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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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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익명 (미확인) | 수, 2017/07/12- 14:59

지난 5월, 핀란드의 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토가 사망했다.

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복지국가, 개헌, 중립평화외교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100년 만에 이뤄낸 핀란드의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재임 중 성과를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싣는다. 

1. 국내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1), 어떻게 복지국가와 개헌을 이뤄냈나 

2. 대외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대통령으로서 마우노 꼬이비스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빠시끼비-께꼬넨 노선’(Paasikivi-Kekkosen linja)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들의 중립 평화 외교 노선을 한 단계 심화 발전시킴으로써 동서 냉전의 해체와 유럽 통합 등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간 일이다.

동과 서 사이에서, 중립 평화 외교의 계승자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3국, 우크라이나 등 다른 ‘경계국가’(border country)들처럼 핀란드도 동과 서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20세기 내내 내전과 전쟁, 냉전 제약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의 평화조약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관 출신 대통령 빠시끼비는 핀란드가 ‘지리’(geography)를 바꿀 수는 없는 이상 “동쪽의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서방과 소련 사이의 중립적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보수당 출신이지만 합리적 실용주의자였던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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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중립평화외교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빠시끼비 대통령(사진 왼쪽)과 께꼬넨 대통령

빠시끼비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께꼬넨도 같은 노선을 견지했다. 그는 핀란드는 국제관계 문제의 ‘재판관’(judge)이 아니라 ‘의사’(doc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과 1950~60년대의 대소 관계 위기(소련이 민주화와 인간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 진압할 당시 핀란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등을 집중된 권력의지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극복한 께꼬넨 대통령은 빠시끼비의 소극적 중립외교 노선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적극적 평화외교로 발전시켰다.

실제로 중도우파인 농민당(현 중앙당) 출신이면서도 적극적 대소 우호 정책을 펼친 그는 후르시초프, 브레즈네프 등 소련 서기장들과 사우나 외교를 통해 막역한 친구 관계를 맺었다. 이 시기 오히려 소련으로 치우친 듯 보였던 핀란드 정부의 대외 중립 외교 정책은 서구의 외교 이론가들로부터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 불리며 비판받기도 했다.

재임 초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그 진의를 의심할 정도로 소련과의 전폭적 신뢰 관계를 구축한 께꼬넨은 국내 권력 기반이 안정되고 세계적인 데탕트(해빙) 물결이 시작되던 1970년대 적극적 평화외교정책을 추진한다.

미국과 소련, 서구와 동구 사이의 소통의 메신저로서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실은 역사적인 1975년의 헬싱키 평화협정 체결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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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는 동서 양 진영의 34개 나라 정상이 ‘최종의정서’ 체결을 통해 ‘인권 존중’과 ‘국경 및 체제 존중’을 맞바꾸는 헬싱키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uvx&articleno=78138…®dt=20160403185527)

20세기 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르 알토(Albar Aalto)가 설계한 헬싱키 핀란디아홀(Finlandia Hall)에서 개최된 <유럽안보협력정상회의>에 미국의 닉슨 대통령,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 등 동서 진영의 34개국 정상이 한데 모여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절차와 방안을 담은 협약에 서명한 것이다. 당시 동독과 서독의 수상도 함께 참여하여 회담하는 등 큰 성과를 올린 역사적 정상회의 개최로 핀란드의 국제적 위상도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아직 냉전 질서는 강고했고, 미소 간의 핵무기 군사경쟁 등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께꼬넨 대통령이 연로한 나이와 체력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연거푸 나선 데는 불안정한 국제관계에 대한 (독단적) 책임감도 작용했다. (당시 쓴 일기들에서 그는 종종 세계정세의 불안정한 발전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을 토로하고 있다.)

께꼬넨의 사임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꼬이비스또에게는 빠시끼비와 께꼬넨으로 이어진 중립 평화외교를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국제질서의 대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이중의 과제가 주어졌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신보수주의를 표방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고, 소련은 이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주도하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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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 대통령은 ‘빠시끼비-께꼬넨’으로 이어지는 중립 평화 외교를 계승 발전시켰다. 1990년 미소 정상을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가장 큰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꼬이비스토 대통령은 핀란드 공산당과의 경쟁 관계에 있는 핀란드 사민당에 대한 소련 권부의 전통적 불신을 극복하며 외교적 성공의 첫 발걸음을 뗀 뒤, 점차 미소간 핵무기 감축과 평화 협상을 촉진하는 메신저 겸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는 러시아어를 직접 익히고 소련의 고위 인사들과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련 내부의 사정에 정통했고, 레이건과 부시 등 미국의 대통령들은 그의 해박한 식견과 외교적 역량을 존중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 미국의 조시 부시 대통령 내외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내외를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외교 활동 중 백미로 꼽힌다.

대전환기, 유럽통합으로 향한 길

1980년대 후반에는 세계정세가 급변하면서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그리고 1991년의 군사쿠데타 실패에 이은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 해체 등이 꼬이비스토 대통령의 재임 2기에 발생했다.

사태는 꼬이비스토의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빠르고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대소관계의 안정적, 평화적 관리에 최우선적 역점을 둬왔던 전후 핀란드의 외교안보 정책에 첨예한 도전 과제가 제기된 것이다.

꼬이비스토는 신중하게 사태를 관찰하며 핀란드 외교정책의 전환을 준비했다. 우선 소련 해체 직후인 1992년, 1948년부터 체결해온 소련과의 ‘우호협력⦁상호지원조약’의 연장을 중단했다.

냉전 시기 이 조약이 부과한 정치 군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는 서방으로 눈을 돌려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다.

핀란드는 1994년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결정했다. 100년 전 러시아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핀란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소련이 부과한 제약에서 다시 온전히 벗어나 새로운 초국적 정치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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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는 ‘전환기의 대통령’이었다. 독일 통일과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자 그는 외교 전략을 전환해 핀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 성사시켰다.

꼬이비스토의 뒤를 이은 아흐띠사리, 할로넨 대통령도 유럽연합과 UN 등 국제무대에서 핀란드의 평화 인권 외교를 지속, 확대하며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수행해냈다. (아흐띠사리는 2008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0년대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일방 병합하는 등 유럽 외교안보 질서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고, 현 핀란드 대통령 니니스뙤(보수당, 2012~재임 중)는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중재하는 등 2000년 헌법 질서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꼬이비스토의 유산이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적 혁신과 통합을 위한 리더십

마우노 꼬이비스토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 뒤인 2017년 5월 25일(목) 오후 1시부터 헬싱키 대성당에서 부인 뗄레르보와 딸 아씨(Assi Koivisto) 등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들과 현 총리 유하 시삘라(Juha Sipilä)를 비롯한 삼부 요인과 각국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생명을 다한 그의 육신은 하얀 바탕에 파란 십자가와 붉고 노란 사자 문양이 새긴 핀란드 국기로 감싼 관에 담겨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대성당을 출발한 장례 차량이 헬싱키 대학, 상원 광장, 정부청사, 중앙은행, 대통령궁, 의회를 지나 묘지가 있는 히에따니에미(Hietaniemi) 공원으로 향할 때 거리에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조용한 침묵의 눈길로 깊은 존경과 추모의 인사를 보냈다.

청명한 북구의 초여름 하늘 아래 신록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가지들이 군악대의 연주를 실은 바람결에 고요히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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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5일 꼬이비스토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 옆 자리에 그가 묻힌 헬싱키 국립공원 묘소에는 시민들의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 글의 필자가 묘역을 방문한 2017년 6월 14일의 풍경.

어린 나이에 직업 활동을 시작하고 전쟁에 참전했던 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은행장, 재무장관,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통찰하며 핀란드형 복지국가, 합의 민주주의, 중립 평화외교를 완성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유라시아 대륙의 맞은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아직 20세기가 강요한 내전과 전쟁 상태를 완전히 종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관점이 정치적으로 온전히 대표되는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의 변동에 대응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수립하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과 촛불 시민혁명이라는 비상한 계기를 통해 등장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시민들이 보내는 높은 기대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처한 엄중한 위기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검찰, 국정원, 언론 개혁 등 부패한 구체제(ancien régime)의 청산과 극복,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 및 지속가능한 복지사회 건설, 한반도 분쟁 완화 및 평화공존체제로의 전환, 헌법 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민주주의 질서의 재구성 등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의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지난 5월 핀란드 땀뻬레대학에서 핀란드의 의회정치와 시민참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여기(☞Reaching Out to the People)를 클릭해 다운받을 수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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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을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해설하는 자원활동가
서울KYC 평화길라잡이!
올해는 민주주의.인권 시민교육이란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실내강의 13회, 현장답사 3회
밤의 서대문형무소가 다시 열렸습니다.
1월보다는, 환한 밤입니다.
촛불 대선을 앞두고 모집을 했는데요,
많은 분들의 관심이 적폐청산과 정권교체에 쏠려 여느해보다는 참가자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근현대 역사의 진실을 배우기위해 15명의 시민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대한민국 정부수립
군부 독재, 직선제 개헌 그리고 민주정부
100여년 근현대사를 숨가쁘게 들여다보며
그 시대의 고민과 삶의 모습 속에서 #시대정신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랜동안 KYC와 함께 해주시는
서중석선생님, 박한용선생님, 이재영선생님, 이신철선생님, 오인영선생님까지!
주옥같은 배움의 향연에 서대문 밤이 깊어갑니다.







기본교육엔 세번의 현장답사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악명을 드높인 남영동대공분실
그리고 "남산에 끌려가서 맛좀볼래" 그 무시무시한 남산 안기부터!
국가폭력으로 수많은 목숨이 사그러들었던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돌아봅니다.

두번째는 서대문형무소입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 해방 후 통일운동,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한 곳입니다.
1987년까지 실제 감옥으로 사용되어 근현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실내교육과는 또 다르게 "현장"의 배움은
생생하고 울림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교육 막바지입니다.
시국이 어지럽고 시끄러운데도, 여기까지 무사히!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울KYC 평화길라잡이는
근현대100년! 역사의 진실을 배웁니다.
그 역사의 진실에서
인권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
평화길라잡이10기, 교육 잘 마칠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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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5/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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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으로 보유세를 인상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부총리는 “부동산 보유세 문제는 말씀 드린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보유세 인상을) 사용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면서 “일부 정치권에서 보유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대통령께서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보유세 인상은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것인데다가 실현된 이익이 아니라 보유분에 대해 과세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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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으로 보유세를 인상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유세에 관한 김 부총리의 발언을 들으면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탑이 보유세를 오해하고 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진: sbs)

보유세에 대한 김동연 부총리의 오해

보유세에 관한 김 부총리의 발언을 들으면서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탑이 보유세를 오해하고 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김 부총리의 발언 중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보유세 인상을) 사용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라는 대목이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보유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장이 안정을 찾았고, 투기심리가 진정됐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보유세를 사용해도 투기억제 효과는 발생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김 부총리가 보유세 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장 상황을 낙관하는 것이라면 경솔한 태도일 것이고, 보유세가 투기 억제에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부동산 가격 하락을 유발하는 보유세의 자본화 효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음으로 김 부총리가 한 “(보유세는) 실현된 이익이 아니라 보유분에 대해 과세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발언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세는 실현된 이익에 대해서만 하는 게 아니다. 조세목적과 조세정의에 부합하고 의회의 입법을 통해 얼마든지 미실현이익에 대해서도 과세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예컨대 자동차세 같은 경우가 그렇다. 경제정책의 수장이 고민할 지점이 있다면 미실현이익 여부가 아니라 과세대상자가 보유세를 납부할 능력이 있는가 정도일 텐데, 이는 매매와 증여, 상속 시점에 보유세를 일시불로 완납하는 보유세 납부유예제를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보유세는 가장 좋은 세금이며, 부동산공화국 혁파의 열쇠다

김동연 부총리의 보유세에 대한 인식은 매우 협애하기도 하다. 김 부총리는 보유세가 가장 좋은 세금임을, 보유세가 대한민국의 최대 적폐라 할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할 열쇠임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조세원칙을 들자면 ① 조세가 생산에 주는 부담이 가능한 한 적을 것(중립성), ② 조세의 징수가 쉽고 비용이 적게 들 것(경제성), ③ 조세가 확실성을 가질 것, 즉 공무원의 재량의 여지가 적고 투명할 것(확실성), ④ 조세 부담이 공평할 것(공평성) 정도가 될 것인데 토지보유세가 이에 가장 부합하는 세금으로 평가된다. 즉 보유세 그 중에서도 토지보유세는 가장 좋은 세금이자 세금의 제왕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증세를 단행함에 있어서는 토지보유세를 최우선적으로 높이는 것이 지극히 옳다.

보유세는 가장 좋은 세금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최대 적폐라 할 ‘부동산공화국’을 혁파할 열쇠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이 지난 6월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국부 총액은 1경3078조 원이며, 이중 토지자산과 건설자산을 포함한 부동산 자산은 1경1310조 원으로 약 86%에 육박했다고 한다. 입이 벌어질 만큼 놀라운 통계는 더 있다. 대한민국의 토지가격이 1964년 1조9300억 원에서 2016년 6981조원으로 3617배 올랐다는 사실, 지난 20년간(1997~2017) 물가상승률은 146.7%, 임금상승률은 61.9%인데 반해 땅값은 약 4배가 치솟았다는 사실, <토지+자유연구소>에 따르면 2007~2015년 동안 GDP의 30% 이상의 어마어마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는 사실, 가액 기준으로 2013년 현재 개인 토지 소유자 상위 1%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26%(상위 10%는 65%)를, 법인 토지 소유자 상위 1%는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은 천문학적인 부동산 불로소득을 소수의 개인과 법인이 독식하는 ‘부동산공화국’이다. ‘부동산공화국’의 폐해는 계층간, 지역간 양극화, 가처분소득 감소 및 소비의 위축, 중앙 및 지방정부 재정의 왜곡과 낭비, 부정부패 양산, 지대추구심리의 만연 등인데, 이런 부작용을 두고 정상적인 국가발전은 난망이다.

김동연 부총리가 보유세에 대해 근본적인 숙고를 하길 바란다

만악의 근원이라 할 ‘부동산공화국’을 혁파하기 위한 열쇠가 바로 보유세다. 그런데 이처럼 귀중한 보유세가 대한민국은 너무나 미약하다. <토지+자유연구소>가 펴낸 토지+자유 리포트(14호, 이진수·남기업)을 보면 대한민국은 OECD 주요국 가운데 보유세 실효세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아래 그래프를 보라.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 비교 (2014년)

보유세율
대한민국은 OECD 주요국 가운데 보유세 실효세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자료 출처:토지+자유연구소, 토지+자유 리포트 14호)

 

OECD조차 포용적 경제성장과 세수 증대를 위해 보유세율을 높이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보유세는 증세의 최우선 순위에 있는 가장 좋은 세금이며, 부동산공화국 혁파의 열쇠이고, 투기억제 효과를 발휘하는 일석삼조의 세금이다. 김동연 부총리가 보유세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금, 2017/09/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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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oo.gl/6Ft8HX 언론들은 5.18, 세월호때 보도한것. 그태도에 대한 반성 전혀없으며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보이고있습니다


지난 15일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이하 성주투쟁위)가 6개 사드 반대 단체 협의체에서 공식 이탈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드 반대 단체 협의체는 지역을 기반으로 구성된 성주투쟁위, 사드 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원불교 성주 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 3개 단체와 사드 한국배치저지 전국행동, 사드 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 사드 배치저지 부산울산경남대책위원회 3개 단체, 총 6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목, 2017/08/17-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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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27일 6.25전쟁이 잠시 멈췄다. 그 잠시가 64년이 돼버린 날,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을 향해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피켓시위가 펼쳐졌다.


1953년 7월27일 6.25전쟁이 잠시 멈췄다. 그 잠시가 64년이 돼버린 날,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을 향해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피켓시위가 펼쳐졌다.
목, 2017/07/2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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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24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임시 배치를 조만간 완료할 뜻을 밝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저녁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사드 임시 배치가 조만간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목, 2017/08/2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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