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2017년 07월호
[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을 주제로 오는 23일 서울 종로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이 학술회의는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3.1운동 이후 본격화한 만주 일대의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올해는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이 되는 해여서 주최 측은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후원으로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한다.
신흥무관학교는 독립전쟁사에 있어 3대승첩으로 평가되는 봉오동·청산리전투와 대전자령전투 등 초기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인사들을 배출했다. 또한 의열단, 한국광복군 등 독립운동 각 부문에 큰 영향을 미쳤던 독립군 양성 기지 역할을 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기조 발제를 맡아 독립전쟁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차지한 위상과 역할을 개관한다.
서동일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는 제1주제 ‘1910년대 유교계의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초기에 만주에 정착한 유림들과 신흥무관학교의 관계를 다룬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연구소가 구축한 신흥무관학교 인명 데이터베이스를 활용, 제2주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 현황 분석과 독립운동’을 주제로 이들의 활동과 분화 과정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한성민 대전대 교수는 제3주제 ‘일본의 간도출병 배경 검토’를 주제로 일제가 1920년 10월 ‘훈춘사건’을 빌미로 간도 지역에서 감행한 대규모 군사행동 ‘간도출병’ 배경을 다룬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제4주제 ‘청산리 전역과 절반의 작전’을 주제로 청산리 전투 외 비슷한 시기에 훈춘, 동녕현 등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독립전쟁과 일본군의 활동을 추적한다.
이어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주재로, 발표자 전원과 박성순 단국대 교수, 황민호 숭실대 교수, 이명종 강릉원주대 교수, 이승희 동덕여대 교수가 참여해 종합토론을 진행한다.
<2020-10-22> 해럴드경제
사람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중국 광둥 지역을 달립니다.
이들이 지나는 곳은 보통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 아닌 험한 산길.
우리나라 독립혁명가 김산이 지나간 길을 되짚어 보는 ‘아리랑 로드’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33명과 조선 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의 손녀, 동포까지 약 40여 명이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박호균 / 광둥 지부 사무국장 :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의 발자취를 따라 광동 지역, 한국 독립운동사의 한 부분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혁명가 김산.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33년의 짧은 생을 마친 김산은 한국의 ‘체 게바라’라 불립니다.
아리랑 로드는 그가 1927년 12월 광저우 봉기 실패 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20여 일을 걸었던 600km의 길입니다.
[김춘련 / 양세봉 장군 손녀 : 우리는 차 타고 가는데도 몸이 피곤하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독립 혁명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리고 부상도 당하고 했을 때 산을 넘고 갈 때 얼마나 힘들었겠나 하면서 저희 할아버지가 생각이 많이 났어요.]
광저우에서 시작한 답사는 김산이 남긴 불꽃 같은 삶의 흔적을 따라 혁명투쟁사기념관, 황포군관학교, 기의열사능원으로 이어집니다.
어린 한인 학생들도 참여한 이번 답사, 이곳에서 있었던 역사를 잊지 않고 미래 세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랍니다.
[김산 / 학생 : 김산께서 11살에 가출을 해서 11살의 그 어린 나이부터 혼자 독립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일하고 공부까지 하는 모습이 인상이 깊었고, 이번 답사로 인해 역사에 관한 것도 관심이 생겨서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여기에 오게 된 거 같습니다.]
김원봉, 김산 등 조선인 15명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하이펑 혁명투쟁사기념관에서는 관장이 나서 답사단에게 직접 기념관을 안내해주기도 했는데요.
이곳은 과거 김산 등 독립운동가들이 교사를 맡았던 하이펑 옛 중공동강당교.
김산이 교사를 맡았다는 내용의 표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독립혁명가의 흔적이 남은 곳곳을 방문할 때마다 카메라를 먼저 꺼내 드는 답사단.
귀 기울여 설명을 듣는 것은 물론, 하나라도 놓칠세라 사진과 동영상으로 지금의 시간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김기봉 / 답사단장 : 다른 지역보다 유적이 생생하게 많이 살아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주 감동적이고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찾아와서 좀 더 배우고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돌아가서도 내 후손들이나 내 이웃이라도 이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에 대한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을 합니다.]
역사 속에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아리랑 로드’에 아로새겨진 김산의 정신, 시간이 지나도 널리 기억되길 바라봅니다.
<2020-10-25> YTN
☞기사원문: 숨은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


일제 침략과 항일·친일 역사를
한눈에 보다
평택시는 고덕국제신도시로 개발하고 있는 고덕면 좌교리 함박산 중앙공원에 2024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종합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평택을 대표하게 될 박물관 건립에 있어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까지 완성해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평택박물관 건립은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온 시민의 염원인 만큼 많은 고민 속에 전문가와 시민, 행정의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평택시사신문>은 전문기자단과 함께 전국의 박물관을 직접 돌아보며 각 박물관의 설립 배경과 특징, 장단점, 박물관이 갖추어야 할 형식과 내용, 프로그램 등을 지면에 실어 평택박물관 건립에 도움이 되도록 20회에 걸쳐 ‘박물관을 가다’ 특집기사를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항일과 친일,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
시민·해외동포 성금과 기증 사료로 건립된 박물관
미래세대 올바른 역사인식과 이해 돕는 교육의 장


■ 역사의 양면을 함께 공유하는 박물관
역사는 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자랑스러운 역사와 치욕의 역사 등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는 ‘왜곡’된 역사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가나 개인, 나아가 사회에서도 자신들이 겪었거나 또는 경험했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 있는 경우 일각에서는 자신의 치부를 당당하게 밝히는 경우도 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나라든지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역사도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를 밝히지 않거나 축소, 심지어 왜곡하기까지 한다. 특히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일수록 식민지 모국에 협력하였거나 부역하였던 것들은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역사의 양면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만큼 의미 있는 박물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역사라고 한다. 반만년의 역사에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빛나는 역사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를 겪은 쓰라린 아픔의 역사도 있다. 바로 일제 ‘식민지시기’였다. 이를 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라고 하는데 이 시대를 겪은 분들은 ‘왜정시대’라고 기억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36년은 나라를 되찾으려는 항일의 역사, 그리고 일제에 협력하여 영달을 도모하고자 했던 친일의 역사로 양분된다.

■ 일제 침탈의 역사와 부역한 친일파 단죄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강점된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을 맞이하기까지 항일과 친일이 함께 공존하였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대부분이 일제에 항거한 투쟁의 역사 즉 항일민족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비해 일제에 협력하거나 부역하였던 역사는 아주 소홀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항일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을 알고 있지만, 친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 일제강점기 항일뿐만 아니라 친일의 역사도 함께 아우르는 곳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는 박물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 빛나는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입니다. 이 소중한 역사문화공간은 해외동포를 포함한 수많은 시민들의 성금과 기증 자료에 힘입어 마련되었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제 잔재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앞당기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나아가 동학농민전쟁의 ‘횃불’에서 시민혁명의 ‘촛불’로 면면히 이어지는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꾸는 길에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 시민의 힘으로 건립하고 국치일에 개관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90년대 전반기에는 민주화 이후 친일청산 등 과거 청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후반기에는 식민주의 청산 시민운동이 확대되었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영향을 받은 식민지근대화론이 대두되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00년대 전반에는 친일청산을 지지하는 시민여론이 확대되면서 국가적으로도 과거청산 작업이 추진되었다. 그 연장선에서 국가 주도의 친일청산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한계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특히 ‘건국절’ 논란이 제기되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의 필요성은 더욱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민간주도의 친일청산을 추진해오던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역사운동으로서 친일청산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2007년 2월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박물관 건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듬해 2008년 6월에는 <경향신문>에 역사관 건립 희망릴레이 광고와 자료기증 캠페인을 통해 역사관 건립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켰다. 이후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2013년 5월 역사관 발기인을 모집하는 한편 건립 기금모금 대상을 일반인에게까지 확대하였다. 2015년 11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결성식을 갖고 건립기금 모금을 일본으로까지 확대하였으며, 2018년 6월에는 기금 전달식을 가졌다.

■ 기억하는, 기록하는, 행동하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첫발을 내디딘 지 10여 년 만인 2018년 8월 29일 국치일에 개관하였다. 이는 일제의 침탈에 대한 또 하나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여타 박물관과 달리 시민의 힘으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박물관 입구에는 발기인과 후원자 명단을 새겨 이를 기억하고 있다. 박물관 명칭도 이 기간에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에서 ‘역사정의실천시민역사관’을 거쳐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이념과 목적에 대해 박물관은 “20세기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를 피억압 민중의 시각과 목소리로 기록하고,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인식과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 문화 활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아시아 민중들과 연대함으로써 식민주의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 구축에 기여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식민주의 청산을 위해 노력하는 민주주의 역사를 ‘기억하는 박물관’, 식민주의 청산을 위해 조사 연구 등 ‘기록하는 박물관’, 동아시아 평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민중과 함께 ‘행동하는 박물관’을 내세우고 있다.

■ 4개의 상설전시와 2개의 체험코너
박물관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식민지역사박물관도 상설전시실와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4개 대주제로 구성된 상설전시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부 ‘일제는 왜 한반도를 침략했을까’ 전시실은 일제 강제병합과 식민지배의 실상을 보여준다. ‘제국의 전쟁터가 된 한반도’ ‘새로운 지배자, 조선총독’ ‘총칼로 누르고 동화와 차별로 어르다’ ‘빼앗긴 들, 황폐한 삶’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부 ‘일제의 침략전쟁,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시실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총원 체제 아래 자행된 강제동원의 참상을 다룬다. ‘천황을 위해 기쁘게 목숨을 바쳐라’ ‘숟가락 하나도 남김없이 총동원하라’ ‘청춘만장 앞세우고 끌려간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영혼, 남겨진 사람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부 ‘한 시대의 다른 삶-친일과 항일’ 전시실은 협력과 저항, 그 엇갈린 선택을 둘러싼 역사의 엄중한 평가를 되새기게 한다. ‘망국의 한 독립의 꿈’ ‘나라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린 그들’ ‘천황의 신민으로 거듭난 그들’ 등으로 꾸며져 있다. 4부 ‘과거를 이겨내는 힘,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전시실은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과 연대에서 동아시아 평화의 길을 찾아보는 곳이다. ‘반민특위의 좌절, 친일파의 귀환’ ‘분단과 독재, 지연된 역사 정의’ ‘공감과 연대의 힘’ ‘나는 싸우고 있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3부 전시실의 친일과 항일의 전시 코너는 마주 보는 전시기법으로 동시대에 살았던 두 군상의 삶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획전시 ‘조선의 입을 열다’
상설전시장에는 2개의 체험공간이 있다. 1부 전시실에 있는 ‘1평에서 체험하는 식민지 : 학교와 감옥’은 일제강점기 학교와 감옥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3부 전시실에 있는 ‘고백과 성찰을 위한 기록, 친일인명사전’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국민의 힘으로’라는 내용으로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된 과정과 의미를 설명한다. 한편 상설전시실은 전시와 체험 외에도 친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실도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모두의 한일사-미래를 위한 역사패널전’ ‘1919, 가만히 있으라?-3·1혁명의 주역과 탄압자들’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국치일을 아십니까?’ ‘기억을 둘러싼 투쟁-친일인명사전, 그 후 10년’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동아·조선 100년 기획전’ 등 기획전시를 기획하여 일제 침략과 친일의 역사에 대한 시야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5층과 옥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열린 공간 ‘돌모루홀’은 기획전시와 다양한 행사를 펼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층은 상설전시실, 3층은 민족문제연구소, 4층은 5만여 장서와 유물 보존을 위한 이동식 서가와 수장고를 갖춘 자료실, 5층은 40명 내외의 강의실과 유튜브, 팟캐스트 녹음실을 갖춘 교육장, 청파 스튜디오, 옥상은 전망대 ‘푸른 언덕’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글·사진/성주현 전문기자·평택박물관연구소장
■ 식민지역사박물관
◆ 관람 안내
○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 다길 27
(청파동2가 42-8)
○ 관람료 : 일반인 3,000원, 단체 2,500원(15인 이상)
청소년 개인 1,500원, 단체 1,000원(15인 이상)
○ 무료입장 : 후원회원, 정기후원자, 8세 미만, 65세 이상
○ 관람 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6시
○ 휴관일 : 1월 1일, 5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
○ 관람예약
– 대상 : 10~20명 내외 가족과 단체
– 예약 : 박물관 홈페이지→이용안내→예약안내
○ 문의 전화 : 02-2139-0427
○ 누리집 : http://historymuseum.or.kr
◆ 찾아가는 길
○ 시내버스 : 숙명여대 도서관 앞 정류장 하차
○ 지하철 :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 걸어서 10분
4호선 숙대입구역 10번 출구 걸어서 7분
6호선 효창공원역 2번 출구 걸어서 13분
<2020-10-28> 평택시사신문
☞기사원문: 기획특집-박물관을 가다 [11] 식민지역사박물관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만 2년이 된 30일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피고 일본 기업의 판결 이행을 가로막으며, 한국 정부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동행동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계종, 한국YMCA,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20개 단체가 참여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인 이희자씨는 “신일본제철 사장은 본사에서도, 집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으며 ‘소송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며 “재판이 끝나면 이행할 생각이 있구나 했는데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민 1천여 명의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을 펼쳐 들고 “우리가 기억한다, 우리가 증인이다”라고 외쳤다. 일본의 사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며 보내온 ‘인증샷’이다.
공동행동은 이날 시민 ‘인증샷’ 신문광고를 낸 데 이어 연말에 지하철 광고도 하겠다고 밝혔다.
<2020-10-30>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2년, 일본 여전히 책임 회피”
※관련기사
☞KBS: [현장영상] ‘판결 후 2년째 침묵하는 일본’ 강제동원 배상판결 이행 촉구 기자회견
☞오마이뉴스: [오마이포토] 대법원 판결 벌써 2년 “일본은 사죄배상하라”
※뉴스영상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소송투쟁을 제기할 때까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피해와 고통을 일본의 법정에서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비록 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과 피해사실을 일본 사법부가 인정하게 했고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내린 날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2년 전 오늘을 떠올려봅니다.
법정에서 선고를 직접 지켜본 94세의 원고 이춘식 할아버지는 함께 소송의 원고로 싸웠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세 명의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회한의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943년 1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했고, 1945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일본제철 오사카공장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가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1997년 12월. 이들은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한 뒤, 이춘식, 김규수 할아버지와 함께 2005년 2월 한국 법정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21년, 한국에서의 소송만으로도 13년의 세월이 지나 이들 피해자들은 마침내 승소판결을 받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20여 년의 소송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기쁨을 누려야 할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죠. 그해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 양승태의 사법부, 피고대리인 김앤장의 변호사들이 짬짜미로 판결을 지연시켰다는 ‘사법 농단’ 문건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저들의 ‘재판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안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2년 동안 일본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한마디만을 되풀이하며 배상판결에 따른 현금화가 실현되면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며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또한 판결을 빌미로 ‘혐한의 광풍’을 선동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국 때리기’를 국내 정치에 철저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정부는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2018년 11월 30일 대법원 판결 확정) 등 가해기업에게 배상하지 말도록 공공연하게 압력을 가해 판결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강제동원, 강제노동의 불법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책임도 다하지 않은 가해기업들은 일본정부 뒤에 숨어 사죄와 배상은커녕 피해자와의 그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2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애초에 지금의 문제를 야기한 것은 한국의 법원과 한국정부다. 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반하는 형태로, 일본의 개인청구권을 인정, 일본으로부터 격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위 글은 일본 보수언론의 기사가 아닙니다. 스스로는 ‘민족정론지’를 자처해 왔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한 <조선일보>(일본어판, 2019.7.11.)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보다 일본 가해기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에 따른 아베정부의 역사인식을 최소책임으로의 퇴행으로 간주한 한국의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는 ‘극단적인’ 최대책임을 주장했다. (중략) 이 발안은 기존의 책임론적 화해의 틀(‘가해자의 사죄->피해자의 용서->화해의 성립’)을 넘어서, 새로운 화해의 틀에 기반한 창의적인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즉 98년 공동선언에 담겨진 사죄 이외에 또 다른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지 않고, 피해자의 선제적이며 주도적인 재단 설립을 통해 양국 간의 화해에 이르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가해자의 입장을 피해자가 포용하는 화해이다.” – 박홍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레시안> “한일관계 3.0시대,’포용론적 화해’가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파탄’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이른바 일본전문가는 아베의 역사인식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아베는 퇴임 후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신사 야스쿠니를 매달 참배하고, 강제노동 피해를 왜곡한 전시로 비판을 받고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찾아 “이유 없는 중상을 꼭 물리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결론적으로는 ‘진정한’ 사죄는 필요 없으니, 피해자가 가해자를 먼저 포용하고 화해하는 것이 ‘창의적인 해법’이라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극단적인’ 주장을 했다고 말하는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은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20년이 넘게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싸워왔습니다. 비로소 공식적인 역사로 기록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리를, 그리고 그들과 기꺼이 손잡고 역사정의의 실현을 위해 함께 싸워 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일궈낸 시민연대의 승리를 함부로 폄훼하지 말라!고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사법농단의 주역 양승태는 지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재판거래에 가담한 판사, 외교부, 김앤장의 변호사, 그 누구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감옥으로 가는 이명박을 보며 역사정의의 실현에는 시효가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마음에 다져봅니다.
* 이 글은 식민지역사박물관 뉴스레터 6호(2020.10.30)에도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대외협력실장입니다.
<2020-11-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리를 폄훼하지 말라!
친일문인 김동인 기리는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 열려… 한국 문단의 역사정의를 기다리며
매년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10월이 되면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기념식에 대해 논란이 반복된다. 문학상을 제정해서 기념하는 이유는 미당 서정주든 금동 김동인이든 팔봉 김기진이든 한국근현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일반민족 행위와 군사독재 모두 역사 청산이 좌절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특정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특정 인물을 기리고 기념한다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감이 되기보단 오히려 본받지 말아야 할 부분이 훨씬 많다면 기념식이든 문학상이든 폐지해야 마땅하다. ‘춘원(이광수) 문학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같은 논리로 중앙일보가 제정해 추진하던 ‘미당문학상’이 그런 논란 속에 지난해 폐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동인문학상’은 김동인의 친일행적이 밝혀지지 않았던 시절, 다시 말해 역사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1955년에 <사상계>에서 처음 제정해 이듬해부터 기념했다. 경영난으로 중단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87년부터 조선일보가 이어 받아서 ‘동인문학상’을 기념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동인은 과연 이광수나 서정주, 김기진처럼 친일반민족행위에 가담한 적이 없는 인물일까?
그동안 김동인은 한국 사회 최초로 문예 동인지 <창조>를 발간한 인물로, 그리고 근대문학의 형식을 열어젖힌 인물로 높게 평가돼 왔다. 실제로 <창조> 창간호에 발표된 ‘약한 자의 슬픔’은 이광수의 ‘무정’처럼 3인칭 ‘그’의 사용, 과거형 서술, 구어체 등 근대문학의 형식을 싹틔운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자연주의 문예사조를 처음으로 한국 문단에 퍼뜨린 인물로 추앙받아 왔다.
그러나 ‘동인문학상’ 시상의 적절성 여부를 논하면서 문예비평가 늘샘(김상천)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렇게 갈파한 적이 있다.
“1917년에 부친이 별세하고 쌀 3천석에 해당하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평양에서 제일 큰 집에 산 그는 조선의 귀공자나 다름없었다. 당시는 나라를 빼앗기고 그 울분을 삭이지 못해 일제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만세로써 저항하던 시대로, 유관순처럼 나이 어린 소녀들조차 분연히 일어났던 민족정신 대고취의 시기였다. 그러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일본을 산보하듯 드나들며 기생오입을 밥 먹듯이 하고 돌아다닌 그는 남부러울 게 없는 조선의 방탕 부르주아 문사였다. 그런 그였으니 호가 또한 ‘금동琴童’이었거니와, 그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호승심이 있었다. 그가 천재 작가 이광수와 호적수 염상섭을 그토록 의식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 김상천(2020) ‘야비한 자연주의 – 김동인론’ 4쪽.
19살의 나이에 <창조>를 자비로 발간할 정도였으니 김동인의 재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김동인의 재력은 1927-1929년 사이 사업 실패로 급격히 경제적으로 추락한다. 그 시기 김동인이 발표한 작품들 ‘송동이’, ‘죽음’, ‘구두’, ‘거지’는 하나같이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내맡긴 약자의 삶, 바로 먼지처럼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묘사이다.

10월 31일 열린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연구자 김춘규(서울대)는 그런 작품 경향을 이렇게 분석했다.
“점차 약자로 변모해 가던 1930년 초중반에서 진정으로 약자가 되어버린 이 순간, 그가 자신을 의탁하기 위해 달려간 장소가 조선총독부라는 것은 일제에 대한 그의 인식 변화를 극단적으로 반영한다. 당시 김동인이 여러 모로 궁지에 몰렸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가 도움을 청하고 의탁할 수 있는 장소가 일본 정부밖에 없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그의 선택은 강자-약자라는 이분법적 세계의 질서 속에서 과거 자신이 추구하던 강자의 모습을 당시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동인은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의 대제국을 건설하자는 일제의 이상으로부터 한때 자신이 꿈꾸던 강자의 환영을 발견했던 것이다.” – 김춘규(2020) ‘김동인 소설의 변화와 제국주의 욕망의 동일화 과정’ 14쪽.
김동인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친일의 길을 걸었던 시기는 중일전쟁(1937) 이후이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1938. 2. 4)에 기고한 ‘국기'(國旗)라는 산문에서 일장기를 극찬했다. 나아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된 단일민족이며 일본신민”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겠다”고 다짐하며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인류 역사를 재건하는 성전(聖戰)”으로 미화했다(김동인(1942) ‘감격과 긴장’ <매일신보> 1942. 1. 23).
계속해서 김동인은 ‘문학인의 책무’가 크고 중대하다며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열쇠를 잡았노라는 자각과 긍지 아래서 우리의 무기인 문필을 가장 효과 있게 이용할 것”을 역설했다(김동인(1944). ‘총동원 태세로-決戰下 文壇人의 決意’ <매일신보> 1944. 1. 1).
한 마디로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문필보국으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논리였다. 강자인 제국주의 논리를 내면화함으로써 김동인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친일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다. 이런 변절과 전향의 배반된 모습을 두고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문학평론가 김영삼(전남대)은 이렇게 분석했다.
“전쟁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조선을 대륙병참기지의 중핵적 지위로 격상하고 대동아공영권에서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서 지도적 지위에 놓게 한다는 제국주의의 권력 작동 방식은 ‘식민지적 전향자’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편승하면서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하기에 충분히 달콤한 인식적 유혹이었을 것이다. 김동인은 이에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종족적 차이를 거세하고 동아시아제국 건설이라는 파시즘적인 국가주의 동일화의 전략에 근거하여 ‘단일민족’임을 선언한 것이다.” – 김영삼(2020) ‘제국과 친일의 생명정치 논리’ 22쪽.
근대문학의 형식을 개척한 선구적 인물로 한국문단사에선 김동인을 단연 높게 평가한다. 그의 자연주의 문예사조가 일본 명치학원 유학 시절 스승 시마자키 도손의 작품과 그의 영향 하에 형성된 것임은 독립연구자 늘샘(김상천)의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다. 카프의 수장 임화의 표현대로 한국 근대 문학이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이식문학’이었음을 김동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놀랍게도 김동인은 해방되던 날 오전에,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더 친일적인 문인단체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던 인물이다. 사회적 약자를 경멸했던 문인으로 자신이 설정한 세계관과 강자의 논리 앞에 약자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의 손짓을 보이질 않았다.
어떤 측면에선 당대 지식인들 세계에서 지배적 세계관으로 통용된 사회적 진화론에 기초해 있었다. 다시 말해 강자의 논리를 자신의 인격 속으로 내면화한 인물로 그 자신의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시킨 작가였다.
그런 연유로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전신)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선 김동인을 친일문인 42명의 명단에 수록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김동인은 무려 4쪽에 걸쳐 그 반민족 행위의 죄악상이 서술돼 나온다.
이렇듯 비루한 김동인의 작품세계를 두고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임명선(<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은 “소설 속 하층계급의 인물의 존재가 김동인이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함을 반증한다면 여성 인물들은 김동인 자신의 뒤틀리고 문제적인 남성성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건강한 문학적 감수성을 위해서라도 ‘동인문학상’은 ‘미당문학상’처럼 폐지돼야 한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창간 주체인 ‘대정친목회’가 친일반민족 단체였음을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진정한 1등 신문은 한국 사회의 귀감이 되는 신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족을 배반한 자를 기리는 문학상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 필요치 않다.
<2020-11-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주장] ‘동인문학상’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
민족의식 파괴하는 ‘식민 잔재’… 치욕의 ‘역사 청산’ 훼방
日, ‘을사오적’ 신변 보호에 만전… 형법 조문도 사라져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친일청산 대상 ‘반민족’에 국한
해방 후 일제강점기 유·무형 일제 잔재 허무는데 실패
친일 인맥, 각계 주류로 행세하며 과거 청산 저지·방해
■ 왜 일제 잔재 청산인가
현실정치에 몸담은 인사들은 ‘토착왜구’라는 비판에도 자신들 기득권을 지키는데 너무나 의연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그런데 우리의 ‘일제 잔재’ 청산 논의는 흔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나치부역자를 처단한 사례와 비교한다. 나치에 의해 몇 해의 점령당한 프랑스는 부역자들 처단에 단호하고 철저했다. 우리는 몇 배나 긴 식민지배를 당하고 “왜 이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냐”고 개탄하기 급급하다. 식민지배가 길어질수록 부역자는 이에 비례하여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런 만큼 저들을 처단하고 청산하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1940년 당시 프랑스는 국민국가가 확립된 지 오래된 상태였다. 적국과 협력하는 반국가행위에 대한 형법상의 엄격한 처벌조항은 이미 완비하였다. 반면에 을사늑약 당시 대한제국은 근대적인 국민국가가 아니었다. 황제를 배반한 대신과 지도급 인사들은 ‘역적’으로 비판을 받았을 뿐이다. 이른바 ‘을사오적’에 대한 처벌은 의열투쟁 일환으로 암살시도가 전부였다. 통감부 설치 이래 일제는 이들 신변 보호에 만전을 기울이는 가운데 처벌할 형법 조문은 깡그리 사라졌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친일청산이 ‘반국가’ 아닌 ‘반민족’ 행위를 대상으로 삼은 이유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 남북분단과 6·25전쟁은 일제 잔재의 가장 커다란 생채기이다
해방 이후 독립국가건설론은 이념적인 대립과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에 의하여 한민족이 바라는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았다. 이념적인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다수의 힘’에 의하여 역사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강화된 냉전체제는 결국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각각 분단국가 수립하고 말았다. 이념적인 격화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6·25전쟁으로 귀결되었다.
소련 지원으로 군사력을 키운 북한은 새벽에 남침을 개시하여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단숨에 점령하였다. 국군은 병력과 열악한 무기 등으로 한 달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밀려 최후 방어선을 구축했다. 미국 주도로 개최된 유엔 안전보상이사회는 유엔군 파병을 결정하였다.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성공하여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군이 개입하여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는 순간까지 전투는 계속되었다. 전쟁으로 인명은 약 450만 명, 남한의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되는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을 초래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은 인적·물적 손실과 더불어 불신감을 증폭시켜 적대감을 고조시켰다.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 지난 한반도는 영구적인 평화가 아닌 휴전 상태에 있다. 상호 신뢰에 의한 평화공존론 모색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서 비롯된다.

■ 10월 유신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총화이다
해방 이후 일제 잔재 청산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인적·물적 토대를 허무는데 실패했다. 반민족적·반민주적 지배구조나 의식은 온전히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 인맥은 각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면서 과거 청산을 저지하는 방해꾼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노예교육과 우민화 정책으로 한국인에게 노예의식과 패배주의를 만연시켰다. 민족자존의 의식이나 의지는 원천 봉쇄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폭압적인 관료제와 권위주의적인 법령체계로 헌병과 경찰 등은 한국인들에게 오직 순응과 복종만을 강요했다. 일제 잔재 중 가장 구조적이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큰 분야는 바로 법과 제도 의식 등이었다. 유신체제는 사상과 양심, 신체의 자유를 유린하는 가운데 획일적이고 억압적으로 사회를 통제하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 시행된 각종의 국가주의적 시책은 식민지배정책을 답습한 결과였다. ‘황국신민의 서사’와 ‘교육칙어’를 모방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한 반상회나 치안유지에 관한 여러 법령 등은 이를 방증한다. 10월 유신은 식민지 지배구조의 재현이자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총화였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미명하에.

■ 민족정체성을 일깨우는 가치기준이다
강제병합 110주년과 광복 75주년을 맞는 올해는 우리 근현대사를 성찰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야만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일본은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보다 오히려 정당화에 급급하다. 양심적인 세계인들이 공분하는 현실에도 전혀 반성하려는 기미조차 찾을 수 없다. 급속히 우경화하는 현실은
결코 간과해서 안 된다. 일제 잔재는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고착되는 경향마저 보인다. 나아가 민족의 의식세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등 우려를 자아낸다.
우리 사회에는 유·무형의 식민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언어·문화·교육·생활 등 일상사 전반에 걸쳐 민족의 의식세계까지 지배한다. 일제가 식민지배하면서 남겨놓은 부정적 유산을 너무 흔히 볼 수 있다.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일상사에 언저리에 잔존하는 현실이다. 황국신민서사탑·관청건물 등과 같은 건축조형물 형태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무형의 형태이다.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으로 문화관광부는 ‘일제문화잔재 지도 만들기’를 추진했다. 이는 식민지배 가해자인 일본의 위정자와 극우세력에 의해 역사 왜곡과 우경화가 노골화하는 상황에 대한 자구책 일환이었다. 우리 내부 자성에 의한 ‘자아 찾기’라는 사실에서 크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해방 75년 동안 우리는 이를 청산·극복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친일파 청산을 위한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보수정권’ 출현으로 중단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일시적인 활동으로 과거 인적 청산을 위한 자료 수집에도 힘겨운 기간이었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정부가 하지 못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여 연구자는 물론 사회운동가 등에게 잘못된 인물 평가를 되새기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이리하여 국가기관과 민간단체의 긴밀한 협조도 물론 정부를 비롯한 범시민적인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각인시켰다.

■ 올바른 정신적인 가치기준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게 인식하는 분위기이다. 과거는 주목되지 않는 하찮은 것이나 현실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굴절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와 미래는 일상사와 관련하여 분명 중요하다. 올바른 현실 인식과 활동은 과거 잘못된 원인부터 밝혀내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특히 과거의 것들이 고쳐지지 않고 현실에 남아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왜색은 시대와 상관없이 일본의 영향이 짙게 밴 문화 경향을 뜻한다. 저급하고 천박한 일본의 문화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임에 분명하다. 명백히 일제 잔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일제 잔재는 식민지시기에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로 벌인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식민지배구조의 유제라는 측면에서 엄연히 왜색문화와 차별성을 지닌다.
일제는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영속화시키기 위해 한민족 삶의 깊숙한 지배논리를 강요하고 합리화했다. 일본과 한국은 ‘과거청산’이라는 관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일본은 종전 이후 군국주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반면 한국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 일본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나 의식과 생활적인 면에서는 한창 거리가 있다. 광적인 ‘집단주의’는 이웃 국가에 대한 비수로 성큼 다가온다. 한국은 민주화의 역동성에서는 일본보다 앞서고 있으나 ‘내부 분열’이 심각하다.
일제 잔재 청산은 올바른 정신적인 가치기준을 세우는 지름길이다. 이미 친일세력은 대부분 죽었으며 법적인 책임도 소멸된 상태이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진상규명을 통해 학문적·역사적인 과거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향한 힘찬 진군에 동참할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남북통일을 향한 지렛대로 삼자
한국사회 발전상을 흔히들 ‘한강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현실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조건이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진전된 정치·사회적인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한국문화의 세계화 등은 한국인의 저력과 위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와 과정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탄하게 진전되지 않았다. 많은 진통과 갈등이 수반되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역할’에 충실하였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든든한 에너지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훌쩍 75년이나 지났다. 거족적인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1년을 맞았다. 그때 함성이 우리 귀에 메아리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가슴이 뭉클하다. 그런데 외형과 달리 이면에는 잘못된 과거사 생채기도 주변을 기웃거린다. 바로 식민지배가 남긴 일제 잔재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장애물로 공존하는 현실이다. 이 중에서 가장 가슴 쓰린 현실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라는 엄연한 사실에 누구나 공감하는 공통분모이다.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김형목 사단법인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2020-11-08> 경기일보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임종국선생 기념사업회는 제14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를, 문화부문 수상자로 박시백 화백을 각각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강 교수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통제와 공안, 국가폭력 등을 주제로 연구활동을 펼쳐왔다.
사업회는 강 교수의 책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를 수상 저서로 선정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비롯한 한일 극우연합세력의 역사부정론을 정면으로 논파했다”고 평가했다.
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한 박 화백은 국내외 독립운동 현장답사와 자료수집을 통해 항일투쟁의 역사를 7권짜리 `35년’으로 펴냈다.
사업회 측은 “국내외에서 역사 왜곡이 자행되고 있는 시점에 창작을 통해 역사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35년’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임종국(1929∼1989) 선생은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는 등 친일문제 연구와 과거사 청산에 앞장선 인물이다.
시상식은 오는 9일 오후 6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며 페이스북에서 실시간 중계된다.
<2020-11-06> 연합뉴스
☞기사원문: 14회 임종국상 수상자에 강성현 교수·박시백 화백
※관련기사
☞한겨레: ‘임종국상’ 강성현 교수·박시백 화백
☞서울신문: 올해 ‘임종국상’에 강성현 교수, 박시백 화백
시민단체 철거요청에 엄태준 이천시장 수용

경기 이천시의 시민단체가 관내 설봉공원에 있는 이인직‚ 서정주 등 친일행적 문인 2명의 문학비 철거에 나섰다.
앞서 엄태준 이천시장은 “친일 행적 문인들의 문학비를 철거해 달라는 시민들의 뜻에 따라 하루 빨리 친일 문학비를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이천시는 11월 친일 행적 문인들의 문학비 2개를 별도로 제작한 표지석과 함께 땅에 묻기로 결정했다.
관내 시민사회단체인 미래이천시민연대, 이천시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천역사문화연구회, 이천거북놀이보존회는 지난 9일 설봉공원 문학동산 내에 자리한 이인직 문학비 앞에서 친일작가 문학비 철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연대 황인천 공동의장은 “이천의 정기서린 명산 설봉산 자락에 자리한 문학동산에 반민족 친일파 이인직, 서정주 기념비가 있다는 것은 이천은 물론 전 민족적 차원의 수치”라며 “하루 속히 철거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4개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하여 시민연대 김동승 공동의장은 퍼포먼스가 끝난 뒤 진행된 임시총회에서 이천시장에게 친일작가 문학비 철거 요청서를 전달하며 이천시민의 친일잔재 청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표지석에는 이들의 친일 행적을 기록하여 설봉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예정이다.
설봉공원 문학동산에는 이육사 기념비, 윤동주 시비를 비롯해 문인 10여명의 작품비가 설치돼 있다.
이인직, 서정주는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2020-11-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이천시, 이인직·서정주 친일 행적 문학비 철거
[팟빵-바로듣기] [다운로드]
☞ (11.10) ‘내역사’ 시즌 5: 18화 “해방 후 3년” _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_여운형편
☞ (10.27) ‘내역사’ 시즌 5: 17화 2부 “해방후 우리군은 숙군과정을 통해 어떻게 정치군인이 되었는가?
☞ (10.20) ‘내역사’ 시즌 5: 17화 1부: “해방후 우리군은 어떻게 창설되었나?
☞ (10.13)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2부
☞ (10.09)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_한글날 특집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지켰나?’
☞ (10.06)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주최 : #근현대사기념관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 : #강북구 ,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개회식 / 기조발제 “독립전쟁과 신흥무관학교의 역할”
-개회사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환영식 : 박겸수(강북구청장)
-기조발제 : 서중석 (성균대학교 명예교수)
[제1주제] 1910년대 유교계의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
-발표자 : 서동일(국가보훈처) / 토론자 : 박성순(단국대학교)
[제2주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 현황 분석과 독립운동
발표자 : 이용창(민족문제연구소) / 토론자 : 황민호(숭실대학교)
[제3주제] 일본의 ‘간도 출병’ 배경 검토
발표자 : 한성민(대전대학교)/ 토론자 : 이명종(강릉 원주대학교)
[제4주제] 청산리 전역과 절반의 작전
발표자 : 신효승(동북아역사재단) / 토론자 : 이승희(동덕여자대학교)
[종합토론] 발표 및 토론자 전원
좌장 : 윤경로(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아이들은 나의 스승 212]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아이들, 이렇게 길러진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요? 이득은커녕 손해 볼 게 뻔한 일을 누가 하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참 영악하다. 워낙 이재에 밝아 본능적으로 이해관계를 따진다. 이익이 된다고 판단이 서면 앞장서 달려들지만, 손해 볼 일은 애초 거들떠보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요즘 아이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고.
교과 수업에서든, 비교과 활동에서든,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주판부터 튕기는 그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그들이 가장 어처구니 없어 하는 사자성어가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수업 시간 모둠 활동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모둠을 편성할 때면 다른 친구들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자신이 남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몇몇 아이들은 대놓고 모둠 활동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봉사 활동도, 동아리 활동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활동 특성상 자발성이 핵심인데, 오히려 교육과정에 연간 이수 시간을 지정해 강제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취지와는 달리 학교마다 대부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들은 십수 년째 ‘이(利)’와 ‘의(義)’가 충돌할 때 ‘이(利)’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은연중에 깨달아왔다. 혹 시험에 출제되었을 때야 당연히 ‘의(義)’를 고를 테지만, 일상 속에서는 조금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의(義)’를 좇으면 득 될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의보다 이를 따르는 아이들
국가의 교육 목표와 학교의 존재 이유는 수만 가지일 테지만, 교사인 내게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정의로운 인간의 육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회화도 좋고 지식의 전달과 전통문화의 계승도 좋지만, 모든 영역에서 발군일지언정 정의롭지 않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여기서 ‘정의’란 인식이 아닌 행동의 영역이다. 적어도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의 옳고 그름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옳다는 걸 알지만 실천하지 않고, 잘못된 짓임을 빤히 알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도덕 교과 시험 성적만 놓고 보면 아이들 대부분은 성인군자다. 성취 기준과 성취 수준으로 해석하면,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올곧은 시민임이 분명하다. 교과의 학습 목표를 넘어 학교 교육의 목표가 달성된 셈이다. 다른 교과라고 다를까.
그런데도 학교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절도나 폭력 사건이 숱하게 벌어지며, 교권 침해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 교사 앞에서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지만, SNS에다가는 온갖 욕지거리를 쏟아낸다. 그들끼리 센 척하며 서열 짓는 건 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를 바도 없다.
지금껏 우리 교육은 겉과 속이 다른 아이들을 양산해왔는지도 모른다. 핑곗거리 찾아봐야 소용없다. 그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교육의 한계다. 아이들에게 교과서 속 내용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교사의 훈화는 부모의 잔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 교육이 정의로운 인간을 육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온존한 학벌 구조와 입시 제도 탓이 크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엘리트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 그것이 제도의 문제라면,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들의 심성을 검게 물들이는 관행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제도는 토론을 거쳐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오랜 관행은 어디서부터 손써야 할지 난감하다. 관행은 왜곡된 역사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들은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까
“승자는 진실을 추궁당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이다. 극악한 나치의 만행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경구인데도, 아이들은 단지 괴벨스가 문제일 뿐, 그의 말에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의 나치 버전일 뿐이라는 거다.
그것이 역사 해석의 맹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정의를 조롱하는 망언이라는 진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수업 때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재차 강조하지만, 이를 가슴에 새기는 아이는 거의 없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기에는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 너무 강퍅하다.
누군가 우리 현대사를 두고 역사가 아닌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고 파란만장했다는 뜻이다. 솔직해지자면,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뒤틀린 역사라는 의미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한마디로 ‘악’이 ‘선’을 이긴 역사라는 거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까. 잘못된 과거사를 거울삼아 ‘선’이 ‘악’을 몰아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건, 교과서 학습 목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사필귀정’은 ‘견리사의’만큼이나 황당해하는 사자성어일 뿐이다.
요즘 아이들을 단군 이래 가장 학력이 높은 세대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감수성은 아마도 가장 낮은 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절대시하는 공정이란, 특권 의식에 반대하고 기회의 평등만을 의미할 뿐, 타인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정의감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물론 영악한 아이들만 탓할 순 없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며, 나아가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를 닮는 법이다. 아이들은 부모 세대의 공통된 정서와 우리 사회에 온존한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일 뿐이다. 그들에 대한 일말의 서운함을 토로하다 여기까지 왔다.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이번 주 내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삶’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의 이름과 희생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저 수험용 지식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눈치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다시 아이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여러 전태일 열사 관련 자료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어이없는 뉴스를 보게 됐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후손이, 지난 8.15 기념식 행사 도중 그를 민족반역자라고 칭한 김원웅 광복회장을 검찰에 고소했다는 기사다.
지난 8일, 안익태의 친조카인 미국 국적의 데이비드 안씨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안익태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자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 이유를 밝혔다. 나아가 광복회의 공식 입장인 만큼 광복회에 대해서도 거액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안익태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맞다. 1940년대 초 나치 독일에서 <일본 축전곡>을 연주했고,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는 <만주 환상곡>과 <만주 축전곡> 을 작곡하는 등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음악 활동에 두루 참여했다.
그는 나치가 패망하자 도망치듯 스페인으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했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이다. 미국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려 했으나 나치에 적극 협력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제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례도 있다. 이쯤 되면 억울할 것 하나 없는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맞다. 대체 무엇이 허위사실 유포고, 사자 명예 훼손일까.
김원웅 광복회장이 언급한 내용은 모두 이미 드러난 역사적 사실이거나 정황상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백 보 양보해서 일부 쟁점이 남아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제국주의에 협력하고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이마저 인정할 수 없다면, 광복회장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옳다.

우리의 고민은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 역사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표절 시비를 떠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작곡한 곡이 해방된 조국의 애국가로 채택된 참담한 역사에 대해 성찰 중이다. 광복회장의 말마따나,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음악 교과서에 안익태는 물론 현제명, 홍난파 등 익숙한 이름들이 모두 지워졌다.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이유에서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희망의 나라로>나 <봉선화>는 음악 시험의 단골 메뉴였다. 나이 30대 중반 정도만 돼도 공감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러잖아도 영악한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욕보이는 현실은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는커녕 우리 역사에 대한 환멸을 부르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광복회장이 기소된다면 우리 역사의 더없는 치욕이 될 것이다.
역사 교사로서 아이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교육의 지리멸렬함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난맥상에 더 큰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필이면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 즈음이라 더더욱 얄궂다.
<2020-15-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안익태 후손이 광복회장 고소?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
장우성 화백,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사전 이름 올라
현충사사무소, 지난 6월 표준영정 해제 심사 요청
유족 탄원서 제출 “친일 매도는 억울”
[앵커]
화폐나 교과서에 실리는 정부 공인 초상화를 표준영정이라고 하죠.
표준영정 1호 이순신 장군 초상화가 3번째 지정 해제 심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표준 영정, 나아가 화폐 도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을 그린 장우성 화백은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주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했고, 관제 미술전을 위해 일제가 전쟁의 신으로 여긴 부동명왕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과거 두 차례 정부 심의위는 각각 친일 여부는 규정상 검토 대상이 아니고, 복식 오류는 단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반려했습니다.
현충사사무소는 지난 6월 세 번째 신청에서 친일과 복식 오류 모두를 심사 요청했습니다.
[임오경 의원 / 지난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국감 : 3회에 걸쳐 지정해제를 요청한 바도 있습니다. 소장처에서 요청하는 표준영정 지정 해제 요구 10년 동안 교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고….]
문체부는 심의 규정을 바꾸고 심의 분야를 확대해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박양우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영정동상심의위에) 근대사, 현대사 관계되는 분들도 보강을 했고요. 복식 측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를 하도록 일단 제도는 갖춰놨다….]
장 화백 유족은 친일 매도는 억울하다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당시 미술계 입문 통로였고, 마귀를 쫓는 불교 신으로서 부동명왕을 그렸지만 결국 출품도 못 했다는 겁니다.
[장학구 / 장우성 화백 아들 : (일제) 너희가 참 마귀다 이런 뜻을 품은 내 뜻을 나 혼자나 알지 누가 알겠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위당 (정인보) 선생의 제자가 됐고 함석헌 선생을 비롯한, 장기려 박사 이런 분하고 75년 동안 우정을 나눴습니다.]
표준영정이 바뀌면 교과서는 물론 백 원 동전 속 영정도 바뀌게 됩니다.
표준영정 98점 가운데 작가의 친일 논란이 있는 것은 14점에 이릅니다.
특히 2009년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는 김은호, 김기창 화백의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이들이 그린 표준영정이 담긴 지폐 세 종류를 바꾸려면 4천7백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참에 화폐 도안을 독립운동가 영정으로 바꾸자, 표준영정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면서 논란은 확산하고 있습니다.
YTN 이승은[[email protected]]입니다.
<2020-11-15> YTN
☞기사원문: 세 번째 심의…백 원 동전 이순신 장군 영정 바뀌나
“항일군가 우리 군가로 지정, 친일잔재 군가는 삭제를”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인 이용빈 의원(광주 광산구갑)은 16일 서욱 국방부장관을 만나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에 대해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의원은 서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군 공항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시·도지사와 정치권이 지역과 주민의 상생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데는 뜻을 같이 했다”며 “서 장관이 군 공항 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의원은 서 장관이 광주 출신이자 광산구에 연고가 있는 만큼, 더욱 애정을 갖고 광주 군 공항 이전을 위해 애써 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 의원은 서 장관에게 광복군이 우리 국군의 뿌리인 만큼, 광복군의 호국정신을 선양할 수 있도록 광복군동지회에 대한 예우를 잘 이어가고 친일잔재를 청산하는데도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의원은 그 일환으로 광복군가를 비롯한 항일군가를 우리 군 공식 군가로 즐겨 부르도록 지정하고 친일잔재인 군가를 삭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안했다.
국방부 청사 현관에 걸렸다가 철거된 김기창의 자기표절 그림 `적영’에 대해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미술 작품의 표절임을 알릴 수 있도록 민족문제연구소 전시관에 기증 또는 영구 전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대해 서 장관은 “확답은 할 수 없으나 잘 검토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11-17> 뉴시스
☞기사원문: 이용빈의원, 서욱 국방장관에 “군공항 이전 적극 추진 요청”
※관련기사
☞아시아경제: 이용빈 의원, 서욱 국방부장관에 ‘군공항 이전 문제’ 노력 요청
☞광주매일신문: 이용빈, 국방부장관에 “군공항 이전 적극 나서달라”
[팟빵-바로듣기] [다운로드]
☞ (11.17) ‘내역사’ 시즌 5: 19화 “해방 후 3년” _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_박헌영편
☞ (11.10) ‘내역사’ 시즌 5: 18화 “해방 후 3년” _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_여운형편
☞ (10.27) ‘내역사’ 시즌 5: 17화 2부 “해방후 우리군은 숙군과정을 통해 어떻게 정치군인이 되었는가?
☞ (10.20) ‘내역사’ 시즌 5: 17화 1부: “해방후 우리군은 어떻게 창설되었나?
☞ (10.13)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2부
☞ (10.09)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_한글날 특집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지켰나?’
☞ (10.06)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