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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입니다. 읽고 싶으신 분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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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입니다. 읽고 싶으신 분들만...

익명 (미확인) | 금, 2017/07/14- 14:14
<긴 글 입니다. 읽고 싶으신 분들만 읽으시고 긴 글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억지로 읽으신 뒤 욕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 . 사드배치철회 투쟁이 어느덧 일 년이 되었습니다. 계절이 한 번 순회하는 자연의 변화가 막연히 우리들의 삶과 몸에 어떤 식으론가는 연결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해봅니다만 사실 달력이 표시해주는 일 년이란 시간이 우리들의 투쟁과 어떤 식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는 지는 명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은 스스로도 알지 못할 시간에 의미를 두고 긴 나날들을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한 번의 자연이 순회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참으로 훌륭하게 잘 싸워왔다고 생각합니다. . 사드는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는 있지만 이미 성주에 들어와 있고,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불안은 매우 현실적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드가 가져올 알지 못할 미래의 사태들이 주민들뿐 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전쟁과 핵무기가 가져다주는 공포는 막연하기는 하지만 항상 현실화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사르트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이런 불안과 공포를 이겨나가면서 투쟁에 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찾아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불안은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으로부터, 공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아마 우리들이 가지는 심리적 상태는 이렇게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 그동안 이런 저런 근거들을 통해 한반도, 나아가 세계의 정세를 이야기하고 이와 관련된 사드문제를 고민해왔지만 사실 그런 분석들과 그 결과들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합리성과 과학적인 것들을 통해 추론하고 예측을 하여야 한다고 흔히 말을 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한 번도 과학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합리성이라는 것을 통해 때로는 엉뚱한 결과로 도달한 사례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런 과학적 추론들이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고, 긍정적 의미들을 산출할 수 있는지도 의심이 됩니다. . 미래가 참 궁금하기는 합니다. 조금 이해가 쉽지 않고 철학적인 말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미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상상일 수 있습니다. 또한 과거는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뇌의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억과 상상이 바로 과거와 미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기에 없고 미래는 도래하지 않았기에 없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현재만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미래가 현실화 되었을 때도 그것은 항상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계획하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 과거는 사물이나 사건이 기억의 잔상으로 뇌 속에 남아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의 찌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록물과 사진, 영상처럼 언어와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라진 것들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변화해서 현재로 와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기억에 매달리는 이들을 우리는 흔히 ‘보수’라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믿음은 굳건합니다. 어쩌면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 자체가 이런 과거와 미래라는 기억과 상상의 시간의 관념 속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진보주의’를 외치는 분들도 이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신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하루도 쉬지 않고 싸워온 일 년의 투쟁은 ‘지속’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런 지속이 있었기에 다른 사건과 장소와 연결될 수 있었고 그것은 변화를 겪으며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들의 투쟁은 하나의 놀이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투쟁과 놀이, 삶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이 우리들의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야 말로 우매한 짓일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은 재미없는 투쟁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쁨과 재미, 신명남, 매력, 짜릿함을 통해 현재의 투쟁을 즐겨야 하는 이유는 희생과 금욕, 고뇌에 찬 투쟁이 기쁜 미래를 담보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면 달콤한 미래가 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항상 그렇습니다. 달콤한 것은 현재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에 오는 것입니다. 현재에는 결코 도래하지 않습니다. 소득과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파이가 커져야 미래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파이를 나누는 일은 항상 미래의 일일 뿐입니다. . 투쟁을 놀이로, 유희로 만드는 일은 힘든 투쟁에 단순히 흥미와 유머를 도입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투쟁과 놀이를 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분리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투쟁과 괴리된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희화화된 삶일 뿐 여기에는 자유로움과 욕망이 관철되며 이루어지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재미없는 삶을 지루한 투쟁과 연결하거나 하는 방법이 투쟁과 놀이, 삶이 괴리된 형태로 다른 한편에 존재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촛불마당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 신명남이 무엇인지를 느껴왔습니다. 그 힘으로 일 년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놀이도 너무 오래되면 지겨워 집니다. 한 일 년을 했으니 이제 물릴 때도 되었을 것입니다. ‘피로누적’, ‘힘듬’과 같은 말들은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런 놀이의 지루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투쟁과 놀이가 힘들어지거나 지겨워질 때면 세 가지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투쟁에 나서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다른 길과 삶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는데도 그것을 누르고 참으며 투쟁에 나서는 금욕적인 길입니다. 지금까지의 많은 투쟁들이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길은 지겨움과 고통을 참지 않는 것입니다. 지겹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는 즐겁고 신명나는 다른 삶, 놀이, 투쟁을 개발하고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길은 투쟁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오직 첫 번째 방법의 투쟁만을 아는 이들은 두 번째의 길을 세 번째 방법과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모르니 분별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 금욕적인 길에는 숭고함, 희생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심리에는 희생에 따른 보상심리가 또한 작동됩니다. 아마도 386 세대의 정치권 진입에는 이런 심리들이 작동되었을 것입니다. 투쟁과 삶이 즐겁고 기뻤던 이들은 이미 그 삶에서 충분한 보상을 누렸기에 미래의 보상심리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숭고한 투쟁’에서는 금욕과 희생은 항상 현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기쁨은 항상 멀거나 곧 다가올 미래의 일이 됩니다. 그런 금욕과 희생이 현실에서 기쁨을 누리는 방법은 권력화 되어가면서 보상심리를 충족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투쟁을 숭고함과 거룩함으로 치장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와 같이 무엇을 위해서와 같은 의미들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민주’, ‘평화’, ‘통일’과 같은 말들은 사실 만질 수 없는 실체적 의미의 언어들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투쟁을 통해 어떤 상태가 된 상황이 존재하겠지만 그 때도 그것들은 여전히 미래에 ‘도래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투쟁의 숭고함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투쟁은 숭고함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고 자신의 일이고 즐겁고 기쁘기에 나서는 것입니다. . 땅거미가 지면 놀이에 지친 아이들처럼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날이면 동네 어귀 마당에는 또 다시 놀이판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피로해지면, 지겨워지면, 재미가 없어지면 놀이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놀이인 투쟁도 변화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여전히 하고 있던 놀이가 재미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 놀이 외에는 다른 놀이를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이 놀던 아이들이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만두려 한다면 다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놀이로 바꾸어 놀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놀이와 투쟁은 무궁무진 합니다. 더욱 재미있고 기발한 투쟁놀이의 방법들을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투쟁의 방법을 개발해내며 우리는 새로운 투쟁과 삶의 재미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 사드배치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추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현재 차단되어 있습니다. 물론 독단적인 행위는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런 행위는 오히려 ‘주권국가’라는 ‘국민’의 무의식, 의식에 상처를 만들어내며 국내의 여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지금 사드를 둘러싼 투쟁은 소성리에서 물리적으로 어떤 것을 막고 차단하는 물리적 투쟁의 성격이기 보다는 정치적 의미를 누가 장악하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대중들과 결합하고 다양한 세력들을 어떻게 모아가는 가가 중요한 정치적 투쟁의 성격으로 변해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막아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소성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대응하고 싸워나가야 할 이유들은 분명합니다만 중요하게 방점이 찍혀야 할 지점들과 대응의 강도와 방식은 변해야 합니다. 투쟁하는 방법과 노는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촛불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 투쟁은 블랙홀처럼 중심으로 강하게 몰려드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심력이 사라지면 그것은 또한 외각으로 폭발해 나가기도 합니다. 블랙홀의 중심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강력한 태풍이나 토네이도의 중심이 비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중심이 비었다고 해서 그것을 약하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힘의 강도에 따라 태풍의 힘과 영향권이 결정됩니다. 많은 분들이 소성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소성리는 눈에 보이고 감각되고 만져지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사드가 발생시키는 효과는 매우 정치적입니다. 쉽게 감각되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감각기관을 발달시키고 작동해야만 감각되어집니다. 소성리, 미대사관 등 직접적으로 감각되는 장소를 통해서 투쟁이 집중되는 현상들은 피할 수 없습니다만 그것조차도 사드가 발생시킨 정치적 효과와 의미들과 연결될 때만 의미를 가집니다. . 우리의 아픔 만을 알아 달라고 해서는 결코 사드문제는 확장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드문제가 지금 가장 큰 현안이라는 것 또한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분명 우리들에게는 그렇습니다만 다른 이들은 또 다른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이 아픔과 관심을 가진 영역의 주변에 같이 함께 서 있어야 합니다. 연대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 그것은 사드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제로 다가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한 다른 여러 문제들이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대란 이렇게 태풍의 힘이 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지고 만나 에너지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비의 날개 짓은 결코 그 힘만으로는 태풍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다른 힘들과 어울릴 때 몰아치는 힘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하여야 하는 것은 다른 삶들도 그 힘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 짓이라는 사실입니다. . 서로 투쟁의 결이 다르다고 해서 대립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정한 방향을 가지는 결들도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특이한 결들이 모아져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결, 나뭇결 모두가 그러합니다. 우리들은 사드철회라는 방향의 결을 가집니다만 다른 투쟁의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투쟁을 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규정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상대에 대한 공격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못남이 있습니다. 상대를 찌질하게 만들면 자신도 동일하게 찌질해 짐을 알아야 합니다. 찌질함은 항상 더 강력한 찌질함을 통해 공격되기 때문입니다. 존재는 다른 것들을 공격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위대함을 통해 증명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투쟁을 하면서 피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투쟁하는 목적이나 가치들을 어떤 것들을 통해 상징화하면서 그것을 숭고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것에 대한 비판이 차단되어 버립니다. 이런 것들은 종교적 요소들과 결합하게 되면 더욱 강화되어 버립니다. ‘소성리’, ‘어머니’ 같은 것들이 상징화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냉정할 지 모르겠지만 소성리는 수많은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 중 하나일 뿐이고 어머니들 역시 다양하게 결합한 투쟁의 주체들 중 하나입니다. 소성리의 어머니들을 통해 숭고함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그 분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무의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들뢰즈와 같은 학자들에 의하면 이는 자본주의와 공모관계에 있는 허구적인 통제와 체제 순응의 메커니즘에 다름 아닌 것이기도 합니다. 상징과 체제를 만들고 그것에 순응시키는 방식에 대한 긴장과 주의가 요구됩니다. . 소성리에서 종교 단체와 종교인들이 함께 하는 것에 동의하고 기껍기도 하지만 투쟁의 주요 전술들이 종교 집회의 성격과 형태로 진행되는 것은 깊게 고민해볼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각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지만 종교집회는 투쟁에 숭고함이나 신비함을 덧씌우기도 하고 투쟁해야 할 주체들을 종교집회를 통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광우병 촛불 집회에서도 수많은 대중들 사이를 가르면서 지나간 사제들의 행렬이 진행되는 순간 사람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던 상황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 나름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존중되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그런 정체성을 잘 살리는 것과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일 년을 넘어갑니다. 그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주관적 의미를 공유하기에 새로운 시점이 될 것입니다. 파란나비의 변태(變態)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다시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가야 합니다. 매번 이야기 하지만 투쟁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가지면서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삶과 투쟁의 노정(路程)을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사드철회 요구 분신 조영삼 님 방금 선종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천상영생을 빕니다
수, 2017/09/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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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삼 님이 사망소식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우리들 스스로 건 국가에 의해서 건 이런 슬픈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영삼 님이 남긴 글은 그동안 우리들이 주장하던 뜻과 함께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 분의 죽음이 더욱 깊게 파고듭니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 합니다. 우리들이 애도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의 죽음이 다가오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아래 조영삼 님이 남긴 글의 전문을 게재합니다. .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오래전, 독일에 있을 때부터 대통령님을 지지하고 존경해왔던 사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드는 안 됩니다. 대통령님도 사드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전쟁의 위험만 가중시킬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더 큰 그림이 있을 거라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초강대국 미국과의 '밀당'이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밀리면 뒷감당을 어찌하시렵니까. 저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실로 진실로 바라는 사람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남북경협, 평화통일, 동북아 균형자 역할 등을 통한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드는 결코 전쟁방지나 평화를 지키는 무기가 아닐 것입니다. '총알로 총알을 맞추는' 가능성이 희박한 사드미사일 자체보다도 사드배치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엑스밴드 레이다의 감시망에 놓여있는 북한과 중국은 사드가 가동되는 시점부터 그들의 제1 타격 목표는 사드배치지역이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의 ICBM은 종심이 짧은 한반도용이 아니라 대륙을 넘나드는 장거리용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 미국용입니다. 대통령님도 이런 상식적인 사실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배치'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사드배치를 앞당긴 것은 현실국제정치의 냉혹한 벽을 뚫지 못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대통령님의 대화제의에 핵실험 등 엇박자를 놓고 있는 북한 당국에 있겠지요. 의도했든지 아니면 우연히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북미간 적대적 공생관계'의 부산물인 사드배치로 인해 우리 민족의 미래에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고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치킨게임의 결과는 남북 공멸의 길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매의 눈을 치켜뜨고 있는 일본이 보입니다. 북의 책임 있는 당국자에게 당부와 부탁을 드립니다. 저는 한때 보편적 정의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인민군 종군기자 출신 이인모 선생의 손발이 되어 함께 생활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이인모 선생은 분단비극의 후유증으로 자력으로는 단 한걸음도 걸을 수 없었지요) 당부 드리건대, 당신들이 즐겨 사용하는 '우리민족끼리'처럼, 말로만 '민족', '민족' 하지 말고 민족 앞에 모든 걸 내려놓으십시오. 민족의 운명은 우리민족끼리 합심하여 짊어지고 간다는 정신으로 미국과 양자간 '밀당' 하기 전에 남북대화의 장에 나서기 바랍니다. '우리민족끼리'라 해놓고 이른바 '코리아패싱'은 안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권이 이명박근혜 정권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계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것을 넘어서 길이 남을 촛불혁명정권입니다. 성공해야 합니다. 기필코...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혹시 압니까? 미국을 꼼짝 못하게 하는 묘수가 남북대화 과정에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당신들의 '신념의 화신'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는 이인모 선생과의 인연으로 세상의 주변부를 떠돌며 인생행로와 역정이 여러 번 뒤바뀐 사람으로서 이런 부탁과 당부를 드릴 자격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대통령님을 인간적으로 존경했고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나서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의 산화가 사드철회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 방울이나마 좋은 결과의 마중물이 된다면 연연세세 가문의 큰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의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던 어느 이름 없는 평화주의자가 한 떨기 마지막 잎새를 떨굼으로써 이 땅에 평화를 기원한 나라, 대한민국을 얕보지 말라고... 그는 백만 촛불혁명의 한 사람이었다고,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미국에게 당당히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님, 촛불민심을 든든한 배경으로 흔들리지 마시고 초심대로 밀고 나가셔서 성공한 정권으로 세계사에 길이 남으시길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촛불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제 19대 대통령 후보 문재인 남북협력정책특보 들풀하나 조영삼 드림 덧붙이는 글 :저의 행동에 설왕설래 말이 많을 줄로 사료됩니다. 개의치 않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인생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직 이 세상 소풍 끝나지 않은 분들, 외람되지만 제 처와 어린 아들내미 부탁합니다.
수, 2017/09/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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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청와대, 민주당이 하는 일들을 보면 거짓말과 이슈돌려막기로 세월호, 위안부졸속합의, 스텔라데이지, 박근혜 기록물, 한일군사정보협정, 전작권 회수, 검•경•사법 개혁 등엔 무관심으로 일관한 채로 불법기습싸드배치, 폭력진압, 이슈돌려막기로 국민들 눈을 속이고 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늘을 속일수는 없는 법, 언젠가 천벌을 받게 될 거다.
수, 2017/09/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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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사드 반대"... :: 네이버 뉴스 -


무단 방북후 獨망명한 전력 무단 방북(訪北) 후 독일로 망명한 전력이 있는 조영삼(58)씨가 19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며 분신했다.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이날 오후 4시 10분쯤
수, 2017/09/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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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news1.kr/articles/?3106063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김다혜 기자 |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에 반대한다는 글을 남기고 분신했던 재독 망명가 조영삼씨(58)가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숨졌다.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전국행동)은 '사드배치 반대'를 주장하며 19일 오후 4시10분쯤 서울 ...
수, 2017/09/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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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mn.kr/o7ve


전신 3~4도 화상... 문 대통령에게 편지 남겨
수, 2017/09/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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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가 심상찮다. 트럼프, 2500만명의 주민을 가진 북한을 완전 파괴할 것 - 남북한 공멸과 인류최후의 전쟁이 될 것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필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개입이 불가피하며 결과적으로 전세계는 핵전쟁으로 한반도는 물론이고 문명국 대부분은 핵전쟁으로 파괴되고, 아마도 인류최후의 전쟁으로 지구의 종말을 볼 것이다. 이제 후손들에게 이나라를 안전하게 물려주려면 미친놈 말한마디로 일어날수 있는 전쟁을 막고 평화협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트럼프, 2500만명의 주민을 가진 북한을 완전 파괴할 것 - 남북한 공멸과 인류최후의 전쟁이 될 것한반도 ...
수, 2017/09/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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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9/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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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분신하신 조영삼씨는 노무현재단 회원이자, 우리겨레하나되기 운동본부 회원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361526#cb
수, 2017/09/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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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영삼 님의 빈소가 평화나비광장에 마련되었습니다. "사드가고 평화오라"는 마직막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님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모두 함께 사드가 철회되는 날까지 힘차게 싸워 나갑시다.

수, 2017/09/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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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9/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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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분신 전 문재인 정부에 사드 철회를 촉구하는 4장짜리 직접 쓴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저는 오래전 독일에 있을 때부터 대통령을 지지하고 존경해왔던 사람이다. 문 대통령도 사드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전쟁의 위험만 가중시킬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미 간 적대적 공생관계’의 부산물인 사드배치로 인해 우리 민족의 미래에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 미국에 당당히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에 따르면 최후의 ‘재독 망명객’인 조씨는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고 이인모 씨의 초청으로 1995년 8월 독일과 중국을 거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허가받지 않은 방북으로 처벌위기에 놓인 조씨는 그 해 독일정부에 망명을 신청했고 독일정부는 이를 허가했다. 조 씨는 2012년 12월 자진 귀국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가정보원에 체포됐고, 다음 해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석방됐다. 이후 경남 밀양에 지내며 사드 반대 활동 등을 해왔다."


유서 남기고 분신한 조영삼씨는 누구인가?
수, 2017/09/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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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철회 촉구하며 분신한 조영삼 씨 20일 오전 선종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6551

수, 2017/09/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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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AD배치 결사반대(#73) http://blog.jinbo.net/CINA/459

수, 2017/09/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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