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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연구자의 '민주주의 이론의 페미니즘적 재구성을 향하여' 강의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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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연구자의 '민주주의 이론의 페미니즘적 재구성을 향하여' 강의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익명 (미확인) | 수, 2017/05/17- 15:20

<김성준 연구자의 '민주주의 이론의 페미니즘적 재구성을 향하여' 강의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짝짝짝>

강의 신청이 5월 16일자로 마감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셔서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꾸벅)

신청 완료되신 분들께는 확인 문자를 드렸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강의 첫 날에 뵙겠습니다(열공)

✔5월 16일에 '문경*' 성함으로 수강비를 입금해주신 분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02-824-7810)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강의 교재는 5월 17일(수), 5월 19일(금) 두 차례에 걸쳐 배송될 예정입니다. (수령 예상일은 5월 24일(수)입니다.)

✔구체적인 강의 장소는 추후 문자로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타 문의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02-824-7810/[email protected])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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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공동행동의 "무지렁이 국회의원 시리즈" 공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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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나도 모르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알겠냐"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의 회의에서 김진태 국회의원이 한 발언입니다. 이걸로는 부족했는지 본인의 페이스북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 뉴질랜드만 시행하고 있는 아주 희귀한 사례(읭? 뭥미...)" 라는 글을 올리며 무지랑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계시네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표심을 의석수의 왜곡 없이 반영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비례성을 보장하는 것인데요.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핀란드 등 정말 많은 국가들이 헌법에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 헌정특위 위원이라니. 어휴. 모르면 제발 공부 좀 하세요.

김진태 국회의원 발언 때문에 속터지셨던 분들~ 
지금 바로 직접 항의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가능하답니다!
무지렁이 일못 국회의원들에게 제발 공부좀 하고 생산적인 논의 좀 진행하라고 격려와 촉구의 메세지를 보내주세요! 
- 김진태 국회 사무실 02-784-3760 
- 김진태 지역구 사무실 033-251-9901
- 김진태 국회의원 페이스북 facebook.com/kimjintae1013
- 김진태 국회의원 트위터 @jtkim1013

 

월, 2018/01/2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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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발제는 혜만 사무국장 순서여서 웹자보부터 우울하고 눈물나는 <<여세연 책읽기 소모임>> 2월 공지드립니다!

함께 읽고자 하는 책은 "딸에 대하여"(김혜진 지음)입니다. 책읽기 소모임 운영 방식은 ① 책을 읽고 온다, ② 발제자가 준비한 '나누고자 하는 3가지 물음'을 중심으로 편하게 얘기 나누기 입니다.

책읽기 소모임은 여세연 사무국 활동가들의 역량강화(!)와 함께 여세연이 궁금한 분들, 책얘기를 편히 하고픈 분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2018년 2월 26일(월) 오후 3시, 여성미래센터(추후 공지)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여세연 회원이어도, 아니어도 참여 가능합니다!(회원은 천천히 하면 되는거죠.*^^* 하하하핳) 오세요!! 오세요!!!!

 

월, 2018/01/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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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의 일관성 없는 법 제도가 청소년기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 의료 및 지식에 대한 접근을 막고 있다.

성과 재생산 건강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짐바브웨의 일관성 없는 법 때문에, 청소년 여성들이 출산하던 중에 목숨을 잃는 등 해로운 영향 받기 쉬운 처지에 놓였다고 국제앰네스티가 경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24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신규 보고서를 발표했다.

 많은 청소년이 18세 이전에 활발한 성생활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이들이 자신의 건강과 미래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서비스와 전문적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디프로스 무체나(Deprose Muchena) 국제앰네스티 남아프리카 지역국장

보고서 <지식 없이 헤매다: 짐바브웨의 성과 재생산 건강 정보를 막는 장벽>은 짐바브웨에서 합의 하의 성관계와 결혼을 허용하는 법적 연령을 두고 혼란이 만연한 상태라고 기록했다. 이 때문에 청소년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에 더욱 취약해졌고, HIV에 감염 위험도 훨씬 높아졌다. 그 결과, 청소년 여성들은 낙인과 차별에 직면하는 것은 물론 조혼, 경제적 곤란 등의 위기와 교육을 마치지 못할 수도 있는 어려움에 마주하게 되었다.

디프로스 무체나 국제앰네스티 남아프리카 지역국장은 “많은 청소년이 18세 이전에 성적으로 활발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이들이 자신의 건강과 미래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서비스와 전문적 조언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성관계 동의 연령에 관련된 조항을 만든 것은 성적 학대와 조혼을 막으려는 목적일지 모르나, 이 조항을 이용해 성과 재생산 건강 관련 정보 및 서비스를 받을 청소년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청소년의 성생활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게 형성되어 있으며, 알맞은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받기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짐바브웨의 국민 보건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기 여성 중 약 40%, 청소년기 남성은 24% 정도가 18세 이전부터 활발한 성생활을 하고 있다.

성과 재생산 건강에 관련된 짐바브웨의 법률 및 정책 체계 다수가 일관성 없이 마련된 탓에, 18세 이하의 청소년이 성 관련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 부모의 동의 필요 여부에 대해서도 상당한 혼란이 야기되었다.

짐바브웨의 법에 따르면 성관계 동의 연령은 16세다. 그러나 헌법에 따라 법적 결혼 가능 연령을 18세까지 확대한다던 정부의 움직임이 지연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결혼 전 성관계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미 임신 중이거나 기혼자인 여성들만이 피임 수단을 이용하거나 HIV 관련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오해가 너무나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료 종사자들은 성 또는 재생산건강과 관련해 특정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때, 16세 이하 청소년에게도 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과정에서 현행 의료 정책만으로는 판단 기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또한 원치 않는 임신과 HIV 등의 성병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청소년 여성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청소년 여성들 사이에 상당한 지식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청소년 여성들은 전문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려 할 때도 어린 나이 때문에 창피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떤 청소년은 국제앰네스티에 “16세가 되기 전에는 전문병원에 갈 수 없다. 병원에서 우리를 쫓아내고 욕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18세가 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또 다른 청소년 여성은 17세에 임신을 하고 난 후에야 병원에 가게 되었다면서, 그 전까지는 나이 때문에 병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내가 너무 어린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교사, 부모, 비정부단체, 의료 종사자 등 지역사회 이해관계자들도 청소년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청소년 여성들이 자신의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인식하고 주장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디프로스 무체나(Deprose Muchena) 국제앰네스티 남아프리카 지역국장

국제앰네스티는 성과 재생산건강 관련 정보 및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에 대해 청소년들의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짐바브웨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법과 정책을 통해 청소년들은 나이와 부모의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성과 재생산건강 정보, 교육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명확히 규정할 것을 권고했다.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금기

국제앰네스티는 짐바브웨 정부에 결혼 전 성관계 등 청소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금기를 깰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청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이용하려 해도, 이 금기로 인해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러한 금기는 포괄적인 학교 성교육을 제공하지 못한 정부의 실책이 더해지면서 성차별을 계속해서 유지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디프로스 무체나 국장은 “짐바브웨 정부는 청소년 여성들이 자신의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인식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전도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청소년들은 종합적인 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성교육은 금욕만을 강조하는 접근에서 벗어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앰네스티 조사 결과 해로운 성 고정관념으로 청소년기 여성들은 임신을 할 경우, 강제 결혼이나 교육 단절과 같이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비용이라는 장벽

또한 이번 보고서는 성과 재생산 관련 의료 서비스의 높은 비용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피임을 보급하고 산부인과 의료비를 무상 지원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비용이 부과되는 경우가 잦았다.

국제앰네스티 조사 결과, 이렇게 부과되는 의료비용은 제때 산부인과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아예 진료를 받지 못하는 등 청소년 임산부에게 과도한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경정보

이번 보고서는 2017년 2월에서 5월 사이 하라레, 마니칼랜드, 동마쇼날랜드, 마싱고 주에서 청소년 여성 50명을 포함해 총 120명의 참가자들과 진행한 그룹 토론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연구 결과, 청소년 임신율과 HIV 감염률은 증가하고 있으며, 동시에 성과 재생산 건강 관련 지식 수준은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 임신은 짐바브웨의 높은 조혼율과 산모 사망률의 주요 원인이다. 2016년에는 15세에서 19세 사이의 산모 사망률이 21%에 달했다.

목, 2018/02/0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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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당신이 팔로우해야 할 인권활동가들의 소셜미디어

안젤라 싱 (Angela Singh)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소셜미디어는 자신의 목소리를 퍼뜨리기 좋은 수단이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단결하고,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전세계 활동가들에게 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인권 현장에서 활발한 액티비즘에 대한 소식을 발 빠르게 얻고 싶은 당신을 위해, 2018년, MUST 팔로우 해야 할 계정들을 소개한다.

 


뉴욕의 활동가들 (Activist of New York City)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뉴욕시는 인권 퇴보에 반대하는 시위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장의 동향이 궁금하다면, ‘뉴욕의 활동가들’을 확인해보자. ‘뉴욕의 활동가들’은 뉴욕시에서 벌어지는 액티비즘, 시위, 사회정의 운동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변호사에서 사진가로 전향한 신디 트린(Cindy Trinh)이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뉴욕 거리 현장의 상황을 기록하는 거예요.” 신디는 이렇게 밝혔다. “사람들이 뉴스에서 소식을 접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접하고 있어요. 활동가들이 이런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사진은 아름답고, 메시지는 강력하다. 미국에서 열린 국제앰네스티 인권회의에서 신디의 사례를 다루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activistnyc


베페카두 하일루 (Befeqadu Hailu)

베페카두 하일루(Befekadu Hailu)라고도 알려진 베페카두(Befeqadu)는 수상 경력에 빛나는 에티오피아의 작가이자 활동가, 블로거로, 얼마 전까지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되었던 양심수였다. 베페카두는 블로거 그룹 ‘Zone 9’의 회원들과 함께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에티오피아 인권에 대한 활동과 캠페인을 벌였다는 이유로 2014년 테러 혐의로 임의 체포, 기소되었다. 지금은 석방된 상태지만, 베페카두는 여전히 “집필을 통한 폭력 선동”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다작가인 그는 2013년 그의 소설 ‘부모의 아이들(Children of their Parents)’로 2012 버트 어워드(Burt Award) 아프리카문학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언론인보호위원회의 국제언론자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로 에티오피아의 인권상황에 대해 트윗을 올린다.

트위터: @befeqe
블로그: http://www.befeqe.blogspot.com


베루즈 부차니 (Behrouz Boochani)

쿠르드의 기자이자 영화감독, 인권활동가인 베루즈 부차니는 호주 정부의 구금 조치에 대한 항의의 수단으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그가 구금된 마누스 섬은 파푸아뉴기니의 외딴 섬으로, 난민들의 구금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베루즈는 이란 정부가 동료들을 다수 구금하자 이란에서 몸을 피했다. 그러나 2014년 베루즈가 호주에 도착하자 호주 정부는 마누스 섬의 악명 높은 난민 수용소로 그를 강제 이송했고, 이곳에서 그는 700여명의 난민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베루즈는 평화적인 시위에 참여했다고 정부의 표적이 되어 지난 4년 동안 난민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었다. 베루즈는 마누스 섬의 구금 생활에 대해 가슴 아픈 일기를 작성하고, 자신을 포함한 난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등 다수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용기 있게 기록했다. 또한 그는 난민 수용소 내부에서 오로지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영화 “차우카, 제발 시간을 알려줘(Chauka Please Tell Us the Time)”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잠시 시간을 내어 베루즈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둘러보자. 이 시대 최대의 인권 위기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용기 있는 활동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 @BehrouzBoochaniJournalist
트위터: @BehrouzBoochani


찰리 다크 (Charlie Dark)

찰리는 영국 런던의 DJ이자 시인이다. 2007년 결성되어 호황리에 운영 중인 런닝 동호회, 런뎀 크루(Run Dem Crew)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런뎀 크루는 평범한 동호회들과는 조금 다르다. 다음 세대를 위해 힘을 북돋우고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활동하는 다면적인 단체인 것이다. 런뎀 크루는 런던 전역의 젊은이들과 함께 멘토링과 상담을 제공하고, 안전하고 포용적인 환경에서 런던을 답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찰리는 앰네스티 콜렉티브(Amnesty Collective)의 일원이기도 하다. 앰네스티 콜렉티브는 젊은 아티스트, 활동가, 영향력 행사자들이 각자의 플랫폼을 이용해 중요한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다양성 집단이다.

인스타그램: @daddydarkrdc


프란체스카 레이, a.k.a 체스칼레이 (Chescaleigh)

프란체스카 램지(Franchesca Ramsey)는 코미디언이자 활동가, 배우이다. 인종차별부터 대중문화까지, 체스칼레이는 자신이 걱정하는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발언한다. 게다가 그녀 못지 않게 그녀의 동영상 역시 유쾌하다. 체스칼레이는 인터넷 덕분에 활동가들이 출신에 상관 없이 세상 일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흑인 활동가, 사회 각계각층의 활동가들에게 인터넷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각자의 가정과 공동체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킬 방법에 대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어요. 활동가라면 누구나 신이 나는 시기예요.”

인스타그램: @chescaleigh
트위터: @chescaleigh


헨드 암리 (Hend Amry)

리비아계 미국인 헨드 암리는 ‘폭풍트윗’을 할 때는 재치 있고 예리하면서도 유쾌한 사람이다. 사실은 영감 그 자체다. 그녀는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인종차별, 이슬람 혐오, 불평등과 같은 문제에 기발하고 유쾌한 트윗으로 대응하면서 두려움 없이 맞선다. 헨드는 관심을 잃지 않는 한,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날의 뉴스에 대해 언급하고, 고민이 필요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면 누구나 활동가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의 텀블러도 매우 유쾌하다.

텀블러: http://libyaliberty.tumblr.com
트위터: @LibyaLiberty


캣 블라크(Kat Blaque)

캣 블라크는 페미니스트 유튜버,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그리고 작가이기도 하다. 캣의 동영상은 젠더와 성, 인종은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서로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고, 진정성 있으면서도 대담하게 다루고 있다. “나는 여성이자, 흑인이자, 굴곡 있는 몸매의 트랜스젠더다. 나는 아주 많은 문제에 대해 다룬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의 교차점 그 자체로서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로서 수도 없이 쏟아지는 온라인상의 괴롭힘과 욕설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캣은 거리낌 없이 대담하게 대응하며, 팬들은 이런 점에 더욱 열광한다. 지난해 캣은 온라인상에서 그녀에게 괴롭힘을 가한 남성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허핑턴포스트지에 관련 글을 기고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분노에 공감했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캣의 대응으로 가해자 남성의 직장에서는 해당 사건의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가해자 남성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인스타그램: @kat_blaque
유튜브: Kat Blaque


마이 코이 (Mai Khoi)

마이 코이는 “베트남의 레이디 가가”라고 불릴 정도로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뮤지션이다. 마이는 정치적으로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 국가인 베트남에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LGBTI 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그녀는 평화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 정부의 표적이 되었다. 그로 인해 마이는 소지품을 챙기지도 못한 채 강제퇴거를 당했고, 스토킹과 괴롭힘을 당했으며, 임의로 구금되기도 했다. 마이의 콘서트 역시 습격을 당했다. “이곳에 표현의 자유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마이 코이는 그렇게 말한다.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으면 거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공연을 진행할 수도 없어요.” 2016년, 마이는 공산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에 베트남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무소속 후보자로 출마하면서 전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결국 그녀의 출마 신청은 거부되었다. 같은 해 마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베트남의 인권 상황을 논의했다. 마이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주로 그녀의 음악활동을 다루고 있지만, 그녀의 노래 가사는 현 시대의 다양한 인권 문제를 다루면서 여전히 비판적인 색을 유지하고 있다.

페이스북: @mai.khoi.official
트위터: @themaikhoi
홈페이지: https://mai-khoi.com/mai-khoi

Viết cho người nào vẫn đang hỏi “Vì sao tôi đã biểu tình khi Trump đến Hà Nội tối qua.”Tôi muốn thể hiện quyền được tự…

Do Nguyen Mai Khoi에 의해 게시 됨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낸시 허츠 (Nancy Herz)

낸시는 인권에 관심이 많은 노르웨이의 젊은 여성이다. 2016년 낸시가 투고한 “우리는 뻔뻔한 아랍 여성, 이제부터 우리의 시대가 시작된다”라는 기사를 계기로, ‘뻔뻔하다(shameless)’는 단어를 주창하는 여성들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2017년 낸시는 소피아 네스린 스로르, 아미나 바일과 함께 저서 “Shameless”를 출간했다. 일반적인 젠더 규범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당한 소녀들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다룬 책이었다.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이에 대해 낸시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소녀들로부터 내 덕분에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정말 자랑스럽다. 나부터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할 수 있다고 느낀 것이다. 불의에 대항해 싸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냄으로써 더 큰 표현의 자유를 이룩할 수 있다.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살아갈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 @nancherz


노안 세레이보스 (Noan Sereiboth)

노안 세레이보스는 정치 블로거이자 캄보디아 청년들의 활발한 정치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노안은 지금은 폐쇄된 웹사이트 “폴리티코피(Politikoffee)”의 상임위원이자 정기 기고가였다. 폴리티코피는 현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해 청년들의 활발한 토론을 장려하는 사이트였다. 캄보디아의 억압적인 정치 분위기로 인해 폴리티코피는 2017년 11월 27일부터 운영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세레이보스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캄보디아의 현재 정치 상황과 진행 과정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데,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새해를 맞아 폴리티코피 계정에서 트윗을 작성하면서, 올 3월부터 운영을 재개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8년은 캄보디아의 미래에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트위터: @noansereiboth


사크리스 쿠필라(Sakris Kupila)

사크리스는 10대 시절,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성별이 자신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사크리스는 핀란드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가장 먼저,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려면 우선 “정신 이상” 진단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별이 법적으로 인정되려면 불임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젠더 정체성 때문에 인간 이하의 존재로 분류되는 기분이었다. 역겨웠다.” 위협과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사크리스는 핀란드의 트랜스젠더를 위해 더 공정한 제도를 마련하고, 다시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어야 하는 사람이 없도록 용감하게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sakriskupila
트위터: @sakriskupila


국제앰네스티 (Amnesty International)

마지막으로, 앰네스티를 팔로우해 보자! 앰네스티 계정에서는 한 해 동안 인권을 옹호하며 놀라운 활동을 보여준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다. 더불어, 앰네스티는 1961년부터 세계적으로 인권 캠페인을 벌여 왔다. 정의와 자유, 진실과 존엄이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여성과 남성,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계속해서 앰네스티와 함께 해주시길!

페이스북: amnestyglobal
인스타그램: @amnesty
트위터: @amnesty

영감을 잔뜩 가져다 줄 인권 활동가들의 인스타그램 (←클릭) 또한 구경해보세요!

월, 2018/02/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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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민주주의 - For Gender Justice"

일시 : 2018년 3월 4일(일) 오후 12시 ~ 4시
장소 : 서울 광화문광장(중앙광장/세종대왕동상 앞)
주최 :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제 34회 한국여성대회 조직위원회
주관 : 한국여성단체연합

프로그램
1. 3.8 시민난장 (12:00~16:30)
- 1인 1피켓 부스
- 붙이는 해시태그
- 그 외 다양한 참여부스

2. 3.8 샤우팅 (12:30~13:30)
- 축하공연
- 시민참여 말하기 발언대

3. 3.8 행진 (13:30~15:30)
- 광화문광장▶️안국동▶️종각역▶️광화문광장

4. 3.8 기념식 (15:30~16:00)
(사회자 : 권해효 배우/여성연합 홍보대사,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 올해의 여성운동상, 성평등 디딤돌 시상, 성평등 걸림돌 발표
- 3.8여성선언
- 축하공연 : 정영주 뮤지컬 배우
- I'll survive 단체 퍼포먼스

5. 3.8 특별전시 
-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 기록전시 ‘Change up' : 2018.3.12.(월)~3.30(금) 여성미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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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샤우팅 발언자를 모집합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발언이 사회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일터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실에 대해 말해왔지만 힘을 받지 못한 목소리는 금새 잊혀지고 묻혀져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함께 바꿔나가야 합니다.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이러한 우리의 말하기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용기와 응원, 지지가 되어 변화의 힘을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겪은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나눠주십시오. 
성차별, 성폭력은 물론 지금 터져나오고 있는 용기 있는 목소리에 대한 지지나 응원 혹은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해주실 분들의 많은 관심과 신청을 바랍니다.

참가신청 https://goo.gl/forms/hu9vzhG2xcURZoE43

발언시간 : 3분가량
발언내용 : 내가 겪은 성차별, 지지나 응원, 바꾸고 싶은 성차별 등등

※ 꼭 확인하세요!!
- 3.8여성대회는 취재진에게 열려있어 언론에 공개될 수 있습니다. 촬영을 원치 않으시 는 분은 미리 말씀해주세요.
- 가해자나 피해자의 실명공개나 신상 파악이나 유추가 가능한 내용은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 2월26일(월)까지 신청을 받은 후 당일 발언하실 분께는 사전에 개별연락을 드립니다.

 
목, 2018/02/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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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공간문화개선사업 공모
한국여성재단과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의 공간을 지원합니다.”

한국여성재단은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의 후원으로 비영리여성단체, 여성이용 및 생활시설을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 나아가 존중과 위로가 되는 돌봄과 치유의 공간, 상상력과 꿈을 펼치는 창의적 공간으로의 변화를 지원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지난 9년 간 총 115개의 여성시설(단체)를 지원해왔습니다. 공간의 변화를 통해 여성공익활동이 활성화 되어 사회적 관심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사업대상
– 전국의 여성이용 및 여성생활시설, 비영리여성단체

신청 제외 대상
– 남녀혼용 생활시설
– 요양원(시설)
– 정부 및 지자체 산하 기관 및 시설(운영주체가 정부 및 지자체인 경우)
– 정부 및 지자체 위탁 사업을 주 목적으로 하는 기관
– 종합사회복지관 및 단종사회복지관
– 학교 산하 기관 및 학교법인

지원내용 및 규모

신청 시 유의사항
<공간문화개선사업>은 사무실 전체 공간 리모델링을 지원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교육장 또는 상담실 등 여성대안공간으로 리모델링 하고 싶은 공간만을 신청해주세요!

① 지원내용
– 여성대안공간으로의 공간개선 신청한 공간은 심사 기간 중 및 선정 이후에도 변경할 수 없습니다.

ⅰ) 공간 컨설팅
: 이용자 및 공간 특성에 맞는 디자인 컨설팅 진행

ⅱ) 공간 리모델링
: 공간 컨설팅 내용을 반영한 공간 리모델링 진행
: 공간 사용에 필요한 기본 집기 지원
※ 책상, 의자, 자석칠판 등 기본 집기 지원만 가능하며, 음향기기, 전자제품 등은 지원 불가
※ 견적, 디자인, 공사 모두 아모레퍼시픽 협력사에서 진행

② 지원규모
– 1개 시설(단체) 당 최대 5,000만원
선정 이후 신청 공간 내 견적 금액이 최대 지원금을 초과할 경우 선정 시설(단체)에서 자부담해야합니다.
공간의 현 상황에 따라 선정 이후 시설(단체)에서 일부 자부담 공사 내역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 지원 공간 공사에 따른 시설(단체) 전체 전기증설 및 전기 설비 재정비

 

신청 자격
※ 아래 자격기준 및 소유관계를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① 시설(단체) 자격기준
– 동사업의 지원을 받지 않은 비영리 여성시설(단체) 중, 1일 평균 30명 이상 이용 시설(단체)
※ 기 지원(2009~2017년) 단체 신청 불가
※ 단, Happy Bath, Happy Smile(2009년~2014년) 지원 시설(단체)는 지원 가능

② 공간 소유관계
– 자가 및 임대 모두 지원 가능
※ 단, 임대시설의 경우에는 201851일로부터 만 3년 이상의 임대기간이 확보된 시설에 한하여 지원하며, 선정 시설(단체)는 최종선정과 동시에 이를 확인하는 서류를(임대차계약서 등) 제출하여야 합니다.

지원 불가 대상
– 타 기관 유사 사업으로 지원을 받는 경우(타 지원과의 중복지원 불가)
– 매매 및 재건축 예정 시설
– 종합사회복지관 및 단종사회복지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 소유 건물


신청방법 안내
① 접수기간 : 2018년 2월 23일(금) ~ 3월 23일(금)
※ 3월 23일(금), 오후 5시 우편 도착분에 한함(우편 소인 기준 아님)
※ 퀵서비스 이용 접수, 직접 방문 접수도 가능

② 접수방법 : 온라인과 우편 모두 접수되어야 신청 완료하나만 제출했을 경우 접수 불가능

③ 접수처 : (04001)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5길 13(서교동) 한국여성재단빌딩 5층 지원사업팀 김수현 앞

④ 제출서류
아래 두 가지 방법(온라인과 우편) 모두 접수되어야 신청이 완료 되며,일부 방법으로만 접수되었을 경우 신청 접수가 무효처리 됩니다.

구분 세부내용
온라인
접수
온라인접수 바로가기 클릭

[접수방법]
ⅰ) 단체(기관) 회원가입 → ⅱ) 2018년 공간문화개선사업 클릭 → ⅲ) 사업 신청 정보 기재 → ⅳ) 관련 서류 일체 파일 첨부 → ⅴ) 사업 신청하기 클릭

② 관련 서류 일체 온라인접수 시 파일 첨부
※ 온라인 제출 서류 : 지원신청서(hwp), 공간현황사진(ppt)

우편
접수
① 지원신청서 제출 공문 1부
② 지원신청서(소정양식) 4부
③ 공간현황사진(소정양식) 4부
④ 법인설립허가증 또는 비영리민간단체등록증 사본 1부
※ 미등록단체의 경우 대표자 주민등록등본(주민번호 뒷자리 삭제) 사본 1부

 

공모 일정 상기 일정은 사정에 의해 변동될 수 있습니다.

구분 일자 내용
공고 2월 23일(금)~ 3월 23일(금) ‧ 한국여성재단 및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홈페이지 공고
지원신청서접수 3월 23일(금),오후5시까지 ‧ 온라인접수, 우편(방문접수 가능)두 가지 모두 접수 필수
1차 심사 3월 26일(월)~ 4월 13일(금) ‧ 서류 심사 및 1차 선정결과 발표 홈페이지 공지 및 개별통지
2차 심사서류 접수 4월 16일(월)~ 4월 23일(월) ‧1차 선정단체에 한함
2차 심사 4월 24일(화)~ 5월 25일(금) ‧ 현지방문 실사 및 면접
‧ 사업계획서 및 시공 관련 서류 심사
최종심사 및 선정결과 발표 5월 말 중 홈페이지 공지 및 개별통지

 

지원신청 시 유의사항
지부를 가진 전국규모의 단체의 경우, 중앙 및 지부를 포함하여 최대 3개 사업까지만 신청 가능합니다(중앙 단체 및 지부 간 확인 )
② 외부지원 중복의 경우, 그 내용에 따라 지원의 제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원신청은 온라인 신청, 우편 접수 두 가지 방법을 모두 기한 내에 제출해야 합니다. 일부 방법으로만 접수되었을 경우 신청 접수가 무효처리 됩니다.
선정 이후 확정 견적 금액이 최대 지원금을 초과할 경우 초과 예산은 시설(단체)에서 자부담하셔야 합니다.
공간의 현 상황에 따라 선정 시설(단체)에서 일부 자부담 공사 내역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⑥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은 신의에 기반 한 지원금 신청 및 집행되며, 다음의 경우 한국여성재단 배분규정에 따라 지원철회 될 수 있습니다.
– 사업계획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하였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금을 교부받았을 경우
– 사업보고와 평가를 통해 지원 사업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지원금을 사용하거나 부적절하게 지원금을 집행한 부분이 있다고 판명될 경우
※ 한국여성재단은 특정집단의 특정목적을 위한 활동(영리, 종교, 정치, 친목 등)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문의
지원사업팀 이해리(T. 02-336-6385 / E-mail. [email protected])

 

금, 2018/02/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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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제작한 성평등개헌 10대 과제 1편 카드뉴스를 공유합니다.
성평등 개헌에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려요 :)
 
 
 
 
 
 
금, 2018/02/2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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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세연이 공동주관으로 함께 준비한 행사 소식 공유드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개헌과 여성대표성, 젠더정치의 동학>

International Symposium for Constitutional Reforms, Women's Representation and the Dynamics of Gender Politics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격차지수는 2017 144개국 중 118위입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는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하락하고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일반공동연구팀(ReGINA: Research on Gender Inequalities in the National Assembly)은 이 현상이 여성의 낮은 정치적 대표성에서 비롯되었고, 젠더 불평등이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상시적으로 불안정하게 하는 토대라고 진단하며, 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국제심포지엄을 마련하였습니다. 1부는 최초로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젠더비교정치(comparative politics of gender) 연구를 시작하는 장으로, 각기 다른 여성 대표성의 수준 -한국(17%)/대만(38%)/일본(10%) -이 각국의 민주주의에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2부에서는 더 나아가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성평등 헌법을 제정하였던 프랑스, 멕시코, 캐나다의 경험을 통해 대륙을 넘나든 여성운동의 선례가 정부 수립 70, 제헌 70주년을 맞이해 (2018 6월 국민투표를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10차 개헌 과정에서 한국 여성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행사는 ReGINA와 함께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남인순, 국회의원 박주현,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공동대표 정춘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회입법조사처, 젠더정치연구소 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젠더연구소의 협력으로 열립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일시: 2018 3 6(), 10:00~17:00

 장소: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 (신분증 지참하셔야 출입 가능합니다.)

 공동주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남인순, 국회의원 박주현,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공동대표 정춘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회입법조사처

 공동주관: ReGINA(한국연구재단 지원 일반공동연구팀), 젠더정치연구소 여..,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젠더연구소

개회식(10:00-10:30)

 

사회:박복순(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개회사

신기영(오차노미즈여자대학 젠더연구소 부교수)

축사

남인순(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박주현(국회의원)

정춘숙(국회의원)

환영사

권인숙(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이내영(국회입법조사처장)

1부 젠더정치의 동학:한국·일본·대만(10:30-12:30)

좌장:신기영(오차노미즈여자대학)

발표

보다 넓은 능력군:대만의 젠더 할당제와 지역구 여성정치인(황창링,국립대만대학)

2.일본의 선거정치에서 남성지배(미우라 마리,소피아대학·재키F.스틸,동경대학·신기영,오차노미즈여자대학)

3.한국의 할당제에 대한 저항과 남성지배의 지속성(이진옥,서강대학교·황아란,부산대학교)

토론

김은주(한국여성정치연구소),이정진(국회입법조사처),

윤지소(한국여성정책연구원)

2:개헌과 여성대표성(14:00-17:00)

좌장:이진옥(젠더정치연구소 여..)

발표

1.멕시코의 할당제 네트워크,개헌,동수(제니퍼M.피스코포,옥시덴털대학)

2.프랑스의 헌법 개정과 동수,여성대표성(김민정,서울시립대학교)

3.캐나다의 모순: 1982년 성평등 개헌과 할당제에 대한 정치권의30년 저항(재키F.스틸,동경대학)

4.한국의 개헌과 성평등의 정치적 동학(박선영,한국여성정책연구원·권수현,경상대학교)

토론

강경희(제주대학교),황창링(국립대만대학),김은경(YWCA)

금, 2018/02/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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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토론회]
#MeToo 운동 '긴급' 토론회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

전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Me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의 피해경험 말하기를 지속해왔지만, 여전히 성폭력 사건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논의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간략한 패널 토론 후 자유토론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성폭력을 근절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움직임에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일시 : 2018년 2월 26일(월) 오후 7시
장소 : 종각역 마이크임팩트 13층 라운지
주최 :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전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단체연합 전북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기독여민회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부산성폭력상담소 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수원여성회 여성사회교육원 울산여성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천안여성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한부모연합 함께하는주부모임

프로그램
사회 :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패널 :
이나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권김현영(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신희주 (감독/ 여성문화예술연합)
연극인
김명숙(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
송란희(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자유토론
금, 2018/02/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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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조혜영님은 영화감독 故 박남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여성감독 박남옥과 오늘의 박남옥들

박남옥 감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영화사에서 크레딧에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여성이다. 1997년 박남옥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영화 <미망인>(1955)의 필름 프린트가 발굴되었고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면서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왜 여성들이 여성의 이야기를 만들고 보여줘야 하는지를 오롯이 증명했다.

1955년에 제작된 <미망인>은 전후에 제작된 한국영화의 유행을 일정 정도 따르고 있었다. 전후의 전통적인 젠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새로운 여성, 즉 아프레걸의 표상이다. 그러나 박남옥의 주인공 ‘신’은 남성감독들이 수없이 그려낸 아프레걸, 즉 <자유부인>이나 <지옥화>에 나오는 여성인물들과는 다르다. 남성감독들의 눈에 아프레걸은 외래문화에 취해 허영에 차있거나 치명적일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남성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팜므 파탈이었다. 이 여성들은 이전의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욕망과 주장을 뚜렷하게 표명하지만, 남성들의 프레임 속에서 그녀들은 헛되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삼는 존재로 그려지며 처단 받거나 순치되었다. 그러나 박남옥은 전쟁 과부인 ‘신’이 왜 남편친구인 이사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사랑하는 딸을 자신이 키울 수 없고 모성과 사랑 사이에서 양자택일 하도록 강요되는지, 그리고 여성들 간의 연대는 왜 필요한지 등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여성의 모성, 성적 욕망, 경제적 조건이 어떻게 그녀의 삶을 교차하고 관통하는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한정된 조건에서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욕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보여준다(영화는 “이웃에 이러한 미망인이 있었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에는 중산층 여성, 과부가 된 빈곤한 여성, 자원이 많지 않은 비혼 여성이 등장해 그들의 성별과 경제적 자원이 그들의 욕망에 어떤 한계를 지우는지를 보여준다. 왜 ‘신’은 경제적 독립과 모성, 사랑을 모두 얻을 수 없는 걸까? 그것은 정말 ‘신’의 문제인가? 하층민 남성은 어떻게 해서 다양한 계급과 조건의 세 여성 모두를 이용하고 속이는가를 이 영화는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어떤 면에선 <미망인>은 팜므 파탈보다는 옴므 파탈의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여성은 동일한 소재를 갖고도 전혀 다른 관점의, 그리고 더 복잡하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이를 업고 촬영중인 박남옥 감독

열정적인 시네필이고, 투포환 선수였고, 기자이자, 친언니와 함께 자매 프로덕션을 설립한 제작자이기도 했던 박남옥 감독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현장에서 아이를 업고 스탭들에게 직접 밥을 해먹어가며 <미망인>을 완성했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절실한 욕구에서 수많은 한계와 도전을 넘어 나온 결과물이었다. 박남옥 감독은 두 번째 영화를 향한 꿈을 늘 버리지 않고 있다고 인터뷰 때마다 밝혔지만 2017년 94세로 세상을 뜨면서 그 꿈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박남옥의 꿈은 여전히 지금 현재 우리에게 유효하다. 그녀의 꿈은 슬프게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50~1980년대까지 상업장편 영화를 만들었던 여성 감독은 10년마다 거의 1명씩이다. 1950년대의 박남옥, 1960년대의 홍은원(<여판사>)과 최은희(<민며느리>), 1970년대의 황혜미(<첫경험>, <관계>), 1980년대의 이미례(<수렁에서 건진 내딸>, <영심이>). 게다가 데뷔 10년, 20년 뒤에도 지속적으로 경력을 이어갔던 감독은 전무하다. 1990년대 임순례, 이정향, 변영주, 정재은 감독을 필두로 많은 재능 있는 여성감독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영화진흥위원위 통계에 따르면 총제작비 10억 원 이상어거나 최대 스크린수 100개 이상 기준을 충족하는 한국상업영화에서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편수는 2012~7년에 4~8편에 머무르고 있다,

<미망인>의 마지막 10분은 안타깝게도 사운드가 손상되어 대사를 들을 수 없으며, 마지막 장면은 프린트가 완전히 소실되어 갑작스럽게 끝난다. 사운드가 소실된 이 장면에서 주인공 ‘신’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딸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 ‘택’을 택했지만 그가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괴로워한다. 한편 ‘택’은 경제적으로 자신을 지원한 유부녀 애인 이사장의 부인, 새롭게 관계를 맺은 과부 ‘신’, 다시 만난 첫사랑 ‘진’ 사이에서 갈등한다. 경제적 독립을 하고자 하는 ‘진’은 이사장의 도움으로 차린 ‘신’의 양장점에 직원으로 들어간다. ‘신’과 ‘진’은 ‘택’이 삼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함께 술을 먹으며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 술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는 사운드가 소실되어 알 수 없다. 두 여성간의 대화 장면은 깊은 고뇌에 빠진 척하며 홀로 휘청휘청 거리를 걷는 ‘택’과 교차편집된다. <미망인>에서 대화 장면의 연출을 무엇보다 환상적이다. <미망인>의 대화 장면들은 관계의 복잡한 구조와 긴장을 능수능란한 리듬의 연출로 보여준다. 이 소리 없는 그러나 여성들 간의 위로와 연대가 엿보이는 ‘신’과 ‘진’의 대화 장면은 그러한 빛나는 장면들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다른 여성영화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고, 홀로 그 길을 개척해야 했던 박남옥 감독은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는 이제 서로가 있다. 오늘의 박남옥들은 박남옥 감독이 남겨놓은 그 묵음의 대화 장면을 수많 가지 다양한 목소리들로 채우며 강력하고 다채로운 해일을 만들어 낼 것이다.

  ★ 박남옥 감독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는 소중한 서적과 영화들
– 박남옥 감독의 자서전: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마음산책, 2017)
– 박남옥 감독을 비롯한 한국여성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 여성영화인이 말하는 영화>(임순례, 2001)
– 박남옥 감독의 작품 <미망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링크

글. 조혜영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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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문화평론가 손희정님은 ‘꽃할머니’ 심달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까지: 꽃할머니 심달연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MeToo 운동으로 한국 사회가 뜨겁다. 피해 사실에 대한 고발은 고통의 기록이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혁명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현장을 목격하는 흥분 역시 공존한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바로 우리야말로 변화의 주체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상징적이게도 3.8 여성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를 축하하며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쌓아온 선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오늘 기억하고 싶은 인물은 ‘꽃할머니 심달연’이다. 이전에도 꽃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꽃할머니’라고 불리는 심달연의 존재를 몰랐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오랜 시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권효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2012)을 보고 나서였다.

다큐멘터리는 2007년 한국, 중국, 일본의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으로 완성해 각 나라에서 동시 출판하기로 했던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를 따라간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림책 작가 권윤덕은 위안부 피해 여성 심달연의 증언을 그림책에 담기로 한다. 권윤덕은 의미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지만, 작업은 생각처럼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책 작업을 방해한 것은 여러 가지였다. 무엇보다 13살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 연행된 꽃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작가는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묻어놓은 상처를 꺼내어 고스란히 대면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권윤덕은 위안부 문제를 식민지 약탈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닌 가부장제가 조장하는 여성 폭력의 문제로 그려야 한다는 고민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남성 동료 작가들의 반발에 부딪힌다.

예컨대 남성 작가들은 왜 권윤덕이 그림책에서 욱일승천기를 강조하지 않는지 답답해한다. 민족주의적으로 더 선정적인 재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의한 조선 침탈이라는 비극적 역사의 소산이고 이는 재차 강조되어도 부족함이 없다. 일본이 전쟁 범죄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일본의 침탈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가 보여주는 것처럼 피해 여성들의 고통은 위안소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을 역사와 사회에서 배제하여 지워버린 것은 해방 이후 한국의 가부장제와 국가권력이었다. 권윤덕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역사를 ‘일본’의 문제로만 국한시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전쟁 범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문제는 책의 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역사 인식은 치열한 정치공방의 장이 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둘러싼 여론은 악화되었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일본 쪽 출판사에서는 책의 출간을 무기한 연기해버린다. 결국 책은 2010년 중국과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일본판은 2018년에도 여전히 미출간 상태다. 다큐멘터리는 ‘평화그림책 프로젝트’를 따라가면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의 문제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심달연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감사한 일이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면서 심달연 할머니를 떠올린 것은 끊어지지 않는 기록을 통해 가능해지는 기억의 연결 때문이었다. 심달연은 용기 있는 증언으로서 침묵을 깨고 일제가 자행한 전쟁 범죄와 만행을 기록하고 그리하여 기억할 수 있게 했다. 그 기억을 권윤덕은 그림책의 형식으로 재기록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사실의 복기나 지워졌던 존재의 복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지금/여기의 가부장제 및 식민주의와 싸우는 투쟁의 과정이 되었다. 그 과정은 또 권효의 <그리고 싶은 것>으로 이어졌다. 잊지 않고 기록하려는 노력 위에 서있는 심달연의 이야기는 그렇게 나에게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심달연의 ‘꽃그림’은 KBS에서 제작된 위안부 여성에 대한 드라마 <눈길>(2015)의 오프닝 크레딧 배경으로도 사용되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심달연의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 안에 담긴 꺾이지 않는 자기표현의 의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의지를 배워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표현하겠다 생각해 본다.

글. 손희정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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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SF 칼럼리스트 심완선님은 한국의 여성 문인 지하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X 자선

지하련(池河蓮)은 1940년대 일제 말기에서 해방 직전까지 작품을 발표한 한국 여성 문인이다. 짧은 활동 기간과 적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워낙 문예 창작이 어려웠던 시기에 탁월한 글을 써서 이름이 남았다. 지하련의 대표작 <도정>(1946)은 뛰어난 완성도와 당대 지식인을 묘사한 작품 중 유일하게 양심의 가책을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하련의 소설은 여성주의적 측면에서 특히 의미가 깊다. 그녀의 글에서는 자유연애와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새로이 전파된 근대 조선에서 실제 여성들이 겪었던 혼란과 내적 투쟁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하련은 결혼제도를 둘러싼 허위의식과 그 붕괴, 새로운 자아를 향해 꿈틀거리는 여성들의 내적 욕구와 갈망, 이를 절망적으로 감내하거나 암시적으로 갈무리해야만 했던 시대상 등을 단편 안에 담았다.

한편 지하련은 임화의 부인으로 더욱 유명하다. 아내의 이름은 종종 남편에게 부수되는 것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지하련 역시 임화의 유명세로 덩달아 이름을 알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유명한 남편 때문에 지하련이 제 평가를 못 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하련을 마냥 수동적으로 희생한 아내로 보기는 어렵다. 집안의 강경한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자를 택하고, 그에게 인생을 걸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하련은 도쿄 유학을 거친 신여성으로, 남편과 함께 월북한 사회주의자로, 여성을 관찰하고 여성에 대해 쓴 여성 예술가로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지하련의 인생을 살펴보는 것은 지난 격동의 세기에 삶을 마친 뛰어난 여성을 다시금 알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사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여성 소설의 여백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파시즘과 해방: 시대적 배경

지하련의 작품 수가 적은 이유는 그녀가 늦게 등단한데다 오로지 한국어로만 작품을 발표하길 고집했기 때문이다. 지하련이 등단한 1940년대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식민 통치가 가장 엄혹하던 시절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41년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내려 ‘사상범’으로 지목된 사람을 강제 수용했다. 그리고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노동력을 강제로 징용하며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그 해 12월에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으로 인해 1944년에는 수많은 이들이 군인으로 강제 징집되고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받았다.

국내 문학계도 암흑기였다. 1939년에 일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의 취지는 문인들이 군국주의적 정책에 이바지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수두룩한 잡지가 폐간되어 글을 발표할 곳이 마땅찮아졌고, 이름 있는 문인들이 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 당시 평론가들은 신인들의 소설이 내용보다 기교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평했다.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추상적으로 침잠하며 암시와 은유 위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지하련의 소설에서도 과거가 없어 정체가 불분명한 지식인들이 조소, 방관, 윤리적 결벽증을 내보인다. 그러나 지하련의 <도정>은 유일하게 당대 지식인의 양심의 문제를 다뤘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의 화자는 옥살이를 했을 정도로 충실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소 부르주아’라고 결론짓는다. 지하련 작품집 [도정]에 신간평을 쓴 정태용은 화자가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과정의 묘사가 극히 정확하며 지하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지하련의 냉정한 관찰력은 식민지 지식인의 무력한 고뇌를 꿰뚫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에는 남성의 허위의식을 간파하는 여성의 시선이 공존한다. 지하련이 발표한 단편소설 6편 중 3편은 당시 ‘아내’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을 조망한다. 그럼에도 지식인의 초상만이 문학사적으로 가치 있는 주제라는 양 바라보는 것은 식상한 일이다.

아내의 서사

지하련이 그린 여성들의 초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남녀관계의 양상을 알 필요가 있다. ‘연애’는 국내에서는 1920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1910년대 일본 메이지 문학의 ‘고상하고 신성한 연애’가 유입되고, 자유연애를 칭송하는 20세기 초 연애담론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시인 노자영이 엮어 1923년 출간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연애서간집 <사랑의 불꽃>은 사회와 가족이 맺어주는 중매결혼에 맞서 자신의 영혼과 마음에 충실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성의 자유연애는 여성 자신이 근대인이라고 자각하고 구시대적 관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했다. 신여성 문인들은 마음으로 교류하는 평등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추구했다. 나혜석의 일생은 물론이고, 잡지 <신여성>의 편집자였던 김원주는 “정조는 사랑이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라며 평생 지키는 게 아니라고 선언하는 글을 발표했다. 경성에는 분명 뾰족구두를 신고 모피를 두르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여성들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문화적 변화는 정치 및 사회 변화와도 궤를 같이 했다.

신여성과 교육, 자유연애의 조합은 구여성 및 중매결혼과 대척점에 서는 것처럼 보인다. 배명훈의 소설 [고고심령학자](2017)는 근대 조선에 있었던 일본 여성 인물을 묘사하며 이런 말을 한다. “신식 교육을 받은 구식 여자가 되거나, 신식 교육을 받은 못돼먹은 여자가 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신여성과 구여성 같은 이분법은, 성녀와 창녀, 개념녀와 된장녀라는 비교에서 보이듯 실제로 여성 집단을 둘로 나눈다기보다는 여성에게 부과되는 이중의 역할을 대비시킨 것에 불과했다. 오히려 신여성과 구여성의 모습을 조합한 이상적인 ‘양처’와 같은 개념이 등장하며 여성에게 이중의 족쇄를 씌웠다. 여성과 똑같이 근대적 개념을 받아들인, 구습에서의 해방을 추구하는 남성 지식인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아동을 존중하여 어린이라 부르자던 방정환은 은파리라는 필명으로 통속소설을 연재하며 신여성의 ‘괘씸함’을 탓했다. 여성 작가 김명순의 독신주의는 처녀가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더군다나 연애 개념은 남성의 외도를 합리화하는 핑계로 작용하기도 했다. 도시로 상경한 여러 남성 지식인이 고향에 본처를 두고 신식 여성을 첩으로 맞이했다.

지하련의 소설은 연애를 다루지만, 연애감정에서는 한 발 물러나 결혼제도라는 틀에서 비어져나오며 불협화음을 내는 여성에게 주목한다. 지하련 전집을 엮은 서정자 교수는 지하련의 소설을 “아내의 서사”라고 말한다. <양>(1942)에서, 여학교를 나왔음에도 신여성 차림을 하지 않고 지내는 정인은 작중 성재가 아니라 양품점 청년과 결혼하겠다는 이유로 “하천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을 꼽는다. ‘연애’ 담론이 찬양하는 열린 교류나 평등한 관계는 없다. 지하련의 데뷔작 <결별>(1940)의 형예는 남편이 잠든 곁에서 벌레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것” 깨닫는다. 친구 정히네 부부가 늦게 결혼했어도 연애관계로 맺어진 것과 달리 형예의 남편은 형예를 아내 역할을 할 사람으로 볼 뿐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반대로 아내의 친구에게 연모를 받는 남편 입장에서, <산길>은 자신의 친구와 남편이 연애관계에 빠진 것을 지켜보는 아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성이 보는 여성의 모습이 있다. 행실이 어떠니 살림이 어떠니 하는 남편 입장의 평가가 아니라, 날카로운 농담을 하며 까르르 웃는 새댁들이나 결혼보다 연애를 말하며 곧고 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여자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를 압도하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하 결혼제도로 인한 신산함은 폄하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엄혹한 시기였기에 ‘아내’된 여성의 내적 갈등은 한층 복합적인 양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한국근대문학사는 이 모두를 중요치 않은 일로 폄하해온 감이 없지 않다. 국어 교과서에서 여성 소설을 보기 힘든 이유가 정말로 여성 문인이 드물었기 때문일까. 여성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만큼, 우리 세상에 존재했으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지하련의 삶

지하련은 필명이고 본명은 이현욱으로, 1912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해 마산에서 성장했다.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녀는 부유한 대지주 집안에서 자라 당대 여성으로는 드물게 근방의 학교가 아니라 일본 도쿄에서 학업을 마쳤다. 오빠들이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지하련도 일찌감치 사회주의를 접한 것으로 보인다. 임화가 마산에서 요양 중일 때 만나서 1936년에 그와 결혼했다. 아이 딸린 이혼남과 결혼하겠다는 말에 큰오빠에게 뺨을 맞았지만, 혼인신고 4일만에 아들을 낳았다. 1940년에 <<문장>>에 단편 <결별>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임화가 동지 박헌영을 따라서 월북을 결심하자 1947년 고향도 가족도 버리고 임화를 따라 월북했다.

월북한 예술가들의 흔적은 남과 북 양쪽에서 말소됐다. 임화는 그나마 공식적으로 발표한 글 등 비교적 기록이 있지만 지하련의 삶은 그녀가 발표한 작품 일부와 다른 여성 문인들의 기록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만주에 머물러 있었고, 그래서 북에 남았던 임화가 박헌영 계열의 몰락과 함께 김일성 계열에 간첩 혐의로 처형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지하련은 임화의 사망을 알고 실성하여 헤매다니다 평안북도 희천의 교화시설에 수용당했다가 병사했다고 추정된다.

글. 심완선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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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시네21의 기자 이다혜님은 소설가이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저자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다. 아프리카 문학을 이끄는 차세대 대표 주자라고 자주 말해지는 아디치에는, 첫 소설 <자주색 히비스커스>를 발표한 뒤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역시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등의 소설을 연달아 발표한 남성 작가 치누아 아체베와 연결짓는 것은 역시, 서구와 그 영향권에 있는 세계의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디치에는 아디치에다. 심지어 오늘날 아체베의 책보다 더 널리 그녀의 책들이 읽히고 있다.

소설가, 그리고 인기있는 강연자

소설가로 유명한 아디치에는 TED×Euston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로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만났다. 치누아 아체베의 ‘딸’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디치에가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고 활동하면서 팬‘이었다는’ 남성으로부터 받은 질문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디언>은 아디치에와의 2017년 4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전한다. “지난 해, 워크숍 말미에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유명한 소설가인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일어섰다. ‘나는 당신의 소설을 전부 읽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페미니즘 관련된 일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동성애자에 관련된 말을 시작하면서, 당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더 이상 모르겠는 기분입니다. 당신은 나같은 사람들의 사랑을 어떻게 유지할 생각입니까?”

그 남성의 질문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큰 성공에 기반하고 있었다. 2015년, 그 책은 스웨덴에서 16살이 된 ‘모든’ 학생들에게 배포되었다. 그리고 비욘세의 <Flawless>에 책 내용의 일부가 가사가 되었다. “우리는 소녀들에게 말하지. 너희는 야망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너무 많이는 말고. 너희는 성공을 목표로 해야 해. 하지만 너무 성공적이면 안돼. 아니면 너희는 남자를 위협할 수 있으니까.” 크리스천 디오르와의 콜라보 작업으로 티셔츠에 새겨진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문장은 또 어떤가. 그리고 이런 점으로 그녀는 빠르게도 비판받았다. 페미니즘이 상업화되고, ‘구매’와 직결되는 분야에서만 마케팅 도구로 쓰인다고. 이 말에 대한 아디치에의 답을 듣기 전에, 아디치에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1977년 나이리지아에서 태어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여섯 아이 중 다섯째로, 아버지는 나이지리아대학교의 통계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같은 학교의 첫 번째 여성 교무과장이었다. 그녀는 나이지리아대학교에 진학했는데, 1년 반 정도 의학과 약학을 공부하며 교내 잡지 <컴파스> 편집자로 일하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필라델피아의 드렉셀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유학생활을 시작,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 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2003년 존스홉킨스 대학교, 2008년 예일 대학교에서 각각 문예 창작과 아프리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디치에는 1997년 시집을, 1998년 희곡을 출간했는데, 2002년부터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한국에 출간된 단편집 <숨통>에서는 O. 헨리상을 수상한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첫 장면 <자주색 히비스커스>(2003)는 영연방 작가상, 허스턴 라이트 기념상을,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2006)로 주목할 만한 신인에게 주어지는 오렌지 소설상을 받았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영어로 글을 쓰고 활동한다. 나이지리아의 공식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이런 점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가로서의, 또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이 된다.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 강연 중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다. 이 강연은,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 나이지리아인으로서 미국에서 살며 활동하는 그녀가 맞딱뜨리는 편견과 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 나이지리아인들이 ‘나와 너무 똑같기 때문에’ ‘진짜 아프리카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들었다는 대목에 귀를 기울일 것. 왜냐하면 그 말은 어느 미국인 백인 남자 교수가 한 말인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에 대해 그 이름만으로 편견을 갖고 (선입견으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지 않는 독자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 갔을 때) 룸메이트는 내가 스토브 사용법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녀가 나에게 동정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만나기도 전부터. 그녀는 나를 아프리카 사람으로, 악의 없는 동정심과 보호심으로 대했다. 내 룸메이트는 아프리카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만을, 재난의 이야기만을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아프리카 사람은 그녀와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소통도 불가능했다. 솔직히 미국에 가기 전까진 내가 아프리카사람이라고 생각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얘기가 나오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나미비아 같은 곳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하지만 나는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많은 면에서 나는 나를 아프리카 사람으로 생각한다.

단편적 이야기는 고정관념을 만든다. 그리고 고정관념의 문제는 그것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고정관념은 하나의 이야기를 유일한 이야기로 만든다. 약자와 소수자, 비주류의 삶과 현실은 지금껏 그렇게 왜곡되어 왔다.

<숨통>에 실린 단편 <사적인 경험>에서 아디치에는 ‘다름’과 ‘연대’의 무대로 나이지리아의 시장 골목을 선택한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간 충돌이 일어나자, 이보족 기독교도 치카는 시장에서 양파를 파는 하우사족 이슬람교도 여자와 함께 숨는다. 두 사람은 폭동 때문에 각각 언니와 큰 딸을 잃었음을 알게 된다. 표제작 <숨통>은 이런 이야기다. 한 나이지리아 여성이 미국에 대한 동경을 품고 숙부가 사는 미국으로 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손님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가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를 이해하는데는 역부족이다. <숨통>의 이야기는 정서적인 면에서 <아메리카나>의 도입부와 이어진다.

아프리카 출신 여성을 ‘선량한’ 마음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악의가 없다 해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근사했지만 천국은 아니었어”라는 <아메리카나>의 주인공의 말 속에 숨은, 아메리칸 드림을 꿀 자격이 출신지나 피부색에 따라 주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자신이 오랫동안 자문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정의되는 정답은 없다

“페미니즘을 정의해 주세요.” 페미니즘 강연을 위한 사전미팅에서 이 질문을 받고 연사 셋이 다 고민에 빠진 기억이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적, 경제적, 정치적, 성적 권리와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할 때,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부터 숙고하게 된다.

아디치에가 <엄마는 페미니스트> 출간 직후 있었던 영국 ‘채널4’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트랜스 여성들도 여성인가요?’라고 물을 때 내 대답은, 트랜스 여성은 트랜스 여성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한 일이 논란이 되었다. “많은 트랜스 여성이 성전환을 결정하기 이전에는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길러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시스젠더 여성(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과는 달리 트랜스 여성들은 근원적으로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받아왔다고 믿는다”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 역시 계속해서 세상을 배워나간다. 페미니스트 완전체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 속에서 차이를 인지하고 차별에 눈뜨고, 더 많은 이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한다.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가 되는 일이 즐거운 이유라면, 이것이 완성되어 박제된 분야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다름에 눈이 뜨인다. 논란이 그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서로의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고 선생님이 될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디치에는,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상업화로 이어진다는 말에 이런 답을 했다.

페미니즘이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싫다. 이것이 바로 왜 그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특히 유색인종인 여성들이 서구의 주류 아카데미 페미니즘으로부터 유리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류가 되고 싶지 않은가? 나에게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는 페미니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지는 것이다. 아카데믹한 페미니즘은 경험에 언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중략) 나는 사람들의 결혼생활이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페니스를 가진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중략) (저소득층의 여성들을 돕는 것과 관련된 운동에 쓰인 문구가 부유한 회사가 돈을 벌게 하는 데 쓰인다해도) 해가 될 것은 뭔가?

나이브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답변이지만, 이 또한 아디치에가 경험한 현실에 기반한 말이었음을 간과할 순 없다. 주류가 된다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난 백인 여성과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여성에게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페미니스트는 해낸 것에 대해 인정받는 대신, 하지 않은 것으로 비난받는 일이 더 많다. 아디치에는 (미국출신이 아닌)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찬사를 받기 무섭게, 그녀가 충분히 목소리를 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지적받고 비난당했다.

아디치에의 말은,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된 <페미니즘을 팝니다>(앤디 자이슬러)같은 책에서 비판하는 ‘상업화된 페미니즘’이다. 비판의 요지에는 동의하지만, 페미니즘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처한 삶의 모습은 천양지차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이 마케팅 수단에 머무는 일을 경계하는 일이 필수적인 동시에, 페미니즘은 지금보다 더 대중화되어야 한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를 둘러싼 애정과 논란은 이런 페미니즘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글. 이다혜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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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를 위로하는 그림]의 저자 우지현님은 화가 조세핀 니비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X 자선

여기, 한 여성이 있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 대부분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그의 아내인 조세핀 니비슨Josephine Nivison이다. 뉴욕미술학교의 동급생으로 화가의 꿈을 키우던 이들은 졸업 후 우연히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결혼을 계기로 탄탄대로를 걸은 호퍼와 달리 조세핀은 화가로서의 삶이 중단된다. 그녀가 화가로 활동하는 것에 관해 그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전통적인 주부의 역할을 하기를 바랐으나 그녀가 계속 그림을 그리자 “별 재주도 없는 그림” 혹은 “한심해 보일 정도로 볼품없는 그림”이라며 대놓고 조롱하거나 깎아내렸다.

이것이 발단이 되었을까. 이들의 대립은 끝이 없었다. 당당한 현대 여성인 조세핀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고자 했고,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호퍼는 그녀가 집안일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며 늘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는데 그녀는 활달하고 사교적이며 수다스러운 성격이었고, 그는 내성적이고 과묵하며 수줍은 성격이었다. 지나치게 말이 없는 그에 대해 그녀는 “때때로 그와 대화하는 건 벽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성격부터 기질이나 성향, 가치관, 인생관 등 모든 것이 달랐던 이들의 불화는 종종 심각한 수준의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한번은 남편인 자신보다 고양이를 더 챙긴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하다가 육탄전을 벌였고, 운전하지 말라는 자기의 말을 거부하자 호퍼는 조세핀의 양다리를 잡아당기며 강제로 차에서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녀 역시 그의 얼굴을 할퀴며 저항했지만 그녀가 150cm의 작고 왜소한 체구였고, 그는 2m의 거구였던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이처럼 전쟁 같은 결혼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평생을 함께 했다.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으면서도 떨어질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삶을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품었던 화가의 꿈을 접고 평생 다른 화가의 모델이 되어야 했던 억울함, 동시에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그를 보며 느꼈을 비참함, 그를 화가로서 존경하면서도 자신의 내조를 받아 나날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서로 너무 달랐기에 매번 충돌하면서 겪는 좌절감, 자신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남편에 대한 증오, 그런 미움을 바탕으로 평생 투쟁하고 복수하고 반목하고 원망하면서도 끝까지 헤어지지 않았던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령 결혼생활 전체가 고통, 분노, 질투, 후회, 상실, 환란, 저주, 체념, 슬픔 따위로 채워진다고 해도 그 끝은 사랑으로 마무리되기를 원했던 것일까. 호퍼의 그림 속 그녀의 모습은 고독하고 치열했던 조세핀의 삶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글. 우지현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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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피스모모의 문아영님은 조선 최초의 경제학사 최영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최영숙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대학 학사가 된 최초의 조선인입니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EBS의 역사채널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이라는 제목 때문에 우연히 방송을 보게 된 것이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 “최영숙”이라는 세 글자는 제 가슴에 얹혔습니다.

최영숙은 1906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고 이화학당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1923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난징 명덕(明德) 여학교와 회문여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언어에 재능이 있어 짧은 시간안에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중국유학을 마친 그녀는 1926년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스웨덴 유학을 결정했던 것은 스웨덴 출신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인 엘렌 케이(Ellen Key·1849~1926)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애석하게도 엘렌 케이는 최영숙이 스웨덴에 도착하기 전 사망했다고 합니다. 최영숙이 너무 애석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경기도 여주군 태생으로 방년 21세 된 최영숙 양은 지난 7월13일 밤 하얼빈에서 구아연락열차를 타고 멀리 스웨덴을 향하여 떠났다. 최영숙 양은 사회과학을 연구하려고 단신으로 만리타국으로 간다고 한다. 지난 9일 기선(汽船)을 타고 상하이를 떠나 다롄에 상륙했을 때, 최영숙 양은 일본경찰에게 잡혀 큰 고초를 겪었다 한다. 그는 후일 고국에 돌아와 몸과 마음을 오로지 고국에 바치기 위해 이 같은 고생을 무릅쓰고 공부하러 멀리 떠난다 한다. 그는 나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일어와 중국어, 영어에 정통하고, 매사에 재주가 뛰어나다. 최근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한다 하며, 이번에도 사회주의에 관한 서적을 많이 가지고 가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한다.”(‘동아일보’, 1926년 7월23일자)[1]

당시 그녀의 집안은 포목상으로 꽤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당시 조선에서 스웨덴 유학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최영숙은 스웨덴에서의 체류비용과 유학비용을 자기 힘으로 충당하며 학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처음엔 자수를 놓는 부업을 하다가 스웨덴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스웨덴 왕가의 아돌프 황태자와 함께 그의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지요. 아돌프 황태자가 조선, 중국과 일본 등에서 수집해 온 자료들을 번역하는 작업을 최영숙이 담당했던 것인데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한문에 능통하고 스웨덴어까지 구사하는 그녀는 아돌프 황태자가 가장 신뢰하는 연구원이었다고 합니다.

1931년 말, 최영숙은 5년간의 스웨덴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스웨덴에서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귀국을 선택합니다.

어젯밤 침상 위에 누어 생각했다. 명년에 집에 가면 무엇을 먼저 할까. 부모님 노쇠(老衰)하고 형제들 약소하니 내 할 일 무엇보다 가정을 정돈할 것. 유일한 나의 오빠 완치될 그날까지 마음을 다 바쳐서 오빠 위해 희생할 것. 그 다음 민족 위해 일할 때에 공민학교 설립하고 노동계급 청년남녀 몸과 정신 수양하여 삶의 길을 찾게 하자.(‘청춘에 요절한 최영숙 애사’, ‘제일선’, 1932년 5월)[2]

그녀가 조선을 떠나있었던 동안 집안의 가세는 기울어 가족들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녀가 귀국하자 모두 이제 집안살림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습니다. 최영숙 역시도 무언가 사회와 가족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귀국 당시,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사였던 최영숙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대로서는 보기 힘든 여성 엘리트였으니까요.

“조선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을 때,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에 몸을 던져 살아 있는 과학인 경제학을 현실에서 실천해 보려했습니다. 공장 직공이 되어 그들과 같이 노동운동을 할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 보니 형편이 어려워 당장에 취직이 걱정입니다. 스웨덴에 있을 때, 그 나라 신문에 투고하여 조선을 다소 소개도 해보았고, 동무 중에도 신문기자가 많았습니다. 신문기자 생활에 관심이 많습니다. 조선의 실정을 아는 데도 제일일까 합니다.”(조선일보, 1931년 12월22일자)[3]

하지만 1931년의 조선은 일제 식민지배와 세계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지요. 거기에 조선인이면서 ‘여성’인 최영숙은 훨씬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기자, 교사, 교수등 여러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그녀는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요즘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불리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그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겨지지 않습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웨덴어에 독일어까지 5개국어를 구사했고 당시 드물었던 중국과 스웨덴 유학경험, 경제학 학사 학위가 있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스웨덴 체류 당시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선사회에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기고했었기에 언론계 인사들과의 인맥도 돈독했으며 스웨덴 아돌프 황태자(이후, 구스타프 6세로 즉위)와 스웨덴 유력인사들과의 네트워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영숙은 서대문 근처에 작은 상점에서 콩나물과 배추 등 부식을 팔기 시작합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해 무어라도 해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장사는 잘 되지 않았고 귀국 5개월이 되던 1932년 4월, 최영숙은 실신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당시 최영숙은 인도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귀국 직후 직면하게 된 여러 상황이주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렸던 겁니다.

결국 그녀는 낙태 수술을 받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회복 불능 진단을 받고 자택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23일,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죽음은 다시 한 번 세간에 회자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생활고와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한 보도보다는 그녀의 태중에 있었던 아이에 대한 구설이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하지요.

최영숙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 지면을 통해 다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그녀의 삶이 너무 아프고 슬프면서도 1926년 여성 활동가 엘렌케이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스웨덴을 향하던 그 순간의 최영숙을 생각하면 그 반짝이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녀에게 듣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안타깝고 그녀가 원했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최영숙은 노동만으로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고 여성들도 차별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바탕삼아 여성과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궁핍한 생활 가운데서도 낙원동 여자소비조합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빚을 내 조합을 인수하기도 했지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86년이 지나가는데요.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을까요? OECD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남녀임금격차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14년째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남녀 임금격차를 발생시키는 요인들을 여러모로 분석해보았는데, 교육연수의 기회, 업종 차이, 근속연수 등의 요인의 영향보다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성이 임금 4% 정도를 더 받고, 여성은 58%를 덜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베일로 가려진 진짜 이유는 사실 모두가 아는 그 이유입니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성’이라서,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을 덜 받게 되는 것이지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고,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떠난다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말하고 싶은 분들 계시겠지만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 선명하게 존재한다”고요.

“Girls can do anything!” 이런 당연한 말에 해명을 요구하는 이상한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그 이상하고 끔찍한 세상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성들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왔던 그 세계에 종언을 고하며 2018년 여성의 날, 최영숙을 기억합니다. Girls can do anything and be anything!

 

[1][2][3] 조선 최초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哀史)

글. 문아영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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