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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항쟁 30년] ‘2017’이 ‘1987’에게 –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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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항쟁 30년] ‘2017’이 ‘1987’에게 –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

익명 (미확인) | 금, 2017/06/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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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월의 함성, 다시 한번 그 유월의 어깨동무로

  file_20170514225612   6월 10일은 민주항쟁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6월 항쟁(六月抗爭)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6월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월 민중항쟁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4·13 호헌 조치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그리고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1987년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embedyt] https://www.youtube.com/watch?v=N5RVpLhNX1k[/embedyt]

  2017년 6월 9일(금요일) 저녁 6시부터 이한열 열사 30주기 기념 문화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립니다. 1987년 당시 직격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30주기를 맞아2017년 6월 9일. 시청광장에서 이한열 장례행렬을 재연합니다.
[6월 9일(금) 프로그램]
1  
[6월 10일 프로그램]
2   3  

[만화 - 최규석의 100℃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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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은 왜 일어났을까요?
 
신군부의 12.12쿠데타
1979년 10·26 사건으로 17년간 독재정치를 펼치던 제4공화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 최규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다.(서울의 봄)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전두환 등을 비롯한 신군부(하나회)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전두환은 최규하를 로봇처럼 조종했고,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집권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시위 규모는 커졌고, 시위 참가자들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였다.(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現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었던 박종운을 잡기위해 연행한 것이였다. 취조실에 연행해간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였고, 박종철은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11시 45분 경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의사가 검진했을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 라고 사망원인을 발표하였다. 2월 7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 및 도심 시위가 열렸고, 이어 3월 3일에는 "박종철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과 함께 또 다른 시위가 열렸다. 이후 4월 2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130여 명이 건국대학교 사태 등 시국관련 구속학생의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다.    
정부의 개헌논의 유보(4.13 호헌조치)
하지만, 전두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1987년 4월 13일, 그는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 개헌(改憲)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1987년 내에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자유 경선의 분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차질없이 실시할 수 있게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또 민정당의 후임 대통령 후보는 조속한 시일 안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서 당헌 절차와 민주 방식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호헌 조치'라는 그 이름대로 현행 헌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얻을 것이라 믿었으나, 기대는커녕 오히려 반발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이튿날인 4월 14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들이, 호헌 조치를 비판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경찰 최루탄에 의한 이한열 사망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광주항쟁 7주년 미사에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은폐되었음을 폭로하였다. 이에 제5공화국 정권을 비판하던 국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옳지 못함에 크게 분노하였고,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자주 일어났다. 이후 5월 23일 "박종철 고문살인은폐조작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들은 6월 10일에 규탄대회를 갖기로 결정하였다(그날은 노태우가 민정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날이기도 하다). 전두환은 후계자로 국무총리 노신영을 지명했으나, 5월 26일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신영 국무총리를 경질하였다. 이후 이한기를 신임 총리로 교체하였다. 이튿날 전국의 재야지도자 2200여 명이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였고, 한국 기독교 장로회 향린교회에서 발기인 대회 를 열었고, "호헌 조치 철회 및 직선제개헌 공동쟁취 선언"을 발표하였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7월 5일 사망)을 입었다. (6월항쟁 홈페이지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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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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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에너지기후행동캠프

# 기후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위해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너른 마당에서
#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만들고 놀고 행동하는 1박 2일!
# 기후와 에너지에 관심 있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어요~!!

◼ 일시 : 2015년 8월 21~22일(금~토)
◼ 장소 : 하자센터 / 하이서울유스호스텔 (영등포 소재)

◼프로그램
<21일 금요일>
[10:00~12:30] 토크콘서트 : 탈탈원정대가 들려주는 에너지 이야기 (밀양지역대책위와 함께)
[13:30~15:00] 세션Ⅰ : (토론회) 가리왕산 그리고 올림픽 / (토론) 후쿠시마 이후 5년, 탈핵교육의 모색 / (강연) 핵발전소 폐로, 한수원 노동자들의 고민 / (토론) 기후변화 부추기는 더러운 에너지 그만
[15:00~15:30] 전시/체험 : 에너지카 ‘해로’ / 적정기술 전시 / 직조&배틀 체험 / 재활용제습기 만들기 / 천연모기퇴치제 만들기
[16:00~17:30] 세션Ⅱ : (토론회) 재생가능에너지로 인한 지역사회와의 갈등 진단 및 해법 모색 / (토론) 영덕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절차적 환경부정의 / (강연) 아현동 사고 후 30년, 가스안전의 현실 / (워크숍) 자전거면허시험 / (워크숍) 효과적이고 개성 있는 부스 운영
[19:30~21:30] 비전력 콘서트

<22일 토요일>
[09:30~11:30] 자전거행진(영등포~여의도)
[11:30~12:30] 지구를 위한 시민선언대회 (국회 앞)

◼ 참가비 : 2만원
◼ 문의 : 02-702-4979
◼ 신청하기 : http://goo.gl/forms/KWkhDMa99c
◼ 참가비 입금 : 우리은행 1005-002-757141 (탈핵학교)

◽ 오후에 진행하는 세션 중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참여합니다.
◽ 자전거행진을 원치 않는 참가자는 대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부모님과 함께 오는 어린이(4세~10세)를 위한 놀이방을 운영합니다.

◼ 주최 : 2015 에너지기후행동캠프 기획단
(녹색연합, 방물단, 성대골사람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에너지정의행동, 에코허브, 여성환경연대, 청년초록네트워크, 탈핵학교, 태양의학교, 하자작업장학교, 한살림서울,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 주관 : 탈핵학교 / 에너지정의행동
◼ 후원 : 서울특별시

 

월, 2015/08/1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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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국민해킹에 대한 국민고발단에 참여하실 분들은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bit.ly/Nis-Stop-Hacking


2015. 7. 5. 누군가가 이탈리아 해킹 팀(Hacking Team)(이하 해킹 팀이라고만 하겠습니다)의 내부자료를 해킹을 통해 확보한 후 인터넷에 공개를 하였습니다. 이 내부자료에는 ‘RCS(Remote Control System)’(이하 “RCS”라고만 하겠습니다)의 소스코드를 비롯하여 RCS를 구매한 나라와 구체적인 구매내역 등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부자료에는 우리나라 정보수사기관인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라고만 하겠습니다)도 해킹 팀의 고객이었고, 실제로 RCS를 구입 및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1. 국정원은 주식회사 나나테크를 통해 휴대폰과 컴퓨터 등을 감청하는 것을 넘어서서 해킹할 수 있는 RCS를 아무런 통보절차 없이 도입하였다. 2. 국정원은 이렇게 도입한 RCS를 내국인을 대상으로 사용하였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국정원은 지난 14"20121월과 7, 이탈리아 해킹 팀으로부터 총 20명분의 RCS를 구입하였으나 이는 연구용 혹은 해외에서 필요한 대상에 사용할 목적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해킹 팀으로부터 유출된 위 자료들을 분석한 언론보도 내용을 보면 국정원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고 보입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국정원은 국내 최대 이용자수를 자랑하는 메신져인 카카오톡을 해킹하길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원했습니다. 실제로 20143월 해킹 팀 내부 메일에는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카카오톡에 대한 (해킹 기능 개발) 진행 상황에 대해 물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둘째, 국정원은 스마트폰의 국내용 모델의 해킹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20132월 갤럭시S3의 국내용 모델을 구입하여 이탈리아에 보내 몰래 음성녹음하는 것이 가능한지살펴달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외국에서 출시된 모델은 기본 애플리케이션이 국내용과 다르기에 국내 핸드폰 사용자를 전제로 한 맞춤용 해킹을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갤럭시 핸드폰의 최신형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이를 해킹하기 위한 업그레이드를 요청했습니다. 이 역시 국내 핸드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셋째, 국정원은 국내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백신프로그램인 안랩의 ‘V3 모바일 2.0’과 같은 백신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도 물었습니다. 이 역시 국내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해킹을 준비해왔다고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넷째,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공격을 요청했습니다.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20143월께 오간 해킹 팀의 출장 보고서를 보면, “그들(국정원)의 주된 관심사는 원격의 안드로이드, 아이폰에 대한 공격이며 특히 6월에 안드로이드 공격을 이용하길 원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국내사용을 전제로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제목의 워드 파일,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한 천안함 보도 관련 문의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천안함 관련 연구진, 서울대 출신 고위관계자 등이 감시 대상자였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여섯째, 국정원이 해킹 팀 쪽에 악성 코드를 심어 달라며 보낸 설치 파일 링크를 살펴보면 네이버 맛집 소개 블로그 벚꽃축제를 다룬 블로그 삼성 업데이트 사이트를 미끼로 내건 주소가 나옵니다. 하나같이 국내의 일반인들이 흔히 누를 법한 링크들입니다. 어떤 외국인들이 이를 외국에서 누르겠습니까?


따라서 국정원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해킹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RCS를 최초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현재 국정원장인 이병호까지의 전현직 국정원장들, 그리고 위 각 국정원장 밑에서 RCS를 구입하고 사용하여 왔을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아래와 같은 범죄혐의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1. RCS를 구입하여 도입한 행위

-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10조의2 2: 국회 정보위원회에 대한 통보의무 위반

2. RCS를 감염시켜 감청하거나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훔쳐 본 행위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통망법”) 48조 제2: 악성프로그램(RCS)의 전달 또는 유포

- 정통망법 제48조 제1: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정보통신망에 침입

- 정통망법 제49: 타인의 비밀침해

- 통비법 제7조 제1: 감청을 하려는 경우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 혹은 대통령의 승인을 얻을 의무 위반

 

그런데 검찰 등 이를 조사하고 밝혀야 하는 국가기관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사이에 관계자는 외국으로 출국을 하고, 담당자는 자신의 행적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를 삭제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조속한 수사가 이루어져 이후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증거들이 확보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들은 국민고발단을 모집하여 국정원의 국민해킹에 대해 고발을 진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고발은 단순히 국정원의 RCS 구매와 사용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만이 아닌 국정원 시대를 극복하여 우리사회가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이 아니라 국정원 개혁까지 이르는 시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많은 국민이 이에 참여해주시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깨어 있고, 지금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으며, 절실히 민주주의를 바란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가만히 있는 검찰, 눈치 보는 검찰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할 것이고, 진상을 드러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화, 2015/07/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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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캠페인 7월 마을환경조사 ‘불법쓰레기’ 사진을 보내준 명단입니다.

봉사시간은 7월 29일에 확인해보세요^^!

8월 온도측정은 8월 2일(일) 오전 9시입니다~

강규진 김동화 김재연 남태현 변종욱 안도연 이승호 전유준 최민석
강동완 김미정 김재원 류신아 변찬영 안영환 이예서 전유진 최수빈
강동재 김민석 김재원 류하나 빈규태 안희원 이은지 전창윤 최수현
강민혜 김민재 김재윤 민선홍 빈재우 양찬열 이은혁 전태호 최우창
강재훈 김민주 김재형 민수홍 서재원 양찬우 이재원 전필규 최원종
강주현 김범진 김정래 민시윤 서정우 양현태 이재준 전해준 최재혁
강현서 김사준 김정호 민지홍 서채영 여태윤 이정목 정새나 하재인
고경도 김상혁 김준석 박민선 성민경 연재우 이정빈 정샘 하태준
고명현 김상협 김준식 박상윤 손동환 연진우 이제원 정솔 한민영
고연우 김서현 김준영 박소영 손상헌 연현주 이제현 정영진 한서진
고영권 김서희 김준희 박소율 손현민 오승우 이주엽 정영훈 한정우
권은중 김선우 김지수 박승현 송승훈 유민재 이주형 정은선 한준서
권현준 김선정 김지운 박시준 송여준 유수범 이준규 정종호 한지수
권혜중 김선호 김지윤 박시훈 송영훈 유지민 이준석 정준서 한지현
권희주 김성욱 김지환 박준영 송우석 유지용 이지수 정준한 한지혜
권희철 김성현 김진우 박지연 송유빈 유진아 이지영 정호진 한혜정
길정연 김성훈 김진호 박채연 송인화 유혁준 이지현 정효석 함동균
길현준 김수아 김채희 박채연 송일환 윤상미 이지형 조민혁 홍기웅
김 훈 김수연 김철민 박채은 송주아 윤성오 이지훈 조서영 홍석준
김경미 김연우 김태양 박해준 송진우 윤수빈 이하영 조성현 홍선우
김기윤 김영엽 김태현 박형우 신경헌 윤영식 이현지 조은진 홍성연
김기택 김용성 김태현 박형찬 신동완 윤은배 이효림 조현우 홍현준
김다영 김용찬 김현서 배용환 신동찬 윤찬 이희수 조현우 황규민
김대연 김유진 김현우 배준열 신민진 윤태환 임경환 지소은 황성우
김도현 김윤수 김현희 배지훈 신민찬 이강일 임서균 지영채 황수환
김도훈 김윤지 김혜민 백대호 신유경 이도현 임하은 진현우 황윤상
김도희 김은서 김환준 백성현 신재철 이상훈 장민제 진현정 황준상
김동연 김은호 김훈 백승욱 신정우 이소정 장세현 채민성 황창환
김동해 김이현 남성규 백승주 신준우 이수빈 장준수 천세화  
김동현 김재민 남태우 백찬영 신채현 이승엽 장하윤 최민서  
화, 2015/07/2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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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집개요
– 서울환경연합에서는 초록에 동의하는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울환경연합은 서울특별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와 공동으로 녹색서울시민실천사업의 일환으로
“CO₂ 1인 1톤 줄이기” 캠페인(CO2 다이어트)을 진행합니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가 걱정되는 당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싶은 당신!!
지루하고 원론적인 캠페인이 아닌,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캠페인을 함께 진행해보아요.
○ 기간 및 일정

– 모집 기간 : 2015년 8월 1일 ~ 15일
– 합격자 발표 : 2015년 8월 19일 개별 통보
– 활동 기간 : 2015년 9~10월
○ 지원자격

– 활동적이고 열정적이며, 환경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
○ 활동주제

– CO₂ 1인 1톤 줄이기

 

○ 활동내용
– CO₂ 다이어트 관련 홍보, [CO₂ 1인 1톤 줄이기] 서약서 받기, 서울환경연합과 공동 캠페인 진행 등

 

○ 접수방법
–  지원서 이메일 접수 ( 파일명 : CO2서포터즈지원서_지원자이름; 지원서 본 게시물 첨부)

 

○ 혜택내역
– 단체 행사 초대 및 자원활동 인증서 발급

 

○ 유의사항
– 마감시한 엄수

 

○ 문의
– 홈페이지 : http://www.ecoseoul.or.kr
– 메일 : [email protected]

– 전화 : 서울환경연합 기후에너지팀 (☏02-735-7000)

CO2서포터즈 지원서

수, 2015/07/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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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협조요청

국정원의 해킹사찰에 대한 국민고발 기자회견
일시 및 장소 : 7월 30일(목), 오전 11시 30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법원삼거리)

1. 취지와 목적
- 국정원의 불법적인 해킹 프로그램 구입하고 이를 내국인을 대상으로 사
용한 행위를 검찰에 고발하고자 함
- 7/27일(월)~29일(수)까지 온라인상에서 국민고발인을 공개모집하여, 참여
의사를 밝힌 2,786명의 시민과 41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고발.

2. 고발 개요
○ 혐 의 :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 고발인 : 2,786명의 시민, 41개의 시민사회단체
○ 피고발인 : 원세훈 전 원장부터 현재 국정원장까지 국정원의 국민해킹
책임자 및 실행자

3. 기자회견
○ 제목 : 국정원의 해킹사찰에 대한 국민고발 기자회견
○ 주최 : 국정원 국민해킹사찰대응 시민사회단체 일동 (가만히 있지 않는 경
산 청년 모임, 가만히있으라 with 제주, 거제서명팀, 검은티행동, 경기시흥촛불, 고양
세실(고양시 세월호 실천 모임), 광화문TV, 노원 416의 약속, 노후희망유니온, 대구
반야월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들, 대구경북 별들과의 동행, 리멤버 0416,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전역시민회, 민주주의국민행동, 민주화를
위한전국교수협의회, 부정선거진상규명시민모임, 분당사랑방 세월호소모임, 사회민주
당창당모임, 서대문416네트워크, 세대행동(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
들), 세월호 원주대책위, 세월호를 기억하는 용인시민모임, 아시아의 친구들, 엄마의
노란손수건, 의정부 세월호 대책회의, 이화여대민주동문회, 인천서명팀(부평 검암 구
월), 전국교수노조,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초아민주모임, 표
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풀뿌리시민네트워크,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한국진
보연대, 한국청년연대, 한신대 총학생회, 함께하는 이웃 (총 41 개 시민사회단체)
○ 참가자
- 사회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주요참석자: 박석운(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송주명(민주화를위한전국
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이종회(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이호중(천주교
인권위원회 상임이사), 장유식(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최종진(민
주노총 수석부위원장)

〇 향후 계획
- 1차 고발 후 8월 12일까지를 시한으로 2차 고발운동 진행
- 2차 고발장 접수는 8월 13일 예정
- 2차는 온, 오프라인으로 진행
○ 문의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019-339-2599,
이은미 (참여연대) 010-3341-9189

목, 2015/07/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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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환경연대가 자원활동가의 도움으로 자외선 차단제 성분을 모니터링하였습니다.

그 결과, 햇빛과 만나면 유해성분이 나오는

비타민 A (레티놀, 레티닐팔미테이트, 레티닐아세테이트 등) 성분이 든 자외선 차단제를 찾아냈습니다.

여러분께 제품 목록을 공개합니다.

자외선 차단제나 BB크림 등을 구입하실 때에는

비타민 A (레티놀, 레티닐팔미테이트, 레티닐아세테이트 등) 성분이 들어있는지 아닌지 확인하시고

들어있는 제품은 피해서 구입하세요~

정말 정말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네요! :)

건강한 자외선 차단제 준비하시고 즐겁고 여유로운 여름 휴가 보내세요.

(건강한 자외선 차단제에 대한 깨알 팁은 여기서!

http://ecofem.or.kr/9792)

 

 

 

목, 2015/07/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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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곡수중보 철거 공개 설명회를 개최합니다.

한강 녹조의 심각성으로 인해 서울시가 신곡수중보 가동보 개방을 검토하였습니다.

비로 인해 녹조는 사라졌지만 신곡수중보 철거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 확산 및 여론 조성을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신곡수중보-철거-집중-분석

목, 2015/07/3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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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인권 개선 새정치민주연합-시민사회 간담회후

『국정원 해킹사찰사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요구』 발표 기자회견

 

◆ 일시 : 201586() 오전 1130

◆ 장소 : 국회 정론관

◆ 주최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 (이상 가나다 순)

◆ 개요

- 참석자(가나다순) :

김서중(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김지미 사무차장, 박주민, 이광철, 이석범 부회장, 최병모, 한택근 회장(이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근용 협동사무처장, 정현백 공동대표(이상 참여연대), 박석운 공동대표(한국진보연대), 이재승 회장(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이호중 운영위원장(천주교 인권위원회), 장여경 정책활동가(진보네트워크센터), 최종진 수석부위원장(민주노총)

- 기자회견 주요내용 : 정보 인권 개선 새정치민주연합-시민사회 간담회 결과와 국정원 해킹사찰사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요구 발표

 

○ 7월 9일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RCS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지난 한달 여 동안, 국정원이 국내의 스마트폰과 PC에 대해 RCS를 사용하여 해킹사찰을 했다는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우리는 국정원의 해킹사찰 사건을 국민의 통신비밀의 자유, 프라이버시권과 정보의 자기결정권 및 인격권을 침해하는 매우 중대한 불법사태이자,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공작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 사건으로 규정한다.

 

○ 그러나 국정원의 해킹사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이 해소되기 커녕, ‘2012년 1월과 7월에만 구입했다’ ‘20명만 감시했다’는 등 국정원의 거짓 해명과, 국정원 담당직원의 사망, 유례 없는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 등으로 국민적 불신과 혼란만 깊어져 왔다. 국정원은 아직도 국회에 RCS 사용의혹에 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셀프’ 해명으로 일관하는 등 국민 앞에 고압적인 태도를 거두지 않고 있다.

 

○ RCS 사용과 관련된 모든 의혹은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수사를 받아야 할 범죄자인 국정원이 자신의 해명을 그대로 믿으라고 우기는 것만 보아도 국정원이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국정원은 진실규명의 국민적 요구를 거부하고 있으며, 검찰은 국정원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진실은 은폐되고 있다. RCS 사용의혹을 입증할 자료는 국정원이 쥐고 있으며, 나나테크의 주요 증인은 이미 출국하였다. 국정원이 해킹사건의 의혹을 투명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국회의 진상규명 조사와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이다. 국민들이 정보기관의 감시에 대해 불안해 할 때 정부 비판이나 인권 행사에 대한 위축으로 이어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밝혀져야 할 의혹이 충분히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기 전에 국정원 해킹사찰 사건은 끝나지 않았고 끝날 수 없다.

 

○ 민주국가에서 어떤 국가정보기관도 헌법과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국가정보기관이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국회나 법원 등으로부터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은 채로, 국민들 몰래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사용해온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특히 최근의 논란 과정에서 국민들은 국정원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국정원의 권력남용을 통제하는데 무력한 국회의 모습을 확인하고 깊은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국정원개혁특위를 만들어 내놓은 조치가 국정원의 권력남용을 통제하는데 얼마나 미흡한 미봉책에 불과하였는지를 이번 해킹 사건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 국민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국정원에게 휴대전화 감청 등 권한을 확대하고 입법을 통해 정식으로 해킹 권한을 부여하려는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고 있다. 국정원은 국민이 부여한 제 권한을 여러 차례 오남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음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이제 국정원을 국회와 국민의 민주적인 통제를 받는 기관으로 환골탈태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이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는 한 우리 국민들은 국정원에 어떠한 권한도 부여할 수 없다.

 

○ 특히 국정원 해킹사찰 사건은 우발적으로 불거진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정부 들어서서만도 인터넷 댓글조작에 의한 선거개입사건, 간첩 증거조작 사건 등 ‘공룡 정보기관’이 권한을 남용한 일련의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고 해킹사찰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민들은 이렇게 드러난 사건 이외에도 공룡 정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이 그 권한을 오남용한 사건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가정보기관이라 하더라도 헌법과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적법한 범위 내에서 행사해야 함은 민주법치국가의 기본 상식이다. 국정원은 헌법과 국민의 상식을 유린하였다.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에 기초해서 국정원의 권력남용을 방지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적 소명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 이에 우리 시민사회단체 일동은 국정원의 해킹사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5대 의혹과 3대 요구를 발표하는 바이다. 검찰과 국회를 비롯하여 책임있는 모든 국가기관은 국정원의 해킹사찰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뼈를 깍는 심정으로 응답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국가정보원 해킹사찰 사건에 대한

5대 의혹과 3대 요구

<요 약>

 

◎ 진상규명되어야 할 5대 의혹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의 RCS를 언제, 얼마나, 누구를 대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하여 왔는가

국정원은 스마트폰의 통신 및 대화를 어떤 장치를 통해 수집해 왔으며, 그것은 언제부터, 얼마나, 누구를 대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하였는가

국정원은 국민을 몰래 감시하기 위하여 RCS 외 어떤 첨단 감시기술을 누구를 대상으로,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

국정원의 국민감시 IT 기술의 사용을 허가한 사람은 누구인가. 대통령직속기관인 국정원을 감독해야 할 지위에 있는 대통령은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언제 알았으며, 해킹기술 사용 허가 등 대통령은 국정원의 권력남용에 어떻게 관여하였는가

국정원 전직원 임모씨 사망사건과 자료 삭제의 진실은 무엇인가

 

◎ 재발방지를 위한 3대 요구

 

해킹프로그램 사용의 모든 의혹에 관하여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셀프만능’ 국정원의 권력남용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제도적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공룡’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폐지하는 등 근본적인 국정원 개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15년 8월 6일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 (이상, 가나다 순)

목, 2015/08/0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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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노동판례비평』 출간 안내

『2014 노동판례비평』, 민변 노동위원회 편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이하 민변 노동위원회)는 2015. 7. 27. 『2014 노동판례비평』(제19호, 가격 15,000원)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번 노동판례비평에서는 「정리해고의 요건 –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중심으로」 등 총 14개의 주요 대법원 판례에 대한 평석이 실렸습니다.

 

○ 노동판례비평은 노동법을 연구하는 학자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노동법 실무를 담당하는 변호사, 노무사를 비롯하여 노동조합 및 단체의 노동법규 담당자 등 실무 활동가들이 최근 대법원의 노동판결례 동향 및 문제점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도록 해설되어 있습니다.

 

○ 『2014 노동판례비평』의 구입문의는 민변 노동위원회(T. 02-522-7284)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2014노동판례비평-표지0803

 

■ 『2014 노동판례비평』 목차

- 주요 판례 평석 -
1.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의 근로자성/조현주
2. 위탁계약관계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박수근
3. 통상임금의 고정성 징표로서의 재직자 조건에 대한 검토/김도형
4. 택시 근로자의 퇴직금에 대한 개정 최저임금법의 적용여부/우지연
5. 정리해고의 요건 –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중심으로/김태욱, 장석우
6. 지체장애인의 의족파손의 요양급여 대상성/김예원
7. 2세의 선천적 질환을 산재법상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있는지/임자운
8. 기간제근로자의 갱신기대권/전형배
9. 법정 예외 사유의 소멸과 무기계약 근로자로의 전환에 관한 해석/정병욱
10. 노동조합 전임자와 근로시간 면제 제도/최은배
11. 노동조합설립신고에 대한 심사방법과 ‘근로자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의 판단방법/전영식
12. 노동조합 대의원회의 의결사항과 총회의 권한/김기덕
13. 고용안정협약에 의한 경영해고의 제한/오윤식
14. 업무방해죄의 ‘위력’/권두섭

- 부 록  노동판례비평 총 목차(제1호~제18호) -

 
■ 집필에 참여해 주신 분들
권두섭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김기덕 변호사 (법률사무소 새날)
김도형 변호사 (법무법인 원)
김예원 변호사 (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
김태욱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박수근 교수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오윤식 변호사 (법무법인 공간)
우지연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임자운 변호사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장석우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전영식 변호사 (법무법인 시민)
전형배 교수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병욱 변호사 (법무법인 가교)
조현주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최은배 변호사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가나다 순)

 

수, 2015/08/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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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함께 하는 Green life – ‘풀’

 

가을의 초입인 처서 무렵,  풀들은 억센 기운을 다하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습니다.

도시농부들의 자발적인 농사공동체 풍암농사학림 호미농장에서  ‘풀’과 즐겁게 만나 봅시다.

풀이 없다면 지구는 얼마나 삭막할까요? 먼지만 폴폴 날지도 모릅니다.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싹이 돋고 스스로 자라고 성장하는 풀,  풀의 매력 속으로 빠져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도시농부들의 땀방울과 하늘이 스스로 돌보고 기른 자연재배 포도가 익어갈 때라고 살짝 귀뜸해 드립니다)

함께 하세요-^^

 

두번째 봄인 처서(處暑) 무렵 풍암동 호미농장에서 만나는 풀과 약이 되는 풀요리

* 일 시 : 2015년 8월 22일(토) 오전 9시30분~12시30분

(모집기간 : 8월 19일까지)

* 장 소 : 풍암동 호미농장

* 강 사 : 신수오(자연요리전문가를 꿈꾸는 호미농장의 세프)

* 집결장소 : 풍암동 롯데수퍼 입구(대로변)

* 참가비 : 1인 5,000원

*준비물 : 모자, 도시락

* 참여신청 : 광주환경운동연합 ☎514-2470

 

* 프로그램

- 9시30분~10시30분 : 풀맹탈출 풀투어(호미농장 자연순환 농사와 가을풀 둘러보기)

- 10시30분~11시30분 : 풀요리 만들기(풀나물&풀비빔밥,풀쌈,자연재배 포도)

- 11시30분~12시30분 : 풀밥상으로 점심(허브차)

 

 

광주환경운동연합 (☎ 514-2470)

 

수, 2015/08/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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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발자국UCC공모전_webposter-01

 

공모 개요

서울환경연합과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진행하는 CO₂ 1인 1톤 줄이기 – CO₂ 다이어트 캠페인에 영상으로 함께할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6월~10월 매 달 최우수상 시상이 있으며, 10월에 최종 시상이 있습니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가 걱정되는 분들, 탄소발자국이 도대체 뭐야? 싶은 분들,
여러분의 고민을 영상으로 나눠주세요.

공모 주제
- 탄소 발자국 용어 설명 및 홍보
– 생활 속 탄소 발자국 줄이기를 실천하는 모습
– 탄소 발자국 줄이는 것을 독려하는 모습

기간 및 일정
– 접수 : 8월 10일 (월) ~ 8월  19일 (금)
– 심사 : 페이스북 호응도 (업로드 일~종료일, 코멘트 + 좋아요 수, 태그를 위한 코멘트는 평가에서 제외됩니다)
– 발표 : 8월 25일

지원 자격
학생/일반 구분 없이 개인, 또는 5인 이내의 팀; 중복 접수 및 중복 시상 불허

공모 분야
UCC 영상

접수 방법
- 영상 : 다이어트 페이스북 페이지에 (facebook.com/COtwoDIET) 참가자 직접 업로드
#탄소발자국 실천단, 해쉬 태그 필수
– 응모 원서 및 영상 원본 이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출품 규격
- 해상도 : 1280 * 720 HD 이상
– 시간 : 60초~2분 이내
– 파일 형식 : 자유 (다큐멘터리, CF, 애니메이션 등, 휴대폰 촬영 영상도 가능)
– 파일 확장자 : mpeg, avi, mp4 등

제출서류
응모 원서 및 영상 원본

심사방법
- 페이스북 호응도 (코멘트 + 좋아요, 업로드 일~종료일)
– 내부 평가

시상내역
- 월 우수상 : 증명서 및 10만원 상당의 부상
– 10월 최우수상 선정

유의 사항
- 페이스북 호응도에서 태그를 위한 코멘트는 평가에서 제외됩니다
– 수상 작품은 온라인/오프라인 홍보 및 전시, 그 외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 출품 작품은 반드시 순수 창작물로 미발표 작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생기는 모든 분쟁 책임은 참가자에게 있습니다.
– 출품작들의 저작권은 제작자에게 귀속되나 협의 후 홍보 등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 반드시 영상 직접 업로드와 이메일로 응모 원서 및 영상 원본을 보내셔야 접수 완료됩니다.

문의
서울환경연합 기후에너지팀 (02-735-7000)

탄소발자국 실천단 응모 원서

수, 2015/08/0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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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호 대법정이 통일신학의 강연장이 되다

1991년 11월 1일 오후 2시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대법정 417호실에서는 70을 바라보는 노령의 여신학자 박순경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1심 재판이 열렸다. 100여명의 방청객이 법정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재판장 정호영 부장판사가 개정을 선언하자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구치소 수감자들의 겨울용 회색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박순경 교수가 여교도관의 부축을 받으며 법정으로 들어왔다. 왼쪽 가슴에는 수인번호 ‘72’를 새긴 명찰을 달고, 까만 털실양말을 장갑으로 끼고 있었다. 여기저기 가벼운 탄식소리와 함께 방청석이 잠시 술렁거렸다. 박 교수는 방청석의 낯익은 얼굴들에게 잠시 고개를 돌려 눈인사를 나누고 교도관에 이끌려 피고인석에 앉았다. 검사석에는 조영수 검사가, 변호인석에는 홍성우, 한승헌, 강철선, 백승헌 등 변호인단이 이미 나와 앉아 있었다.

재판장의 인정신문으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름, 직업, 주소를 묻는 간단한 확인이 끝나자 피고인의 모두진술 시간이 주어졌다. 박순경 교수는 구치소에서 공들여 작성한 장문의 모두진술서를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1시간 반에 걸친 모두진술에 이어 검사 심문, 변호인 반대심문, 판사 심문 순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박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은 크게 2가지로 압축되었다. 첫째는 1990년 3월부터 정부가 불허하는 범민족대회 예비회의에 참여하는 등 범민족대회추진본부(이하 범추본)에 간부로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이후 1991년 1월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를 결성하여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둘째 1991년 7월 일본 동경 재일 한국YMCA에서 개최된 ‘제2차 조국의 평화통일과 기독교선교에 관한 기독자 동경회의’에 참석하여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북한의 주체사상에 적극 동조하고 찬양하였다는 것이다.

모두진술에서 박 교수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다. 박 교수는 검찰이 현직 교수이며 신학자인 자신을 구속한 사유가 동경강연에 초점이 있었다고 보고 두 번째 공소 사실에 집중하였다. 반론의 요점을 요약하면 우선 자신의 동경 강연은 주체사상에 대한 신학적 재해석 시도이고, 내용상으로도 결코 ‘찬양’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강연에서 보인 주체사상에 대한 재해석 시도는 오히려 주체사상을 상대화시키고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범민족대회와 범민련준비위 참여에 대해서는 자신의 활동내용을 검찰이 부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부당하게 확대해석한 점을 지적하였다.

박 교수의 모두진술은 250~260매에 달하는 장문으로 읽는 데만 2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것이었지만 백승헌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요약해서 낭독했다. 그런데도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 중에서도 동경 강연에 대한 신학적 변증은 거의 학술논문 수준으로 대법정을 신학강연장으로 바꿔놓은 듯했다. 그것은 박순경 교수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이 날 재판은 5시간쯤 진행되었고, 재판장이 11월 8일 2차 공판을 선언하면서 폐정했다. 이 날 재판은 일반 언론에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한겨레신문에 죄수복을 입은 박순경 교수의 사진과 함께 보도되어 민주진영 안팎에 큰 감동을 던져 주었다.

11월 8일 결심공판에서 검사는 박 교수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다. 변호인 변론에서 변호인들은 박순경 교수가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학자로서 민족사의 정의를 대변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했다고 주장하면서 박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변론했다.

마지막으로 최후진술에 나선 박 교수는 모두진술에서 밝힌 통일신학과 통일운동의 정당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역설하였다. 아울러 연약한 몸으로 겪는 철창 속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 고통 속에서 ‘나는 홀로가 아니고’,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백을 함으로써 방청객의 심금을 울렸다.

1991년 11월 22일 선고공판에서 박순경 교수는 징역 1년6월, 자격정지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그날 저녁 9시경 서울구치소에서 구속 된지 106일 만에 석방되었다.

이 재판과 수형생활을 겪으면서 박순경 교수는 8.15 해방과 분단 이후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걸어온 고난과 희생의 길에 동참하고 민족통일운동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박순경 교수가 법정에서 제기한 신학적 과제는 이후 통일신학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예견되었던 박순경 교수의 구속 – 범민족대회와 동경회의

박순경 교수는 1991년 8월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로 서울지방경찰청 옥인동 대공분실로 소환되어 조사받고 8월 12일 구속영장이 떨어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경찰 조사 3주 만인 8월 29일 검찰로 송치되어 조사를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약 한 달간의 검찰 조사 끝에 9월 27일 기소되었고, 11월 1일 첫 재판이 열린 것이다.

사실상 박 교수의 구속은 연초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었다.

1991년 1월 23일 향린교회에서 계훈제, 이창복, 김희택, 김희선 등 60여명이 참석하여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결성대회’를 개최, 준비위원장에 문익환 목사, 부위원장에 계훈제, 윤영규, 박순경, 권종대, 김종식 등 5명을 선임하고, 홍근수 목사, 이창복 등 12명의 준비위원을 임명했다. 이 회의 직후에 정부당국은 이창복 집행위원장, 김희택 사무처장, 권형택 사무차장 등 실행간부들을 전격적으로 구속하고, 범민련준비위를 이적단체로 규정하여 일체의 활동을 불법화하였다. 문익환 위원장은 감옥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구속은 면했지만 부위원장, 준비위원과 더불어 일거수일투족 감시대상이 되었다. 준비위 부위원장 박순경 교수, 준비위원홍근수 목사, 김쾌상, 한충목 등은 결국 나중에 구속되었다.

이 회의는 1989년 1월 21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하 전민련) 창립 총회 결의에 의해 추진된 범민족대회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전민련은 연세대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3월 1일 남북 대표 각 10인씩 참여하는 ‘범민족대회 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을 판문점에서 가질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이 수락하여 전민련은 3월 1일 계훈제 박형규 상임고문과 박순경 학계대표 오충일 대표단장, 이재오 조국통일위원장 등 28명의 대표단을 판문점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이 예비회담은 경찰이 대표단을 고양군 벽제검문소에서 전원 연행함으로써 무산되었다. 그해 7월 북측이 이듬해 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를 열 것을 다시 제안했다.

1990년 8월 15일 판문점 범민족대회도 남한 당국의 저지로 남측대표의 참가가 좌절되었고, 북측과 해외대표만으로 판문점 북측구역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방북 중이던 소설가 황석영 씨가 참가하긴 했으나 남측대표로서 공식성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 대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중앙방송에서 이 대회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하 범민련)’ 결성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한 범추본 남측본부는 격론 끝에 이 결정을 수용하기로 하고, 그러나 그 결정사항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베를린에서 남,북, 해외 범추본 대표들의 3자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남측 대표로 조용술 목사, 이해학 목사, 조성우 평화연구소 대표를 파견했다. 1990년 11월 19일 베를린 시청에서 열린 베를린 3자회담에서는 “1995년을 통일 원년으로”라는 목표 하에 이를 추진할 민간차원의 상설적 통일운동체로서 범민련을 결성할 것과 남북 각각 범민련 지역본부를 건설할 것에 대해 최종 합의하였다. 베를린 3자회담 남측대표 3인은 11월 30일 귀국하자마자 김포공항에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합의한 범민련 결성은 예정대로 추진되었고, 이듬해 1월 23일의 향린교회 회의는 이 합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박순경 교수는 범추본 고문과 전민련 조국통일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90년 범민족대회 예비회의에 남측대표로 참석하려고 판문점으로 가다가 재야인사 27명과 함께 파주경찰서로 연행된 바 있었고, 이후에도 범추본 공동본부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꾸준히 통일운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후 공안정국으로 돌아선 노태우 정부가 90-91년 전민련과 범민련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구속할 당시에 이미 박순경 교수는 저들의 구속 대상에 올라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박순경 교수는 91년 8월 15일 서울에서 열기로 한 제2차 범민족대회에 남측본부 부위원장으로서 참가할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와 별도로 정부당국으로 하여금 박순경 교수의 구속을 결정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구속 한달 전 7월 8일에 동경에서 있었던 제2차 기독자 동경회의에서의 박순경 교수의 발언이었다.

 

금단을 깨고 통일신학의 지평을 넓히다

동경회의는 조승혁 목사와 박순경 교수 등 남측 인사 30여명과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홍동근 목사 등 해외 인사 30여명, 북한 조선기독교연맹 서기장 고기준 등 북측인사 4명 등 60여명이 모여 평화통일과 기독교 선교에 관해 논의하는 기독자들의 모임이었다. 여기에서 박순경 교수는 2일째 회의에서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제목의 주제강연을 했다.

이 발표에서 그는 한국의 서양 기독교 선교의 유산을 물려 받는 반공기독교가 반통일세력으로 기능하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민족해방, 민족통일의 길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의 주체사상에서 주장하는 인간개조론, 수령론 등도 민족복음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등 기존에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던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본격적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남한의 신학자로는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기독교사상과 주체사상의 대화 필요성’을 밝힌 것으로 교계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 교수는 이 강연의 동기에 대해서 1991년 12월 28일자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체사상을 언급한 것은 기독교 선교의 물꼬를 트기 위해 선교신학적 접근을 시도해 신학이 주체사상에 파고들지 않으면 기독교신앙과 선교가 북한에 뿌리내릴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체사상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의 ‘주체사상 찬양’ 주장은 어불성설이고, “수령은 유한하므로 역사에서 퇴진하게 될 상대적 존재이며, 영생하는 집단의 주체, 즉 비어 있는 자리는 인간수령 이상의 신적인 자리, 하나님의 자리라고 강연에서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강연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당시 동경회의에 함께 참석했던 보수적인 반공목사들과 공안당국에게는 박순경 교수가 ‘주체사상을 찬양했다’고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동경회의에 참석한 목사 중 15-6명이 검찰에서 박 교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그 중 몇 명은 박순경이 주체사상·수령찬양자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박 교수의 강연은 결국 박 교수의 구속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지만 어째든 금단의 영역을 깨고 통일신학의 지평을 넓혔고, 이후 통일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가톨릭신학대학 교수로서 신학생들과 함께 주체사상을 연구한 적이 있는 함세웅 신부는 박순경 교수의 강연을 읽은 소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저는 박 교수님의 동경 강연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분을 통해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얻은 것입니다. 참으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신선한 시각을 지닌 이러한 신학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희망입니다. 또한 이렇게 예리한, 그리고 용기있는 여성이 현존한다는 사실은 여성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이 가능하다는 여성해방적, 전인적 구원의 미래전망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1991년 10월 24일 ‘박순경 교수 석방을 위한 기도회와 촉구대회’에서 함세웅 신부의 강연)

 

필생의 과제를 세우다 – 기독교와 민족과 공산주의의 대화

박순경은 1923년 여주에서 한학자 박용선 선생과 어머니 조원 사이에서 4남5녀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박순경의 부친은 선비로 인품은 학자이지만 생활 능력이 없었으며, 둘째 오라버니가 집안 살림을 지탱하게 했다. 박순경은 부모를 따라 서울, 인천 등지로 이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생활형편 때문에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10살이 넘어서야 겨우 인천에서 성냥공장에 다니면서 무료야학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학원에 어머니가 데려다 주면, 순경은 엎드려 잠만 잤다. 1935년 경 12살 무렵에 원주로 이사 가서야 비로소 간이학원 (초등학교 과정) 4학년에 입학했고, 반에서 1등을 하면서 아버지의 친구인 한학자 학원장이 순경을 4학년으로 월반시켰다. 그리고 봉산국민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학하였다.

졸업하고, 상명실천 전수과 2년을 거쳐 1933년 세브란스고등간호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 3학년 때 박순경은 친구 김옥선과 함께 1944년 좌파 민족운동가들을 만났다. 이 때 몽양 여운형 선생의 연설을 듣고 큰 감명을 받고, 용기를 내서 친구와 함께 혜화동 몽양의 집에 직접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당시 친구 김옥선의 오빠가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가였는데, 그 오빠가 앓아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의주까지 가서 약병을 전하고 오기도 했다.

1945년 8.15 해방이 되자 간호학교 시절에 만난 민족운동가들의 영향으로 박순경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건준)과 인민공화국(인공)을 지지하였고, 해방공간에서는 여운형과 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항일독립의식과 함께 공산주의 운동이 깊이 의식 속에 남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에 어린 나이로 기독교와 민족과 공산주의와의 대화라는 필생의 과제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1945년 봄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간 사이에 서울역에서 안국동까지 걸어서 한글학당에 다녔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어머니와 아머지가 몇 달 사이에 작고하니, 박순경은 인생무상과 허무감에 빠졌다. 그래도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우선 한글학원을 택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충격에다 끼니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무리하게 공부하던 박순경은 결국 허무감과 늑막염으로 쓰러졌다. 마산의 둘째 오빠 집에서 요양 중 병석에서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을 묵상하다가 불현듯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고 허무의식을 극복하고, 신학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하게 된다.

1946년 둘째 오빠의 도움으로 서울 감리교신학교 전수과에 입학했는데, 3년제 본과와 통합되어 1948년 졸업했다. 감리교신학교에 다닐 때에는 어느 정당에서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서 박순경은 여운형계를 지지한다고 손을 들었다가, 하나님 동산에 붉은 마귀가 들어왔다고 학교에서 쫓겨날 뻔 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교수 한 분과 몇 명의 학생이 옹호해줘서 간신히 퇴학을 면했다. 1948년 봄 당시의 학제에 따라 박순경은 편입시험을 보고 서울대 철학과 2학년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신학에 몰두하였다.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에 심취하여 감신대 동기생들인 허혁, 이영빈과 칼 바르트 저작을 번역하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박순경에게 민족 수난의 역사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기회가 되었다. 6.25 발발 당시에는 서울에 남아 있다가 연합군이 서울에 진주하여 비로소 거리에 나왔다가 서울대 병원 뒤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체들을 보았다.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들과 피난민들의 처참한 모습들을 보면서 박순경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1951년 피난처 부산에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4년 정도 성신여고와 정신여고에서 영어와 독일어 교사로 봉직하였다. 그러나 박순경은 신학 공부의 꿈과 젊은 시절 세웠던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1955년 말 교사생활을 접고 미국 유학 길에 오른다.

1956년 초 에모리대학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여 1958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드류대학 박사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지만 1년간 뉴욕 유니온신학교 에큐메니칼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1960년부터 드류대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고, 1966년에 철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여성으로서 조직신학을 전공한 한국 최초의 여성박사였다. 드류대학 시절 유니온신학교에 유학 중이었던 박형규 목사와 서광선 목사를 만났고, 이들의 도움으로 박순경은 1966년 귀국하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이후 박순경은 이화대학에서 1988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봉직하였으며, 1988-90년 까지 대전 목원대학 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던 중 통일운동으로 1991년 구속되었다. 목원대학은 박순경을 즉각 해임하였다.

 

칼 바르트와 작별하고 한국신학으로 전환하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자 박순경은 ‘아이쿠! 내가 민족통일문제를 진작 취급했어야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8.15 해방과 좌우이념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3년간의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 당시 서울 시내에 나뒹굴던 시체들과 피난민의 참상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잠에서 깨어나듯이’ 이제까지 숙제로 남겨뒀던 민족통일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이화대학에서 1974년부터 2년간 안식년 연구교수로 유럽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974년 박순경은 민족문제 연구에 앞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만남’이라는 과제를 세우고 이념문제를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칼 바르트의 고장 바젤 대학을 찾았다. 그 다음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튀빙겐대학으로 갔다. 거기에서 초기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을 비롯해 많은 책들을 읽고 그들의 사상을 탐구했다.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마르크스 사상과 연관된 역사철학을 공부했다. 칼 바르트 신학을 비롯해서 그 계통의 1960년대 신좌파 운동의 대변자 헬무트 골비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이 2년간의 유럽에서의 공부 과정에서 박순경은 일찍부터 직관적으로 생각해왔던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만남’ 가능성을 재삼 확인했고, 그래서 이후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쌍둥이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 유럽 유학과정에서 박순경은 서양신학에서 한국 신학에로의 전환이라는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1975년 독일 동아시아 선교부가 주최한 ‘독일-한국 세미나’에서 강연하면서 박순경은 한국 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민족분단과 통일문제를 한국 신학의 주제로 발표했다.

1975년 바젤에서 박순경은 바젤에서 유학 중이던 변선환 교수와 함께 칼 바르트 무덤에 찾아가 큰 절을 올리고, “이제는 끝입니다”라고 인사를 고한 사실이 한 때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박순경은 단지 (옛 스승에 대한) 고별인사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하지 말기를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어쨌든 서양신학 에서 한민족의 신학, 한국 신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귀국해서 이화대학으로 복귀한 후 박순경은 한편으로 민족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사가들의 저작을 탐독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교회와 신학자들의 모임에서 통일문제 강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반공기독교를 비판하고 민족통일의 과제를 제시하는 통일신학의 글들도 연이어 발표했다. 귀국 후에 박순경은 남미 해방신학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였다. 그래서 1981년부터 제3세계 에큐메니칼 신학자협의회(EATWOT) 한국연락책임자를 맡고, EATWOT에서 발행하는 『Voices』라는 잡지의 편집위원을 역임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는 여성신학을 개척하는 역할도 담당하여 1980년에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창립회장으로 선출되어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강단의 신학자에서 통일운동가로 – 6월항쟁과 조성만 열사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박순경을 서양신학에서 한국신학에로의 전환의 계기였다면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박순경은 민주주의 투쟁과 통일운동을 정치신학•통일신학의 주제로 설정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강화하게 하였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죽고, 6월민주항쟁이 활화산처럼 터지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박순경도 내가 민족사의 현장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6월항쟁 기간 동안에 이대 제자들이 학교 광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이대 정문 앞을 지나 신촌로터리로 향하면 박순경도 남몰래 그 뒤를 따라 시위대열에 합류하여 거리를 쏘다니곤 했다. 최루탄도 맞고, 거리의 군중들과 함께 경찰에 쫓겨 다니기도 했다. 언젠가는 전투경찰들이 이대 캠퍼스 안까지 들어와 학생들이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박순경은 쫓아가 울고 소리치며 연행을 막은 적도 있었으며 수배당한 학생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기도 하였다. 연세대에서 이한열 열사가 장례식이 있던 날은 감옥에서 막 나와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문익환 목사가 장례식에서 열사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시청 앞까지 행진해 갈 때는 박순경도 신촌로터리부터 내내 눈물을 흘리며 그 뒤를 따라 갔다.

88년 이대 교수 은퇴를 며칠 앞둔 시점에 박순경의 영혼을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5월 15일 명동성당 문화관 옥상에서 서울대생 조성만 열사가 남북공동올림픽 개최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5월 18일 이화대학 대강당, 은퇴를 앞둔 박순경의 마지막 채플 설교는 조성만 열사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자가 흐느껴 우는 바람에 학생들도 따라 울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은퇴설교의 일부분이다.

모든 피조물의 진통을 우리는 분단된 민족사회에서 체험하며, 더 구체화시키자면 5.18 피눈물 나는 광주사건에서 , 또한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부터 투신 살신(殺身)한 조성만군의 기막히는 사건에서 체험한다. 이 밖의 많은 사건들이 새로운 통일된 민족사회의 탄생을 외치는 소리들이다

은퇴 무렵에 이대 출신 여학생 한 사람이 찾아와 평화연구소 고문으로 참여해 주십사는 조성우 소장의 말을 전하고 간다. 그 여학생도 자기 학교 교수 중에 통일문제에 너무나 열심인 분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고 조성우 소장에게 소개했고, 조성우 소장도 너무나 뜻밖이고 놀라와 바로 그 여학생을 박순경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통일신학자, 조직신학자로서 학계에서는 이름을 날리던 박순경이지만 통일운동 진영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박순경은 조성우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했고, 조성우는 박순경을 자신이 관여하고 있던 전민련 통일위원회 위원,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학계대표 등으로 추천했다. 이 때를 계기로 박순경은 통일운동 일선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통일신학자, 박순경

감옥에서 나온지 1년쯤 지난 1992년 11월 12일, 박순경은 그동안 걸어온 고난의 체험과 통일신학의 논문들을 한울출판사에서 두 권의 책으로 펴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와 『통일신학의 여정』이 그것이다. 이 출판기념회 소식을 듣고 옥중에 있던 문익환 목사가 무려 7차례에 걸쳐 연속해서 편지를 보내 축하와 함께 박순경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울러 박순경의 통일신학이 화해의 신학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책을 읽고 난 감동을 문 목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심도 있게 본격적으로 다룬 신학이 울창한 한 그루 상수리 나무로 자란 것을 보면서, 축하를 받아야 할 것은 한국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새 한국교회도 이만큼 자랐다는 것, 이만큼 깊어졌다는 게 그리도 자랑스럽군요.

박순경을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곱고 단아한 모습에 감탄하면서,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 험난한 학문의 길을, 그리고 투옥까지 겪는 통일운동의 길을 걸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 고운 자태 속에 숨어 있는 뜨거운 열정과 강인한 기백을 발견하면서 놀라곤 한다. 1962년 미국에서 박순경을 만난 박형규 목사에게도 그런 인상이 강력했던 것 같다. 1991년 8월 “박순경 교수 석방을 위한 기도회‘에서 ’내가 아는 박순경‘이라는 연설에서 박 목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박순경 박사 방에 가서 커피도 한 잔 대접 받고 빵도 얻어 먹었는데…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여잔가, 남잔가? 얼굴은 분명히 여잔데. 그분의 사는 방식은 남자로 하여금 굴복하게 만드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보통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는 남자를 상상하는데, 예컨대 예레미야, 이사야, 엘리야 같은 사람을 상상하는데, 내가 박순경 박사를 딱 보고는 ‘아! 여자도 하나님에게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구나’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순경이 8순이 될 때까지도 설악산, 지리산, 관악산을 등산하고, 그 과정에서 5차례나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71년 이대 기독교학과에 입학하면서 박순경을 만나 지금까지 스승으로, 어머니로 모시고 살고 있는 한신대 신학과 김애영 교수의 회고담이다.

내가 한신대 대학원에 다니던 1978년 가을 어느 날 연락이 오기를 당신이 이대 동료교수등과 내설악을 등반하던 중 마등령 정상에서 오른쪽 다리 골절을 당해 앰블런스로 이대병원에 이송되어왔는데, 내일 수술을 해야 하니 와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로 짐을 싸들고 병원에서 선생님을 간호하기 시작했다. 퇴원 후에도 선생님 댁에서 몇개월를 간병했는데, 그 때 선생님과 밤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제가 막연하게 느끼던 삶에 대한 회의와 방황을 모두 털어버리고, 일생을 바쳐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을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원초 박순경 박사 팔순기념문집 『과거를 되살려내는 사람들과 더불어』, 2003, ㈜사계절출판사)

범민련 사건으로 감옥을 살고 나온 이후에도 박순경 교수의 통일운동 행보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1994년부터 6년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공동의장을 역임하였고, 이후에도 통일연대 명예대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2009년 6월에는 (사)통일맞이에서 수여하는 ‘늦봄 통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순경 교수는 올해 만 95세로 방배동 자택에서 박 교수의 저 구속사건이 계기가 되어 1991년 이래로 제자 한신대 신학과 김애영 교수와 함께 살고 있다. 2014년 11월 박순경 교수는 92세의 나이로 710페이지에 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제1권 구약편』를 탈고하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인지 그 해 12월 빙판에서 낙상하여 척추압박골절로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지금까지 잘 걷지 못한다. 또 2015년에는 대상포진이 발병하여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순경 교수는 굴하지 않고 집필계획대로 제2권 신약편의 총서론을 쓰고 있는 중이다. 제3권 성령편은 제자 김애영 교수의 몫으로 남겨두었는데, 박 교수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계획들이 다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박순경 교수는 지금도 민족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쉼 없이 기도하고 있다.

 

공동선, 2018년 1-2월호 138호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수, 2019/02/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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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 이름 참 깁니다. ^^

줄여서 '수미네'라고 하지요.

 

지난해 말부터 화성행궁 광장앞에 지어지는

수원시 최초의 공공미술관 명칭을 공공미술관 답게 제정하자는

의미있는 주장을 해왔으나....

이름은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서 한글자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수원시의회에서 관련 조례를 통과시킬 때

분명히 '조속한 시일내에 현대산업개발과 명칭협의를 하라'는 조건이 있었는데

당췌 진행되는게 없네요.

 

날도 더운데 열불나지만!!!

 

시원한 맥주한잔과 그동안 수미네 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활동영상을

함께 보면서 더 재미난 작당모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이쿠,

벌써 오마이뉴스 기사도 나왔네요. ^^

 

[오마이뉴스] 수미네가 맥주파티와 '작당 모의'를 하는 이유는?

 

8월 7일 금요일, 저녁 7시

문화상회 다담에서

단돈 만원에 모십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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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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