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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납북피해자 가족의 외침, 국제앰네스티가 손을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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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납북피해자 가족의 외침, 국제앰네스티가 손을 내밀다

admin | 금, 2019/10/11- 18:53

1969년 12월 11일,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총 51명을 태운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국내선 여객기(이하 ‘KAL기’)는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원도 평창군 일대 상공에서 공중 납치되었다. 납치된 비행기는 북한 원산 인근의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하게 된다. 이 사건이 바로 ‘1969년 KAL기 납북사건’이다. 당시 전 문화방송 TV 프로듀서 황원은 그 여객기에 타고 있었다.

사건 당시 가족들은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고 해요. 민간항공기가 납치당한 거니까 조금 있으면 ‘당연히’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북한은 이듬 해 1970년 2월 5일 승객을 송환하겠다고 국제적십자사에 통보했으나, 지정한 날짜가 지나도록 송환하지 않았다. 1970년 2월 14일, 북한은 조종사, 승객 등 11명을 억류한 채 39명만을 돌려보냈다. 납북된 후 현재까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 11명의 강제실종 피해자 중의 한 명이 바로 황원이다. 황원 가족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황원의 생사와 소재에 대한 정보 확인조차 거부하고 있다. 황원은 지난 50년간 북한에 의해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된 상태이다.

사건 이듬해인 1970년, 북한이 통보한 11명의 미귀환자 명단에 제 아버지 이름이 올라왔을 때, 할머니는 기절하셨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어요.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죠.”

황원의 아들 황인철은 지난 수십 년간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북한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초, 황인철과 함께 황원을 포함한 납북으로 인한 강제실종 피해자를 위한 긴급행동(Urgent Action, UA)’을 진행했다. 또한 5월에는 황원 씨를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Individuals at Risk, IAR)’ 사례로 등록했다. 국제앰네스티는 8월 30일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1969년 KAL기 납북사건과 이로 인한 강제실종 문제를 알리고 해결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웹사이트,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통해서 황원의 사례를 알리고 국내외 각 지부의 사무처장 명의로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에게 황원을 비롯한 강제실종 피해자의 생사확인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저는 20여년간 납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해 왔는데 마침내 한 가지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와 주신, 그리고 인권을 위해 활동하시는 분들께 저, 그리고 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9월 28일 토요일, 서울에서 KAL기 납북피해자 가족과 국제앰네스티 회원 간의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는 납북피해자 중 한 명인 황원의 아들 황인철이 사건 이후 피해자 가족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자리였다. 황인철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과 애환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 설날이나 추석 때 할머니가 항상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가 있었으면 저도 얼마나 잘 살았겠느냐고… 그땐 그런 말이 굉장히 싫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아, 나도 아버지가 계시구나’ 하는 느낌… 그런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죠.”

황인철을 비롯한 납북피해자 가족들은 수십 년간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더불어 한국 정부의 감시와 납북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차별로 인해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건 당시 남북관계는 체제경쟁과 상호 적대적 정책으로 인해 그야말로 악화일로를 걷던 대치 상황이었다. 납북 후 강제 실종된 피해자의 가족들은 엄연히 피해자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월북자로 취급되어 국가기관에 의해 감시를 당하거나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마주하며 살아야 했다.

납북피해자 가족들은 북한에 억류된 가족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북한 정부는 11명의 납북자에 대해 자발적으로 북한에 남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의 생사 및 근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정치적 상황을 핑계로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황인철은 아버지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자신의 간절한 바람이 남북 당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무시되는 현실에 분노를 넘어 좌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수십 년간 가족의 송환을 위해 황인철과 목소리를 내던 피해자 가족들은 양국 정부의 무관심한 태도 앞에 하나 둘 지쳐 포기했다. 기약 없는 싸움에 계속 매달리기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불가능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컸다. 황인철 역시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사랑스러운 딸과 아내가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황인철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송환될 날 만을 기다리고 계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자 다짐하며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했다. 보다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기 위해 비교적 시간에서 자유로운 단순 노무직으로 전업했다. 그의 활동에 사람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황인철은 오늘도 국내외에 납북피해자 문제를 알리며 아버지의 송환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지 꼭 알았으면 해요.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해 주세요.”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은 지난 50여년간 황인철과 납북피해자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시간을 접하며 왜 그가 지금까지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목청껏 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는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황인철은 아버지의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가 매일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보편적 권리와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일상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유로운 삶. 그것이 납북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간절하고 절실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지 모른다. 왜 그렇게 힘든 싸움을 계속 하냐고. 이제는 그만두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황인철은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여기서 자신마저 포기한다면 강제실종 피해자의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 것이라고. 그러기에 자신은 끝까지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문제해결, 함께 한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제6조는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체포, 구금 또는 추방되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KAL기 납북피해자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채 가족과 50년간 생이별 중이다.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마주한 피해자 가족은 그 무엇보다 자신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 줄 사람들이 절실하다. 여럿이 함께 외친다면 언젠가는 그 목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 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이 KAL기 납북피해자 가족의 외침에 손을 내밀었다. 국제앰네스티는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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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게재된 2016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이미지를 남성 작가인 김보통 작가가 그렸다는 사실에 대해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트위터상의 비판에 대해서 담당자로서의 뒷사정과 변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2016년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먼저 염두에 두고 두 명 정도 접촉했으나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조건이 맞는 새로운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하기 힘들어, 기존에 함께 했던 작업을 통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던 김보통 작가에게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이미지는 남성인 김보통 작가가 그렸으나 보이지 않는 기획 뒤에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We all can do it 이라는 원본 이미지를 고르고 차용하기로 결정한 것도 여성입니다.
혹자는 “we all can do it”이 소위 ‘남녀 편가르지 말자’는 ‘이퀄리즘’과 무엇이 다른가라 하는데 이 문구는 유명한 페미니즘 이미지의 문구이며 we는 여성들을 뜻하는 것이지 ‘우리 모두’가 아닐 것입니다.

 

여성-페미니즘 이슈 또한 다른 모든 인권 문제와 마찬가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젠더의 구분 없이 목소리를 내고 참여해야 합니다. 인권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문제이고, 당사자만 목소리를 내는 운동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소수자 연대를 성소수자만 해야 하거나 난민 문제를 난민만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여성혐오는 생물학적 남성만의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여성에게 불평등한 현실에서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점과 여성의 날 그림을 남성이 그리는 것이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미 이번 이슈가 불거지기 전에 올해 2018년 여성의 날 의뢰는 여성 작가에게 해둔 상황입니다. 또한 지난 2017년 여성의 날에는 여성 아티스트에게 의뢰해 작업을 한 바 있습니다.

꾸까kukka X 앰네스티 여성의 날 에디션 배지꾸까kukka X 앰네스티 여성의 날 에디션 엽서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에서 일하는 구성원의 최근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남성의 수가 여성보다 많은 적이 없었습니다. 남성이 단 한 명만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대부분의 시기 동안 여성이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의 리더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여성이 앰네스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리는 2015년 훨씬 이전에도 국제운동에서 앰네스티는 여성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과 낙태금지법의 반인권적인 점을 지적하며 꾸준히 활동해왔습니다. 앰네스티가 ‘알탕연대’를 한다는 것은 지나친 말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이슈를 다룰 때 더 신중하고 숙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와 평등이 절실하다는 점에 공감합니다.여성 이슈, 페미니즘 이슈를 주제로 작업할 수 있는 좋은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아티스트를 알고 계시다면 부디 추천해주거나 자원해주세요. 먼저 연락할 수 있는 pool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월, 2018/02/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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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 조혼, 강제결혼

 

상황 1)

  • 피해자 :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몰락한 왕가 타르가르옌의 마지막 공주)
  • 가해자 : 비세리스 타르가르옌 (몰락한 왕가 타르가르옌의 마지막 왕자)

쫓겨난 왕위 계승자 비세리스 타르가르옌은 도망자 신세라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아, 하지만 그는 발상의 전환을 했습니다. 예쁘고 어린 여동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거지요. 그는 여동생을 강력한 무장세력(기마민족 도트라키)의 수장(칼 드로고)과 결혼시키는 대신 왕좌를 탈환할 병력을 얻고자 합니다. 여동생 대너리스는 친오빠에 의해 교환가치가 있는 물건 취급을 받은 셈이지요. (대너리스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무시무시한 폭언으로 답합니다. “난 필요하다면 그자의 4만 명의 병사와 말들이 전부 널 강간한다고 해도 그냥 둘 거야”) 결국 그녀는 팔려가다시피 원치 않는 결혼을 합니다. 그녀의 나이는 고작 13살이었습니다. (원작 소설 기준) 그녀의 초야는 강간과 다름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편의 큰 사랑을 받고 그녀 역시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정략결혼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자식 농사 뿐입니다.


상황 2)

  • 피해자 : 산사 스타크 (에다드 스타크의 딸)
  • 가해자 : 타이윈 라니스터, 피터 베일리쉬, 램지 볼튼

전형적인 ‘공주병’에 빠져있던 철없는 소녀 산사 스타크의 꿈은 왕자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친구가 왕이었기 때문에 그리 비현실적인 꿈도 아니었죠. 자연스럽게 두 집안 간에 약혼 분위기가 형성되고 소녀의 꿈은 곧 이뤄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빠친구 아들(조프리 바라테온)이 정작 왕이 되자마자 한 일은 아빠(에다드 스타크)를 사형시키는 것이었죠. 그녀는 하마터면 아버지를 죽인 남자와 결혼할 뻔 했습니다. 그의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참수되어 걸려있는 아버지의 목을 그녀로 하여금 강제로 쳐다보게 할 정도로 끔찍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살아야한다니 끔찍하죠.

가해자 : 타이렐 라니스터 “그 아이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아.”

가해자 : 피터 베일리쉬

여차저차하여 결국 아버지의 원수와 결혼하는 것은 피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스스로 배우자를 고를 권리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볼모로 잡혀있는 신세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당할 뿐입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이 된 사람은 원래 약혼했던 조프리의 삼촌인 티리온 라니스터였습니다. 나이, 외모, 가족관계 등 여러모로 보았을 때 산사가 원하던 남편감과는 심각한 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원치 않는 결혼이었을지언정 티리온 라니스터는 여성의 주체적인 의사를 존중할 줄 아는 신사였습니다. 그는 강제결혼을 당한 산사와 동침할 의사가 전혀 없었지요.

 

산사의 세번째 강제결혼 상대는 <왕좌의 게임> 세계의 최악의 악당인 램지 볼튼이었습니다. 그는 오빠와 엄마를 죽인 자의 아들입니다. 게다가 고문과 살인을 일삼는 사람이었죠.

결국 대너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산사의 첫날밤도 강간이었고 그녀의 결혼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아빠를 죽인 남자와 결혼할 뻔 했다가, 그 남자의 삼촌과 결혼했고, 그 다음 오빠와 엄마를 죽인 자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었죠. 산사의 여성성은 철저히 이용당했으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결혼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산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겠죠.

근거
성과 재생산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

  •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정보와 교육, 서비스를 요청하고 받을 권리
  • 임신 여부와 임신의 시기를 선택할 권리
  • 결혼 여부와 결혼 시기, 파트너를 선택할 권리
  • 성폭행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 16조
1. 성년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의한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며 가정을 만들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혼인기간 중 또는 그것을 해소할 시에 혼인에 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2. 혼인은 그 의사를 가진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합의에 의해서만 성립된다.

문제점
나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사람, 나와 잠자리를 가질 사람은 당연히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구도 이것을 강요,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와 성은 너무나도 쉽게 도구화되고 물질로 취급 받아 왔지요.

현실에서는
부르키나파소의 여성의 절반 이상이 17세 이전에 결혼합니다. 이는 대부분 가족의 협박과 폭력에 의한 강제결혼입니다. 13세의 소녀가 이미 5명의 아내가 있는 70세 노인과 결혼해야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관습적인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네팔에는 많은 여성들이 ‘자궁탈출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15세에 결혼을 하는데, 신체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로 결혼하여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요받은 결과로 자궁탈출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자궁탈출증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 더욱 악화되는데 네팔의 자궁탈출증 환자들은 남편과 시댁의 강요로 피임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일부 북아프리카 국가들 중에는 강간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을 할 경우 처벌을 피하는 어처구니 없는 법이 있습니다. 모로코의 16세 소녀 아미나 피라일리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강제로 결혼하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모로코 의회는 개정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여성의 젠더에 대한 폭력적인 법 조항들이 철폐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로코의 형법은 성경험이 있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을 경험이 없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보다 ‘가벼운 죄’로 취급합니다.

또 있습니다. 극단주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다에시(IS)’는 납치한 여성과 어린이를 전투원에게 전리품처럼 나눠주어 아내로 삼거나 노예로 만드는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시간을 중세로 거꾸로 돌려놓았습니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고령화는 노동력과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며 경제에 치명타를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가 출산율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홍보와 선전, 정책들은 살짝 삐끗하는 순간 여성의 성을 ‘국가 노동력을 생산하는 출산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여성 개인들의 뜻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가의 필요에 의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애를 낳으라’고 종용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지요. 아이를 낳지 않든, 몇을 낳든, 그것은 오롯이 여성의 권리입니다. 그러니까 참견하지 마세요!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국제앰네스티는..

나의 몸, 나의 권리! 국제앰네스티는 국가가 개인의 성과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형사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등의 개인의 의사결정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My Body My Rights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금, 2017/10/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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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3] 고문

 

  • 피해자 : 테온 그레이조이 (배신자, 윈터펠의 볼모)
  • 가해자 : 램지 볼튼 (루즈 볼튼의 서자, 고문기술자)
  • 납치, 감금하고 고문함

가해자 : 램지 볼튼

피해자 : 테온 그레이조이

상황
물론 테온 그레이조이는 좋은 녀석은 아닙니다. 그가 저지른 많은 악행 중에서도 아이들을 태워죽인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보자면 테온은 본인이 치른만큼의 악행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그가 적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죄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악인 ‘램지 볼튼’의 가학적인 폭력욕구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테온 그레이조이를 심판할 몫은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당사자, 즉 윈터펠의 영주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테온이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냐구요? 심한 학대와 고문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몇 개쯤 잘리고 치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더욱 애석한 점은 <왕좌의 게임>의 모든 시청자에게 테온 그레이조이는 이를테면 ‘국민고자’입니다.. 그는 온갖 잔혹한 고문을 받은 끝에 성기를 절단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문에 따른 심한 충격과 트라우마로 그는 정신까지 파괴되어 자아까지 잃어버리고 맙니다.

 

근거
세계인권선언 제 5조
누구도 고문 또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모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않는다.

문제점
고문은 어떤 경우에도 예외 없이 금지되어야 합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되는 가장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순간이 바로 고문일 것입니다.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야만적인 형벌입니다. 게다가 고문에 견디다 못해 말하게 되는 거짓자백은 어떠한 사건의 본질적 실체와도 전혀 연결되지 못합니다. 당신이 정말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누군가 말할 것을 강요하며 끔찍한 고문을 가한다면 당신은 당신조차 모르는 일들에 대해 꾸며낼 수 밖에 없습니다. 고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뿐입니다.

현실에서는
고문은 구시대적이고 이미 거의 사라진 형벌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제앰네스티의 2014년 조사결과 총 141개국에서 여전히 고문과 기타 가혹행위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고문으로 고통당한 이름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2011년 작고한 故 김근태 (당시 민주통합당 고문)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부당하게 투옥당해 고문 당한 앰네스티 양심수입니다. 그는 고문의 비인간성과 후유증에 대해 앰네스티에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인터뷰 보기) 2015년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은수미 (당시 의원) 또한 고문피해생존자로서 고문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증언했습니다.
시인 윤동주가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투옥 중 숨진 것도 일종의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정체불명의 주사를 강제로 계속해서 맞았습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국제앰네스티는..
국제앰네스티는 고문중단을 위한 전 세계적인 캠페인을 전개해 1984년 유엔 고문방지협약 채택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협약이 채택된 30주년이 지난 2014년, <고문: 30년간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발표하며 여전히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화, 2017/10/31-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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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조혜영님은 영화감독 故 박남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여성감독 박남옥과 오늘의 박남옥들

박남옥 감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영화사에서 크레딧에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여성이다. 1997년 박남옥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영화 <미망인>(1955)의 필름 프린트가 발굴되었고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면서 소문으로만 듣던 영화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왜 여성들이 여성의 이야기를 만들고 보여줘야 하는지를 오롯이 증명했다.

1955년에 제작된 <미망인>은 전후에 제작된 한국영화의 유행을 일정 정도 따르고 있었다. 전후의 전통적인 젠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새로운 여성, 즉 아프레걸의 표상이다. 그러나 박남옥의 주인공 ‘신’은 남성감독들이 수없이 그려낸 아프레걸, 즉 <자유부인>이나 <지옥화>에 나오는 여성인물들과는 다르다. 남성감독들의 눈에 아프레걸은 외래문화에 취해 허영에 차있거나 치명적일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남성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팜므 파탈이었다. 이 여성들은 이전의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욕망과 주장을 뚜렷하게 표명하지만, 남성들의 프레임 속에서 그녀들은 헛되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삼는 존재로 그려지며 처단 받거나 순치되었다. 그러나 박남옥은 전쟁 과부인 ‘신’이 왜 남편친구인 이사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사랑하는 딸을 자신이 키울 수 없고 모성과 사랑 사이에서 양자택일 하도록 강요되는지, 그리고 여성들 간의 연대는 왜 필요한지 등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여성의 모성, 성적 욕망, 경제적 조건이 어떻게 그녀의 삶을 교차하고 관통하는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한정된 조건에서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욕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보여준다(영화는 “이웃에 이러한 미망인이 있었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에는 중산층 여성, 과부가 된 빈곤한 여성, 자원이 많지 않은 비혼 여성이 등장해 그들의 성별과 경제적 자원이 그들의 욕망에 어떤 한계를 지우는지를 보여준다. 왜 ‘신’은 경제적 독립과 모성, 사랑을 모두 얻을 수 없는 걸까? 그것은 정말 ‘신’의 문제인가? 하층민 남성은 어떻게 해서 다양한 계급과 조건의 세 여성 모두를 이용하고 속이는가를 이 영화는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어떤 면에선 <미망인>은 팜므 파탈보다는 옴므 파탈의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여성은 동일한 소재를 갖고도 전혀 다른 관점의, 그리고 더 복잡하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이를 업고 촬영중인 박남옥 감독

열정적인 시네필이고, 투포환 선수였고, 기자이자, 친언니와 함께 자매 프로덕션을 설립한 제작자이기도 했던 박남옥 감독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현장에서 아이를 업고 스탭들에게 직접 밥을 해먹어가며 <미망인>을 완성했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절실한 욕구에서 수많은 한계와 도전을 넘어 나온 결과물이었다. 박남옥 감독은 두 번째 영화를 향한 꿈을 늘 버리지 않고 있다고 인터뷰 때마다 밝혔지만 2017년 94세로 세상을 뜨면서 그 꿈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박남옥의 꿈은 여전히 지금 현재 우리에게 유효하다. 그녀의 꿈은 슬프게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50~1980년대까지 상업장편 영화를 만들었던 여성 감독은 10년마다 거의 1명씩이다. 1950년대의 박남옥, 1960년대의 홍은원(<여판사>)과 최은희(<민며느리>), 1970년대의 황혜미(<첫경험>, <관계>), 1980년대의 이미례(<수렁에서 건진 내딸>, <영심이>). 게다가 데뷔 10년, 20년 뒤에도 지속적으로 경력을 이어갔던 감독은 전무하다. 1990년대 임순례, 이정향, 변영주, 정재은 감독을 필두로 많은 재능 있는 여성감독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영화진흥위원위 통계에 따르면 총제작비 10억 원 이상어거나 최대 스크린수 100개 이상 기준을 충족하는 한국상업영화에서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편수는 2012~7년에 4~8편에 머무르고 있다,

<미망인>의 마지막 10분은 안타깝게도 사운드가 손상되어 대사를 들을 수 없으며, 마지막 장면은 프린트가 완전히 소실되어 갑작스럽게 끝난다. 사운드가 소실된 이 장면에서 주인공 ‘신’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딸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 ‘택’을 택했지만 그가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괴로워한다. 한편 ‘택’은 경제적으로 자신을 지원한 유부녀 애인 이사장의 부인, 새롭게 관계를 맺은 과부 ‘신’, 다시 만난 첫사랑 ‘진’ 사이에서 갈등한다. 경제적 독립을 하고자 하는 ‘진’은 이사장의 도움으로 차린 ‘신’의 양장점에 직원으로 들어간다. ‘신’과 ‘진’은 ‘택’이 삼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함께 술을 먹으며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 술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는 사운드가 소실되어 알 수 없다. 두 여성간의 대화 장면은 깊은 고뇌에 빠진 척하며 홀로 휘청휘청 거리를 걷는 ‘택’과 교차편집된다. <미망인>에서 대화 장면의 연출을 무엇보다 환상적이다. <미망인>의 대화 장면들은 관계의 복잡한 구조와 긴장을 능수능란한 리듬의 연출로 보여준다. 이 소리 없는 그러나 여성들 간의 위로와 연대가 엿보이는 ‘신’과 ‘진’의 대화 장면은 그러한 빛나는 장면들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다른 여성영화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고, 홀로 그 길을 개척해야 했던 박남옥 감독은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는 이제 서로가 있다. 오늘의 박남옥들은 박남옥 감독이 남겨놓은 그 묵음의 대화 장면을 수많 가지 다양한 목소리들로 채우며 강력하고 다채로운 해일을 만들어 낼 것이다.

  ★ 박남옥 감독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는 소중한 서적과 영화들
– 박남옥 감독의 자서전: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마음산책, 2017)
– 박남옥 감독을 비롯한 한국여성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 여성영화인이 말하는 영화>(임순례, 2001)
– 박남옥 감독의 작품 <미망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링크

글. 조혜영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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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함께한지 10년이 훌쩍 넘어 “이젠 몇 년째 후원하고 있는지 세지도 않는다”는 김모 회원의 페이스북에서 발췌해 편집했습니다. 이 글은 본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김 회원이 기고한 글에서 일부를 자기복제한 글이며, 이 글 형식은 로빈 윌리엄스가 쓴 <내가 성공회 신자가 된 10가지 이유>의 패러디이기도 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내가 앰네스티 회원이 된 10가지 이유


 10  이념을 취급하지 않는다. 

미국의 공익제보자 에드워드 스노든. 누군가는 그를 '반역자', 누군가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국제앰네스티는 공익제보를 이유로 위험에 처한 스노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공익제보자 에드워드 스노든. 누군가는 그를 ‘반역자’, 누군가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국제앰네스티는 공익제보를 이유로 위험에 처한 스노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1960년대, 국제앰네스티의 초창기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 진영간 갈등이 극에 달한 냉전의 시대였기에 오로지 세계인권선언문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동시에 불편부당성에 대한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미국과 소련 양쪽 모두에서 앰네스티를 비난했다. 미국은 “앰네스티는 KGB 말만 듣는 빨갱이 단체다” 라고, 소련은 “앰네스티는 가면을 쓴 CIA다“와 같은 수사를 쏟아냈다. 양쪽에서 고르게 욕을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앰네스티가 특정한 정치체제와 진영에 상관없이 오로지 인권을 기준으로 활동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블로그] 「”앰네스티는 불공정” 인권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5가지 방법」 중에서)


 09  이 넓은 세상에 인간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08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활동가가 될 수 있다. 

 

인권옹호 활동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액션에 참여하는 것부터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서 몸에 타투를 붙이는 것,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여하는 것,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인권단체에 후원하는 것 등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많은 활동으로 실천할 수 있다.


 07  활동을 위해 무엇을 할까 머리를 굴려야 할 필요가 없다. 

Rohingya fleeing ethnic cleansing in Myanmar's northern Rakhine State arrive on a beach on Cox's Bazar, Bangladesh

미얀마의 인종청소로 방글라데시의 Cox’s Bazar해변으로 대피하고 있는 로힝야족

그냥 하게 된다.


 06  탄원편지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전 세계 각국에 이메일과 편지를 보낼 수 있다. 


 05  시기에 맞물려 활동하는 인권 사례가 있다.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메시지 ⓒ비더슈탄트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메시지 ⓒ비더슈탄트

차갑던 바람에 온기가 스며들 때쯤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4.16 세월호를 기억하다보면, 5.15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5.16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5.17 IDAHOT, 5.18 민주화운동을 지나 이렇게 더울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때쯤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사형제도를 반대하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되어 12.10 세계 인권선언일이 된다.


 04  전 세계의 인권소식을 접할 수 있다. 

도나텔라 국제앰네스티
위기대응 선임 조사관.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곳곳의 인권침해 상황을 직접 조사한다.


 03  다양한 활동 방식이 있다. 뭘 할지 정하면 된다. 

2016년 2월 24일, 억압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유령집회를 개최했다.

2016년 2월 24일, 억압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유령집회를 개최했다.


 02  활동을 하기 위해 투사가 될 필요가 없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사형제도폐지 팻말을 들고있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사형제도폐지 팻말을 들고있다.

물론 투사도 중요하지만, 인권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첫 번째 이유
 01  이 단체의 목적은 단체 해산에 있다. 더는 인권 옹호를 위한 활동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 

피터 베넨슨, 영국의 변호사로 1961년 포르투칼의 두 청년이 자유를 위해 건배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기사를 보고 “Amnesty” 운동을 제안했다.

 


마지막 양심수가 풀려나고, 마지막 고문실이 폐쇄되고, 세계인권선언이 모두에게 실현되었을 때, 우리의 일도 끝나는 것입니다.

피터 베넨슨, 국제앰네스티 창립자


 

"FIGHTING BAD GUYS SINCE 1961" 트럼프 혐오 발언에 맞선 세계여성대행진을 마친 한 참가자가 백악관 앞에 서있다.

“FIGHTING BAD GUYS SINCE 1961” 트럼프 혐오 발언에 맞선 세계여성대행진을 마친 한 참가자가 백악관 앞에 서있다.

목, 2017/11/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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