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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계엄령' 두테르테, 왜 필리핀 민주주의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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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계엄령' 두테르테, 왜 필리핀 민주주의 위기인가

익명 (미확인) | 화, 2017/06/20- 08:50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7 아시아생각] ① 시리아 토마호크 공습, 짜고 친 힘자랑 

[2017 아시아생각] ②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 시리아 비극, 해법은?

[2017 아시아생각] ③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평화의 페달을 밟는 사람들

[2017 아시아생각] ④ 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계엄령' 두테르테 , 왜 필리핀 민주주의 위기인가

[아시아 생각]불평등 구조 타파 못하면, 민심 이반할 것


김동엽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지난 5월 23일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남부 민다나오 섬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 선포의 발단은 필리핀에서 활동 중인 동남아 이슬람국가(IS) 조직 지도자 하필론(Isnilon Hapilon)의 체포 작전 과정에서 필리핀내 IS연계 반군 세력으로 알려져 있는 아부사얍(Abu Sayyaf)과 마우테 그룹(Maute Group)이 라나오 델 수르(Lanao del Sur)주의 중심도시인 마라위 시(Marawi City)를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필리핀 정부군은 폭격기까지 동원하여 강력한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에 대해 반군세력은 인질로 잡고 있는 시민들을 이용하는 등 저항을 지속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 약 3주 만에 필리핀 군경 58명, 민간인 20명 그리고 반군 138명의 사망이 확인되었으며, 교전을 피해 거주지를 떠난 피난민이 약 32만 5000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마라위 시 내에는 지속되는 교전으로 인해 수습되지 않고 방치된 시신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 마약과의 전쟁에 이어 IS연계 척결을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AP=연합

 

 

필리핀 민주주의 후퇴의 근원, 불평등

 

두테르테 대통령은 집권 후 정책집행의 효율성을 위해 종종 초법적인 권한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그의 과거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성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민다나오 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의 적법성에 대한 논란이 필리핀 대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야당 측에서는 무장단체를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법적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 측에서는 외국의 무장집단과 연계하여 필리핀 영토 내에서 이슬람 국가를 수립하려는 무장집단의 행위는 반란에 해당한다면서, 영토주권 수호를 위한 정당한 계엄령 선포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직접적인 무력 충돌지역을 넘어 필리핀 영토의 거의 1/3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으며, 정부 측에서는 무장세력의 활동범위가 이미 인근 지역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찌 되었든 이번 계엄령 선포의 적법성 논란은 필리핀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두테르테 정부 측이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  

 

이번 계엄령 선포와 더불어 집권 1년을 맞이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통치행태와 이를 평가하는 필리핀 국민의 인식을 통해 필리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사상하에 인권과 법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약 8000명의 사망자를 낳았고, 100만 명이 넘는 마약사범을 수감시켰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과정에 대한 적법성과 무고한 인명 피해에 대한 논란이 국내외 인권단체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016년 10월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내 마약사범이 약 300만 명이 있으며, 이들을 모조리 처단하기를 희망한다면서, 나치 정부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에 비유함으로써 독재자 히틀러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또한,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상원 청문회에서 과거 두테르테 대통령이 다바오 시장 시절 자경단(Davao Death Squad, DDS)을 운영하여 초법적 살해를 자행했다는 증언이 당시 자경단 단원에 의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자신이 시장으로 있으면서 직접 마약사범을 처단한 경험이 있다는 발언을 통해 '살인마 대통령'이란 말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여지가 있는 과거 행적과 통치행태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국민은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여전히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1986년 아시아 최초로 '시민혁명'(People Power II)을 통해 독재자를 몰아내고 성취한 민주주의가 오늘날 필리핀 국민에게 외면당한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도표] 동남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단위: 퍼센트)

출처: Asian Barometer Survey 3차 조사 (기간, 2010.3~2011.11)
주: 본 내용은 서경교(2016)의 '동남아 대중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임.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는 그 가치와 철학도 중요하지만, 경제발전이나 불평등 구조의 해소와 같은 현실적 결과를 낳지 못할 경우 위기에 봉착한다. 위의 <도표>에서 보여주는 동남아 국민들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발전이나 불평등의 축소가 민주주의나 정치적 자유보다 훨씬 중요한 것으로 간주됨을 알 수 있다.  

 

또한, 국민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로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도가 필리핀의 경우 주변국들보다 월등히 낮음을 볼 수 있다. 필리핀 국민들은 국가의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비율이 55.0 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가량은 독재든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조사 시점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타날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필리핀 국민들은 제도에 대한 신뢰도와 정부에 대한 만족도, 그리고 민주주의 실시방식에 대한 만족도가 주변 국가들보다 월등히 낮게 나타난다. 이러한 필리핀 국민들의 정서가 2016년 5월 선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선택한 것이었다. 

 

집권 1년을 맞이하는 두테르테 정권의 성적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인다. 2017년 1/4분기 경제성장률은 6.4 퍼센트로서 주변국들을 선도하고 있으며, 우려했던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악화도 어느 정도 선에서 통제되고 있다. 반면 악화 일로를 걷던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어내고 있다.  

 

이러한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해 필리핀 국민들은 76퍼센트가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78퍼센트가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Pulse Asia, 2017.03.15.~20 조사). 그러나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높은 여론 지지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집권 초기부터 야심차게 시작했던 공산세력과의 평화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번 이슬람 무장세력과의 충돌로 인한 상처가 필리핀 내 무슬림들의 정서와 향후 이슬람 반군세력과의 평화 협상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모를 일이다.  

 

사회개혁을 기치로 내세운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지지기반은 무슬림과 빈곤층 등 사회적 소외계층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중상류층의 지지도는 72퍼센트에서 84퍼센트로 상승한 반면, 빈곤층의 지지도는 오히려 85퍼센트에서 74퍼센트로 하락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낳은 것처럼, 두테르테 정부의 정책이 단순히 극단적 처방을 통한 사회적 질서의 확립에만 치중하고,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는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높은 지지도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이는 숨죽이고 있는 반대세력의 부상과 결집을 낳아 정권에 대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전격적인 대응은 진정 필리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상황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에서 보기 >>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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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신, 좌절 위기의 쿠르드 자치 실험

[아시아생각] 트럼프의 쿠르드 배신, 푸틴에게 준 선물?

 

최재훈 / 경계를넘어 활동가

 

 

"미국이 건네준 밧줄을 잡고서는 우물로 내려가지 마라."

 

이는 언젠가부터 중동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교훈처럼 회자되어온 말이다. 그리고 이번 가을, 미국에 대한 지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감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이 말은 다시 한 번 그 설득력을 강하게 입증했다.

 

지난 10월 9일, 터키군은 시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이른바 쿠르드 자치 지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군사 행동을 시작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의 레제프 타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이후 해당 지역에 주둔하던 미군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림으로써 터키의 침공을 사실상 승인해 준 뒤, 정확히 사흘만의 일이었다.

 

'평화의 샘(Peace Spring)'이라는 작전명이 붙은 이번 침공은 2016년 8월의 '유프라테스의 방패(Euphrates Shield)'와 2018년 1월의 '올리브 가지(Olive Branch)' 작전에 이어 최근 몇 년 사이 터키가 해당 지역을 대상으로 벌인 세 번째 군사 작전이었다. 

 

전투는 주로 터키의 지상군 병력이 공격 대상이 된 도시나 마을을 포위한 뒤, 공군과 포병이 집중포화를 가해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 친터키 성향의 시리아 반군인 시리아국민군(SNA)을 들여보내 쿠르드 민병대와 직접 맞닥뜨리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터키군의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는 대신 상대에게는 전투원이건 민간인이건 할 것 없이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안겨 무릎을 꿇리려는 방식이다.  실제로 쿠르드 지역 당국은 터키가 침공한 지 8일 만에 18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218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65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3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고향으로부터 필사의 탈출을 감행해야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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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쿠르드인들이 23일(현지시간) 터키의 공격에 항의하고 있다. 터키는 지난 9일부터  시리아 북부 지역에 대대적인 공습을 단행해 이 지역의 쿠르드인들을 대부분 몰아냈다.   ⓒAFP=연합 

 

쿠르드를 향한 배반의 역사

 

그러나 짐작컨대 이러한 직접적인 인적, 물적 손실만큼이나 피해 지역 주민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아마도 미국을 향한 배신감이 아닐까 싶다. 알려진 바와 같이 시리아 쿠르드인들은 2014년 9월 이슬람국가(IS)가 코바니라는 지역의 한 도시를 에워싸고 대량학살을 위협하자, 곳곳에서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똘똘 뭉쳐 싸운 끝에 이슬람국가 세력을 훌륭히 물리친 바 있다.  

 

이는 당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하며 승승장구하던 이슬람국가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겪는 군사적 패배였고, "신이 우리를 선택했기에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정치선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자 쿠르드 민병대의 활약상을 눈여겨본 미국은 그들을 중심으로 시리아민주군(SDF)을 창설해 이슬람국가 격퇴전의 전면에 내세웠고, 실제로 시리아민주군은 2017년 11월 이슬람국가의 자칭 수도인 시리아의 락까를 탈환함으로써 이슬람국가의 몰락을 앞당기는 것으로 그 능력을 입증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미국은 나토 동맹국인 터키의 침공을 눈감아주는 배신을 저지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이 쿠르드를 배신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말이다. 1차 대전 당시 쿠르드인들에게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하고 그들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투에 끌어들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은 1923년 로잔 조약을 통해 그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은 바 있다.

 

1970년대엔 좌파 성향의 이라크 후세인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라크 쿠르드인들을 부추겨 무장 항쟁을 일으키게 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빼는 바람에 수많은 쿠르드인들이 학살당하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그를 두고 비난이 일자,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이 "비밀 작전을 선교 활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인 건 아주 유명한 일화다.  

 

그뿐만이 아니다. 1988년에는 친미로 돌아선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수천 명의 쿠르드인들을 미국산 농약 재료로 만든 독가스로 학살하는 걸('하랍자 학살') 수수방관했으며, 1991년 1차 걸프전 때도 쿠르드와 시아파 주민들에게 전폭적인 군사지원을 약속하며 반후세인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했다가 역시나 나 몰라라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정권의 잔인한 보복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만들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존재, 시리아 쿠르드인들 

 

그리고 다시 2019년 10월, 과거와는 달리 이번엔 세계 각국 뿐만 아니라 미국 국내에서조차 동맹을 헌신짝처럼 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 줄을 이었다. 비단 미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뿐만이 아니라 강력한 트럼프 지지자인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과 미치 맥코넬 상원의원, 바로 얼마 전까지 유엔 주재 대사로 일했던 니키 헤일리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심지어 트럼프가 사랑해마지 않는 폭스 뉴스까지도 그 대열에 가세했다. 

 

엄밀히 말해 그들의 비판은 쿠르드인들에 대한 염려나 미안함보다는 이슬람국가의 부활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국내외의 비판이 쏟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퉁명스러운 응답은 "쿠르드인들은 천사가 아니"며, "상당수 측면에서 이슬람국가보다 더한 테러 위협"이자 "공산주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꼭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측면은 바로 이 지점이다. 쿠르드인들을 천사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마치 테러리스트 집단이나 공산주의자로 몰고 가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오히려 시리아 쿠르드인들은 가부장주의와 성 차별, 권위주의적 독재, 인종 및 종파 갈등으로 얼룩진 중동 지역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그나마 생태주의와 성 평등, 다원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자치 모델을 실험해온 사람들이며, 터키의 침공은 그런 실험을 좌절시키거나 더디게 만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더더욱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전체 인구가 약 3천 5백만 명에서 4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쿠르드인들은 스스로의 독립 국가를 가지지 못한 대가로 터키(1천 8백만), 이란(7백만), 이라크(5백만), 시리아(2백 5십만) 등지로 나뉘어 살아 왔다. 그렇게 각자가 속한 국가는 달랐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터키에서는 터키인들, 이란에서는 페르시아인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는 아랍인들로부터 갖은 억압과 박해,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 중 흔히 '로자바 쿠르디스탄(서 쿠르디스탄)'이라 불리는 시리아 쿠르드의 예만 들어보자면, 시리아 정부는 여태껏 그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시리아 아랍 공화국'이라는 국호가 말해주듯이, 시리아는 오로지 아랍인들만의 국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1962년에는 12만 명에 달하는 쿠르드인들이 국적마저 빼앗겨 무국적자로 전락하는 일도 있었다. 그로인해 많은 시리아 쿠르드 주민들은 자녀가 태어나도 출생 신고조차 할 수 없었고, 아이들은 출생 신고가 안 돼 있으니 학교도 갈 수 없었으며, 따라서 어른이 된 뒤에도 변변한 직업을 가지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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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러시아 소치에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나 시리아 북부 쿠르드인들에 대한 공습을 끝내고 안전지대를 설정해 공동순찰하는 조건으로 휴전에 합의했다.  미국이 갑자기 철수하며 생긴 힘의 공백을 러시아가 파고 든 것이다. 이때문에 미국의 CNN은 "미군 철수는 트럼프가 푸틴에게 준 선물"이라고 비판했다. ⓒAP=연합 

 

 

억압을 뚫고 새싹을 틔운 민주적 자치 실험

 

그런 와중에 2011년 시리아에서도 민주화 항쟁이 시작됐다. 항쟁은 곧 내전으로 옮겨갔고, 시리아의 쿠르드인들도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쿠르드인들을 친정부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국적 쿠르드 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해주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은(실제 그런 조치가 취해지긴 했지만, 혜택을 받은 이는 전체 대상자 20만 명 가운데 6천 명에 불과했다) 아사드 정부의 편에 설 것이냐, 아니면 반군의 편에 서서 정부군에 맞서 싸울 것이냐 하는 선택이었다.  

 

물론 정부 편에 서자는 의견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반군의 편에 설 수도 없었다. 워낙 다양한 세력들로 구성된 반군들 중에는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도 섞여 있었고(쿠르드인은 99퍼센트가 이슬람 수니파이지만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다), 시리아의 아랍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민주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강경 아랍민족주의 세력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제3의 길'이었다. 때마침 반군들의 공세로 인해 수세에 몰린 시리아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 2012년 7월 19일 로자바에서 전면 철수하자, 남은 주민들은 그 즉시 마을 단위로 직접 민주주의 방식의 주민 회의와 자치 위원회를 꾸리기 시작했다.  

 

거기엔 주민 누구나 참여해서 마을과 지역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이 의견을 낼 수 있고, 그들 가운데 선출된 대표들이 도시와 지역(canton) 단위의 의회를 구성해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도록 했다. 반면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은 필연적으로 억압과 권위주의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자치행정부(AA)는 큰 틀에서의 계획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역할만 할 뿐, 주민 자치 조직의 의사결정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도록 못 박아 두었다. 

 

또한 공존과 평등 실험도 흥미로웠다. 흔히 시리아 북동부 지역을 쿠르드 자치 지역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지역에는 쿠르드인뿐만 아니라 아시리아, 투르크멘, 야지디 같은 여러 소수민족들도 오래 전부터 섞여 살아왔고, 거기에다 2012년 이후로 내전을 피해 건너온 아랍 주민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었다(오늘날 아랍 주민들의 비율은 지역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곳 주민들은 특정 민족, 종교, 성별의 사람들이 우위를 점하거나 특권을 부여받을 경우, 중동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종파나 민족 갈등, 가부장적 억압이 반드시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그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예를 들어, 각 자치 행정 조직의 최고 책임자는 반드시 이슬람을 믿는 쿠르드인과 아랍인, 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나 아시리아인 같이 민족과 종교를 아우른 세 명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그 셋 중 한 명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한다.  

 

또한 마을과 도시, 지역 의회의 최고 대표자는 남성 한 명과 여성 한 명이 공동으로 맡아야 하고, 의회에는 여성들이 최소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야 하며, 협동조합이나 모든 공적 부문에서는 독립적인 여성 조직을 따로 두어야 한다. 거기엔 군대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쿠르드 인민방위대(YPG) 이외에 여성들로 구성된 여성방위대(YPJ)가 별도로 구성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군인이나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군사 훈련을 받기 전에 반드시 비폭력 갈등 해결과 페미니스트 교육을 받아야 비로소 총을 만질 수 있고, 장교는 사병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생태나 협동조합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 등 여러 다양한 대안적 실험들이 시도되어 왔는데, 실제 이 모든 것들은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PKK)과 현재 수감 중인 그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이 제시한 '민주 연방제에 기초한 민주적 자치'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리아 쿠르드인들이 터키 쿠르드노동자당의 배후조종을 받는 아바타인 것은 아니다. 지역의 가장 유력한 정당인 민주연합당(PYD)이 쿠르드노동자당의 자매 정당인 것도 맞고, 같은 민족으로서 터키 쿠르드인들에게 연대 의식을 가진 주민들이 많은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쿠르드노동자당의 일방적인 지시나 지도에 따라 행동하는 건 아니며, 그것은 '민주적 자치'라는 그들의 원칙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번도 터키를 향해 테러나 공격을 가한 적도 없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국내의 언론 보도에서 흔히 이야기하듯이 터키의 침공으로 인해 "쿠르드 독립 국가 건설의 꿈이 또 한 번 좌절된" 것도 아니다. 이미 국가 안의 국가로 기능하는 이라크의 쿠르드자치정부(KRG)와는 달리, 시리아와 터키의 쿠르드인들은 2005년 이래로 독립 국가 건설 대신에 앞서 말한 상향식 직접 민주주의와 성 평등, 다원주의, 생태주의에 기초한 완전한 자치를 궁극적인 목표로 내걸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실험이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데 이어, 이번 터키의 군사 공격으로 아예 송두리째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 3천억 원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아온 동맹국 터키가 자신들의 또 다른 동맹이었던 시리아 쿠르드인들의 삶터를 마구 유린하는 현실 앞에서도 되레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위는 편협함과 비열함 그 자체다. 역시나 미국이 건네준 밧줄은 애당초 잡지를 말아야하는 건가 보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62439" target="_blank" rel="nofollow">프레시안에서 보기>>

금, 2019/10/25-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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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5&document... target="_blank" rel="nofollow">무늬만 민주주의', 집권연정은 어떻게 96%를 득표했나 /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2.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4&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총리 출마 해프닝' 공주가 보여준 태국 정치 요지경 /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3.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4&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강제 해산된 캄보디아 야당이 대한민국 정부에 보낸 호소 서한 / 무 속후아 (캄보디아 구국당(CNRP) 부대표)

4.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4&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두테르테의 실토? "초법적 살인 말고는 죄 없다"/ 박성현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

5.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4&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인도네시아 대선, '조코위 모델' 위력 재확인" / 전제성 (전북대학교 교수)

6.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3&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미국이 눈감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역사는 진행형 / 양영미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7.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3&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 나는 홍콩 사람이다 / 파니 (한국 기독학생회 총연맹 국제부 활동가)

8.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2&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2019 필리핀 선거, 두테르테 세력의 약진 및 권위주의의 강화 / 정법모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9.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1&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미국의 배신, 좌절 위기의 쿠르드 자치 실험 / 최재훈 (경계를넘어 활동가)

10.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page=1&listStyl... target="_blank" rel="nofollow">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특별해야 하는 이유 / 김형종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11. http://www.peoplepower21.org/International/1673702" target="_blank" rel="nofollow">이란 유혈사태의 근본 책임은 트럼프에 있다 /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이란 유혈사태의 근본 책임은 트럼프에 있다”

[아시아생각] 경제 봉쇄로 반이스라엘 국가 망가뜨리려는 미국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2019년이 거의 끝나가는 이즈음 해외 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중동 관련 소식은 어둡고 우울한 것들 투성이다. 이란, 이라크, 레바논에서는 이른바 '반정부 유혈시위'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중동 반정부 유혈사태의 공통점은 민생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데 있다.

 

문제는 사망자 숫자가 수백 명으로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다. 현지인 통신원들이 전해오는 소식을 전하는 서방 언론에 따르면, 이란과 이라크에서는 300명 넘는 사망자가 생겨났다. 레바논에서는 이라크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시위가 벌어진 지 4주째인 지난 11월 12일 첫 희생자가 나온 뒤로는 다행히도 다른 희생자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번 소용돌이 속에서 내각책임제인 이라크와 레바논에서는 국무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났다(이라크 압둘 마흐디 총리, 레바논 사드 하리리 총리). 이란의 경우는 다르다. 4년 임기를 마치고 2017년 재선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물러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쉽게 넘어갈 위기는 아니다. 보다 정확히는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리는 중이다.

 

경제정책 불만과 실업, 민생고 

 

돌이켜 보면, 중동 지역은 2010년 말부터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크게 요동친 바 있다. 튀니지에서 터진 아랍의 봄바람은 동쪽으로 거세게 불어 이웃 리비아, 이집트를 휩쓸었고, 시리아에서 5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얘기되는 엄청난 전쟁의 불길로 번졌다. 하지만 이라크와 이란, 레바논에선 아주 약한 미풍에 그쳤었다. 그러다가 '아랍의 봄' 9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란, 이라크, 레바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정서 밑바닥에는 공통적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고 알려진다. 레바논에서는 30%가 넘는 높은 청년실업률과 공직자들의 부패가 큰 문제로 꼽힌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왓츠앱 등 스마트폰 메신저에 세금을 매긴다고 발표하자, 대규모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하루 230원 가량의 왓츠앱 세금은 만성적인 민생고와 실업난에 불만이 쌓였던 레바논 민심에 불을 붙인 계기가 됐다.

 

사드 하리리 총리가 끝내 사과를 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레바논 민심은 여전히 흉흉한 편이다. 새 총리로 꼽히는 모하메드 사파디 전 재무장관도 '부패한 기득권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즈음 레바논에서는 새 총리 지명 반대 집회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레바논은 15년 동안의 혹독한 내전(1975-1990)을 거친 뒤 이슬람(시아-수니)-기독교 세력간의 타협으로 정치권이 움직인다. 명목상의 국가수반인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실세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각기 맡고 있다. 이번에 물러난 사드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출신이고, 헤즈볼라(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는 시아파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다.  

 

이라크 시위 사태는 정부의 부패와 무능, 공공서비스 부족, 높은 실업율 등 여러 누적된 요인에서 비롯됐다. 전국적 반정부 시위가 2개월째 이어지고 강경 진압으로 사망자가 3백명 넘게 생겨나자, 11월 29일 압둘 마흐디 총리는 물러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라크 상황이 총리 한 사람의 사임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랍권 방송인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시위대는 만성적 부패를 청산하는 정치 개혁이 이뤄질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한다. 총리가 물러났어도 시위가 끊이지 않고 요동치는 지금의 상황은 레바논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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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는 지난 11월 15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수백명이 사살되었다는 앰네스티 보고서가 나오는 등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혼란스러운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AFP=연합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최다 희생자 

 

이란의 사망자 규모는 이라크와 엇비슷하다. 12월 2일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국제앰네스티)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 반정부 시위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적어도 208명이다. 11월 23일 이 단체가 집계한 사망자가 115명이란 점을 떠올리면, 9일 만에 93명이 늘어난 셈이다. 

 

이란 정부는 사망자 통계에 대해선 아무런 발표가 없다. 서방 언론보다는 공신력이 높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사망자 숫자로만 보면, 적어도 200명 넘는 희생자가 생겨났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충 넘길 일은 아니다. 지난 1979년 팔레비 친미 독재 왕정의 마구잡이 발포로 가장 줄여 잡아도 3000 명이 목숨을 잃었던 이슬람 혁명(이른바 '호메이니 혁명') 뒤로 이란은 최악의 유혈사태를 겪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국무부는 12월 5일  이란의 반정부 시위로 사망자가 1000명이 넘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일뿐 정확한 것은 물론 아니다. 

 

팩트 체크가 필요한 서방 언론 보도 

 

이란 시위는 정부가 11월 15일 0시에 "휘발유 가격을 50% 인상한다”고 기습 발표한 데서 비롯됐다. 1리터에 1만 리알(약 100원)이던 것을 1만5000 리알(150원)로 올렸다.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살 수 있는 휘발유는 60리터로 제한했다. 그보다 더 많이 살 경우엔 1리터당 3만 리알(300원)을 내야 한다. 1리터에 1500원이 넘는 한국의 휘발유 값에 견주면 엄청 싸지만, 이란의 서민들에겐 불만이 아닐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고 외쳤다고 한다. 이란 사태를 보도하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통신원'이란 직함을 지닌 현지인(이란인)이 보내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뉴스를 전하고 있다. 개중에는 사실인지 아닌지 이른바 '팩트 체크'가 필요한 것들도 마구 섞여 국내 미디어에 그대로 옮겨지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보도이다. 

 

△"이란혁명수비대(IRCG)가 남서부 도시 마샤르에서 AK-47 소총 등 중화기로 한 번에 100여 명을 총살하는 현장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다. 혁명수비대원들은 시신을 유족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장례식을 열지 말고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말라"고 협박했다(통신원의 제보를 바탕으로 한 NYT 보도) 

 

△"혁명수비대가 병원 응급실까지 뒤져 총상 환자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해간다"(BBC 통신원이 들었다고 한 병원 의료진의 간접 증언). 

 

"CIA가 이란 시위의 배후다" 

 

물가 인상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를 향해 실제로 그런 마구잡이 총격이 벌어져 사상자를 냈으리라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란 정부는 사상자 규모를 확인해주지 않아 의혹을 키우고 있다. 다만 이란 정보부는 이란 전국에서 은행 100곳과 많은 상점들이 시위대의 방화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 이란의 혼란스러운 사태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이란 지도부는 시위의 배후로 미국을 의심하고 있다. 이란 헌법상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시아파 최고 성직자)는 "불순한 무리들의 폭동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배후다"라고 주장한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시위 배후에 선동 세력 있다"며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이란 정부가 시위대에 강경 진압 방침을 세운 데엔 이런 미국 배후설에 바탕한 것이라 풀이된다. 

 

이란 정부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빼도 박도 못할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미 CIA가 반미 국가의 정부를 무너뜨리려 비밀공작을 편 사례들을 모은 목록은 길다. 이란도 그 가운데 하나다.  

 

△1953년 "이란 석유를 이란인 손에!"라는 슬로건 아래 석유 국유화를 추진했던 무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를 몰아내고 1979년까지 미국에게 막대한 석유 이권을 안겨주었던 이란 군부의 친위쿠데타 △1964년 브라질 좌파 성향의 주앙 골라르 당시 대통령을 쫓아내고 1985년까지 21년 동안 친미 군사독재 정권이 엄청난 인권 침해를 저질렀던 군부의 쿠데타 △1973년 남미 최초의 선거를 통한 합법적 사회주의 정권의 세웠던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대통령궁에서 자결하도록 만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 쿠데타 뒤에 CIA 비밀공작원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 정보기관에서 60달러씩 받았다" 

 

실제로 이란 미디어들은 반정부 시위에서 폭력 행위를 한 혐의로 붙잡힌 용의자 가운데 일부가 '외국 정보기관'에 매수됐다고 털어놓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익명의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 중부도시)이스파한에서 체포된 폭도들 가운데 일부가 외국 정보기관에 매수됐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이들은 관공서· 은행 등에 불을 한 번 지를 때마다 외국 정보기관에서 60달러씩 받았다고 실토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정보기관'이란 CIA를 가리킨다. 

 

이란의 친정부 미디어의 이런 보도는 앞서 서방 미디어들의 반이란 편향 보도처럼 '팩트 체크'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확인이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란의 지금 혼란상이 근본적으로 경제제재를 비롯한 미국의 대이란 적대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없었다면, 이란 정부가 굳이 휘발유 값을 크게 올릴 이유가 없다.

 

이스라엘 챙기려 이란 붕괴 노린다 

 

미국이 이란 정부를 압박하는 배경엔 이스라엘을 뺄 수 없다. 미국의 중동 정책을 움직이는 두 개의 수레바퀴(중동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 이스라엘 안보 챙겨주기)에서 이스라엘은 한 축을 이뤄왔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위협할 만한 군사력을 지닌 반미-반이스라엘 국가는 이란 하나뿐이다. 이미 2009년 이란 이슬람혁명 30주년을 맞아 '오미드'(희망)라는 이름의 인공위성을 독자 기술로 쏘아올렸던 이란은 이스라엘을 사정권 안에 둔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 중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미국이 이란을 압박해 체제 붕괴를 이끌어낸다면 그보다 좋은 소식이 없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6개국(P5+1,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영국+독일)과 이란 정부와 맺었던 다자간 핵합의(△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란 핵 개발 포기 대가로 경제제재 완화. △이란은 핵 보유 야망 접고 석유 수출로 경제를 살리고, 외교적 실리 얻는다는 합의)를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아울러 더욱 가혹한 경제제재로 이란을 옥죄는 것은 이스라엘을 챙겨주려는 노골적인 배려에서다.  

 

그런 까닭에 이란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지닌 국가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제재로 원유 수출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2018년 상반기 250만 배럴의 하루 원유 수출량은 이즈음 5분의 1가량인 50만 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중국이 미국의 봉쇄정책을 무시하며 이란 석유를 들여가는 덕이다.

 

이란 경제의 핵심 동력인 원유 수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이란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1년 전에 견주어 △3분의 1로 떨어진 리알화 가치, △물가 상승률 40%, △높은 실업율(정부의 발표는 10.5%이지만, 청년실업률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보임), △-9.5%로 뒷걸음질 치는 경제성장률(IMF의 2019년도 예측) 등 각종 경제통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번 이란 시위에 불을 당긴 휘발유 값 인상도 미국의 경제제재가 없었다면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압박은 이란 민주화와 개혁을 늦춘다" 

 

미국이 이란을 압박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란 현지 취재 때 만났던 그곳의 온건한 지식인들조차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잘못된 중동 정책에는 비판적이다. 이란 알라메흐 대학의 다부드 헤르미다스-바반드 교수는 이란의 이름난 국제법 전문가다. 그는 "미국의 봉쇄정책을 비롯한 대이란 강공책이 이란의 민주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바반드 교수의 요점은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이란의 국내 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대응해왔다는 비판이다.

 

테헤란대학 호세인 사이프자데 교수(정치학)는 미국의 대이란 정책이 잘못돼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이란의 대외개방을 막음으로써 경제발전을 더디게 만들뿐더러, 이란의 개혁을 바라는 세력들의 입지를 좁히고 보수 강경세력이 힘을 얻도록 만든다는 얘기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로 이란에는 네 가지 정치세력이 서로 힘을 겨뤄왔다. 호메이니, 그리고 지금의 하메네이를 정점으로 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자유민족주의 세력, 개혁주의 세력, 그리고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이다. 미국이 이란의 여러 정치적 집단 사이의 세력균형을 올바로 헤아리고 대이란 정책을 보다 사려 깊게 펼쳤다면, 이란에서 개혁파가 정권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1997년에서 2005년까지 개혁파 무함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미국의 압박으로 관계 개선에 실패했고 그 뒤 개혁파는 힘을 잃었다-필자 주). 이란 사회는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래로 근본주의 그룹에 의해 통제되고 움직여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란 사회가 다양화되고 근대화되고 있다는 점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글의 결론은? "이란 유혈사태의 근본 책임은 트럼프에 있다"로 맺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챙기려는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는 이란 시민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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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9/12/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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