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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南營洞)이라는 고약한 지명을 남기고 사라진 용산연병장 – 일본군대의 관병식과 일왕 봉도식, 친일파 장례식이 벌어지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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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南營洞)이라는 고약한 지명을 남기고 사라진 용산연병장 – 일본군대의 관병식과 일왕 봉도식, 친일파 장례식이 벌어지던 공간

익명 (미확인) | 금, 2017/07/28- 18:55

식민지 비망록 26

13일 용산연병장의 본사 주최 자전거경주회장은 오전부터 남녀노소가 답지하여 수십 대의 전차는 서로 연하여 운전을 하나 오히려 올라탈 여가 없어 도보 혹은 인력거로 나오는 사람이 남대문에서 연병장까지 발자취를 서로 연함으로 운동장 부근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다지 넓은 대경주장 주위에는 송곳 세울 틈도 없이 사람이 열 겹, 스무 겹씩 둘렀고 산비탈 언덕 아래에도 사람으로 가리워 오후 2시경에는 십만 인 이상으로 계수할 지경이라. …… 그 다음에는 전조선 제일류(第一流)의 대경주를 개시하였는데 선수는 내지인(內地人) 네 명, 조선인 엄복동 황수복의 두 명이라. 용맹 활발한 여러 선수는 평생의 용맹을 다하여 명예 있는 일등을 다투는데 활동사진은 기념으로 사진을 백이며 십만 관객이 박수 응원하는 가운데 엄복동과 황수복은 항상 다른 선수보다 앞서서 나가다가 다른 선수와 좇아옴을 보고 더
욱 용맹을 내여 넓은 경주장을 겨우 이십이 분에 스무 번을 돌아 우리가 애독자 제군과 기다리고 바라던 전조선대경주회의 명예 있는 일등은 마침내 엄복동에게 떨어지고 황수복도 삼등을 점령하여(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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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13년 4월 5일자에 수록된 ‘전조선자전거대경주회’ 안내광고. 용산연병장에서 벌어진 실제 대회일정은 1주일이 연기되었으나, 이때 ‘엄복동’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기사는 <매일신보> 1913년 4월 15일자에 수록된 것으로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니 엄복동의 자전거”라는 구전가요의 구절로 유명한 자전거대왕 엄복동(嚴福童, 1892~1952)이 처음 자신의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순간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가 공동주최한 ‘전조선자전거대경주회(全朝鮮自轉車大競走會)’는 인천, 경성, 부산, 평양의 네 곳에서 3주간에 걸쳐 연속 경기를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복동이 자전거를 탄 장소가 ‘용산연병장(龍山練兵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용산연병장은 그야말로 러일전쟁 이후 1906년 4월부터 용산지역에 대규모로 진행된 일본군영지 조성공사의 산물이다. 이 당시 가장 먼저 설치된 것은 군용도로와 연병장과 같은 기반시설이었다. 가령 남대문정거장 쪽에서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한강통(漢江通, 지금의 한강로)이 개설된 것은 1906년 6월의 일이고, 후암동 방향에서 용산기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은 1908년 12월에 공사를 마쳤다. 군사주둔지의 필수 구성요소인 연병장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08년 5월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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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연병장’의 위치가 표시된 「경성급용산」 지도 자료. <조선철도여행안내>(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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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17년 1월 9일자에 소개된 용산연병장 관병식 장면. 말 위에 앉은 이는 조선주차군사령관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육군대장.

 

1906년 4월부터 용산지역에 대규모로 진행된 일본군영지 조성공사의 산물이다. 이 당시 가장 먼저 설치된 것은 군용도로와 연병장과 같은 기반시설이었다. 가령 남대문정거장 쪽에서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한강통(漢江通, 지금의 한강로)이 개설된 것은 1906년 6월의 일이고, 후암동 방향에서 용산기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은 1908년 12월에 공사를 마쳤다. 군사주둔지의 필수 구성요소인 연병장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08년 5월에 완공되었다.
이 연병장은 본연의 군사훈련장이라는 용도 이외에도 해마다 정초 또는 천장절이나 육군기념일과 같은 ‘경축일’이 되면 조선총독이 참석한 가운데 관병식(觀兵式)이 열리는 공간으로 사용되곤 했다. 또한 1912년 여름에는 그들의 천황이 세상을 뜨자 성대한 봉도식(奉悼式)이 이곳 연병장에서 거행되었고, 이보다 약간 앞서 친일파의 거두인 일진회 회장 이용구(李容九, 1868~1912)의 장례식이 이곳에서 벌어진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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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해군 군속기사 출신 나라하라 산지에 의해 제작된 ‘봉호(鳳號)’가 용산연병장에서 비행하는 장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비행기가 등장한 것은 이때의 일이다.(<매일신보> 1913. 4. 5)

 

용산 일본군 연병장은 서울 시내의 ‘훈련원 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수의 군중이 집결하기 용이한 위치에 있었던 탓에 여러 학교 단체의 운동회가 벌어지거나 갖가지 별스러운 흥행이 벌어지는 장소로 곧잘 사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13년 4월에 일본해군 군속기사 출신의 나라하라 산지(奈良原三次, 1877~1944)가 나라하라식 4호 비행기인 ‘봉호(鳳號, 오토리호)’를 서울에서 처음 선을 보였을 때 비행장으로 사용된 곳이 용산연병장이었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일본의 제국비행협회가 파견한 오자키 유키데루(尾崎行輝, 1888~1964)의 ‘삼중호(三重號, 미에호)’ 축하 비행을 비롯하여 1917년 미국인 곡예비행사 아트 스미스(Art Smith, 1890~1926)의 비행대회도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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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찾아온 미국인 비행사 아트 스미스의 비행대회를 알리는 광고문안. 용산연병장에서 거행된 그의
비행묘기는 장차 비행사가 될 안창남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다.(<매일신보> 1917. 9. 11)

 

그런데 1915년 6월 조선에 2개 사단을 증설하여 주차군 편제를 상주군으로 전환하는 결정과 관련하여
용산병영지가 확장됨에 따라 신연병장(新練兵場,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자리 일대)이 새로 조성되는 한편 종래의 연병장 터는 야포병연대(野砲兵聯隊, 1920년 4월 병영공사 준공)가 차지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현재 이곳은 통칭 ‘캠프 코이너(Camp Coiner)’로 용산미군기지의 북쪽 끝 지역에 해당한다. 이때 연병장 터의 서쪽 대로변에 접한 구역에는 따로 시가지가 만들어졌는데, 이에 관해서는 <매일신보> 1918년 2월 27일자에 수록된 「조선부대 신영공사(朝鮮部隊 新營工事)」 제하의 기사를 통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신연병장(新練兵場)에 이전 후의 용산연병장 한강통 전차연선(漢江通 電車沿線) 전부의장(長)을 광(廣) 60간(間)에 긍(亘)하여 일대지(一帶地)를 시가지로 군사령부에서 총독부에 인도를 료(了)하고 기 후방(其 後方) 전부를 야포병연합대(野砲兵聯合隊)의 부지로7년도(1918년도)부터 병영공사에 착수하겠고(하략)

 

새로 생긴 동네는 일제가 정한 행정구역상으로는 한강통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가 이미 연병장 터로 각인되어 있었던 탓에 대개 ‘연병정(練兵町)’으로 통용되었다. 더구나 연병장이 사라진 이후에도 구용산과 신용산의 분기점에 해당하는 이곳 전차정류장의 이름은 여전히 ‘연병정’으로 사용된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매일신보???? 1924년 8월 5일자에 수록된 「경성부시(京城府市)의 행정구획정리」 제하의 기사는 그 무렵 ‘연병정’이 이미 속칭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강통 삼번지(漢江通 三番地) 부근은 속칭 연병정(練兵町)이라 하고 우(右) 칠번지각삼각정(七番地角 三角町) 등도 개(皆) 속칭이오 행정구획에 의하여 명명된 정명(町名)은 아닌 고로 금회의 정리에는 당연 우(右) 정명을 폐지하고 공식의 정명으로 변경치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나 부당국(府當局)에서 혹 지방 거주자의 의지를 존중히 하여 현재 속칭 정명으로 그대로 명명하게 될지 알지 못하나(하략)

 

이러한 상태에서 일제패망기로 접어든 1941년 10월 1일에는 경기도고시 제379호를 통해 ‘정동리(町洞里)의 명칭 및 구역’이 개정됨에 따라 종래 ‘한강통’으로만 불러왔던 용산 일대의 군영지 및 배후지역이 여러 동네로 세분화하기에 이른다. 이때의 조치에 따라 옛 한강통 3번지 일대의 땅은 ‘공식적으로’ 연병정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고, 여타 구역에는 한강통 몇 정목이니 용산정 몇 정목이니 하는 식의 명칭이 부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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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연병장은 사라졌으나 ‘연병정’은 전차정류장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사진은 <경성과 인천>(1929)에 수록된 연병정 전차분기점의 모습.

 

이로부터 불과 4년여 만에 일제가 패망했으나 그들이 부여해놓은 지명은 그대로 이 땅에 남는 상태가 되었다. 누가 봐도 ‘연병정’은 그대로 용납할 수 없는 표현이었으니만큼 1946년 10월 일본식 지명 잔재를 일소하는 차원에서 종전의 ‘연병정’을 대체하기 위한 지명이 창안되었는데, 이때 성급하게 붙여놓은 명칭이 ‘남영동(南營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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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문> 1925년 1월 13일자에 수록된 일본인 활동사진관 경룡관(京龍館)의 화재위문 답례광고. 이곳의 지번 주소는 ‘한강통 3번지’이지만 광고문안에는 ‘용산 연병정’이라고 소재지를 그대로 기재한 것이 눈에 띈다.

 

????한국지명총람 1(서울편)????(한글학회, 1966)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 “서울 남쪽에 영문(營門)이 있던 곳이라고 하여 남영동으로 개칭함”이라고만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영문’이 어느 시대에 존재했던 것인지, 아님 무슨 문헌상의 근거라도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관련 자료가 제시된 바는 없다. 그저 짧은 소견에 생각건대 남쪽에 있는 병영, 즉 남영은 일본군대의 용산 병영 그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따름이다.
이 와중에 지난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부터 존재했던 ‘남영역’은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익숙한 생활공간의 하나로 정착된 지 오래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정작 이 철도역사의 소재지는 ‘남영동’이 아니라 ‘갈월동’이라는 사실이다. 행정구역으로만 따지자면 ‘갈월역’이 되어야 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건 지금껏 남영역이었고 앞으로도 이 이름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애당초 ‘연병정’이라는 이름은 일본군대가 이 땅에 침탈의 흔적으로 남겨놓은 것이고, ‘남영동’ 이니 ‘남영역’이니 하는 것은 다시 거기에서 파생한 말이니 이래저래 꽤나 고약한 이름이 아닐수 없겠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남영동’이라는 지명은 삭제되어야 하고, 다른 적절한 명칭을 찾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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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耶蘇(문야소)

 

誰何神獨子(수하신독자)

或者起疑懷(혹자기의회)

復活登天話(부활등천화)

吾如對斷崖(오여대단애)

 

예수에게 묻다

 

뉘라서 神의 외아들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은 의심을 일으킨다네

되살아나 하늘로 올라간 이야기

내겐 낭떠러질 대하는 듯하다네.

 

<時調로 改譯>

 

神의 외아들인가 或者는 의심한다네

죽었다 되살아나 승천했다는 이야기

나에겐 낭떠러지를 대하는 듯하다네.

 

*耶蘇:  ‘예수’의  音譯語  *誰何: 누구  *獨子: 외아들  *或者:  어떤  사람  *疑懷:  의심

(疑心) *登天: 승천(昇天). 상천(上天). 하늘에 오름 *斷崖: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

 

<2018.7.24, 이우식 지음>

화, 2018/07/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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醉客之辨明

 

天生人器小(천생인기소)

爲國遂無功(위국수무공)

醉詠唯吾事(취영유오사)

於他或一忠(어타혹일충)

 

술 취한 사람의 변명

 

타고난 그 바탕 사람 그릇이 작아

나라 위해 세운 功 마침내 없지만

취해 읊음이 오로지 나의 일인 바

남에게 혹 일개 忠이 될지 모르네.

 

<時調로 改譯>

 

사람 그릇이 작아 爲國의 功은 없지만

취하여 읊조림이 오로지 나의 일인 바

행여나 다른 이에게 一忠 될지 모르네.

 

*天生: 하늘로부터 타고남. 또는 그러한 바탕 *人器: 사람의 도량과 재간(才幹).

사람의 됨됨이를 이른다 *爲國: 나라를 위함 *無功: 아무런 공로(功勞)가 없음.

 

<2018.7.24, 이우식 지음>

화, 2018/07/2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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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진 최종 결재권자 박근혜…
교육부를 행동대장으로 부린 청와대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0월27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끝내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 등 지도부의 안내를 받으며 퇴장하는 가운데, 정의당 의원단이 국정화 반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모든 것을 강행한 처음과 끝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교학사(교학사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초되면서 검정은 안 된다고, 국정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실무 총괄 책임자였던 박성민 전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조사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상조사 및 면담 대상자 모두가 ‘국정화 사건 주연’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박근혜의 청와대다.

교학사 사태 때부터 국정화 염두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는 지난 3월28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근혜·김기춘 기획, 이병기·김상률 위법·편법 강행’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국정화를 결정해 추진했고, 김 전 실장 후임인 이병기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등이 위법·부당한 수단과 각종 편법을 동원해 강행했다는 것이다.

2013년 6월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화의 ‘서막’이었다. “한탄스럽게도 학생들의 약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한다는 것은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이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육 현장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박 전 대통령의 ‘올바른 역사교육’ 지침이 내려진 뒤 같은 해 8월 청와대가 강력하게 지지한 교학사의 검정 한국사 역사교과서가 최종 검정을 통과했다. 하지만 1천 개 이상의 오류와 친일·독재 미화 등 편향적 서술로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후 현행 검정제도에 ‘깊은 회의’를 느낀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9월17일 국무회의에서 검정을 통과한 모든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전면 수정·보완할 것을 지시하면서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사실상 국정화를 지시했다.

그해 8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기춘도 박 전 대통령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김 전 실장은 10월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교과서는 이념 대결의 문제로 간단치 않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박 정권 5년 내에 좌파 척결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2014년 1월13일 새누리당과 교육부는 당정 협의를 통해 6월까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실무를 담당할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을 신설한다. 하지만 국정화 여론 조성이 뜻대로 되지 않자 2014년 7월 말로 예정된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문제, 즉 한국사 국정 전환 여부 결정을 미뤘다.

이때부터 청와대의 압박이 구체화했다. 2014년 7월 최원기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이 권성연 역사교육지원팀장과 통화하면서 국정화 결정을 종용했다. 교육부의 국정화 전환 방침은 2014년 9월 사실상 확정됐다. 이후 난항을 겪던 국정화는 2015년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국정화 결정과 실행 과정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했다.

음지에 숨은 결재 라인

0724-11

2015년 2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이병기는 국정화 정책을 앞장서 추진했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이 비서실장은 2015년 7월부터 국정화 추진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지시를 하달했다. 2015년 7월5일부터 그해 12월21일까지 17차례나 지시 사항이 내려간 것으로 나타난다. 비서실장의 지시는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이기봉 교육비서관-김한글 교육행정관을 통해 교육부로 전달됐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국정화 추진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세부 사안까지 일일이 개입했다. 교육부는 2015년 9월29일 이 비서실장이 “상황실/ 티에프(TF) 구성 운영도 필요할 것”이라는 지시 사항이 나온 직후인 10월5일 청와대 접근성이 좋은 서울 동숭동 옛 국립국제교육원에 역사교육지원티에프를 구성했다. 운영 기간 내내 거의 매일 청와대에서 회의가 열렸고, 청와대가 요구하는 각종 보고자료와 국정화 홍보자료가 생산됐다.

교육부는 청와대 지시를 받은 차관의 지시로 실국별로 학자들을 조직해 2015년 10월16일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학자 102인 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0월30일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고엽제전우회 등 친정부 단체들이 행사장에 난입했다. 이 비서실장의 지시와 10월26일 교육부가 작성한 전국역사학대회 대응 계획과 일치한 것이었다.

교육부는 2015년 10월12일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행정 예고 의견 수렴 마지막 날인 11월2일 일괄 출력물 형태로 국정화 찬성 의견서가 ‘차떼기 제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은 국정화 발표 전 마지막 순간까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마지막으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황교안 총리는 국정화 발표 대국민담화에서 기존 검정교과서 모두를 “99.9%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몰았다. 청와대는 교육부의 반대에도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로 이름지었다.

편찬 기준은 교과서 서술 내용의 범위와 방향, 쟁점에 대한 서술 지침, 편찬시 유의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2015년 9월 말 김한글 청와대 행정관은 교육부에 편찬 기준에 대한 21건의 수정 요구를 전달했다.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등 5개 특별법 관련 항목을 모두 삭제” “‘새마을운동에 대해 서술할 경우 그 성과와 한계를 서술한다’에 ‘한계’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의의로 서술한다’로 교체” 등의 요구가 담겼다. 교육부는 21건 중 18건을 편찬 기준 최종본에 반영했다.

역사과 교과용 도서 편찬심의회는 교과서 편찬에서 집필진과 함께 교과서 내용을 좌우하는 핵심 기구다. 청와대는 선정위원회 심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교수 위원 명단을 바꿔 보냈다. 16명의 편찬심의위원 중 교수 위원 7명 전원을 청와대에서 제시해 지명했지만, 형식상으론 ‘초빙’해 선정한 것처럼 보고됐다.

청와대는 집필진 선정 과정에도 부당 개입했다. 진술에 따르면 집필진 선정은 2015년 10월께 시작돼 11월까지 국편을 통해 진행됐다. 김정배 위원장이 교육부 예비 명단을 참고하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후보자 목록을 작성하면, 이를 청와대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에게 보고하고, 이를 박 대통령에게 올려 낙점을 받았다고 한다.

교과서 문구 하나까지 청와대 작품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고 관리할지 총 15가지 항목에 걸쳐 직접 꼼꼼하게 지시했다. 2016년 10월8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교과서 임시정부 법통 계승-광복 이후 수립 과정, 6·25전쟁, 이·박 대통령 평가, 북한 정권’ 등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2017년 2월2일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최종본의 문제점을 발표했다. 연대회의는 “고교 한국사만 653개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대표적 편향 사례로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는 부분이 지적됐다. 관권을 동원했음에도 역대 대선 중 15만 표라는 가장 적은 표차였는데, 이런 정황 설명이 전혀 없었다.

전정윤 기자 [email protected]

<2018-07-23> 한겨레21
☞기사원문: 대통령 기획 비서실장 감독 막 내린 국정화

※관련기사
☞한겨레21: 국정화 조연들, 굴종의 역사

☞한겨레21: 장관은 차관 탓 차관은 실장 탓

☞한겨레21: ‘○○’들을 호명해야 하는 이유

화, 2018/07/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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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訪我富僧韻

 

身貧心大富(신빈심대부)

所願若斯居(소원약사거)

起臥恒無礙(기와항무애)

休輕我草廬(휴경아초려)

 

나를 찾은 부유한 중의 詩에 화답하다

 

몸 가난하나 마음만은 大富라

이러한 생활이 바라던 바였소

일어서나 누우나 늘 無礙하니

내 오두막을 업신여기지 마오.

 

<時調로 改譯>

 

마음만은 大富라 이런 생활을 바랐소

일어서나 누우나 늘 거리낌이 없느니

스님은 내 오두막을 업신여기지 마오.

 

*大富: 큰  부자(富者)  *起臥: 일어남과  누움.  또는  일상적인  생활  상태 *無礙:

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음 *草廬:  초가(草家). 자기 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2018.7.25, 이우식 지음>

수, 2018/07/25-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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嘆政府過度福祉事業

 

昨今過福祉(작금과복지)

國債衆人憂(국채중인우)

好惰嫌勤勉(호타혐근면)

無錢晝夜遊(무전주야유)

 

政府의 정도에 지나친 복지 사업을 탄식함

 

요즘 정도에 지나친 복지 사업에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負債 걱정

나태 좋아하고 근면 썩 싫어하며

돈이 없어도 밤낮으로 놀고 있네.

 

<時調로 改譯>

 

과도한 복지 사업에 많은 이 國債 걱정

게으름을 좋아하고 근면함을 싫어하며

오호라! 돈이 없어도 밤낮 놀고 있다네.

 

*過度: 정도에 지나침  *昨今: 요즘. 또는  어제와 오늘을 아울러 이르는 말 *國債:

나랏빚 *衆人: 뭇사람 *勤勉: 부지런히 일하며 힘씀 *無錢: 돈이 없음 *晝夜: 밤낮.

 

<2018.7.25, 이우식 지음>

수, 2018/07/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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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次陶淵明四時韻

 

來花鳥界(춘래화조계)

節四靑(하절사청봉)

夜同君醉(추야동군취)

天順一(동천순일송)

 

陶淵明의 ‘사계절’ 詩에 삼가 次韻하다

 

봄이 오니 꽃들과 새들의 세계

여름철엔 온 사방 푸른 봉우리

가을밤 님과 함께 술에 취하며

겨울날엔 한 그루 솔을 따른다.

 

<時調로 改譯>

 

봄 오니 花鳥世界 여름철엔 사방 靑峯

가을밤 님과 더불어 술에 흠뻑 취하며

차가운 겨울날에는 한 그루 솔 따른다.

 

*次韻: 남이 지은 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詩를 지음. 또는 그러한 방법 *陶淵明:

중국 동진(東晉)의 詩人(365~427). 이름은 잠(潛)이고 號는 오류선생(五柳先生).

明은 자(字).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歸去來辭>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詩가 많으며,

당(唐)나라 이후 육조(六朝) 최고의 詩人이라 불린다. 외의 산문(散文) 작품에

<五柳先生傳>, <桃花源記> 따위가 있다 *四時: 사철 *花鳥: 꽃과 새를 이르는 말

*夏節:  여름철  *靑峯:  푸른  산봉우리  *秋夜:  가을밤  *冬天:  겨울날.  겨울  하늘.

 

<2018.7.26, 이우식 지음>

목, 2018/07/2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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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樓逢吝嗇友

 

四處多田宅(사처다전택)

宜當大富豪(의당대부호)

恒常先醉走(항상선취주)

衆友怨聲高(중우원성고)

 

술집에서 인색한 벗을 만나

 

사방에 많은 논밭과 집이 있으니

마땅히 大富豪라고 해야 할 텐데

언제나 먼저 술에 취해 달아나니

많은 벗님들 원망의 소리 높다네.

 

<時調로 改譯>

 

온 사방 田宅 많으니 의당 大富豪인데

언제나 가장 먼저 술에 취해 달아나니

그대의 많은 벗님들 怨聲이 썩 높다네.

 

*酒樓: 비교적 큰 규모의 술집. 주사(酒肆) *吝嗇: 재물을  아끼는 태도가 몹시

지나침. 어떤 일을 하는 데 대해 지나치게 박함 *四處: 사방(四方) *田宅: 논밭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전도(田堵) *宜當: 사물의 이치에 따라서 마땅히

*大富豪: 재산이 매우 많고 세도(勢道) 있는 富者  *怨聲: 원망(怨望)하는  소리.

 

<2018.7.26, 이우식 지음>

목, 2018/07/2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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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冥福(소명복)

 

莫道祈冥福(막도기명복)

於吾但笑資(어오단소자)

何人云死後(하인운사후)

牧者假僧欺(목자가승기)

 

죽은 뒤의 福을 비웃다

 

冥福을 빈다는 말씀일랑 마시게

나에게는 오로지 웃음거리일 뿐

어떤 사람이 死後를 운운하는고

목사와 땡추중이 속이고 있도다.

 

<時調로 改譯>

 

죽은 뒤 福 말 말게 내겐 웃음거리일 뿐

죽음 이후에 대하여 뉘라서 운운하는고

목사와 가짜 승려가 뭇사람 속이는도다.

 

*冥福: 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福. 죽은 뒤 받는 福德 *莫道: ‘말하지 말라’의 뜻

*笑資: 소병(笑柄). 웃음거리 *何人: 어떤 사람 *假僧: 가짜 승려. 땡추. 땡추중.

 

<2018.7.26, 이우식 지음>

목, 2018/07/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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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다운로드]

0726-12<일제 강제동원피해 소송을 둘러싼 외교부,
사법부, 김앤장의 유착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부와 외교부, 김앤장의 추악한 유착을 고발한다!”


○ 때 : 2018년 7월 27일(금), 오후 2시
○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회의실
○ 주최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회 :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발언1 :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
발언2 : 김세은(민변, 법무법인 해마루, 소송 담당 변호사)
기자회견문 낭독 : 안영숙(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국장)
질의응답 : 김민철(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집행위원장)
              조시현(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기자회견문]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부와 외교부, 김앤장의 추악한 유착을 고발한다!

우리는 어제 한 용기 있는 현직 판사를 통하여 일제 강제동원 소송에 대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면서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미쓰비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보상 청구사건 담당 대법관이 재판연구관에게 ‘한일 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이라며 판결의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의혹으로 제기되었던 사법부의 재판개입 의혹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충격적인 현실을 앞에 두고 사법부의 독립은 이미 파탄이 났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정의의 심판’을 기다리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판결을 보지 못하고 하나둘씩 세상을 뜨는 슬픈 현실을 앞에 두고서도 재판의 결론을 미루는 대가로 외교부로부터 해외 파견 법관 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사법행정처를 총동원하여 재판 거래를 했다는 믿기 힘든 사실도 확인되었다. 일제에 의해 짓밟힌 청춘에 대한 권리 구제를 평생 동안 기다리던 피해자들의 염원을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한 사법부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아니다.

더욱이 이 재판을 두고 사법부와 재판을 거래한 외교부는 어느 나라 외교부인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외교부는 이 판결이 확정되지 않도록 일본 공사가 강하게 요구한 것을 수차례나 법원행정처에 전달하여 노골적으로 재판에 개입했다. 이에 대해 2013년 9월 박찬익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외교부의 입장을 반영해 재판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여, 피고 측인 일본 기업들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김앤장을 통해 외교부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접수하고, 국외송달을 핑계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2015년 6월 법원행정처 임종원 전 차장은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의견서 제출을 협의하며 대사관 법관 파견을 청탁했다.

2016년 10월 미쓰비시를 대리하는 김앤장은 박찬익 심의관이 제안한대로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을 촉구하였고, 11월 외교부는 “손해배상시 한국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편 박찬익 전 심의관은 재판거래를 기획한 대가로 지난 2월 소송당사자의 대리인인 김앤장에 취업했다.

사법부와 외교부, 그리고 국내 최대의 법무법인 김앤장이 결탁하여 재판을 거래하여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았을 뿐만 아니라 사법의 근간과 국가주권마저 내던져버린 파렴치한 폭거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국가와 정부, 외교부와 사법부의 존재의의, 그리고 김앤장의 범죄적인 행태에 대해 그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총체적 부정의와 재판 거래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에 두고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뜻을 모아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요구한다.

1) 사법부는 강제동원 소송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새로운 재판부를 구성하여 신속하고 공정한 심리를 진행하여 판결하라.

2) 외교부는 사법부, 김앤장과 결탁하여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경위, 재판 거래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

3) 검찰은 강제동원 소송을 둘러싸고 재판 거래를 실행한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 박찬익, 재판에 개입한 대법관 등 사법부 관계자, 외교부 관계자, 김앤장, 그리고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하라.

4) 국회는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사법부와 외교부의 재판 거래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하라.

2018년 7월 27일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0726-13

목, 2018/07/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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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식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지요?

몇일에 한번씩 올리다가 갑자기 하루에도 몇번씩 이렇게 도배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시상이 전보다 갑자기 몇배로 뛰어올랐나요?

 

웬만큼 하시지요..

게시판 혼자의 것이 아닌것 잘 아시지요?

잘못하면 오해받습니다.

목, 2018/07/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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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부와 외교부, 김앤장의 추악한 유착을 고발한다!

2018월 7월 27일 오후 2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보도자료] 바로가기

 

금, 2018/07/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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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피해자들 “재판 결과 기다리다 대부분 돌아가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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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기자회견에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가 피해자들이 살아 있을 때 만났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30 여 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수많은 기자회견을 해봤지만, 오늘처럼 참담하고 슬프고 분통터지는 기자회견은 처음이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참담하기만 하다.”

수 십년 간 일제 강제동원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해 왔으며, 자신 또한 피해자 유족인 이희자(75)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어디서든 기자회견을 하면, 항상 피해자 입장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였는데, 오늘은 제가 당당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 벽면엔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 등 일본기업들을 대상으로 일제강제동원 소송을 진행해 온 피해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총 9명의 피해자 중 7명의 피해자 이름 앞에는 ‘故’(고)자가 붙어 있었다. 고인이 된 7명의 피해자들은 일본은 물론이고 모국에서도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다. 2분의 피해자 또한 현재 90세가 넘거나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런데, 최근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청와대와의 재판거래에 이들의 재판을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다. 지난 26일엔 한 현직 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대법원 측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관련 재판을 “재검토하라” 지시했다고 밝혀 논란이 더해지고 있다. “한일 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이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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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 벽에 걸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진. ⓒ민중의소리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
피해자들 위로해온 이희자 공동대표의 낙담

이희자 공동대표는 발언 내내 재판 결과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떠올리는 듯 참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재판 결과가 나오질 않자, 제가 그분들을 위로해드렸다. 포기하지 말라고, 오래 살아달라고, 그게 이기는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결국 대법원 재판결과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라며 탄식했다.

앞서 일제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주금을 상대로 각각 부산지법(2000년)과 서울중앙지법(2005년)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1·2심에서 패소했으나, 2012년 5월 대법원이 처음으로 일본 전범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희자 공동대표는 당시를 회고하며 “일본에서 모든 재판을 지고 모국으로 돌아와 다시 재판을 시작하고, 처음 승소 소식을 접했을 때 할아버지들이 정말 많이 우셨다”라며 “식민지 시대에 잃어버린 민족과 청춘을 다 찾은 것처럼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원심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대로 피해자 한 사람당 1억원(서울 고법) 또는 8천만원(부산 고법)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했다. 이런 상태로 해당 사건은 2013년 8월 대법원에 재상고 됐다. 하지만, 이후 5년이 다 되도록 법원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원고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사법부를 믿고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위로했던 이 공동대표가 “당당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낙담한 이유다. 그는 “일본과의 문제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청와대가 거래했다는 말이 나오면서 ‘이게 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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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제 강제동원피해 소송 둘러싼 외교부, 사법부, 김앤장의 유착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중의소리

사법부·외교부·김앤장 유착, 민사소송규칙까지 개정…“충격적”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도 사법부·외교부·김앤장의 유착에 절망감을 드러냈다. 김세은 변호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고, 그동안 무엇을 신뢰하고 기대하며 기다려 왔는가 질문하게 되는 시간”이라고 탄식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부는 다수의 힘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리는 곳”이라며 “그런 사법부의 법원행정처가 외교부, 청와대와 손을 잡고 우리 재판을 두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래했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법부가 삼권분립 원칙까지 어겨가며 ‘민사소송규칙’까지 개정한 정황에 대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민사소송규칙 상으로는) 원고와 피고 등의 의견은 1-2심에서 모두 제기가 되어야한다”며 “그런데 이 규칙을 대법원 판결 전에 바꿨다.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 대법원 단계에서 소송과 관련도 없는 외교부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2심에서 시민단체나 관계기관들이 의견을 법원에 제출하는 길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외교부가 일방적으로 일본기업 측에 유리한 내용의 의견서를 통해 시간을 끌려고 했던 것”이라며 “이는 삼권분립뿐만 아니라, 소송당사자에 대한 심각한 권리침해 소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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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외교부의 의견서 ⓒ민중의소리

당시 외교부가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외교부는 명확하게 입장을 드러내진 않지만 교묘하게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리면 안 된다는 의견을 표한다.

해당 문서에는 ‘피해자들이 한국 내 일본 기업들 재산을 압류하는 극단적 상황을 맞을 수도 있으며, 이렇게 되면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50년간 한일양자관계의 근간이 되어온 협정의 해석이 뒤흔들릴 경우 우리나라의 대외적인 신인도 손상을 불러올 것이며, 일본 기업들의 한국 투자와 비즈니스에 장애가 되고 한일 간 경제관계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고, 사법의 근간과 국가주권마저 내던져버린 파렴치한 폭거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국가와 정부, 외교부, 사법부의 존재 의의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총체적 부정의와 재판 거래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에 두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뜻을 모아 강력히 요구한다”라며 소송에서 부당하게 피해를 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사죄, 새로운 재판부 구성을 통한 신속·공정한 심리, 외교부·사법부·김앤장이 결탁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경위, 검찰의 철저한 수사 등을 촉구했다.

<2018-07-27>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목숨 대가로 한 ‘사법부·외교부·김앤장’ 뒷거래”

※ 관련기사

☞프레시안: 외교부는 일본 지부, 대법원은 일본 민원 처리 기구?

☞한국일보: “강제동원 재판 지연은 사법부와 외교부, 김앤장의 유착”

☞민중의소리:외교부 ‘고리’로 더욱 선명해진 양승태 사법부의 ‘일제 강제징용’ 재판거래

※ 뉴스영상

금, 2018/07/2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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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之巨罪

 

可嘲云國父(가조운국부)

虐殺罪衝天(학살죄충천)

後世何忘此(후세하망차)

長歎起憤然(장탄기분연)

 

이승만의 큰 죄

 

國父 운운하니 조롱할 만하구나

동족 마구 죽인 罪, 하늘에 닿네

후세에서 어찌 이를 잊어버리랴

길게 탄식하며 분연함 일으킨다.

 

<時調로 改譯>

 

國父 가소롭구나 虐殺罪 하늘에 닿네

후세의 사람들이 어찌 이것을 잊으랴

오호라! 장탄식하며 분연함 일으킨다.

 

*巨罪: 대죄(大罪).  큰 죄  *國父: 나라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임금’을 이르는 말.
나라를  세우는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 *虐殺:  가혹하게  마구  죽임  *衝天: 하늘을  찌를  듯이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름. 탱천(撑天).  분하거나  의로운 기개, 기세  따위가 북받쳐 오름 *後世: 다음에 오세상. 또는  다음 세대(世代)의 사람들. 來葉 *長歎: 장탄식(長歎息). 긴 한숨을 지으며   깊이  탄식(歎息)하는    *憤然: 성을  벌컥  내며  분해하는 기색이 있음.

 

<2018.7.28, 이우식 지음>

토, 2018/07/2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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