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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미확인) | 금, 2017/04/28- 09:48

사랑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다.  – 앤 해서웨이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세계의 정치인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트뤼도 총리는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토론토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벤쿠버 자긍심 행진에는 온 가족이 함께하기도 했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가 토론토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2016년 7월 3일, 토론토 자긍심 행진에 참여한 트뤼도 총리 마음까지 훈훈 ⓒXinhua/Zou Zheng

연대하는 것은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매년 퀴어퍼레이드 부스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전 대사는 부채춤을 추는 인파를 뚫고 퀴어퍼레이드 부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2016년 퀴어퍼레이드 부스 행사에 참여한 대사관
주한 미국 대사관, 주한 캐나다 대사관, 주한 호주 대사관,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주한 영국 대사관, 주한 아일랜드 대사관, 주한 프랑스 대사관, 주한 벨기에 대사관, 주한 유럽연합 대표부, 주한 독일 대사관, 주한 덴마크 대사관,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 주한 스웨덴 대사관, 주한 핀란드 대사관

 
페크톨드와 쿨미스 네덜란드 민주66당 의원

네덜란드의 한 게이 커플이 괴한에게 공격받자, 이에 분개한 남성들이 손을 잡기 시작했다. 민주66당 당대표인 알렉산더 페크톨드(Alexander Pechtold)와 우터 쿨스미스(Wouter Koolmees)의원이 손을 잡고 국회에 출근했다.

네덜란드 민주66당 당대표와 의원이 손을 잡고 출근하고 있다.

페크톨드(좌)와 쿨미스(우) 의원, 2017년 4월 3일 네덜란드 헤이그 ⓒEPA/LEX VAN LIESHOUT

 

이어 오스트리아 국회의원들도 손을 잡았다.


연대합니다! 동성애혐오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어디에서도 설 곳이 없습니다!

 
뉴욕 UN 주재 네덜란드 대표부도 연대의 의미로 손을 잡았다.


유엔 네덜란드 대표부 남성 직원들이 LGBTI를 겨냥한 폭력에 반대하며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전 아이슬란드 총리

요한나(Jóhanna Sigurðardóttir) 전 총리는 재임 중 아이슬란드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파트너와 결혼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동성결혼 1호 커플이자, 전 세계에서 재임 중 동성 파트너와 결혼한 첫 지도자이다.

아이슬란드 전 총리가 회의에 참석했다.

 

사비에르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사비에르 베텔(Xavier Bettel) 총리는 2015년 1월 룩셈부르크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같은 해 5월 결혼을 발표했다.

룩셈부르크 총리와 파트너가 결혼을 발표하며 손을 잡았다.

총리 사비에르 베텔(우)과 훈남 건축가 고티에르 데스테네이(좌)가 결혼발표를 하고 있다. ⓒEPA/JULIEN WARNAND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윌리엄 영국 왕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미국 게이 잡지 표지 모델로, 윌리엄 왕자는 영국 게이 잡지 표지 모델로 나섰다.

 

백악관

정치인은 아니지만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내리고 미국 전역에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로 미국 전역에 LGBTI 권리 보장을 지지하는 물결이 일었다. 이날 밤 백악관도 외벽에 무지개색 조명을 밝혀 역사적인 판결을 축하했다.

백악관에 레인보우 조명을 입혔다.

레인보우 조명받은 백악관 ⓒEPA/MICHAEL REYNOLDS

힐러리 클린턴과 앤드루 쿠오모 뉴욕시장

2016년 6월 26일, 힐러리 클린턴(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뉴욕 시장인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와 뉴욕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힐러리 클링턴이 뉴욕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뉴욕 자긍심 행진 참가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힐러리 클린턴(우)와 뉴욕 시장 앤드루 쿠오모(좌) ⓒEPA/PETER FOLEY

 

그리고

트럼프

트럼프가 LGBTs for Trump라고 쓰인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트럼프도 어쨌거나 무지개 깃발을 펼쳤다.. 할많하않..

 

#LoveWins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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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23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중 하나로 노동권을 명시하고 있다. 노동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적절한 수준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과연 북한 사람들은 세계인권선언에 규정된 노동권을 어느 정도 누리고 있을까?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볼 때, 북한에서는 세계인권선언 제23조에 언급된 내용 중 어느 것도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실 – 불합리와 모순의 공존

 

북한 백두산 부근 관광시설 공사 현장

북한 백두산 부근 관광시설 공사 현장

북한 사람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4년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 COICommission of Inquiry, 조사위원회보고서를 비롯한 국내외 수많은 북한인권 연구 자료는 북한 내 노동과 관련한 수많은 인권 문제를 언급해왔다. 2018년 북한의 현대판 노예제Modern Slavery에 관해 조사한 한 연구기관 보고서는 “북한 내에는 국가에 의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강제노동이 만연해 있으며 주민 10명 중 1명이 사실상 노예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처럼, 북한 내 노동 환경은 열악한 수준을 넘어 노예 생활과 비견될 정도로 비참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가 수없이 혼재된 북한이기에 노동권 문제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참혹성의 측면에서 다른 인권 문제보다 상대적으로 덜할 수밖에 없어 ‘보통의’ 인권 문제 중 하나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북한 내 자유권 문제가 워낙 심각한 수준이다 보니 국제사회의 이목도 상당 부분 그쪽으로 쏠려 있어 노동권과 같은 사회권은 상대적으로 적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북한도 법률상으로는 주민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법이 노동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와 관련한 법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노동자의 복리후생과 관련하여,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25조는“세금이 없어진 우리 나라에서 늘어나는 사회의 물질적부는 전적으로 근로자들의 복리증진에 돌려진다. 국가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수 있는 온갖 조건을 마련하여준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제30조는 “근로자들의 하루로동시간은 8시간이다.”라고 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회주의로동법’ 제5조는 “사회주의하에서 모든 근로자들은 로동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세부 내용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실업이 ‘영원히’ 없어졌으며 근로자들은 ‘희망과 재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며 국가로부터 안정된 일자리와 로동조건을 보장’받는다. 이어, 제12조는 “국가는 근로자들이 로동과정에서 소모한 힘을 회복할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며 전반적 무상치료제와 선진적인 로동보호제도를 통하여 근로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한다.”고 규정하며 건강권과 관련한 개념을 노동자의 권리에 포함해 놓았다. 또한, 제38조는 “국가기관, 기업소, 사회협동단체는 국가가 제정한 생활비등급제와 생활비지불원칙에 립각하여 로동자, 사무원, 협동조합원들에게 생활비를 정확히 지불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놓음으로써 정해진 기준에 따른 임금지급을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로동보호법’ 내 다수의 조항에서 노동자들이 가지는 다양한 권리를 규정하며 국가 및 관련 기관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법률상으로 북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적절한 수준의 노동권을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함이 틀림없다.

 

기형적 노동 환경과 삶

 

공사 현장으로 향하는 북한 노동자

공사 현장으로 향하는 북한 노동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한국지부’는 비교적 최근 한국에 정착한 탈북인 수십 명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북한 내 노동 환경 실태에 관한 증언을 상당량 수집할 수 있었다. 탈북인이 꼽은 열악한 북한의 노동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먼저, 북한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다. 북한 사람은 중등교육초급·고급중학교을 마치면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군에 입대하지 않을 경우 일반적으로 국가에 의해 직장에 배치된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취업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다. 국가에 의해 개인의 진로가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만연한 뇌물 문화로 인해 일정 수준의 뇌물을 간부에게 바치거나 인맥을 이용하면 제한적으로 자신이 희망하는 직장에 배치 받을 수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만을 놓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존재한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음으로, 무임금 노동을 들 수 있다. 북한의 노동자는 국가가 배치한 직장에서 일하지만,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군·당·행정기관의 간부나 평양에 거주하는 일부 선택받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직장에 다녀도 임금을 받지 못하기에 스스로 먹고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심지어 학생들조차 수업을 제치고 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한국지부는 최근 실시한 탈북인과의 면담을 통해 북한 내부에 일상화된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직업 선택의 제한과 무임금 노동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을 수집할 수 있었다. 탈북인 A 씨, B 씨, C 씨, D 씨 모두 2019년 이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탈북인 A 씨는 20대로 김정은이 집권할 무렵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국가에서 배치한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전혀 받지 못했다며 최근 북한 노동자가 마주하는 현실을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학교 졸업하고 oo회사에 배치되었다. 거기서 한 3년 일했다. 월급이든 배급이든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일하면서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북한은 그런 게 없다. 공짜로 일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일했다.

– 탈북인 A 씨

50대 탈북인 B 씨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정권을 모두 거치며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B 씨 역시 직장을 배치받고 일을 했으나 김정일이 집권하고 나서부터는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처음에는 oo공장에 다녔다. 여기서 한 5~6년 일했다. 김일성이 죽고 나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에는 로임을 받았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못 받았다. 그 전에는 배급도 나오고 로임도 나왔는데 김정일, 김정은 때는 직장을 다녀도 돈을 안 줬다.

– 탈북인 B 씨

한국에 정착한 지 1년이 갓 넘은 탈북인 C 씨 또한 자신이 배치받은 직장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직장 생활을 바탕으로 북한의 무임금 노동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북한과 한국은 매우 다르다. 북한에는 월급이 없다. 직장 다니는 사람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돈을 직장에 바쳐야 한다. 어느 직장이든 돈을 안 내라고 하는 곳이 없다. 북한에서는 직장에 명단이 올라가 있지 않거나 출근을 하지 않는 자는 벌을 준다.

– 탈북인 C 씨

탈북인 D 씨는 2020년 이후 한국에 입국했다. D 씨는 북한의 노동 환경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일 년 내내 직장을 나가도 쌀 한 톨도 안 준다. 배급은 1995년도 이후 없어진 지 오래고 월급도 없다. 배급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당기관, 법기관 등 힘 있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반 공장·기업소 다니는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1년 동안 꼬박꼬박 직장 출근해도 쌀 한 톨도 못 탄다.

– 탈북인 D 씨

앞서 탈북인 B 씨의 증언에서도 언급된 것과 같이 북한이 애초부터 노동자에게 임금이나 배급을 지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며 소련의 붕괴와 지도자 김일성의 사망, 그리고 ‘고난의 행군’으로 잘 알려진 대기근이 발생하는 등 나라 안팎으로 큰 위기가 연이어 닥쳤다. 사회 전 영역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나 국가는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사실상 국가 운영이 마비된 것이다. 탈북인 A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1970년대 까지는 배급도 주고 로임도 나오고 상점에도 사탕이 넘쳐날 정도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김일성 죽고 나서 고난의 행군으로 들어가면서 어려워졌다. 내가 그 시기에는 학교 다닐 나이였지만, 학교도 못 다녔다. 쌀도 없고 농사지을 것도 없고, 나라에서 주는 것도 없다 보니 쑥떡 같은 거 먹고 살았다. 잣나무 껍질을 벗긴 후 삶아서 우려낸 다음 다른 것과 섞어서 떡 만들어 먹고는 했다. 그 시기부터 북한 사람들이 타격받았다. 일하기 싫어하거나 게으른 사람들은 그때 다 굶어 죽었다고 보면 된다.

– 탈북인 A 씨

탈북인 B 씨는 본래 노동자였지만 배급을 더 이상 받지 못해 배고픔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까 싶어 어쩔 수 없이 농장원으로 자원했던 경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농장에서 일반 직장 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직장에서 농장 가는 것은 수월하다. 농장원은 대를 이어 일해야 한다. 농장원으로 일하는 것은 직장 다니는 것 보다 훨씬 힘들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때는 농장에서 일하면 일단 먹을 수는 있으니까 직장을 포기하고 농장원으로 일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배급을 해 주지 않아서 사람들 다 굶어 죽곤 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미공급’이라고도 한다.

– 탈북인 B 씨

이제는 나라에서 배치해 준 직장에서 일해도 제대로 된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다. 물자 부족으로 공장과 회사가 돌아가지 않아도,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일은 나가야 한다. 나가서 할 일 없이 앉아서 시간을 때워도, 다른 노동 현장에 동원되어 나가도 출근은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의욕 저하를 불러온다. 출근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편법도 생겨났다. 몇몇 노동자들은 직장에 돈을 상납하고 회사에 이름만 걸어 놓는다. 출근하지 않는 기간에는 장사나 소토지 경작 등 다른 경제활동을 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이들을 ‘8·3노동자’라고 부른다. 북한의 기형적인 노동 환경이 낳은 결과물이다. 탈북인 C 씨는 다니던 직장에 돈을 바치고 직장을 나가는 것으로 위장한 후 그 기간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러 다니는 행위를 의미하는 ‘8·3벌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그래서 최근 북한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제일 이상적인 직업으로 생각하는 게 ‘벌이조’8·3노동자 등 8·3벌이를 하는 자를 통칭이다. 당조선로동당 간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소수의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 되기 힘들다. 벌이조는 직장에 이름을 걸어 놓으면 직장에서 1년 동안 아예 상관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북한에서는 60세 이하의 남자들이나 결혼하기 전 청년들이 직장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노동단련대로 보내 벌을 준다. 그러나 직장에 이름을 걸어 놓으면 나라에서 찾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직장 지배인과 협의해서 중국 돈으로 700원을 내고 내 이름을 oo공장에 올리면 직장에는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1년 동안 출근을 안 하고 놀아도 되는 거다. 그 기간에는 놀거나 자기가 원하는 돈벌이를 하면 된다. 그래서 벌이조라고 하는 것이다.

– 탈북인 C 씨

나라에서 배치해 주는 직장에서 일해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상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무임금 강제노동이다. 탈북인 A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경험한 노동자의 삶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건 거기서 농사를 따로 짓고 살아야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 받아서 농사짓고 그랬다. 보통 직장 반장보고 며칠간 시간 좀 달라는 식으로 부탁한다. 반장도 우리 다 농사지어 먹고 사는 거 아니까 서로 교대제로, 오늘은 내가, 내일은 다른 사람이 소토지 일을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직장에서 배급을 못 주다 보니 그렇게라도 해줘야 한다. 무슨, 안 그래도 공짜로 일하는데… 나라에서 일하라니까 그러지, 일 안 하면 단련대 쳐 넣으니까, 시끄러워지니까 일을 형식상으로라도 하는 것이다.

– 탈북인 A 씨

 

벗어날 수 없는 노동 착취의 굴레

 

2020년 여름 함경남·북도에서 수해복구전을 벌인 북한 수도당원사단

2020년 여름 함경남·북도에서 수해복구전을 벌인 북한 수도당원사단

비단 일반적인 직장에서만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북한 당국은 자발적 지원이라는 형태를 빙자해 다양한 형태의 비자발적 노동 조직을 구성해 노동 착취를 자행해왔다. 그 중 ‘돌격대’는 외부에도 잘 알려진 노력동원 조직으로서 국가적 건설사업에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식 편재의 노동 조직을 말한다. 돌격대는 ‘반군사’라고 불리기도 하는 정규 돌격대와 비정규 돌격대로 나뉜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노동 조직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강제적으로 조직, 동원된다. 탈북인 D 씨는 돌격대 차출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편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삼지연 건설현장 돌격대’ 인원이 석 달에 한 번씩 교대한다고 하면 나라에서 각 기업소마다 몇 명씩 차출할 인원을 할당한다. 내가 기업소에서 일하는데 내 순번이 되면 돌격대에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한다. 그런데 내가 돈이 좀 있거나 잘 산다고 하면 나 대신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사서 돌격대로 넣는다. 그 사람은 석 달 동안 나 대신 돌격대에 가서 시키는 일을 한다.

– 탈북인 D 씨

최근의 노동력 동원의 예로는 2020년 여름 함경남·북도에서 발생한 수해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평양에서 조직된 ‘수도당원사단’을 들 수 있다. 북한의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이 평양의 당원에게 물난리를 복구하기 위한 인력이 절실하다는 내용이 담긴 공개서한을 공개한 이후 수해 복구 지원에 동참하겠다고 자원한 인력만도 무려 7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간 북한 당국의 행적을 고려할 때 이번 동원이 순수하게 자원 인력으로만 채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문제는 국가에 의해 추진되는 강제적 성격의 노력동원에서 노동권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상 지역으로 파견된 노동자는 몇 주에서 몇 개월에 이르는 기간 일해도 실질적으로 주어지는 임금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파견 기간 소요되는 식량이나 비용을 노동자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일하다가 부상을 당해도 이에 대한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외에도 동원 기간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현대판 노예제’나 다름없는 것이다. 탈북인 D 씨는 돌격대에 동원된 사람들의 모습과 관련해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다른 지역으로 돌격대를 나간다고 하면 자기 집에서 쌀을 매고 가야 돌격대에서 일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어 일하러 가는데 자기 식량도 챙겨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 석 달씩 간다. 그래서 돌격대에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지만 잡아다가 때리고 다시 보내고 그런다. 최근에는 김정은이 삼지연을 자기 아버지인 김정일의 고향군으로 만들겠다고 하면서 평양, 사리원 이런 곳을 포함해서 전국 각지에서 돌격대가 다 와서 일한다. 돌격대는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아이 엄마 할 것 없이 다 포함된다.

– 탈북인 D 씨

 

개인보다 국가를 위한 노동

 

수해 복구 나선 북한 주민들

수해 복구 나선 북한 주민들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헌법과 노동법 등 성문화된 법령으로서 노동권 보장에 관한 내용이 규정되어 있으나 이는 명목상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은 그 사회를 경험한 수많은 탈북인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현실 속 노동자의 권리는 국가에 의해 무시되기 일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이 지난 수십 년간 강조해 온 ‘사회주의노동생활’의 핵심은 결국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는 집단주의 노동’과 같은 사회·집단·국가 우선의 전체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개인의 인권은 주요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시기에 정착한 탈북인의 증언을 비교하며 알 수 있는 점은, 노동자에 대한 처우나 인권 수준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지기는커녕 정체되거나 오히려 전보다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면담에 참여한 탈북인은 북한의 노동권에 대해 서로가 거의 일치하는 증언을 했다.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의 노동권은 법률로써 규정된 바와 달리 현실에서는 철저히 무시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거나 적극적으로 실현할 의지가 없다.”

외부에 알려진 북한의 노동 환경을 놓고 볼 때 여느 국가와 달리 겉으로 보이는 고용률이 높다고, 또는 실업률이 낮다고 해서 결코 그것이 북한 내 노동환경의 건전성이나 주민들의 질 높은 삶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을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질 노동 시간, 보상 수준, 직업 선택의 자유, 강제 노동 여부, 휴식권과 같은 내용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노동 환경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인권 보장의 의무를 진 의무 부담자로서의 북한 당국이 가지고 있는 노동권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자발적인 인식 및 태도 변화를 당장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폐쇄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북한을 대상으로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상 많지 않다. 국제사회가 취할 수 방안 중 현실적인 것으로는 적극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북한 당국에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개선 권고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것이다.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 인권침해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다뤄질 수 있었던 것처럼, 북한 내 노동자의 권리 역시 국제사회에서 더 깊이 있게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수, 2021/02/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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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활동가 메흘랍 자밀(좌)과 나이로비 카스티요(우)의 모습

트랜스젠더 활동가 메흘랍 자밀(좌)과 나이로비 카스티요(우)의 모습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기념해 국제앰네스티는 도미니카공화국과 파키스탄 출신의 활동가 2인에게 그간 마주했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했습니다.

나이로비 카스티요는 도미니카 트랜스젠더와 트랜스베스타이트 성노동자 커뮤니티COTRAVETD의 이사장입니다. 2004년 이 단체를 설립한 공동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메흘랍 자밀은 연구자이자 지역사회 교육자로, 파키스탄의 역사적인 트랜스젠더법(2018) 초안 마련을 도운 인물입니다. 이 법은 관련법 중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연대가 가져오는 막대한 위안과 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성장 환경은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나이로비저는 정말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가족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가족들은 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저를 내쫓았습니다. 저는 산토 도밍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향정신성 물질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랜스여성이 되기까지의 전환 과정은 매우 힘겨웠습니다.

메흘랍저는 펀자브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도심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운영하고 파키스탄의 젠더 및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HOPE(‘긍정적인 기대만 가져라’)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분법에 반대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전복을 모의하며 차이chai를 아주 많이 마시는 것이 제 일상입니다. 그냥 평범해요.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나이로비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여자 옷을 입는다며 “게이 자식faggot”이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선택지가 없어 생계를 위해 성노동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제도권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주 없이 혼자서 일을 시작했지만 다들 그렇듯이 많은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매일같이 경찰의 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은 저를 폭행하고, 제 돈을 빼앗고, 그들과의 구강 섹스를 강요했습니다. 옷을 벗으면 그동안 당해온 부당대우로 인해 생긴 흉터가 모두 드러납니다. 각 흉터가 생긴 날짜와 시간까지도 정확히 말할 수 있어요.

 

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이로비 카스티요, 도미니카 트랜스젠더 및 트랜즈베스타이트 성노동자 커뮤니티COTRAVETD 이사장

 

메흘랍트랜스젠더, 그 중에서도 특히 저희 지역 출신 사람들은 언제나 불운한 희생자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억압당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알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억압하는 제도에 맞서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폭력을 매일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 우리의 방식대로 발언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합니다.

 
현재의 상황에 저항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나이로비활동가가 된 때 저는 29세였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연합여성운동Movement of United Women이라는 단체가 폭력이나 체포, HIV로 고통받는 여성 성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이런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희 지역에는 트랜스젠더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성노동자의 요구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노동자 단체를 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그렇게 2004년 COTRAVETD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메흘랍하루에도 그런 순간들을 몇 번이나 겪는 것 같아요.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조직적인 활동은 동떨어지고 개인주의적인 인권 프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의 말처럼, 집단 속에서 우리는 희망과 낙관이 잠든 저수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나이로비COTRAVETD을 이끈 것입니다. 저희는 어린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군과 경찰의 트랜스젠더 인권침해 중단을 위한 인식 제고 및 교육 워크샵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약을 복용하는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였던 제가 이 단체의 대표가 되고 약물 남용을 극복하기도 했다는 것이 큰 성과입니다.

 

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메흘랍 자밀, 조사관 겸 지역사회 교육자

 

메흘랍저는 제가 이룬 것보다 제가 하지 못한 일들에 더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 트랜스젠더 의제를 우익 정부에 이해시키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제 존재 자체와 인간성을 끊임없이 말살하는 사회에 안주하지 못한 것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제 실패를 통해, 제가 살아남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 사회의 폭력성과 제가 저항하려는 폭력을 지지하는 구조에 대해 매일 새롭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나이로비도미니카공화국 공문서에 우리의 이름과 성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성 정체성 법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메흘랍씨, 당신은 이 멋진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었나요?

메흘랍모두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트랜스젠더 법은 무엇보다도 성 정체성과 표현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인정합니다. 변호사, 활동가, 연구자들로 구성된 저희 팀은 이 법안이 의회에 제출될 때 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폭력에 취약한 성소수자 사회의 요구를 특히 대표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입법 절차는 아시다시피 매우 배타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기 때문에 장벽을 허물고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경찰의 만행과 범죄조직의 폭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용감한 트랜스젠더 전사들이 있었기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세계의 트랜스젠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로비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의사 결정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가 직접 선택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스스로 힘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메흘랍우리는 온몸 구석구석에 사회의 수치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몸으로 태어나 우리의 신체에 대해 직접 결정할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폭력과 삭제, 증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우니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지는 맙시다.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친절해지고 서로 보살피는 문화를 만들어나갑시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다 같이 행동합시다.

미래에 대한 가장 큰 꿈은 무엇인가요?

나이로비제 꿈은 우리나라에서 젠더 정체성 법이 통과되고, 고령이거나 갈 곳이 없는 트랜스젠더들과 HIV에 감염돼 가족들에게 거부당한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들이 더 이상 성 노동자가 될 필요가 없도록 다른 고용 기회들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 꿈입니다.

메흘랍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랜스젠더 자매가 지구 반대편에서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입니다. 서로의 투쟁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다국적 연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선 자매애를 통해 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고 있습니다. 당신의 활동 이야기를 듣고 매우 큰 영감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해요. 당신은 지역사회의 희망의 빛입니다.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더욱 큰 힘이 되기를!

이 글은 TIME에 먼저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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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3/3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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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저번 글에 이어 2명의 탈북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북한 사람들이 누리는 건강권과 보건의료 개선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권적 측면에서의 고찰이 필요하다. 북한 보건의료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면 과거와 비교해 봤을 때 제도적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제도의 틈을 비집고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이번 글에서는 저번 글에 이어 2명의 탈북 보건의료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북한 사람들이 누리는 건강권과 보건의료 개선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3북한 보건의료와 건강권지향점과 개선 방향
© 연합뉴스 헬로포토

인권적 측면에서의
고찰이 필요하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지부, 김지은 한의사, 이혜경 약사
북한 보건의료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면 과거와 비교해 봤을 때 제도적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제도의 틈을 비집고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지금 북한은 변화하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은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과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더 나은 의료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 가고 있는 중이에요.

이건, 외부에서 알려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터득해 나가는, 정말 놀라운 현상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현재 북한의 의료 현실이 열악해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사망하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정말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만큼 더 고통스럽지만, 아픈 만큼 새로운 시스템을 북한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내고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며 북한 의료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어요.

지금 북한은 변화하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은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과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더 나은 의료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 가고 있는 중이에요.

북한에서는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은 어떠한가요?
최근의 상황은 어디까지나 돈의 문제라고 봐요. 돈이 없으면 누구라도 약을 구하기 힘들고 돈이 있으면 구하기 쉬워요. 취약계층이라고 해도 의료 접근성에 있어 차별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요. 특별한 우대도 없고요.
적어도 의사들을 만날 기회는 많아요. 이 점에 대해 의아하시겠지만, 의사담당구역제에 의해 의사가 가가호호 방문하다 보니 오히려 의료 접근성은 한국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의료 체계만 놓고 본다면 북한이 정말 잘 만들었기는 해요.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공식적인 북한 보건의료 제도에서는 선택권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선택권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권리 중 하나잖아요. 이것은 인권과 관련된 것이에요.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곧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 내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당하는 것이라고 봐요.

북한 보건의료 제도가 가진 장단점이 뚜렷하군요.
북한 보건의료 제도는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인권 존중이 결여되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이러한 것들을 전혀 몰랐어요.

북한에는 아직도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한국에 와서 살다 보니 북한에 있을 때는 몰랐던 인권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북한에서는 정말 중요한 것들을 못 누렸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보여지는 것에만 열광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건의료와 같은 특정 분야에 한정해서만 말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곳에서 인권침해가 만연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인권이라는 잣대를 놓고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그야말로 행복에 겨운 비명일 정도로 일반적이지 않아요.

아직도 많은 북한 사람들이 인권이라는 잘 말을 모르거나, 그 개념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어요. 병원, 공장 등 기관과 조직 곳곳에서 인권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죠. 북한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인권이라는 것이 없다고 보면 돼요.

북한에서 인권이라는 잣대를 놓고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그야말로 행복에 겨운 비명일 정도로 일반적이지 않아요.

© 연합뉴스 헬로포토

생각과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은 자신들이 맞닥뜨린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요?
이런저런 노력은 굉장히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정은은 집권 이후 제약산업에 큰 관심을 보였어요. 또, 종합대학의 약학부를 따로 분리해 규모를 늘려 새로 약학대학으로 만드는 등 보건의료 분야 교육에도 관심을 보였죠. 이번에 신축하는 평양종합병원도 그렇고 보건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하기는 해요. 하지만 병원만 하더라도 거기에 필요한 의료 기기가 제대로 들어갈지, 완공되더라도 전기가 제대로 공급될지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다면 북한 보건의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병원이나 제약 공장만 짓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잖아요.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꼼꼼한 관리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마 이런 점에서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즉, 제약 기계와 설비를 돌릴 원료가 있어야 하며, 의약품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도 있어야 하죠. 이런 것들을 북한 혼자서 충당하기는 불가능해요. 필요한 물품을 수입해야 하는데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대북 제재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아요.
최근 북한에서도 기본적인 치료 정도는 이뤄지고 있어요. 한국이나 국제사회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막막한 상황은 아닌 거죠. 나름의 보건의료 체계가 갖춰져 있고, 그 체계의 기초만은 정말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의료 교육의 질과 의료인들의 수준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북한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원료와 의약품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가 부족하다 보니 시설을 제때 돌릴 수 없어요. 원재료가 부족해서 그렇지 의료 시설과 같은 하드웨어, 그리고 의료진과 같은 소프트웨어 등 필요한 체계는 웬만큼 갖추고 있는 상황이에요.

북한 보건의료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그 어떤 지원보다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지원해 주는 것이 북한의 의료환경 개선과 자력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더 바람직하다고 봐요.

충분한 원료와 재료만 있다면 북한도 큰 문제 없이 지금 맞닥트린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위기를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충분한 원료와 재료만 있다면 북한도 큰 문제 없이 지금 맞닥트린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위기를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명백한 것은, 우리가 언제까지 북한에 지원만 할 수는 없어요. 보건의료 측면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엄밀히 말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예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의약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료와 재료를 북한에 지원해서 북한이 혼자서 일어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자생 능력을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제 바람은 북한으로의 의약품 원재료 지원이 무리 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긴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이를 제재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보여야 할 모습, 그리고 국제사회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한두 가지로 간략하게 말하기에는 어렵지만… 일단, 북한 당국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해요. 북한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에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으로의 지원을 바라봄에 있어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하거나 정치적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요. 모든 것을 떠나서 생명과 관련된 것이지 않나요? 인도적 지원의 취지를 한 번 더 고려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북한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 먼저 나서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원 물품에 대한 투명한 관리·감독과 사용 내용 공개가 이뤄져 지원 물품이 무기 만드는데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국제사회도 의혹을 거두고 북한이 원하는 것을 고려해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리라 생각해요. 아쉽게도, 북한에 지원되는 물품에 대한 모니터링이 어렵다 보니 국제사회의 지원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봐요. 무엇보다 북한 당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군요.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인도주의적 측면을 고려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 노력도 필요하다는 점…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북한 보건의료 상황 개선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 협력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화, 2020/06/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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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와 북한인권

2020년은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홍콩 인권 탄압, 미국 대통령 선거, 기후위기의 심화 등과 같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을 만한 굵직한 이슈가 연이어 발생했다. 그 중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의 확산은 올 한 해 인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로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는 지구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예측하지 못한 거대한 위기를 맞이한 각국 정부는 감염병 대응 초기 적절한 방역 대책을 마련하는데 우왕좌왕했다. 방역 과정에서 인권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대응이 이뤄지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인권 문제가 발생했다. 이와 더불어, 기존에 존재해왔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권 문제도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북한 역시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외부에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2020년 1월 말 국경을 차단함으로써 자발적 격리에 들어갔다. 뒤이어 내부 이동 통제 수준을 격상하는 등 강도 높은 방역 대책을 신속하게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자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0명’을 주장하며 방역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역시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세에 분명 심각한 위기를 느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북한은 과거 감염병으로 인한 그 어느 위기 상황보다 코로나19 방역에 열심이다. 당국은 지도부 회의를 여러 차례 열고 강력한 방역 대책을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관영 매체를 통해서는 연일 방역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유엔 대북제재, 올여름 발생한 물난리에 더해 코로나19 위협까지 더해지면서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전문가는 열악한 북한의 인권상황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악화된 것으로 판단한다. 건강권, 생존권, 식량권, 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어느 하나 코로나19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악화된 인권은 자유권과 사회권을 가리지 않기에 북한의 모든 인권 문제는 코로나19와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한 북한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북한의 최근 인권 동향을 가늠해보는 데 있어 중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올 한 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한국지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 내 코로나19와 관련한 주요 인권 이슈를 재조명해 봄으로써 2020년 북한의 인권 상황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경제난과 생존권

경제 위기는 코로나19가 북한에 몰고 온 심각한 위협 중 하나이다. 국제앰네스티는 2009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157개국을 대상으로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전 세계 인권상황을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경제의 침체가 인권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1인당 GDP가 1,700달러에 불과해 세계 228개 국가 개체entities 중 196위에 위치한 최빈국 중 하나이다.1) 최근 유엔 대북제재, 자연재해, 코로나19로 이어지는 연쇄 위기는 북한의 경제난을 가속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10월, 토마스 오헤야 퀸타나Tomás Ojea Quintana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제75차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에 더해 지난여름 발생한 태풍과 홍수가 북한 경제에 치명상을 입혀 북한의 인권 상황이 전보다 악화되었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했던 북한의 인권 수준이 최근 일련의 위기로 더욱 저하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국경 봉쇄가 이뤄짐에 따라 2020년 북한의 수출입은 크게 줄어들었다. 국내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북한-중국 무역 규모는 4.1억 달러로 2019년 상반기 대비 67%나 감소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북한의 수출입 규모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이나,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수출입은 암암리에 계속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무부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까지도 자국 선박을 제3국 국적으로 등록하거나, 추적 신호를 끄고 운항하거나, 또는 항로를 우회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추적을 피하면서 중국에 석탄을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 당국과 중국 정부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 규모와 빈도가 다소 줄어들었다고는 할 수 있으나 국가가 주도하는 밀수 행위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국가 밀수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고는 해도, 2017년 유엔 대북제재에도 암암리에 이뤄지던 개인 밀수는 코로나19 창궐 이후 국경 통제가 강화됨으로써 대부분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부는 2020년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인 십수 명을 인터뷰해 이와 같은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 밀수에서 거래되는 물품 대부분은 북한 사람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 밀수의 감소는 곧 북한 내 장마당으로 유통되는 생필품과 식료품 등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물자 규모의 감소를 의미한다.

평양 통일거리시장

평양 통일거리시장

장마당은 북한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핵심 경제 매개체이다. 개인 밀수는 장마당 발전의 일등 공신이자 원활한 운영과 유지에 핵심적인 요소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장마당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 당국이 방역을 이유로 접경 지역의 개인 밀수를 엄격히 단속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던 물품 수입에 문제가 생겼다. 밀수 행위뿐만 아니라 보관, 운송, 중개, 판매 등 개인 밀수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돈벌이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생계수단을 잃었다. 경제 위축은 비단 국경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 밀수로 들여온 물품은 북한 내륙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가 장마당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급되었는데, 개인 밀수가 차단되고 이동 통제가 강화되면서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필품과 식료품 공급이 줄어들자 이에 의존해 살아가던 사람들도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식량 부족은 북한이 처한 가장 중대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2,500만의 북한 인구 중 약 40%인 1,000만 명 이상이 영양 부족에 처해 있는 등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이다. 비교적 최근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 최근 탈북한 탈북인을 통해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나, 충분치 못한 식량과 심각한 영양 공급 불균형으로 초래되는 건강 악화는 여전히 북한 사람들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보건의료 전문가의 의견이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주민이 처형된 사례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공개한 내용을 보면 최근 북한 당국이 시장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본보기로 처형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몇몇 국내외 언론에 따르면 국경 봉쇄 이후 급등한 물가를 이용해 차액을 노리고 밀수를 시도한 사람 중 수 명이 적발되어 처형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북-중 교역의 감소와 장마당 침체는 북한 경제에 큰 위기로 다가와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권 문제까지 파생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북한 내부의 불안한 경제 상황은 여러 측면에서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종전의 유엔 대북제재나 자연재해 그 이상일 것으로 추측된다. 많은 전문가는 당분간 북한의 경제뿐만 아니라 인권 또한 전보다 더 암울한 상황으로 치닫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열악한 보건의료와 건강권

코로나19는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은 부족한 의약품, 전기가 없어 멈춘 의료 시설, 낙후된 의료 기기와 장비 등으로 설명된다. 북한 주민들은 국제인권규약국내법에 명시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부 특권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장 질병 치료만 놓고 보더라도 간염, 결핵,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등과 같은 감염병과 영양결핍 문제는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나 당국은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료체계의 붕괴가 시작되면서 스스로 치료 방법을 찾아 나서야 했던 북한 사람들은 최근 심각한 약물 오남용 위험에도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보건당국의 방역 활동

북한 보건당국의 방역 활동

코로나19는 안 그래도 불안정한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을 더욱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은 이미 의료시설, 전기, 식수, 위생용품 부족을 겪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이 더욱 큰 피해를 받을 것’이라고 기술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보고서를 통해서도 북한이 현재 내부적으로 큰 어려움이 직면해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로 주민들의 건강권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외부에 적극적으로 지원 요청을 보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제사회가 북한에 먼저 손길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언론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이후 일부 민간단체가 보낸 손 소독제, 마스크 등과 같은 기본 방역 물품이 공식 경로를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국경없는의사회MSF와 같은 국제기구 및 구호단체도 북한에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일정 수준의 지원을 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러시아도 북한에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일부 의료 물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원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국경 봉쇄 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미진한 상태이다.

유엔 대북제재에 더해 미국,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각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는 북한으로의 인도적 지원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코로나19 대응 물자 지원은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일례로, 유엔 대북제재는 북한으로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예외조항을 마련해 놓았다. 유럽연합의 대변인은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북제재를 결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하면서도 유엔 제재 하에서도 인도적 지원은 여전히 허용된다는 사실을 들며 북한의 코로나19 대응 지원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인도적 지원 이상의 제재 완화나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는 하나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대북 지원 의사가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손짓에도 북한은 제재 해제를 우선적으로 요구하며 국경의 문을 쉽사리 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코로나19와 관련해 남북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방역 물품과 백신 공급 등 대북 지원에 열린 입장을 수차례 표명했으나, 북한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유화적인 제스처에 일관되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북한은 진단 키트가 부족해 코로나19 검사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감염 의심 증세를 보인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심각한 의료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관찰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는커녕, 그것을 자체적으로 진단할 역량이 부족하기에 실제 발병 현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2020년 12월 국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이 오히려 기존에 유행하던 감염병의 악화를 초래한 것으로 관찰되었다고 한다. 즉,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 대응은 고사하고 기본의 보건의료 문제에 대처하기조차 버거운 비참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북한 당국은 자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국제사회에 코로나19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지원 요청을 보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연대가 그 무엇보다 요구된다.

 

제한된 정보 접근권

정보 통제는 코로나19가 부각한 또 하나의 열악한 북한인권의 모습이다. 북한은 사회 전 영역에서 정보 접근권이 억압받는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의 모든 전기통신, 우편, 방송 서비스는 국가 소유로 운영된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민간 언론, 시민단체와 같이 국가의 권력을 감시하거나 견제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 교류도 심각하게 제한된다. 오직 관영매체를 통해 검열된 정보만을 접할 수 있다. 한 소셜미디어 전문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수백만 대의 휴대전화 보급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국가는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다. 국가가 발표하는 내용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 당국이 발표하는 코로나19 현황을 국제사회가 마냥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북한 주민은 당국이 통제하는 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외부와 단절된 북한

외부와 단절된 북한

당국의 정보 통제는 북한 내·외부로의 정보 접근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북한의 코로나19 현황과 관련해 투명성 결여 문제를 꼬집으며 당국에 국제 언론의 북한 내 조사를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12월 초 열린 코로나19와 관련한 한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또한 “북한은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코로나19 통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이것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라고 발언하며 코로나19 청정국을 주장하는 북한 당국의 공식 입장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제한된 정보 접근권이 야기한 혼란을 경험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중국이 정부의 ‘안정성’ 유지를 이유로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최초로 경고한 의사 리원량(Li Wenliang)을 체포하는 등 정보를 통제하고 은폐하려 한 점을 확인했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 당국의 과도한 정보 통제로 인해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고, 이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데 기인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가 사회 안정 등을 이유로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를 통제한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이 떠안았다. 북한의 정보 통제는 특히 더 심각하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통제로 인해 북한 사람들은 국가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 한정적인 정보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사람들은 정보 접근에서 발생한 정보격차로 인해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가는 셈이다. 코로나19로 심화한 보건의료 위기 속에서 북한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을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 지도부는 코로나19로부터의 위협을 국가 비상사태로 받아들이고 연일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주민들이 만반의 방역태세를 갖추게끔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논의 주제에서 코로나19에 관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개선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속하고 정확하며 투명한 정보로의 접근은 방역에 있어서 핵심임에도 말이다. 북한 당국은 사람들이 현실을 파악하고 경각심을 가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정보 접근권을 허용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동의 자유 억압

북한은 자국민을 대상으로 엄격한 이동 통제를 시행해왔다. 자유로운 해외 출국은커녕 국내에서조차 거주지를 벗어나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잘 알려진 내용이다. 북한은 코로나19 차단을 이유로 영토, 영해, 영공을 포함한 모든 국경을 봉쇄했다. 코로나19 이후 강화된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 조치는 북한 내 이동의 자유를 더욱 옥죄었다. 과도한 이동 제한, 강압적 격리, 무분별한 지역 봉쇄, 그리고 방역 준칙을 어긴 자에 대한 비사법적 처벌 등과 같은 조치들은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나 여전히 강력한 통제가 실행되고 있다. 이는 당국이 코로나19 대응 지침을 세우는 과정에서 인권은 핵심적인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온 평양 주민들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온 평양 주민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장기적인 국경 봉쇄 조치는 탈북을 시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9월 말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인은 총 195명이다. 특히, 2분기(4~6월) 입국자 수는 단 12명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96%나 줄어든 수치이다. 한국지부가 2020년 이후 한국에 입국한 탈북인으로부터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이들 중 다수는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기 전 탈북해 중국 등지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로 보인다. 1월 말 이후 국경이 봉쇄되면서 주요 탈북 루트가 차단되고 이동 통제와 단속이 강화되면서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되다 보니 탈북이 어려워지게 되어 탈북인 수도 줄어든 것이다. 탈북에 성공해도 코로나19로 인해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제3국의 단속이 강화되어 한국으로 오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 없는 이들은 탈북 후 한국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에 노출되거나 건강이 악화되어도 치료는커녕 진료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지부가 한국 정부 관계자로부터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 탈북 후 올해 한국에 도착한 사람 중 입국 당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의 코로나19 통제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고 무자비하다. 2020년 9월 로버트 에이브럼스Robert B. Abrams 주한 미군 사령관은 한 화상 토론에서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지대에 1~2km의 완충지대를 설정 후 특수부대를 배치했으며, 월경자 적발 시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아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탈북이 코로나19 취해진 방역 조치로 인해 더욱 위험해진 것이다. 특히나, 최근 강화된 단속과 처벌은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주저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을 시도하다가 사살되느니 인권은 누리지 못해도 목숨은 부지하겠다는 것이 그들을 탈북에서 돌아서도록 한 이유일 것이다. 북한의 강도 높은 국경봉쇄와 이동 제한이 코로나19 방역의 일환으로 취해진 조치라고는 하나 기존의 북한 내 상존하는 인권 문제에 더해 추가적인 인권침해 요소를 낳고 있으며, 많은 이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게 하는 것이다.

국가의 코로나19 대응에서 이동의 자유 제한은 필요에 의해 예외적으로 취해질 수밖에 없는 조치이다. 북한이 보여주는 국경봉쇄와 지역 간 이동 제한 등 일련의 강력한 이동 통제 조치는 코로나19를 차단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일시적으로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고 있는 북한의 이동 제한에 기인한 인권 문제는 그 어떤 나라보다 심각하다. 2020년 11월 영국은 외무·영연방부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성명서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로 북한 내 이동의 자유가 더욱 악화되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국가의 정책에서 취약계층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에 따르면 방역을 빌미로 이뤄지는 장기화된 봉쇄와 격리 과정에서 북한 내 취약계층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이동 제한이 생명을 위협하는 올가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권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은 이동 통제는 장기적으로 북한 사람들을 더 큰 고통에 마주하게 할 수도 있다.

 

맺음말

2020년 한 해 북한의 인권상황은 당국의 코로나19 대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월 10일 ‘인권의 날’을 맞이하여 북한 당국은 관영 매체를 통해 “우리 공화국은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귀중히 여기고 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진정한 인민의 나라존엄 높은 자주 강국이며 인민대중의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가 최상 수준에서 보장된 참다운 인권옹호, 인권실현의 나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점은 ‘인권’보다는 ‘정권’이 우선하는 모습이다. 인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른 무엇 보다 우선되어야 함에도 말이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로부터 주민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대응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에 있어 세심하게 인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국은 인권이 무시된 코로나19 대응이 결국 독이 되어 인권상황 악화와 함께 사람들을 더 큰 위협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북한이 강조하는 ‘인민의 안전을 위한 완벽한 봉쇄장벽 구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대응 절차에서 인권적 측면에서의 심도 있는 검토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1)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은 대표적인 경제성장 지표이다.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GNI은 국민 소득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나온 지표이다.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GNI의 크기보다는 이를 인구수로 나눈 1인당 GNI의 크기와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 1인당 GNI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출처: 통계청 ‘2020통계용어’). 북한의 경우 세계은행World Bank에 등록된 경제지표 자료가 없어 GNI와 1인당 GNI를 파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자료로 인정되는 CIA의 ‘The World Factbook’에 나온 가장 최신의 북한 자료 중 확인가능한 경제 지표인 1인당 GDP2015년 기준를 참고했다.
목, 2020/12/3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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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편지를 쓴다. 국제앰네스티의 창립자 피터 베넨슨(Peter Benenson)이 ‘잊혀진 수인’들을 위해 탄원 편지를 제안했던 1961년부터 지금까지, 편지는 국제앰네스티의 핵심 캠페인 콘텐츠였다.

국제앰네스티의 Write for Rights는 국제앰네스티의 대표적인 편지쓰기 행사로, 매년 12월에전 세계 수십만 명의 참여자들이 인권 침해를 겪고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해 편지를 쓰고 온라인 탄원에 서명을 한다.

2001년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올해 18년차를 맞았다. 지금까지 파악된 편지수만 약 2천3백여만 통, 이를 통해 수백명의 삶이 변화했다. 편지의 힘은 놀라웠다. 무고한 사람이 석방되었고, 위험에 처한 사람이 더 안전해졌으며 인권을 침해하는 불공평한 제도를 바뀌었다.

하지만 이 캠페인이 처음부터 세계 최대의 인권 행사였던 것은 아니다. 이 캠페인은18년 전 폴란드의 작은 축제에서 시작되었다.

비텍 헤바노브스키와 함께 서 있는 앰네스티 폴란드 회원/직원들

비텍 헤바노브스키와 함께 서 있는 앰네스티 폴란드 회원/직원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옛말처럼, Write for Rights 캠페인은 18년전 폴란드의 지역 축제에서 시작되었다. 앰네스티 폴란드에 있는 한 그룹의 코디네이터였던 비텍 헤바노브스키(Witek Hebanowski)는 지역 축제에서 앰네스티 행사를 준비하던 중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참여했던 행사에 대해 비텍에게 얘기해주었다. 소녀가 참여한 행사는 24시간 동안 정부에 항의서한을 작성해 보내는 행사였다. 소녀의 이야기는 비텍에게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비텍은 그룹 모임에 소녀를 초대했고, 그룹원들과 함께 24시간 동안 총 몇 장의 긴급 행동 탄원편지를 쓸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아이디어는 이후 이메일을 통해 다른 앰네스티 그룹에도 전해지게 된다. 이 행사는 퍼지고 퍼져 몽골, 일본, 나이아가라 폭포 옆까지 전해지게 되고 수많은 사람이 탄원 편지를 쓰는 것으로 확산되었다. 하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풀뿌리에서 시작해 점점 자라게 된 것이다.

  • 편지지들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앰네스티 폴란드 회원들
  •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는 앰네스티 폴란드 지부 회원들
  • 편지를 쓰고 있는 한 앰네스티 폴란드 회원
앰네스티 폴란드 지부에서는 아직도 처음처럼 24시간 내내 편지쓰기 마라톤을 진행한다.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는 밤새 열려 있으며, 참가하는 사람들이 서로 알아가는 장이 된다.

Write for Rights에서 아직도 풀뿌리 활동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편지쓰기 캠페인이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지역사회와 앰네스티 그룹이라고, 폴란드 지부의 제고쉬 주코브스키는 말했다. 작은 규모의 그룹들, 특히 학교의 그룹에서 많은 탄원 편지를 쓰고 있다. 2011년에는 인구 1000명의 비르차(Bircza) 라는 작은 도시에서 13,000장이라는 기록적인 숫자의 편지가 작성되기도 했다. 무료 1인당 13장의 편지를 써낸 것이다.

Write for Rights가 매력적인 이유는 쉽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폴란드 지부 제고쉬 주코브스키(Grzegorz Zukowski)

누군가는 ‘고작 편지 한통’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맞다. 편지지와 펜만 있다면 편지는 누구나 쓸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Write for Rights가 매력적인 캠페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웃집의 누군가도, 편지를 쓸 수 있다.

우리가 편지를 써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하나 하나 모두 중요하다. Write for Rights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어려운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해준다. 일 년에 한번이라도 마음을 열고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GOOD NEWS
  • 2011
    파푸아의 독립을 외치다 감옥에 간 양심수 필렙 카르마는 65,000여통의 연대 편지를 받고 석방되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필렙 카르마

  • 2012
    15세 마리아 이사벨 프랑코는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되었다. 전 세계 수천명이 연대 편지를 보냈고 그 결과 과테말라 부통령으로부터 ‘여성폭력 문제를 조사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마리아 이사벨 프랑코의 사진을 들고 있는 그의 어머니

  • 2013
    대통령 취임 반대 시위를 하다 체포된 볼로트나야의 3인에게 전달된 17만여통의 연대 편지 덕분에 3인 중 1명은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석방된 볼로트나야 3인 중 1명이 앰네스티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2014
    인종 차별로 고통받는 파라스케비 코코니와 로마족을 위해 8만여통의 편지가 그리스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되었고, 장관은 파라스케비에게 인종차별 반대 법안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라파스케비 코코니가 그리스 법무부 장관에게 8만통의 편지를 전달했다

  • 2015
    억울하게 살인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40년간 독방에 구금되어 있던 우드 폭스를 위해 전세계 24만명이 지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2015년 6월 우드 폭스는 마침내 석방되었다.

    우드 폭스가 손을 불끈 쥐고 웃고 있다

  • 2016
    기자로 일하다 날조된 혐의로 체포되어 5년간 수감되었던 사진 기자 샤칸은 44만통의 연대 편지를 받았고 2019년 결국 석방됐다

    샤칸이 환하게 웃고 있다

  • 2017
    페이스북으로 정부의 문제를 비판했다가 교도소에 갇혔던 마하딘은 69만 통의 연대 편지를 받고 2018년 석방되었다

    마하딘이 자신에게 온 편지들 앞에 앉아 있다

  • 2018
    마리엘 프랑코는 인권 옹호 활동을 하다 살해되었다. 정의 구현을 위해 전 세계 56만명이 연대 편지를 보냈고 수사를 약속한 경찰은 2019년 3월 마침내 용의자 경찰 2명을 체포했다

    마리엘 프랑코가 앞을 바라보고 있다

 

2019 Write for Rights
2019년, 또 한번의 Write for Rights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유스들과 함께합니다.
함께 놀라운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주저 말고 편지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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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11/15-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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