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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친일 논란’ 박경원이 최초 여성 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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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친일 논란’ 박경원이 최초 여성 비행사?

익명 (미확인) | 화, 2017/07/25- 13:47

국립여성사전시관, 순회전시 논란
‘최초 여성 비행사’로 애국지사 권기옥 아닌
‘친일 논란’ 박경원으로 소개하는 전시 열어
권 지사 아들, 권현 “무책임한 행동” 비판
여성사전시관 “최초 민간 여성 비행사인데
제목 오기일 뿐, 고의 아냐” 해명

국내 유일의 여성사박물관인 국립여성사전시관이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여성비행사 박경원(1901~1933)을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고 소개하는 순회전시를 진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가 권기옥(1901~1988) 지사를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고 발표한 상황에서 국립박물관인 여성사전시관이 잘못된 사실을 토대로 전시를 기획했다는 점에서 전문성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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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5일부터 7일까지 성남시청 1층 누리홀에서 여성사 특별 기획 전시 모습. 사진 왼쪽에 위치한 박경원 패널은 그를 ‘한 마리 푸른 제비로 비상했던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성신문

국립여성사전시관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여성가족부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여성 역사·문화 전시 공간이다. 여성사전시관은 ‘양성평등주간’ 기간이던 지난 7월 5일부터 7일까지 성남시청 1층 누리홀에서 여성사 특별 기획 전시를 열었다. 여성사의 가치를 확산하고 전시관을 홍보하기 위한 순회전시였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경계를 넘은 여성들’로 전통사회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배경에 따른 여성 노동사를 다뤘다. 7월 6일 전북도청에서도 같은 내용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번 순회전시 중 문제가 된 내용은 ‘선구적 여성들’이라는 주제 아래 근대부터 1950년대까지 활약한 여성을 조명한 부분이다. 해당 전시에서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와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함께 박경원이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소개됐다.

여성사전시관은 박경원을 가리켜 ‘한 마리 푸른 제비로 비상했던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고 소개했다. 상세 내용에는 “1925년 일본 도쿄 가마다 자동차학교를 거쳐 1927년 가마다 비행학교를 졸업, 3등 비행사 자격증을 받아 한국여성 최초로 민간비행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친일 논란이 있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박경원이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보훈처는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를 권기옥 지사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권 지사는 3·1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중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추천으로 1924년 중국 운남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교한다. 이후 1년 2개월여 만인 1925년 2월 졸업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됐다. 지난해 국가기록원이 복원한 권 지사의 항공학교 필업증서(졸업장)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비행사가 된 권 지사는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날아가서 조선총독부를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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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애국지사 ⓒ국가보훈처

반면 박경원은 일본 다치가와비행학교에 입학해 1927년 1월 일본제국비행협회가 주는 3등 비행사 면허증을 받았다. 권 지사보다 2년 느리다. 그 후 1933년 일제의 만주국 건국 1주년 기념 ‘일만친선 황군위문 일만연락비행’을 하던 중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조선이 아닌 일제를 위해 하늘을 난 것이다.

여성사전시관이 박경원을 소개한 문구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문화콘텐츠닷컴’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창작자를 위해 역사, 민속 등 우리 문화의 원형을 디지털콘텐츠화해 제공하는 문화콘텐츠닷컴을 운영한다. 여기서도 박경원을 한국여성 최초로 민간비행사라고 알리고 있다. 같은 자료를 활용하는 ‘네이버 지식백과’도 똑같은 내용으로 박경원을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소개하고 있다.

‘최초’ 논란은 지난 2005년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청연’이 개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영화 제작사가 영화를 ‘최초 여성 비행사 스토리’로 홍보했으나 역사학자들과 독립유공자의 항의로 ‘최초의 민간인 여성 비행사’라고 홍보 문구를 바꾸기도 했다. 2015년에는 여성가족부가 어린이 성평등 교육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에 친일 전력으로 논란이 있는 박경원과 최승희 등을 ‘최초의 여성 인물’로 소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여가부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의뢰, ‘최초 여성 비행사는 박경원이 아니라 권기옥’이라는 회신을 받고 이를 홈페이지에 반영했다. 이번 순회전시에서도 박경원과 함께 최승희도 ‘선구적 여성들’로 함께 소개됐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여성사전시관 A 학예사는 “제목에는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고 나갔지만 상세 내용에는 ‘최초 여성 민간 비행사’라고 설명하고 있다”며 “제목에서 ‘민간’이 빠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A 학예사는 또 “(전시 전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라고 생각했지, 권기옥으로 (최초 여성 비행사가) 굳어진 것은 몰랐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박경원은 친일 성격이 강하고 권기옥은 독립투사로 활동했다”고 말해 박경원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국립여성사전시관장이 해당 사실을 알고서도 방치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전시관 직원 B씨는 “순회전시 기획안에서 ‘최초의 여성 비행사’를 박경원으로 잘못 기재한 사실을 발견하고 관장에게 문의했다”고 주장했다.

정현주 국립여성사전시관장은 이에 대해 “사전에 양쪽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해 놓친 것은 제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성남에서 열린 전시는 3일 동안, 전북에서는 4시간 동안 열렸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해당 기관에 제목 정정에 대한 공문을 보내 큰 오류는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제목에 ‘민간’을 넣지 않았을 뿐, ‘최초 민간 여성 비행사’라는 사실은 틀리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권기옥 지사의 아들인 권현 광복회 이사는 이 같은 해명에 대해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에게 ‘최초’를 부여해 친일 이력을 희석하려는 것 아니냐”라며 “박경원에게 자꾸 ‘최초’를 부여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권 이사는 “아직도 영화 ‘청연’ 주인공이 권기옥 지사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영화나 드라마, 전시회 등 문화는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으므로 그만큼 검증과 사실 전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7-07-22>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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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역사강좌] 제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 산미증식계획 ②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8강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 산미증식계획 ②
강사 :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화, 2017/07/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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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대 위험없는 군사옵션, 과연 존재하는가?
(연합뉴스tv)

[앵커]
미국 매티스 국방장관이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 방안이 존재한다 이렇게 언급했는데요.

이외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북한과 관련된 강경 발언들을 일삼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군사옵션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재선 정치안보 전문기자 연결합니다. 이재선 기자!

계속 강경발언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미중정상회담 직전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와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핵실험, 미사일발사 때마다 강경발언들을 쏟아왔습니다.

지난 8월 “화염과 분노”, “가만두지 않을 것” 등의 발언들이 이어졌고 유엔 대북 제재안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한 옵션에는 전술핵배치·참수작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과연 그러한 옵션이 가능할까요?

[기자]
이중 참수작전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과거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할 때 미군 특수부대가 들어갔죠.

네이비 실 팀이 들어갔는데 이런 특수부대가 평양에 들어가서 이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작년 아프간에서 탈레반 지도자 만수르를 제거할 때는 스텔스 무인기를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로 해서 참수작전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과연 서울은 어떻게 되겠는가가 문제입니다.

결국 공격형 무인기를 동원하는 군사옵션을 선택한다고 할 때 북한의 지도부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가 됩니다.

[앵커]
지금 한미 정보력이 그 정도까지 가능한가요?

[기자]
그것이 바로 킬체인 개념인데 북한의 지도부 움직임을 과연 포착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앵커]
실패할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기자]
실패를 하게 될 경우 서울은 전면전을 피하기 힘듭니다. 전쟁 직후 8분안에 수만개의 북한 방사포가 서울을 날라옵니다. 8분안에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평소 대피훈련을 해온 주한미군 가족들과 외교관 등일 것입니다.

결국 참수작전이 조금이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전면전이 벌어지고 10분안에 수도권 2300만명 중 절반이상에 위험에 노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앵커]
그런데 왜 참수작전을 언급하는 것인가요?

[기자]
일종의 북한에 대한 협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런 말들이 자주 언급될수록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발언들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발언들이 북한 뿐 아니라 한국 국민들에게도 불안감을 주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9월 9일 북한 행사장을 폭격하겠다는 발언을 해서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었죠?

다행히 아무일이 없이 지나갔지만 이런 발언들이 자주 있게 될 경우 오히려 북한을 더 자극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빈도를 높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발언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전쟁에 대한 불감증이 오히려 커져서 막상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누구도 대처할 수 없게 될 것이고요.

[앵커]
그렇군요. 이번 시간은 서울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대북군사옵션이 가능한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일, 2017/10/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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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환장한 미친 늙다리
악마 트럼프의 막말 모음

“한국은 미쳤다”
(2015년 10월 12일 정치단체 노라벨스가 트럼프를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더라”
(4월 19일 중국과의 정상회담 후)

“한국은 하나만 알아”
(9월 4일 트위터)

“한국, 대북 대화 구걸하는 거지 같다”
(9월 7일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한국에 수십억달러 무기판매 승인”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한국, 은혜를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북한 9.9절 기념식장 공습하겠다”
(7월 31일 아베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화염과 극심한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
(8월 9일 기자회의 대화)

“(북한) 산산조각낼 것”
(9월 15일 공군기지를 방문해서)

일, 2017/10/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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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년 조선총독부 자문기구로 설치된 임시교육심의위원회의 한 장면. ‘문교의조선’ 1928년 9월호.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16년 7월 일제는 조선 문화유산의 조사와 보존을 심의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고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조사방법의 유형은 일반조사·특별조사·임시조사 등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고구려·백제·신라·한사군·임나와 관련된 지역이 집중 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는 고적조사위원회의 실제 목적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밝히기보다는 식민사학의 논리를 찾는 데 있었음을 방증한다. 1922년 12월 등장한 조선사편찬위원회와 이를 이어받은 조선사편수회가 철저하게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서를 발간하는 데 몰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1939년 2월에는 조선인의 만주 이민을 국책사업으로 간주하여 ‘이민위원회’를 설치했다. 만주 개척은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을 위한 오랜 계획의 일부분이었고, 일본인의 이민이 사실상 실패하자 조선인이 적극 동원됐다. 그 해 8월 ‘개척민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한 위원회는 △농업·공업·광업 분야의 실제 기술자 파견 △청년의용대를 늘려 개척민 지도자로 활용 △강원도와 함경도의 화전민을 만주 삼림지대로 파견 등을 의결했다. 이처럼 조선인의 만주로의 이주는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통제되었다.

위의 두 사례는 일본이 조선 식민지배 과정에서 위원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통감부·조선총독부 편>은 그동안 실체조차 파악되지 않았던 조선총독부 산하의 140여개의 위원회에 관한 정보를 모두 담았다. 위원회는 식민지 조선이 당면한 현안에 대한 심의·조사·자문·징계·조정의 기능을 갖추고, 긴급한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위원회가 한시적으로 운영됐음에도 그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식민지 조선에서 모든 사안이 총독 1인의 제왕적 리더십에 따라 처리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는 위원회를 통해 많은 부분이 결정된 측면도 있다”며 “앞으로 연구를 통해 더 밝혀지겠지만 위원회는 식민통치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토지·농업·교육·상공업·세제·경제정책·노동·강제동원·재난대응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설치되었다. 이는 일본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준 이상으로 세세하게 조선 사회를 파악하고 통제했음을 드러낸다. 이미 통감부나 총독부 산하에 관련 부서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별도로 위원회를 설치해 이중, 삼중의 통제 장치를 마련한 경우도 많았다. 치안유지법으로 처벌을 받은 사상범 중 비전향자를 구금하는 문제를 다룬 ‘예방구금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본격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일상 구석구석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예방구금제도는 일본보다 조선에서 먼저 시행되었는데, 전향하지 않는 사상범에 대해서는 무기한으로 구금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주택대책위원회’, ‘물가위원회’, ‘조선전염병 및 지방병조사위원회’, ‘조선중앙위생회’처럼 이른바 ‘민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구들은 일제가 식민지인의 동요를 막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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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4월 28일 ‘매일신보’에 게재된 조선학도동원 교별기준 관련 기사. 일제는 1944년 4월 조선 학생을 전쟁에 동원할 목적으로 학도동원본부를 조선총독부 산하에 설치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번에 나온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은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사실상 상실한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한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기구 총 248개(통감부 26개, 조선총독부 222개)를 모두 포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박수현 실장은 “각각의 기구에 대해 개별적인 논문은 존재했지만,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각의 관보 등 공식 문헌을 토대로 실증적인 자료를 만들어낸 것은 이 사전이 처음이다”고 밝혔다. 사전은 또한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둔 최고 권력기구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총론과 함께 연도별로 기구의 현황과 구조를 담은 부록, 각종 사진을 수록했다.

일제의 식민통치기구는 근대 법령 체계와 관료제를 기반으로 설치,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외형적으로는 근대국가의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통치구조에 종속적이었을 뿐 아니라, 조직체계나 기능의 측면에서 근대화보다는 식민지 경영에 주력하는 등 ‘근대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통치기구의 근대적 체계와 운용은 식민지 지배의 억압성과 수탈성을 은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상당수의 기구나 법령, 정책 규제 용어 등이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곧바로 사전 편찬 작업에 착수했다. 연구소는 3.1 운동 100주년인 2019년을 맞아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일본군·국영기업·관변단체 편>의 발간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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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개척민지원자훈련소에서 일본 우치하라훈련소로 이동하는 장면. ‘통보’ 제120호(1942년 7월15일).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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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경향신문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무엇이 담겼나

※관련자료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 통감부・조선총독부 편』 펴내

목, 2017/09/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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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CMS (월분납 포함)]
(주)미궁365 10만원 강정인 2만원 김광훈 1만원 김도윤 1만원 김봉천 1만원 김영화 1만원 김영훈 1만원 김용범 3만원 김원석 1만원 김윤철 1만원 김인규 1만원 김점구 1만원 류사영 1만원 박기석 1만원 박동진 5만원 박정우 1만원 박중열 1만원 방선희 2만원 부선정 1만원 서정숙 10만원 서하람 2만원 설광호 2만원 성명희 1만원 신국현 2만원 심경주 1만원 양경희 1만원 양창민 1만원 여양구 10만원 오혜림 1만원 우기동 1만원 원종형 2만원 유정완 1만원 윤현지 1만원 이경민 3만원 이성연 1만원 이은경 1만원 이종민 1만원 이진호 3만원 이창용 1만원 이태영 1만원 이효진 1만원 임승현 10만원 장혜주 1만원 정기용 1만원 정승윤 1만원 정윤숙 1만원 조규봉 5천원 조성민 3만원 조재광 2만원 조현곤 10만원 조현혁 2만원 조형래 1만원 채주병 1만원 최인주 1만원 최환영 5만원 현상진 1만원 홍현정 3만원

[온라인, 계좌이체 등]
강진우 10만원 김기호 10만원 김동호 10만원 김동훈 1만원 김면 10만원 김문식 8만원 김서형 2만5천원 김수정 10만원 김영태 10만원 김용 5만원 김이진 10만원 김재갑 50만원 김태운 2만원 김해란 10만원 남양강 50만원 남영주 20만원 노수영 300만원 노재원 30만원 도순환 10만원 동정남 10만원 박남순 20만원 박영순 5만원 박장성 2만원 박진부 10만원 벌꿀모음 9만8천원 송연옥 10만원 송차선 50만원 시민역사관 5만원 신명옥 30만원 신제균 10만원 양재규 5만원 오기택 10만원 오영숙 10만원 오키나와한의비모임 102만1천원 유연정 20만1천706원 유정열 10만원 유태성 1만원 윤옥중 100만원 윤정옥 3만원 이금수 30만원 이동은 10만원 이동철 10만원 이명구 10만원 이미숙 10만원 이범영 5만원 이봉돈 1만원 이선미 3만원 이선영 10만원 이성순 10만원 이영기 50만원 이영희 10만원 이윤기 10만원 이주행+이건일+이건우 30만원 이창신 10만원 이춘자 30만원 이혜경 10만원 이혜정 5만원 이홍석 5만원 임승미 2만원 임창완 10만원 전진성 10만원 정수연 10만원 정숙희 10만원 정윤현 10만원 정혜영 10만원 조시현 10만원 차기호 10만원 최낙훈 50만원 최두용 10만원 최상남 10만원 최인재 50만원 하수영 10만원 한광수 5만원 한상기 10만원 한지훈 20만원 함형준 10만원 허장수 10만원 홍정미 10만원 홍지훈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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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8/1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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