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조수진 변호사를 만나다

지역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조수진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화, 2017/04/25- 17:14

표지

고등학교 때는 문예반 학생이었다. 법률 전문기자가 되려고 법대에 갔다. 그러다 혼자서 민사 소송을 해 엄마가 떼인 돈을 받아냈다. 이후 법학이 다르게 보였고, 재판이 재미있어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노동법으로 밥벌이를 해야겠다’고 맘먹고 금속노조법률원에 들어갔다. 그러다 다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진로를 틀었다. 보좌관으로 잔뼈가 굵을 무렵, 국회 문을 열고 나와 이번엔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었다. 6년간 국선전담 변호사 활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40일간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민변으로 온전히 복귀한 조수진 변호사를 만나 그 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B내리고 C뿌리던 법대생, 민사 소송을 하다

문예반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조수진’은 국문과를 갈 줄 알았다. 대학 진학 무렵, ‘얼결에 들어간 거지만 시 쓰는 문예반에서 활동했으니 국문과를 가야겠지.. 그런데 시를 쓰면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라는 여러 생각과 의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신문방송학과를 가서 기자 생활을 하면 시를 쓰는 것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생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조수진 변호사의 언니가 조수진 변호사를 꼬드겼다. “법대에 가서 법조기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니?”

언니의 꼬임(?)에 넘어간 고등학생 조수진은 이내 ‘수업이 이해가 안 돼 학점이 안 나오는 법대생’이 됐다. 논리학을 공부하는 것도 어려웠고, ‘내가 이걸 왜 외워야 하나’ 이해도 되지 않았다. 한창 학점에 B가 내리고 C를 뿌리던 대학생 조수진에게 어느 날 큰 일이 생겼다.

당시 조수진 변호사의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300만 원 정도를 달아놓고 먹던 중소기업이 부도 위기를 맞자 그간 누적된 식대를 주지 못하겠다고 나왔다. 딸이 법대생인데, 소송 까짓 거 못 할 게 뭔가. 조수진 변호사의 어머니는 ‘돈을 받아내면 10%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가족이니까 엄마를 대리해서 재판을 해서 돈을 받겠다”고 대학생이 서면을 써서 법원에 제출했다. 상대방은 재판에 출석도 하지 않았고, 결과는 조수진 변호사의 승소였다.

IMG_9577

승소하면 돈을 당연히 받는 줄 알았더니, 그게 또 아니란다. 집행 절차가 필요했다. “‘이게 뭐지?’ 하면서 집행관에게 서류를 줬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집행관이 ‘그 사무실에 있는 집기에 딱지를 붙입시다’ 하더라고요.” 집행 절차에는 집행인이 동행해야 했다. 그래서 법원 집행관이 사무실 집기에 ‘빨간 딱지’ 붙이는 데 따라갔다. “그 사무실 분들이 뜨아한 표정으로 보는 거예요. ‘이건 뭐냐’ 이런 분위기로. 근데 그 딱지를 붙인 다음날 바로 돈이 입금됐어요.”

그때부터 법 공부에 흥미가 붙은 조수진 변호사는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다. “그때 저는 변호사가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는 직업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요. 노동시간도 짧은데 단시간에 큰돈을 버는 줄 알았죠.”

그렇게 본격적인 법 공부를 시작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를 했어요. 그러다 ‘노동법으로 밥을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동법만 할 수 있는 사무소를 찾다가 금속노조 법률원에 들어갔어요.” ‘입사’하니 선배들은 당연히 노동위원회에 가입해야한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당연한가보다’ 생각하고 변호사가 된 첫 해에 노동위원회 가입으로 민변 활동을 시작했다.

국회에 가다

막상 변호사가 되니 ‘적게 일하고 많이 번다’는 오해가 깨진 것은 둘째 치고, 비정규직 법안 자체가 잘못되어있는 상황 속에서 ‘변론’으로만 할 수 있는 활동에 한계를 느꼈다. “거기서 한 2년 반 정도 하다보니까 비정규직 법 때문에 너무 문제가 많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여성인권위원회에서 한 번 만난 인연으로 연락을 준 이정희 변호사님.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셨던 그 분의 보좌관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제가 알기로는 돌아가신 김승규 변호사님께서 저를 추천해주신 걸로 알아요. 그래서 2년 반 정도 18대 국회 때 의원실에서 보좌관 활동을 했죠.”

조수진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299명이면 국회에는 299개의 중소기업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의원 월급 다 삭감하자’는 식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국회에서 활동해본 조수진 변호사의 설명으로는 국회의원이 제대로 활동한다면 세비 900만 원은 남아나지 않는 게 정상이다. 사람도 만나고, 지역구 사무실도 운영해야 하고, 정책개발을 위해 연구자들에게 용역비용도 지출한다.

이렇게 역동적인 국회는 변호사들에게도 좋은 무대다. 입법 보좌관들의 노력으로 법을 처음부터 잘 만들면 재판까지 이어지는 사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나라는 국회와 행정부에 굉장히 많은 변호사들이 들어가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법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단계부터 문제가 없게 하기 때문에 사법부로 넘어가는 사건을 줄일 수 있다는 거죠.”

IMG_9667

이때의 생활은 조수진 변호사의 변호사 생활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옆에서 ‘아, 이런 식으로 문제를 파고 들어서 공부하는 거구나’를 배웠어요. (이정희 의원은)어떤 문제가 있어서 ‘새로운 법을 만들자’라고 맘먹으면 자료를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관련 법안, 관련 연구 논문까지 다 찾아보시는 거예요. 1차 자료를 다 보고 나서 그걸 보강하는 2차 자료, 어떤 때는 3차 자료까지 보셨어요.” 법 이론상 가능한 이야기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다방면으로 검토한 후에야 새로운 법안이 탄생했다. 자료를 어떤 식으로 보고 정리해 나가야 하는지, 얼마나 다양하게 검토해야 하는지 큰 영향을 받았다.

재판을 좋아해서 다시 변호사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조수진 변호사가 법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을 바꿔놓았다. “만들어진 법을 공부하는 건 음식점으로 치면 설거지 같은 단계예요. 법을 만드는 일은 재료 다듬고 음식 만드는 일로 비유할 수 있을 거 같고요.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국회에서 지켜보니 너무 신기했어요.”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역동적이고, ‘선한 가치’라고 하여 필연적으로 법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판례는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국회를 나온 조수진 변호사는 국선전담변호사로 다시 송무를 시작했다. 형사 피고인을 변호하는 형사 국선전담변호사. 1~2년 개업 변호사로서의 경험과 역량을 다지는 계기로 삼으려던 게 어느 덧 6년이나 이어졌다.

형사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면 한 달에 20-30명가량의 피고인을 만난다. 1년이면 300명이 넘는다. 당연히 형사 재판을 처리하는데 속도가 붙는다. 조수진 변호사는 “변호사의 업무능력 면에서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효율성을 배운 것 같다”며 사람을 매우 많이 만난다는 점을 국선전담변호사의 특징으로 꼽았다. 또 “아무래도 배움이 길지 못했거나 저소득층이 국선을 신청하시는 분이 많다”며 “변론 외적으로도 챙겨주는 마음이 필요한 게 이 분야의 특이한 점”이라고 짚었다.

사건을 수행하다 보면 당연히 안타깝거나 기억에 남는 사건도 생기게 마련이다. 조수진 변호사가 꼽는 ‘정이 많이 갔던 사람’은 취업사기를 당했는데 오히려 사기 공범으로 몰렸던 젊은 여성이다. 이 여성은 사장이 중국 출장 중이라는 말만 믿고 쇼핑몰 회사에 취업한 뒤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아 쇼핑몰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사기 공범으로 체포됐다. “알고 보니 그 쇼핑몰은 허위였던 거예요. 완전 취업사기죠. 사장이라는 사람은 중국에서 아예 입국하지 않고 돈만 환치기 형식으로 중국으로 넘어갔어요.” 사건을 설명하는 조수진 변호사의 목소리가 점차 격앙됐다.

IMG_9634

“이 분은 몇 십 억 대 사기사건의 공범이 됐고, 유죄를 인정받으면 20대 젊은 사람이 손해배상을 계속 당할 수도 있잖아요. 평생 어떻게 살겠어요?” 이 여성은 언니와 함께 발 벗고 나서 직접 증거로 쓸 수 있는 CCTV 영상을 찾아다니고, 몇 개월간 온갖 증인을 찾아 법정에 세웠다. 법정에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계속 방청을 왔다. “분연히 다퉜는데 집행유예를 받은 거예요. 아마 그 판사님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졸지에 ‘사기사건 공범’이 된 ‘취업사기 피해자’는 “꼭 무죄를 끝까지 다투겠다”며 2심으로 넘어갔다. “국선전담이 약간 아쉬운 게, 그렇게 애착이 가는 사건을 끝까지 추적할 수가 없어요. 빨리 정을 떼야 돼. 빨리 정 주고, 빨리 떼고. 그런 게 약간 힘들죠.”

국회에서의 경험은 변호사로서 재판을 수행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기존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를 깨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별로 무섭지도 않아요.” 법은 시대와 사회의 모습에 따라 변한다. 현상이 변해 더 이상 기존의 법으로 담아낼 수 없다면 누군가 새 법안을 발의하고, 법이 바뀐다. “하물며 그 법을 해석한 판례야말로 현실이 바뀌어도 최대한 많은 현실을 담아낼 수 있게 더 넓게, 적극적으로 법을 활용하는 것이 맞는 판례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의 취미는 민변!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취미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일과 일 사이에 잠깐 쉬고 재충전하기 위한 취미, 두 번째는 여가를 즐김으로써 평소의 일과 생활에서 한 발짝 떨어질 수 있는 취미, 세 번째는, ‘지금 여기’에 집중함으로서 삶의 의미를 고양하는 취미. 조수진 변호사에게 민변은 ‘세 번째 종류’의 취미다.

IMG_9689

“어떻게 보면 ‘너무 가볍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주변에서 ‘너 민변도 나가니?’라고 놀라는 분이 있으면 ‘취미생활’이라고 얘기해요.” 대학교 서클 활동처럼, 돈을 벌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재미있어서, 내 선택으로 하는 활동이다.

조수진 변호사가 주로 활약하고 있는 위원회는 민생경제위원회다. “민생은 전통적인 인권 개념과 달리 굉장히 새로운 분야예요. 그만큼 실생활과 밀접한 여러 문제에 대해 활동하실 수 있죠.” 부동산, 임차 등 주택정책,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파산회생 등 금융정책,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재벌을 견제하는 공정경제 분야, 세금 낭비를 감시하고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조세재정 분야 등 실생활의 많은 문제들이 민생경제위원회의 소관이다. 5월 15일부터는 매주 월요일 저녁 민생위가 준비한 민생 관련 법률 실무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민생위의 장점은, 어느 위원회나 그렇겠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민생위가 다루는 문제들이 후배도 큰 소리 낼 수가 있는 분야라는 점이에요. 생계형 문제가 많기 때문에 후배들이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워서 금방 뛰어넘을 수 있죠.” 그래서 조수진 변호사는 민생위를 ‘봉숭아 학당 같아서 정이 간다’고 표현한다.

다시 새로운 도전 앞에서

민변 활동에서 조수진 변호사가 자신의 첫째가는 롤모델로 꼽는 선배는 ‘민생경제위원회의 조물주’ 김남근 변호사다. “공익활동 하면서도 변호사로서의 전문성도 유지하시고, 박사도, 또 공익이 아닌 전문법으로 박사학위 받으셨잖아요.” 여전한 열정에 철저한 건강관리까지, 닮고 싶은 부분이 많다. 이제 새롭게 개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선배 변호사들에게 묻고 도움 받는 부분이 많다.

“요 며칠 2-3주 개업을 준비하려고 생각해보니, 내가 구슬만 많이 모았고 한 줄로 꿰지는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앞으로는 뭔가를 좀 진득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변호사로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구슬을 모았다’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문득 만화 <드래곤볼>이 떠올랐다. 7개를 모으면 무엇이 되었든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비한 구슬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다. ‘드래곤볼’처럼 변호사가 할 수 있는 7개의 역할을 모으면…… 그런 상상을 하다 웃고 말았다.

“(‘드래곤볼’)다 모으면 ‘여자 김남근’ 되는 거 아니에요? 조수진 변호사님 개업과 동시에 여자 김남근 변호사님이 되실 거 같네요.”

“저야 영광이죠!”

조수진 변호사는 개업과 함께 민변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민생경제위원회 조세재정팀에서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사용한 예산에 대해 진행 중인 주민소송부터 참여할 계획이다. 변호사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담금질하고 있는 조수진 변호사, 내일은 또 무슨 도전을 할지 그 행보가 사뭇 기대된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국제 질병 분류에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던 동성애를 제외했다. 이를 기념하며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로 지정되었다. 31번째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하며,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사무국장이자 사업운영팀장인 보통 활동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보통님과 띵동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하는 보통입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띵동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위기를 지원하는 센터에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는 다양한 위기가 있습니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따돌림이나 가정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요. 정체성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라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하거나 우울감이 높은 경우도 많고요. 그 외에도 진로나 대인관계 등 청소년으로서 겪는 여러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띵동은 어떤 종류이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있다면 이들을 만나 상담과 위기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보통 활동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보통 활동가

Q.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더 이상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이 힘든 시기를 넘기고 같이 살아가자는 마음을 모아 시작되었어요.

띵동은 2013년에 모금을 시작해서 2014년 겨울에 개소했어요. 띵동이 왜 모금을 하면서 시작되었는지 혹은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전문적인 센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궁금한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다른 사회 집단들도 그렇듯) 성소수자도 자신들만의 커뮤니티가 있고, 이를 통해 서로 교류하면서 친밀하게 지내요. 수십 년 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너무 많은 친구와 동료, 지인들의 안타까운 선택을 목격한 아픔이 있어요. 이로 인해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중에서도 특히 10대의 자살 위기가 높아요. 실제로 10대에 자신의 친구를 떠나보낸 경험도 정말 많고요. 10대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밝혀졌을 때, 주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움받을 곳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많이 애썼지만, 그럼에도 죽음으로 떠나보낸 청소년 성소수자가 많았어요. 띵동이 개소하기 전에도 소중한 청소년 한 명을 잃었습니다. 그때 더는 안 되겠다며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과 이런 위기에 공감한 여러 사람이 모여서 모금 활동을 시작한 거죠. ‘우리가 돕자. 상담센터든 쉼터든 뭐든 만들자. 더 이상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이 힘든 시기를 넘기고 같이 살아가자.’라는 마음을 모아 시작되었습니다.

Q.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정체성이 밝혀졌을 때, 주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움받을 곳이 없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학생에게 ‘다른 학생들이 너의 특수함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괴롭힘을 감수하라.’며 학교 폭력을 정당화하는 선생님이나 자녀의 따돌림을 걱정하기 이전에 ‘네가 어떻게 성소수자냐. 너를 내 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집 밖으로 쫓아내거나 폭력을 가하는 부모님들이 계세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이렇게 내몰렸을 때 도움받을 곳이 없는 거예요.

한국에는 청소년 쉼터가 있어요. 청소년들이 집을 나가게 되었을 때 쉼터에 갈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고요. 하지만 찾아온 청소년이 성소수자일 때는 쉼터에서 입소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정 폭력을 당해서 집을 나왔다고 입소 상담을 했는데, 해당 쉼터에 성소수자가 입소할 경우 다른 청소년에게 해를 미칠 것 같아 입소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온 적도 있고요. 트렌스젠더 청소년은 성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쉼터의 특성상 어느 쉼터를 가야 할 지부터 고민해요. 고민 끝에 입소 상담을 받더라도 우리 쉼터에 못 들어오실 것 같다는 응답을 받기도 하고요.

Q. 쉼터 외의 청소년 센터는 어떤가요? 말씀해주신 쉼터들과 유사하게 청소년 성소수자가 원활하게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인가요?

네. 구체적 사례를 인용할 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된 사례가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학교 안에도 위(Wee)클래스 상담이 있고 학교 밖에도 청소년 상담센터가 많이 있으나 복불복이에요. 그건 꼭 청소년 상담 센터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담 센터도 그렇고요. 어느 센터의 어느 상담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상이해요. 어떻게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상담자들도 많고요. 어떤 상담자는 정체성 이야기만 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부모님께 연락해 내담자를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시켜요. 정체성에 대한 정보 공개는 본인의 동의와 충분한 확인이 필요한 문제인데 말이에요.

상담자가 혐오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 어리니까 좀 더 생각해보고 치료를 받아보라’는 혐오 발언을 했던 인권침해적 상담이 띵동에 제보된 적도 있습니다. 이 사례는 해당 청소년의 동의를 얻어 기사화하고 운영 기관에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었습니다. 당시 띵동의 문제 제기로 인해 해당 기관에서 전체 상담자 대상 성소수자 인권 교육이 1회 시행되었는데,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소년쉼터 종사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보통 활동가

청소년쉼터 종사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보통 활동가

Q.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전문 기관의 부재로 생겨난 띵동은 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나는 것 같은데요. 한 해에 대략 몇 명의 청소년을 만나고 상담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띵동의 연간 상담 건수는 첫 해 220건에서 매해 점차 늘어나 2020년에는 487건이 되었어요. 이번 2021년은 500건을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상담 이전에 카카오톡을 통해 상담 문의나 접수를 하고, 간단한 정보를 나누거나 일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작년 한 해 2,400건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6명의 활동가가 매일 투입되고 있지만, 활동가들이 상담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캠페인·인권 교육·모금 등 비영리 민간 단체 운영을 위한 전반적인 업무를 함께 하다 보니 소화할 수 있는 상담의 수에 한계가 있어요. 상담 요청과 위기는 많은데 그 건수를 조절하며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담은 카카오톡 채널을 이용하여 신청을 해주면 상담 활동가와 일정을 잡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띵동 센터에 방문하셔서 대면 상담으로 진행하는 것을 권해 드리지만, 센터 방문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전화 상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거나 부모님의 감시가 있는 청소년 혹은 성소수자 센터에 방문하기 두려운 분들이 주로 전화 상담을 이용합니다. 작년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줌 상담도 추가되었습니다.

Q.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청소년’이자 ‘성소수자’이기에 복합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코로나19 이후 가중되는 어려움도 있나요?

(코로나19 이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고립감도 굉장히 높아졌어요.
일상 공간에 있기만 해도 성소수자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거든요.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기존의 상담 주제부터 말하자면, 띵동의 가장 많은 상담 주제는 정신건강(심리문제)입니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일상인 사회니까요. 본인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성소수자 혐오 표현이 학교나 가정에서 들리면 상처받게 돼요. 우울감과 함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죠.

두 번째로는 가족과의 갈등도 높습니다. 학대도 많이 다뤄지는 주제에요. 진로, 취업, 학업 등도 많이 다뤄지고요. 원래 청소년 상담에서 많이 다뤄지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내가 취업을 할 수 있나? 내가 성소수자인 게 밝혀지면 나는 어떻게 되지?”와 같은 걱정도 가지고 있어요. 진로와 학업에 대한 고민이 더 막막한 거예요. 성소수자로서의 롤모델이 부재하고 자립을 꿈꿀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어요.

자립 상담도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되자 마자 집을 나가 자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들이요. 성소수자인 자신을 가족이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독립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어요. 아니면 연애 고민도 있습니다. 짝사랑 혹은 연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까요.

코로나19 이후에는 대면이 어려워져 프로그램을 많이 줄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 건수는 늘어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정에서 폭력을 겪을 위기가 증가했어요. 실제로 이로 인한 탈가정 사례도 늘었는데, 코로나19로 청소년 센터들도 이용 인원에 제한을 두다 보니 탈가정한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지원이 줄어들어 위기가 높았던 2020년이었습니다.

성소수자 친구와 카톡을 하거나 전화를 할 때 가족이 보는 등 사생활에 대한 보호가 낮아지니까 아웃팅 위험이 커졌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외출 시마다 동선을 부모님에게 공유하면서 오프라인으로 성소수자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워졌고요. 이렇듯 가정 폭력과 탈가정 문제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또래 친구와 어울릴 기회가 줄어들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고립감도 굉장히 높아졌어요. 일상 공간에 있기만 해도 성소수자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거든요.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성소수자 모임을 나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이러한 외로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데, 그걸 못하게 되니까 우울감과 고립감이 높아진 거에요. 코로나19 발생 이후 탈가정과 정신건강, 우울 문제의 상담 건이 굉장히 많이 증가했습니다.

2020-2021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보고서 ‘2020년 주요 상담 주제’ (p.12)

2020-2021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보고서 ‘2020년 주요 상담 주제’ (p.12)

Q.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기 위해 띵동이 설립된 지 7년 정도가 흘렀는데, 점차 위기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들이 많아진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다행이다 싶기도 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의 수가 늘어난 게 아니라, 그동안 도움이 필요하지만 고립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청소년이 이제 띵동에게 연락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띵동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청소년이 혼자 고립되어 있지 않고 저희와 연결되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띵동을 모르는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많으니까, 더 많이 연결되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Q.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공적영역이 부재한 상태인데요,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국가와 국제사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성소수자가 우리 시민이자 동료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이 인식에서 시작한 국가와 국제사회의 변화가 필요하고요. 2022년에 ILGAThe International Lesbian, Gay, Bisexual, Trans and Intersex Association라는 협회에서 LGBTIQ YOUTH: Future Present Change를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해요. 현재 청소년 성소수자의 삶과 미래를 주목하고 있는거죠. 국제 사회도 이들이 행복해야 하고,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래야 하죠. 이미 한국은 UN에게 경고를 많이 받아왔어요. 2019년 9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이행에 대한 제 5·6차 심의에서 한국 정부에게 아동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했고 실질적인 정책 시행을 요구했어요. 지금 느린 거죠.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10여 년만에 서울시교육청에서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성소수자 학생을 보호하고 지원하겠다는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띵동에서 이를 질책하기도 했지만, 응원도 많이 했었죠. 그러나 예산표를 보니, 성소수자 학생 보호 지원 예산이 0원으로 편성되어 있었어요. 단지 명시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작년과 올해 극심한 트렌스젠더 혐오로 고통받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러고 있으면 안 되죠. 국제 정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답답합니다.

2021년 서울시교육청 제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에 '성소수자 학생 보호 및 지원'이 포함된 것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설치했다.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

2021년 서울시교육청 제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에 ‘성소수자 학생 보호 및 지원’이 포함된 것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설치했다.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

Q. 국가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시민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시민(앨라이)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앨라이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사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칭찬받아야 하는 일이 아닌 게 맞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지한다는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요.

일단 앨라이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사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칭찬받아야 하는 일이 아닌 게 맞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지한다는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런 사회에서 ‘그래도 나는 앨라이다, 나는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관심을 가질 거야’라고 말씀해주시는 분은 성소수자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돼요.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너무나 위로가 될 테니, 만약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계신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주세요. 누군가 성소수자 차별적인 말을 할 때 적극적으로 반대해주시는 것도 큰 힘이 되고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민 청원도 계획 중에 있으니 많이 동참해주시길 바라요. 무엇보다, 성소수자가 우리 동료이자 시민이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주위에 많이 알리고, 여러분들도 동료로서 같이 잘 살아주세요.

Q. 마지막으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하여 청소년 성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인권을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청소년들에게는 “다시 생각해봐. 일시적인 혼란이야. 고칠 수 있어.” 등의 말보다는, “네가 어떤 사람이든 괜찮아. 행복할 수 있고, 아니면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이 필요합니다.

일단 성소수자가 낯선 분들도 많을 거에요. TV나 기사로 접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요. 사실 성소수자는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단지, 말하지 못할 뿐이죠. 그들은 외계인도 아니고 이상한 사람도 절대 아니에요. 여러분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죠. 성소수자가 오직 성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일과에 피곤함을 느끼며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이 성소수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져요. “너 너무 혼란스러운 거 아니니?’, “넌 아직 어리니까, 그 때는 그럴 수 있어.”, “나도 네 나이 때 그랬어.” 등의 말씀을 하시기도 하고요. 청소년은 어려서 혼란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청소년기에 겪는 일시적인 혼란이 아닙니다. 정체성에는 혼란이 없어요. 내가 성소수자인 것 같을 때 그래서 앞으로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할 때 엄청난 혼란이 찾아오긴 합니다. 그러나 이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아니라 ‘내가 성소수자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주변 사람 혹은 이 사회가 나를 거부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에서 오는 공포와 혼란입니다. 내가 성소수자가 아닐 수도 있어서 오는 혼란이 절대 아닙니다. 이때 청소년들에게는 “다시 생각해봐. 일시적인 혼란이야. 고칠 수 있어.” 등의 말보다는, “네가 어떤 사람이든 괜찮아. 행복할 수 있고, 아니면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이 필요합니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은 만큼, 혐오의 말보다 서로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말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더불어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고, 띵동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직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무지개빛 에너지 뿜뿜! 청소년 성소수자 응원프로젝트!

국제앰네스티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하며,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스트레스컴퍼니와 함께 청소년 성소수자 응원프로젝트 [영롱한 무지개빛 당신을 응원해요!] 캠페인을 운영중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세상의 혐오와 차별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듬고 이에 맞서 나로 존재하는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응원합니다!

화, 2021/05/18- 02:00
3
0
7년간 국제앰네스티의 국제사무국 소속 동아시아 조사관Researcher으로 일했던 아놀드 팡Arnold Fang 조사관이 5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앰네스티를 떠났습니다. 코로나19로 직접 만날 수 없어 온라인 상에서 작별 인사를 해야 했는데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커뮤니케이션팀의 신한나 팀장이 아놀드 팡 조사관과 만나 그간의 소회,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을 들어보았습니다.
아놀드팡 조사관과 국제앰네스티 신한나 팀장

아놀드 팡 조사관은 홍콩에서, 신한나 팀장은 서울에서 줌으로 만났다.

한나: 안녕, 아놀드.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 너무 아쉬워요. 아놀드를 잘 모르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분들에게 본인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놀드: 안녕하세요 저는 아놀드 팡입니다. 앰네스티 국제사무국 소속 동아시아 조사관이고요. 홍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북한, 몽골, 일본 지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각 나라를 방문하며 조사 활동을 펼치기도 했고, 한국도 자주 방문했었어요. 북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조사했고, 관련 단체의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북한 이슈를 알리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한나: 조사관으로는 얼마 동안 일하신 거죠?

아놀드: 2014년부터 7년 간 일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꽤 오랜 시간이네요. 2014년에 입사하자마 한국지부에 방문했었어요. 노마(Noma) 조사관과 함께 갔었어요. 당시에는 사무실이 합정에 있었죠? (노마 조사관은 2007년 촛불집회를 다룬 <한국: 촛불 집회에서 경찰력 집행>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국제앰네스티 아놀드팡 조사관이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PROTECT THE HUMAN 피켓을 들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아놀드팡 조사관이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PROTECT THE HUMAN” 피켓을 들고 있다

한나: 저도 그 때 생각이 나네요. 저와 거의 입사 동기였네요. (전 그 후에 잠시 떠난 후 재입사하긴 했지만요) 조사관 업무는 그 전에도 경험이 있으셨나요?

아놀드: 당시 인권 단체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것은 앰네스티에서의 경험이 처음이었어요. 그 전에는 국제개발단체에서 일했고, 북한과 관련한 업무를 진행했었습니다.

한나: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놀드: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랬습니다. 처음엔 정말 어려웠습니다. 국제개발 분야에서 북한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 필요했거든요. 국제앰네스티 안에서도 북한이라는 주제는 뜨거운 감자였어요. 북한에 대해 전 세계 여러 지부가 알고 싶어하지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북한에 대해 궁금하면 전 세계 지부에서 저에게 문의를 했었고요. (웃음)

한나: 한국지부에 4년 전부터 북한인권 담당자가 생겼어요.

아놀드: 한국지부에 북한 인권 담당자가 있는 것은 큰 성과입니다. 저는 한국지부가 북한 관련 인권 문제를 조금 더 주도적으로 가져가서 전 세계에 알리기를 바라고 있어요.

2016년 3월 9일 북한 인권 보고서 기자회견 현장에서 아놀드 팡 조사관

2016년 3월 9일 북한 인권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 북한 내 휴대폰 사용 및 외부세계 정보 제한 실태> 기자회견 현장에서 아놀드 팡 조사관

한나: 북한인권 외에 또 어떤 업무를 진행하셨죠?

아놀드: 여러 국가의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담당했었어요. 7년 전 국제앰네스티에서 처음 일했을 때 한국 내 시위대를 향한 과도한 경찰력에 대해 다뤘었죠. 홍콩 사람으로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남용을 볼 때마다 그 때가 떠오릅니다.

조사관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 말하자면 지난 7년간 저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시민들의 투표로 정권을 바꾸는 모습, 2016년의 촛불집회, 시민들의 힘, 피플 파워people power를 봤죠. 그 이후 표현의 자유나 집회 시위에 대한 이슈를 많이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사회 내 LGBTI성소수자 인권, 군형법, 트랜스젠더, 여성 인권 이슈 등을 더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조사하는 영역은 아니지만요)

한나: 코로나19 이후에 조사관으로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놀드: 각 나라 지부를 방문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경험이었어요. 물에 손가락을 넣고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었어요. 각 지부의 직원, 협업 파트너, 평범한 시민들을 통해 인권 문제에 대해 듣는 경험이 저에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코로나19로 여행이 제한된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2020년 2월 국제앰네스티 세계인권현황 연례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때였네요.

한나: 저도 아놀드를 보지 못해 아쉬워요. 이제 앰네스티 조사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물어볼게요. 앰네스티 조사관이라는 역할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아놀드: 먼저, 인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겠죠. 특히 국제앰네스티에 대해서도요. 국제법과 앰네스티만의 정책, 앰네스티의 입장에 대해 계속 배워야 해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엄청난 문서들을 작성해야 하거든요. (웃음). 읽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각기 다른 글쓰기 방식도 필요해요. 유엔을 상대로 애드보커시 문서를 써야 할 때도 있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써야 할 때도 있죠. 글쓰기 방식이 아주 다른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메시지를 읽는 이에 맞추어 잘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조사관은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쓰게 됩니다. 글을 쓰기 위한 미팅과 자료 조사, 또 다른 문서 읽기를 포함해서 말이죠.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의 표지

보고서 『통제된 사회, 단절된 삶』의 표지

한나: 조사관으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아놀드: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이 있다고 해도 조사관은 앰네스티라는 단체를 대표해서 발언해야 합니다. 중립적인 입장을 표현해야 하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해요. 늘 자신에게 익숙한 주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파트너와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나: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나요?

아놀드: 한국과 북한이 조금 더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도, 정보도요. 이산 가족들도 서로 만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사회 내에선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봐요.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여러 소수자들을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한나: 한국지부의 회원과 지지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놀드: 한국 시민들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어요. 이 변화는 희망을 주었죠. 홍콩의 많은 시민들도 한국의 사례를 보고 힘을 얻었고요. 우리가 모두 함께 변화를 위해 행동한다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시민들에게는 전 세계를 향한 사명이 있는 것 같아요. 시민들의 힘을 보여준 국가니까요, 이 어두운 세계 속에 계속 작은 빛을 내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나: 마지막 질문이에요. 인권 단체의 조사관으로 일하는 것은 늘 스트레스와 마주하는 일일 텐데요.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나 인내심 유지 비법이 있을까요?

아놀드: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일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전 요즘 운동을 많이 해요. 음악을 만들기도 해요. (아놀드는 앨범을 발매한 뮤지션이다). 액티비즘 이외에도 나만의 활동이 있어야 해요. 코로나19로 야외활동을 잘 하지 못하게 되면서 베이킹을 시작했어요. 어제도 샌드위치 빵과 사워 도우sour dough를 만들었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아놀드에게 보내는 굿바이 편지

앰네스티 한국지부 동료들이 아놀드에게 남긴 롤링페이퍼, 온라인 롤링페이퍼로 작성해 보내주었다.

7년간 함께 일하면서 한국사회 내 인권의 변화를 경험한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멀어진 물리적 거리로 직접 전해주진 못했지만 한국지부의 동료들은 온라인 롤링 페이퍼로 아놀드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랜선 너머로 아놀드의 커다란 웃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놀드 팡 조사관, 수고 많았어요!
인터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커뮤니케이션팀 신한나
월, 2021/07/12- 18:00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