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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본 ‘실제 군함도’, 영화보다 끔찍해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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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본 ‘실제 군함도’, 영화보다 끔찍해 볼 수가 없다

익명 (미확인) | 금, 2017/07/28- 21:17

[사극으로 역사읽기] 범죄현장을 유네스코에 등재한 일본의 뻔뻔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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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군함도> 배경인 일본 하시마. 일본의 신청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서양이 동양으로 밀려오던 서세동점 시대, 일본은 특이하게도 서양 편에 서서 동양을 침략하며 산업혁명을 이룩했다. 그런 산업혁명 현장이라는 이유로, 미쓰비시 그룹의 해저탄광이 있었던 하시마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섬을 세계유산으로 만든 일본의 행동은 뻔뻔스럽고도 이상하다. 일본 산업혁명의 증빙으로 내놓았지만, 이곳은 그런 의의를 덮고도 남을 만한 범죄 현장이요 범죄 증거물이다. 전쟁 수행을 위한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인과 중국인들한테 인간 이하의 강제노동을 강요한 곳이다. 그래서 숨겨도 시원찮을 곳을 세계유산이랍시고 내놓았으니, 일본이 제정신을 가진 나라인지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미쓰비시는 국가나 공공단체가 아니다. 이런 기업에 의한 강제노동을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노동으로 볼 수 있을까? 당연하다. 미쓰비시는 일본 정부 및 조선총독부와의 협력 속에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 모집했고, 자사의 이윤 창출 못지않게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 그들을 혹사시켰다. 따라서 미쓰비시의 행위는 곧 일본 정부의 행위였다.

행정법 이론에서도 그렇다. 국가나 공공단체뿐 아니라, 이들의 위탁을 받고 공무를 수행하는 사기업이나 사인(개인)도 행정주체에 포함된다. 공무수탁사인으로 불리는 이런 기업 및 개인의 행위에 대해서도 국가나 공공단체가 책임을 진다는 게 일반적 이론이다. 일례로, 서울대 법대 김동희 교수의 <행정법 I>에 이런 대목이 있다.

“특정 행정작용의 수행을 위하여 관계법상 사인에게 일정한 공권력이 부여되는 경우가 있다. ······ 이 경우, 사기업 또는 사인은 자신의 명의로 공법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한도 내에서 행정주체의 지위에 서게 된다고 본다.”

미쓰비시는 강제동원이라는 측면에서 일본 정부의 대리인이자 행정주체였다. 그렇게 미쓰비시가 일본 국가를 대신해서 강제노동을 강요한 범죄 현장을 당당하게 세계유산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 섬

부산 아래에 규슈라는 큰 섬이 있다. 그 섬 서북쪽에 나가사키가 있다. 미군이 원폭을 투하한 곳이다. 그 나가사키 앞바다에 하시마 즉 군함도가 떠 있다. 동서 160미터, 남북 480미터인 섬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김영환의 ‘군함도라 불리는 섬에 가다’란 글이 있다. 하시마가 군함도라 불린 이유를 묘사하는 대목이 이 글에 있다.

“하시마의 좁은 땅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세웠다. 그 뒤로도 10층 아파트를 비롯하여 고층 건물들이 계속 지어졌고,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다. 이 작은 섬에 학교, 병원, 절, 목욕탕을 비롯하여 파친코와 영화관까지 있었다 하니, 바다에 도시 하나가 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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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위키커먼스

영화 <군함도>에 묘사된 이 섬은 한마디로 지옥이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다 밑 탄광에서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캔다.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누운 채 일을 한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비위생적인 조건에서 생활한다. 거기다가 총칼의 감시까지 항상 받는다.

영화 속에는 과장된 장면들이 없지 않지만, 1943년~1945년 이곳으로 끌려간 조선인 500~800명(추정치)은 생지옥과 다름없는 속에서 목숨을 부지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노기 카오리의 ‘지옥섬 하시마의 하루’란 글이 있다. 그는 탄광 작업환경을 이렇게 기술했다.

“해저탄광은 승강기를 타고 바다 속 깊이 한없이 내려가야 했다. ······ 하강 속도가 너무나 빨라 온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 지하 수백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탄을 모으고 올려 보내는 넓은 공간이 있고, 거기서 개미집처럼 퍼진 굴속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그런 열악한 데서 일을 시키면서도. 미쓰비시는 식사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 역시 물론이었다. ‘지옥섬 하시마의 하루’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이다.

“노무 관리자는 조선인들의 감기를 병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쉬고 싶다고 말하면 몽둥이로 때렸다. 지나가는 갱부들이 한 대씩 때리도록 전봇대에 묶어두기도 했다.”

주거환경도 말이 아니었다. 한 사람당 0.5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서 7~8명이 함께 기거해야 했다.

“조선인이 수용된 협소한 방은 바람이 통하지도 않고 햇빛이 들지도 않았고, 파도가 거칠어지면 바닷물이 스며들어왔다. 늘 악취가 나고 습도가 높은, 너무나 비위생적인 곳이었다. ······ 밤에 눈을 붙이려고 해도 계속 땀이 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화를 능가한 하시마 섬의 인간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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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하시마에서 자행된 인간 학대는 영화를 능가했다. <군함도>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학대,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친일파 조선인의 학대와 기만을 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섬의 학대 구조는 이보다 훨씬 복잡했다. 조선인보다 훨씬 더 심한 학대를 받는 중국인들이 있었다. 미쓰비시는 중국인들을 가장 가혹한 작업장에 투입했다. ‘지옥섬 하시마의 하루’의 또 다른 대목이다.

“이들 대부분은 납치당한 농민들이었다. 이 또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합작이었다. 미쓰비시는 중국인들을 철조망으로 둘러싼 목조 2층 건물에 가둬놓고, 재향군인을 중심으로 편성한 방위대로 하여금 총을 들고 주변을 감시하게 했다. 먹을 것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 일본인 고자토 가쿠시는 일본인 갱부들이 먹다 남은 정어리 대가리와 뼈를 버린 곳에 중국인들이 모여들어 주워 먹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중국인들을 집중 학대하다 보니, 미쓰비시는 이들이 조선인들한테 접근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중 연합 폭동을 겁낸 것이다. 그래서 두 민족의 숙소를 섬의 이쪽과 저쪽에 배치하고, 양쪽 노동자들의 접촉을 철저히 금했다.

이 때문에 작업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장소가 아니면 한·중 노동자들이 접촉할 수 없었다. 극도로 열악해서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작업장에는 일본인들이 투입되지 않았으므로, 그런 곳에서만 한·중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 이하의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시켜놓고도 미쓰비시는 월급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순진한 종업원한테 “내가 월급을 저축해놓을 테니 너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악덕업주들이 있다. 미쓰비시는 그런 악덕업주였다.

“회사측은 용돈도 안 되는 월급을 주고 나머지는 고향에 송금한다고 했으나, 고향의 가족들 대부분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회사는 저축을 강요하기도 했는데, 통장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나중에 돌려주지도 않았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탈출이나 집단 저항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의 군함도 노동자들도 섬에 위장 잠입한 광복군 박무영(송중기)의 지휘 하에 무기를 들고 집단 저항을 했다.

하지만 실제의 군함도 노동자들은 그럴 힘이 없었다. 탈출을 시도한 사례는 있지만, 집단 저항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죽음을 각오해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데, 죽음을 각오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하시마에서 조선인이 반격하거나 쟁의를 일으켰다는 기록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옥섬 하시마의 하루’는 말한다. 죽음을 각오할 분노심마저 상실시킬 정도로 참혹한 지옥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시마 해저탄광은 일터가 아니라 범죄현장이었다. 일본 정부가 미쓰비시를 앞세워 아시아인들을 강제동원해 인간 이하의 노동을 강요한 범죄 현장이다. 이런 범죄 증거를 일본은 세계유산이라며 내놓았다.

일본 정부의 말처럼 하시마는 정말로 세계유산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한 인간 학대를 증명하는 세계유산이다. 그런 범죄 증거물이 나가사키 반도 앞에 둥둥 떠 있다. 은폐도 할 수 없는 확실한 범죄 물증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다. 

<2017-07-2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기록으로 본 ‘실제 군함도’, 영화보다 끔찍해 볼 수가 없다

※ 참고기사

[저널리즘]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1~9화

※ 참고영상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의 진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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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1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팟캐스트 ‘역적’ 11화 – 1부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박정희 신화의 허구 2탄”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은희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됩니다!

화, 2017/08/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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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content/uploads/2017/08/201707.pdf

수, 2017/08/0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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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1706-1

수, 2017/08/02- 16:02
78
0

미국한테만 가면 전부다 맛탱이가 가버리네

다 팔아묵고 왔네

참나…

목, 2017/08/0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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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일제강제노역 내용에 관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증폭되니, 민문연 홈페이지 해킹당했네요.

내가 가입,참여하면 무슨 사이트이든 해킹피해, 회원정보유출되길래 민문연 홈피 가입안했는데,

가입안해도 해킹피해 보는구만.

 

아무튼, 시민역사관( 식민지역사관 ) 후원하였고,  발기인 신청했습니다.

 

– 음악, 영화, 사랑, 책, 예술, 문화, 역사 를 좋아하는 단순한 한민족인 –   Mrrkgpy 7 

 

그 이석훈 맞음.  사실 돈도 없고, 여자 못사귄지 16년이 다 되어가면서도

아무튼, 나중에 내 손자 보여줄려고 발기인 신청했습니다.

 

PS – 자유게시판이라서 그런지 글 적는 뉴라이트부류 쓰레기들도 정말 많네요.

 

목, 2017/08/03- 22:14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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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다운로드]


한국 외교부의 어깃장에 강력 항의한다.


중앙일보 2017년 8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해 11월 외교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부정적 견해들을 인용한 의견서(이하 외교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과 상관없이 일본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외교부 의견서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어 피해자들과 피해 회복을 위해 싸워온 시민단체로서는 분노와 함께 절망감을 떨칠 수 없다. 지난 5년간 피해자들은 대법원이 최종 확정판결을 내리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 사이 피해 당사자 원고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확정판결이 이렇게까지 늘어진 데는 일본기업의 지연 전술이 있었다. 그러나 항간에는 한국정부가 방해하고 있어 늦어지고 있다는 강한 의혹도 돌았다. 그런데 이번 보도로 그것이 의혹이 아니라 사실임이 확인됐다. 그동안 외교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나 이제 그걸 수정해야겠다.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일을 방해했다고.

외교부 의견서를 보면서 지난 2002년 외교부가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거부하면서 내세운 ‘악명 높은’ 답변이 떠오른다. 문서를 공개했을 때 한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답변을 받아보고서 우리는 한국 외교부가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본 외무성 한국지부가 아닌가 착각했다. 외교부 의견서 역시 같은 기조에 서있다. 불리하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서라도 자국 피해자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자 국가의 의무 아닌가.

국제관계라는 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문제는 형세가 불리하거나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피해자를 위해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느냐이다. 피해자들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정 안되면 하는 척이라도 해라. 그게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 외교부는 무엇을 했나.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유골 조사와 봉환 문제를 비롯해서 노동자의 통장 반환 문제, 야스쿠니문제 등을 두고 일본정부와 씨름을 할 때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배상 판결까지 부정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인가. “이게 나라냐”라는 비난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놓고 외교부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서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국가에 의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이 피해를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모든 국가가 지켜야할 국제법의 한 원칙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위안부 피해자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피해자들에게 적용되며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자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외교적으로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이번 외교부 의견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책임회피에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교부가 지고의 가치라고 여기고 있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 역시 인권과 정의에 기초하여 재검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음하며 절규하는 피해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하에서 이들이 어떠한 경위로 동원되어 비인간적인 조건하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이 끝난 다음 어떤 과정을 거쳐 귀국했으며, 돌아가신 경우 사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유골이라도 수습해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모두 일본 정부에게 있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이러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진지하게 과거를 성찰하고 성실하게 진실을 규명해 이들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데 있다. 형식적인 법 논리를 들이대며 궁색하게 잘못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을 변명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법을 말하곤 있지만 힘의 논리만이 정의라는 법과 인권을 부정하는 인식과 다를 바 없다. 잘못된 시대, 잘못된 정부에 의해 잘못된 합의가 피해자들의 삶을 또다시 유린한다고 한다면 이를 바로 잡는 일은 이 시대에 바로 오늘 제대로 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비판의 화살이 국정을 농단한 주범들에게만 겨냥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아이히만’들에게도 그 화살이 겨눠져 있다. 외교부라고 여기서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외교부의 아이히만들이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뼈를 깎는 반성과 혁신이 없는 한, 한국 외교의 미래는 없다. 변화는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묻는다. 한국 외교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며, 관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지를. 이제 당신들이 답변할 차례다.


2017년 8월 4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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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도쿄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주최로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의 의의를 다시금 확인하고 향후 지속적인 활동을 다짐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번 집회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지가 용산으로 확정된 후 처음으로 갖는 집회로 연구소에서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 김영환 대외협력팀장, 강동민 자료팀장, 노기카오리 선임연구원 그리고 교육홍보실 오경아 영상팀원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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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행사로 준비되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해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의 인사말에 이어 이희자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의의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강동민 자료팀장이 그동안의 활동 경과와 건립지 개요, 향후 계획을 보고하자 참가자들은 감동과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이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와 과거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한일 시민들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매개로 더욱 깊은 교류를 추진해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이 집회를 개최할 때마다 사회를 보는 이가 있다. 대학생 시절부터 이 활동에 참여해온 다나카 유키 씨다. 이날도 사회를 맡은 그는 “오늘 집회는 앞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일본에서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개관 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소감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미 모금 목표액 500만 엔(약 5,080만 원)을 달성했지만 이날을 계기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자는 것이 이 집회의 취지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집회에 처음 참가한 와카타니 마사키 씨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또 열정적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려는 우리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거액의 건립기금을 쾌척하고 귀중한 자료도 기증했다. 이렇게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 이 모임은 앞으로도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활동을 추진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 노기 카오리 선임연구원

월, 2017/08/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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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가 지난 5월 15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역사 전문 팟캐스트 채널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1 ‘역적’(역사적폐청산)이 회를 거듭할수록 회원들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1부에서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이 역사적폐의 주범이 누구이고 이들의 역사쿠데타 배경과 논리가 무엇인지를 심층적으로 파헤쳐서 재미있는 입담으로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면, 2부의 ‘이게 실화냐’
에서는 매회 다양한 전문가를 초대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역사문제를 짚어주어 관심을 받고 있다.

13이제 ‘시즌 1 역적’은12화(8월 7일) 마지막 본방송과 8월 여름특집, 그리고 9월 에필로그를 끝으로 마
감하고 ‘시즌 2’를 준비할 예정이다. 앞으로 남은 시즌 1 여름 특집 방송에도 회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기를 기대한다. 팟캐스트 ‘역적’은 팟캐스트 전문채널 팟빵과 유투브, 아이튠즈에서 ‘역적’을 검색하면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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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은희 교육팀장

월, 2017/08/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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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요.

광복 80주년까지 4년 남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생존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철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영관 애국지사.

어느덧 올해 98살이지만 또렷한 말투에선 자긍심이 넘칩니다.

1944년, 만 20살에 경성사범대를 다니다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 저장성으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부대를 탈출해 가까스로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리를 마중을 왔더라고요. 저는 그 태극기를 보고 하염없이 그냥 눈물 흘리고 감격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저 태극기를 위해서 여기까지 목숨 걸고 왔구나.’]

그로부터 2년 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여생은 후대에 올곧은 저항 정신을 남기는 데 쏟자고 다짐하고 기념사업회를 세워 일하고 있지만, 갈수록 독립의 정신이 흐려지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지사로서의 삶 역시 쓸쓸히 잊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역사를 잊은 민족이나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또 역사적 사실, 역사적 팩트를 잊어버리면, 외면하면 똑같은 일이 또 되풀이된다. 이런 엄혹한 현실을 잊지 말고….]

김 지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생존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애국지사의 두상과 손발의 형상을 남기는 겁니다.

[김서경 / 작가 : 기록물을 모은다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언제 어떻게 발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계신 분들을, 다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가 기록하는 게 무척 중요할 것 같아서….]

첫 번째 주인공은 김영관 지사.

단순히 외관뿐 아니라 일생의 이야기와 품고 있는 생각들까지 모두 사료에 담을 계획입니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온 한 사람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운성 / 작가 : 모든 애환과 아픔과 가족 간의 갈등, 고통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을 같이 한번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광복 80주년까지 4년도 남지 않은 지금.

작가들은 그사이 지사 한 분이라도 더 만나 한 마디라도 더 생생하게 남기겠다는 목표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YTN 김철희입니다.

YTN 김철희 ([email protected])

<2021-09-22> YTN

☞기사원문: “더 늦기 전에”…생존 독립운동가 손발까지 영원히 남긴다

수, 2021/09/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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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 폭파의거’ 72주년을 맞아 연구소는 광복회 화성시지회(지회장 안소헌)와 서울특별시의회(의장 양준욱)의 후원으로 7월 2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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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에 앞서 이준 열사 집터 등 북촌 일대에서 ‘친일의 길, 항일의 길’이라는 주제로 회원, 시민 등 약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답사를 진행했다. 이번 답사는 권시용 연구원이 안내를 맡아 이상재 집터, 여운형 집터, 김성수 옛집, 한용운 옛집, 진단학회 사무소 터, 손병희 집터, 이병도 집터, 한상룡 옛집, 윤보선 가옥, 정독도서관, 윤덕영, 윤택영 집터 등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의거 7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함세웅 이사장과 안소헌 지회장, 임헌영 소장 등이 부민관 폭파의거의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의거 70주년을 맞아 재현한 연극 ‘정의의 폭탄’을 녹화한 16분 분량의 요약 영상을 상영하여 참가자들은 부민관 폭파 의거와 의거의 주역인 유만수, 강윤국, 조문기 세 분 독립투사의 삶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역사의 현장인 경성 부민관은 1935년 건립되어 여러 차례 명칭과 용도가 바뀌었으며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현재까지 서울시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서울시의회 양준욱 의장과 사무처의 지원으로 본 회의장을 기념식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기념식 마지막 순서에서 영화 〈군함도〉 개봉을 맞아 배우 송중기 팬연합이 모금한 식민지역사박물관 기금(500만원) 전달식이 진행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 편집부

월, 2017/08/0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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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7월 14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간 이준 열사의 순국 110주기를 맞아 오후 1시부터 종로구 안국동 덕성학원 해영회관에서 이준 열사의 집터 표석 제막식을 가졌다.
함세웅 이사장은 여는 말에서 “비록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일본의 국권 침탈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이상설・이준・이위종 세 분의 열사의 뜻을 가슴에 새긴다. 이준 열사가 살았던 110년 전의 집터가 새로 밝혀진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집터 표석을 통해 이준 열사의 독립정신이 시민에게 널리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축사에서 “이런 중요한 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하지 못한 것이 한편으로 부끄럽지만 정부가 못 하는 일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며 “2년 뒤면 건국(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데 새 정부가 취임한 만큼 독립국가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조광 국사편찬위원장도 “안국동 집터는 이준 열사가 안창호 선생 등 애국지사들과 함께 독립 자주의 염원을 실천하던 현장”이라며 “비록 열사께서는 숭고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역만리에서 순국하셨지만 우리는 열사의 애국정신을 더욱 지향해 미래의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박상임 덕성학원 재단이사장,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축사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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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우 책임연구원이 이준 열사 집터 위치 확인 및 집터 표석 제막까지의 경과를 보고하였다. 이준 선생의 사위 유자후가 쓴 <이준선생전>(동방문화사, 1947)에 나오는 이준 집의 소재지 ‘북서 안현 11통 16호’와 한성부 호적자료(1906년 6월 작성)의 ‘안국방 소안동 안현 11통 6호’를 토대로 삼아 <황성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별건곤>의 기사와 토지대장 등을 샅샅이 조사하여 이준 집터가 ‘안국동 152・153번지’이고 현재 종로구 안국동해영회관(건물 서쪽에 인접한 안국 153 베이커리카페 포함) 자리임을 밝혀냈다. 연구소는 지난 3월 관련 자료를 첨부하여 종로구청에 표석신설신청서를 제출하였고 3월 20일 열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표석분과 제1차 회의에서 ‘이준 집터’ 표석설치안이 심의 통과되면서 7월 14일 이준 열사 순국 110주기에 맞춰 표석 제막식을 열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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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유리 묘역에서 열린 이준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뒤 행사장에 도착한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인 조근송 씨(이준열사기념사업회 명예회장)는 유족을 대표해 집터 위치 확인과 표석 제작에 관여한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이준 열사가 여기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고 있어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말했다.
오후 1시 40분 기념행사를 마친 후 해영빌딩 왼편에 설치된 표석에 모여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함세웅 이사장, 임헌영 소장, 박원순 서울시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조근송 유족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하게 치러졌다.
한편 제막행사 전인 12시 30분에는 이양재 이준만국평화재단 이사장이 이준 열사 유묵과 광복군의 태극기 등 자신이 소장한 귀중한 독립운동 자료와 고서 수십 점을 행사장에 전시하고 직접 자료 설명도 해주었다.

10∷ 박광종 선임연구원

월, 2017/08/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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