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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요GMO ①] LMO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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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요GMO ①] LMO가 무엇인가요?

익명 (미확인) | 수, 2017/07/12- 10:37

[안돼요GMO ①] LMO가 무엇인가요?

 

지난 5월 강원 태백시 유채꽃 축제장에서 LMO유채가 발견됐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충남 내포시 일대를 비롯하여 전국 13개 시·도에서 이미 LMO유채가 유통 및 재배된 사실이 밝혀져 아직까지도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국토 GMO유채 오염사태 규탄기자회견 소식

 

 

한살림은 LMO유채 검출 직후 GMO반대전국행동과 함께 규탄기자회견 열고, 지금은 LMO유채 민관합동조사반 활동뿐만 아니라 한살림 자체 조사활동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LMO는 과연 무엇인가요? GMO와 어떻게 다를까요?

 

정부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LMO (Living Modified Organism)의 뜻은 “현대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새롭게 조합된 유전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생물체”로 기존의 GMO와 같은 의미지만 살아서 생식 또는 번식이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LMO (Living Modified Organism):

유전자변형생물체로 기존의 GMO와 같은 의미지만 살아서 생식 또는 번식이 가능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는 LMO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LMO 및 LMO를 이용하여 제조·가공한 것까지 포함한 유전자변형조합체, 생식 또는 번식이 가능하지 않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신소재식품과 블로그 blog.naver.com/gmosotong

 

현재까지 국내에 수입 승인된 GMO는 사료용과 식용으로, 종자용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검출된 LMO유채는 종자용으로 땅에 심어져 생식 또는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의 우려가 큽니다. 특히 15년~20년간 발아할 수 있으며 겨자 등 십자화과 식물과 이종교배가 가능하다는 유채 작물 특성상, 생태계 오염 등 환경적 위험이 몹시 큽니다.

정부는 LMO유채 폐기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LMO유채의 확산 가능성은 안심할 수 없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연구환경안전팀 웹페이지

 

 

 

[안돼요GMO ②] LMO유채 민관합동조사단

[안돼요GMO ③] LMO유채 한살림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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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에서 ‘희망지수’에 관한 탐구를 개인과 사회라는 두 차원으로 나누어 수행한 연구결과를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연구는 한국사회가 이제 ‘희망’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소통하는, 저 자신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문제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문제공간은, 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무엇이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문제인가, 그리고 가능한 해결책인가’를 논하면서 각축하는 공통의 소통공간입니다. 소통의 핵심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고통)가 있습니다.

희망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시대란 어떤 시대인가, 그것은 미래라는 것의 의미가 묘연해진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자명성과 확실성, 그리고 현재 존재가 미래에도 당연히 그렇게 이어지리라는 암묵적 믿음에 균열이 생긴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바로 그런 시대에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발산하는 묘한 힘과 슬픔, 그리고 용기 같은 것을 집합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민주화 이후에 우리가 열망을 말하고 또 욕망을 말해 왔다면, 그처럼 저돌적으로 목적과 대상을 향해 가는 ‘바람’이 아니라, 어떤 좌절과 실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마음의 힘으로서의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낙관에 가득 차 있던 확고한 미래의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두려워진 재난과 재해의 시대에 우리는 희망의 가능성을 애타게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다음의 세 가지의 명제로 그간 탐구해 온 바를 정돈해 보겠습니다.

첫째 명제는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것이다’입니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현재 이후에 다가오는 미지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떤 나라에서도, 어떤 존재들에게도 미래는 공평하게, 자동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화를 전공하는 사회학자로서 제가 파악하는 ‘미래’는,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다가오는 예정된 시간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미래를, 미래가 오기 전에 이미 구축, 구성, 정립합니다. 그것은 국가, 조직, 사회, 가족, 개인과 같은 모든 사회단위의 매우 중요한 실천내용을 이룹니다. 미래를 구축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꿈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꿈꿉니다. 꿈속에서 미래는 형태를 갖추어 나타납니다. 미래를 불안하게 꿈꾸면서 미래에 대비하기도 하고(디스토피아),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려내기도 합니다(유토피아).

꿈꾸는 존재야말로 인간 주체성의 가장 중요한 차원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조사를 하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집요하고 처절하게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도무지 그럴 만한 이유도, 상황도, 자원도 없는 사람들마저 꿈에 몰두합니다. 때로 그것은 현실성 없는 환상에 불과합니다(복권당첨이나 일확천금).

그러나 꿈의 환상적 성격은 언제나 그것의 비전(vision)적 성격과 결합하여 있습니다. 개인만 꿈을 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룹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도 꿈을 꿉니다. 그런 점에서 생산된 미래는 무형적 공공재입니다. 공공재이기 때문에 평등의 원리에 의해 분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래라는 공공적 자원의 혜택과 사용은, 미래와 의미연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꿈의 능력)의 차등적 구성만큼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경계(계급, 젠더, 서울과 지방, 인종, 세대 등)의 맥락에서 미래에의 접근 가능성과 활용성은 큰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가령,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미래란, 많은 사람이 도전적으로 달려들어서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는 무한한 금광 같은 것이었습니다. 집값은 오르고, 경제는 발전하고, 삶은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미래는 대량생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미래는 그처럼 풍요롭게 생산되지 못합니다. TV를 켜면 나오는 두 가지의 대표적 광고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암보험과 대출광고입니다. 우리 시대의 한국인들에게 미래는 이제 광맥이 아니라 ‘빚’ 아니면 ‘암’입니다. 미래의 생산 능력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계급적 차이, 젠더적 차이, 그리고 세대적 차이와 지역적 차이를 갖습니다.

아무나 미래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많이, 누군가는 적게 생산합니다. 누군가는 질적으로 고양된 미래를, 누군가는 질적으로 참담한 미래를 생산합니다. 미래라는 공통 자원의 생산, 분배, 관리, 이것이 정치의 차원 높은 기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는 미래와 현재가 맺는 집단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부정의를 교정해야 합니다. 희망의 쏠림과 박탈을 조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명제는 ‘이처럼 미래를 생산하는 능력, 즉 꿈꿀 수 있는 능력은 일종의 자본(資本)이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여러 동료와 함께 수행하고 있는 연구는, 한국과 중국의 창의적 영역(문학, 예술, 웹툰, 방송, 인터넷 등)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구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해보려는 시도입니다. 꿈이라는 것이 심오한 현상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에 몇 가지 설문에 대해 응답한 내용만으로 그것을 측정하려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간직한 채로, 그런데도 이런 시도가 사회과학 영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기에 나름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저는 꿈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분석적으로 나누어 묻고 있습니다.

즉, 꿈의 능력은 심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힘, 그렇게 꿈꾸어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 있는 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 그리고 꿈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여러 난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됩니다. 이들의 총합이 바로 꿈의 능력입니다. 아직 구체적 비교연구를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꿈의 능력이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 사이에, 그리고 창의 영역에 종사하는 청년들과 그렇지 않은 청년들 사이에서, 젠더 사이에서, 서울과 지방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탐구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능력을, 현대사회과학이 ‘자본’으로 유형화하는 무언가의 하나로 개념화합니다. 즉, 꿈의 능력은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하는 화폐(경제자본), 관계(사회자본), 교양(문화자본), 혹은 게리 베커(Gary Becker)가 말하는 인적자본과 유사한 그런 의미의 자본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것을 꿈-자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사람들은 꿈-자본을 가지고 자신들의 존재역량을 증강해 나가고, 사회적 공간에서 활동하고, 경쟁하고, 목표를 추구합니다.

꿈-자본은 한 인간이 가장 내밀한 수준에서 품고 있는 미래상의 강도와 확신과 욕망의 총체입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양육 속에서, 종교적 체험 속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지식이나 근거 없는 믿음을 통해서, 선생님이나 선배, 또는 매스미디어의 스타들로부터, 아니면 조직이나 국가·사회가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 프로파간다, 캠페인 등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전파됩니다. 꿈-자본은 다른 자본의 축적을 위한 행위와 실천을 하게 만드는, 속담을 활용해서 말하자면, 말이 먹는 물이 아니라 말이 그 물을 먹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꿈꾸는 힘은 깊은 심적 작용을 매개로 형성되기 때문에 손쉽게 상속되지도 않습니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은 다른 형태의 자본들 이전에 존재하는 원형적인 자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꿈-자본이 존재하며,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 사회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면 부의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 못지않은 꿈-자본의 평등도 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양극화로 고통받는다면, 그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꿈의 양극화라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풀어야 하는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 중의 하나는 꿈-자본의 편중과 빈곤입니다.

셋째 명제는 ‘희망은 낙관이 아니라는 것’, 희망은 오히려 비관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과 낙관주의를 구분한 사람은 크리스토프 래시라는 사회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진실하고 유일한 천국(The True and Only Heaven)>에서 서구의 진보 이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미래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와 신학적 희망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낙관주의 없는 희망’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절망적인 상태에 자신을 던질 수많은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품게 되는 희망이며, 비관적 전망 속에서 솟아나는 희망의 감정을 가리킵니다.

하벨 또한 희망과 낙관주의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희망은 낙관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들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무엇일까요? 하벨은 이렇게 씁니다. ‘나는 언제나 희망의 일차적 기원은, 간단히 말하자면, 형이상학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왔다 (…) 초월적인 것(transcendental)의 경험 없이는 희망이나 인간적 책임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여기에는 기독교적인 색채, 종교적인 색채가 배어 있습니다. 객관적 조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어떤 일들이 발생해도,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그리하여 낙관주의보다는 오히려 비관주의와 더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희망이 일어나는 곳은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절망이나 좌절이나 실망이 지배적인 곳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희망은 실망 가능해야(disappointable) 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 용어로 돌려 말하자면, 희망은 비관주의를 전제로 하며 그것을 뚫고 솟아나는 감정입니다. 이때의 비관은 인지적인 것이기도 하고, 구조나 세상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지적 비관을 뚫고 나오는 감정적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란 이런 비관을 통과해서 나오는 감정입니다. 이런 점에 저는 희망의 신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존재가 미래를 생산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그가 꿈꾼다는 사실만큼이나, 그가 희망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확증됩니다. 희망의 에너지로 꿈을 향해서 가는 존재가 인간 행위자입니다.

글 :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이 글은 2016년 11월 21일 서울혁신파크 내 서울크리에이티브랩에서 개최된 ‘2016 시민희망지수’ 발표간담회 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 자료집 다운받기(클릭)

화, 2016/11/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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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진로탐색프로그램 내-일상상프로젝트 STEP 1 상상학교에서 만난 청소년 817명에게 물었습니다. ‘진로’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800여 명의 청소년들 중 절반 이상이 ‘진로’에 대해 ‘장래희망’이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의 열정이 가리키는 방향’이라고 멋지게 해설한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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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7/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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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뿌리 나고 구불구불한, 딱 한살림 콩나물 같은 삶

여느 생산자들처럼 외길인생은 아니었다. 윤용진 생산자가 콩나물과 함께한 나날은 길게 잡아야 3년 남짓. 수십 년 농사인생이 즐비한 한살림에선 명함조차 내밀기 쑥스럽다. 굴곡도 많았다. 여러 일터를 거치는 동안 구풀대며 걸어온 그가 이제야 잔뿌리 하나 내디딜 곳을 찾았다. 아산제터먹이라는, 작지만 맑은 시루.
구불구불하고 잔뿌리가 많은 한살림 콩나물. 줄기를 곧게 밀어낼 만하면 뒤집어주고, 상대적으로 물을 적게 뿌려주기에 얻은 볼품없는 생김새이리라.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맞춰 몸을 뒤틀어도 보고, 스스로 물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잔뿌리도 어영차 뻗어 보았기에. 지난한 과정을 몸으로 겪어낸 그 맛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만날 지겹도록 들여다본다니까. 여자들 거울 보는 것 만치로.” 함께 일하는 생산자가 온기 반쯤 섞인 농담을 건넨다. 잔뿌리 하나 없이 곧게 살아오지만은 않았던 그이기에. 그가 내는, 그와 꼭 닮은 콩나물은 아삭하고 참 깊다.

김현준 편집부 · 사진 이득

윤용진 생산자

윤용진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 생산자

 

지독히도 평범한,
그래서 더욱 당기는 맛

한살림 콩나물

XY3K0252

 

평범한 자태 아래에 숨긴 비범함

평범함. 이만큼이나 콩나물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나홀로 주 반찬이 되기에는 다소 부족한 듯도 하지만 여느 요리에 넣어도 마침맞게 잘 어울리기에,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집어 들게 되는 식탁 위의 단골손님. 평범하디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욱 고마운 나물계의 공기같은 존재, 콩나물. 키우는 방법이 간단해 더 좋다. 대량생산을 하는 곳도 그 과정은 집에서 키울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나물콩을 선별해 큰 시루에 담아 놓고 수시로 물을 뿌려주다 보면 살이 차오르는 둥근 달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콩나물을 볼 수 있다.

나물콩성장과정

 물론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깨끗이 세척한 뒤 물기를 정성껏 털어내고 300g 단위로 소분하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여타 작물과 비교했을 때 그 재배과정이 왠지 수월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 그래도 ‘콩나물은 물만 주면 자기 혼자 자라는 거 아니냐’고 농담하시는 생산자님들이 있어요. 그럼 저는 반문하죠. ‘맞아요. 콩나물 농사 참 쉽죠. 근데 형님이 키우는 토마토도 땅에만 심으면 혼자 잘 자라지 않나요?’ 라구요. 하하.”세상에 저 혼자 자라는 생명은 없다. 아무나 대충 물만 주면 일주일 만에 쑥쑥 자라는 것 같아 보이는 콩나물도‘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콩나물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콩을 수매하는 것부터 신경써야 한다. 아니, 좋은 콩을 위해 생산자들을 대상으로 재배기술을 교육하고 수시로 밭에 나가는 일까지 해야하니 실제로는 일주일 농사가 아닌 1년 농사인 셈이다. 콩나물을 본격적으로 키우는 일주일 동안에도 돌봐야 할 것이 많다. 시루에 담기 전, 불량콩을 골라내고, 재배장 내의 온도·뿌려주는 물의 양과 살포 횟수 등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구불구불하고 잔뿌리 있어 더 좋은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산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처럼. 잘 키운 콩나물은 그 모양새가 다 비슷하지만, 문제가 있는 콩나물은 그 이유가 각각 다르다. “콩나물은 보기보다 굉장히 민감한 작물이에요. 온도가 너무 높아도, 물을 너무 자주 뿌려줘도, 뽑아주는 시기가 어긋나도 잘 된 콩나물을 낼 수 없죠. 남들이 키운 콩나물을 보면 ‘아… 어찌어찌하게 키웠기에 이렇게 자랐겠구나’라고 단박에 알 수 있어요.”
모양새를 보면 어떻게 키웠는지가 보인다는 말이 한살림 콩나물처럼 들어맞는 것이 또 있을까? 구불구불하고 잔뿌리가 많으며 누리끼리해 볼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한살림 콩나물. 성장촉진제 없이 콩나물 본연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려다 보니 갖게 된 생김새다.

2면 중단 3
시루 속 콩나물은 다섯시간에 한 번씩 물을 맞아들여 제 몸을 불린다

시중 콩나물에 성장촉진제를 투여하는 것은 언뜻 생각되는 것처럼 성장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시루에 물을 더 자주 뿌릴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콩나물은 자라면서 많은 성장열을 뿜는데 너무 웃자라지 않게 적절히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춤과 동시에 성장을 늦춘다. 물을 자주 뿌려주면 콩나물은 뽀얗고 잔뿌리 하나 없이 자라지만 성장이 너무 늦된다. 시중 업체는 2시간에 한 번씩 물을 뿌려 매끈하게 키우면서도, 제때 수확하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투여한다. 콩나물 본연의 힘만으로 키우기에 5시간에 한 번 물을 뿌려주는 한살림 콩나물이 잔뿌리가 많고 누르튀튀해 보이는 이유다. 대신 4일째 되는 날 시루 속 콩나물을 뒤집어 생명력을 더해준다. 구불구불하지만 아삭한 한살림 콩나물의 비결이다.

2면 중단

어두운 콩나물 재배장에서 작업하기 위해서는 헤드랜턴 착용이 필수다

한살림 콩나물 산지 네 곳 중 제터먹이를 비롯해 영진고을, 송악골 등 아산에 위치한 세 곳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부여 소부리영농조합은 공간을 두고 켜켜이 쌓여 있는 납작한 시루들의 윗쪽에 물을 흘려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기르는데 콩나물에 들어가는 정성은 다른 세 곳과 다르지 않다.

3면 하단

 

나물콩 한 알에 담긴 우주

한살림 콩나물의 특이성이 하나 더 있다. 윤용진 생산자는 “콩나물에 1:1의 법칙이 있는데 한살림 콩나물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콩나물 머리와 몸통을 더한 부분과 뿌리의 비율이 1:1이 되어야 좋은 콩나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머리(단백질, 탄수화물, 당분)와 몸통(비타민 C를 비롯한 각종 비타민), 그리고 뿌리(아스파라긴산)에 골고루 있는 영양분을 최대한 취할 수 있는 비율이기도 하다. 성장촉진제를 투여하는 시중 콩나물은 몸통이 긴 반면 뿌리는 매우 짧다. 뿌리를 떼어내고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들은 반길지 몰라도 콩나물 본연의 맛을 느끼긴 어렵다.

2면 상단(2)

나물콩이 콩나물이 아닌 콩나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물콩을 땅에 심으면 콩나물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떡잎이 되고 거기서 줄기와 잎들이 무성하게 뻗어 나와 작지만 알찬 콩나무가 된다. 콩나무 가지마다 맺힌 도톰한 콩꼬투리에는 저마다 서너 알씩의 나물콩이 들어찬다. 콩나물 한 줄기를 먹는다는 것은 곧 나물콩이 품고 있는 수백알의 가능성을 먹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콩나무가 될 수 있는 생명력을 떡잎 두 장에 가지런히 모은 채 좁은 공간에서 남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콩나물. 네가 우리보다 낫구나.

김현준 편집부 · 사진 이득

생산지의밥상_투명배경

월, 2016/03/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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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이벤트

이벤트 하나!

한살림대전 페이스북 페이지 초대 이벤트!

 

“하늘에서 선물이 내려와~”

– 이벤트 기간 : 2015년 12월 14일(월) ~ 12월 24일(목)
– 당첨자 선물 : 2016년 한살림 다이어리
– 당첨 인원 : 10명 / – 당첨자 발표 : 12월 31일 한살림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지금까지 친구와 페이지를 중복으로 운영 중이던 한살림대전 페이스북이 페이지로 통합운영합니다. 기존에 한살림대전과 페이스북 친구였던 분들과 한살림대전 조합원 여러분, 그리고 대전 지역민들 모두 저희 페이지로 초대합니다. 초대 이벤트에 참여하신 분들 중 당첨자 10명에게는 친환경,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2016년 한살림 다이어리를 선물로 드립니다.

<이벤트에 참여하는 방법>
1. 한살림대전 페이지(www.facebook.com/hsldj)를 방문하셔서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2. 페이스북 이벤트 댓글에 한살림에게 보내는 연말인사를 남겨주세요.
TIP. 페이스북에 게시된 이벤트 글을 공유하시면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

 

한살림대전홈페이지
월, 2015/12/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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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한살림경남 30주년 기념

역대이사장, 원로와 함께하는 집단좌담회

 

총 7분의 한살림경남 역대이사장님, 고문님들을 모시고 지난 한살림경남의 30년을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집단좌담회를 열고자 합니다.

3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조합원과 한살림경남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는 뜻깊은 자리에

조합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일정 2016년 9월 7일(수) 오후 2시~5시

장소 창원시 도계동 직업재활센터 3층(의창구 원이대로 114번길 6)

문의 기획홍보팀 070-7456-1173, [email protected]

진행일정 (좌장 김한수)

14:00 접수 및 등록

14:10 현 이사장 인사

14:15 집단토론

15:30 휴식

15:40 질의응답(참가자)

초청인사 신석규(초대이사장), 송정호(2대이사장), 정동화(3대이사장), 이경희(4대이사장),

윤신천(5대이사장), 김석호(초창기실무담당), 고승하(초창기발기인조합원)

 

한살림경남 홈페이지
목, 2016/09/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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