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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미확인) | 금, 2017/04/28- 09:48

사랑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다.  – 앤 해서웨이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세계의 정치인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트뤼도 총리는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토론토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벤쿠버 자긍심 행진에는 온 가족이 함께하기도 했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가 토론토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2016년 7월 3일, 토론토 자긍심 행진에 참여한 트뤼도 총리 마음까지 훈훈 ⓒXinhua/Zou Zheng

연대하는 것은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매년 퀴어퍼레이드 부스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전 대사는 부채춤을 추는 인파를 뚫고 퀴어퍼레이드 부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2016년 퀴어퍼레이드 부스 행사에 참여한 대사관
주한 미국 대사관, 주한 캐나다 대사관, 주한 호주 대사관,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주한 영국 대사관, 주한 아일랜드 대사관, 주한 프랑스 대사관, 주한 벨기에 대사관, 주한 유럽연합 대표부, 주한 독일 대사관, 주한 덴마크 대사관,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 주한 스웨덴 대사관, 주한 핀란드 대사관

 
페크톨드와 쿨미스 네덜란드 민주66당 의원

네덜란드의 한 게이 커플이 괴한에게 공격받자, 이에 분개한 남성들이 손을 잡기 시작했다. 민주66당 당대표인 알렉산더 페크톨드(Alexander Pechtold)와 우터 쿨스미스(Wouter Koolmees)의원이 손을 잡고 국회에 출근했다.

네덜란드 민주66당 당대표와 의원이 손을 잡고 출근하고 있다.

페크톨드(좌)와 쿨미스(우) 의원, 2017년 4월 3일 네덜란드 헤이그 ⓒEPA/LEX VAN LIESHOUT

 

이어 오스트리아 국회의원들도 손을 잡았다.


연대합니다! 동성애혐오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어디에서도 설 곳이 없습니다!

 
뉴욕 UN 주재 네덜란드 대표부도 연대의 의미로 손을 잡았다.


유엔 네덜란드 대표부 남성 직원들이 LGBTI를 겨냥한 폭력에 반대하며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전 아이슬란드 총리

요한나(Jóhanna Sigurðardóttir) 전 총리는 재임 중 아이슬란드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파트너와 결혼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동성결혼 1호 커플이자, 전 세계에서 재임 중 동성 파트너와 결혼한 첫 지도자이다.

아이슬란드 전 총리가 회의에 참석했다.

 

사비에르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사비에르 베텔(Xavier Bettel) 총리는 2015년 1월 룩셈부르크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같은 해 5월 결혼을 발표했다.

룩셈부르크 총리와 파트너가 결혼을 발표하며 손을 잡았다.

총리 사비에르 베텔(우)과 훈남 건축가 고티에르 데스테네이(좌)가 결혼발표를 하고 있다. ⓒEPA/JULIEN WARNAND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윌리엄 영국 왕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미국 게이 잡지 표지 모델로, 윌리엄 왕자는 영국 게이 잡지 표지 모델로 나섰다.

 

백악관

정치인은 아니지만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내리고 미국 전역에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로 미국 전역에 LGBTI 권리 보장을 지지하는 물결이 일었다. 이날 밤 백악관도 외벽에 무지개색 조명을 밝혀 역사적인 판결을 축하했다.

백악관에 레인보우 조명을 입혔다.

레인보우 조명받은 백악관 ⓒEPA/MICHAEL REYNOLDS

힐러리 클린턴과 앤드루 쿠오모 뉴욕시장

2016년 6월 26일, 힐러리 클린턴(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뉴욕 시장인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와 뉴욕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힐러리 클링턴이 뉴욕 자긍심 행진에 참여했다.

뉴욕 자긍심 행진 참가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힐러리 클린턴(우)와 뉴욕 시장 앤드루 쿠오모(좌) ⓒEPA/PETER FOLEY

 

그리고

트럼프

트럼프가 LGBTs for Trump라고 쓰인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트럼프도 어쨌거나 무지개 깃발을 펼쳤다.. 할많하않..

 

#LoveWins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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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LGBTI활동가 빈시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홍콩의 떠오르는 뮤지션 빈시는 논 바이너리(NON-binary, 비이분법적 젠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두고, 이를 가리킬 때 “그들”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기를 원한다. 25세인 그들은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들의 2월 14일은 올해도 아마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갈 것 같다.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해서 어떻게 깨닫게 되었나요?

제가 트랜스라는 걸 깨달은 건 2015년 여름이었어요. 그 당시 이성애자 남성과 교제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제게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젠더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유동성을 가지는 젠더) 퀴어가 아니냐고 물었죠. 그 이후로 관련된 자료를 많이 읽어보고, 논바이너리, 트랜스인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홍콩의 LGBTI 활동가 빈시가 카메라응 응시하고 있다.

커밍아웃한 이후 사랑을 찾기가 더욱 어렵지는 않았나요?

제가 커밍아웃하고 몇 주 후에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그는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이었지만 서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죠. 그는 제가 아주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의 질문을 했고, 저는 그게 매우 불편했어요. 처음 그 사람과 교제를 시작할 때 저는 긴 머리에 드레스를 입은, 훨씬 여성적인 모습이었어요.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남자다운 옷을 입기 시작했죠.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우리 관계의 본질이 완전히 변하게 된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이 사랑하기란 훨씬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홍콩에서는 매우 시스젠더(젠더 표현과 정체성이 출생시 지정 성별과 일치함)적이고 이성애규범적(이성애자라고 전제하거나 이성애를 추구하는 것을 당연히 여김)인 시선으로만 생각하거든요. LGBTI 사회에서도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시스젠더 게이와 레즈비언이에요. 사람들은 저와 의사소통을 할 때 매우 혼란스러워 하더군요. 저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저는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때로는 저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볼 때도 있어요. 사람들이 이런 의심을 품고 있다면, 서로를 알아가고 친밀해진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에요.

지금은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데이트를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게이 커플이나 레즈비언 커플인 것처럼 쳐다보곤 해요. 특히 제가 남성적인 옷을 입거나, 화장을 옅게 한 날이면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때도 많아요. 남자친구는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봐도 신경 쓰지 않는데, 그게 참 고마워요. 우리는 그냥 편안하게 우리 일을 할 뿐이죠. 우리가 밖에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저한테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에요.

 

트랜스젠더가 홍콩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콩에서 일반적인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더 활발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예전보다 퀴어 사회가 매체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는 만큼,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묘사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트랜스젠더의 이미지가 더욱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드레스를 입는 남자를 희화화하는 걸 그만둬야 해요. 웃긴 일이 아니거든요. 트랜스젠더의 삶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모두 이런 사소한 일들이에요.

지금의 홍콩에서는 허황된 꿈에 불과한 일이지만, 언젠가 먼 훗날에는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래요.

 

홍콩의 트랜스젠더 인권 증진과 관련된 당신의 활동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음악을 홍보할 때마다 트랜스젠더 이슈뿐만 아니라 젠더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건 분명 아주 어려운 일이죠.

다른 정체성을 제쳐두고서라도, 음악 산업계에서 여성이 평등에 대해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지금까지 저와 가깝게 지내며 함께 작업한 사람들은 한층 진보적이고 개방적이었지만, 그 외에 음악계의 다른 사람들과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해 토론하는 건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수, 2018/03/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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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J 활동가는 자신의 레즈비언 파트너와 SOGI 아카데미 교육과정에서 만났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J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부터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27세인 그녀는 절친한 친구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했을 뿐, 가족들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 가족이나 지인이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하는 J는 2년 전 SOGI(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아카데미의 단기 교육과정에 참여했다가 지금의 파트너를 만났다. J는 파트너와 함께 보낼 발렌타인데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깨닫게 되었나요?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차마 알릴 수 없었어요. 대학 생활은 정말 우울하고 외로웠죠.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커밍아웃을 하고,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어요.

한국의 LGBTI 활동가, J

커밍아웃할 당시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어요. 성소수자 친구들은 대부분 제 파트너를 만나 봤지만, 이성애자 친구들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 친구들도 별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파트너와 항상 손을 잡거나, 서로 볼을 맞대거나 끌어안으면서 애정을 표현해요. 저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한번은 전철을 기다리면서 파트너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너희 레즈비언이냐”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그건 별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어요.

이성애자 커플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성소수자 커플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한국 같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우리 같은 사이는 연인으로 인정받지 못해요.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더라도 제 파트너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제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에서 이성 커플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어요. 때로는 일상 생활 속에서 우연히 만남이 시작되기도 하죠.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면 특별한 ‘게이더(gaydar)’가 있어야 해요. 더욱 공을 들여야 하죠. 예를 들면 만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거나, 퀴어 행사에 참석하거나, 퀴어인 친구들에게 다른 퀴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에요. 이성애자에 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것 같아요.

발렌타인 데이가 기대되겠어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요?

저는 발렌타인 데이가 좋아요.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발렌타인 데이에는 갖가지 다양한 초콜릿이 나오니까 그게 참 좋아요.

작년 발렌타인 데이는 지금 파트너와 처음 보내는 발렌타인 데이라서 아주 특별했어요. 맛있는 초콜릿을 서로 주고 받았죠. 초콜릿을 받았을 때 파트너의 표정, 그리고 그 초콜릿의 맛과 풍미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 때만 떠올리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져요.”

올해는 어떻게 보낼 생각이신가요? 선물은 준비했나요?

준비한 선물은 있지만, 비밀이에요! (지금 이 대답의 작성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한국 사회와 정부의 LGBTI 대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회와 정부는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 것 같아요. 매체에서는 두 남성이나 여성간의 사랑 또는 애정을 표현할 때 “브로맨스”나 “걸크러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죠. “게이”나 “레즈비언”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동성 결혼이나 시민 결합 제도가 없기 때문에, LGBTI 커플은 오랫동안 같이 살았더라도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이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성 지향성이나 젠더 정체성에 상관 없이 모든 커플이 더욱 평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시나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문화를 조성하려면 학교와 가정에서 퀴어 친화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이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하죠. 또 동성 결혼도 합법화해야 해요.

월, 2018/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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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매년 관광객 수백만 명이 찾는 한국의 인기 관광지다. 올해 이 제주도를 찾은 방문객 중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예멘 난민 수백 명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섬을 찾은 이유는 여느 관광객들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피난처를 찾아서 온 것이다.

이들의 고향은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예멘에서는 지금까지 16,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2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했으며, 어린이 340만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전체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2,220만 명은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피난을 떠난 사람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16,000명 이상
200만 명
340만 명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최소16,000만 명
피난을 떠난 사람들
200만 명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340만 명

 

2018년 1월부터 5월 사이, 약 550명 정도의 예멘인이 말레이시아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난민을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의 난민 신청자들은 구금, 기소되거나 채찍질형에 처해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강제 송환될 수도 있다. 예멘인들은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 난민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멘인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로 친절보다는 대부분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2018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들이 한국의 경제적 안정성을 이용하려는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난민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청원에 714,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 캡쳐

한국은 난민 신청자들이 흔히 찾을 만한 곳은 아니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위를 인정하거나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를 허가하여 매년 받아들이는 난민 신청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난민 인권단체인 난민인권센터(NANCEN)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1만 건에 이르는 난민 신청 중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건수는 그 중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예멘인 550명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처럼 난민 수용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018년 7월 4일, 예멘인 비호 신청자 모하메드 살렘 두하이쉬.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든 예멘에서의 위협은 현실적이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예멘 민간인들이 ‘철저히 인간이 초래한 재앙‘ 속에 휘말린 채 갇혀 있으며, 그 재앙은 만연히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와 국제인권 및 인도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구호품 조달을 빈번히 제한하며, 학교와 병원 등의 민간 시설을 계속해서 공격하거나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과도한 공습을 수십 건 감행했고, 이로 인해 주택과 학교, 시장, 예식장, 병원, 모스크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공격의 대부분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엄청난 반대 여론에 대한 답으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 심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9월 말까지 1차 심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8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밝혔다. 또한 제주도민들의 안전을 위해 난민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18년 7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반난민 집회

난민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절차는 반드시 공정해야 하며, 신청자 개개인은 법적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심사 결과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부는 각각의 난민 신청건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여론의 압력을 이유로 심사 절차를 성급히 처리해서는 안 된다.

피난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류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을 해야 한다. 2017년 대선 후보였을 당시, 문 대통령은 난민협약을 이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리더십을 발휘해, 망명 신청 절차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킬 때다.

 

 

금, 2018/08/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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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학교 총기 참사는 대규모의 희생자가 발생한 일련의 총기 폭력 사건들 중 가장 최근의 사건이다. 단 몇 분 만에 17명의 교사와 학생이 과거 이 학교에 다니던 퇴학생에 의해 살해되었다. 총기 폭력은 전 세계에서 매일 일어나는 비극이다. 때로는 인종, 성별, 계층에 따라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총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지역 사회 전체 총기폭력의 가장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정부는 폭력을 멈추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상식적인 총기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총기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다수는 젊은 남성들이 차지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특히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총기폭력의 위험에 처해있고, 성폭력 역시 총기에 의해 조장될 수 있다.

매일 총기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
500명 이상
전 세계 총기폭력을 수반한 살인 비율
44%
2012년과 2016년 사이 총기 사망자
104만 명

 

총기폭력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매일 2000명이 총격에 의해 부상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적으로 최소 2백만 명이 총기로 인한 부상을 입은 채 살아가고 있다.
수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총기 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영향이나 총기폭력의 위협에 시달린다. 이는 개인과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총기폭력이 왜 인권 문제인가?

총기폭력은 세계적인 인권 문제이다.

총기폭력은 가장 근본적인 인권인 생명권의 침해할 수 있다. 국가는 예측 가능하거나 실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을 총기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

총기폭력은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다른 인권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 안전에 대한 권리를 부정한다. 이런 두려움은 결국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 지속적인 총기폭력으로 인해 지역사회가 엉망이 된다면, 보건 및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 또한 어려워질 수 있다.

 

총기폭력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총기폭력은 총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규제가 약하며 총기 폭력 방지를 위한 법 집행이 미약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특히 만연하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부정부패와 조직 범죄, 그리고 작동하지 않는 형사 사법 제도가 총기 폭력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총기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다수는 젊은 남성들이 차지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특히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총기폭력의 위험에 처해있고, 성폭력 역시 총기에 의해 조장될 수 있다.

[총기 살인의 비율]
브라질
72%
엘살바도르
91.1%
온두라스
58.9%

보다 부유한 소위 ‘선진국’ 중에서 미국의 총기폭력은 특히 예외적이다. 총기에 대한 높은 접근성과 느슨한 규제가 미국에서 매년 30000명의 성인과 어린이가 총기에 의해 사망하도록 이끌었다. 유색 인종 커뮤니티는 불균형적으로 총기 폭력의 영향을 받는다. 흑인인 미국인이 총기 살인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백인인 미국인보다 10배 더 높다.

 

매년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총기들이 만들어지는가?

매년 8백만 자루의 소형 무기와 150억 발의 탄약이 생산되고 있다.
소형 무기 거래의 규모는 연간 약 85억 달러에 이른다.

 

총기폭력에 관해 국제앰네스티는 어떤 일을 하는가?

국제앰네스티는 총기 사용 및 소유 규제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고, 심각한 수준의 총기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있는 지역에서 증거 기반의 폭력 감소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국내 총기 개혁과 총기폭력 예방에 집중해왔다. 또한 총기가 심각한 인권침해에 이용될 수 있는 위기지역으로의 총기 수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여러 다른 단체들과 함께 무기거래조약(Arms Trade Treaty )에 대해 성공적으로 캠페인을 펼쳤고, 이는 2014년에 국제법으로 정식 발효되었다.

국제앰네스티는 무기거래조약의 국제적인 준수를 위해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며, 무기거래조약은 전 세계의 갈등상황 속에서 폭력과 잔학행위, 국가 탄압에 불을 지피는 무기의 흐름을 막아낼 것이다.

 

총기개혁이 효과적인가?

그렇다. 거의 모든 주에서 총기의 획득과 소유를 특정한 형태로 규제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사용자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하고 총기를 등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총기 개혁은 총기류에 대한 접근과 총기 규제에 있어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세계 일부 지역에서 효과적이다. 많은 서유럽 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아시아 일부 국가들에서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일본과 한국, 그리고 싱가포르에서는 총기 폭력의 비율이 극히 낮다.

 

총기폭력을 중단시키고 줄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부는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총기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집니다. 우리는 총기개혁을 요구함으로써 정부에 이를 상기시켜야 합니다.

책임자들에게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켜줌으로써, 여러분은 총기 소유와 사용 규제에 대한 정부의 열악한 규제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총기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더불어, 심각한 총기폭력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개입이 있어야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지난 3월 24일, 미국 전역의 학생과 청년,
그리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총기 폭력의 영향을 받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행진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에 함께하세요.

지금, 참여하세요!

화, 2018/03/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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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진실을 원한다:
내 딸 마리엘 프랑코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마리네테 다 실바

6개월 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내 딸, 마리엘 프랑코가 3월 14일 리우데자네이루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의 삶에서 마리엘이 차지하던 존재감만큼이나 엄청난 공허감을 남겼다. 그날 밤 이후, 가족들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마리엘과 함께 목숨을 잃은 운전기사 안데르손 고메즈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딸을 잃은 슬픔을 그 누가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의원이자 저명한 인권옹호자였던 마리엘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처럼 끔찍한 폭력을 당해야 했는지 날마다 고민해 보지만, 여전히 그 답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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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누가 마리엘 프랑코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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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엘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도 타고난 지도자의 기질을 발휘했다. 마리엘은 언제나 남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마을 텃밭을 일구거나 소외계층을 위해 대학 입시 과정을 열고, 폭력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연대를 기반으로 구성된 집단 조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마리엘은 남을 돕는 일에서 보람을 느꼈다. 마리엘이 느끼는 책임감과 그녀가 꾸는 꿈은 너무나도 거대했고, 결국 2016년 마리엘은 브라질 제2의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시의원직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마리엘의 선거 운동은 리우데자네이루 정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는 흑인 여성과 페미니스트, 젊은이들, 빈민가 주민들이 모두 포함됐다. 마리엘은 총 득표수 5위를 기록했고, 당 내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마리엘은 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활동한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했다. 인권옹호자로서는 자신이 옹호하는 사람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브라질 국민들이 제도권 정치에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마리엘은 자신의 활동을 국회에서도 고스란히 이어갔고, 그것이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내 딸 마리엘의 삶은 느닷없이 끝나버렸다. 마리엘의 공적 활동이 순식간에 차원이 다른 규모로 성장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마리엘이 곧 수도 브라질리아로 진출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리엘이 그렇게 쉴 새 없이 주장하며 신봉했던 집단의 이익을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엘이 피살된 이후에도 그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며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세계 각국의 수도에서 수천 명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양한 경로와 다양한 언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내 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됐다.

내 딸의 목숨을 앗아갔던 잔인한 범죄 사건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마리엘의 이야기를 전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우리의 입장을 재차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수사 책임당국에 매번 대상을 바꿔가며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호소하고도 있다. 그러는 동안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정하게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마리엘을 롤모델로 여기는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어디서든 내 딸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나 스티커를 가슴에 달고 다녔다. 브라질에서, 세계 각지에서 보내주는 성원이 우리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줄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정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엘의 생애는 가장 절실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마리엘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식을 잃은 고통에 시달리며 생애 가장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 어머니들을 지원하는 데 헌신했다. 피해자들은 보호를 받아야 할 정부 요원들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허술한 치안 정책으로 매년 수천 명의 흑인 청년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마리엘은 그 허술한 정책들에 맞서 싸웠다. 지금, 나는 그 어머니들과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 나의 고통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슬픔의 크기는 그들 못지 않다. 피해자 어머니들은 매일같이 나를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나의 안부를 묻고, 내가 좌절하지 않도록 격려해주고 있다. 내 딸이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그들이 내게 같은 일을 해 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받은 온기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연대의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마리엘이 곁에 있음을 느낀다. 이 연대에는 그날 밤, 범인이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마리엘은 제도에 책임을 묻기 위해 활동을 벌였고, 빈민가 출신의 흑인 여성인 주제에 지금까지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차지한 역사가 없었던 지위를 감히 차지하려 들었다. 사람들은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고 느낀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전 세계의 활동가들과 함께 저항하며 결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내 딸 마리엘의 모범적인 행보가 국제적으로 더욱 인정을 받았고, 그것이 곧 정의를 요구하며 브라질 정부에 책임을 묻는 투쟁으로 변화했다. 마리엘은 다정한 사람이었고, 사랑으로도 투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 같은 존재였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며 영감을 제공했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권옹호자였다. 우리 가족은 이 범죄의 원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가 내 딸을 죽였는지, 누가 살인을 지시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리네테 다 실바는 변호사이자 마리엘 프랑코의 어머니입니다.

수, 2018/09/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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