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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531] 오늘날 거리 정치에 '개혁'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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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531] 오늘날 거리 정치에 '개혁'은 존재하는가

admin | 목, 2020/01/16- 04:51

오늘날 거리 정치에 '개혁'은 존재하는가

개혁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열망

 

고태경 문화연구자

 

노무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과 박근혜 탄핵은 오늘날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양분된 거리의 정치를 해석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오늘날 거리의 정치에 '개혁'은 존재하는가. 근대의 사회운동들은 거리의 정치에서 제도변화의 기운을 가져왔다. 주 40시간 노동제, 호주제 폐지, 대통령 직선제, 장애인 이동권 쟁취 등으로 표현된 거리의 운동들은 모두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제도적 의제들을 던졌다. 거리의 정치에 개혁은 있는가라는 물음은, 오늘날 거리로 집결한 이들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제도적 상이 있는가라는 물음과 연관된다.

 

결단의 시대

 

이 물음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변화시킬 제도적 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바꾸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물음이 오늘날 우파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정치를 가르는 분기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트럼프를 당선시킨 분노한 백인노동계급들에게 개혁해야 할 제도란 무엇인가? 난민 배척을 요구하는 유럽 신흥 우파들에게 가해지는 지적 중 하나는 이들이 어떤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파 포퓰리즘은 구체적인 제도개혁의 쟁점들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추상적 주권 요구, 혹은 국민의 자격 요구라는 형태를 취하며 폭발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이 사회에서 진짜 국민은 누구인가?', '멕시코 이주민은 미국의 국민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난민과 이주민 배제의 문제는 이 '진짜 국민'을 재정의하는 데서 나온 파생물에 가깝다. 이 물음은 사회 구성원 자체를 심판한다는 점에서 총체적이며,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시민참여형이라기보다 시민총동원형에 조응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들은 문명의 위기나 국민국가의 몰락이라는 종말론적 서사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과잉-종교화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잉-종교화의 한 축에 놓인 것이 오늘날 광화문으로 모이는 '태극기 부대'와 '개신교 우파'의 무리들이다. 광화문은 입법기관이 있는 곳도, 개혁의 제도적 부처들이 모인 곳도 아니다. 청와대를 인근에 둔 광화문은 오늘날 모든 불만을 수렴하는 정치의 성지(聖地)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개혁 과제도 없이 모든 것을 총체적 결단으로 환원시키는 묵시록적 시대감성이 이 공간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 묵시록적 감성의 기저에 놓인 것이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탄핵이라는 순교자 서사다. 시민들의 공론장 참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개별 시민들의 자아를 공적 세계로 연결하는 내밀한 서사구조가 필요하다. 20세기 후반에 그 서사의 핵심 위치를 차지한 것이 각각 '근대화'와 '민주화'의 시대정신이었다. 산업역군에서부터 민주화 세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대 이행은 그 시대상들을 공유한 이들의 자아 감각을 거대하게 확장시켰다. 2010년대를 넘어 이 비대해진 자아에 훼손이 가해지자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새로운 순교자 서사가 등장했다. 이들 서사는 개혁이라는 시대 진전의 과제와 연관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반대로 새로운 시대의 시민들은 무엇을 통해 공적 세계에 연결되는가라는 물음을 동반한다.

 

뉴미디어 시대의 내밀한 연결

 

 

개별 자아와 공적 세계 간의 연결이라는 화두는 단연 미디어 환경을 고려케 한다. 태극기부대의 탄생 초기에 화두가 되었던 미디어가 바로 카카오톡 단톡방이었다. 최근 버닝썬 약물강간 사태와 대학 내 성희롱 사태에서 회자되듯, 단톡방은 폐쇄성과 친밀성에 기반해 작동하는 반(反)공공적 매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폐쇄성과 친밀성의 보이지 않는 연결망들이 전국에 산개한 남성들의 연대를 가능케 한 네트워크가 되었다는 점이다.

 

비슷한 것이 태극기부대에도 작용했다. 이른바 '샤이 보수'라는 말이 있듯, 대통령 탄핵은 우파들의 내밀한 비공개적 교신을 필요로 했고, 여기에 가장 먼저 응답한 것이 단톡방이었다. 단톡방의 교감이 거리의 운동으로 전환하면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하자 이제 우파 지도자들이 전면에 나섰고, 여기에 다시 유튜브 언론이 가세했다. 유튜부는 최근 브라질 대선에서도 비주류 극우파 후보를 당선시키는 등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에 강력한 동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튜브와 우파 간의 연계성에 대해 그간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요컨대, 유튜브의 콘텐츠 추천시스템이 의도적으로 이용자들에게 우파 콘텐츠를 연결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용자들의 눈앞에 우파 콘텐츠가 펼쳐진다. 그러나 유튜브 사는 이를 부인하며 이용자들이 사이트에 오래 접속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추천시스템의 메커니즘이며, 우파 콘텐츠의 연결은 이 알고리즘의 우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는 역으로 유튜브 이용자들을 스크린의 세계로 잡아두는 특정 경향의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오늘날 그 중심에 묵시록과 음모론의 콘텐츠들이 있다. 유튜브 이용자들은 이 콘텐츠들의 세계를 통해 우파 정체성의 거대한 관계망에 연결된다.

 

그 반대 방향에 최근 해시태그 운동 등으로 나타나는 온라인 액티비즘의 흐름이 있다. 해시태그 운동의 특징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그것이 '검색용 정보'와 '결속용 메시지' 사이를 오간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단_내_성폭력'과 '#BlakLives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검색을 위한 단순 정보라기보다는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용 메시지에 가깝다. 대중매체의 시대는 대중이라는 익명의 집합체를 상대로 콘텐츠를 송신하던 시대였다. 그것은 송수신관계의 일방향성을 수반했고, 그 관계 내에 어떤 긴밀함도 포함하지 않았다. 반대로 SNS는 팔로워 관계와 해시태그 등을 통해 이 익명적 관계망에 균열을 내며 등장했다. SNS의 송수신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단순한 익명성이 아니라 팔로잉 관계의 내밀성이다. 이 내밀성에는 여러 요소들이 포함된다. 유사한 경험의 공유가 있을 수 있고, 같은 정체성의 집단일 수 있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거나(팬덤), 같은 정책의 수혜자일 수도 있다. 해시태그는 이 공유된 내밀성을 폭넓은 공적 토론의 장으로 견인하며, 이를 통해 그 경험들이 열린 공간에서 직접 말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이러한 온라인의 관계망들을 벗어나서 공론장의 구도 변화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운동의 반향이 역동적일 때 우리는 해당 행위집단이 공유한 경험의 결속력과 절박함이 강렬했음을 확인한다. 온라인의 관계망들은 먼 곳으로 흩어져 있는 익명의 많은 이들을 같은 경험, 혹은 같은 시대과제 앞에 연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문제는 그 경험이 미래의 새로운 시대상과 연결될 수 있는 제도개혁의 쟁점을 수반하는가, 그들이 공유하는 경험의 목소리가 누구를 대변하는가 하는 점이다. 개혁이란, 대의되지 않던 이들을 공론장으로 견인하는 변화를 뜻할 것이다. 광화문으로 몰려드는 개신교 우파들에게는 어떤 개혁과제가 있을까? 서초동의 검찰개혁 이후 민주화는 누구를 대변하게 될까? 개혁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은 변화될 새로운 시대상을 요구하며,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갈망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www.pressian.com/news/review_list_all.html?rvw_no=1661" rel="nofollow">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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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 첫방송
-2003년 SBS MC부문 특별상
-2004년 백상 TV 남자 예능부문상
-2005년 MBC 쇼버라이어티 최우수상
-2006년 KBS연예대상 대상 ‘김제동’

그리고 2008년 이후 그가 있었던 곳.

-노무현 대통령 노제
-제주 강정마을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백남기 농민 촛불 집회
-성주 사드 반대 집회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만민공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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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차 4번 째 손님은 ‘광장으로 나온 광대’ 김제동 씨다. 제동 씨가 현장에서 몸으로 겪은 세월호와 탄핵, 그리고 촛불 혁명. 헌법 37조를 가장 애절한 연애편지의 한 구절이라고 느낀 이유,그리고 살 떨리게 아름다운 그의 ‘광화문 판타지’…

그가 세상의 동료 아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방송인들을 위한 진행 비법이 전격 공개된다. 제동 씨의 ‘연애 부재’가 탄핵 정국에 미친 ‘나비 효과’에 대한 합리적 추론, 그와 박성제 기자가 듀엣으로 부르는 ‘거리에서’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김제동이 대선 후보들을 모두 한 방에 보낸 절묘한 촌철 살인은 무엇이었을까…

방송을 보기 전에 관계있는 것을 연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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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버전은 팟빵이나 애플 팟캐스트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수, 2017/01/1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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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23주기 토론회]

 

“광장과 촛불 이후 생명운동의 과제”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힘으로 만들어낸 광장과 촛불 이후 사회를 생각합니다.

정치권력 재편과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각자도생의 엄혹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감과 공허함을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광장에서 일상으로 시선을 돌려 따듯하고 든든한 삶의 안식처를 곳곳에 만들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시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일상에서 축제와 살림의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해 함게 지혜를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일시 : 5월 20일(토) 오후 2~5시
  • 장소 : 원주 시립미술관 강의실
  • 진행 : 김용우
  • 발제 : “광장과 촛불에 담긴 전환의 메시지와 생명운동의 과제” 주요섭

“광장에서 일상으로, 공동체적 열망과 삶의 자립과 자치” 이무열

  • 지정토론 : 미류/이안소영/염형철/윤호창
  • 자유토론
  • 주관 : 무위당만인회/모심과살림연구소/생명학연구회
  • 문의 : 033-747-4579/02-6931-3604

*토론회 이후 강연과 무위당만인회 총회가 이어집니다.

 

 

한살림원주 홈페이지
금, 2017/05/1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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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 이후 대한민국에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궁중정치와 촛불로 대표되는 광장민주주의의 역사적 대결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3차례 담화 등을 통해 거짓 해명과 눈물, 교란책 등을 내놓으며 줄기차게 국면전환과 반격을 시도했지만 촛불민심은 단호했다. 박근혜 즉각 퇴진과 처벌을 흔들림 없이 요구하며 우왕좌왕하던 정치권을 탄핵의 대오로 이끌었다.

촛불 vs. 박근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제일 먼저 꺼낸 카드는 ‘개헌’, 그것도 본인이 주도하는 개헌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과 정부 비밀문건을 미리 받아 봤고, 수정까지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개헌 카드는 하루만에 좌절됐다. 대통령은 1차담화를 발표했지만 거짓말 해명 논란에 검찰 수사를 대비한 가이드라인 제시 성격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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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2만 명 촛불의 민심은 허탈과 배심감, 그리고 분노였다. 전국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꺼낸 두번째 깜짝 카드는 일방적인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이었다. 새누리당이 제안하고 있었던 거국내각 취지에도 맞지 않고 야권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인데도 왜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했을까? 총리 지명을 강행함으로써 파행을 일으켜 총리 정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동시에 김병준 씨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국민의당을 회유해 야권 분열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대통령이라는 진술이 나오는 등 게이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자 대통령 지지율은 5%까지 추락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2차 담화를 발표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로 대표되는 이날 담화의 핵심은 진심어린 사과가 아닌 최순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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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촛불은 광장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서울 20만 명을 포함해 전국 30만 촛불 민심은 ‘박근혜는 물러나라’였다. 촛불에 놀란 야권은 탄핵이나 퇴진을 거론했을 때의 역풍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서 촛불을 두려워하며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고, 새누리당도 친박과 비박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촛불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번 반전을 시도했다. 본인의 거취나 총리의 권한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 없이 국회에 총리 추천 권한을 기습 제안한 것이다. 김병준 총리 지명자 카드는 결국 버리는 돌이 됐고, 당리당략이 복잡한 정치권은 흔들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끊임 없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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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을 느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는 기존 입장에서 180도 태도를 바꿨다. 퇴진이나 2선 후퇴는 없다고 못박으며 반격으로 돌아섰다. 우선 우선 검찰 수사에 적극 응하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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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수사를 회피하면서 부산 엘씨티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엄단하라는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차관 인사와 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 사드 배치, 그리고 교과서 국정화 등을 밀어붙였다. 친박계도 대통령의 행보에 발맞춰 각종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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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침묵했던 친박 중진들까지 전방위로 박근혜 호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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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친박의 반격에 촛불은 직접 청와대로 향했다. 서울을 포함해 전국에서 136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다음날 검찰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공범으로 박근혜를 지목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를 상상과 추측, 사상누각이라며 비판했고 국회에 제안했던 총리 추천권도 철회할 뜻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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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한파에도 최대 인파가 모였다. 190만 명 촛불 민심은 직접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청와대로 진격했다. 한달 만에 2만에서 190만 명으로 증가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새로 쓰여지고 있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회심의 한 수를 정치권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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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의 시기와 방법을 국회가 정해달라며 조기퇴진의 가능성을 비쳤지만 사실상 이간책이었고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우선 탄핵을 다짐했던 비박계가 돌아서면서 탄핵시계는 멈춰섰다. 친박과 비박계는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다시 합쳤고 청와대는 비박계를 설득하기 위해 면담을 추진했다.

비박이 이탈하자 야권은 우왕좌왕했다. 추미애 대표가 단독으로 김무성 의원을 만나 퇴진 일정을 논의한 것이 알려지자 다른 야당이 발끈했고 탄핵안 표결 시점을 놓고는 2일, 5일 또는 9일 등 오락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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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이간책과 이에 흔들리는 정치권의 모습은 촛불을 횃불로 만들었다. 236만 명의 민심은 청와대와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을 동시에 압박했다. 비박계는 민심 앞에 고개를 숙여 대통령의 4월 퇴진 여부와 관계 없이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로 돌아섰다. 광장은 거대한 축제의 장인 동시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의 산실이 됐다.

목, 2016/12/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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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KYC 근현대사 아카데미
올해는 "광장민주주의"를 이야기 합니다.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진 촛불, 촛불의 시작은 아마도 세월호참사였을겁니다.
5월, 세월호가 올라온 목포 답사를 시작으로
전우용 선생님과 "광장 민주주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전국에서 타올랐던 탄핵촛불!
그 촛불의 연대와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촛불대선"을 치뤘습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
이 물음에 고민하면서, 2017년, 우리들은 광장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꿈꿨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3.1운동과 해방후 어떤 나라를 만들것인가에 대한 고뇌,
4.19혁명과 5월광주에서 6월항쟁까지...
"시민"의 힘이 광장으로 쏟아져 분출되었고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장민주주의"는 우리사회 진보적 변화를 만들어온 커다란 흐름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권력의 시대에서 "시민권력"의 시대로!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열린 광장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루었고,
2017년 촛불(혁명, 항쟁, 시위, 운동)을 통해 정권교체를 했습니다.



30년이 흐른 2017년, 대통령이 6월항쟁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6월항쟁의 정신 속에 문재인 정부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며
유가족들과 손잡고 "광야에서"를 제창하고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때, 6월 정신은 온전하다고 했습니다.

다른어느때보다 감동적인 것은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기 때문일까요?
어른아이 할 것없이 많은 분들이 손을 잡고 울면서 불렀던 광야에서가 절절합니다.

6월항쟁의 상징적인 청년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이름불려지지 않는 수많은 종철이, 한열이들
6월의 거리를 달렸던 그들을 만났습니다.



시청광장에서는 '철이 친구들'이 박종철 열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남영동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고 쓰러진 박종철
부실한 수사와 조작된 기록, 그리고 밝혀지는 죽음의 진실
1987년의 박종철이 2017년의 우리들에게 어떤 말을 건냈을까요..?



서울광장 주변으로 6월항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1987년 5.18 7주기 추도식이 열린 명동성당.
그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쟁 기간 중 농성이 시작되며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끊임없이 모여들던 곳입니다.

그 아래쪽 향린교회.
1987년 5월27일 각 분야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대표자 200여명이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된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 성공회대성당!
국본지도부는 1987년 6월10일 성당에 들어와 종을 치며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개최를 선언했습니다.
이곳에는 "유월민주항쟁진원지"라는 비석이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6월항쟁의 시작을 알렸던 타종을 재현하며 그날을 기억합니다.





시청을 벗어나, 이한열을 만나러 신촌으로 왔습니다.
그가 다녔던 연세대학교, 그곳에서 멀지 않은 작은 골목에 "이한열 기념관"이 있습니다.

1987년 6월9일 연세대 앞에서 시위하다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고 쓰러진 이한열
그의 나이 21살. 대학교2학년 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이동중에도... "내일 시청에 가야하는데....." 이 말을 남기고 잠들었습니다.

이한열을 비롯한 청년들의 희생과 죽음으로 결국 군부는 항복하며 6.29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이한열의 쓰러진 모습과 그에게 날아오는 불붙은 화염병
그가 입고 있었던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 책들... 어느 전경의 일기까지
당시를 기억하는 것들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한열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우리는 얼만큼, 어떻게 변했을까요..?

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이루고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게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지난 30년동안 우리 삶은 양극화. 분열, 단절 속에서 제자리를 돌며 어려워졌습니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에 더이상 참지 못해,
6월항쟁 보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달려나왔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민주주의!  여전히 "더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대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지키고 키워온 "우리의 것"입니다.
수많은 과거와 6월항쟁이 만들어낸 민주주의가 더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단단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제 더이상은, 퇴보하거나 후퇴하지 않도록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지난 30년동안 몸소 체험하고 배웠던 경험이 아닐까요?
"밥이 민주주의"이고, 우리 일상이, 내 삶이 민주주의와 더욱 밀착할때
6월항쟁은 우리 곁에서 살아숨쉬게 될겁니다.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갈지, 기분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6월의 거리에서, 30년전 청년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기억하면서, 더불어 함께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습니다.

근현대사 아카데미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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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6/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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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겨울의 거리는 촛불의 열기로 뜨거웠다. 주말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힘은 결국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탄핵 심판대로 끌어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며 수많은 시민들은 2017년 지금도 광장을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가결 시켰던 승리의 경험. 광장에서 외쳤던 주권자의 명령. 이 모든 기억을 잊지 말고 더 큰 명령을 준비할 때입니다. 새로운 2017년이, 완전히 달라질 이후 30년이 우리들 앞에 놓여있습니다.

김벼리 / 평택 현화고등학교

그러나 박근혜는 여전히 청와대에서 버티고 있고, 공범자들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백만이 모였던 광장의 촛불은 이제 어디로 향해야할까?

▲ 이유미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삼성은 경영승계에 도움을 받았고 그 대가로 최순실과 재단에 돈을 줬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 사회에 뿌리 깊숙이 박혀있던 정경유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 이유미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삼성은 경영승계에 도움을 받았고 그 대가로 최순실과 재단에 돈을 줬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 사회에 뿌리 깊숙이 박혀있던 정경유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막강한 자금을 동원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치를 이용해 온 재벌들과는 달리, 시민들의 일상은 정치 혐오에 가까웠다. 지금껏 국가, 재벌, 정치권, 언론은 삶과 정치의 연결을 끊임없이 방해했고, 제도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감은 시민들을 정치에서 고개를 돌리게 했다.

말로만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존중받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의 문제가 정말 정치에서 진지하게 다뤄지고 정치가 그런 것을 풀어내는, 우리의 생활의 문제를 풀어내는 그런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우리가 광장에 모인 건 비롯 개인이지만 개인이 집단이 돼서 비롯 그 날 그 순간 뿐이지만 행동했기 때문에 힘이 있었던 거예요. 그럼 왜 그 순간만 집단이 되어야 하냐는 말이예요. 매일 집단이 되어 있으면 좋죠.

강상구 / 정의당 교육 연수원 부원장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다가올 수록 정치권은 대선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번주 뉴스타파 목격자들 <이것은 명령이다>는 다양한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2016년의 촛불을 돌아보고, 2017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승수(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김벼리(촛불집회 참가 고등학생), 김혜진(4.16연대 상임운영위원), 강상구(정의당 교육 연수원 부원장)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승수(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김벼리(촛불집회 참가 고등학생), 김혜진(4.16연대 상임운영위원), 강상구(정의당 교육 연수원 부원장)

열심히 시위를 했던 프랑스 학생 중에 한 명이 한국에 온 적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자기가 정말 이상했던 것. 청년 실업이 8%쯤 되면 조직이 100개는 만들어져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에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우리같으면 청년 실업률이 8%면 다들 나와서 시위를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고 조직이 100개는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김혜진 / 4.16연대 상임운영위원/퇴진행동본부 언론팀

이번 프로그램의 연출은 태준식 독립영화 감독이 맡았다. 그는 <당신과 나의 전쟁> <어머니> <슬기로운 해법> <교실> <촌구석> 등을 연출했다. 또 내레이션은 촛불집회를 참여하고 경험했던 고등학생 김벼리 양이 맡았다.


글 연출 태준식

금, 2017/02/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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