는 시민 모두가 공감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촉석루 아래 의암 쪽 벽면과 뒤벼리에 새겨져 있는 친일파 이름에 대해, 박 의원은 “표지판을 세워 아픈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촉석루 아래 의암 쪽 벽면에는 ‘이은용’과 개명 후 이름인 ‘이지용’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지용은 ‘을사5적’이다.
뒤벼리 쪽에는 구한말 경남도 관찰사로 재직하며 탐관오리로 일제의 침략에 적극 가담했던 이재각(李載覺), 이재현(李載現), 성기운(成岐運)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뒤벼리 앞에는 시민단체가 세운 ‘친일행적 안내판’이 있다. 박 의원은 “뒤벼리에 세워진 알림판은 낙석 방지 철조망 안에 방치돼 있으며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뒤벼리 강변 쪽 인도에 세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지고 읽을 수 있게 해야 된다”고 했다.
촉석루 아래 의암 쪽 음각에 대해, 박 의원은 “이지용, 이은용 글씨를 알릴 표지판을 세우자는 건의는 수차례 있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진주시에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강 건너편에 알림판과 망원경을 설치하여 쉽고 안전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2020-12-17> 오마이뉴스
<2020-12-18> 뉴스파타
☞기사원문: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5부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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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4부 <실천>
☞뉴스타파: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3부 <진실>
☞뉴스타파: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2부 <기자>
☞뉴스타파: [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1부 <불씨>
☞한겨레: “식민학문 깨뜨린 학자이자 약자 향한 애정 담아낸 언론인”
☞광주MBC: 리영희 특별대담 3부, ‘저널리스트로서 펜으로 싸워온 반세기’
☞광주MBC: 리영희 특별대담 2부, ‘우상의 파괴자로 거듭나다’
☞광주MBC: 리영희 특별대담 1부, ‘식민지 소년에서 저널리스트로’
☞한겨레TV: 2008년, 원로에게 길을 묻다-리영희 선생편
☞광주MBC: 리영희 타계 10주기, 추모특집 방송, ‘대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역정’
☞한겨레TV: 2010년, [추모영상] 우리시대 사상의 은사 ‘리영희’
☞KBS역사저널 그날: 역덕이슈 오늘 I 39 리영희, 사상의 은사
– ‘빈민족 행위 처벌법’과 특위 구성했지만 청산 못해
– 일본식 표현을 사용한 법률용어에 대한 공동연구 진행
– 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 법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

[선데이타임즈=윤석문 기자]‘일제잔재법률용어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은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행 법률 중 일본식 표현을 사용한 법률용어 청산을 통해 우리 법률 속에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를 바꿔가겠다”고 밝혔다.
모임의 정청래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헌 국회는 제헌 헌법에 따라 ‘빈민족 행위 처벌법’을 만들고 반민 특위 구성을 하였지만 1년이 채 못 되어 해산하면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2000년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되는 등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 다시 시작 되었지만 여전히 일제 잔재는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광복 75주년을 맞아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소속 19인은 현행 법률 중 일본식 표현을 사용한 법률용어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121건의 법률에서 일본식 표현을 발견했고 개정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언어는 민족의 얼과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해야 우리의 얼과 문화가 바로 설 수 있지만 우리의 일상 언어 속에 아직도 일본식 표현이 많이 남아 있다”고 강조한 ‘일제잔재법률용어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은 “이번 개정을 통해 우리 법을 명실상부한 ‘우리 대한민국의 법’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고 밝혔다.
일제잔재법률용어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에는 정청래 의원(대표, 이하 가나다순)을 중심으로 김남국, 김민철, 김병주, 신현영, 오기형, 오영환, 이성만, 이수진, 이용우, 이원택, 임오경, 임호선, 장경태, 장철민, 주철현, 최혜영, 한준호, 홍성국 의원이 함께 하고 있다.
<2020-12-17> 선데이 타임즈
전북도, 친일 잔재 전수조사 용역 결과
김성수·김연수 형제, 서정주, 신상묵, 채만식 등 118명
관료나 군인·경찰이 다수, 종교·언론계도 포함

일본제국주의 강점기 전북 출신 인사의 친일 행적과 잔재 청산을 위한 전라북도의 연구용역이 마무리됐다.
이번 용역에선 전북 출신 친일파 명단을 추리고, 지역에 산재한 친일 잔재를 조사했다.
21일 전라북도에 따르면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 전북 출신 친일 인사는 118명, 친일 잔재는 131건으로 조사됐다.

전북 친일 인사 명단은 이번 용역을 맡은 전북대 산학협력단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을 기초로 작성했다.
도내 출신지가 명확하지 않은 36명을 제외하면 시·군 중에선 전주 출신 친일 인사가 2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익산(10명), 군산(7명), 남원·고창·정읍·임실(각각 6명), 김제(4명), 무주·진안·장수·완주·부안(각각 2명) 등이다.
일제강점기 전북에 속했던 충남 금산 출신은 3명이다.
고창 출신으로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와 그의 동생으로 삼양사 창업주인 김연수, 전북경찰국장을 지낸 신상묵, 시인 서정주 등 친일 행적이 잘 알려진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또, 중추원 참의를 지낸 강동희, 3·1운동 진압 목적으로 설립된 전라북도자성회장을 역임한 백낙신, 지역유력자로 일제에 국방금품을 헌납한 한인수가 친일파로 지목됐다.
종교계 인사로는 기독교 조선장로교단 총무·장로교 목사였던 김종대, 국민총력 천도교연맹 상무이사 박완, 유재환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이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언론·문학계에선 이익상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 이창수 매일신보 논설위원, 소설가 채만식이 친일파로 꼽혔다.
전북 출신 친일 인사의 활동분야를 보면 관료나 군인·경찰이 69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이었던 중추원(20명), 친일단체(5명) 활동 인사도 많았다.
도내 친일 잔재는 총 131건으로 지역별로는 군산이 3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주(27건)·고창(16건)·익산(15건)·완주(11건)·김제(8건) 등의 순이다.
친일 잔재는 친일 인사의 출신지역이나 행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당시문학관·수당 김연수 송덕비(고창), 채만식 소설비(군산)를 비롯해 군산내항철도, 구마모토 공덕비(김제), 향가터널(순창), 사이토 총독 탁본(임실), 김해강 시비·취향정(전주), 황토현 전봉준 장군 동상(정읍), 풍혈냉천(진안), 만인의총 박정희 현판(남원)이 친일 잔재로 조사됐다.
전라북도는 친일 잔재 등의 청산과 관련해 시·군과 후속조치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안내판 설치 등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예산 확보를 통해 친일 잔재를 지속적으로 청산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전라북도의 이번 용역에서 다소 미흡했던 지역유력자의 친일 행적에 대한 후속 연구와 친일 잔재의 조속한 청산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은 “대지주 등 일제강점기 지역유력자나 기업인 중에도 친일 인사가 많다”며 “이들에 대한 친일 행적 연구와 친일 잔재의 효과적 처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CBS 최명국 기자
<2020-12-21> 노컷뉴스
☞기사원문: 전북 출신 친일파·친일 잔재 면면 보니
반공법 위반으로 고문과 재판 겪어
‘허허 선생’ 연작으로 왜곡된 사회구조 풍자도

소설 ‘분지’의 작가 남정현이 21일 오전 10시에 별세했다. 향년 87.
193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대전사범학교를 나온 남정현은 몇달 간 교사 생활을 했으나 지병인 결핵 때문에 곧 그만두고 치료를 받으며 습작을 했다. 1958~9년 <자유문학>에 ‘경고구역’과 ‘굴뚝 밑의 유산’이 추천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1961년 중편 ‘너는 뭐냐’로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그러나 1965년에 발표한 단편 ‘분지’가 북한의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되면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그는 1967년 고등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기까지 고문을 당하고 재판을 받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를 주인공 삼은 소설로 반미 의식이 충만한 작품이다. 홍만수의 어머니는 미군에게 강간당한 충격으로 세상을 떴고 누이동생은 미군 상사 스미스와 동거를 하며 성적 학대를 당한다. 그에 분노한 만수가 스미스 상사의 아내를 겁탈하고 향미산으로 들어가 숨자, 미국 펜타곤이 핵미사일을 동원해 향미산을 폭격하려 한다는 것이 소설의 얼개다.
‘분지’ 필화사건은 창작의 자유를 옥죄고 감시·처벌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전횡과 횡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남정현은 ‘분지’ 필화 사건 뒤에도 ‘허허 선생’ 연작을 발표하며 창작 의욕을 이어나갔으나 1974년 대통령긴급조치 1호 위반혐의로 다시 구속되어 반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고 1980년에도 예비 검속으로 구속되는 등 고난이 그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창작 활동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1973년 ‘허허 선생 1’로 시작해 1992년 ‘허허 선생 옷 벗을라’까지 모두 8편으로 완성된 ‘허허 선생’ 연작은 일제 순사 출신으로 해방 뒤에도 승승장구하는 주인공 허허 선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왜곡된 구조를 풍자한 작품이다. 남정현 자신에 따르면 허허 선생은 “역사적으로 누대에 걸친 수수백년 동안 오로지 일신의 영화만을 탐한 나머지 언제나 침략세력이었던 외세와 늘 한통속이 되어 나라와 민중의 이익을 열심히 짓밟은 지배계층 공통의 반인간적이며 반민족적인 그 못돼먹은 의식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타기할 인물”을 대표한다. ‘분지’와 ‘허허 선생’ 연작에서 보듯 남정현의 소설은 풍자와 반어의 기법을 통해 강렬한 민족주의 및 반외세 의식을 표현하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삼는다. 문학평론가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은 “남정현 소설은 한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마치 전자현미경처럼 확대시켜 이를 만화풍으로 소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정현은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고문과 한국펜클럽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문학 창작과 현실적 실천을 병행했다. 1990년에는 일본 도쿄와 교토 등에서 열린 국제평화포럼에 참가해 주제발표를 했으며 1992년에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세계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인대회에 참가하는 등 국제 문학 교류에도 힘썼다. 2002년에는 <남정현 문학전집>(전3권)을 출간했으며 2004년에는 <남정현 대표소설선집>을 내기도 했으나 만년에는 건강이 나빠져서 집필과 외부 활동을 줄이고 칩거했다.
그가 2011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 ‘편지 한 통-미 제국주의 전상서’는 국가보안법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자신의 조물주이자 상전인 ‘미 제국주의’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북한의 핵 억지력이라는 현실 위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가는 평화협정 논의를 불안하고 불만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국가보안법의 목소리를 빌려 작가 특유의 민족주의와 반미주의를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남정현은 2018년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를 내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문학은 인간을 사랑하는 작업”이라며 “인간은 사회에 발 디디고 서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작가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작가는 사회를 형성하는 정치, 경제, 문화를 깊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987년에 낸 대표작품선 <분지>에 쓴 ‘작가의 말’에서도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은폐된 진실을 찾아내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감행되는 현실과의 가열한 싸움”이라고 썼다. 평생 글과 행동으로 현실에 맞서 싸우며 진실을 찾고자 했던 개결한 작가 남정현이 영원한 휴식에 들었다. 고인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주는 제12회 민족예술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돈희(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장학부장)씨와 딸 진희(전업주부)씨, 며느리 나명주(참교육학부모회 전국회장)씨, 사위 우승훈(마취과 의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3일 오전에 있다. (02)2072-2010.
최재봉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12-22> 한겨레
☞기사원문: ‘분지’의 작가 남정현 별세
2020년 학술계 결산
뉴라이트 연구자들 또 한차례 역사부정 소동에 역사학계 체계적 반박
민중사학자 이이화, 생태사상가 김종철, 한국 여성학 대모 이효재 떠나

코로나19 대유행이 지구촌을 강타한 가운데 올해 국내 학술계에도 주목할 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일본 우익의 논리와 연계된 국내 연구자들의 역사부정 행위가 올해도 이어졌으며, 이이화·김종철·이효재 같은 학계의 거목이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도 연달아 일어났다.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 역사 도발
올해 국내 학술계에서 가장 큰 사건은 뉴라이트 연구자들이 일으킨 ‘일제강점기 역사 왜곡’ 소동이었다. 지난해 <반일 종족주의> 출간으로 한차례 논란을 불렀던 이 책 집필자들이 지난 5월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두 번째 책을 펴낸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은 비슷한 시기에 터진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얽혀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비화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우익 연구자들이 쓴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은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역사학계의 비판을 반박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반일 종족주의> 주장을 되풀이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의 주장은 사료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진실을 호도했다는 역사학계의 재반박에 부닥쳤다. 전선은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두고 그어졌다. 역사학계는 일제강점기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위안부 강제동원’이 자행됐으며 ‘위안부들이 위안소에 감금돼 인간으로서 존엄을 침해당한 국가범죄의 피해자’였음을 입증했지만, 우익 집필자들은 ‘권력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증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책들도 잇따라 출간됐다.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의 역사 왜곡에 맞서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반박서를 낸 학자는 강상현 성공회대 교수였다. 강 교수는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에서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사료적 근거를 대가며 비판하고, 일본 극우의 역사부정론이 한국 뉴라이트의 ‘반일 종족주의 프레임’으로 각색됐음을 논증했다. 강 교수에 이어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으로 이영훈 등의 주장을 다시 해체했다. 전 교수는 이 책에서 뉴라이트 연구자들이 ‘사실을 재가공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공박했다. 그러나 일부 수구언론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나자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의 언어와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정의기억연대와 수요집회를 비판하는 데 몰두했다.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집필자들이 박정희 군사정변 기념일인 5월16일에 맞춰 책을 펴냈다는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영훈 전 교수는 이 책에서 조선왕조가 망한 이유가 “개인보다 사회를 앞세우는 전체주의”에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전체주의적이었던 이승만-박정희의 통치를 옹호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뉴라이트 연구자들이 일으킨 역사 왜곡 소동은 결국 역사학계의 계속된 비판과 역공 속에 이들의 주장이 공론장 밖으로 밀려나는 양상을 보이면서 수그러들었다.

큰 족적 남긴 김종철·이이화·이효재
올해 학술계의 또 다른 주목할 사건은 굵직한 학문적 자취를 남긴 학자들이 연거푸 타계한 일이다. 생태사상가 김종철,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 한국 여성학의 대모 이효재가 올해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7월 갑자기 세상과 이별한 김종철은 30년 동안 올곧게 생태주의 운동을 벌인 이론가이고 운동가였다. 1991년 국내 최초의 생태주의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한 뒤 타계할 때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이 잡지를 발행해 왔다.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그는 지금 상황을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전면적인 위기, 정치나 경제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문화적 위기, 즉 도덕적·철학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1999년 펴낸 평론집 <간디의 물레> 머리말에서 그는 지난 8년 동안 <녹색평론>을 엮어내는 일이 자신에게는 ‘구원’과 같았다며 “아마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치거나 깊이 병들었을지 모른다”고 술회했다. 김종철은 이 잡지의 매호마다 폭주하는 자본주의 문명을 생태 문명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고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펴낸 <녹색평론> 5·6월호 권두언에서는 지구 전체를 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대재앙이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산업발전과 소비주의의 소산”이라며 “이윤을 위한 이윤 추구, 소비라기보다는 끝없는 낭비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시스템을 종식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역량이 총동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이렇게 ‘생태 사상’의 전파에 힘쓰는 중에 김종철은 민주주의 심화와 불평등체제 혁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촛불시위가 번져 나가던 2017년에는 주권자인 시민의 정치적 힘을 키우기 위해 추첨을 통한 시민의회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도 김종철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공론화에 앞장섰다. 김종철의 선도적 노력으로 기본소득은 정치적으로 뜨거운 현실적 주제로 떠올랐다.

김종철의 타계에 앞서 지난 3월에는 민중사학의 거목 이이화가 세상을 떠났다. 이이화는 극심한 가난 속에 고학한 탓에 대학에서 정식으로 역사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두루 꿰는 장쾌한 시야로 민중의 역사를 복원하며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1994년부터 10년에 걸쳐 쓴 총 22권의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는 개인이 쓴 통사로는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선생님은 상아탑에 갇힌 민족사를 해방시켜 대중의 역사, 거리의 역사, 현실에 발 디딘 살아 숨 쉬는 역사로 바꾼 행동하는 지성인이요 실천가셨다”고 고인의 삶을 기렸다. 이이화는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도 깊숙이 관여했으며 제 2대 연구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중사학자로서 이이화가 깊은 애정을 지녔던 한국사 분야는 동학농민혁명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집필에 몰두한 <동학농민혁명사>(전 3권)는 이이화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이 책에서 이이화는 동학농민혁명의 평등·자주 사상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10월에는 한국 여성운동의 1세대 지도자 이효재가 96년의 삶을 마쳤다. 1950년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효재는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자리 잡은 뒤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를 탄생시켰다. 이효재는 국내 학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문제’를 독자적 주제로 연구했고, 한국적 상황을 바탕으로 한 여성학 이론을 만들었다. 이효재가 1979년에 펴낸 <여성해방의 이론과 실천>은 여성운동의 교과서로서 수많은 후배 여성들을 여성운동으로 이끌었다. ‘우리 역사의 맥락 속 여성운동’에 대한 강조는 ‘분단사회학’ 개척으로 이어졌다. 분단사회학은 남북 분단이 여성과 가족을 비롯해 사회구조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함으로써 분단에 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분단과 여성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는 그의 학문적 노력은 1985년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열매를 맺었다.
이효재는 사회적 실천에도 깊이 관여해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의 전신) 창립을 주도했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전쟁 범죄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노력을 다했고,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위안부’ 특별보고서 채택을 이끌었다. 1990년 정년 퇴임 뒤에도 ‘평화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2015년에는 자신이 직접 제안해 마련된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자 호소하는 여성 10000인’ 기자회견에 나와 ‘전쟁과 핵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들이 앞장서자’고 제안했다. 이효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남북이 화해해 평화통일을 이루자’였다.
고명섭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12-25> 한겨레
광복회 ‘역사정의 실천 상’ 시상식
이건상 총괄본부장 ‘역사정의 실천 언론인 상’ 수상
김순흥 지부장 ‘역사정의 실천 시민운동가 상’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23일 광복회 광주시지부 광복회관에서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에게 ‘역사정의 실천 시민운동가 상’을, 이건상 전남일보 총괄본부장 겸 선임기자에게 ‘역사정의 실천 언론인 상’을 각각 수여했다.
광복회는 올해 처음으로 시민운동가, 교육가, 정치인, 언론인 가운데 역사정의를 실천한 인사를 선정, 수상하고 있다.
김주원 광복회 광주시지부장은 김원웅 회장을 대신해 인사말에서 “김순흥 지부장과 이건상 기자는 우리시대의 독립군으로 친일잔재 청산과 조선의용대 등 숨은 우리 독립운동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알려왔다”고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김순흥 지부장은 수감소감으로 “항일 애국지사와 독립군들은 춥고 낯선 땅에서 배고픔을 참아가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항일의 길에서 맹렬하게 싸웠고, 그리고 장렬하게 순국했다”며 “오늘의 이 영광을 먼저 독립군 선열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이건상 본부장은 “분단과 반공, 이념의 장벽에 갇혀 아직도 반쪽의 독립운동사에 머물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제한 뒤 “좌우를 아우르는 온 쪽의 독립운동, 가려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드러내고 선양하는 일에 더욱더 매진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으로 구성된 공법단체로 3·1절, 광복절 기념식 주관, 국내외 독립운동사적지 발굴 등 민족정기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다.
By 김해나 기자 [email protected]게재 2020-12-23 17:06:35
<2020-12-23> 전남일보
☞기사원문: 이건상 총괄본부장 ‘역사정의 실천 언론인 상’ 수상

22일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위한 연대회의 준비위원회 개최
[더팩트 l 파주=김성훈 기자] 남북 경제협력 상징인 개성공단의 재개를 이끌어 내기 위한 민간 주도의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위한 연대회의’가 내년 1월 중 출범할 전망이다.
경기도는 22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평화부지사 현장집무실에서 열린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위한 연대회의 준비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추진 방향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준비위원회는 지난 15일 이재강 평화부지사가 통일대교에서 ‘삼보일배’를 통해 제안한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위한 범국민운동 전개’ 구상에 대해 정관계, 기업, 시민단체 등이 호응해 열리게 됐다.
준비위원회에는 이재강 평화부지사,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심규순 도의회 기획재정위원장 등과 개성공단 기업인, 시민사회단체 및 종교계, 학계 대표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회의에서는 연대회의 명칭, 조직체계 구축 및 향후 추진 방안 등에 대한 사항을 논의했다.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위한 연대회의’는 각계각층의 구성원들과 함께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실질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맡을 민간 주도 협력기구다.
이날 회의에서는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상임대표로 추대됐다.
츨범식은 내년 1월 중에 ‘연대회의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되, 실무적인 업무는 경기도가 주도적으로 준비키로 합의했다.
준비위원들은 이날 평화부지사에게 “연대회의가 만들어질 예정이니, 평화부지사께선 도청으로 복귀해 코로나19 대응 등 어려운 현안 해결에 나서달라”고 거듭 건의했다. 경기도는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운영 중인 임진각 현장집무실은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재강 평화부지사는 “앞으로 코로나 정국 돌파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위한 연대회의가 활발한 활동을 하도록 협력할 계획”이라며 “특히 개성공단 재개 선언 캠페인, 전문가 포럼 등 민관이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이끌어 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가자”고 말했다.
경기도는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목표로 지난 11월 10일부터 43일간 파주 임진각에 평화부지사 현장집무실을 운영하는 동안 약 120여개 기관·단체 350여명의 격려방문을 받았다.
<2020-12-23> 더 팩트
☞기사원문: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위한 민간 주도 협력기구 다음 달 출범
※관련기사
☞연합뉴스: ‘개성공단 재개 선언 촉구’ 민간 주도 협력기구 내달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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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제정 후 1년 5개월 동안 파악한 공공조형물 22건에 그쳐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태식, 홍난유 비석 여전히 방치
당진시 “단죄비, 친일 행적 문구를 넣는 등의 방안 마련 할 것”

[당진신문=지나영 기자] 시유지에 친일파 공적비가 버젓이 세워져 있음에도 당진시가 친일 잔재 청산에 안일하게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조형물 조례에 따라 당진시는 친일파 공적비를 조사해야 하지만 뒷짐만 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7월 당진시의회 조상연 의원은 친일 인물의 공적비를 파악하고 전수조사를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 조례안을 발의했다.
당진시 공공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에서 정한 공공조형물은 공공시설에 건립된 회화나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등 조형물과 상징탑, 기념비, 상싱물 등 상징조형물 등을 말한다. 조례에 따르면 시유지에 세워진 친일파의 공적비는 물론 모든 비석들은 관리 현황에 올려져야 한다. 또한 문제가 되는 비석에 대해서는 당진시가 위원회를 구성해 이설 또는 철거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당진시가 1년 5개월간 파악한 공공용지에 설치된 조형물은 단 22개뿐이다. 당진시는 시유지인 남산공원과 시가 관리하는 당진문화원에 세워진 비석들은 물론 조례에서 정한 공공조형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당진시의회에서 진행된 문화관광과 소관 시정질문에서 조상연 의원은 “각종 조형물이 공공시설에 무분별하게 세워지고, 누구의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조례 제정 후 1년이 지났는데도 22개만 파악했다는 것은 조사를 부실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당진 남산공원에는 친일인물사전 명단에 수록된 당진 출신의 관료·정치인 출신 인태식 씨의 공적비가, 그리고 당진문화원에는 1903년부터 1905년까지 당진군수로 재직한 홍난유 씨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지만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관련기사: 당진 남산공원과 문화원에 버젓이 세워진 친일파 공적비, 1320호)
광주공원에 있던 홍난유의 선정비를 뽑아 옮기고 그 앞에 단죄문을 설치한 광주광역시의 모습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조상연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공용지에 조형물을 난립하는 것에 대한 방어막을 갖기 위해 당진시 공공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안을 만들었다”며 “실질적으로 조례 발의를 한 의미로는 사적인 역사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보통 비석 같은 것을 세우면서 내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로 근거해 세워지는 것이 맞다”며 “조례에 따라 당진시는 친일 인물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인태식 씨 공적비와 홍난유 씨 선정비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당진시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그동안 세워진 조형물을 한 부서에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어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마을의 이정표나 개인이 세운 조형물에 시의 예산을 투입해 관리해야 하나 싶어서 조례의 공공조형물의 범주를 수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고, 범주가 명확해지면 관리를 어떻게 할지를 구체화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석 같은 경우는 한참 오래전에 군청사든 관아에 얘기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세워졌을 것”이라며 “후대에 와서 친일의 문제가 드러났다고 무작정 엎어버리고 없앨 수는 없으니까, 실태조사를 통해 단죄비나 친일 행적을 알리는 문구를 넣는 등의 방식을 향후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해 시민에게 객관적으로 사실을 알리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16일 충남도의회는 전국 최초로 지역 내 남아있는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충청남도 친일잔재 조사 및 연구 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 충남도의회의 친일잔재 관련 조례 제정에 따라 당진시 친일 잔재 청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0-12-26> 당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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