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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극 〈국부〉와 박정희 우상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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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극 〈국부〉와 박정희 우상타파

익명 (미확인) | 금, 2017/07/28- 14:41

6월 10일부터 18일까지 박정희 신화를 소재로 한 연극 〈국부〉가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2017 시즌 프로그램으로 공연되었다. 연극 〈노란봉투〉의 전일철이 연출한 공동창작 작품으로 같은 소재로 작년에 올려진 〈해야된다〉의 후속작인 셈이다(극단 돌파구). 〈해야된다〉는 “하면 된다”는 박정희 시절 구호를 비튼 것으로 최근 검열과 블랙리스트사태에 대한 연극인들의 답변인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프로젝트(6월~10월 대학로 연우소극장)의 참여작이기도 하다. 이 연작들은 작년 구미시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기획한 28억짜리 뮤지컬이 계기가 되었다. 이 기획은 논란 끝에 취소되었고 이제 역설적으로 전일철의 〈국부〉가 무대를 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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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국부〉의 포스터에는 북한 출신 작가 선무(線無, 휴전선은 없다)의 〈청소〉가 사용되었다. 하녀가 줄지어 걸린 액자들을 열심히 닦는 것처럼 무대 가득 액자의 틀이 설치되었다. 이 프레임 위를 배우들이 종횡하며 걸터앉기도 하면서 박정희로 상징되는 우상을 둘러싼 만화경이 펼쳐진다.
연극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는데 제1장에서 박정희를 경험한 사람들 그러나 찬양 일변도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간단한 박정희의 이력서를 들려준다. 그 다음엔 모세의 출애굽기를 ‘신화’의 모티브로 삼고 종장 ‘초인’에서 박정희 피살의 술판을 극화하고 있다.
나는 용케 6월 14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는데 전날 공연에서는 해프닝도 있었던 모양이다. 나이든 관객들이 대거(?) 오시는 바람에 공연관계자들을 긴장시키더니 급기야 공연 중에 퇴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박정희 찬양을 기대하고 온 분들은 아닌 듯하고 이게 찬양이지 뭐냐 하며 항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연극 〈국부〉는 박정희를 다루었지만 소재일 따름이지 그에 대한 복고가 아니다. 성서와 신화의 세계를 접목시키면서 발터 벤야민이 얘기한 근원적 폭력의 신성함 획득을 실감케 한다. 어느새 박정희와 겹쳐진 한국 기독교의 확산이 우리 정신세계에 여러 상징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국부〉의 제목을 일본식으로 굵직한 한자 글씨체로 무대 화면에 띄운 것은 일제 식민 유산을 연상시키도 한다. 이승만 등 면면히 이어지는 우상들의 수립과 교체과정에 대한 연작적 고찰이며 우상과 파시즘 문제를 화두로보편화시켜 보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신화 해체를 위한 설계도면처럼 구성요소들을 극적으로 나열하고 거울처럼 관객들에게 비춰주면서 아직도 그런 관념들과 판타지들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낯설고 그저 지난 시대의 낡음만을 느끼는지 확인해보시라고 제시하는 것만 같다. 종장 ‘초인’에서 나오는 피살 장면의 재구성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여러 시점들과 해석들을 드라마로 보여주고 있다.
그날 밤 등장인물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이 연극을 보고 기억하는 방식은 다 다른 모양이다. 잘못된 인과관계 파악과 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조건 반사적으로 형성된 신화들.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선택과 배제의 문제 등 논쟁적 요소들이 전문가들에겐 눈에 뜨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역사와 신화의 사이에서 역사를 하는 분들께도 연기가 가지는 성찰적 미덕을 느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공연 후 개인적으로는 연출가, 극장장, 평론가 등과 함께 조촐한 뒤풀이 자리에서 이모 저모를 더 듣는 호사도 누렸다. 세대 차이와 역사인식, 지식과 관람의 관계, 주체성 또는 시민의식의 형성과 편파적 추모방식의 강고함의 상관 등 여러 생각들이 표출되었지만 나로선 배우들의 몸의 언어를 통한 다양함의 광경 등 볼거리와 머리에 기억해둘 만한 장면들이 무척 많았다고 생각한다. 연극소개 사이트는 http://www.nsartscenter.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111. 팸플릿에는 충북대 이성재 교수의 논고 등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 조시현 연구위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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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2) 

 

이민우 운영위원장, 지난 514일부터 질문을 하고 있는데 답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다시 촉구하면서, 어제(6. 25) 올린 글에서 두번째로 언급한 중대한 내용에 대한 질문을 아래와 같이 다시 한번 올리니 답을 주기 바랍니다. 

(질문)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라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이유가 무언가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가

2018. 6. 25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화, 2018/06/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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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저는IDS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사건을 검색해보시면 제2의조희팔사건이라고 나옵니다.

김성훈은 무허가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여명의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등을 챙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만순변호사님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감방동기와 말도안되는 변제안을 만들어서 피해자들을 현옥시키는 머리좋은 사기꾼입니다.

피해자들중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을 도와주셔야죠.

IDS홀딩스사건을 제대로 봐주시고

파산사건을 다시한번 생각해주세요.

 

 

 

 

수, 2017/12/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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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금, 2018/09/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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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상범 교수님이 지난 10월 15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교수님은 2001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연구소 2대 소장을 지내셨으며 2002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끝으로 공식적인 대외활동은 거의 못하셨다. 그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으셨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어 설명하셨던 교수님, 실천하지 않고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지식 장사꾼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던 교수님을 더 이상 뵙지 못함이 안타깝다. 연구소 소장님으로 2년 남짓 모셨던 인연으로 몇 가지 교수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1991년 창립부터 10년 동안 봉사해온 김봉우 초대 소장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소장 직을 그만둔 후 후임 소장 물색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조문기 이사장님께서 신의 한 수처럼 모셔 온 분이 바로 한상범 동국대 법대 교수님이었다. 연구소로서는 천군만마요 야구로 치면 믿을만한 구원투수의 등판이었다. 왜냐하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법학계에서 한교수님만큼 친일청산의 중요성을 역설한 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1년 <한국법학계를지배한일본법학의유산>을 발표해 법학계의 일제잔재청산을 공개적으로 문제화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법문화와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일제잔재 무엇이 문제인가>등 제목만보면연구소가 펴낸책 이라고해도 믿을정도로 한교수님은 친일청산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역사법정에세우다><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에서 볼수 있듯이 독재와 불의에 대해서는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분이었다. 그야말로 준비된 구원투수의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연구소 소장 재임 시절 술을 전혀 안 하시는 이유를 여쭤보니 1980년대 초 평생 마실 술을 다 드셨다고 한다. 이유인즉 신군부 시절 불법으로 연행당해 며칠 동안 고초를 겪고 난 뒤 울화가 치밀어 매일 밤 독주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법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무법이 횡행하는 시절을 살아내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복기, 김기춘, 우병우 등 시대를 막론하고 늘 ‘법꾸라지’들이 난무했기에 교수님은 ????화있을진저 너희들 법률가여????라는책을펴내서법기술자들을질타했다.
또한 법 문구를 어렵게 만들고 난해하게 표현하여 특권층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며 <한글헌법 노트><한자숭배 나라망친다>는책을 펴내기도했다.법학자로서보기 드문 한글 사랑으로 한교수님은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번은 재일교포 단체 초청으로 일본을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재일교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교수님은 원고 없이 유창한 일본어로 잠시 강연하시더니 곧바로 “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왔으므로 이제부터 한국말로 연설하겠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신다. 실용에 앞서 자존을 중시하는 태도였다.
민족적 자존 나아가 인간의 존엄은 개성 출신으로서 6·25의 참화를 처절하게 겪어낸 한교수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따라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체제에 대한 본능적 저항은 한교수님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교수님은 멀리 지방 출장길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외출 때도 늘 작은 책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집일 때가 많다. 한번은 나에게 “시인 중에 누굴 좋아하시나?”라고 물으시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은 시와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회적 모순과 싸운답시고 자칫 거칠고 메마를 수 있는 감정을 다독이며 사회운동의 초심을 지키라는 조언이셨을 것이다.
지방 출장 중에 부득이 한방에서 묵어야 할 때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면서 늦은 시간까지 당대 인물들에 대한 평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당시 평판에 올랐던 인물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정권 때 중용되어 지금까지도 몇몇은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다.(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 인물평들을 녹음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밖에 서울 문래동 박정희 흉상 철거로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이 재판을 받을 당시, 법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법적, 역사적으로 박정희의 악행을 거론하며 흉상 철거는 정당하다고 저항권의 입장에서 무죄를 주장하던 한교수님은 피고인석에 선 우리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이제 연구소는 1991년 창립 이래 터 잡고 활동하던 동대문시대를 접고 용산시대를 연다. 동대문시대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성취했다면 용산시대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과 대중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동대문을 떠나며 가장 어려운 시절 연구소 2대 소장으로서 큰 역할을 해주셨던 한상범 교수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국가보안법? 허~ 참나. 머릿속의 생각을 벌주는 나라가 어딨어?”

방학진 기획실장

화, 2018/01/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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