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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인가, 변절자인가 – 둘로 쪼개진 ‘애국지사 김규환’과 ‘변절자 김이대’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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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인가, 변절자인가 – 둘로 쪼개진 ‘애국지사 김규환’과 ‘변절자 김이대’의 행적

익명 (미확인) | 금, 2017/07/28- 15:20

사건과 인물로 보는 우리 근현대사 · 27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을 기리는 독립유공자 선정에 필수적인 자료는 매우 많다. 특히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포상을 위해 후손들의 신청을 받거나 자체 조사로 발굴할 때 독립운동 행적의 근거로 삼는 주요 문헌 중 이 글의 주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는 채근식의 <무장독립운동비사> (대한민국공보처, 1949), ‘통칭’ 문일민의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그리고 ‘통칭’ 김승학의 <한국독립사>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김승학과 관련한 <한국독립사>의 발간에는 우여곡절이 있어서 현재까지
1965년 9월 초판발행본(독립문화사), 1970년 6월 상·하 두 권의 증보발행본(독립문화사), 1983년 3월 단행본으로 합친 증보발행본(독립동지회) 총 3종의 ????한국독립사????가 존재한다.
다만 김승학(1881∼1964)은 ????한국독립사???? 발간을 준비하던 1964년 12월 별세해 초판본(발행인 김국보)과 상·하권 증보본 발행 당시에는 편저자(증보편집 겸 발행인 김국보)로, 세번째 증보본은 김승학·김국보 공편저자로 발간되었다.
김국보가 1983년 증보발행본의 「발간사」에 밝혔듯이, 희산 김승학은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참여 시기부터 독립운동의 역사를 남기겠다는 뜻을 품었으며 해방 후 귀국해 40여 년에 걸친 자신의 독립운동 외에도 오랫동안 수집·보관한 자료를 토대로 문일민(1894∼1968)을 발행인으로 <한국독립운동사>를 발간했다(위에서 ‘통칭’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고 국가보훈처나 관련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문일민의 <한국독립운동사>, 김승학의 <한국독립사>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계획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어서 김승학 자신이 다시 집필하던 중 별세했고 유지를 이어 유족들이 김국보 등과 함께 작업해 1965년 초판본이 발간될 수 있었다. 국가보훈처의 경우 김승학의 <한국독립사>는 1970년 발간된 상·하 두 권의 증보본(독립문화사)을 활용하고 있다.
뜬금없이 장황하게 서지사항을 늘어놓은 이유는 총무처(현재는 국가보훈처 담당)가 1963년에 대통령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김규환의 독립운동 행적이 위의 세 자료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다만 공훈자료에 기록된 김규환의 독립운동 행적은 국내의 ‘대한청년당(단)’, 만주의 동창학교·일신학교 등 애국계몽운동에 한정되어 있으며 근거 문헌으로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와 <독립운동사> 5권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제공하는 독립유공자의 정보와 공적사항은 세 가지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① <독립유공자공훈록>(이하 <공훈록>), ②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나라사랑광장 인물찾기의 ‘독립유공자(공훈록)’, ③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 독립유공자 정보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등이다. ①은 책자로 되어 있어 이후 내용과 개인정보 등의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②③을 통해 온라인으로 수정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공적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개인정보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아무튼 이를 감안해 ① <공훈록> 제1권:애국계몽운동·의병전쟁편, 1986)과 ②③의 내용을 종합해 「김규환」의 항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규환(金奎煥)
– 출생지(②) : 평북 선천
– 본적지(③) : 경기도 고양
– 생몰년 : 1890.6.12∼1941.1.13(②) ; 1890.5.25∼1935.1.10(③은 오류임-필자)
– 이명 : 없음
1909년 남형우(南亨祐)·안희제(安熙濟)·이원식(李元植)·이시열(李時說)·윤세복(尹世復)·박중화(朴重華)·김동삼(金東三)·배천택(裵天澤)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1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1911년 5월 만주 봉천성 환인현(桓仁縣)으로 망명하여 윤세복 등과 함께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설립해서 교포들에게 독립사상 고취와 구국교육을 실시하였다.
동창학교가 폐쇄된 후에는 1915년 6월에 김광제(金光濟, 김공제 金公濟의 오류임-필자)2·이시열 등과 함께 흥경(興京)현 동로홍묘자(東路紅廟子)에 일신학교(日新學校)를 설립하여 독립사상을 교육하였다. 일신학교는 1916년에 흥동학교(興東學校)로 개칭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註·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1면·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93·126면

그러나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김규환으로 판단되는 인물’은 1920년대 만주를 무대로 광한단(光韓團), 통의부·정의부·국민부, 조선혁명당 등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1. ③의 ‘공적조서’에는 “1909년 조직된 大同(大東의 오류-필자)靑年黨員으로 활약(항일순국의열사전 P.71, 한국독립운동사 P.91”으로만 소개되어 있다. <항일순국의열사전>은 오재식 편술로 1958년 애국정신선양회에서 발간한 것을 말한다. 다만 명칭은 ‘대동청년단’이라는 기록도 있다(<大倧敎重光六十年史>, 1971 ; 이동언, 2010 <안희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 강덕상의 <현대사자료> 27은 일본 외무성 자료에 기록된 ‘金公濟’의 誤植임에도 ????독립운동사???? 5는 원자료 확인없이 ‘金光濟’ 로 인용하면서 오류가 발생했다.


 

근거 문헌은 다름 아닌 위에서 언급한 김승학의 <한국독립사>가 핵심이다. 다만 <한국독립사> 등에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 필자가 언급한 ‘김규환으로 판단되는 인물’의 행적이 ‘김이대(金履大)’의 행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규환과 김이대가 동일인이라는 판단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가?
김승학이 발간에 관여한 <한국독립사>·<한국독립운동사>에는 간혹 “변절”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은 특정 인물이 한때 독립운동을 했지만 어느 시점에 일제에 협력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독립운동가 김승학·문일민’이 필생의 업적으로 남긴 자료에 직접 “변절”을 지목했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독립사>·<한국독립운동사> 등에 독립운동 관련 행적은 ‘김규환’으로, 이외 1920년대 만주에서 활동한 행적과 “변절” 행적은 ‘김이대’로 기록되어 있어 언뜻 두 사람을 별개의 인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김규환’은 애국계몽운동 계열 독립운동으로 서훈이 추서되었고 ‘김이대’는 변절자로 분류되어 서훈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모든 자료를 비교해 볼 때 김규환과 김이대는 ‘동일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독립사>·<한국독립운동사> 등에 기록된 1920년대 ‘김이대’의 행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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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29.12.5. 2면

 

이처럼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이대가 왜 변절했을까? 사실일까? 한동안 의문만 갖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김이대의 변절’과 관련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매일신보>에 보도된 김이대의 체포 기사이다. “[신의주] 국민부 지방(집행의 오기-필자)위원장 김이대와 동부 혁명군 제1지휘장 이웅은 지난 11월 초 신빈현에서 중국관헌의 손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는 중이라는데 국민부의 맹렬한 운동으로 중국관헌은 전기 범인을 석방할지도 모른다 하여 총독부 당국에서는 이를 주시중이라더라”(「구금된 국민부 집행위원장, 부원이 석방운동」).
체포 이후 김이대의 행적은 알 수 없지만 다음 두 자료에는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어느 때, 적어도 1935년 전후 시기에는 김이대가 변절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
첫 번째 자료는 <삼천리>(1936.1)에 필자 미상의 글로 소개된 ‘만주의 조선인 낭인들’ 중 「김이대」 항목이다. “씨는 한동안은 운동의 거물로서 XX부의 한사람으로 있었으나 사변(만주사변-필자) 이후에는 귀순하여 협조회위원회장(協調會委員會長)의 직을 맡았다고 한다”(「만주와 북중국의 백의풍운아군(白衣風雲兒群)」).15

두 번째 자료는 조선민족혁명당 기관지 <전도(前途)> 제13호(1937.5.24)에 실린 「사설: 적의 전술」 중 일부 내용이다. “반동의 수괴라고 할 수 있는 자로 조선 내에서는 최린·최남선 등이 있으며, 이들은 3·1운동을 통해 소위 애국지사가 되어 노(老)선배라는 허명으로 전해지고 있다. 만주에는 김이대가 있다. 김이대는 과거 만주에서 만주동포참살의 혈채(血債)를 산적(山積)했는데 지금은 적의 협화회(協和會)의 수괴로 만주에서 적과 악전고투하는 혁명동지를 계속 도살하는 음모에 몰두하고 있다. (중략-원문) 목하 적의 음모의 마수는 조선민족혁명당 파괴에 이르고 있다”(「출판물허가의 이유 및 기사 해당요지(집무자료)」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06호, 1937.7).
출판 ‘금지사유’로 “제국의 대륙정책을 비방 곡설함으로써 국제관계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민족의식을 앙양하므로”라고 밝히고 있다.
정리하면 김이대는 1929년 11월 초 중국관헌에 체포되어 ‘아마도’ 조선총독부에 인계되어 회유와 협박을 받았을 것이고,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1935년 전후에 변절해 ‘간도협조회’와 ‘만주국협화회’의 간부로 활동한 것이다. 1935년 전후 변절로 추정하는 이유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이 제공하는 자료에 김이대가 1933년 말경까지 흥사단(興士團) 원동(遠東) 제5반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또 간도협조회(일명 선민협조협회·조선인협조협회)가 1934년 9월 옌지(延吉)에서 조직되어 ‘반만(反滿) 항일운동’의 예봉을 꺾고 만주국의 ‘치안유지’ 공고에 앞장선 친일단체이고 1936년 12월 만주국협화회로 합병되었으므로 위 두 자료의 김이대의 행적과 일치한다. 따라서 간도협조회 설립(1934.9) 이후 만주국협화회로 합병(1936.12) 이전인 1935년 전후에 변절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김규환의 독립운동 행적과 김이대의 변절 행적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김규환과 김이대가 ‘동일인’이라는 것은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결정적인 단서는 김이대가 흥사단에 가입하면서 제출한 「흥사단우 이력서」(이하 「이력서」)에 원래 이름이 ‘김규환’이라고 직접 기록한 것이다.
「이력서」는 도산안창호선생전집편찬위원회 편, <도산안창호전집> 제10권:동우회Ⅱ· 흥사단우 이력서(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0)에 원본이 수록되어 있다(한국독립운동정보 시스템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흥사단 단우는 ‘통상단우’, ‘특별단우’, ‘예비·기타 단우’로 분류된다. 통상단우는 제1∼제309단우까지 단우번호가 부여되어 있으며 단우번호 없이 ‘특별단우’ 36명, ‘예비·기타 단우’ 110명 총 455명의 ‘단우 이력서’가 확인된다. 김이대는 평양 대성학교 출신으로 ‘동우구락부’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26년경 흥사단에 입단한 것으로 봐서는 ‘수양동우회’ 시기로 추정된다. 김이대는 ‘예비·기타 단우’로 분류되어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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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평북 선천 출생의 김이대가 1926년 흥사단에 가입했으며 이전 이름이 “(김)규환·(김)검군·사헌”이라고 했으므로 ‘직업’란의 행적과 김규환·김이대로 각각 검토했던 행적이 100% 일치한다. 특히 「이력서」를 통해 김규환=김이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김이대의 ‘가족’란 기록 중 “처 : ○씨, 자 : ○○·○○”와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되어 있는 ‘애국지사 김규환’의 가족관계 및 출생지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 「이력서」 ‘단체’란에 마지막 행적이 정의부라는 기록과 김승학 등의 자료에서 정의부 관련 행적(<대동민보>주간)이 1926년 9월 전후라는 기록도 일치한다.


3. 흥사단은 1913년 5월 안창호의 주도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되어 무실·역행·충의·용감의 4대 정신을 지도이념으로 일제강점기 국내외에 지부를 설립하고 실력양성운동에 힘썼다. 국내에도 조직사업을 펼쳐 1922년 서울에 수양동맹회를, 1923년 평양에 대성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동우구락부를 결성했으며 두 단체는 1925년 수양동우회(1929년 동우회로 개칭)로 합쳤으나 1937년 이른바 ‘동우회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김규환=김이대가 3부통합으로 성립된 국민부에서 활동하다가 1929년 11월 체포되었으며 1935년 전후 변절해 간도협조회와 만주국 협화회에서 활동한 정황은 김승학이 <망명객행적록>에서 밝힌 것에서도 확인된다. 김승학은 1930년대 중반 환인현 일본영사관 소속으로 독립운동가를 귀화시키는 사업에 앞장섰던 인물이 ‘만주국 선무반 책임자 김이대=김검군’이라고 지목했다. 이것은 김이대가 「이력서」에 기록한 이전 이름 중 ‘검군’이라는 사실과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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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4월 12일 평양부 암정(岩町) 형무소에서 출옥 …… 자식 3형제 중에 2인은 전일(前日) 참의부 소재지인 남만주 환인현 방면으로 간 지가 2년이라고 한다. …… 그해 8월에 자식형제를 찾기 위하여 다시 남만주 환인현으로 들어갔다. …… 자식의 소재처를 탐문한 즉 수삭(數朔) 전에 환인현 왜(倭) 영사관에 피착되어 간 후 소식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이후 환인현 성리(城裡)로 갔더니 성내는 전일에 독립군 간부 인물로 명성을 날리던 김모(金某), 고모, 문모, 최모, 변모 제인(諸人)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선무반(宣撫班) 명색(名色)으로 세력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선무반에서 하는 업무는 전일의 독립운동자들을 만주국에 귀화시키는 사업인 것이다. 나는 증전(曾前)에 안면이 있던 김모를 찾아가서 자식의 행방을 탐문하였다. 이때 그의 답은, ”선생의 자제 영달(榮達), 영저(榮渚) 형제는 수년 전에 이곳 환인·통화 경내에 와서 외면으로는 농업을 하노라 하면서, 이면으로는 선생의 구(舊) 동지들과 연락하여 비밀음모를 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때 그의 다음 말을 듣기 위하여 듣고만 있었다. 그는 다시 말하기를, “지금이라도 선생이나 자제가 이 선무반에서 같이 행동하신다면 무사할 것 아니겠습니까?” ……
그 이튿날 봉막돌(奉莫乭)이라는 청년이 내 여관으로 찾아왔다. 그는 환인현 동영영구(東英英溝)에서 백가장 일을 보던 봉태주(奉泰周)의 차남으로 이전에 영영구 보안대원으로 근무하던 자로서 지금은 만주국 선무반에서 저들과 같이 독립군 귀화설론(歸化說論)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다. …… 그의 말은 이러하다. “어제 밤 우리(만주국 환인현 일본영사관 소속-필자) 선무반 책임자 김검군(金劒君) 선생님네가 말씀하시는 것을 듣사온즉 선생님이 오신 듯 하기에 지금 찾아왔습니다. 감옥에는 언제 나오셨으며,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나는 이 말을 듣고 간단하게 아래와 같이 답하였다. “자네의 상관인 김검군(金劒君)을 만나게 되어 사실을 묻고 있는 중일세. 자네 혹 내 자식 형제들에 대해 들은 일이 없는가?” …… 전일에 환인현에서 김이대(金履大)가 나를 보고 선무반에 참가하면 내 자식을 방송한다고 하던 것이 그들의 음모임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단기는 서기, 밑줄·강조 등은 필자)

<망명객행적록(亡命客行蹟錄)>은 김승학이 78세 때인 1958년에 자신의 일생과 독립운동일대기를 회고한 글이다. 후손 김병기가 일부 내용을 현대적 표기로 수정·보완하여 원문 전체를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12집(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1998.12)에 처음 공개하였다. 이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문체와 문장 등을 쉽게 다듬어 2011년 후손(막내 손자) 김창업(사단법인 희산김승학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단행본으로 발행하였다.
지금까지 ‘독립운동가·애국지사 김규환’과 ‘변절자 김이대·김검군’은 동일인이라는 것을 추적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규환이 김이대라는 근거는 「흥사단우 이력서」와 ????망명객행적록????,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되어 있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이대가 ‘만주사변 후 변절’했다고 기록한 <한국독립사>와 <한국독립운동사>는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가의 행적으로 인용하는 1차적인 근거자료이다. 이 두 자료가 변절자로 기록한 김이대는 1929년 11월 중국관헌에 체포되었으며 조선총독부가 이를 주시하고 있다는 <매일신보>의 기사도 확인된다. 다만 1933년 말까지 흥사단원으로 활동한 것이 확인된 만큼 변절 시기는 간도협조회 조직(1934.9)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1935년 중반에 ‘김이대=김검군’이 환인현 일본영사관 소속으로 만주국 선무반 책임자이며 독립운동가의 귀화업무를 담당했다는 기록(<망명객행적록>), 그리고 그 단체가 간도협조회이며(<삼천리>) 간도협조회가 만주국협화회로 통합된(1936.12)후 ‘김이대’가 “협화회 수괴로 만주에서 적과 악전고투하는 혁명동지를 계속 도살하는 음모에 몰두”하고 있다는 자료(<전도>, <조선출판경찰월보>) 등을 통해 ‘김규환・김이대・김검군’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김규환의 독립운동 행적과 김이대·김검군의 변절 행적은 언젠가 학술적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공훈자료에는 김규환의 애국계몽운동 행적만 드러나 있지만 그가 김이대와 동일인으로 확인되었으므로 독립운동 관련 행적도 새로 정리되어야 한다. 예컨대 김규환과 윤세복·이시열은 대동청년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모두 동창학교·일신학교(1916년 흥동학교로 개칭)와 관계가 있다. 전자는 대종교 제3세 교주 단애 윤세복(1881∼1960)이 1911년 5월(음력) 설립한 학교이고, 후자는 대종교인(호 단총)으로 이후 불교에 귀의한 이시열(1892∼1980, 운허큰스님)과 함께 1915년 6월에 직접 설립한 학교이다. ‘검군’이라는 별명도 대종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김규환의 독립운동 행적과 김이대의 변절 과정 및 이후의 행적은 이민족의 통치를 받던 엄혹한 시기에 겪었던 동일한 인물의 노정이다. 동시에 우리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기록이기에 반드시 제대로 정리되어야 한다.

∷ 이용창 편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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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一人當年平均所得三萬弗

 

數値衆民笑(수치중민소)

朝廷不答酬(조정부답수)

誰貧誰大富(수빈수대부)

或者唱狂謳(혹자창광구)

 

국민 한 사람當 연평균 소득 三萬 달러

 

셈한 값에 많은 백성이 비웃건만

朝廷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네

누가 가난하며 또 누가 大富인가

어떤 者는 미친 노래를 부른다네.

 

<時調로 改譯>

 

많은 백성 비웃건만 朝廷은 대답 않네

누가 가난뱅이며 또 누가 큰 富者인가

오호라! 어떤 사람은 狂歌를 부른다네.

 

*數値: 계산하여 얻은 값 *衆民: 많은 백성 *答酬: 수답(酬答). 묻는 말에 대답함.

 

<2019.2.25, 이우식 지음>

월, 2019/02/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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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풍·엔카풍도 수두룩…도교육청, 친일 교가 개선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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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교육청 청사 전경 [전북교육청 제공]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전북 지역 학교 25곳이 친일 작곡가나 작사가가 만든 교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도 교육청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도내 모든 초·중·고교 교가를 분석한 결과 25개 학교가 친일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25일 밝혔다.

교가에 일제 잔재가 남은 것으로 파악된 학교는 초등학교 5곳, 중학교 20곳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성태와 이홍렬이 각각 8곳, 김동진이 6곳, 현제명이 2곳, 김기수가 1곳의 교가를 작사 혹은 작곡했다.

친일 작곡가 제자들이 만든 교가도 적지 않고, 1950년대 이전 개교한 학교 중에 일본 군가풍, 엔카 풍 교가도 상당하다는 게 도 교육청의 설명이다.

이들 교가에는 ‘조국에 바쳐’, ‘○○학도’, ‘이 목숨 다하도록’ 등 표현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교육청은 전북중등음악연구회를 중심으로 친일 교가 개선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우선 25개교 중 희망학교를 대상으로 작곡이나 편곡 등을 지원한다.

전북교육청은 현재 교육 방향이나 시대정신에 동떨어진 가사는 학교 구성원들과 협의를 거쳐 개선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역사교육도 강화한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는 ‘사제동행 국회 역사체험학교’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 ‘역사 인문학 캠프’ 등 학생 참여 중심의 역사교육을 한다.

역사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담은 역사교육으로 아이들을 건전한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02-25> 연합뉴스

☞기사원문: 전북교육청 “25개 학교 교가 친일인물이 작사·작곡”(종합)

※관련기사

☞뉴스1: 전북교육청, ‘일제 잔재’ 교가 교체 운동 본격 추진 

☞노컷뉴스: 일제 대표하는 ‘군가’와 ‘엔카’, 교가 사용 학교 수두룩

☞서울신문: 전북 학교 25곳 교가 친일 작곡·작사가가 만들어

☞포커스데일리: 전북도교육청, 역사바로 세우기 앞장선다 … 3·1운동 100주년 맞아 

월, 2019/02/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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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희 교육감 기자회견 열어 친일잔재 청산, 친일인명사전 배부 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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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25일 오전 울산시 중구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2019.02.25. (사진=울산시교육청 제공)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시교육청이 교육현장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는 동시에 친일잔재 청산에 나선다.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25일 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했다.

노 교육감은 이날 “시교육청은 대한민국 건립의 뿌리인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교육 독립운동 찾기에 나선다”며 “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 독립운동과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교사, 학생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그 뜻을 바로 새기고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열어갈 새로운 100년이 바르게 기록된 역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미래가 되길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노 교육감은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구체적인 사업으로 ▲항일독립운동 관련 학교와 학교터에 QR코드가 포함된 표지판 설치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 ▲사업 추진연구회 연구결과 알리기 ▲교육 분야 친일잔재 청산 ▲관내 중·고등학교에 친일 인명사전 배부 ▲울산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동참 등을 추진한다.

먼저 병영지역 3·1 만세운동이 시작됐던 병영초등학교(옛 일신학교)에서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을 통해 QR코드를 시연한다.

병영초 뿐만 아니라 시교육청과 울산초, 울산노동역사관, 보성학교터, 언양초 등에 표지판을 설치해 울산교육 독립운동 역사체험 지도를 만든다.

이를 통해 휴대전화로 손쉽게 연구자료와 영상, 사진 등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학교 중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관내 학교에서 차례대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 현판 제막식을 연다.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사업으로는 오는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교육분야 독립운동가들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해 기념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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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배병수 기자 = 6일 울산시 중구 병영사거리 일원에서 울산광역시중구문화원(원장 박문태) 주관으로 열린 제99주년 울산 병영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에서 참가들이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2018.04.06. [email protected].

보성학교 설립자인 성세빈 선생과 서진문, 이효정, 이무종, 박상진, 최현배 선생 등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한다.

공훈록과 신문잡지 자료, 학적부, 졸업대장, 재판기록 등을 일괄 조사해 알려지지 않은 학생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기록하고 추모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해 9월 발족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연구회의 연구결과를 심포지엄, 보고회, 전시회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지역화교재에 울산의 독립운동을 담는다.

친일잔재 청산과 관련해서는 TF팀을 구성해 학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을 거쳐 교육계에 남아있는 친일잔재 사례를 정리,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또 친일잔재 청산을 국어와 역사, 음악 교과학습에 연계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학습활동을 권장한다.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친다.

아울러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명사전을 관내 중·고등학교에 배부한다.

노 교육감은 “시교육청은 일회적 기념사업이 아니라 연간 지속사업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에 나서겠다”며 “대한민국의 튼튼한 기초를 세웠으나 잊혀진 독립운동 교육자를 찾아내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은 오는 27일 오전 10시 울산시 중구 병영초등학교에서 열린다.

[email protected]

<2019-02-25> 뉴시스 

☞기사원문: 울산교육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발표…QR코드 표지판 설치 등

※관련기사

☞연합뉴스: QR코드로 알리는 학교 독립운동사..울산 3·1 운동 기념사업

☞노컷뉴스: ‘학교 친일잔재 청산’ 교육분야 항일독립운동 알린다

월, 2019/02/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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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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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9/02/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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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민족문제연구소 공동발표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인물 동상도 7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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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관계자가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초∙중∙고교 100곳 이상이 친일인사가 등재된 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의 동상을 세운 학교도 7곳이나 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교가를 작사 또는 작곡한 학교는 113개교에 달했다. 초등학교가 18개교, 중∙고등학교는 95개교였다. 설립유형으로 보면 사립이 73개교(64.6%)로 40개교인 공립(35.4%)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여기엔 서울대사범대학 부설초, 영훈초, 창덕여중, 숙명여고, 휘문중∙고 등이 포함됐다. 성남중∙고교는 친일인사가 작사∙곡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교가에 친일파였던 이 학교 설립자 원윤수와 김석원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의 동상 등 기념물이 있는 학교는 7곳으로 파악됐다. 중앙고와 고려대에는 두 학교의 설립자로 알려진 김성수의 동상이 있는데, 김성수는 조선방송협회 평의원 등 친일단체 간부를 역임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고려대 학생들은 꾸준히 김성수 동상 철거를 요구해왔다. 휘문고에는 대표적 친일 자본가로 알려진 민영휘의 동상이, 상명대에는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한 배상명의 동상과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가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공동 TF팀을 꾸려 교육계 친일잔재에 대한 전수조사와 청산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email protected]

<2019-02-26> 한국일보 

☞기사원문: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파가 만든 교가 사용” 

※관련기사 

☞연합뉴스: “서울 학교 곳곳에 친일잔재…일왕 찬양 의혹 교가도” 

☞뉴시스: “서울 초중고 113곳,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사용” 

☞KBS: “서울 초·중·고교 113곳 교가, 친일파가 작사·작곡”

☞노컷뉴스: 학교에 ‘친일파’ 동상·기념관·교가…서울에만 100곳 넘어 

☞뉴스1: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인사 작사·작곡 교가 써”

화, 2019/02/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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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국 곳곳에 3·1운동과 항일투쟁을 기리는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는데요.

이 기념비마저 일제식으로 세워진 곳이 많습니다.

친일 잔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건데 서둘러 바로 잡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보도에 유승용 기자입니다.

[리포트]

3·1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당시 투쟁을 소개하고 이끌었던 인사들의 이름도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의 사각뿔 모양이 일본 황실의 무력을 상징하던 일제의 충혼비와 같습니다.

바로 옆에 세워진 독립운동 인사 숭모비도 마찬가집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세워진 기미독립선언 기념비도 같은 모양을 했습니다.

일제가 ‘황국신민’이 되기를 강요하며 전국 곳곳에 세웠던 비석 모양 그대로 독립운동으로 내용만 바꿔 다시 만든 겁니다.

이처럼 일제식으로 세워진 독립운동 기념비는 보훈처에 등록된 현충시설에만 10여 개,

미등록 시설의 기념비와 군대와 경찰 충혼비까지 포함하면 일제식 기념비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김순흥/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 “기단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위에는 뿔 모양이 이런게 일본의 충혼비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이런 걸 세웠단다 하는 안내판을 세울 필요는 있죠.”]

독립운동 기념비에까지 스며 있는 일제의 잔재.

선조들의 항일 운동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바로잡는 일이 시급합니다.

KBS 뉴스 유승용입니다. 

<2019-02-26> KBS 

☞기사원문: 독립운동 기념비마저 ‘일본식’…“서둘러 바로잡아야”

화, 2019/02/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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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도 고양시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김동진 작곡가가 지은 ‘고양시의 노래’를 사용 중단한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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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동진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노래를 작곡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인물로,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돼 있다.

그는 고양시의 노래 외에도 대한민국 군가 등 다수의 곡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전국 초중고 교가, 시가 등 많은 관공서의 공식 노래에 김동진을 비롯한 친일 음악인의 손길이 미쳐 있다.

고양시는 ‘고양시의 노래’를 시가(市歌)로써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고, 시민 공론화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시가를 보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시는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시민이 잘 알지 못하지만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찾기’에 나선다.

일본군 군사기지로 추정되는 고양 시내 육군 A 사단 탄약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덕은동 쌍굴터널 조사 등이다.

이재준 시장은 “역사의 청산은 정치적 논쟁이 아닌 성장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라며 “점차 잊혀져 가는 일제의 흔적은 역사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보존하고, 항일운동의 정신은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의 정신으로 승화해 그 불씨를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19-02-26> 연합뉴스 

☞기사원문: 고양시, 친일파 김동진 작곡한 ‘고양시의 노래’ 사용중단

※관련기사 

☞뉴시스: 이재준 고양시장 “친일파가 작곡한 고양시歌 사용 중단”

화, 2019/02/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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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글론지… 근론지

한다꼬

밥무꼬  살마돼지  말라  비엠인지…W륜지 그래 산노?

친구야 오늘  니한테  마니 미안해가꼬,

여는 마산 회원구 봉암동 창힌핵죠 부그이다.

하모하모 바로 미테아이가

…..그래 링게루 좀주리자 !

니가아이고 내가

고래 통기 기다리꾸마?1

진천총국호양은  군고향 오마이중  둥기둥청….!

유관순들  안중근들  극장  하지말게

 

호영드리며,…..

 

화, 2019/02/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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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질도 좋아져서 낭비가 되는것 같아  e-mail을 이용 PDF파일로 받았으면 합니다.

수, 2019/02/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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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口增減(인구증감)

 

水來風去事(수래풍거사)

孰挽孰能防(숙만숙능방)

若此人增減(약차인증감)

官衙豈太忙(관아기태망)

 

인구의 늚과 줆

 

물이 흘러오고 바람이 떠나는 일

누가 말리며 누가 능히 막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이와 같거늘

官衙에선 어찌 그리 몹시 바쁜가.

 

<時調로 改譯>

 

물이 오고 바람 떠남 누가 어찌하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바로 이와도 같거늘

오호라! 官衙에서는 어찌 그리 太忙한가.

 

*增減: 많아지거나  적어짐. 늘리거나  줄임.  증손(增損)  *若此: 이러함 *官衙: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서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 공당(公堂). 공부(公府).

 

<2019.2.27, 이우식 지음>

수, 2019/02/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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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3

“3.1혁명 100주년 특집편성_만세열전 2부”

팟빵링크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9/02/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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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3

“3.1혁명 100주년 특집편성_만세열전 1부”

팟빵링크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9/02/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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