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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584] 선진국 한국을 가로막는 '자료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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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584] 선진국 한국을 가로막는 '자료 권력'

admin | 금, 2021/09/17- 19:06

선진국 한국을 가로막는 '자료 권력'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관료제 개혁에 달려있다

 

정태석 전북대학교 교수

 

2019년 2월에 쓴 시평에서 나는 촛불정권의 개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관료제 혁신이 중요하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7개월 남짓 남은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념이나 가치 지향, 정치적 입장에 따라 촛불의 상징, 의미에 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할 것이고, 그래서 촛불정권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이 초기에 적극성을 보였던 불평등 개선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부동산 안정, 4대강 재자연화, 탈핵과 에너지의 생태적 전환, 교육개혁 등의 개혁 과제에서 아쉬움이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심각하게 평가해야 할 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과 실망의 화살이 대통령과 정부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개혁이 후퇴하거나 지연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민주당 정권의 계급·계층적 지지기반으로 인한 한계도 있을 것이고, 인사의 실패로 인한 문제도 있을 것이며, 절차의 민주성이나 합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추진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권이나 민주당이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외면하기도 절차적 합리성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며, 특정 자리에 꼭 들어맞는 사람을 찾고 임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할 수도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정치적 심판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관료조직의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이념, 가치,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이 서로 경합하고, 주권자인 일반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정치적 선택을 하며, 여기서 다수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정부와 의회를 통해 선거에서 내걸었던 공약을 실행하고, 그 성과에 따라 정권이 유지되거나 바뀌는 정치적 과정을 반복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을 보면,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자신의 이념이나 가치 지향에 따라 공약한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우파정권이 등장하면 사적 소유권과 시장 자유를 옹호하는 시장친화적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며, 좌파정권이 등장하면 보편적 복지와 평등을 지향하는 복지국가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또한 생태주의 정당과 연합한 정권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인정받고 있으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도 공고해진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촛불 저항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종종 국민들 앞에서 개혁 정책의 적극적 추진을 약속해왔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조차도 막상 각 실행부처로 가면 이런저런 제동이 걸리고 애초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자주 목격한다. 다른 선진 민주주의 나라들과 달리 신속한 정책 전환을 방해하는 관료조직의 벽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4대강 보 철거와 재자연화를 추진해온 물관리위원회가 왜 정권 말기가 다 되어가도록 보 하나도 철거하지 못하고 있는지, 탈원전 및 탈석탄 에너지 전환 정책을 모색하고자 한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여전히 탈원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전환전략을 좀 더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는지, 왜 기재부는 대통령이 코로나로 인해 영업손실이 큰 몇몇 업종의 자영업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선언했음에도 여전히 초라한 수준의 보상안을 제시하며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방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물론 위원회는 일반적인 관료조직과 달리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다양한 전문가들이나 시민사회 활동가들, 그리고 일반시민들까지도 포함하는 논의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위원회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는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많을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참여하는가?', '참여자를 누가 결정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전문가의 이름으로 위원회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이 사실상 이해관계자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책 전환도 이루어낼 수 없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관련 부처 상급 관료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들이 새로운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새로운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고 적극적인 정책 전환을 추구하지 않으면 신속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인 관료들의 주된 관심은 정권이 바뀌어도 자리를 유지하고 승진하는 것이며, 이들 중 일부는 퇴직 후의 일자리를 모색하거나 정치적 야심을 품기도 한다. 그래서 상급 관료들일수록 승진이나 퇴직 후 진로를 생각하며 누가 차기 정권을 차지할 것인지 계산한다. 그러니 이들은 특별한 공적 책임감이 강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책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동기가 없거나, 행정을 통해 특정한 정책적 지향을 암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정치적 명성을 쌓으려고 하기도 한다.

 

정년이 보장되는 관료 권력은, 주어진 임기 동안 새로운 정책을 펼치려고 정무직 관료들을 동원하는 선출 권력에 고분고분 자신의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5년마다 바뀌는 선출 권력이 관료 권력과의 싸움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책을 지향하는 권위주의 성향의 보수정권이 관료들의 통제에 더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관료들은 자신의 승진이나 기득권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 전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가능하면 기존 정책과 규정을 유지함으로써 그동안 누려온 각종 권한과 이권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사회계층으로 중상층에 속하는 상급 관료들은, 군사독재정권을 포함한 보수정권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보수 기득권층이나 권력층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들을 형성하고 또 정당화하는 데 기여해 왔는데, 이것은 관료들의 조직 이익과 보수 정치세력의 기득권 간의 친화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관료 권력이 개혁적 정책 전환을 추구하는 선출 권력에 맞서는 방식은 대체로 자료를 통제하는 방식과 절차를 내세우는 방식이 있다. 새로운 정책을 지향하는 정부가 합리적 정책 전환을 하려면 기존의 정책자료들을 재해석하고 재평가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정책의 기본틀을 바꾸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실무를 담당하는 상급 관료들이 기존 자료를 재탕하면서 이를 새롭게 재구성할 의지나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실질적인 정책 전환의 근거를 마련하는 길은 요원해진다. 이것이 바로 관료들이 '자료 권력' 또는 '정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관료들은 또한 정책 논의 절차를 내세워 정책 전환을 지연시키거나 훼손시킬 수도 있는데, 각종 규정에 따라 이런저런 절차를 거치다 보면 어느새 정책의 취지가 뒤틀어져 정책 목표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는 기존의 정책을 정당화해온 온갖 자료들이 동원된다. 이것은 관료들이 '절차 권력'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종 위원회의 운영에서도 상급 관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위원회가 정부가 공약한 정책 방향을 실현하려면, 이를 지지하는 전문가들과 상급 관료들이 의사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견을 조율하면서 정책 전환을 끌어내야 한다. 개혁 정권에서 이 과정은 기득권자와 기존 체제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탈원전과 탈탄소를 위해서는 원전 관련 업계와 탄소에너지 업계를 설득하며 반발을 이겨내야 하며, 부동산 누진세 부과와 복지 강화를 위해서는 부동산 소유층이나 부유층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이것은 강력한 정책 전환의 의지를 지닌 관료조직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고 대다수 국민의 고통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기재부가 국가재정정책을 집행해온 과정을 돌아보면, 역시 선출 권력이 관료 권력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현 기재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 관료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는 정통 관료 출신으로서 상급 관료 시절에 형성해온 재정정책에 대한 기존 사고틀을 전혀 바꾸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혁 정권의 정책 방향에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어 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재정 균형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태도는, 선출 권력에 맞서는 관료 권력 대변자의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성과 공정성을 기대하며 임명했던 감사원장이 사적인 출세욕을 숨기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맞서 감사 권력을 남용한 사례도 보았다. 기대를 안고 임명된 장관들이 상급 관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약속했던 정책들을 펼쳐보기도 전에 물러나기도 했고, 전문성이 부족한 장관들이 상급 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해 적극적인 정책 전환에 실패하기도 했다. 더구나 대통령의 의지조차 관료의 벽에 막혀 쉽게 실현되지 못하고, 국가 예산편성의 최종 결정권을 지닌 국회의 의원들조차 기재부 장관에게 몸을 낮추고, 기재부가 예산편성 권한을 앞세워 다른 모든 정부 부처들 위의 상급 부처 행세를 하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선출 권력을 통해 정책 전환을 기대한 시민들의 민주적 의지는 점점 더 실망과 좌절에 빠져들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바꾸고 정책의 틀을 바꾸는 것이 정권교체의 의미인데, 지금 한국사회의 관료제는 정권교체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그러니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관료제 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관료제 개혁의 방향은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우선 정년이 보장되는 일반 공무원의 최고 승진 직급을 제한하고, 다양한 정책적 지향을 지닌 실국장급 전문 관료 인재 집단을 키워, 집권 정당이 자신의 정책 방향에 맞는 인재를 임명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선출 권력이 상급 관료에 대한 폭넓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어야 정권교체와 함께 신속한 정책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행정고시와 같이 고위 공무원을 시험으로 선발하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고시 공부에 몰두하느라 현실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시험을 통해 정책 생산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고위 공무원은 정책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 생산 및 해석 능력,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견조율 능력을 지녀야 하는데, 이런 능력은 다양한 실무 경험 없이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관료들의 현실 경험의 중요성은 사법부나 검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민주당이 정부의 개혁 정책을 저지하는 관료들의 태도에 진정으로 분노를 느낀다면, 무엇보다도 의회에서 관료제를 개혁하는 법을 만드는 작업에 당장 나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마도 한국 사회는 선출 권력의 공약, 특히 개혁 정권의 공약이 번번이 관료조직의 벽 앞에서 지연되고, 왜곡되고, 좌절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s://www.pressian.com/pages/author/10069" rel="nofollow">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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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임대사업자 세제·대출 특혜에 대한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공익감사청구 

주거시민단체,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정책 에 대한 철저한 감사 촉구 및 전면적인 제도 개선 요구  



  1. 취지와 목적 




  • 오늘(1/30) 오전11시, 민달팽이유니온,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서울세입자협회, 전국세입자협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등록 임대사업자의  세제감면 등 과도한 특혜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기획재정부 및 국토교통부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을 진행함.




  • 이번 공익감사청구는 정부가 2017년 12월 13일 발표한 민간임대시장 안정 및 세입자의 주거불안을 해소하겠다는 내용의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 임대사업자들에게 과도한 특혜를 제공한 반면, 세입자들의 권리 행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에 대한 감사를 통해 △ 정책 설계상 문제가 있었는지, △ 담당자의 직무유기 또는 그밖에 위법·부당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임. 또한 △ 그러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관계기관에 담당자 징계와 △ 민간임대시장 안정화와 세입자 권리 보호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행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기 위한 것임.




 

     2. 기자회견 개요


  • 기자회견 제목 : 임대사업자 특혜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




  • 일시,장소 : 2020년 1월 30일(목) 오전11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




  • 주최 :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달팽이유니온,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서울세입자협회,  전국세입자협회




  • 기자회견 순서




  • 사회 :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




  • 발언1.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정책’의 문제점 : 김남근 변호사(민변 부회장)




  • 발언2. 등록임대주택과 세입자 권리 찾기 캠페인 사례 발표  : 정용찬 기획국장 (민달팽이유니온)




  • 발언3. 감사원 감사청구 취지 : 김대진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 발언4. 제도 개선 방안 및 요구사항 : 이강훈 변호사(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1. 공익감사청구 주요내용




  • 정부가 2017년 12월 13일 발표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정책은 임대주택 등록을 한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조세감면으로 다주택자들에게 조세회피수단을 제공하여 투기 수요를 부추긴 것은 물론이고, 8년 이상 집을 장기 보유하는 임대사업자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매물 잠김 현상은 집값이 급등의 원인으로 작용하였음.   




 


  •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 제공




  •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으로 임대사업자 막대한 양도차익 얻게 돼



2018년 12월 31일까지 취득하고 3개월 내에 등록한 장기일반임대주택에 대해서 10년 이상 임대한 후 양도하면 임대기간 중 발생한 양도소득에 대해 100% 양도소득세를 면제함.(조세특례제한법 제97조의 5, 위 제97조의 3 내지 4와는 중복 적용 배제).


  • 취득세·재산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합산배제로 다주택자 출구 열어줘



임대사업자는 단순히 임대등록한 주택 자체에 대해 발생하는 보유세를 감면받는 것을 넘어서 몇 채를 구입하더라도 임대주택 등록만 하면 종합부동산세는 전혀 부담하지 않는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됨. 결국 종합부동산세 주요대상자들인 다주택자들에게 출구를 열어주었음. 


  • 대출규제(LTV)완화로 인한 갭투기 대책 전혀 마련하지 않아



임대사업자 대출은 이미 위 8.2부동산 대책 이후부터 강남권에서 성행하고 있었에도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만을 제공하여 투기를 부추였음. 


  • 매물 잠김으로 인한 집값 급등 초래



2017년 말 이후 2년 동안 서울의 등록임대주택은 17만 가구가 늘어서 2019년 11월 기준 총 47만 3000여 가구(12.7%)가 일반적인 매매 거래가 불가능한 임대주택으로 등록된 상태임. 이로 인해 발생한 매물 잠김은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음.


  • 뒤늦게 혜택 축소했으나 기존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는 그대로



2018년 9.13 대책을 통하여 세제 혜택을 조정하고,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LTV 40%를 도입하는 등 대출규제를 강화함. 2019년 1월 초, 비과세 횟수와 기간을 제한하고, 2019년 12월 16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에서 취득세·재산세에 대한 가액기준을 추가함. 그러나 이것은 모두 발표 이후 새로 등록하는 임대사업자에 대해서만 적용될 뿐 소급효가 없는 것임. 


  • 철거를 앞둔 재개발, 재건축 임대사업자 임대안해도 100%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구역 내에서 2018. 12. 31.까지 주택을 취득하고 3개월 내 장기일반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임대사업자는 실제로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임대하지 않지만 임대기간으로 포함해 “임대기간” 중 발생한 양도소득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100% 감면받을 수 있음.


 


  • 세입자들의 권리 행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부재




  • 세입자들에게 통지 절차가 없어 계약갱신청구권 등 권리를 모르는 경우 많아



정부는 임대주택으로 등록할 경우 사실상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으나, 민간임대주택법상 임대주택 등록 시 임차인에 대한 임대사업자의 통지의무를 따로 규정하지 않아 기존 세입자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이 등록된 사실조차 모른 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 등록 당시 기존 세입자는 임대료인상률 제한 적용도 어려워



2019년 4월 23일 뒤늦게 개정된 민간임대주택법 제44조에서는 민간임대주택 등록 당시 존속 중인 임대차계약(종전임대차계약)의 경우 그 종전임대차계약에 따른 임대료를 최초 임대료로 보아 이후 재계약 시 동법에 따른 임대료 상한률 제한을 받게 하면서도, 부칙으로 위 규정을 개정법이 시행되는 2019년 10월 23일 이후 최초로 등록하는 민간임대주택부터 적용되게 함. 


 


  • 이에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달팽이유니온,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가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의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 및 담당자의 직무유기, 위법 사항 등에 대해 기획재정부에 대한 공익감사청구를 다음과 같이 청구함. 




 

1) 기획재정부에 대하여 


  • 2017년 12월 발표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중 임대주택 등록 시 임대사업자에 대한 각종 특혜 지원 및 2015. 2. 3. 신설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제97조의5 제1항 제3호 등과 관련하여 기획재정부의 정책설계 과정에서 어떠한 논의 및 결정 절차가 있었는지




  • 위‘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제도 도입 시 예상되는 조세회피처 제공, 대출규제 완화로 인한 갭투기 현상, 매물잠김으로 인한 집값 급등 등 부작용에 대한 별도의 검증절차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검증 주체는 누구이며 검증 기간과 방법은 어떠했는지 




  • 기획재정부 담당자들이 위 정책 설계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를 소홀히 하여 직무유기에 해당하거나, 특정 이해관계인으로부터 부당한 청탁을 받거나, 그밖에 의도적으로 임대사업자에게만 유리하게 혜택이 제공되도록 하는 등 위법 또는 부당한 사무 처리를 한 사실이 있는지 



2) 국토교통부에 대하여

  • 2017년 12월 발표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중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인상률 상한제 등의 권리행사와 관련하여, 국토교통부의 정책설계 과정에서 어떠한 논의 및 결정 절차가 있었는지  


  •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제도 도입 시 세입자들에게 등록 사실을 통지하는 절차가 없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점, 등록 당시 기존 세입자들의 임대료 인상률 제한의 적용이 어려운 점 등의 부작용에 대한 별도의 검증절차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검증 주체는 누구이며 검증 기간과 방법은 어떠했는지 




  • 국토교통부 담당자들이 위 정책 설계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를 소홀히 하여 직무유기에 해당하거나, 특정 이해관계인으로부터 부당한 청탁을 받거나, 그밖에 의도적으로 임대사업자에게만 유리하게 혜택이 제공되도록 하는 등 위법 또는 부당한 사무 처리를 한 사실이 있는지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민간임대주택 등록 확대를 통한 세입자 주거불안 해소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세입자 보호와는 거리가 먼, 임대사업자 특히 다주택자에게 특혜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이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남.




  • 세입자 권리 보호를 위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작동되지 않은 현행 등록임대주택 제도 하에서는 당초 목표한 200만 호까지 임대주택 등록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세입자 주거불안 해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요원해 보임.




 


  • 이에 감사대상기관인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의 업무소홀,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위법·부당한 행위 및 직무유기가 있는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며, 이에 대한 엄정한 감사를 촉구함. 끝.




 

▣ 보도자료 https://docs.google.com/document/d/1jJ6ZlYUHIa8KwSHtq0zf2DU0vs3maogzrfXS...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 별첨자료1 : 감사원 공익감사청구서 [https://drive.google.com/file/d/1FOQIc9sVzDZvJoYVHlYlmDPJ4uG9Fz5l/view?u...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 참고자료1 : [이슈리포트] 문재인 정부 등록임대주택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https://docs.google.com/document/d/1enX9HmAYauzmX3XU3xuFiFsSMroxdM-mtVi9...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목, 2020/01/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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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 KBS (추경호 영장 기각에 환호하는 국힘)

 

오늘(3일) 서울중앙지법(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은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추경호는 1년 전 오늘 국힘 의원들이 본회의 집결을 막은 장본인이다. 추경호의 비호아래 윤석열은 아직 국회 정족수가 차지 않았다며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군에 지시를 할 수 있었다. 정확히 계엄 1년인 오늘 대범하게도 법원은 이런 추경호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늘의 이 사건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듯이, 미수에 그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에는 사법부를 포함, 군부와 검찰·경찰, 정보기관 등 국가기관 지도부의 단결과 공모가 있었다. 그래서 정부·여당이 내란 청산에 철저하지 못한 가운데, 쿠데타 수괴인 윤석열조차 구속기간 만료 후 풀려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을 정도로 내란 청산은 지지부진하다.

여전히 법과 상식에 기댈 수 없다. 계엄 선포부터 윤석열이 탄핵된 날까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평범한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었다. 소박한 상식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었던 우리의 바람은 계속해서 국가권력의 엘리트들에 의해 배신당했고, 우리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다수 대중의 투쟁에 있었다. 순탄치 않은 내란 청산을 위해 여전히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다.

 

이재명 정부는 민주주의를 몸으로 지킨 이런 평범한 대중의 투쟁 덕분에 집권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민주주의’도 지키지 못하고 있고 약속했던 ‘사회대개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윤석열의 숙원이었던 의료민영화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분배보다 성장’을 내세우며 더 대담하게 추진하고 있다. 원격의료 법제화, 의약품·의료기기에 대한 규제 완화, 개인 의료·건강 정보의 민영화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공공의료를 내걸고 당선되었으나, 의료 공공성 확대와 건강보험 지원 예산 등 복지는 예산을 감액하거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있다. 오히려 ‘K방산’을 키우겠다며 군비를 증강하고, AI 육성 등 산업화에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이러한 이재명 정부의 이런 정책 기조는 민생을 전혀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절망을 먹고 자라는 극우 정치의 토양이 되고 있다. 또 윤석열과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 군국주의 정책은 극우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고 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귀환을 목도한 것처럼 철저한 내란 청산과 실질적 사회 대개혁 없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은 집권 여당의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계엄 1년인 오늘,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낳은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되새기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5년 12월 3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수, 2025/12/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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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07]

 

87년 체제,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동의 원천

제7공화국'을 위한 연대 ①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작년에 이어 올해의 4.29 재·보선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참패했다. 여기저기서 숱한 분석과 조언이 넘쳐난다. 야권의 분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에서부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비판이나 향후 행보에 대한 다양한 훈수까지, 살짝 어지럽기까지 하다. 모두 귀담아들을 구석이 있기는 해 보인다. 그러나 어딘지 식상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특히 재·보선 이후 깊은 내홍에 빠진 새정치연합의 혁신이나 문재인 대표의 변신에 대한 주문은 너무도 적절해 보이지만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들린다.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볼 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교훈은 새정치연합은 물론 야권 전체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데 있다. 정치 자영업자들의 연합체 같은 새정치연합이 대안이 될 수 없음도 명백하지만, 진보와 보수가 대결하는 유럽적 정치 지형을 만들겠다던 국민모임이나 정의당 등의 오래된 '민주노동당 모델 2'도 다시 좌절했다고 보아야 하고, 천정배 의원의 '호남 정치 복원' 구상은 기껏해야 '새정치연합의 호남화 프로젝트' 이상이 되기 힘들 것 같다. 어디 하나 미더운 데가 없다.

 

상황이 무척 엄중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조건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데다 분열되기까지 한 야권이 계속 한국 정치와 사회의 진보적 미래에 대한 아무런 의미 있는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만 한다고 해 보라.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가 보수가 장기 집권하는 일본을 닮는 상황을 걱정하곤 한다. 내가 볼 땐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일천한 경험 등 여러 면에서 일본보다는 21세기 들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한 러시아, 헝가리, 터키 같은 나라와 더 가깝다고 해야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보수파 집권 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등의 온갖 악법으로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심지어 러시아의 푸틴과 터키의 에르도얀은 권좌에서 물러나고도 실권을 행사하다가 권좌에 복귀했거나 복귀할 예정이고, 헝가리의 오르반은 아예 개헌을 통해 자신과 보수파의 영구 집권을 위한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미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듯한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루빨리 야권의 올바른 정립과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문재인 대표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찾는 따위의 것에 있지 않다. 야권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개별 정당 차원에서 또 연합 정치의 수준에서, 뚜렷한 정치적 지향과 미래 전망, 신뢰할 수 있는 정책들, 관용과 포용의 정치 문화, 국가 운용 능력 등을 갖춘 정치적 대안을 형성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상투적인 혁신을 넘어,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위한 분골쇄신이 절실하다. 


내 생각에 그 출발점은 우리의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과 야권의 지리멸렬함을 그 근본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87년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87년 정치 체제는 더 이상 그저 어쩔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의 주어진 조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칙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결손 민주주의' 체제로서, 이제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심화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장애의 하나, 아니 심지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반동의 원천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 체제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주주의의 이 87년 체제는 오랜 민주화 운동의 성취를 부당하게 전취한 구민주당 세력과 구체제의 수구 세력이 밀실에서 이룬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제6공화국의 헌정 질서가 만들어질 때 정작 가장 앞장서 군부 독재를 종식시켰던 시민적 주체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더랬다. 비록 87년의 민주화가 이룬 역사적 진보의 의미 전부를 폄훼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 체제는 시민들의 자기-지배를 위한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시민적 권력'의 체제로서는 처음부터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대의 제도와 통치 구조부터 민주주의적 정의의 원리에 여러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승자독식의 단순 다수결 소선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현행 선거 제도는 결코 공정한 민주적 대의 제도가 아니다. 이 제도에서는 예컨대 전국적으로 40% 정도의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 또 구조적으로 양당제를 강요하고 다양한 정치 이념의 실험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것을 매우 힘들게 한다.

 

또 이 체제에서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의 견제를 우회하여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심지어 사법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권력의 구조적 비대함은 우리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위임 민주주의(delegate democracy)'로 만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되는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전락시켰다. 

 

나아가 사법부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보듯, 87년 체제의 가장 중요한 민주적 장치의 하나로서 시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만든 헌법재판소는 외려 그 기본권 침해의 첨병이 되는 아이러니도 드러났다. 선출되지 않은 헌법재판관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의 자격을 간단히 박탈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와 함께 사법부 전반의 행정 권력 종속성도 자주 나타난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체제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적 요구를 담아내고 시민적 권력을 제도화 내어야 할 정치적 주체도 제대로 성숙시켜내지 못했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생활세계의 기초적인 시민적-민주주의적 조직들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배경이 있기는 하지만, 이 체제의 근본적인 정치적 틀은 무엇보다도 민주적 시민 사회의 정치적 기구가 될 수 있는 정당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지금까지 단지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시민적 권력의 현실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새정치연합(구민주당)의 거의 범죄적 수준의 무능함은 일차적으로 87년 체제가 배태한 지역주의적 기득권 안주에서 비롯한다고 해야 한다. 나아가 이는 다른 진보 정당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막은 결정적 배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구조적 제약 말고도 우리 정치적 주체들의 이념적, 문화적 미성숙에도 상당한 탓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민주 진보 세력은 '역사적 공산주의' 이후 시대의 냉전적 분단 상황에서 유교적-근대적 특징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 걸맞은 제대로 된 민주적 진보 이념과 노선을 가공해 내는 데 완전하게 실패했다. 

 

특히 우리 정치적 주체들은 그동안 분단과 그에 따른 이른바 '48년 체제'의 냉전적 틀을 합리적으로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경도되거나(이른바 NL) 반대로 분단 문제 자체를 아예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이른바 PD) 거울상 오류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의 87년 체제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앙상한 민주주의'이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민주 세력은 딱 10년만, 그것도 거의 기적적으로 우연적인 상황에서 집권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짧은 집권 기간 동안에도 늘 정치적 불안정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숱한 차원에서 정치적 무능을 드러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층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괄하지 못하는 정당 체제 속에서 시민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기만 했다. 

 

결국 87년 체제는, 정의의 실현과 비-지배의 제도화라는 민주주의가 감당해야 할 본연의 과업을 제대로 수행해 내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 수구보수 세력의 과두 특권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주기까지 하고 말았다. 구조의 측면에서나 주체적 조건에서 우리가 이 체제의 틀 안에 머물면서 사회의 민주주의적 진보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내 생각엔 이제 단지 이를 전체로서 극복하기 위한 담대한 정치적 기획을 실천함으로써만 우리 민주 진보 세력과 민주주의에 희망이 있을 것처럼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5/05/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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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09]

 

'제왕 대통령'을 향한 국회의 사소한 펀치

국회법 개정안을 위한 변명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제왕적 대통령제, 그것은 우리 헌정사의 출발에서부터 잉태됐다. 이승만의 억지로 의원내각제의 초안에 대통령체제를 덧씌우며 출범한 잡종 교배식 제헌헌법은 애초부터 대통령의 전횡을 막기 어려웠다. 원내 제1당이었던 한민당과의 갈등을 빌미로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를 제치고 직접 국민을 동원하면서 추가의 권력을 확보해나갔다. 국회에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주고자 했던 내각제 방식의 권력 구조는 도리어 대통령이 국회를 조종하는 통로로 전락했다. 여기에 권위주의 군사 정권이 등장해 국회와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정치가 행정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 정치를 제어하고 통제하는 이상한 국정 운영의 틀이 고착됐다. 그리고 대통령은 거의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위임 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이런 질곡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이 개정안을 두고 절대아성으로 구축된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국회의 불경스러운 간섭으로 간주하는 즉물적인 반발도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대통령의 무결성, 무오류성이라는 저 권위주의 체제의 패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동안 위임 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라는 문제는 학계에서 수많은 분석(혹은 법 해석)과 제도 개선 제안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조차도 이전에 쓴 논문에서 독일이나 미국과 유사한 방식의 국회 개입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정도였다.(그 학자들이 왜 생각을 바꾸게 됐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변덕과 침묵은 너무도 자주 목도되는 바람에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게 됐다.) 적어도 법 이론적으로는 위헌론은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하여, 널리 국민이나 국가 기관 등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를 지는 법규범은 국회가 제정하도록 명령했다. 대통령령이나 총리령, 부령 등의 행정 입법은 이러한 국회의 고유 권한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그래서 그것을 전문 용어(?)로 '위임' 명령이라 한다).

 

이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 중개사를 찾아간 경우와 마찬가지다. 위치나 평수나 가격 등을 범위를 정해서 중개사에게 알려주면 중개사는 그에 맞추어 의뢰인의 의향과 능력에 맞게 매물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중개 수수료 수입에만 눈이 먼 중개사가 있어 아파트가 아니라 공장을 사라고 한다든지, 원하는 평수보다 훨씬 큰 아파트를 사라고 한다든지 혹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후려친다'든지 하는 경우(아쉽게도 중개사와는 달리 우리 행정부는 이런 월권을 비일비재하게 저지른다)에 의당 의뢰인은 그 중개사에게 "그게 아니니 제대로 하라"라고 요구할 수 있고 또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의뢰인이 그렇게 요구했다고 해서 중개사가 그 매물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매물 자료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시 한 번 지침을 주면서 제대로 된 매물을 찾아서 오라는, 아주 미미한 요구에 그칠 뿐이다.

 

이번의 국회법 개정안은 딱 이 정도이다. 그것은 그냥 대통령이나 장관 등에 대해 거기서 만든 시행령 혹은 시행규칙이 법률에 위반되거나 위임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니 수정하거나 변경하라-"그게 아니니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그친다. 여기에 강제력이 있니 없니, 그래서 그것이 권력 분립 원칙을 위반하느니 아니니 하며 입을 댈 일은 아니다. 사리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도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법률에서 하라는 대로 시행령과 시행 규칙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날 이유도 없다. 법률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의당 무효이기 때문에 권력 분립 운운할 여지도 없다. 오로지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가 못마땅한 권위적인 행정부 혹은 대통령만 존재할 따름이다.

 

사실 이 부분의 문제는 시행령이나 시행 규칙이 위법하거나 부당한지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발생한다. 국회는 위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고 수정·변경을 요구했는데, 대통령이나 장관은 그 요구가 잘못된 것으로 국회가 괜히 행정부의 업무에 개입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위임해 놓고도 이런 저런 간섭으로 중개사가 일도 못 하게 하는 의뢰인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세간사와는 달리 우리 헌법의 세상은 그러한 간섭 자체를 명령하고 있다. 현대 국가에서 의회의 역할은 입법이나 주요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일과 함께-혹은 그 이상으로- 막강한 권력과 권한을 가지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제어하는 일에도 중점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의회는 정치적 토론과 설득의 장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국민을 향해 열려 있다. 법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혹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의회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대통령이나 행정부로 하여금 그에 대해 답변하고 설명하고 또 반박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법률(시행령)이나 정책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칼 슈미트가 의회주의의 본질을 공개와 토론에다 두고 있음은 이를 의미한다.

 

이 국회법 개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국회가 정부에 대해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하며 간섭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간섭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회라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정치이다. 시행령·시행 규칙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는 국가 정책의 향방을 두고 국회와 대통령·행정부가 벌이는 정책 경쟁의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종래에는 아무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되던 것이 이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정쟁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국민은 왜 그것이 문제가 되며 그 해결을 위한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무엇이 최선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여론이든 청원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국민의 의사를 이 정책 과정에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수정·변경 요구권-과 그것을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어긋나게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월권적·위헌적인 것이 아니라, 국회라는 대의 장치를 통해 국민이 조금씩이나마 진정한 주권자의 자리로 가 앉을 수 있는 미미한 가능성이라도 열어주는 것이 된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전횡을 방지하며, 정치와 행정 그리고 국회와 대통령의 자리를 정위치시키는 유의미한 단초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제헌 이래 우리나라 국회는 지나치게 폄하되어 왔다. 이승만 정권의 권력욕은 국회의 권한까지도 용납하지 못 했고,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군사 정권은 정치 자체를 비생산적이라는 명분으로 부정적이거나 해악으로 가득한 것인 양 호도해 왔다. 그래서 국회는 무조건 무능하며 국회가 제기하는 문제는 국정의 혼란을 초래하는 발목잡기일 따름이라는 '데마고그(demagogue)'가 횡행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하는 위헌론 혹은 국정 파국론은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현실은 국회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하고 법관의 임명 과정에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개입하는 등 권력 분립의 헌법 정신이 여지없이 도륙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그나마 '민주적 입헌주의'(헌법재판소의 표현)에 부합하는 제 역할을 찾고자 마련한 그 작은 개선안 하나를 못 견뎌서, 공무원 연금 제도 개혁이라는 정부의 최우선적 국정 과제도, 메르스라는 국가적 위난도 다 제쳐버리고 서슬이 퍼런 비난을 퍼붓는다. 과거 군인·군속에 대한 이중 배상을 금지했던 국가배상법을 '감히' 위헌이라 판결한 대법관들에 대해 가차 없이 처단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처럼, 국가 그 자체인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입 대고자 하는 국회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무차별적인 처단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의 국회법 개정안이 입헌 정치의 최첨단에 서게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그것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태초부터 잘못된 우리 헌법의 맹점을 조금이라도 고쳐나가려는 갸륵한 시도이다. 그것은, 시행령, 시행 규칙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유린하던 반(反) 법치의 행정 관행과, 국회에 대한 행정부의 절대적 우위를 구가해왔던 잘못된 권력 분립의 체제,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미미하게나마 나름 의미심장한 흠집내기다.

 

그것은 법치주의의 실천을 위해서도, 국회의 제자리 찾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해서도, 그리고 너무도 비대해진 국가권력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진 우리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내어야 하는, 작으면서도 커다란 첫걸음이다. 로크는 "누가 군주나 입법부가 그들의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관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그의 통치론을 펼친다. 이번 국회법 수정안은 바로 우리 국민이 그 답이어야 함을 재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5/06/1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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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자 선거권 보장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국회 전달

보통선거 원칙 확립 위해 모든 수형자에게 선거권 보장해야


지난 11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는 1년 미만의 선고형을 받은 수형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이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민주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인권사회연구소, 새사회연대,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는 6/24, 관련 의견서를 정개특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선고형 1년 이상을 선고 받은 수형자는 전체 수형자의 약 83%에 달하므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수형자 10명 중 8명 이상의 선거권이 제한됩니다.

 

우리 단체들은 의견서를 통해 “형사책임을 지는 것과 시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수형자에 대한 선거권 허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왜 국가가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권리인 선거권의 부정을 형벌의 한 형태로 존속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국가권력과 법의 정당성, 준법 의무는 모든 시민이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부터 직접 도출된다”며 “보통선거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모든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보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2호는 집행유예자와 수형자에 대하여 전면적·획일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2014년 1월 헌법재판소는 집행유예자 부분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수형자 부분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2015년 말 시한)을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집행유예자는 곧바로 선거권을 보장받았지만, 수형자의 선거권은 국회 논의에 맡겨져 있는 상황입니다. 국회가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하길 기대하며,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도 부탁드립니다. 

 

※ 공직선거법심사소위 통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는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수, 2015/06/2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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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순회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 참가자 모집 웹홍보물

 

 

정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은 바쁘게 먹고 사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이 놈의 정치는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고요,

 

그런데 우리네 먹고 사는 문제도 다 정치에 달렸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지역순회 민주주의 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에서 마음 뻥 뚫리게 함께 얘기해봐요!

 

참여연대는 거리가 멀어 참여연대 총회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지역회원님들을 위해 매년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회원 분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부산/대전/광주/대구광역시에서 회원 만남의 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성남/수원 등 경기남부권에 계시는 회원님들을 위한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를 준비하였습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충돌?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갈등? 노동당-정의당 합당? 녹색당은 뭐지? 현재의 뜨거운 이슈를 포함해 2016년 총선을 앞둔 우리는 지역에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면 좋을지, 비례대표의원과 전국구의원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원 수 확대는 어떻게 볼 것인지 등, 정치를 둘러싼 여러 질문과 해법들을 참여연대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를 통해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2015 하반기 <지역순회 민주주의 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

 

언제 어디서? 

2015년 7월 22일(수) 7시 수원 그리고 8월 22일(토) 4시 성남에서

(수원시 평생학습관 2층 세미나실 / 성남시 분당구청 2층 소회의실)

 

강사 

서복경 /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참가비

참여연대 회원 무료 (비회원 1만원)

 

참가신청하러가기>>클릭

 

문의

시민참여팀 02-723-4251 [email protected]

화, 2015/06/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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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2]
 

왕이 되고 싶은 박근혜 vs. 신민이 되기 싫은 시민

허위의 정치를 넘어서자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이미 위헌 논란을 제기하던 터라, 모처럼 여야 합의의 중재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메르스 국면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국회의장의 간곡한 부탁에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물론 어느 정도 예측된 바였다. 다만 어떻게 논란을 종식시키고, 어떤 판단 근거를 제시할 것인지가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 국민들에게 25일 국무회의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예상 밖을 넘어 경악 수준이었다.

 

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삼권 분립 정신에 의거하여 권력 간 균형을 잡는다는 취지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지금까지 76번의 거부권이 행사되었고, 그때마다 정국은 소용돌이에 빠지곤 했다. 대통령의 합법적인 권한 행사인 만큼, 거부권 행사에는 그에 알맞은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상황과 이유에 따라 언행은 다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안정적인 정국 운용을 위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자 민주주의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76번째 거부권 행사는 권력 남용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만하다.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시키지도,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대신 여당 지도부를 향한 분노, 조롱, 경멸의 메시지를 퍼부었다. 5쪽 분량, 16분 동안 읽어 내려간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대통령의 언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어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발언이다. 그것은 독선과 아집의 언어였다. '짐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투로 대통령은 자신만이 옳다고 말했다. 말로는 '위민(爲民)'을 내세우지만, 대통령에게 동등한 주권자로서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마치 복종의 대상, 신민으로 여길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세월호의 데자뷔처럼 아른거린다. 대통령은 태생적인 무능,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책임은 무능의 징표이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에는 무능과 무책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 나름의 정치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적 보복으로 정치를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처단할 것을 주문한다. 여당 원내대표에 대해 공개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거부권 행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던 것이다. '배신의 정치인'으로 지목 받은 유승민 원내대표. 그를 축출하려는 친박 진영의 압박. 대통령은 이렇듯 여당을 한 치 앞에 내다볼 수 없는 정쟁으로 몰아넣었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대통령은 배신자들을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고 호소한 점이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거부권 행사에서 제시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이를 두고 수많은 해석이 오고가고 있지만, 어느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인지, 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려워 보인다. 분명한 건, 대통령의 발언으로 날선 정파 갈등이 전면화되고 있다. 줄 세우기의 무자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메시지의 진의는 대체로 수신자의 수용 과정에서 밝혀진다. 대통령은 의당 국민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민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메시지는 공교롭게도 여당을 향해 있고, 또한 즉각적인 반응도 여당에서 나왔다. 여당의 정파 논리가 대통령의 의지를 결정한다. 친박, 비박의 한판 싸움의 전운이 감도는 이유이다. 어찌 되었든 대통령은 정치를 혐오한다. 정치인 모두를 구태 정치로 몰아치면서 국민에게 심판해줄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 국민은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유권자들이다. 이번 정부의 수사를 빌리자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시국을 조성하고 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이 전개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공개사과, 반성문 작성. 친박의 조직적인 사퇴 압력, 의총 의결의 거부. 이 모든 과정은 비-민주주의적 발상이고, 왕정체제의 행태들이다. 주말 사극에 나올 법한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시계는 과거에 멈춰있다. 마땅히 주인이어야 할 주권자는 정치에서 사라졌다. 우리 모두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정치인들을 구경하는 방관자일 뿐이다.

 

대통령은 시민을 기만하고 있다. 위민을 내세우지만 국민은 안중에 없는 기만인 것이다. 이것은 공약 준수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기본인 언행의 일치, 신뢰조차 사라진 '허위의 정치'의 산물이다. 누구도 듣지 않고 지키지 않는 언행에는 현재도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진실한 말과 행동에서만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소통 안에서 얻어진 말과 행동의 의미만이 진실인 것이다. 무릇 진정성에 기반한 소통이 필요한 이유이다. 대통령의 발언에는 주권자에 대한 존중마저 없다. 당청 간 소통 부재를 해결해 달라고 국민에게 떼쓰고 있는 꼴이다. '저 배신자를 처단해 달라'고 호소한 대통령.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대통령의 호소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부하는 우리들을 혼란하게 한다. 주춧돌 없는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무너진 민주주의. 21세기 우리 민낯이 드러나는 현주소이다. 아니 민주주의는 죽었다. 오직 관념으로 이해될 뿐이다. 다양성에 대한 관용, 정당 정치는 현실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권력 투쟁으로 귀결된다.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살아남느냐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 권모술수만 난무할 것이다. 기득권 사수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허울일 뿐이다. 음모는 음모를 낳고 입에서 입으로 회자될 것이다. 여기서 사라진 것은 시민의 정치 참여 기회이다. 지금 우리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빠져 있다. 국정 안정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만든 무책임한 상황이다. 앞장 설 선장도, 나아갈 방향도 오리무중이다. 이런 현실은 내일에 대한 믿음마저 갉아먹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상황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원론적인 물음에 봉착하고 있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희망을 품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희망은 우리라는 생각에서 나오고, 시민으로 거듭나는 태도에서 싹 터 오른다. 대통령도 인정하고 있다. 최종 심판자는 우리 자신들, 시민 정치의 주권자들임을. 지역주의, 지연주의야말로 구태이다. 구태는 허위를 키우는 정치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허위의 반대는 진실임을.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메르스 국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허약한 공공성의 기반이 문제가 아니던가. 공공성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 또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상호 신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오로지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축적되고 전승된다.

 

더 이상 방관적 태도론 미래가 없다. 소수의 손에 흔들리는 정치, 국민의 위상을 변두리에 두는 정치에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이를 벗어나야 한다. 그 첫걸음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요구대로 심판하는 것이다. 주권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 새로운 정치를 위한 발판이다.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5/07/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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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포트레이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정동칼럼] 텅 빈 민주주의

인간이 만든 정치체제 가운데 민주주의만 유일하게 ‘목적을 전제하지 않은 체제’로 불린다. 민주주의에서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목적을 시민이 참여하는 공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민주주의란 시민 모두가 의견을 가질 권리를 향유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고 나선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그는 시민 대중의 불안정한 의견에 의존한다는 이유에서 민주주의를 나쁜 체제로 보았다. 불안정한 의견이 아니라 확고한 진리 위에 체제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그가 주창한 것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철학자 왕’ 내지 교육받은 소수 엘리트에 의한 지배였다. 민주주의자라면 플라톤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 즉 ‘시민의 자유로운 의견에 기초를 둔 공적 결정의 체계가 과연 잘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절한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라고 불리는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실질적 내용에 있지 않음을 다시 강조했다.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구분짓는 것은 공적 논의와 결정의 과정에 평등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차적 조건이 어떠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조건에서 의견의 자유가 공익적 결정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려 한 것인데, 그는 그 핵심을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찾았다. 시민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들 시민집단 사이의 힘의 균형 위에서 민주정치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건축물의 단단한 기반처럼 시민 개개인이 다양한 집단으로 결속되어 있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듯 몇 개의 공적 의견이 형성되어 경합할 때 민주주의는 그 이상에 가깝게 실천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이론적 기초 위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불평등 효과를 제어하고 노사를 포함한 주요 생산자 집단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다루는 민주주의론의 발전이 있었다. 시민의 의견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 정치적 조직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집단과 조직, 결사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시민 참여와 의견 형성 과정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보면 국가와 개인 사이가 텅 빈 공간처럼 다가온다. 누가 그 공간을 채우는가. 언론과 행정이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지만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도, 국가와 개인 사이의 공허한 공간을 주도했던 권력은 이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사회적 의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시민 개개인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은 이번에도 반복되었다. 이들이 유능하고 책임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무능하고 무책임함에도 위기 때마다 이들의 존재가 더욱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달리 의존할 수 있는 대안적 판단의 원천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대안적 정보와 의견을 공유할 다양한 중간집단에 결속되어 있는 시민의 규모가 형편없이 작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엔 보건의료노조가 합리적 의견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노조나 정당 등 자율적 결사체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의 수는 너무 적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은 행정권력과 언론권력에 욕하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사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투명하게 공개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옳고 정확한 사실은 어딘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은 특정의 인식 틀을 통해 사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해석되고 판단되는 사회적 과정이 어떠냐 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도 일종의 정보처리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정보가 선별되고 교환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집단과 조직, 결사체들이 역할을 해야 하고, 시민 개개인 역시 이 과정에 결속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통해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공적 판단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래야 언론과 행정의 기능에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중대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회적 힘의 균형을 말하기 이전에 국가와 개인 사이가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지금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행정권력과 언론권력에 휘둘리는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욕할 자유뿐이다. 이래저래 시민은 더 사나워지고 사회는 더 분열되는 일만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2015-06-08일자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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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6/0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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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의 이사 소식, 하나 둘 채워지고 있는 사무실 소식에 이어 오늘은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하는 정치발전소의 강의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어느새 3개의 강좌가 진행되었네요. 물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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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보금자리에서의 첫 강좌는 조성주 대표의 ‘7월특강_변화의 정치학’ 이었습니다.

아직 강의장을 마련하지 못해 서울혁신파크 1동 1층에 있는 청년허브 세미나실에서 진행했어요. 약 30여분의 참가자들이 왔었습니다. 알린스키의 생애와 한국의 운동과 정치의 현실을 통해서 보는 ‘변화의 정치학’에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도 하는 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에도 진행하게 될 정치발전소의 특강을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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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진행되는 강의는 박상훈 학교장님의 ‘여름방학 정치학 교실’입니다. 2주라는 시간동안 기초반, 토론반, 심화반 세 개의 강좌가 진행됩니다. 조금은 빡빡하지만 더운 여름 열심히 공부하며 이열치열로 이겨보면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수강생 대부분이 처음 만나는 분들이라 더 반가운 것 같습니다. 다음 주 심화반이 끝날 때 까지 재밌게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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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동안 진행되는 마지막 강좌는 바로 박찬표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민주주의로 만나는 한국현대사’ 강의입니다. 잘 모르고 있는 1945~1950년 사이의 역사를 주로 다루면서 그 당시의 사회 성격이 현재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 시기의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은지에 대한 공부를 하는 강의입니다. 수강신청 해주신 분들보다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깜짝 놀랐지요^^

앞으로 더 많은 강좌들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조만간 하반기 강좌 소식도 전해드릴께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화, 2015/07/2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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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대세다. 전국에 20여 개의 마을지원센터가 만들어졌고, 지금 50여 개가 설립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마을은 이제 시대적인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에 서울시 마을공동체 위원장을 퇴임하신 조한혜정 교수는 “한국은 국민에서 시민이 되기 위해 달려왔는데, 그 시민이 지금 난민이 되어 있다. 그 난민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민이 되는 길이다.” 라고 한국의 현대사를 압축했다. 누구나 동네에 살지만, 주민으로 살지 않는다. 숙소일 뿐이다. 동네에서 이웃들과 함께 술 한잔 할 수 있고, 이야기 나누고, 아이들도 같이 키우는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주민이라 말할 수 있다.

마을민주주의와 마을공동체를 연결하는 고리는 ‘마을공공성’이다. 공공성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이 공개적인 의사소통 절차를 통해서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속성’이라고 한다. 인민이 주체가 되고, 공공복리를 얻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그 방식은 공개적이다. 우리 사회가 이 공공성을 일구어왔던 역사는 ‘국민에서 시민으로 다시 난민에서 주민으로’라는 조한혜정 교수의 요약과 딱 들어맞는다.

한국전쟁 이후, 1960~80년대에 한국사회의 근대적 과제는 국가가 주도했다. 엘리트 관료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가 공공성 실현을 담당했다.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동력으로 교육, 의료, 교통, 주거 등 후발국가의 근대적 과제의 대부분을 빠른 속도로 성취해왔다. 하지만 권위주의와 획일성, ‘기득권과 양극화’로 인해 공공성은 위기에 처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를 거치면서, 1990~2000년대에 우리사회 공공성 창출의 과제는 시민사회로 그 바통이 넘겨졌다. 국가주도 공공성의 혁신을 자임한 시민단체들은,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민주적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삼았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파고들어 혁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민운동에 시민이 없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시대적 과제를 떠안기보다는 분과적인 ‘전문가주의’에 갇히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위임(委任)된 권력에 기초한 국가의 통치적 주도이든, 자임(自任)의 진정성에 기초한 시민단체의 계몽적 주도이든, 우리사회의 공공성은 위기에 처했다. 이 공공성의 과제를 누가 다시 떠안을 것인가?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한다. 생활의 필요를 함께 하소연하고, 함께 궁리하고, 함께 협동하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개인이 생활의 필요를 공공의 필요로 전환시키면서, 이웃들과 지속가능한 협동적 생활관계망을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을이고, 마을이 공공성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민선 5기에 마을공공성의 씨를 뿌렸고, 민선 6기에 본격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2010년대는 마을공공성의 시대이다.

이제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건강한 ‘마을공공성’의 확장이다. 마을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고 이끌어가는 다양한 공론의 장을 통하여 형성되고 확장된다. 국가가 주도하거나 시민단체가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필요를 이웃과 함께 나서서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나의 필요가 이웃의 필요가 될 때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며, 나아가 동네의 필요로 확장될 때 그 해결의 수준도 함께 높아진다. 필요에 대한 공감의 확장은 주민들의 공식·비공식의 다양한 공론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공론장을 통한 공감의 확대 과정 속에서 개개인의 사적인 이해관계는 지역사회의 공적 과제로 동의되기도 하고, 지역 차원의 새로운 과제가 합의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공적 합의가 지역사회의 건강성을 지켜주는 공공성의 바탕이 된다.

공론장은 친밀한 이웃들 간의 소소한 소통관계에서부터 지역사회의 공식적인 회의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와 공식성의 정도가 다양하다. 공론장은 참여하고 싶은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며, 경제적인 형편이나 처지로 인하여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공론장이 동시에 그리고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론장은 때론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립의 장이 되기 때문에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다수 주민의 자발성과 참여를 높이는 데에 적절하지 않은 다수결을 통한 결정보다는 다수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결정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합의 과정은 다양한 의견과 입장을 상호 이해하고 학습하는 과정이며, 자신의 의견을 바꾸거나 상대방의 의견과 차이를 조정하는 공유와 공감의 과정이다. 이렇게 도달한 합의는 이후 실행과정에서 협동적 참여의 수준을 보장해주고 결과적으로는 더욱 효과적인 결실을 얻게 한다. 따라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 할지라도 성숙한 토론과 합의의 문화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국가는 국가의 몸집은 커지고, 공론장은 축소 파괴되어 온 역사가 있다. 기술관료의 분배정책은 ‘수혜자주의’를 내면화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각자의 자기 사생활에 각개 약진에 매몰하는 현상까지도 만들었다. 공공성을 다시 복원하고, 다시 마을 단위에서 복원해 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마을공공성은 모든 공공성은 시작이다. 마을공공성은 시민공공성을 다시 부추기고, 국가공공성을 바로잡는 힘이 된다. 그래서 마을은 공공성을 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엔진이며,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의 장소다. 마을공공성은 공공성의 혁신이다. 마을이 곧 혁신이다.

글_유창복(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센터장)

월, 2015/08/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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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8)
광장 투표, 트위터 마을…세계의 민주주의 실험

스위스 광장 민주주의 ‘란츠게마인데’

동계올림픽 유치 철회, 외국인 귀화 신청 반려, 국립은행의 금 매각 금지, 이민자 숫자 제한…

묵직한 논쟁 주제인 이 의제들은 ‘란츠게마인데 (Landsgemeinde)’라 불리는 스위스 주민총회의 의제들입니다. 란츠게마인데는 일 년에 한 번씩 주민 모두가 광장에 모여 직접 찬반투표를 하는 주민총회를 말합니다. 스위스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란츠게마인데는 칸톤(Kanton, 우리나라 도에 해당하는 스위스의 행정단위) 혹은 코뮌(Commune, 칸톤보다 한 단계 아래의 행정단위)의 지역 법안 개정을 위해 주로 열리고 있습니다.

란츠게마인데는 ‘생활의 정치화, 정치의 생활화’라는 스위스 민주주의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입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대중교통 요금에 대해 논의하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도 합니다. 또한 예산안 심의와 세금 인상 문제도 토론하고 의결합니다. 스위스의 약 300개 코뮌 중 약 84%에 달하는 250개의 코뮌이 란츠게마인데를 최고 의결기구로 두고 있습니다. 코뮌보다 더 큰 행정단위인 칸톤 중에서는 현재 아펜첼과 글라루스 두 곳에서 란츠게마인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란츠게마인데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사진출처:MySwitzerland.com)

▲란츠게마인데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사진출처:MySwitzerland.com)

8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란츠게마인데의 첫 출발은 그다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던 반쪽짜리 주민총회였기 때문이지요. 1957년 일부 란츠게마인데에서 여성의 참여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2년 후 1959년 연방 국민투표에서 여성 참정권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거부되었습니다. 스위스 연방 차원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71년의 일입니다.

선거권 연령제한에 있어서 란츠게마인데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보다 많은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현재 만 18세로 규정하고 있는 투표권 연령제한을 더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연방법안의 개정이 어렵게 되자 각 지역은 독자적으로 법안 개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07년 글라루스 주민들은 란츠게마인데에서 투표권 연령제한을 만 16세로 낮추는 데에 찬성했습니다. 글라루스에서는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이 가족과 함께 주민총회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다양한 권한을 행사하는 곳일수록 경제지수와 행복지수가 높다는 연구보고가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참여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주요한 과제입니다. 스위스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직접 민주제의 가능성은 다양하게 실험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그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았습니다. 일례로 2003년 스위스 아니에르 칸톤에서 최초로 인터넷 전자투표가 실시되었고, 현재 스위스 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스페인 작은 마을의 ‘트위터 행정’

‘트위터 마을’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남부 훈(Jun) 마을의 재미난 실험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인구 3,500명의 이 마을은 주민 모두가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어 거리 청소 요청부터 시의회 질의응답까지 모두 트위터를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소셜머신랩은 2011년부터 시작된 훈 마을의 트위터 마을 운영이 직접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실현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지난 4월15일 공개된 연구보고서는 훈 마을의 트위터 시정의 차별점을 설명합니다. 통상적인 SNS 민원의 경우 정부 서비스에 대한 일반적인 요청이 대부분이지만, 이와는 달리 훈 마을의 경우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의 트위터 계정임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트위터 시정운영 과정의 간단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민이 가로등이 고장났다는 내용을 시장에게 트윗을 남기면 → 시장이 그 주민과 전기 수리공을 태그하여 답하고 → 전기 수리공은 수리한 가로등 사진을 올리며 그 주민과 시장을 태그한다.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즈 살라스 시장(사진출처:MIT 소셜머신 연구소 블로그)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즈 살라스 시장(사진출처:MIT 소셜머신 연구소 블로그)

MIT 연구진이 밝힌 트위터 마을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트위터를 통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시정 참여가 시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런 빠른 대응을 통한 결과물이 트위터로 마을 전체와 공유되면서 주민과 정부 모두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훈 마을의 로드리게즈 살라즈 시장은 트위터 시정운영의 효율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트위터로 주민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인력이 필요하다. 덕분에 마을 경찰을 4명에서 1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이 마을의 경찰관은 하루에 40~60통의 트윗 메시지를 받는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트위터가 주민들의 민원 전달과 처리의 수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의회 회의를 인터넷으로 생방송하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참관할 수 있으며, 트위터로 의견을 전달합니다. 주민이 트위터로 보낸 질문과 의견은 의회에 설치된 화면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이런 트위터 실험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로드리게즈 살라스 시장은 농담 삼아 트위터를 “분 단위로 쪼개진 사회”라고 말합니다. “트위터의 즉각적인 반응에 주민들은 점점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세계에서 43명당 1명 꼴로 불만을 표출한다면, 트위터에서는 27명당 1명 꼴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항상 즉각 답변을 원하고 있지요”
트위터는 최대 140자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사안을 토론하기에도 부적합하다는 것 또한 단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사적인 이야기 노출과 홍보성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트위터 위에서 작동한다’는 MIT 연구진의 표현처럼, 트위터는 훈 마을의 시정활동뿐만이 아니라, 주민들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을 예약하고, 학교 식당의 메뉴를 확인하고, 좋아하는 스포츠팀의 경기일정을 확인할 때도 훈 마을의 주민들은 트위터를 사용합니다.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들어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직접 투표하는 스위스의 란츠게마인데, 그리고 먼 나랏님들의 잔치가 아닌 글자 그대로 주민들의 ‘손바닥’ 위에서 정치가 이루어지는 스페인의 훈 마을. 모두 주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곧 ‘정치’가 되는 지방자치, 주민참여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현장입니다.

글_이은경(연구조정실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 이 글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MIT launches Laboratory for Social Machines with major Twitter investment (MIT News, 2014.10.01)
MIT’s Twitter-backed research highlights Twitter use by small Spanish town (beta Boston, 2015.04.17)
스페인 ‘트위터 마을’의 민주주의 실험(블로터, 2015.04.21)
스위스와 독일의 주민에게 배우는 ‘디지털 시대의 직접 민주주의‘(김석수, 비영리 IT 지원센터, 2015.11.04)
‘하이브리드 엔진’ 스위스 민주주의, 한국엔 안 맞다?(윤석준, 오마이뉴스, 2010.10.05)

월, 2015/08/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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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개혁’이라는 주제는 연구하고 조사하기도 어렵다. 우선 관련 정보와 문헌이 부족하다. 교수 등 지식인들이 ‘관료개혁’이란 문제를 다룬 문헌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연구 발주자의 구미에 맞춘 논문들 이외에 거의 찾을 수 없다. 필자가 전부터 써왔던 낯익은 관련 기고문들만 보인다.

우리 사회가 ‘관료 지배사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감한다. 혹여 관(官)에 미운털이 박히게 되는 날이면, 관에서 제공하는 일체의 연구과제나 프로젝트 혹은 각종 위원회 참여라는 기회를 모조리 상실하게 되고 평생 ‘강제로’ 청빈하게 살아야만 한다. 그러니 이 땅의 지식인들이란 그저 갑(甲)인 관(官)에 알아서 길뿐 감히 비판할 엄두를 낼 수 없다. 우리 사회 권전교역(權錢交易)과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무소불위 권력으로 군림해왔던 검찰 조직, 사법농단으로 얼룩진 법원 조직 그리고 권위주의적 폐쇄형 계급구조를 지닌 관료조직은 우리나라 외에 세계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검찰 조직과 법원 조직 그리고 관료집단의 비정상적 왜곡의 기원은 바로 박정희 유신 정권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하여 권력의 총체적 집중을 도모하면서 이들 조직들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왜곡시켰다. 그리고 그 왜곡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개선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욱 심화되어왔다.

 

유신 정치권력에 의해 왜곡된 법원 시스템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이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에 의하여 기존에 존재하던 ‘법관추천위원회’는 전격적으로 폐지되어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바뀌었고, 현재의 헌법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명문화하고 있다.

현재 세계 어느 나라도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라는 없으며, 이는 이른바 ‘유신 잔재’이다. 유신헌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과정을 종래의 사법주도형에서부터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는 정치주도형으로 변질시켰고 이러한 왜곡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함이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왜곡으로 인한 각종 폐단의 총화는 사법농단으로 발현되었다.

 

유신헌법에 의한, 세계 유일의 헌법상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헌법 제12조 3항에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이러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이 헌법에 규정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오늘 검찰 조직의 뜨거운 ‘권력의지’는 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의 이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헌법에는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명문화된 것은 바로 박정희 군사쿠데타 직후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개정한 헌법부터였다. 그리고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 규정은 이후 유신헌법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사의 요구에 의하여”로 다시 개정되었다. 이는 결국 검찰의 권력의지와 절대 권력을 행사하려는 박정희 유신 체제의 권력의지가 상호 결합된 것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 군대에 이어 관료조직을 수족으로 삼다

한편, 박정희는 군대조직에 이어 공무원 조직을 ‘제2의 군대조직’으로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조직으로 삼고자 했다. 먼저 기존에 주로 인맥에 의한 엽관제로 운영되던 공무원 채용을 시험에 의해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공무원 채용을 체계화시켰다. 이는 평생 일본을 롤 모델로 삼았던 박정희가 시험에 의한 일본의 공무원 채용 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이어서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하여 “법령에 의하지 아니하는 한 본인의 의사에 반한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여 공무원에 대한 신분보장을 규정하였다. 그렇게 이 땅의 관료조직은 박정희 권력의 충견(忠犬) 조직으로서 양육되었다.

박정희 권력의 칼날은 언제나 국회를 향하고 있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그 개정에서 특히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출권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수족 집단으로서의 관료로 대체한 것이었다. 그 목적은 바로 ‘국회의 무력화’에 있었다.

 

검찰, 법원 그리고 관료조직, 박정희가 구축한 구체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중국 역사상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는 중요한 정책은 우선 중앙에서 여러 방법으로 재상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다음으로 지방에서 지방장관의 권한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방장관의 임기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지방 정무에 숙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각 아문(衙門)의 조문들은 모두 아전(吏)들이 제정하였다. 사실상 실제적인 일체의 사무에 있어 그들 아전들이 전문가였고, 따라서 그 처리는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황제는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아전’들과 기꺼이 천하를 함께 통치하였다.

박정희 유신 정권도 이와 동일한 방식을 취했다. 영구집권을 획책하면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의 총체적 집중을 도모했던 박정희는 자신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검찰, 법원 그리고 관료집단을 양육하였고 자신의 의도를 언제든 실행시킬 수 있는 조직으로 활용했다. 동시에 그들을 (중앙정보부 그리고 경찰과 함께) 자신의 정적과 민주 세력을 탄압하는 조직으로 도구화했다. 이렇게 양육되어 특권세력화한 조직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혁된 적이 없는 채 우리 사회의 건강한 전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검찰, 법원 그리고 관료조직은 박정희가 구축한 ‘구체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의 주요 거점이다. 윤석열, 최재형, 김동연. 지금 기묘하게도 검찰, 법원 그리고 관료의 세 집단에서 모두 대선 주자들이 나왔다. ‘박정희 구체제’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입증시켜주는 장면이다.

지금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바로 박정희가 구축했던 ‘구체제’를 넘어서야만,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소준섭

화, 2021/08/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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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대표를 필요로 한다. 적어도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그렇다. 좋은 대표를 어떻게 뽑느냐에 대해 인류는 오랫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민주적 선거다. 이 제도에서는 대표자를 뽑되, 이 대표자가 유권자들의 이익과 의견에 상반되는 행위를 계속할 경우 그를 탄핵하거나 다음 선거에서 갈아치울 수 있다. 이것이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정책과 입법보다 지역 민원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선출된 대표자에 대한 견제는 대부분 형식적이고 실효성이 없다. 탄핵은 상당히 어렵다. 다음 선거에서 벌을 주는 것만으로는 시간이 너무 늦거나 징벌이 충분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다음 대표자도 역시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경우다. 이것이 지금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형편없다. 19대 국회에서 형사처분으로 의원직을 잃은 사람이 17명이고, 현재 재판 중인 의원도 17명에 달한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문제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입법 로비, 성폭행, 자식의 취업 청탁 등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다.

현재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심학봉 의원은 도덕성과 직무능력이 별개라면서 일을 잘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국회 본연의 일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총선을 앞두고 열린 국정감사는 행정부에 대한 감시보다 정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지금 국회의원들의 마음은 국정감사보다는 지역구에 가 있을 것이다. 다시 당선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하면 다시 당선되지 않을까? 엄밀히 말하면 별 상관이 없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함정이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모두 국민에게 정치를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공천 방식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는 100% 국민경선을 도입한다고 한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면 과연 정치가 좋아질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의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지역구 관리다. 재선을 결정하는 것은 정책과 입법이 아니라 지역 민원을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 지역 예산을 얼마나 잘 따오느냐에 달렸다.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보는 공보물도 대부분 이 내용으로 채워진다. 정치적 비전과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통찰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지역구 활동을 잘해야 입법 활동도 눈에 들어온다. 후자만 강조해서는 “뽑아놨더니 자기 잘난 척만 하고, 동네에는 코빼기도 안 비친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다.

현역들이 지역구에 ‘올인’한다고 하면, 새로운 인물들은 어떤가?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적지 않은 인적 교체가 이뤄졌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을 합쳐 90명의 비정치권 외부 인사가 공천됐다. 초선 의원 비율도 56%에 달했다. 그래도 국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 신인·소수 정당을 더 많이 국회로

정치 신인들의 당락은 정치적 능력보다는 학력과 경력에 크게 좌우된다. 새누리당 공천에 관여했던 사람은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총선에서 떨어질 것 같아 공천을 못 받는 경우가 있고, 정치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펙이 좋고 전문성이 있어 공천을 한 경우가 있다”고 실토한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정치를 해보니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소통 능력”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공천에 반영될 가능성은 적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재다.

문제는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의의 장점은 좋은 대표를 뽑고 나쁜 대표를 솎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에서는 20대 총선을 치러서 더 나은 국회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새로 물갈이를 해도, 비정치인이 들어가도, 결과는 거의 같을 것이다. 암담하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비례대표를 늘려 지역구 선거의 영향을 덜 받는 괜찮은 정치 신인을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두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대표되고 있지 않은 계층, 세대,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소수 정당과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맞다.

그런데 어렵다.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의원 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 의원 정수 확대는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한다. 많은 정치학자나 시민사회에서는 국회의원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의 벽은 실로 높다. 그렇다면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는 것은 가능할까? 선거법 개정이 국회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는 한, 토끼 머리에 뿔이 날 때쯤에 일어날 일이다.

결국 답은 하나다. 시민이 좋은 대표를 뽑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좋은 대표는 그냥 뽑히지 않는다. 참여민주주의만큼이나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투표를 열심히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비슷비슷하게 나쁜 후보들을 놓고 투표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이 공천 과정에서부터 개입해야 한다. 좋은 후보를 공천하고 나쁜 후보를 공천하지 말라고 정당에 요구해야 한다. 한국 시민사회는 이미 그렇게 해본 경험이 있다. 2000년 총선에서 일단 나쁜 후보를 걸러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주로 도덕성을 중심으로 88명의 부적격 명단을 발표했다. 이 중 59명(67%)이 공천받지 못했다. 부적격 명단 중에 공천된 후보를 대상으로는 낙선운동을 벌여 15명(68%)을 낙선시켰다. 수도권에서는 20명의 낙선 대상 중에서 1명만이 당선될 수 있었다.

1987년 민주화를 기점으로 보면 13년 만에 시민사회가 그만큼 성장해서 ‘정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처음 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지났다.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시민사회는 오히려 더 위축된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합시다, 바로 지금

바로 지금이 시민의 정치 참여가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설 때다. 시민들이 직접 공천과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 ‘나쁜 후보 걸러내기’라는 부정적·소극적 시도를 넘어서, 좋은 후보란 어떤 후보인지 기준을 제시하고, 그런 후보를 공천해달라는 긍정적·적극적 주장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거의 진짜 의미다. 여론조사를 통해 이뤄지는 아래로부터의 공천은 선거에 대한 많은 역사적 탐구를 볼 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선거의 진짜 효용은 출마한 후보자들 중 누가 좋은 대표인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시민들이 모여 토론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진짜 힘이다. 선거가 비슷비슷한 나쁜 사람들을 계속 재생산하는 제도라면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시민들의 토론, 좋은 대표에 대한 비전 제시, 정당에 대한 요구, 자기 성찰’이야말로 선거를 통해 정치가 나아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단기적 이익을 좇는 사람들의 선호는 공적 대화를 통해 변화할 수 있다. 지역구에 예산을 따오는 후보, 동네 산악회에 와서 머리 한 번 더 숙이는 후보, 학력이 좋고 인물이 훤한 후보가 아니라, 좋은 입법과 좋은 정치를 하는 후보를 어떻게 고를지, 그리고 그런 후보를 어떻게 정당에 요구할지를 이야기할 때다. 바로 지금.

글_이관후 (연구조정위원 / [email protected])

* 이 글은 2015년 9월 23일자 한겨레21에 함께 실렸습니다. 기사보기

*희망제작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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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9/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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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해방과 한반도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70년 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비극은 핵무기가 인류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지만 갈등과 대결, 군비경쟁의 악순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 그에 따른 미국 핵 자산의 한반도 진입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은 70년이 지난 지금 당시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이 악순환의 출발 지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015, 이제는 평화'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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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안보법제 밀어붙이기…일본의 4가지 과제

[2015, 이제는 평화] 아베가 망친 일본 민주주의, 선거로 바로 세워야

가와사키 아키라 피스보트 공동대표

 

 

지난 9월 19일 새벽 참의원 본회의에서 안보 법안이 '통과' 됐다. 국회 앞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 전국에서 펼쳐진 시위와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 반대, 야당의 항의 등 이 모든 것을 무시한 강압적인 방법에 의한 통과였다.

 

이 법제는 그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통과시킨 정치적 절차 자체가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시민단체들은 물론 많은 학자, 지식인, 저널리스트들은 이미 이를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안 '통과'라는 사태를 맞았다. 앞으로 일본 국민과 정책 입안자가 당면할 4가지의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과제는 이 '법안 성립'의 유효성을 묻는 것이다. 이 법안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이미 지적해 왔다. 또 표결 강행이 무효라는 법률가의 지적도 있다. 향후 '위헌 소송'이 제기되어야 한다. 법원에서의 철저한 위헌 심사를 통해서 손상된 일본의 입헌주의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과제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40년 넘는 기간에 걸쳐서 역대 내각이 유지해 온 헌법 해석을 한 내각의 각의 결정으로 대전환하고 각계의 반대론을 무릅쓰고 법안을 무더기로 강행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베 정권에 대해 국민이 나서 심판을 내릴 필요가 있다.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바로 이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이 법제의 시행과 운용을 둘러싼 문제다. 이 법제로 인해 자위대는 미군 등과 함께 해외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어떻게 실시될지는 정부의 운용에 달린 문제이지만, 국민의 감시와 국회의 관여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더욱이 이 과제는 다음의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명목으로 자위대가 출동해 무력행사를 하는 시나리오의 경우다. 이런 경우를 "우리나라(일본)의 존립이 위협 받고 국민의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가 뿌리째 흔들릴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로 한정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국가를 방위하기 위한 무력행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되어 있어 그 범주가 애매하다. 과연 개별적 자위권의 발동 이외에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추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자위대의 이른바 '평시' 활동 범주를 확대하는 것에 관해서다. 안보법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경우에 자위대가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안보법제를 추진해 온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법 제도가 바뀌었다고 중국, 북한, 국제 테러 등의 위협이 줄어들 리 만무하다. 문제는 일본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그 행동 여하로 위협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고, 충돌이나 전투의 위험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자위대는 보다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남중국해에서는 미군과의 공동 경계 활동 차원에서 자위대가 평시 미 함정을 방호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분쟁지에서 임무 수행을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어 그 사용 기준이 곧 책정될 것이다. 이들 운용을 잘못하게 되면 자칫 자위대의 행동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이다. 비록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상태라도 사실상의 전사자는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위기감을 갖고 향후 정부의 행동을 감시해야 한다.

 

일본 헌법 9조는 비군사적 수단에 의한 문제 해결을 국가의 기본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전쟁 방지의 기본은 외교적, 평화적 해결이다. 그것은 몇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과제는 명문상의 개헌 문제이다. 안보법제에 대한 비판 중에는 헌법의 조문을 바꾸지 않고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이를 추진했다는, 그 방법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향후 '자위대가 해외에서 활동하게 됐으니 이제 현실에 맞춰서 헌법을 바꾸자' 식의 '점진적' 개헌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원래 아베 자민당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중요 과제로 강력히 제기해 왔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명문상의 개헌 행보를 가속화할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어느 과제도 그 논의와 의사 결정 주체를 정부와 국회만으로 해서는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회 앞 그리고 전국에 번졌던 시위의 물결은 일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움직임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일본의 향방을 좌우하는 이들 중요 과제에 관해서 국민적 논의와 함께 참여 민주주의의 발전이 요구된다.

 

 

* 가와사키 아키라 씨는 반핵 및 평화운동 활동가로 도쿄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뒤 군축 및 평화운동 싱크탱크인 '피스데포'에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피스보트'의 공동대표와 집단적 자위권 문제 연구회 대표를 맡으며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정책들을 비판하는 연구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9월 19일 '집단적자위권문제연구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받아 중복 게재합니다. (☞일본어판 보러가기)


 

수, 2015/09/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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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인터넷 표현물 검열’ 안된다


송기춘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공법학회 회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인터넷상 명예훼손 게시물을 더 손쉽게 삭제, 차단하는 방향으로 정보통신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원래는 당사자나 대리인의 신청에 따라서만 심의신청을 하도록 하는 조항을 삭제해 아예 제3자를 포함하여 누구나 심의신청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아무런 신청 없이도 방심위가 직권으로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명예를 더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기관이 이런 일을 나서서 하겠다는 것이 미심쩍기도 하거니와 이런 일을 하기에는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기관에서 이 일을 감당하겠다고 하니, 그 결과는 시민들의 명예보호보다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명예’만을 위한 활동에 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또한 명예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법원의 판단을 받기도 전에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물을 삭제함으로써 국민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행정기관이 억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것이 컬러TV를 보는 사람들에게 흑백TV를 보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면, 위와 같은 방송통신 심의규정 개정은 호랑이는 생각지도 않는데 여우가 호랑이의 뜻을 내세우며 위세를 부리는 격이다.

 

명예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하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짓으로 꾸며서 또는 진실을 들춰내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명예훼손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명예가 훼손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어떤 사실이 드러나서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볼 일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허명이 사라지고 자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졌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명예훼손인지 여부는 당사자의 의사와 분리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방심위가 명예의 주체가 되는 사람과 무관하게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에 대해 심의를 개시하겠다고 하는 것은 출발부터 잘못이다.

 

예산이나 인력 운영이 뻔한 기관이 조직을 키울 목적이 아니라면, 자신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일을 왜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수천만 국민의 명예와 관련되는 게시물을 망망대해나 다름없는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그것이 명예훼손인지를 판단해서 피해를 받은 자가 피해구제를 원하는지 의사를 확인하는 일을 방심위가 할 수나 있을까. ‘명예를 보호하겠다’는 방심위의 고상한 뜻을 존중한다 해도 이런 일을 지금의 조직이 할 법이나 한가 말이다. 

 

결국 ‘철수와 영희가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는 게시물이 철수와 영희의 명예를 훼손한 거라는 결정까지 할 게 아니라면, 방심위가 염두에 두거나 실제 하게 될 일은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가진 이들에 관한 일일 수밖에 없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자유로워야 하는데, 이러한 심의규정은 오히려 행정기관이 나서서 권력자에 대한 비판만 억누르기 쉽다. 아니, 어쩌면 그걸 겨냥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방심위의 개정안은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사법부도 아닌 행정기관이 게시물을 삭제 요청할 수 있다면, 그 표현물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 아직 공표되지 않은 표현물을 행정기관에 제출하게 해서 심사하고, 심사를 통과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검열은 아니다. 방심위의 심의는 표현물을 존속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검열의 실질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이 검열은 심사기준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눈과 귀에 거슬리는 것을 없애면 안락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건강한 비판이 가해지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민주주의에는 그게 필요하다.

 

* 이 글은 11월 6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금, 2015/11/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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