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정도를 벗어난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제자리 찾기 원해

지역

정도를 벗어난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제자리 찾기 원해

익명 (미확인) | 금, 2017/07/28- 14:37

인터뷰 ∷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조근송 명예회장

정리 : 이순우 책임연구원

 

05

1. 이준 열사의 외손자인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조근송 명예회장

 

우리 연구소는 헤이그 특사 110주년을 맞아 이준 열사의 집터 위치가 ‘안국동 152 및 153번지’였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하고 종로구청을 통해 표석신설 신청서를 제출한 결과, 지난 3월에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표석설치 결정을 통보받았다.
이 자리가 1907년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준의 아내 이일정이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상회를 개설하여 운영했던 곳이라는 공간적 의미가 모두 고려된 결정이었다. 이준 열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7월 14일 해당 표석의 설치 제막식이 거행될 예정인데, 이에 앞서 이준 열사의 유족 대표인 조근송(趙根松) 이준열사기념사업회 명예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문 : 어려운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근송 선생님은 이준 열사의 외증손이신데, 가계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답 : 이준 할아버님은 어렸을 때 아버님과 할아버님 두 분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셨는데, 외롭게 크신 분이기 때문에 정이 많고 또 혼자이시기 때문에 깐깐한 면도 계셨다 그래요. 저의 증조부 조시범(趙時範)과 이준 할아버지는 같은 서당에 다니던 학동이었습니다.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에서 일찍 장가를 들어 태어난 분이 따님 한 분과 아드님 한 분인데, 맏딸이 저의 할머님 이송선(李松鮮)이예요. 그 할머니 이름의 ‘송’자를 따서 제 이름에 붙였다고해요. 아들 이름이 이종승(李鍾乘)인데 이용(李鏞)으로도 부르죠. 그리고 서울에서 또 한 부인을 얻었는데 이분이 이일정(李一貞) 여사입니다. 이분 슬하에 이종숙(李鍾肅)이라는 따님한 분을 두었습니다. 어릴 때 사직동에 계셨는데 맨날 놀러도 가고 용돈도 얻고 그랬습니다. 이분들은 눈이 잘 안 보이는 병을 얻어 고생이 많으셨어요.

문 : 유족들의 근황은 어떻습니까?
답 : 저의 집 쪽으로 아버님 조윤(趙潤)은 1971년에 돌아가셨고, 제 위로 형님이 세 분 계셨는데 다 돌아가셨어요. 누님도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여동생 한 사람이 남아 있어요. 이용 할아버지 쪽은 이열(李洌)과 이활(李活) 이렇게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준 열사의 친손자들은 지금 전부 이북에 있습니다. 그 후손이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 파악이 안 되니까 심지어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요.
이종숙 할머님 쪽으로 유성천(柳星天)이라는 따님 한 분이 계셨으나, 지난 2011년에 돌아가셨어요. 이 아주머니 밑에 아들 둘하고, 딸 하나가 있죠. 이종숙 할머니의 사위가 문화공보부장관을 지낸 이규현(李揆現) 씨예요.

문 : 이준 열사의 집터에 관해 따로 전해 들으신 얘기가 있는지요?
답 : 안국동 집터 위치는 옛날 아버님이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이준 할아버지가 이곳에 계실 때 민영환 선생과 교류가 많았다고 그래요. 집들이 서로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그 집안을 너무 잘 알고, 민영환 선생이 자결하실 때 상하이에 계시다가 급거 귀국하셨대요. 집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민충정공이 자결하신 그 칼을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는데 그 칼이 헤이그로 가실 때 없어졌답니다.

문 : 선생님께서는 원래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답 : 저야 뭐, 이공계 전자 쪽을 나와서 금성사 중앙연구실에 있었죠. 디지털파트예요.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하면 학생들이 사용하던 OMR 카드, 그 포맷을 제가 정했어요. 1980년대에 에어 스페이스 매니지먼트(공중공용관리)라고 군사용 프로그램 개발에도 관여했고요, 가상현실(VR)도 1995년도에 제가 처음 했었죠. IT쪽 일을 계속하다가 대신증권으로 옮겼어요. 당시 한국의 증권산업의 통신인프라가 취약했었는데 이 일을 담당했습니다. 지금의 증권전산망이라든가 이런 것을 안정화시키는데 힘을 기울였지요.

문 :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일은 어떻게 관여하시게 되었습니까?
답 : 헤이그에 있던 이준 열사의 유해를 모시고 오던 1963년도부터 추도식에 계속 다녔는데 이일정 할머니의 외손녀인 유성천 아주머니가 유족 대표로 하시고 나는 그냥 참여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7년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행사 때 예전에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무를 하고 이준 열사 유해를 모셔올 때 영정도 들기도 했던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 이준 열사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언론에 나오고 한 일이 있었어요. 그때 KBS 열린음악회에 그 사람을 유족이라고 데려다 앉혀놓고 사진도 찍고 했던가 봐요. 북청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사셨던 형님들이 그 사정을 훤히 아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그래서 가짜가 드러났는데, 이 문제를 따지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제 이름이 노출되고 제가 이준 열사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게 된 겁니다. 문화공보부 자료에 보면 이준 열사 유해 봉환 때 유족들이 몽땅 모여서 찍은 사진이 있어요. 형님들 계시고, 형수들 계시고, 사직동 할머니, 성천이 아주머니, 이규현 씨도 있고, 꼬마들까지 다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유족들이 다 모여서 찍은 것으로 유일합니다.

06

2. 이준 열사 유해봉환 국민장의식 1907년 7월 순국한 후 56년 만인 1963년 9월 30일 환국한 이준 열사의 유해를 모시고 10월 4일 10시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이후 현재의 수유리 묘지로 운구하여 오후 3시 30분에 하관하였다. 가운데 검은 완장 찬 여성이 이준 열사의 작은딸 이종숙.

3 이준 열사 유해봉환 당시 수유리 묘역에서 촬영한 유족 사진(1963.10.4) 사진의 앞줄 가운데에 선 남자 아이가 인터뷰 당사자인 조근송 명예회장이고, 바로 뒤쪽에 이준 열사의 따님(이종숙), 그 오른쪽에 부친(조윤, 두건 차림)과 모친이 나란히 서 있다. 다시 왼쪽으로 이준 열사의 외손녀(유성천)와 그 부군(이규현, 검은 넥타이 차림)의 모습이 보인다.

 

문 : 이준열사기념사업회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답 : 1946년도에 이준열사기념사업회가 시작될 때 함태영(咸台永) 선생이 초대 회장을 하셨어요. 이분이 이준 열사보다 연세 차이는 많지만, 같이 법관양성소 출신이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회장을 맡으셨습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 장군이 북쪽에서 못 빠져 나왔고, 소련군 점령하에 있다가 이듬해 5월에 월남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남에 와서 7월 14일 순국일에 제사를 지낼 때 이준열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답니다.
그 이후 김창숙 선생 등 여러 저명인사들이 기념사업회를 이끌었는데,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이갑성 씨와 같은 경우에도 제가 어렸을 때 많이 봤고, 꼿꼿하고 마르게 생긴 윤치영 같은 이도 기념사업회 일을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친일행적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제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어쨌건 이렇게 왔는데 근년에 기념사업회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지금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전재혁 씨라고 정보기관 출신인데 용공이니 반공이니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요. 또 깜짝 놀란 게 안두희를 열혈청년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난 당신하고 일 못 한다 강력 반발했더니 이준열사기념사업회는 유족이 필요없다, 이런 식으로 나와요. 그래서 보훈처에도 얘기했지만 사단법인 내의 문제이니까 방법이 없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스스로 기념사업회를 나가는 것은 반대입니다.
현재 명예회장이고 제가 들어가겠다는 것은 자기들이 인정했으니까 말이죠. 회장은 2, 3년을 하고 넘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 사람은 벌써 만 10년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문 : 이준 열사의 아드님이신 이용 장군에 대한 말씀을 좀 들려주시죠.
답 : 1907년에 이준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그 충격으로 큰 따님인 저희 할머님(이송선)이 식음을 전폐하시다가 불과 1년 만인 1908년에 스물여섯 나이로 일찍 세상을 뜨셨어요. 그래서 아버님은 만 두 살짜리로 북청 외가에서 컸는데, 그때 이용 장군이 안아서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한테서 이준 할아버지보다는 이용 할아버지 얘기를 더 많이 들었어요.

07

4. 1940년대 찍은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 장군(가운데)과 그의 아들 이활(왼쪽), 이열(오른쪽) 사진. ⓒ 조근송

이분이 하신 일은 대한민국 무장투쟁사를 다시 적어야 할 정도예요. 청산리전투 때 홍범도 장군 밑에서 중대장을 하셨습니다. 이용 장군은 김경천 장군과 더불어 고려혁명군의 사령관으로 그분은 동부사령관이고, 이용 장군은 북부사령관을 맡으셨어요. 북만주사관학교 교장도 하셨지요.
그리고 이용 장군에 대해서는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평양에 올라가서 북한하고 붙었다고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건 조금 달라요. 제가 듣기론 이용 할아버지가 밤에 몰래 종로 쪽에 사시던 아버님을 찾아와서 “여기 있으면 죽는다, 나 오늘 북한으로 간다.”고 하시면서 “내가 장개석을 만나고 그런 다음에 다시 온다. 지금은 몸을 피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답니다. 집에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음력 5월달에 김우송(金又松)이라는 할아버지의 생신 때 찍은 건데, 이걸로 보면 아버님 말씀대로 7월초에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 맞습니다.

문 : 이준 열사 기념관 건립 등 현양사업이 현재 추진되고 있나요?
답 : 이준 열사와 관련한 기념시설은 아직 국내에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요, 헤이그에 있는 것도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요. 이걸 서로 합해야 하는데 관계도 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념사업회 쪽에서 이런 기념관을 마련하고 통합에 앞장서야 하는데 사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원래는 기념관 건립뿐만 아니라 남북교류와 이준대학 설립까지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딴 분은 몰라도 이준 열사에 대해서는 남한이건 북한이건 모두 긍정적이고 거부감이 없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거든요. 남북 합작으로 비무장지대 안에 이준대학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지난 정부에서 어디 들어줘야 말이죠.
위와 같은 내용의 대화를 끝내고 표석 제막식 때 다시 모시기로 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연구소로 어려운 발걸음을 주시고 이준 열사의 가계에 관한 소상한 설명과 비화를 들려주신 조근송 명예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08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ACI_3207ACI_3218ACI_3222ACI_3231ACI_3235ACI_3240ACI_3245ACI_3264ACI_3274ACI_3278ACI_3288ACI_3297ACI_3304ACI_3318ACI_3359ACI_3376ACI_3389ACI_3422ACI_3450ACI_3453ACI_3462ACI_3465ACI_3468ACI_3471ACI_3475ACI_3455

▲ 참가자 접수
▲ 참가자 접수
▲ 사회를 보는 방학진 기획실장
▲ 사회를 보는 방학진 기획실장

ACI_3207

화, 2018/03/27- 15:18
22
0

김판수 회원

 

2018년 2월 9일, 드디어 기대보다 걱정이 많았던 평창겨울올림픽이 엄동설한을 녹이는 감동을 연출해냈다. 평창올림픽은 유치단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고, 국내적으로 수천 년 동안 온존한 산천을 허물어야 하는 환경훼손문제로 불화가 있었고 막대한 예산으로 준비된 시설들의 올림픽경기 후 유지와 활용방안이 논란거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 한반도의 휴전선에 인류평화의 제전을 마련하여 갈등과 적대와 대결을 끝내고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는 간절한 소망으로 성공적인 올림픽 개막을 이루어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조성된 국제사회의 제재와 긴장으로 남한 민중이 겪은 두려움과 불안은 올림픽경기가 제대로 치러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한반도기를 앞세운 단일팀 입장으로 그동안의 근심이 봄날 눈 녹듯이 풀어졌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그동안 꽉 막혔던 남북 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리고 땅길, 하늘길, 바닷길까지 열려 막힘없이 오가며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평화가 찾아와 이것이 현실인지 실감하기조차 어리둥절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유폐되고 장막 속에 묻혀 있던 통일 논의가 봇물처럼 터지고 기대 또한 만발하다. 그러나 통일로 가는 길은 기대만큼 난제가 너무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첫 번째 장애는 남남 갈등이다. 이것은 불행 중 더 큰 불행이다. 지구촌 여러 나라를 초대한 잔치마당에 북한 참가를 반대하는 시위로 올림픽정신을 부정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이전에 남남 갈등을 풀지 않고 통일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려준 사건이다.
또 하나의 장애는 국제적 개입과 부당한 간섭이다. 미・소 야합으로 비롯된 조국 분단과 국제대리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열강들은 여전히 우리의 통일 의지를 꺾고 분단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토 분단과 겨레의 분열은 73년간 갈등 분노 적대 대결의 악순환으로 생긴 내상으로 증오의 일상화를 초래했다.
통일은 남과 북이 서로 미워해야 할 적이 아니고 가엾은 피해자라는 자각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통일은 애초에 한말 한글 한역사 한겨레로 한반도에서 한나라로 살았던 때로 돌아가서 다투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는 간절한 소망이다. 통일은 평화로 가는 디딤돌이고, 남과 북이 평화로 가는 길이 함께 사는 길이며 오직 함께 사는 길만이 평화로 가는 길이다.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맨 먼저 마음부터 열고 남과 북이 한겨레 한동포임을 자각하고 미움을 걷어내야 한다.
다음으로 말문을 터서 서로 위로하고 이해하면서 희망을 살려내야 한다. 그리고 길을 열어 서로 오가며 정을 쌓고 도와주면서 자주 자립을 이뤄내야 한다. 이번 평창올림픽이 이 땅 이 겨레에게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자각케 하는 단처를 마련해 준 것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소득이요 횡재라 아니 할 수 없다.
반목은 서로에게 손해를 주고 평화는 서로에게 이익을 준다. 국제사회의 야욕으로 갈라졌던 국토, 찢겨진 겨레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지금 이 땅에 사는 겨레가 있는 힘과 지혜를 모아서 외세 개입과 간섭을 물리치고 ‘생명과 평화 자주권’을 굳건하게 지켜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이제 우리 겨레의 비극과 불행과 고통을 청산하는 길은 우리 스스로가 하나로 뭉쳐서 우리를 구원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는 6・25 동족상잔의 쓰라린 전쟁을 치르고도 65년 동안이나 서로를 노려보며 불안하게 살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파멸이다. 핵과 미사일을 소용없게 하는 길은 화해와 평화만이 유일한 길이다. 화해로 가기 위해 우리 겨레 한 사람 한 사람이 휴전선 철조망보다 강고한 마음속 장벽을 허물어 버리자.

2018. 2. 12

여럿이 함께 손잡고 ‘평화의길’ 김판수 두손모음

화, 2018/03/27- 17:09
168
0

김순흥 광주지부장

 

우리가 섬이냐
땅으로 가자

헤엄치지 말고
걸어서 가자
배 타지 말고
버스로 가자
비행기 타지 말고
기차로 가자

오늘 못 가면
내일 또 가고

 

모레도 못 가면
글피에 또 가고

올해안에 못 가면
내년에 또 가고
내년에도 못 가면
그 내년에 또 가고

서둘지 말고 가자
싸목싸목 가자

우리가 섬이냐
땅으로 가자

화, 2018/03/27- 17:23
101
0

홍소연 회원

 

30

리제항 위안소구지진열관 안에는 할머니가 된 소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답사단의 소녀가 그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청년백범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후원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사기행’이 10회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하이를 시작으로 자싱, 하이옌, 항저우, 난징을 찾아가는 일정이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여든이 넘으신 민문연 이광찬 회원과 이윤 회원 등 17명이 다녀왔다.
이봉창 의사가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문을 두드렸던 상하이시기 마지막 임정 청사. 의열단원 오성륜・김익상・이종암 의사가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황포마두. 김구 선생 어머니가 먹을 만한 것을 고르기 위해 중국 사람들이 다듬고 버린 채소더미를 뒤지던 골목길.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유골이 흩어져 있는 송경령능원(상하이 외국인묘지였던 만국공묘의 현재 명칭). 김구 선생이 이봉창ㆍ윤봉길 의사 의거 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중국 뱃사공 주애보와 살았던 자싱의 피신처.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 시절에 찾아왔던 하이옌의 김구선생피난처. 중국의 ‘국가급 항전시설 및 유적지’로 지정된 항저우 서호 옆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김원봉 선생이 청년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했던 난징 산골의 천녕사, 여운형・조동호・김마리아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다녔고, 민족혁명당 창당식을 거행했던 난징대학교.
중일전쟁시기 일제가 난징 시민 30만 명을 학살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남경대도살조난동포기념관(南京大屠殺遭難同胞紀念館). 난징총독부에서 5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동양 최대 규모의 위안소를 만들어 놓고, 눈앞에서 벌였던 그 잔인한 짓을 지금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일본의 무모함에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곳 리제항 위안소구지진열관. 그곳에는 끌려온 어린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31

난징 천녕사 앞에서 기념촬영

 

옛날 의병전쟁을 하시던 분들의 머리에는 꽃이 피었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과 들에서 몇날 며칠을 씻지도 못했던 그분들의 머리에, 바람에 날려 씨앗이 꽂히고 그것이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현실의 몸은 거칠고 고단했지만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꽃으로 기억돼야 하는 역사다. 우리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그분들 같은 삶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 다시는 그런 삶을 걸어야만 하는 시대가 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분들을 잊지 않아야 하고, 그분들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 걷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화, 2018/03/27- 17:08
116
0

민족문제연구소 2018 정기총회 간략 후기

 

지난 주 토요일 (3.24), 민족문제연구소 총회,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저는 총회 이틀전 개인 성명서에서 발표한대로, 연구소 주인인 회원의 대표기구, 운영위원회를 무력화시키는 정관개정에 반대의사를 피력하기 위해 홀로 어렵사리 참석했습니다

 총회 시작전 로비에서 개인 성명글을 배포하는데.. 몇몇 운영위원과 회원들이 험악한 얼굴로 돌아가며 저의 몸을 잡아끌어 밖으로 쫓아내려는 통에 몸싸움을 하고, 유인물도 못 돌리고많이 시달렸네요

총회 진행중엔 더 심각..  

제가 어렵사리 발언기회를 얻어 발언을 하자마자 모 운영위 부위원장이 제 앞 자리에서 계속 고함과 삿대질 하며 방해, 뒤에 단상에선 소장님이 발언을 짧게 하라고 계속 재촉하면서 방해..작전 짠 듯이

또 다른 반대발언을 하는 회원의 입을 틀어 막기 위해 마이크를 빼앗으라 하고 퇴장지시하고..또 다른 회원은 아예 마이크 잡을 기회도 주지않고 퇴장 지시

언젠가 삼성의 주총에서 윤종용 부회장이 소액주주들에게 고압적으로, 함부로 하던 광경이 떠올려지고..

 정관개정은 어느 단체나 총회의 제일 중요한 사안입니다. 민주적 총회였다면, 지나가는 말로라도 회원의 의사를 물었을 법도 한데, 그러기는커녕, 반대발언을 하는 소수를 탄압하는 모양새. 깜짝 놀랐습니다. 소장님이 총회를 그렇게까지 비민주적, 편파적, 고압적으로 진행하실 줄은..

그리고 발언하러 나온 회원에게 회비 내셨습니까?” 라고 핀잔을 주는 건 도대체 뭔지

암튼 그날 총회 진행을 통해서 느낀 건 소장님은 분명 회원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과, 지부장들뿐 아니라 회원들 스스로도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 그래서 더 찝찝하고 참담했습니다.

연구소 회원들이 어떻게 이렇게 타락했습니까?” 총회장이 어수선해지자 임소장님이 하신 말씀,
회비 내셨습니까?” 와 함께 그날의 명언 등극.

 

2018. 3. 28
전 운영위원장 (9) 여인철

수, 2018/03/28- 18:22
98
0

여인철씨의 사실을 왜곡하고 민문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후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더 이상 침묵하면 않될 것 같아서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본인도 당일  총회에 참석한 회원으로서 저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점을 말씀드립니다.
1.정관수정안에는 회원과 운영위원의 권리를 박탈한 조항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래 첨부한 사진 속 개정안을 참고하세요.
단 논쟁이 된 조항은 20년전 초창기에 만들어진 조항인 정관제32조 3항 “기타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의결한다”는 조항을 폐기하는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본인이 민문연 운영위원장을 했던 분이 후임 운영위원장과 운영위원이 결정한 개정안을 비민주적이라고 폄하하고, 운영위원장과 정관개정소위원회 위원을 한 운영위원을 사퇴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해서 명예를 손상시키고, 민문연  소장과 회원이 비민주적이고 패거리 집단처럼 호도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당일 총회 시작 후 2시간 정도 흐른 뒤 정관개정안 의결 순서가 되어서 제안자인 xxx 운영위원장이 제안설명을 하고, 개정안을 반대하는 여인철씨가 반대입장을 발표했는데, 너무 장황하게 얘기를 해서  찬반토론을 위해서 3분안에  발언을 마쳐달라고 사회를 본 소장이 부탁을 드렸고, 찬반 토론이 시작되어 찬성하는 회원과 반대하는 쪽에서 1명씩 발언을 하는 중에 xxx 전 지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랜 시간 발언과 제안과 상관없는 얘기를 해서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회의가 난장판이 되어 마이크를 끄게하고 진행을 위해서 퇴장을 요청했는데 계속해서 악다구리를 부리고해서 퇴장을 요청하였지만 계속해서 회의를 방해했습니다.
하여 더 이상 회의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소장이 충분한 의사를 알았으니 표결에 붙이겠다고 하여 개정안 삭제를 낸 여인철씨와 뜻을 같이하는 5명만이 반대하고 200여명이 넘는 회원이 찬성을 해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통과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만이 올고 다른 회원과 운영위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틀리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촛불을 들었고, 민문연 운영위원장을 엮임했던 회원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라고 판단되지 않습니다.
또한 민문연 내부의 문제를 사실을 왜곡해서 촛불을 들었던 이 카톡방에 퍼트리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회에 참석한 수 많은 회원의 목소리는 안중에도없고 내가 주장한 것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민주적이고 폭거가 되는 것입니까?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럽습니다.

20년 가까이 여인철씨를  보아온 저로서는 요즘 행태에 대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자중하시고 본인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추신)  위 글은 저가 저와 여인철 회원이 활동하는 카톡방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공유합니다. 일방의 글로 인하여 민문연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안따까운 마음에서 글을 공유합니다.

-대한민국100년 3월 28일-
_민족문제연구소 (전)경기북부지부장  김재광_

목, 2018/03/29- 07:25
71
0

흙요일해요일

31

사우월1일

 

목, 2018/03/29- 12:45
61
0

북핵은 우리 민족의 핵이자 세계평화의 핵이다.

세계 인류역사의 흐름에서 국제관계는 오직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양심에 의거한 국가 대 국가의 협정과 약속은 강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철저히 무시되고 파기되는 것이 일반이었다. 이런 세계사의 흐름에 북은 핵무력 강성국가로 우뚝 자리 매김 했다.

지난 시간은 어땠는가!
소위 말하는 강대국이라는 국가들이 조그만 땅덩어리의 북을 전 세계적로 제재하고 압박하여 고립압살정책을 펼치지 않았던가! 심지어 같은 노선을 걷고 있던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조차도 그 힘에 아부굴종하며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이나 자행되어 온 미제의 침략적 만행과 비겁한 주변국의 동조에도 불구하고 북의 위대한 인민들과 지도자들은 전세를 역전했다. 지금은 오히려 압도하고 있다.

바로 북의 핵무력!

북핵은 지금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평화의 핵이 되고 있다. 전쟁광 미제놈들은 이렇게 종이 호랑이처럼 북핵의 위력 앞에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너도나도 북핵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이다.

힘이 없어 죽임 당했고, 굶어 죽었고, 수탈 당했던 한반도 피의 역사가 말해주지 않는가!
인두겁을 쓴 제국주의자들의 짐승같은 만행은 여전히 중동에서 무참히 학살되고 있는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 고문 받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 협정을 맺기 위해서 그렇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북핵이 있어야만 지금의 대화국면이 계속 될 수 있다. 미제를 흔들어 좨치면서, 국제적인 강국들 사이에서 평화의 깃발을 쥐고 있는 근본 힘은 바로 북핵이며, 북의 단결된 민중의 뜻이다.

우리민족의 핵이 결국 강성번영통일국가의 핵으로 되는 것이다!
평화의 핵! 민족의 핵을 온 힘을 다해 지켜가자!

목, 2018/03/29- 15:54
110
0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적인 지도자로 되고 있다.

최근 이루어진 북중 정상회담 내용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북미 대결에서 압도적인 핵 무력의 힘으로 미제국주의를 타승하고, 남북정상회담을 4월 말로 이끌어내는 힘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과정에서 파격적이고 전격적인 중국 방문을 통해서 시진핑과의 회담을 성사시켜내면서 다시 한번 미국과의 대결에서 우위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였다.

평창 올림픽에서 보여진 북의 행보는 과감하고 통이 큰 결단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이익을 실현하는 조치라면 큰 품으로 받아주고, 양보하는 배려와 존중의 입장까지 보여주고 있다.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 내용을 볼 때도 그렇고, 자유한국당 및 남의 적폐세력이 북을 물어뜯으며 어떻게든 평화를 깨보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헤아리며 과감하게 평창 올림픽을 평화의 올림픽으로! 우리 민족의 대경사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같은 힘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과 이번 대북 특사가 언급한 발언에서 우리는 그 힘의 원천을 알 수 있다.

▷ 푸틴
한반도를 둘러싼 핵(核) 외교전의 ‘승리자’이자, 앞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성숙한 정치인’

“나는 김정은이 당연히 이번 판을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전략적 과제를 해결했다”며 “핵폭탄을 갖고 있고 사실상 전 세계 어느 지점, 최소한 적의 영토 모든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는 1만3000km나 되는 긴 사거리의 로켓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제 북한 지도자는 상황을 정리하고 진정시키는데 관심이 있다”며 “그는 전적으로 소양이 있고 이미 성숙한 정치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2/2018011200321.html

▷ 대북특사
특사단은 김정은에 대해 ‘배려’ ‘숙성된 고민’ ‘여유’ ‘리더십’ 같은 표현을 쓰며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방문 중 북한이 보인 태도에 대해서도 ‘열린 경호’와 ‘정성 어린 대접’을 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정은이 지난 5일 접견 때 특사단에게 한·미 연합 훈련 등을 언급하며 여러 번 “여러분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한국 및 서구 언론에 나온 자신에 대한 평가를 언급하면서 ‘무겁지 않은’ 농담까지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특사단은 “김정은은 전 세계의 시선과 (한국) 국민의 기대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으로서도 쉽지 않은 난제들을 말끔히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9/2018030900275.html

대단히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로 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같은 민족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자랑스럽고 긍지가 높아진다.

앞으로 있을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우리 민족의 힘이 전 세계로 보여질 것을 상상해 보라! 우리 민족이 세계적으로 이렇게 강대한 적이 있었던가! 남북이 힘을 합쳐 번영하는 통일 조국의 위상을 높여내자!

목, 2018/03/29- 15:36
102
0

김재광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길게 말한 것이 아니라 첫 마디에 반대에 봉착했습니다. 저는 왜 개정을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다면서 집행부가 이사회도 무시하고 운영위원회도 무시하고 지부도 무시한다고 운을 떼고 그 예를 들겠다고 했는데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함을 당했습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말들은 하나도 잘못됨이 없는 정당한 반대토론이었는데 김재광님은 저더러 엉뚱한 발언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정관이 개정되기 전이라도 이렇게 이사회와 운영위와 지부를 무시한다면 제도적으로 집행부에 권력이 집중되도록 개정된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무시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정당한 반대토론이지 쓸데없는 말을 하려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찬성토론은 다 들어주고 반대토론은 소리질러 방해하고 발언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폭거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마이크를 빼앗으려 하고 물리력으로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하고 저를 다중(4명)이 밀어붙이는 데 대해서 저를 놔달라고 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반대토론을 봉쇄하고 결의를 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재광님이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금, 2018/03/30- 11:44
9
0

회원 김점구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직후 회원에 가입했습니다.
1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연구소는 제게 있어 매우 소중한 인생경험이었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자신의 아버지마저 고발했던 임종국 선생의 정신은 지금도 삶의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원들을 가장 많이 만났던 곳은 진실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총회는 그동안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며칠 동안 정관을 다시 살펴봤고, 정관 일부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몇 개의 글을 봤습니다.
여인철 전 위원장의 성명서와 총회 후기, 김재광 전 지부장의 반박, 강세형 전 지부장의 재반박 글도 꼼꼼하게 읽어봤습니다.

성명서는 총회장이 아닌 이곳에 올린 글이므로 총회후기와 반박, 재반박 글 그리고 총회장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소회를 밝힙니다.

개정안에 대한 여인철 전 위원장의 반대 의견이 시작되자 발언 중단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발언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김순흥 지부장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개정안과 관련 없는 내용이었지만 중단 요구 없이 순탄하게 발언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강세형 전 지부장의 첫 마디는 개정안 반대였습니다. 바로 고함이 난무했고 급기야 마이크 OFF, 퇴장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강세형 전 지부장이 발언을 할 때 제 옆의 회원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회원이 아니다.’
강세형 전 지부장은 회비를 내고 있다고 밝혔으나 제 옆의 회원은 회원이 아니라는 고함을 이어갔습니다.

가 왜 회원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답은 전남 동부지부에서 제명했다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충격 아니 경악을 금치못했습니다.
누가 지부에게 본부 회원을 제명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까?
정관 어디에 지부에 제명 권한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까?

<민족사랑> 회비납부자 명단을 확인해봤습니다.
전남동부지부(순천 여수 광양 고흥 곡성 구례 보성)…. 강세형….
2018.3, 2018.2.. 2017.3, 2017.2…

볼테르는 이렇게 말햇습니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제명운운한 회원은 그저 반대 의견을 방해하기 위해 총회에 참석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김재광 전 지부장은 여인철 위원장의 성명서(총회장이 아닌 카톡)까지 인용하며 반박했는데, 저는 총회장에서의 상황을 바탕으로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당일 총회 시작 후 2시간 정도 흐른 뒤 정관개정안 의결 순서가 되어서 제안자인 xxx 운영위원장이 제안설명을 하고, 개정안을 반대하는 여인철씨가 반대입장을 발표했는데, 너무 장황하게 얘기를 해서 찬반토론을 위해서 3분안에 발언을 마쳐달라고 사회를 본 소장이 부탁을 드렸고, 찬반 토론이 시작되어 찬성하는 회원과 반대하는 쪽에서 1명씩 발언을 하는 중에 xxx 전 지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랜 시간 발언과 제안과 상관없는 얘기를 해서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회의가 난장판이 되어 마이크를 끄게하고 진행을 위해서 퇴장을 요청했는데 계속해서 악다구리를 부리고해서 퇴장을 요청하였지만 계속해서 회의를 방해했습니다.
하여 더 이상 회의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소장이 충분한 의사를 알았으니 표결에 붙이겠다고 하여 개정안 삭제를 낸 여인철씨와 뜻을 같이하는 5명만이 반대하고 200여명이 넘는 회원이 찬성을 해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통과된 것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봤습니다.
서로의 기억이 다른 것일까요?
(촬영한 동영상을 함께 보기를 제안합니다)

여인철 전 위원장의 발언은 처음부터 방해를 받았습니다. 장황이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XXX지부장은 강세형 지부장입니다.
강 지부장이 오랜 시간 발언과 제안과 상관 없는 얘기’…
발언다운 발언은 없었습니다. 첫 마디가 개정안 반대였고 즉시 고함이 터져나욌습니다.
난장판은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습니까?

김재광 회원님께 여쭙습니다.
김순흥 지부장의 발언은 개정안과 관련 있는 발언이었습니까?
김순흥 지부장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별 다른 제지 없이 발언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각만이 올고 다른 회원과 운영위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틀리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촛불을 들었고, 민문연 운영위원장을 엮임했던 회원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라고 판단되지 않습니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입니다.
왜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총회장을 나와 교문까지 가는 동안 무리지어 가는 서너명의 회원과 교문까지 걸어갔습니다.
총회장의 얘기가 오갔고 한 회원이 왜 난리를 피워 하기 싫으면 그만 두지…..’

오랜만에 회원들과 식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가 민족문제연구소 총회장이 아니기를꿈이었기를.. 망상을 했습니다.

오늘 정관을 다시 살펴볼 생각입니다.

사무국에 제안합니다.
정관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회원방을 개설해 주시기 바랍니다.

토, 2018/03/31- 12:35
151
0

이 날을 학수고대하던 훌륭한 회원들이 전국에서 모여 ,

업무보고를 하고 뒤풀이 장소에서 동지애를 확인하며 축제인 듯 즐거운 시간을 가질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유인물이 나눠지고,다시 그에 대한 반박문이 나눠지면서 썰렁해졌고,

뒤풀이 장소도 분산돼서 다소 맥이 빠지는 기분이더군요.

 

감히 건의를 드리자면 ,

한 회원이 유인물을 나눠주는 걸 본 운영진 측에서 따로 그 분과 충분한 대화를 가졌거나 ,

아님 이전부터 불거진 문제였다면 정기총회 전에 충분한 토론이 있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동을 하자 선동으로 맞서는 듯한 이 분위기는 그동안의 우리 민문연의 분위기가 아니더군요.

그리고 일단 일이 벌어져서 총회 중 발언의 기회를 줬으면 경청을 하는 게 예의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이 다소 황당했다 하더라도 들을 준비도 되잖은 상태로 거듭 발언의 기회를 허용하고,

반박의 기회를 부여하면서 ,마치 똥파리 정치꾼들의 난장판인 듯 변모했고,

차마 견딜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뒤풀이 장소를 찾았습니다.

거기서라도 얼마간의 해원이나 이해의 장이 마련될 것이라 기대를 했던 것이죠만,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뒤풀이 장소와 ,

장소섭외 시의 소홀함이 있었던 듯 사업장의 주인들은 빨리 밥이나 먹고 꺼지라는 투더군요.

 

한 사람이 아쉬운 현 상태에서 이처럼 동지를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과연 바람직한 걸까요?

이제 근사한(?) 아지트도 마련했고,

행사에서 여러분들의 좋은 평가도 듣고 하니 기고만장한 것일까요?

수 년 전 서울시의화 별관애서 정기총회를 갖고 ,

근처의 회관에서 뒤풀이를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당시 광복회회원들이 참석을 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누구보다 굳건해야 할 광복회가 돈에 흔들려 관변단체로 전락한 것 아니냐며 호통을 치던 게 생각납니다.

통쾌하더군요.

그런데 이번 총회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어땠나요?

만약 처음 참석한 사람이었다면,당시 그 자리엔 처음 참석한 사람들도 적잖았던 것으로 압니다만,

무슨 이런 거지발싸개같은 모임이 있나 생각지 않았을까요?

두 번 다시 참석하고 싶잖아졌을 겁니다.

후원도 중단했을지 모릅니다.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기 마련입니다.

벼만도 못한 우리가 되지 않으려면 날로 성숙해가고,겸손해져가는 우리가 됐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불만을 가지셨던 분들과의 갈등,반드시 해소해 주십시오.

설사 그들이 잘못 생각했더라도 우리가 누구입니까?

피붙이보다 더 끈끈한 애국충정으로 모인 동지들 아닙니까?

이처럼 후일담으로까지 감정의 골을 파면서 멀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가 걸리더라도 푸시고 더욱 끈끈하게 뭉칠 수 있도록 애써주십시오!

 

친일청산이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친일청산만 제대로 해내면 모든 적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걸 아는 우리가,

아직도 고개를 바짝 쳐들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친일매국노들과의 투쟁의 적전에서

이처럼 분열을 해서야 말이나 됩니까?

 

네.익명의 뒤에 비겁하게 숨지 않겠습니다.

저는 천안의 하 상욱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토, 2018/03/31- 12:05
104
0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역사 기반의 게임 개발 지원

▲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협약식

게임인재단이 역사 연구 기관과 손잡고 역사를 주제로 한 게임 개발을 지원한다.

게임인재단은 3월30일 민족문제연구소,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협약식을 열고 역사 기반 게임 개발을 지원하는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은 지난 16일 발표한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사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PC 온라인 게임 개발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한국 게임 개발사 및 개발자를 대상으로 하며 게임인재단 공식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선정된 개발사는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진, 영상, 악보 등 각종 역사 관련 사료를 지원받으며 저작권 검수, 역사 연구 기관의 자문과 각종 교육 프로그램 등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

0331-1

▲ Game X History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 게임인재단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gamein.or.kr/ )

게임인재단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 출시를 지원할 예정이다. 게임인재단 측은 “게임 속에 김구, 안창호가 직접 캐릭터로 등장하거나 복원된 독립군가를 편곡해 게임 속 BGM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와 게임 스토리에 접목하는 등 그 활용 소재와 범위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참여 사례로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이 새롭게 제작된다. 투캉프로젝트가 제작하는 ‘난세의 영웅 리뉴얼'(가칭)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총 10편의 구성으로 개발 중인 역사 기반 모바일 게임이다. 게임 고유의 재미와 역사적 지식 두마리 토끼를 모두 겨냥하고 있다.

안겨레 투캉프로젝트 대표는 “역사를 게임으로 재미있게 풀어 대중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간다는 취지에 공감해 동참하게 됐다”라며 “최근 새롭게 개발 중인 ‘난세의 영웅 리뉴얼(가칭)’의 근현대사편을 광복절과 같은 역사적 의의가 있는 날 공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게임인재단은 “그동안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음악 등이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사랑받아왔다”라며 “이제는 게임의 차례며 역사도 하나의 IP가 되어 게임의 인기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시 “난세의 영웅을 시작으로, 3.1혁명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는 더 많은 역사 나눔 게임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2018-03-31> 블로터

☞기사원문: 게임인재단-민족문제연구소, 역사 기반 게임 개발 지원

※관련기사

더코리아뉴스: 게임인재단, 역사 기반 게임 개발 지원하는 Game x History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시작

☞서울경제: 게임인재단,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시작

☞스포츠경향: 게임인재단,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시작

더게임스: 게임인재단 등 역사 기반 게임개발 지원

 

토, 2018/03/31- 17:13
156
0

가톨릭대학교 법학전공 행정법전임 이민영교수입니다. 어제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

인권위(국가인권위원회)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및 인권위 독립성 회복 등을 강력히  촉구함

글로  남겼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링크(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181743)를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2018. 4. 1.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 가톨릭대 법학전공 이민영 배상

일, 2018/04/01- 09:29
2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