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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한국-홍콩 민주주의 공동행동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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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한국-홍콩 민주주의 공동행동 (11/9)

admin | 목, 2019/11/07- 23:25

홍콩-한국 민주주의 공동행동 2019. 11. 9. 토 홍대입구역 7번출구 근처에서 열립니다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264/637/001/d1c4a... style="vertical-align:middle;color:rgb(102,102,102);font-family:'나눔고딕', NanumGothic, ng;text-align:justify;background-color:rgb(255,255,255);" />

 

우리의 연결로 홍콩에 민주주의를

Bring Democracy Now to Hong Kong 

2019. 11. 09.(토) 오후 4:00

홍대입구역 7번출구 윗잔다리공원 인근 광장

 

지난 3월 31일 홍콩에서 시작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 철회 시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콩의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홍콩의 미래를 걱정하며 계속해서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홍콩 경찰은 중등학생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등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어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향한 ‘백색 테러’ 역시 심각합니다. 현재까지 홍콩 시위로 인한 체포자 수는 최소 2,700명이 넘고,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15세 이하 청소년의 수가 100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홍콩의 시민들은 한국의  군부독재 시절 국제사회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과 지지를 표한 것처럼, 이제는 한국도 홍콩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열망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표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공동행동, 국제민주연대, 나눔문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 참여연대,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촛불시민연대,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5.18재단 등 한국의 시민사회와 재한홍콩인들은 시위대를 향한 홍콩 정부의 과도한 폭력 진압을 규탄하고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연대 집회와 촛불문화제를 개최합니다.

 


홍콩-한국 민주주의 공동행동 <우리의 연결로 홍콩에 민주주의를!> 

일시 :  2019. 11. 09.(토) 오후 4:00

장소 : 홍대입구역 7번출구 윗잔다리공원 인근 광장 https://place.map.kakao.com/18213816" rel="nofollow">지도보기>>

주최 : 홍콩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프로그램 : 각계발언 / 연대성명서 낭독 / 공연 / 행진(어울림로 따라 상상마당까지) +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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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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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자질은 능력과 공정성으로 통치하는데 필요한 자질과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장 프랑수아 레벨(Jean-François Revel) (1924-2006), 프랑스 철학가 (마르크와 예수, 1970, p. 68)

“첫 번째 진실은 국민이 민간 권력의 성장을 용인하여 민주주의 국가 자체보다 강력해진다면 민주주의의 자유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파시즘이며 개인에 의해, 단체에 의해 또는 민간 권력에 의해 정부에 귀속됩니다.”–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32대 미국 대통령 (1933-1945) (의회 연설, 1938/04/29).

“권력의 아가리는 항상 삼켜버릴 수 있도록 열려 있고, 권력의 갈래는 제멋대로 널려 있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자유를 파괴합니다.”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 2대 미국대통령, 1797-1801 (‘교회법과 봉건법에 대한 논문’, 1765).

“정의를 위한 인간의 능력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지만, 부당함을 향한 인간의 성향은 민주주의를 요구합니다.”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1944)

“박사님, 우리는 어떤 국가를 만들었나요? 공화국인가요 아니면 군주국인가요? — 공화국입니다.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한에서만.”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미국 건국의 아버지 (1787년 헌법 제정 회의 말미에 여성의 질문에 대한 프랭클린의 답변)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 펜실베니아 게티스버그에서 표현했듯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사상, 양심, 연설, 종교, 집회, 청원, 언론 등)를 보장하는 정치 제도로서 법 앞에서 정당한 법적 절차와 평등을 약속한다. 그것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책임지도록 하며 정부가 독단적으로 개인을교도소에 수감시키고 노예화하거나 감옥, 노예, 결박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개인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정치적 선호를 표현해도 안전함을 보장받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12세기 영국에서 유래한 인신 보호령(Habeas Corpus)의 법적 원칙은 민주국가에서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나아갔던 위대한 단계였다. 해당 법령이 적법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체포, 구류 또는 투옥을 금지하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는 사회 내의 정치적인 권력이 개념적인 신과 지구상의 가까운 통역자(왕, 황제 등)에서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주권으로부터 나온다는 근본원리에 기초한 체제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 통치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유 정부에서 통치자는 하인이요, 국민은 그들의 상관이자이자 주권자”라고 쓰면서 민주주의 개념을 확고히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는 완벽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타락하고 와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1947년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도된 정부 형태를 제외하고 가장 나쁜 정치 형태이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취약한 정부 형태이고,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실존하고 지속하려면 특별한 조건과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것이 독재자의 영향이나 다른 유형의 과두제 집권층에 의해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 민주주의는 기본 원리 세 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1. 정치적 소수자를 고려하여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거 또는 국민 투표에서 당선된 국민이 최종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2. 법 아래에 국민은 평등해야 합니다 그리고

3. 첫 두 원칙이 지켜지도록 보장하기 위한 헌법 규칙과 정치 및 법률기구가 필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결코 자연스러운 정부 체제가 아니다. 특히 전체주의적 독재정권 같은 독재정권은 폭력, 압살과 개별 군주 또는 과두정치 정부에 의존하여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규제를 가한다. 사실 이에 의해 역사를 통틀어 왕, 황제, 선동가, 폭군, 독재자, 과두 정부가 절대권력을 강탈하고 국민을 지배하며 야당 및 기타 정당을 없애게 되었다.

사실 어떤 민주주의도 권위주의적 압박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에 의해, 편견이 없는 언론에 의해, 지식인 및사상가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헌법과 부패하지 않은 사법 제도에 의해 변호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Is Democracy Consistent with Islam?

민주주의는 이슬람 제도와 함께할 수 있을까?

20세기 후반에 민주주의 제도를 따르는 국가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20세기 전반은 두 차례 세계 대전과 심각한 경제 침체로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에서 비롯되어 다수 국가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한 경제적 사안과 빈곤은 그때 당시 독재자 및 전제 군주들을 위한 왕성한 토대를 만들었다. 그 기간 동안 민주주의 국가의 비율은 31 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세계에 전제 군주국이 총 137개국이 존재한 반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12개국에 불과했다 (즉, 민주주의 헌법과 민중 자유를 위한 보호, 자유 선거, 독립된 사법부를 지닌 국가).

20세기 후반에 상황이 극적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발전이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향후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1945년에 유엔이 창설되었다. 비록 회원국 50국 모두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수호하지 않았지만 일부 50개국은 유엔의 창립회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 인권 선언은 민주주의 기본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면서 선포되었다. “국민의 의사가 정부 권력의 기반이 된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 동안, 중요한 지정학적 발전이 두 가지 일어났다.

– 먼저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및 기타 국가에 의한 압력 아래에서 발생한 공격적인 독립운동을 통해 이전 식민지 정치체제로부터 식민지 국가를 해방시켰다. 이러한 탈식민지화 과정은 아프리카와 특히 오늘날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로 대표되는 아시아에서도 발생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는데, 그 중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했다.

– 두 번째로, 1991년 12월 소련 붕괴와 이어진 해체는 동유럽 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No less than 14 of the former Soviet republics became independent states, besides Russia. 러시아를 제외한 구소련 공화국 14개국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공화국 중 오직 소수만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발트 3국)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공정한 선거를 치룬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 중 일부는 사실상 독재 정권(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하에 있으며 상징적인 선거를 치를 뿐이다. 구소련 공화국 중 기타 5개국 중 몇몇은 더 민주적인 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 및 권위주의가 혼재한다.

문제는 2006년 이후로 세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감소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스탠포드 대학연구진은 미국의 도덕적인 리더십이 없다면 모든 민주주의는 추락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경보를 울렸다.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정치학자는 «역경: 러시아의 분노, 중국의 야망, 미국의 자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구출하기»라는 새로운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 및 해외에서 독재주의의 증가 추세에 의해 자유가 어떻게 침해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약화하거나 실패했는지에 대해 다루었다. 예를 들어, 그는 최근 2006년까지만 해도 모든 국가의 62%가 민주주의를 따르는 국가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으나 2017년에다다르자 그 수가 51%로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언젠가 21세기가 ‘전제 군주의 부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지했다.

이는 왜 그러한가? 그 중 주된 요인은 국내 경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 정부의 역량을 약화시킨 경제 및 금융의 세계화로 추정된다. 또한 세계화는 중요한 경제적 구조 변화를 야기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의 성장을 촉진해왔지만, 특히 오래된 산업 내 일부 노동자 집단이 뒤쳐지면서 탈산업화 과정과 고임금을 받는 직업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또 다른 원인은 세계화가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린점에 대한 민족주의자들의 반발 때문일 수 있다. 많은 국가는 점점 허술한 국경지대를 형성하면서 외국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의 유입이 증가했고 몇 사람은 “민주주의는 그들에게 잘 적용되지 않으며 더 이상 그들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다”는 말에 설득 당했다.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 후퇴 또한 지난 수십 년 동안 목격되어 왔다. 일부국가는 과거 관습처럼 공공 조사 위원회를 설립하기 보다 기술 관료 또는 판사에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회 및 정치적 사안을 해결할 권리를 위임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사실 특히 유럽 연합 내 일부 국가에서 중요한 정치 권력이 국가 정부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로 이동함에 따라 민주주의 결핍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의지를 좌절시키고, 소외시키며 국가 내 정치인에 대한 믿음을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은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싶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EU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다른 국가 중 캐나다를 예로 들면 1982년 이후 다수정치 세력은 소위 판사들의 정부로 이동했다. 판사들로 구성된 정부는 일반적으로 선출된 정부 관료들의 책무를 사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맡겼다.

위에 언급된 두 가지 원인과 관련된 또 다른 요인은 일부 국가 내 소득 및 부의 불균등 증대와 국내 정치에서 거부를 위한 역할과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부유층을 위한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가 국가간의 세계적인 불평등을 감소시켰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산업화된 국가들 내의 불평등을 증가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세계화로 성공한 사람들은 세계화로 패배한 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부과해야 하는 세금을 낮추기 위해 넘치는 부를 활용하여 미국 정부에 영향을 끼쳤다. 이는 불균등 증가에 대한 정치 및 경제적 요인에 추가할 수 있다. 미국 및 기타 국가에서 나타나는 증가하고 불안정한 정치 양극화는 사회적 양심이 결여된 일부 자본가들의 무한한 욕심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으로 보여질 수 있다.

 

결론

금세기에 나타나는 민주주의 쇠퇴는 경제적 및 정치적 요인 서로 얽힌 사안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로부터의 후퇴를 멈추고 이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해결책을 모두 찾아야 할 것이다. 자만과 현실 부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Rodrigue Tremblay (로드리그 트렘블레이 교수)

«세계 윤리 강령, 10 휴머니스트 원리», «신생 미국 제국»의 저자

 

2020/01/02 글로벌 리서치

금, 2020/01/2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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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Asia40-450p.jpg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106661/304/682/001/f4a0... style="vertical-align:middle;" />

 

아시아팟 40회 / 동남아 다섯 나라와 맞닿은 색깔의 나라 <아시아 TMI> 태국 편 ① 

 

미얀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은 전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에메랄드 사원, 국왕, 불교, 코끼리, 똠양꿍, 카오산로드... '태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참 많지만, 

아시아 각국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던 시기,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다른 나라들과는 또다른 역사와 정치, 문화적 특징을 가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아시아 각국의 역사,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모습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아시아 TMI>, 

세번째 나라는 '색(色)의 나라'로도 불리는 태국의 다양한 모습을 엿봅니다. 

 

* 팟빵에서 듣기 : http://bit.ly/37FWJxk"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102,153,204);" target="_blank" rel="nofollow">http://bit.ly/37FWJxk

 

[아시아팟]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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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517871"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2회. 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521846"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3회. 버마의 '로힝쟈',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527456"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4회. 아시아 사람들은 한국 기업을 반가워할까요?

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532428"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5회. 미안해요,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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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544140"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7회.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는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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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646839"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29회. 아시아의 '위안부'를 겹겹이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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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656623"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31회. 중국,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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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oplepower21.org/PeopleTV/1672577" style="background:0px 0px;color:rgb(66,139,202);" rel="nofollow">36회.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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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1/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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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3일, 성남시에서는 성남시민 100여 명과 함께 ‘성남시 시민참여 활성화와 공익활동 지원 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가졌습니다. 1부에서는 두 분의 전문가를 모시고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과 역할 그리고 그간 이뤄온 중간지원조직의 성과와 앞으로의 방향에 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운영

첫 번째 발제자인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은 과거 관료 중심, 기업 중심으로 정부가 운영되던 시기를 거쳐 이제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즉, 시민의 참여가 중심되는 사회로의 전환에 관한 이야기로 포럼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시민이 단순히 정부의 서비스를 받는 수동적 객체를 넘어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공동으로 노력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시기라는 것인데요. 이러한 흐름에서 정부가 공익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함께 해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소장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어려움 및 한계로 ▲전문성 결여 ▲자원 부족으로 인한 원활한 사업 수행의 어려움 ▲내부 갈등 및 공동이익 추구의 어려움 ▲ 정부와의 관계 등을 지적하였는데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간지원조직의 지원, 구체적으로는 연대와 네트워크 지원, 재정 및 인적자원지원, 시장과 정부의 연결 지원 등을 통해 시민단체의 어려움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과 함께 그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김 소장은 또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공익활동을 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관점에서의 운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나아가 성남시의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논의가 단순히 시민사회를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성남시의 주인이 되고, 실제적인 주체가 되도록 함으로써, 시민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길이 되도록 함께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 센터장

 

중간지원조직 -서울 NPO(Non-Profit Organization:비영리기구) 지원센터

대표적인 중간지원조직으로, NPO지원센터의 목적과 필요성 및 이제까지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들어봤습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온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 센터장은 NPO지원센터의 목적은 시민사회 활성화이고, 나아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사회적 지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NPO지원센터의 주된 역할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어 정 센터장은 NPO를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초기 사업부터 현재 활동들, 그리고 앞으로의 추진 계획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는데요.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성과로 재정안정 컨설팅, 조직역량 강화 컨설팅 등을 통한 조직의 기초체력 향상 지원을 포함해 맞춤형 교육을 통한 활동가역량 강화 지원사업, 파트너기관 확대·협업을 통한 공익활동 생태계 활성화 및 시민사회 성장지원 사업 등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 센터장은 앞으로의 계획으로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 지원, NPO공동사무국 기능, 활동가 전문성향상 및 동기에 기반한 학습지원 프로그램, 광역/자치구 NPO지원체계 구축, 공익활동의 사회적 지지와 안정에 기반한 시민참여 촉진 등을 통해 그 역할과 지원의 폭을 넓혀 갈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2부에서는 다섯 분의 지정토론자를 모시고 보다 다양한 중간지원조직의 활동 사례를 포함해 시민사회 활동가의 목소리도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민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자라는 인식으로 중간지원조직 이끌어야

첫 번째 지정토론자로 나온 공정옥 대구시 공익활동지원센터 총괄실장은 공익활동의 정의를 공공이 하는 일, 선한 일 등을 넘어 이제는 사회문제를 시민이 주체적으로 해결해나가는 활동이라고 이야기하며, 여기서 시민은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구체적인 주체자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 총괄실장은 또, 시민의 공익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업으로 대구시의 ‘씨앗’을 소개했는데요, 공익활동 지원이 꼭 큰 금액을 지원하거나, 거창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시민의 눈높이와 욕구에 맞춰서 지원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현 군포시 공익활동지원센터 TF위원은 군포시의 공익활동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준비과정에서의 고민들을 이야기해주었는데요, 군포시민 또는 단체의 공익적 활동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센터 정체성 확립과 함께 시민사회나 행정이 하는 일을 중복하거나 독자 사업을 하지 말고 지원하는 일에만 집중하자는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김 위원은 또 민간진영의 자율성, 독립성 및 참여를 확장하기 위한 위탁 형태로의 센터 설립과 더불어 공익활동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 및 센터 명칭에 이르기까지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써 사업 준비 전반에 걸친 내용을 전했습니다.

중간지원조직, 신뢰를 바탕에 둔 시민사회에 대한 사회적 지지

박재윤 호모인테르 대표는 수혜자의 관점에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성과를 생생하게 들려주었습니다. 박 대표는 시민단체로서 활동에만 매몰될 수 있었으나 지원센터의 코칭 멘토링을 통해 객관적인 눈으로 사안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중간지원조직의 지원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사회적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준호 성남KYC 공동대표는 파편화된 개인이 공동체화될 수 있는 플랫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간 중심으로 생각하던 지원센터의 개념을 이제는 플랫폼의 역할로 확장해, 빨라진 여론 확산 속도와 변화된 시민참여 구조에 발맞춰 나가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이 대표는 또 성남시의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시민노동과 관련한 것들이 플랫폼에 녹아나고, 민관이 신뢰를 만들어나가는 선례를 만들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 지정토론자인 심우기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은 시민단체를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단위라고 정의하면서 정부나 기업이 못 하는 것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심 위원장은 행정과 시민단체 간의 여러 가지 차이의 완충 및 조정 역할로서 중간지원조직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는 기존의 행정과 시민단체가 못한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와 시도로 그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글: 이다현 대안연구센터 연구원·[email protected], 허웅 대안연구센터 연구원·[email protected]
-사진: 대안연구센터

목, 2020/01/0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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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인권변호사단의 시작엔 한국 농민들이 있었다

[홍콩의 오늘을 만나다②] 홍콩 시위대와 함께 걷는 홍콩의 변호사들을 만나다

 


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019년 내내 이어진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2019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권운동공간 활,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의 활동가 7명이 만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International&document_srl=16... target="_blank" rel="nofollow">[홍콩의 오늘을 만나다 ①] 무장 경찰, 검문검색..... 그래도 '홍콩에 오길 잘했다'


 

류다솔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상근변호사

 

 

2018년 2월, 한 홍콩인 남성이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하여 함께 여행을 간 여자친구를 대만에서 살해한 뒤 홍콩으로 돌아왔다. 영국법체계를 따라 형사법상 속지주의를 택한 홍콩에서는 홍콩 밖에서 범죄를 저지른 위 남성을 처벌할 근거가 없었고, 대만과 범죄인인도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아 그를 대만으로 송환할 수도 없었다. 이에 홍콩 정부는 2019년 2월 중국, 마카오, 대만 등 별도의 범죄인인도협정을 맺지 않은 지역으로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법(아래 '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이 개정안은 2019년부터 해를 넘긴 현재까지 이어지는 홍콩 시민들의 거대한 분노와 투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법 개정안이 발표된 직후 법안의 악용 가능성 등 문제점을 처음으로 지적한 이들은 홍콩의 변호사들이었다. 진보적 변호사 단체인 PLG(Progressive Lawyers Group) 등은 2019년 2월 말 성명을 통해 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홍콩의 행정장관이 정치인을 포함하여 홍콩에 발을 들이는 모든 사람에 대해 모호한 죄명을 이유로 중국 등지로의 송환 결정을 할 권한을 가지게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2015년 중국 내 '금서(禁書)'를 판매한 홍콩 퉁뤄완(銅鑼灣) 서점 관계자 5인 실종사건 등을 경험한 홍콩에서 이러한 지적은 매우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홍콩의 변호사 단체인 PLG는 2019년 2월 22일 홍콩 정부의 송환법 개정안에 관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PLG 홈페이지 갈무리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7/IE002590628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홍콩의 변호사 단체인 PLG는 2019년 2월 22일 홍콩 정부의 송환법 개정안에 관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PLG 홈페이지 갈무리ⓒ Progressive Lawyers Group

 

 

법 개정안의 문제점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2019년 6월, 홍콩의 변호사와 법학자 등 법률가 3000여 명이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 침묵행진을 펼쳤다. 인구 약 740만 명의 도시에서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에 때로는 격렬하고 때로는 조용하게 저마다의 작은 불빛을 보탰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 공식철회를 선언한 9월 4일 이후에도 시위대는 경찰의 시위대 강경 진압을 조사할 독립 진상조사단 설치 등 '5대 요구' 관철을 주장하며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9년 11월 중순까지 시위로 인해 체포된 사람은 4500명을 넘어섰다. 우리 방문단은 시시각각 변하는 홍콩의 상황 속에서 홍콩의 시위대에게 법률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홍콩의 변호사들을 만났다. 

 

한국 농민들의 WTO 반대 시위, 공익법률지원의 시작

 

우리는 '주도자 없는 시위'로 일컬어지는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법률 지원 핫라인을 운영하는 한 중견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2005년 한국 농민들의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시위를 언급했다. 2005년 12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한국 시민사회는 1500명가량의 대규모 투쟁단을 구성하여 WTO 제6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홍콩으로 원정투쟁길에 오른 바 있다.

 

한국 시위대는 사물놀이, 바다 수영, 삼보일배, 도로점거투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5일가량 시위를 이어갔는데, 특히 삼보일배 시위는 홍콩 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시위로 인해 1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연행되었다. 홍콩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그는 처음 겪는 상황에 홍콩 경찰과 홍콩 시민사회 모두 미숙했지만, 이를 통해 양측 모두 시위 대응 능력이 높아졌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홍콩 변호사들의 대규모 프로보노 공익법률지원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평했다.

  

 


2005년 WTO 반대시위의 일환으로 삼보일배를 하며 홍콩 거리를 행진한 한국 시위대 (<a href=http://omn.kr/35c2)" class="photo_boder"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7/IE002590621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506px;" />

▲  2005년 WTO 반대시위의 일환으로 삼보일배를 하며 홍콩 거리를 행진한 한국 시위대 (http://omn.kr/35c2)

ⓒ 오도엽

 

 

당시 홍콩 시민사회는 대규모 연행자들의 법률 조력을 위해 20여 명가량의 변호인단을 꾸렸다. 이들의 조력으로 대부분의 시위대가 기소되지 않고 풀렸났으며, 당시 3심까지 갔던 한국인 세 명에 대해서도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나왔다. 마지막 무죄 판결까지 이끌어낸 이 변호사는 당시의 인연으로 한국에 왔다가 농활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과연 필자보다 한국의 사회운동에 더 베테랑이었다. 이후 두 번째 대규모 공익법률지원 활동은 2014년 79일 동안 지속된 '우산혁명'이었다. 수십 명 규모의 변호인단이 구성되었지만 다행히도 연행자가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 대규모 공익법률지원 활동이 바로 지금의 시위이다. 홍콩의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시위대를 위한 법률 지원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연행되는 시위대가 연락을 하면 법률지원이 가능한 변호사와 연결을 해주는 식이다. 현재 약 200명 가까운 변호사가 자원하여 일하고 있다고 한다.

 

홍콩의 변호사가 법정변호사(Barrister) 1500여 명, 사무변호사(Solicitor) 9900여 명 등 1만 명가량이니 전체 변호사의 약 2% 남짓이다.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지난 2019년 6월부터 12월 5일까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홍콩 시민의 수는 5980명이고, 이 중 18세 미만 청소년은 238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호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숫자의 시위 연행자들을 위해 법률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긴급법률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위한 홍콩 인권단체 ‘민권관찰’의 안내문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7/IE002590632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긴급법률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위한 홍콩 인권단체 ‘민권관찰’의 안내문ⓒ 민권관찰(民權觀察)

 

 

이번 방문을 통해 10여 명의 홍콩 변호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평일에는 기존의 일상적인 변호사 업무에 더해서 매일같이 잡혀있는 시위대의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밤이 되면 밀린 서면을 쓰고 있었다. 주말이면 흐르는 물과 같이 어디서 시위대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지 모른다. 주말 저녁에 연행 소식을 들으면 시위현장과 경찰서, 구금 시설 등으로 달려간다.

 

지난 11월 홍콩이공대에서 하룻밤 새 1000명 이상이 연행되었을 때는 변호인단에게도 악몽같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올해 첫 시위가 있던 지난 1월 1일에도 400여 명의 시위대가 연행되었다. 이런 생활도 어느덧 반년을 훌쩍 넘었다. 시위대도, 함께 하는 변호사들도 언제 '일상'을 되찾을지 기약이 없다. 

 

홍콩 변호사들의 결연한 목소리와 눈빛을 통해 느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홍콩 시위대가 존재하는 한 홍콩 변호사들의 공익법률지원 활동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다. 당연한 일은 때로는 현실에서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홍콩의 오늘을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변호사들을 공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쉽지 않은 길을 나아가려면 혼자서 빨리 달리기보다는 함께 멀리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서울에서 연대의 인사를 건넨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2322" target="_blank" rel="nofollow">오마이뉴스에서 보기>>

토, 2020/01/1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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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019년 내내 이어진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2019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권운동공간 활,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의 활동가 7명이 만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 기자 말

 

 

 

 

황수영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활동가

 

 

 

 

 

4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공항에는 분주함도, 복잡함도 없었다. 여유롭게 게이트를 나오자 12월의 햇살은 따뜻했고 거리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조금 걷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온갖 구호들, 부서진 신호등,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여진 레넌벽, 보도블럭을 깬 흔적들이 이어지는 것을.

 

 

 

"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선거는 총알보다 강하다) "Zero Tolerance for HK Police Brutality."(경찰의 폭력에는 무관용을) "If not us, Who? If not now, When?"(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횡단보도, 도로 표지판, 지하철, 식당 외벽까지 도시 전체가 홍콩 시민들의 외침으로 가득했다. 

 

 

 

 

 

 

홍콩 거리 광고판에 적힌 구호.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279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홍콩 거리 광고판에 적힌 구호

 

 

 

 

 

 

시위를 지지하는 식당의 외벽에는 쪽지가 가득하다.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283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시위를 지지하는 식당의 외벽에는 쪽지가 가득하다.

 

 

 

 

 

홍콩에서 타전되는 긴급한 소식들이 한국 시민들의 마음을 울린 2019년이었다. 우리는 민주파가 압승한 구의원 선거 이후 열린 첫 대규모 집회인 세계인권선언기념일 행진 'World Day of Human Rights Rally'(월드 데이 오브 휴먼 라이츠 랠리)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을 찾았다. 홍콩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의 연합 조직인 민간인권전선의 에릭 라이 부의장 방한 이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 철회 이후에도 ▲송환법 공식 철회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 조사위원회 설치 ▲행정장관과 입법회 직선제 다섯 가지 요구 중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는 '오대요구 결일불가'(五大訴求 決一不可)를 외치며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We stand with HK People!

 

 

 

행진 시작 장소인 빅토리아 파크로 가는 길은 각종 단체와 정당에서 차린 부스로 가득했다. 메가폰을 잡은 사람들이 시민들을 독려했고 곳곳에서 손피켓과 마스크를 나눠줬다. 노동조합의 부스에서는 조합원을 모집했고, 경찰 폭력을 감시하는 팀은 조끼와 장비를 준비했다. 천주교 미사도 한쪽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들뜬 분위기에서 행진이 시작되자 빅토리아 파크부터 센트럴까지 거대한 물결이 생겨났다. 선두가 센트럴에 도착할 때까지 마지막 행렬이 출발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거나 방송차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도,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구호를 외치며 뚜벅뚜벅 걸었다.

 

 

 

 

 

 

집회에서 발언 중인 한국 시민사회 연대방문단.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24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집회에서 발언 중인 한국 시민사회 연대방문단

 

 

 

우리는 집회 연대발언을 통해 '많은 한국 시민들이 홍콩을 지켜보고 지지하고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We stand with HK people"(우리는 홍콩 시민들과 함께 합니다)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함께 걸었다. 행진 내내 남녀노소 많은 홍콩 시민들이 환호의 박수와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줬다. 아, 이곳에 오길 잘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순간이었다. 

 

 

 

행진이 진행되는 모든 곳에는 경찰이 있었다. 골목에는 총을 들고 중무장한 경찰들이 대기 중이었고, 행진 대열의 위쪽을 지나가는 다리마다 경찰들이 포진해 시위대를 내려다봤다. 하늘에는 헬기가 날았고, 대중교통에서의 검문 검색도 일상적인 일이 돼버린 것 같았다. "경찰에게 복수하자!" 경찰에 대한 구호는 비판과 요구를 넘어 '복수'로 변해 있었다. 경찰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정말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장한 홍콩 경찰의 모습.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294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무장한 홍콩 경찰의 모습

 

 

 

 

 

 

거리에 비치된 우산과 헬멧들. 시위에 참여한 사람 누구나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사람들이 놓고 간 것이다.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14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거리에 비치된 우산과 헬멧들. 시위에 참여한 사람 누구나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사람들이 놓고 간 것이다.

 

 

 

 

 

"우리는 손발이 묶여 있다"

 

 

 

홍콩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변호사 단체, 인권 단체, 입법회 의원, 노조 등 다양한 단위를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생각과 직면한 어려움 그리고 희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선거는 민주파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분노한 결과입니다. 우리 민주파 의원들은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사실상 실패했던 것입니다."

 

 

 

한 입법회의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친중파가 주류인 입법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면서 "우리는 손발이 묶여 있다"(hand-tied)라고도 표현했다.

 

 

 

정부를 통제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한다거나, 입법회 차원의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합의가 필요한데 현 입법회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입법회가 사실상 정부가 발의한 법안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역할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로 정부가 현재 사용하는 최루탄의 성분을 공개하지 않아 각종 질병으로 병원에 가도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입법회 의원이 최루탄 성분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홍콩 시민들의 5대 요구 중 하나로 직선제와 정치 개혁을 외치는 이유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입법회 점거 투쟁 이후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입법회 건물.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20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지난 6월 입법회 점거 투쟁 이후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입법회 건물

 

 

 

 

 

인권단체들은 홍콩 경찰의 폭력이 얼마나 심각하고 지속적인지 증언했다. 체포된 참가자의 손을 뒤로 묶고 바닥에 꿇어 앉힌 채 마스크 등을 모두 벗기고 그 앞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례, 경찰서에서 연행자의 눈을 향해 레이저포인터를 쏜 사례, 눈을 가리고 폭행한 사례, 알몸 수색 등 성희롱 그리고 성폭력까지. 악의적인 행위들이었다. 사람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증언을 두려워하고 있어 아직 많은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활동가들은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유엔 특별보고관들에게 홍콩 정부의 집회 시위와 표현의 자유 탄압, 인권옹호자 탄압, 여성인권 침해 등의 사실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왔지만 특별보고관들의 홍콩 방문 자체가 막힌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는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나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나 경찰 폭력 감시를 위해 어떻게 연대해왔는지,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등의 경험을 자세히 공유했다.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후퇴해온 운동 속에서 국제연대가 큰 힘이 됐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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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노총과의 간담회

 

 

 

 

 

"홍콩의 미래는 홍콩 시민들이 결정하겠다"

 

 

 

영국과 중국의 통치 기간 동안 지체돼온 민주주의, 민의를 표현할 제도의 부재, 자유롭게 말할 공간의 축소,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홍콩 시민들은 '지금 저항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민주주의 없이는 더 나은 미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에도 상황은 선뜻 좋아질 것 같지 않다. 홍콩의 새해는 최루탄 연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이 운동은 5대 요구가 모두 실현될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매우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홍콩의 미래는 홍콩 시민들이 결정하겠다'는 의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홍콩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더 많이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아시아의 친구로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가 서로의 영감이 된다면 긴 여정도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친미나 반중, 폭력 집회와 같은 이미지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전하려 한다. 

 

 

 

 

 

 

민간인권전선 활동가들과 함께 Five Demands, Not One Less!를 외치며.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19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민간인권전선 활동가들과 함께 Five Demands, Not One Less!를 외치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1381&PAGE... target="_blank" rel="nofollow">오마이뉴스에서 보기>>

토, 2020/01/04-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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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5.

드론으로 찍은 홍콩 시위 장면 입니다.

 

일, 2019/06/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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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매일 아침 메르스 상황 체크하는 한국 – 150명 감염 16명 사망 … 메르스로 일상이 돼버린 두려움 – 국민들은 외출 꺼리고 감염 확인된 병원은 속속 폐쇄 조치 – WHO는 바이러스 변이 없다지만 위기 벗어날지 불확실 프랑스 최대 일간지 <르몽드>는 메르스가 좀처럼 진정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한국의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 도쿄 특파원 필립 메스메르는 ‘한국에서 계속 ...
수, 2015/06/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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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대표적인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난데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도 같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마지막 대통령과 그의 후임이자 역시 군인 출신 대통령의 장남이 공교롭게 둘 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에서 유출된 문서를 정밀 분석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씨의 아들 노재헌의 이름과 동일한 영문명 ‘Ro Jae Hun’을 발견했다. 하지만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정밀 검색을 통해 이 사람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면서 제출한 홍콩 거주민신분증을 찾아냈다. 신분증에 기재된 생년월일과 증명사진을 확인한 결과 ‘Ro Jae Hun’이란 사람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과 동일인임을 최종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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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 3곳 설립

노재헌 씨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는 모두 3개다. 세 회사의 이름은 ‘원 아시아 인터내셔널’(One Asia International), ‘GCI 아시아’(GCI Asia), ‘럭스 인터내셔널’(Luxes International)이다. 세 회사는 모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2012년 5월 18일 같은 날 설립됐다. 노재헌 씨가 이사이자 주주인 동시에 실소유주(Beneficial owner)로 등재돼 있다. 1달러 짜리 주식 한 주만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다. 특이한 점은 자신이 소유하는 페이퍼 컴퍼니인 ‘GCI 아시아’를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럭스 인터내셔널’의 주주로 해 놓는 등 지배 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해 놨다는 점이다. 페이퍼 컴퍼니 관련된 서류 곳곳에 노재헌 씨의 자필 서명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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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씨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지 약 1년 뒤인 2013년 5월 24일 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원 아시아 인터내셔널’과 ‘GCI Asia’의 경우 첸 카이(Chen Kai)라는 중국인에게 이사직과 주식을 양도했고, ‘럭스 인터내셔널’은 김정환이라는 사람에게 이사직을 넘겼다.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노재헌 씨와는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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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도피처 회사를 3개나 만든 이유는?

뉴스타파 취재진은 노재헌 씨가 무슨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을 만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회사 설립 서류에 남아 있는 단서를 토대로 홍콩 일대를 탐문 취재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2012년 페이퍼 컴퍼니 설립 당시 노재헌 씨가 관련 서류에 기재한 주소지(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홍콩의 최고급 주택가인 미드 레벨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아파트에는 현재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이 아파트의 홍콩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한 법인이 2010년 7월에 3,400만 홍콩 달러(약 50억 원)에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재헌 씨와 이 법인의 관계는 무엇인지, 아파트의 실소유주가 노재헌 씨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어 노재헌 씨가 페이퍼 컴퍼니의 실제 사업 주소라고 기재된 홍콩 사무실도 찾아가 봤지만 해당 사무실은 현재 비어있는 상태였다.

복잡한 단계 거쳐 페이퍼 컴퍼니 설립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는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다. 홍콩의 중개 사무소가 설립에 필요한 서류 작업 등을 해서, 이를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의 홍콩 지점으로 보냈다. 모색 폰세카 홍콩 지점은 그 서류를 모색 폰세카 버진아일랜드 지점으로 보냈고, 버진아일랜드 지점은 자사 사무실 주소를 노 씨의 페이퍼컴퍼니 주소지로 등재했다. 이렇게 노재헌 씨의 유령회사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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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취재진은 각 단계를 모두 확인해 봤다. 먼저 홍콩의 중개 사무소에서는 고객의 서류 작업만 도울 뿐 어떤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모색 폰세카 홍콩 지점도 방문했지만 본사 데이터가 유출된 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인 취재가 시작된 탓인지 ‘기자들로부터 어떤 질문도 받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지막 단계인 모색 폰세카 버진 아일랜드 지점 건물에는 노재헌 씨의 회사 외에도 수천 개의 페이퍼 컴퍼니가 등록되어 있다.

노 씨 조세도피처 회사 용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국의 전직 대통령 아들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사실이 확인된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는 ICIJ와 공동으로 진행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Offshore Leaks)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전재국 씨가 해당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싱가포르에 있는 아랍 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전두환 일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고, 전재국 씨는 가족을 대표해 아버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았으나 계속 내지 않고 버텼던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년이 된 지금까지 1,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이 미납된 상태이다.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 역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비자금 은닉이나 탈세 목적은 없었는지에 대해 조세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취재기자: 이유정
촬영기자: 김남범
편집: 윤석민

월, 2016/04/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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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연관 홍콩 페이퍼 컴퍼니 7곳 나와…BVI 회사와 연결

노재헌 씨와 연관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7곳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추가로 확인됐다. 특히 그 가운데 2곳은 뉴스타파가 모색 폰세카의 유출문서에서 발견한 노재헌 씨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 페이퍼 컴퍼니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홍콩에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것이다.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전혀 사용하지 않고 친구와 지인에게 넘겼다는 노재헌 씨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추가로 발견된 노재헌 씨의 홍콩 페이퍼 컴퍼니들은 인크로스나 SK와도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노재헌, 인크로스, SK가 홍콩과 BVI 페이퍼 컴퍼니들을 통해 의문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발견한 노 씨 연관 홍콩 페이퍼 컴퍼니는 7곳이다. 이 가운데 4곳은 노재헌씨가 직접 주주나 이사로 현재 등기되어 있거나, 예전에 등기되어 있던 곳이다. 2곳은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유했다. 1곳은 의문의 인물인 김정환 씨를 통해 노재헌 씨와 연결됐다. 뉴스타파가 새롭게 발견한 노 씨의 페이퍼 컴퍼니 7곳의 주소는 모두 동일하다. 노 씨와 관련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Global i Consulting : 2009년12월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2) Shine Chance : 2010년 3월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3) Luxe Life : 2012년 5월 25일 설립. Luxes International(버진 아일랜드)이 주주. 현재 주주는 인크로스 4) 인터내셔널
5) Inno-Pact : 2012년 5월 25일 설립. Luxes International(버진 아일랜드)이 주주. 현재 주주는 인크로스 홍콩.
6) Incross Hongkong : 2013년 5월 27일 설립. 김정환이 이사.
7) One Asia C&L : 2014년 9월 1일 설립. 노재헌이 이사. 노재헌 첸카이가 주식을 9대 1로 소유. 현재 이사는 김정환
8) K-entertainment : 2014년 9월 26일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BVI의 페이퍼 컴퍼니가 홍콩 페이퍼 컴퍼니의 주주

뉴스타파가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 3곳을 설립한 것은 2012년 5월 18일이다. 세 회사의 이름은 GCI Asia, One Asia, Luxes International이다. 이로부터 불과 1주일 뒤인 2012년 5월 25일, 노 씨는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 2곳을 만든다. 주식이 1주 뿐인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다 .이 두 회사의 주주는 노 씨가 일주일 전 버진 아일랜드에 만든 페이퍼 컴퍼니 중 한 곳 , Luxes International이다. Luxes International의 주주는 노 씨의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GCI asia다. GCI asia의 실소유주가 노 씨이기 때문에 노 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두 단계를 거쳐 두 회사를 새롭게 소유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의 홍콩 등기부에 노 씨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이 회사의 설립 관련 서류에 기재된 서명이 노 씨의 서명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소유주임을 숨긴 채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회사의 이름은 Luxes Life, Inno-Pac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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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인물 김정환 통해 인크로스 자회사에 주식 넘겨

이 두 회사의 이사직은 2012년과 2013년 차례로 김정환 씨에게 넘어간다. 김정환 씨는 2013년 5월 24일 노 씨의 버진 아일랜드 유령 회사 Luxes International의 이사직을 넘겨 받는 인물이다. 김 씨는 노 씨로부터 Luxes International의 이사직을 넘겨 받은 지 불과 사흘 뒤, Incross Hongkong을 설립한다. 그리고 나서 노 씨로부터 물려받은 홍콩의 유령회사, 즉 Luxe Life의 주식을 다시 Incross Hongkong에 넘긴다. 나머지 한 회사, 즉 Inno-Pact는 Incross International에 넘긴다. 그러니까 노재헌 씨는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홍콩에 또다시 유령 회사를 만들었고, 이 회사들은 김정환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크로스의 홍콩 현지 계열사들에게 넘어간 것이다.결국 어떤 계좌나 자산을 비밀리에 인크로스쪽에 넘기기 위해 복잡한 지배 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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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벤처 운용사 대표 첸 카이와의 또 다른 연결 고리 발견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와 SK와의 연결 고리도 추가로 발견됐다. 중국인 첸카이는 노재헌 씨의 버진 아일랜드 컴퍼니인 GCI Asia와 One asia의 이사직을 넘겨받은 인물이다. 첸카이가 SK 홍콩 현지 법인의 관계자라는 4월 6일자 문화일보 보도가 나가자, SK 측은 첸 카이가 SK텔레콤의 벤처펀드인 CVC의 운용을 담당하는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실토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첸 카이가 노재헌 씨의 또 다른 홍콩 페이퍼 컴퍼니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노재헌 씨는 2014년 9월 홍콩에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One Asia C&L을 설립했다. 3개월 뒤 2014년 12월, 이 회사의 지분을 9대 1의 비율로 첸카이와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올해 1월 16일에는 이 회사의 이사직을 김정환이라는 인물에게 넘긴다. 이와 함께 첸카이가 지난해 4월 인크로스의 홍콩 자회사인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지분 1%를 넘겨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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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씨와 SK 측은 노 씨와 첸카이가 스탠포드 동문으로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뿐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둘의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나는데다 단순한 친구 관계라고 보기에는 사업상 얽힌 부분이 너무 많아 보인다. 결국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얽힌 노재헌씨와 SK, 인크로스의 삼각 관계를 이어주는 인물이 바로 첸카이와 김정환인 것으로 추정된다.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 7곳은, 모두 똑같은 주소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주소는 인크로스의 홍콩 법인인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주소와 일치한다. 주소가 일치하고, 노재헌과 김정환, 첸카이 등 몇몇 인물들이 이사와 주주를 번갈아 맡는 이 페이퍼 컴퍼니들은 어떤 목적으로 설립됐을까? 단순한 사업 상의 목적이었다면 대체 왜 이렇게 많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왜 그렇게 복잡한 관계로 엮어 놓았을까?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SK와 인크로스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뉴스타파는 노재헌 씨와 김정환, 첸카이가 연관된 페이퍼 컴퍼니를 시각화 툴로 정리했다. 각각의 노드를 클릭하면 관계망이 펼쳐진다.


취재 : 심인보, 이유정, 정재원

 

금, 2016/04/0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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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 아시아생각] ①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2016 아시아생각] ② 쯔위 덕 본 차이잉원 "대처 존경한다"? 

[2016 아시아생각] ③ 미국-러시아의 시리아 임시 휴전 합의, 그러나...

[2016 아시아생각] ④ 수치의 '막후정치', 버마의 앞날이 불안하다

[2016 아시아생각] ⑤ 피플파워+30, 독재자의 처자식은 뭘하고 있을까 

[2016 아시아생각] ⑥ 필리핀 선거에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 

[2016 아시아생각] ⑦ 광주인권상 수상 막은 말레이시아 정부 

[2016 아시아생각] ⑧ 땅은 우리의 삶, 필리핀 할라우강에서 온 선주민의 호소

[2016 아시아생각] ⑨ '세계인도주의의날'을 기억해야 하는 진짜 이유

 

홍콩 우산 운동, 그 이후…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웡익칭 전 홍콩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 간사

 

 

"명운자주(命運自主),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홍콩 우산 운동(umbrella movement)의 대표적인 구호다. 당신이 부자든지 가난하든지에 상관없이 모든 개인은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참여하거나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9월 4일, 우산 운동 이후 처음 치러진 홍콩 입법회(Legislative Council Election) 선거에서 이 우산 운동의 정신은 얼마나 반영되었을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 정치는 친중국파(pro-establishment)와 범민주파(pro-democracy)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2014년 우산 운동 이후, 범민주파 일부 급진 세력은 '본토파(localist)'라는 새로운 그룹을 등장시켰다. 본토파는 우산 운동과 전통적인 민주파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들의 평화로운 접근이 민주주의 투쟁의 실패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홍콩 사회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관광객과 방문객, 이주민이 급증하면서 불만이 퍼져갔다. 홍콩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한 본토파를 지지했다. 본토파는 폭력적인 행위를 포함해 더 호전적인 저항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범민주파의 분열은 이번 선거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전통 민주파 내에서 협력은 실패하고 오히려 후보 간의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또 신진 세력인 본토파의 등장은 이번 지역구 선거에서 범민주파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각각의 범민주파 후보들에게 표가 나뉘어 오히려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되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홍콩 우산 혁명 주역인 네이선 로(羅冠聰·23)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주석이 지난 4일 입법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자 환호하는 지지자들. ⓒAP=연합뉴스 
 

 

보장된 거부권

 

지난 선거에서 등록된 유권자(유권자로 등록된 18세 이상 영주권자)는 지역구 1표, 직능 대표 1표를 포함 1인 2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홍콩 입법회는 지역구 35석, 직능 대표 35석 등 모두 70석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직능 대표는 직선제(5석)와 간선제(30석)의 혼합 방식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직능 대표 30석 대부분이 특정 기업 및 사회 분야 위원회가 선출해 사실상 친중국파에 배정된다. 이로 인해 범민주파는 입법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최소 의석(24석, 3분의 1) 확보를 목표로 했다. 이번 선거에서 범민주파는 지역구 19석, 직능 대표 11석을 포함하여 총 30석을 획득하여 입법 거부권을 보장받았다. 반면 친중국파는 지역구 16석, 직능대표 24석을 포함하여 총 40석을 얻었다. 

 

지난 6월, 시민 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의 공동 설립자 베니 타이 이우팅(戴耀庭·Benny Tai Yiu-ting) 홍콩대학교 법대 부교수는 홍콩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썬더고(雷動計劃·'ThunderGo’ scheme)' 캠페인을 론칭하였다. 이 캠페인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주기적인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의 지지율에 대해 정기적으로 알리는 것이었다. 이는 이길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표를 집중시키고 이길 가능성이 낮은 후보에게 가는 '사표'를 줄이는 '전략적 투표’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썬더고’ 캠페인은 유권자들의 참여도가 낮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히려 '자발적 전략 투표(民間配票·voluntary strategic voting)'가 이번 선거에서 더 효과적이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전략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같은 선거구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공동체, 특히 우산 운동 이후 발전된 소셜 미디어 내에서 유권자들이 범민주파 후보자들에 대한 선호도를 분석하고 토론한 후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식이었다. 몇몇 유권자들은 전체 범민주파 당선을 위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도 했다. 

 

항쟁은 길에서 의회에서 함께 하는 시대 

 

유권자들은 직능 대표제도와 갈수록 강화되는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선거를 통해 홍콩 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입법회 선거는 홍콩 반환 이후 가장 높은 5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시민들은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입법 거부권 확보와 함께 홍콩 의회에 새로운 '의회 문화’를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입법회' 역할과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인식은 지난 2010년 홍콩-선전-광저우를 잇는 광선강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반대하면서 높아졌다. 당시 수만 명의 시민들은 입법회 건물을 에워싼 채 생방송으로 예산 심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의회 내에서는 범민주파 의원들이 민간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와 시민 단체 의견을 바탕으로 고속철도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 활동을 펼쳤다. 비록 고속철도 건설 예산안은 통과되었으나 많은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 반대 시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10년 고속철도 반대 시위는 새로운 사회 저항 움직임이 거리에서 의회로 이동하게 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의회에서 홍콩의 미래를 토론하다 

 

이번 선거에서 홍콩의 독립을 지지하는 본토파 후보자들은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후보 중 3명만 당선되었다. 많은 의석은 전통 민주파 후보자와 홍콩주민의 '자결권(民主自決democratic self-determination)'을 추구하는 사회운동가들이 차지했다. 

 

홍콩 자결권을 중요시하던 사회운동가 출신 당선자 중 대표적 인물은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추 호이딕(朱凱迪·Chu Hoi-dick)과 우산 운동의 주요 학생 지도자였던 네이선 로(羅冠聰·Law Kwun-chung), 대학 강사 라우시우라이(劉小麗·Lau Siu-lai)이다. 이들은 전통 민주파와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슬로건인 '민주 자결’은 우산 운동의'명운자주’와 일맥상통한다.

추 호이딕은 당선 직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홍콩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믿어야 한다"고 인터뷰하였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저항을 포함한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든 홍콩 사람들의 사회적 참여를 통해 지역 동네의 발전과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는 아래로부터의 접근 방식이다. 

 

비록 많은 사람이 우산 운동은 실패했다고 하지만 우산 운동은 홍콩 시민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유권자들의 높은 참여율과 유권자들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의회 구성원과 함께 변화하는 시민사회는 친중국 정부에 맞서 저항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우산 운동 아래 뿌려진 연대와 희망의 씨앗을 홍콩 사회 곳곳에서 자라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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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9/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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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앞으로 5년 동안 홍콩 특별행정구를 이끌 제5대 행정장관 선거는 예상대로 싱겁게 끝났다.

중국의 적극 지지를 등에 업은 친중파 캐리 람(林鄭月娥·59) 전 홍콩 정무사장이 선거인단의 유효 투표수 1163표 중 777표를 얻어 당선됐다. 여성으로는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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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캐리 람(林鄭月娥) 후보가 홍콩특별행정구 제5대 행정장관으로 당선된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14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의 자주화 목소리 커져

완전 보통 직선제 행정장관 선거를 요구하며 타올랐던 2014년 우산혁명의 열기를 떠올리면 다소 허망한 결과다. 직선제로 뽑더라도 입맛에 맞는 2~3명의 후보 중에서 고르게 하겠다는 중국의 조치에 맞서 홍콩 시민들은 뜨겁게 일어났었다.

‘무늬만 직선제’ 제안은 결국 입법회에서 무산됐지만 크게 보면 대세는 막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중국의 무늬만 직선제 제안이라도 받아들이는 게 나았을까? 역사적 후퇴는 아니었을까? 답은 홍콩 시민들이 쥐고 있을 것이다.

우산혁명을 강경 진압한 공로로 행정장관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캐리 람의 향후 행보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간신히 절반을 넘긴 689표를 얻어 당선됐던 전임자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은 임기 내내 ‘689’라고 조롱당했다. 캐리 람의 득표는 그보단 많았지만 홍콩 700만 민심을 대변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수다. 그 역시 앞으로 ‘777’로 조롱을 받으며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홍콩의 미래가 분기점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우산혁명
홍콩 시민과 학생들이 중국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며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는데, 당시 시위참가자들이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많이 썼기 때문에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으로 불린다.

우산혁명에 이어 지난 입법회 선거에서 홍콩의 자주를 주장하는 우산혁명의 주역들이 대거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  홍콩의 ‘젊은 그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20년째, ‘일국양제’의 성공적 정착이라는 중국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홍콩 젊은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매김하고 있다.

마거릿 대처에 빗대 ‘철의 여인’이라고 불렸던 람 당선자가 여전히 강경책으로 홍콩을 휘어잡을 수 있을까?

‘1등 소녀’ → ‘운동권학생’ → ‘철의 여인’

람 당선자는 1957년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 출신의 저소득층 부모 아래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교육 수준이 낮았고 집안 형편은 가난했다. 다른 가족과 조그만 아파트를 나눠 써야 할 정도였다.

책상이 없어 침대에 앉아 숙제를 해야 할 정도였지만 그는 초중등 교육을 받았던 13년 내내 반에서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유일하게 1등을 놓쳤을 때가 있었는데 “왜 내가 1등이 아닐까”라며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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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의 어린시절(왼쪽)과 젊은 시절의 모습 (사진출처: South China Morning Post)

홍콩대에 입학해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택했던 그는 학생운동에 몸담기도 한다.

저소득층 지원과 좌파 학생 퇴학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회 시위 등에 적극 참여했다. 여기서 훗날 범민주파 입법의원이 되는 이들과도 알고 지내게 된다.

사회를 좀 더 이해하고 학생운동에 깊게 참여하기 위해서 람은 전공까지 사회학으로 바꾸고 사회과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람은 1980년 대학 졸업 뒤 홍콩 행정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다양한 부서를 거친다.  

홍콩 정부가 심각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2000년에 사회복지국장으로 임명돼 사회보장 제도 긴축에 나서기도 한다. 복지 수혜자를 홍콩 거주 8년 이상인 자로 제한하는 정책을 펴서 새로운 이민자들을 배제시킨 것이다.

람은 2007년 도널드 창 행정장관에 의해 개발국장에 임명된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퀸즈 피어와 스타 페리 부두 철거 문제를 만지기 시작한다. 특히 퀸즈 피어는 역대 영국 총독들이 부임할 때 늘 입항했던 곳이며 영국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추억이 어린 공간이었다.

홍콩 정부는 노후화된 이곳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환경보호와 문화보존의 입장에서 반대하는 시민운동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람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말라”며 철거를 강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거친 싸움꾼(tough fighte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신계 지역의 불법 주택건축을 단속해 시민의 호응을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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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취임한 렁충잉 행정장관(왼쪽). 그는 케리 람을 서열 2위인 정무사장에 임명했다.

2012년 취임한 렁춘잉 행정장관은 람을 국무총리격인 정무사장에 앉힌다.

그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무늬만 직선제’로 바꾸기로 결정하자 선거제도 개정을 총괄한다.

이로 인해 우산혁명이 촉발되지만 람은 학생 지도자들과 공개토론까지 벌이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다. 직선제 요구가 홍콩 기본법과 전인대 상무위의 결정 틀을 벗어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대학 시절 어려운 상황에 있던 야마테이 지역 보트피플들에게 관심을 가져 학생운동을 했다는 람에게서는 한국 운동권 출신 보수 정치인들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내가 해봤더니 안 된다, 이미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라는 태도로 우산혁명의 젊은이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에서 그렇다.

람은 기어이 선거안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79일 만에 시위대를 강제해산 시킨다. 체포자는 1000여명에 달했다.

람에게는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국 수뇌부의 마음에 쏙 들었음은 물론이다. 반대로 한때 받았던 시민들의 높은 지지도는 급락했다.

베이징의 ‘보이지 않는 손’ 

람은 2017년 임기가 끝나면 가족들과 영국의 시골마을로 돌아가 은퇴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의 남편은 1982년 케임브리지 대학 연수 시절 만난 수학자 시우포 람 베이징 수도사범대 교수다. 남편은 영국 국적이며 두 아들 역시 영국 국적으로 영국의 대학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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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이 지난 3월 홍콩 행정장관에 당선된 직후 남편(왼쪽 첫번째), 아들(오른쪽 첫번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럼운 2017년 1월 정무사장직을 사임하고 행정장관 선거 출마를 발표한다. 그녀의 남편은 평소 “홍콩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면 아마도 나중에 인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공직생활을 격려해 줬다고 한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친중파에 맞선 야권인 범민주파의 지지를 받았던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기획재정부 장관 격)이 52.8%로 1위를 기록했다. 람은 32.1%로 2위에 그쳤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 존 창은 365표를 얻는 데 그쳤다. 람은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지 않고도 당선된 첫 행정장관이 됐다. 350만 유권자 중 25만 명 남짓이 1200명의 선거인단을 뽑아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간선 중의 간선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미 중국은 홍콩 행정장관을 내정하다시피 했다. 장더장(張德江)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일찌감치 선거인단 주요 인사를 불러 “공산당이 미는 유일한 후보는 람”이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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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정장관 선거에는 모두 5명이 출마했다. 왼쪽부터 Woo Kwok-hing, Regina Ip, John Tsang, Carrie Lam and Leung Kwok Hung. 그러나 중국 본토는 노골적으로 케리 람을 지원했다.

렁춘인 현 행정장관이 예상을 깨고 연임을 전격 포기한 것도 람의 출마 발판을 마련해주려는 것이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행정장관 선거가 열린 홍콩컨벤션센터 맞은편에서는 중국의 선거 개입을 반대하고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구호가 울려 퍼졌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렁춘잉 전임 장관 때부터 그랬지만 이제 시진핑 주석은 노골적으로 자리 배치조차 ‘상사–부하’ 관계임을 강조한다.

지난 11일 람 당선자와 만난 시 주석은 테이블 상석에 앉았고 측면에 앉은 람 당선자와 업무회의 방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후진타오 주석 때는 렁춘잉 장관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던 것을 생각하면 점점 작은 것 하나에서조차 ‘중국의 일부’임을 새겨 넣고 있는 셈이다.

일국양제의 ‘외줄타기’, 성공할까

람은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일인 오는 7월1일 행정장관에 취임한다.

람은 당선 후 “홍콩은 심각한 분열과 좌절감을 안고 있다”며 “나의 최우선 과제는 분열을 치유하고 좌절감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직선제를 향한 열망이 좌절된 데다 교육과 주택, 일자리 문제까지 누적된 홍콩에서 람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에 대한 ‘불만’을 막는 방패막이 정도로 임기를 끝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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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케리 람 홍콩 행정장관 당선자가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사진, 출처:South China Morning Post). 그러나 케리 람의 선출에 대해 우산혁명의 주역들은 불만이 많다. (오른쪽 사진, 출처:BBC)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렇게 보도했다. “캐리 람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냉랭한 민심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홍콩의 골 깊은 반중 정서와 중국 정부의 압력 사이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그의 모습에서 불안의 징후는 증폭된다.

올해 1월 람은 정무사장 사퇴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서 택시를 타고 옛 관저로 가서 휴지를 몇 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민간인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취지로 한 발언이었으나 “휴지를 사 본 적도 없나” “왜 관저 휴지를 가져와야 하나”는 시민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지하철 이용하는데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다 수행원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통과하는 모습이 TV화면에 잡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람은 학창시절 가톨릭 계열 여학교에서 홍콩 사람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열망을 키웠고, 학생회장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람은 선생님에게 학생들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말했다고 한다. “통제하지 말고, 일깨워라.(You don’t control, you inspire.)” 그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날 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국 귀속 후 역대 홍콩 행정장관들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와 홍콩 시민들의 독립 열망의 가운데서 외줄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람에게도 지금 시험대가 다가오고 있다.

금, 2017/04/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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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rning the death of Chow Tsz-lok, a student protester who fell from a car park near a police clearance operation. 

Hong Kong and the Chinese government should stop the indiscriminate violence and establish an independent committee to investigate the arbitrary police violence.

We call on the the Korean government to declare a position on the situation of the human rights violations in Hong Kong. 

 

The current situation in Hong Kong is dire. The protests, which began in late March, have been on-going for eight months. Beyond the amendment to the extradition bill, people are angry with the socio-economic deprivation that resulted upon returning to mainland China and Hong Kong's democracy is not assured. Yet, they continue fighting for democracy, human rights and the future of Hong Kong. The Hong Kong police have quelled the protesters indiscriminately and violence is breeding violence. In addition, the ‘white terror’ against the citizens who participate in the protests is also becoming serious. Chow Tsz-lok, a Hong Kong student fell to his death in a parking garage trying to avoid tear gas shot by police during the protest of November 4. We mourn the unfortunate death of a young man and grieve for the death of a protester led by the violent crackdown of Hong Kong police. 

 

Hong Kong has continued to suppress the freedom of expression and assembly. Hong Kong police have been indiscriminately suppressing the protests by wielding riot rods, shooting tear gas at protesters, and even using water cannons, special forces, and firing live ammunition. To date, the number of arrested protesters has exceeded at least 3,000 with fully 500 indicted. The number of youth under the age of 15 arrested during the protests also exceeded 100.

 

The ban on assembly and such excessive response of police are intensifying the rallies. Hong Kong and the Chinese government should no longer respond to the anger of Hong Kong citizens with violence. They should the people’s demands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and attentively listen to the voice of the people. 

 

Korean Civil Society groups, which supports the Hong Kong protests, are in solidarity with the Hong Kong people for their persistent resistance and demand the Hong Kong and Chinese government to: 

 

First, launch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committee to investigate the arbitrary police violence. There is evidence that the death of Chow was led by the hard-line suppression of police. As there is an eyewitness testimony that the police interfered with the first aid of a rescue personnel and blocked the entry of the ambulance into the scene, it is necessary to thoroughly clarify the cause of the death. The Hong Kong government should establish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committee to look into any incidents where people were injured or cracked down by the hard-line suppression of police as well as the student’s death.

 

Second, the district council election scheduled for November 24 should proceed as scheduled. The Hong Kong government is trying to put off the election, where the pro-Chinese ruling party's victory is opaque, on the excuse of the ongoing protests. It claims that the election can have a setback if the violent protest continues. However, Hong Kong citizens should not be deprived of any opportunities to express their opinions and wrath.

 

In the meantime, many citizens of Hong Kong hope that Korean citizens who have walked the long path of democratization through the 5.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the June Democracy Movement in 1987, and the 2016-2017 candlelight revolution will stand by Hong Kong citizens. Just a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expresses interest and support for the country's pro-democracy movement during the Korean military dictatorship, they are pleading for more interest and support of Koreans for their democratic aspiration. However,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yet to mention the serious situation in Hong Kong.  It is embarrassing to think that Korea, a member of the UN Human Rights Council, has yet to condemn the rights abuse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hould no longer be silent about Hong Kong citizens’ cry for democracy. We hope that Korea can be remembered as a country that sympathizes with the pain over the border and is not silent on human rights issues.

 

We are here today and pledge to stand by Hong Kong citizens and demand:

 

Hong Kong and Chinese government should immediately stop violent crackdown of protesters

Hong Kong and Chinese government should set up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committee on violent crackdown by police.

Hong Kong and Chinese government should hold the district council election on November 24 as scheduled

The Korean government should express its position on human rights violations in Hong Kong.

 

November 9, 2019

 

People who support Hong Kong’s democracy 

 

일, 2019/11/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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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홍콩의 다양한 녹색 유혹들을 펼쳐라’ (Unroll the Hong Kong diverse green temptations) S. Macho CHO rok-hid @ inbox . ru 홍콩의 대중교통수단인 전철 MTR에서 발견한 광고문구다. 난 외국에 가면 웬만하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자가용이나 택시는 어쩐지 그 문화를 느끼기엔, 마치 방에서 밖의 꽃밭을 창을 통해 바라만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철, 버스, 기차, 마차 등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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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11/0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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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애플비 유출 문서 중 영국의 유서깊은 프라이빗 뱅킹 전문 은행 쿠스(Coutts)의 고객 명단에서 발견한 한국인 2명 가운데 1명은 카이스트 교수인 안성태 씨다. (안성태 씨에 관한 자세한 내용과 자산 신탁 관리 서비스에 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1명은 코스닥 상장 제약회사인 메지온의 박동현 회장이다.

메지온 박동현 회장, 케이맨 제도에 세 딸과 함께 수백 억 규모 신탁 소유

메지온은 ‘자이데나’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유명한 코스닥 상장업체다. 원래 동아제약의 자회사 (동아팜텍)였으나 2013년 메이온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애플비 유출 문서에서 나온 쿠스의 고객 명단을 검색하다 메지온 박동현 회장의 이름을 발견했다. 유출된 문서에는 박 회장이 조세도피처에 만든 신탁의 구조가 상세히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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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20여년 전 케이맨 제도에 씨씨이 트러스트(CCE Trus)t라는 신탁을 만들고, 이 신탁에 예치한 자금으로 역시 케이맨 제도에 씨씨이 인베스트먼트(CCE investment)라는 투자운용회사를 세웠다. 박 회장에게 이 신탁에 대해 묻자, 그는 “약 20여년 전 미국에서 일하던 시절 번 돈으로 신탁을 만들었다”며 “미국 시민권자인 세 딸에게 재산을 상속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서 번 돈으로 신탁을 만든만큼 한국에서의 탈세나 불법 외화유출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또 “내가 미국 시민권자라면 미국에 내야할 상속세를 피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는 한국 시민권자인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세 딸에 대한 상속 목적” 주장.. 그러나 자신도 ‘실제 수혜자’로 지정

그가 강조한 것은 “자신은 신탁의 설정자일 뿐, 세 딸이 실수혜자(Beneficiary owner)로 되어있기 때문에 자신은 신탁의 자산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뮤다 법률회사 애플비 유출 문서를 보면, 그의 이런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다. 애플비 문서에는 그와 그의 세딸이 신탁의 실수혜자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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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를 보여주며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자, 박 회장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났다”며 자신 역시 실수혜자에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그러면서 “당시 미국 세법상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신탁 설정자 자신도 실수혜자 명단에 들어가야한다고 해 그렇게 했다”고 해명했다.

신탁 통해 자기 회사에 지분투자.. 5억 투자해 300억 수익

박 회장과 그의 세 딸이 실수혜자로 되어있는 CCE Trust는 CCE investment를 통해 메지온 주식을 100만 주 이상 사들였다. CCE investment가 지분을 사들인 시점은 2009년, 메지온이 상장되기 3년 전이었다. 당시 액면가 500원이었던 주식은 현재 3만 원 이상, 투자금 5억 원은 현재 3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메지온의 공시자료를 보면 CCE investment는 박회장과 특수 관계라는 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즉, 공시자료상으로는 엄청난 주식 대박의 수혜자는 박 회장과 세 딸이 아니라 CCE investment라는 외국 자본인 것이다. 이는 실제로 박회장 일가에게 세금 상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CCE investment는 2016년 약 3억 원 어치의 메지온 주식을 팔았다. 원래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자가 주식을 팔 때는 주식 매각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내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CCE investment의 경우 대주주와 특수관계라는 점이 공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메지온의 IR 담당자 역시, CCE investment가 박 회장과 특수관계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취재진의 질의에 “CCE investment는 박회장의 우호지분이긴 하지만 해외에 있는 투자자이기 때문에, 박회장 본인과는 무관하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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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뉴스타파 질의가 시작되자 “공시를 누락한 것은 실수이며, 지금이라도 공시를 바로잡고 내야할 세금이 있다면 납부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비밀 드러낸 이메일.. “주식 팔아 500억 원 예치할 것”

애플비 유출 문서 중에는 애플비 홍콩 지사의 담당자가 버뮤다 애플비 본사에 보낸 이메일도 있다. 이 이메일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14년 2월 홍콩을 방문해 애플비의 담당자를 만났다. 이메일 내용은 이렇다.

박동현씨는 올해 말 메지온 주식을 팔아 매각대금을 트러스트에 예치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매각대금은 5천만 달러에 이를 거라고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탁 자산의 0.2%나 수수료를 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CCE investment가 보유하고 있던 메지온의 주식을 팔아 트러스트에 돈을 예치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2014년 후반 메지온의 주가는 4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에 계획대로 지분을 팔았다면 5백억 원에 가까운 현금이 마련되었을 것이고 이 돈은 공식적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돈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없이 국경을 넘어 케이맨 아일랜드의 신탁에 예치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CCE investment가 박동현 일가 소유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외국 자본 하나가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차익을 실현해 빠져나가는 것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당연히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은 전혀 부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형적인 ‘검은 머리 외국인’의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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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CCE investment는 주식을 매각하지 않았고, 지난해 3억 원어치의 주식을 판 것을 제외하면 아직 100만 주 이상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회장은, 애플비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깎기 위해서 거짓 계획을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메일에는 이런 내용도 나와있다.

그는 트러스트와 관련된 정보의 보안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포트큘리스 스캔들같은 정보 유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해 줄 것을 원했습니다.

포트큘리스(PTN: Portcullis TrustNet) 스캔들이란 지난 2013년 뉴스타파와 ICIJ가 함께 진행한 조세도피처 프로젝트를 말한다. 당시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하던 업체, PTN에서 유출된 대규모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뉴스타파 등 국제 공조취재단이 조세도피처의 검은 세계를 파헤친 바 있다. 박동현 회장의 이 이메일은 당시 뉴스타파가 조세도피처의 비밀을 폭로하자, 이런 일이 또 일어나 자신의 신탁이 들통나는 일이 없도록 보장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단지 실수로 공시를 누락했다고 주장하는 그가 왜 그렇게 애플비 홍콩지사까지 찾아가 자료의 유출을 우려하며 보안을 신신당부했을까?

조세도피처의 신탁들.. 한국 부자의 자산은 얼마나 숨겨져 있을까

애플비 유출 문서가 아니었다면 아마 박 회장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박회장은 매우 운이 없는 경우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비밀이 낱낱이 밝혀진 것에 대해 매우 억울해 했다. 박 회장의 사례는 사실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자료가 유출되지 않은 수많은 조세도피처 법률회사들의 장부에는 수많은 한국 부자들의 자산이 숨겨진 신탁들이 등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자산들은 외국인 투자를 가장한 형태로 한국에 재투자되는 사실상의 내부 거래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등장하는 한국인은 뉴스타파 취재결과 현재까지 모두 232명이다.


취재 : 심인보
촬영 : 김남범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목, 2017/11/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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