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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검찰권 오남용 과거사 철저히 규명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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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검찰권 오남용 과거사 철저히 규명되어야

익명 (미확인) | 금, 2017/09/29- 16:25

검찰권 오남용 과거사 철저히 규명되어야 

법무·검찰개혁위의 검찰 과거사 조사위원회 및 재심 권고에 대한 논평

 

오늘(9/29)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가 법무부에게 과거 검찰의 검찰권 오남용 사건들을 조사하도록 ‘검찰의 과거 인권침해 및 권한남용 의혹사건 진상조사 위원회(약칭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 이하 과거사조사위)’를 설치하고, 검찰권 남용 및 인권침해가 확인된 사건의 경우 적극적인 재심청구를 통해 시정하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임지봉 서강대학교 교수)는 개혁위의 권고안처럼 검찰의 검찰권 오남용 사건이 철저히 재조사되기를 촉구한다.

 

검찰권 오남용 사건들을 재조사하기 위해서는 과거사 조사의 객관성과 중립성, 전문성이 보다 강하게 담보되는 과거사조사위가 설치되어야 한다. 권고안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과 협의하여 설치하며,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협의하여 위촉한 민간위원 9명으로 과거사조사위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과오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위원을 위촉함에 있어 그 조사대상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검찰총장과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개혁위는 권고안에서 검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한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과거사조사위의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없다. 조사위가 조사하게 될 사건들이 대부분 3년이상 지난 사건들임을 감안하면 조사 대상 사건의 진행 당시에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나 혹은 그와 연관이 있는 검사들이 위촉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사위원의 위촉에 있어서는 검사 출신 인사를 배제함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만약 조사 과정에서 검찰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자료 제출이나 진술 요구 등에 있어서 검찰이 거부할 수 없도록 조사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문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조사결과가 과오의 당사자인 검찰의 ‘협의’를 거쳐 나온 것이라면 국민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재심청구에 대한 개혁위의 권고대로 과거 검찰의 권한 남용과 인권침해가 확인된 사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재심청구를 하고,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검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백지 구형’ 관행도 중단해야 한다. 과거 상부의 부적절한 백지구형지시를  거부하고 무죄 구형을 했던 임은정 검사에 대한 징계 취소 및 상고 취하도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근거없고 부적절한 상부의 지시에 저항하는 검사의 소신은 징계의 대상이 아닌 보호와 장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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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법안 통과, 형사사법절차 정상화 과정

검찰, 직접수사 더 줄이고 기소 및 공소유지 기관으로 나아가야

검사 작성 조서 증거능력 제한의 시행 유예기간 최소화해야

 


어제(13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던 형사소송법 개정법률안 수정안과 검찰청법 개정법률안 수정안(이하 수사권조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공수처설치법 통과에 이어 수십년 걸쳐 요구되어온 검찰개혁 법안이 모두 통과된 것이다. 이번 수사권조정 법안 통과는 직접수사권과 수사지휘권 등을 수십년간 제한없이 독점해온 검찰의 광범위한 권한을 분산하고, 경찰과의 관계를 변화시켜 국민의 기본권을 더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혁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공수처법과 수사권조정 법안 등 일련의 검찰개혁 법안 통과가 형사사법절차를 정상화시키는 불가피한 과정이며, 개혁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인만큼 필요한 시행령 개정 등 후속조치들을 법무부와 검찰이 협력하여 차질없이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국회를 통과한 수사권조정의 핵심은 검찰 송치 전 경찰의 1차 수사에서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인정하고, 검찰이 가졌던 무제한적인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권한이 커지는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장치를 추가로 마련하는 것이다. 추가로 검찰 피해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규정도 도입되었다. 하지만 명목상 수사지휘권은 폐지되지만 검찰은 여전히 영장청구권과 재수사요구권, 징계요구권 등으로 경찰수사를 일정하게 통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간 주요 수사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던 부패 · 경제 · 공직자 · 선거 · 방위사업 · 대형참사 등 이른바 ‘특수수사’ 영역은 여전히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다. 검찰의 권한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 외에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를 직접수사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한다는 취지가 얼마나 관철될지는 더 지켜봐야할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이 사실상 독점하던 권한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이번 수사권 조정의 의미는 작지 않다. 이번 수사권조정을 계기로 검찰은 직접수사보다 기소와 공소유지에 집중하고, 수사과정에 대한 사법통제를 담당하여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어제(13일) 법무부가 직접수사 부서를 축소하고 형사 · 공판부를 강화하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국회 결정의 취지에 따라 향후 신속하게 관련 시행령과 규칙의 제개정 및 조직개편을 협력하여 처리해야 한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검사장급 인사와 조직개편을 둘러싸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대립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검찰이 아무리 반발한다고 해도 검찰개혁을 결코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권한을 남용한 무리한 수사도 있어서는 안되지만, 인사나 조직개편을 통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키거나 중단시켜서도 안될 일이라는 것이다. 인사권의 행사와 조직개편도 절차와 법령에 따라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조만간 이어질 검찰 내 추가 인사가 현 정부에 대한 수사를 중단시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검경수사권조정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관련하여 여전히 남은 과제는 많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정권의 의지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더 확대될 위험이 있다. 공판중심주의 강화 및 ‘조서재판’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필수적인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의 완화도 시행의 최대 유예기간이 무려 4년에 달한다. 재판 실무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과도하게 긴 만큼,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시행을 공포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강화되는 경찰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제대로된 자치경찰제의 전면적 시행, 정보경찰의 전면 폐지, 행정경찰의 수사개입을 막는 독립적인 수사본부의 설치 등 경찰개혁 역시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논평 [https://docs.google.com/document/d/1SP6Ut4evhIIKa5cKdS00aCnQDslZg1mJPTiL...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화, 2020/01/1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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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 dir="ltr">약자들을 향해 양보와 타협을 강요하는 사회</h1> <p> </p> <h3 dir="ltr" style="text-align:right;">이태호 故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h3> <p dir="ltr" style="text-align:right;"><strong>인터뷰 및 정리</strong> 김경희, 홍정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p> <p> </p> <blockquote> <p dir="ltr">2월 9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故김용균씨의 장례식이 사고 62일만에 치러졌다. 그의 죽음은 집요하게 유지되고 있는 약자에게로 위험과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었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p> </blockquote> <p> </p> <p dir="ltr" style="text-align:center;"><img alt="<사진 1> 이태호 故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src="https://lh3.googleusercontent.com/cBxxl_YMziabhqgLzuzMLfx_FRm8ghW_0nxPq…; /></p> <p dir="ltr"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color:#3498db;">▲ <span style="font-family:Arial;">이태호 故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사진 = 이태호 제공></span></span></p> <p> </p> <p dir="ltr"><strong>故김용균님의 죽음을 되짚어본다면</strong></p> <p dir="ltr">2018년 12월 11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청년이 한밤중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혼자서 일하다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 고수익을 올리는 발전소에 있을법하지 않은 굉장히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노동자, 훈련도 되지 않은 상태의 청년이 혼자서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p> <p> </p> <p dir="ltr">발전소는 故김용균이 끔찍한 일을 당한 이후에도 미래가 창창했던 청년이 죽었다는 사실의 의미를 최소화하려 했다. 시신을 수습하지도 않았으며, 2017년 해당 구간에서 비슷한 죽음이 있었으나 그 당시와 똑같이 행동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구의역 참사, 제주도 직업연수생의 죽음 등 여러 사건에서 한국사회를 향한 경종을 울렸음에도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故김용균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p> <p> </p> <p dir="ltr"><strong>故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어떻게 꾸려지게 되었고 어떤 역할을 했는가</strong></p> <p dir="ltr">‘노동자’대책위원회가 아니라 ‘시민’대책위원회로 명명한 것은, 산업현장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이제는 모두가 마주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두 집 건너 한 가족은 비정규직 노동자인 현실에서 관련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고,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며 어처구니없이 소중한 사람을 잃는 상황에 대한 공분을 모아낼 필요가 있었다.</p> <p> </p> <p dir="ltr">이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언론이 우호적인 자세로 이번 사안을 세심하게 다뤘고, 시민들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론의 힘에 기댈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책위가 효과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본다. 사고 장소가 태안이어서 시민들이 찾기 힘들었던 점도 있겠으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적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책위가 故김용균 어머니의 개인적인 역량에 기댔던 면도 있었다.</p> <p> </p> <p dir="ltr"><strong>대책위의 공동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strong></p> <p dir="ltr">문재인 정부가 임기 만 2년을 맞고 있는데 노동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빠르게 악화되는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 참사가 발생했다. 사실 이전에도 파인텍, 콜트콜텍, 쌍용차 등의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었고, 세월호, 구의역 참사 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깊은 문제의식이 있었다.</p> <p> </p> <p dir="ltr"><strong>초기에는 故김용균님의 죽음을 당사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려 했던 시도도 있었는데</strong></p> <p dir="ltr">사건 직후에는 故김용균이 발전소의 수칙을 어기고 개인행동을 한 것으로 취급하려고 했고, 당사자가 고집이 세다는 둥 개인을 탓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 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려 했었고, 유가족에게 위로ㆍ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내려 했다. 이런 식으로 발전소는 5년간 무재해 기업으로 인정받아 세제혜택을 22억 원이나 받았다. 이토록 끔찍한 일을 겪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고 넘어가버리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p> <p> </p> <p dir="ltr"><strong>故김용균님의 장례가 하염없이 길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strong></p> <p dir="ltr">이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청와대 앞에서 시위 중이었고, 故김용균도 1인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故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공공분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발전사가 운전, 정비 분야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직접 고용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설 이전에 협상의 가닥이 잡히길 기대했다. 故김용균의 유가족이 적극적으로 나서긴 했지만,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상황이 지나치게 복잡했다. 발전사마다 지회, 지부도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로 짜여있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갈등 조율이 쉽지 않았다.</p> <p> </p> <p dir="ltr">만족스럽지 않지만, 설 연휴 중 겨우 합의안을 타결했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역할이 컸고, 무엇보다 당사자의 가족이 나서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총리실 산하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고, 운전직은 공기업 자회사를 만들어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고, 정비직은 노동자ㆍ사용자ㆍ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서 정규직 전환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대책위는 우선 합의안을 타결하며 장례를 치르자고 결정했다. 유가족,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들의 요구가 모아져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례식은 끝이 아니라, 이후 남아있는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기 위해 다짐하는 계기라고 본다. 결국 장례식을 하면서 유가족은 고인의 시신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장례식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유가족에게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가족이 아들과 함께 일하던 동료 노동자들을 마치 자신의 식구처럼 여기면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했던 것이 컸다고 본다.</p> <p> </p> <p dir="ltr"><strong>장례식에 세월호 유가족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준다면</strong></p> <p dir="ltr">참사 바로 다음날 세월호 유가족이 故김용균의 유가족을 찾았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故황유미의 아버지, 특성화고 현장실습 중 사망한 故이민호의 아버지, 방송제작 현장을 고발한 故이한빛의 어머니 등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연대했다. 故김용균의 어머니는 다른 유가족들이 손을 내밀어준 것이 엄청난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렇게 끔찍한 참사를 겪은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연대하는 것만으로 100% 위로를 받기는 어렵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지금쯤이면, 당신이 어떤 느낌일지 내가 다 안다’는 당사자 간의 연대가 있을 때 진정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은 앞으로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p> <p> </p> <p dir="ltr">막상 장례식 당일에 故김용균의 어머니가 울지 않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장례식 이전에는 여러 일을 겪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누군가는 그가 눈물 흘리지 않는 모습이 강인하다고 말했지만, 눈물로도 해결되지 않을 슬픔을 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故김용균의 어머니가 울지 않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더 아파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故김용균의 어머니가 영결식에서 아들이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은 비슷한 일을 겪은 모든 ‘어머니’들이 공통적으로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p> <p dir="ltr"> </p> <p dir="ltr" style="text-align:center;"><span><span style="font-size:12pt;font-family:Arial;vertical-align:baseline;"><img alt="<사진 2> 이태호 故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src="https://lh6.googleusercontent.com/adFLmZ42uprpTyrMfQx6_I7cTK0uMJ2u8_ASn…; /></span></span></p> <p dir="ltr"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color:#3498db;"><span style="font-size:12pt;font-family:Arial;vertical-align:baseline;">▲집회에서 발언 중인</span><font face="Arial"><span> 이태호 故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사진 = 이태호 제공></span></font></span></p> <p> </p> <p dir="ltr"><strong>‘김용균법’으로 불렸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 대해 평가한다면</strong></p> <p dir="ltr">애초에 故김용균을 떠나보내기 전에 통과시켰어야 할 법안이다. 이전에도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노동자들, 메탄올ㆍ수은 등 위험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안전문제 등을 해결했어야 했다. 개정되기 이전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물질’에만 초점을 맞추고, 위험‘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원청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도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p> <p> </p> <p dir="ltr">작년 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도 ‘김용균법’으로 불리지만, 故김용균의 동료들은 해당되지도 않는 법인데다, 원청의 책임을 강하게 묻기도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책위는 정부와 국회가 ‘김용균법’을 통과시키면서 이 문제를 끝내려는 시도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유가족과 대책위가 대통령의 면담을 거부한 이유도 故김용균과 그 동료들을 위한 법이라고 볼 수없는 것을 ‘김용균법’으로 명명했기 때문이고,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서 악수하고 위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늉만 한 채로 끝나버릴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협상에서 어느 정도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대통령 면담을 수락한 것이며, 협상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채워나갈 수 있는 방향의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p> <p> </p> <p dir="ltr"><strong>신자유주의로 인해 원청이 책임을 회피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업무를 맡게 되는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데</strong></p> <p dir="ltr">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숫자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00명으로 똑같은 수준이다. 통계적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 시대에서 그 죽음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 하청업체로 위험업무를 외주화하는 흐름이 가속화되었고, 한국사회는 위험을 숨기도록, 죽음을 숨기도록 요구하고 있다. 공공성의 대변자여야 할 정부의 정책부터 위험업무에 소요되는 안전비용을 어떻게든 감축시키는 산업과 기업을 우호적으로 대했던 사 악한 매커니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이루어지기도 어렵다.</p> <p> </p> <p dir="ltr">사회가 어려워지다 보니,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외면하는 일도 벌어진다. 사회의 시스템은 개별적인 이기심을 극대화하도록 만든 것이다. 반대로 이번 대책을 계기로 민영화의 흐름을 멈추게 되었다고 평가하는 주장도 있는데 민영화의 흐름을 멈춘 것은 아니고, 그 속도를 둔화시키는 수준에 그친다고 본다. 노ㆍ사ㆍ전 협의체가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고, 정부가 명확히 방향을 설정하지도 않았기에 협의체가 어떤 결과를 낼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정비 분야의 민영화는 계속해서 추진되고 있다. 그런 흐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만이 대안이 될 수 없고,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직접 고용을 하는 것만이 대안이 될 수 없다.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부추기는 매커니즘을 멈출 수 있도록, 정부 스스로 밝힌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것, 발전사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 생명안전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 강화 등 여러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p> <p> </p> <p dir="ltr"><strong>복잡할 대로 꼬여버린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strong></p> <p dir="ltr">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ㆍ노동조합만이 양보하고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어떻게 ‘체제화’되었고, 그로 인한 갈등을 감추고 북돋아왔는가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심지어 이번 사태에서 정부조차도 사업장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정부 스스로 발전사를 민영화했던 정책을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외주화된 위험업무에 해외자본이 투자하도록 해놓고, 해외자본이 투자되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서 정규직화를 할 수 없다는 식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있는 틀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정도로 정부가 움직인 것이 현실이다. 갈등의 구조가 복잡하게 꼬이니까 정부는 가장 다루기 쉬운 약자들을 향해 양보와 타협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태안의 화력발전소 문제도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p> <p> </p> <p dir="ltr"><strong>앞으로 시민사회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strong></p> <p dir="ltr">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당장 해결할 방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해법이 없다고 해서 시민단체들은 나서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시민’대책위에도 뚜렷한 역할을 맡은 시민단체는 없었다. 어떤 시민단체도 대책위에 직접 결합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상의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전부 동의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 직접적인 결합을 꺼린 것이다. 대책위에 결합할만한 역량이 준비되지 않았던 면도 있다. 시민단체도 앞으로는 정합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p> <p> </p> <p dir="ltr"><strong>대책위가 앞으로 요구할 제도개선안은 무엇인가</strong></p> <p dir="ltr">‘위험의 외주화를 멈춰라.’ 특히 외주화 분야 내에서의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원론적인 해답은 직접 고용 방식의 정규직화다. 발전사의 민영화로 복잡해진 상황을 고려하면 적어도 운전, 정비 분야에서는 공기업화, 혹은 양질의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를 시도해야 한다. 정부가 스스로 정한 가이드라인에 최소한이라도 부합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이번 합의안은 절반은 진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쉬움이 남는다.</p> <p> </p> <blockquote> <p dir="ltr">자식을 잃은 날 시간도 기억도 모두 멈춘다는 유가족 어머니들의 말에 가슴이 뻐근하다. 어찌해도 고단한 날들이겠지만 더 많은 시민들이 그날에 함께 머물고 기억하기를,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도록 약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양보와 타협을 강요하는 구조를 바꾸도록 목소리 낼 때이다.</p> </blockquote></div>
금, 2019/03/0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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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출연자

  • 진행 : 김희순 간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 초대손님 : 서기호 변호사 (19대 국회의원, 전직 판사), 한상희 교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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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팟 73회 / 법원 특집

 

참팟 권력감시 특집 3부, 법원 개혁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1부에서는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법원 블랙리스트'가 말하는 법원 구조의 문제, 사건의 배경와 앞으로의 전망, 2부는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법원 개혁의 과제와 앞으로에 대한 기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판사는 법으로 말한다'는 법원. 이명박근혜 정권 이후의 법원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참팟과 함께 같이 고민해 보세요.

 

법원 특집 1부 - 법원 블랙리스트, 왜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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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특집 2부 - 법원의 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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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3/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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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팀킴’을 ‘팀킬’하려는 가족코치단의 의혹 – 아버지는 협회 전 부회장, 딸은 헤드코치 사위는 믹스더블 코치 – 상금 착복 의혹, 기혼선수 퇴출 시도, 사생활 감시 등 전횡 폭로 – 선수들, 베이징 올림픽의 보다 큰 목표 위해 현 코치진 퇴출 청원 타임지는 11월 15일자 South Korea’s ‘Garlic Girls’ Have Accused Their Coaches of Derailing the Team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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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1/1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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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퇴임을 앞둔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의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법원 내 연구모임에 대한 외압이나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대법원장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한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는 바로 '판결'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의 역할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과연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로서 그러한 역할을 다하였는지, '양승태 대법원'의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총 7회에 걸쳐 <판결비평칼럼-양승태 대법원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향후 새롭게 임명될 대법원장의 요건과 이후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제3화는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범위를 제한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의 칼럼을 통해 알아봅니다.

 [이전 칼럼 바로가기]

 ① 교사의 시국선언과 정치기본권 (곽노현)
 ② 제주해군기지사건과 환경민주주의 (김필성)

 

[광장에 나온 판결]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시효'의 장벽 뒤에 은폐되는 국가책임

이상희 변호사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

 

1.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의 의미

 

2000년대 한국사회의 화두는 과거청산이었다. 국가폭력의 진상을 드러내고 피해자를 구제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민주화 과정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특히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이는 사법부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위법, 부당한 공권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권력의 조작, 은폐에 대한 진실규명을 방해하거나 가담했기 때문이다.

 

과거사 사건은 '①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 의혹 사건, ② 공권력의 조작 또는 은폐와 진실규명 방해'라는 2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심요건이나 소멸시효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힐 경우에 개별 판결을 통한 과거청산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참고로, 국가를 상대로 책임(손해배상)을 묻기 위해서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5년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유엔총회가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인권침해와 국제인도주의법의 중대한 위반행위 피해자를 위한 구제 및 배상을 위한 기본 원칙과 지침'에서도 ①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민사적 손해배상청구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② 정부가 중대한 인권침해의 진실을 은폐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거나 정부가 그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한 때로부터 시효가 진행된다는 중요한 원칙을 천명하였다.

 

2.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사법부 

 

1) 하급심의 태도 

 

법원은 2003년 수지 김 사건 판결에서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1987년 한국 여성 수지 김이 살해되자 국가안전기획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오히려 수지 김을 북한의 공작원으로 조작하였다. 

 

뒤늦게 진실이 규명되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법원은 국가가 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하다가 이제 와서 진실을 알지 못했던 유족들에게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 후 법원은 최종길 교수 사건 등에서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 법원은 형사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2) 대법원의 과거청산 

 

대법원은 2010년 12월 16일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하여 위헌, 무효를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1월 20일 조봉암 형사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2011년 6월 30일에는 울산보도연맹 사건에서 사법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울산보도연맹 사건에서, 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여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② 지금까지 국가가 진실을 은폐하여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는데, 뒤늦게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유족들에게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3. 재판을 통한 과거청산에 제동을 건 대법원 판결 

 

1) 대법원이 2011년 1월 13일 처음으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결정이 내려진 재심 무죄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판결했는데, 이 판결은 그 당시 잇따른 과거사 사건의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대법원은 '과잉배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자 기산점을 기존의 법리와 다르게 사실심 변론종결일로 변경하는 판결을 하였다. 이 판결은 과거사 사건에 대해 '장기간의 세월', '통화가치의 상당한 변동'이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동원하여 굳이 기존 법리까지 무시해가면서 손해의 범위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 그런데 더 나아가 대법원은 2013년 5월 16일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에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상당히 제한하는 소멸시효 법리를 만들어 적용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을 통한 민주화에 역행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에서 대법원은 국가가 사건을 조작 또는 자료를 은폐했거나, 전쟁과 같은 국가위난의 시기에 국가권력이 폭력을 비호하거나 묵인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이 소멸시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즉,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당시에 무조건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가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립하여 진실규명을 한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니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시효를 문제삼지 않고 국가책임을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형사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해자도 무죄판결 확정일 또는 형사보상결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지만 국가책임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하급심은 무죄판결을 받고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는데, 대법원이 자의적으로 그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급심 판결만 믿고 소송 준비로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낸 피해자들은 자의적인 대법원 판결 때문에 국가의 책임도 묻지 못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 6개월이 왜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른 채 말이다.

 

4. 결론

 

대법원은 2012년 이후 유독 과거사 사건에서만 자의적으로 권리구제의 기준을 변경하거나,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기존의 대법원 판결과 상반된 법리로 국가의 책임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겸허하게 과거를 반성하고 진지하게 피해자의 인권에 귀를 기울이며 공권력의 위법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묻는 사법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목, 2017/06/2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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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에 ‘임은정 검사의 부당한 적격심사 중단’ 요청

비판적인 검사 솎아내기 위한 보복성 조치
검사적격심사제도 악용해 검사의 공정성·독립성 침해해선 안 돼 


최근 법무부는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상부 지시와 관행을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징계를 받았던 임은정 의정부지검 검사를 검사적격심사의 심층 적격심사 대상에 올렸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서보학 경희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14, 법무부에 공문을 보내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해 검찰에 비판적인 검사를 찍어내려는 시도를 멈출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검사적격심사위원회에도 임 검사가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공정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임은정 검사가 지난 2012년 12월,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윤길중 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것은 사건 담당 검사로서 과거 검찰의 잘못된 공소제기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단행한 지극히 용기 있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징계처분취소소송에서 1,2심 법원도 임 검사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 만큼, 임 검사는 부당한 징계 이외에 심층적격심사대상이 될 이유가 없음에도 법무부가 왜 특별사무감사를 강행하는 등 무리수를 두는지 납득할 수 없다면서, 법무부가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법무부가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해 검찰 내부의 건전한 비판이 위축되고, 검사의 신분보장까지 약화되어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법무부가 할 일은 검찰의 견제기구로서 검사가 그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이후 적격심사 과정을 모니터하면서 법무부가 제도를 악용해 부당한 처분을 내리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할 것이다. 

 

 

▣ 법무부에 보내는 공문


임은정 검사의 부당한 적격심사를 중단해 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상부 지시와 관행을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해 징계를 받았던 임은정 의정부지검 검사가 최근 검사적격심사의 심층 적격심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서보학 경희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가 부당한 징계나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임 검사를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분류했다면, 검찰에 비판적인 검사를 찍어내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매우 부당한 조치라고 봅니다. 법무부는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해 검사들의 직무 공정성과 독립성을 침해하고 위축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에 귀 법무부장관께서는 법무부가 임 검사를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분류한 사유를 다시 검토하여, 그 사유가 검찰에 대한 비판이나 부당한 징계 때문이라면 임 검사에 대한 심층적격심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청합니다. 

 

임 검사가 지난 2012년 12월,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윤길중 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것은, 사건 담당 검사로서 과거 검찰의 잘못된 공소제기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단행한 지극히 용기 있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임 검사의 소신 있는 행동에 중징계 처분을 내리고, 이에 더해 심층적격심사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법무부가 징계해야 할 대상은 책임을 회피하고 백지구형을 결정해 직무유기를 행한 검찰 상부이지 구형의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해 검사로서의 의무를 다 한 임은정 검사가 아닙니다. 
 
징계처분취소소송에서 1, 2심 법원이 임 검사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 만큼, 임 검사는 심층적격심사대상이 될 이유조차 없습니다. 그런데도 법무부가 왜 특별사무감사를 강행하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법무부가 임 검사를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삼은 것이 부당한 징계나 용기 있게 검찰 비판적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면, 법무부와 검찰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검사를 솎아내기 위해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는 법무부가 내세우고 있는 법과 정의 실현의 기관이라는 위상을 스스로 허물어트리는 것이고, 국민적 비판과 불신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 때문에 검찰 내부의 건전한 비판이 위축되고, 검사의 신분보장까지 약화되어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까지 흔들릴까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임은정 검사는 공판 활동 실적 우수 등으로 검찰총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고, 우수검사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는 등 검사로서 성실히 직무수행을 해왔습니다. 또한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도가니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공익의 대변자이고, 검찰 내부통신망에 성추행 검사에 대한 검찰의 솜방망이 처분을 비판하는 등 검찰조직의 자정을 위해서도 노력해 온 검사입니다. 법무부는 지금이라도 소신 있는 검사를 찍어내기 위한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될 때 검찰은 비로소 건강한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고,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때 법무부가 할 일은 검사가 내외부로부터 그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검찰의 견제기구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귀 법무부장관께 다시 한 번 요청 드립니다. 임은정 검사가 부당한 징계에 이어 부당한 적격심사로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됩니다. 임 검사를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분류한 사유를 재검토하여 임 검사에 대한 심층적격심사 결정을 철회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검사적격심사위원회에 보내는 공문

 


임은정 검사가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공정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상부 지시와 관행을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해 징계를 받았던 임은정 의정부지검 검사가 최근 검사적격심사의 심층 적격심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서보학 경희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가 부당한 징계나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임 검사를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분류했다면, 검찰에 비판적인 검사를 찍어내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매우 부당한 조치라고 봅니다. 검사적격심사위원회가 법무부가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해 검사들의 직무 공정성과 독립성을 침해하고 위축시키는 것에 동조하여서는 안 됩니다. 귀 위원께서 이 점 고려하여 임 검사가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공정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임 검사가 지난 2012년 12월,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윤길중 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것은, 사건 담당 검사로서 과거 검찰의 잘못된 공소제기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단행한 지극히 용기 있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임 검사의 소신 있는 행동에 중징계 처분을 내리고, 이에 더해 심층적격심사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법무부가 징계해야 할 대상은 책임을 회피하고 백지구형을 결정해 직무유기를 행한 검찰 상부이지 구형의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해 검사로서의 의무를 다 한 임은정 검사가 아닙니다. 

 

징계처분취소소송에서 1, 2심 법원이 임 검사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 만큼 임 검사는 심층적격심사대상이 될 이유조차 없습니다. 그런데도 법무부가 왜 특별사무감사를 강행하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는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법무부가 법무부와 검찰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검사를 솎아내기 위해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면, 법무부가 내세우고 있는 법과 정의 실현의 기관이라는 위상을 스스로 허물어트리는 것이고, 국민적 비판과 불신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 때문에 검찰 내부의 건전한 비판이 위축되고, 검사의 신분보장까지 약화되어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까지 흔들릴 것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임은정 검사는 공판 활동 실적 우수 등으로 검찰총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고, 우수검사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는 등 검사로서 성실히 직무수행을 해왔습니다. 또한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도가니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공익의 대변자이고, 검찰 내부통신망에 성추행 검사에 대한 검찰의 솜방망이 처분을 비판하는 등 검찰조직의 자정을 위해서도 노력해 온 검사입니다. 만약 법무부가 소신 있는 검사를 찍어내기 위해 검사적격심사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면, 검사적격심사위원회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 소임일 것입니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될 때 검찰은 비로소 건강한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고,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때 법무부가 할 일은 검사가 내외부로부터 그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검찰의 견제기구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귀 위원께 다시 한 번 요청 드립니다. 검찰에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검사를 찍어내기 위한 법무부의 보복성 악의적 조치로 임은정 검사가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됩니다. 이 점을 깊이 고려하여 공정하고 신중한 판단을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5/12/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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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부산에서 온 이 모씨는 충남 서천군에 있는 고 유 모 할머니의 묘소를 참배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17년 만에 마주한 것이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때 한 행동은 지금도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부디 좋은데 가셔 가지고 편안한 안식을 갖기를 빌어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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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씨는 1999년 2월 6일 전북 완주군 삼례에서 발생한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3인조 범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이 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신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당시 마을 부근에 살던 19~20살 청년 3명이다.

▲ 강도치사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임명선, 강인구, 최대열씨(왼쪽부터)

▲ 강도치사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임명선, 강인구, 최대열씨(왼쪽부터)

빈집털이 전과가 있던 이들은 처음엔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의 폭행과 강압적인 수사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 검찰은 3명을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이들은 각각 징역 6년과 4년,3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그런데 사건 17년 만에 진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숨진 유 모 할머니에게 마지막까지 물을 떠다 먹이며 인공호흡을 시도했던 범인, 이 모씨다.

이 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삼례 청년 3명을 지난 1월 29일 만나 손을 맞잡으며 사과했다. 그리고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청년들은 진범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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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이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까지 구한 지금. 당시 삼례 청년들에게 엉뚱한 죄값을 치르게 했던 경찰은 어떤 입장일까?

취재진은 피해자들과 함께 당시 이들을 조사했던 경찰들을 찾아나섰다.

“저는 진짜 만나서, 왜 우리를 왜 억울하게 안한 사람을 왜 잡아들였나. 그 말을 하고 싶죠.”

그러나 이들 모두 하나같이 취재진을 피했고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당시 수사는 최선을 다한 것일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 삼례 사건 당시 완주서 수사반장을 맡았던 오재경 현 덕진서 수사과장이 취재진과 피해자들을 피해 경찰서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 삼례 사건 당시 완주서 수사반장을 맡았던 오재경 현 덕진서 수사과장이 취재진과 피해자들을 피해 경찰서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 임명선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우리 잘못했다 그렇게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그래도 괜찮을 건데 그 말 한마디도 못하고 막 피해다니고 도망다니니까, 깝깝하죠.

살인을 저지른 진범은 “자신이 할머니를 죽였다”고 고백했고 용서를 빌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 때문에 죄를 뒤집어 쓴 청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용기를 내고 있다.

반면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지적장애를 갖고 있던 청년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던 공권력은 한마디 사과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할 자는 과연 누구일까?

목, 2016/02/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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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찰 뇌물수수 사건

1998년 9월, 부산 남부경찰서 강력계 형사 오상훈 씨는 마약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2개월 뒤 돌연 검찰에 체포됐습니다. 그가 검거한 마약사범 손 모 씨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 오상훈 씨 경찰 재직 시절

▲ 오상훈 씨 경찰 재직 시절

손 씨는 자신을 체포한 오상훈 씨에게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카오디오를 대신 팔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손 씨의 사정을 들은 오 씨는 카오디오를 경찰서에 보관하고 손 씨의 지인이 가져가 팔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오 씨가 손 씨의 카오디오를 보관한 것을 두고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봤습니다. 결국 오 씨는 1심에서 징역 8개월,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오상훈 씨는 경찰직에서 파면됐습니다.

그런데 오 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상한 것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오상훈 씨가 검거했던 마약사범 손 씨는 뇌물공여 사건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뇌물을 받은 사람만 있고 준 사람은 없게 된 것입니다.

▲ 현재 오상훈 씨

▲ 현재 오상훈 씨

오상훈 씨는 이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낼 증거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는 결국 2014년 손 씨를 찾았습니다. 오 씨는 손 씨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시 뇌물수수 혐의로 자신을 검거했던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손 씨에게 오상훈 씨를 뇌물죄로 고발하도록 제안했다는 겁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당시 손 씨는 수사검사로부터 형량을 조절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손 씨의 증언을 확보한 오상훈 씨는 2015년 4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재심청구 재판에서 마약사범 손씨가 출석해 위증한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재심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오 씨는 대한변호사협회, 국가인권위, 국민신문고에도 하소연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 증거자료를 찾아 나선 박준영 변호사와 오상훈 씨

▲ 증거자료를 찾아 나선 박준영 변호사와 오상훈 씨

오상훈 씨는 올해 4월 재심 전문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 청구를 위한 증거 수집 중입니다. 오상훈 씨의 재심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정재홍
연출 김한구

금, 2016/09/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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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blockquote> <p>해방 직후의 어두운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유독 '법'의 얼굴을 쓰고 자행된 국가 폭력이 많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과거사들을 마주하는데 있어서 오늘날의 법원이 보여야할 태도는 무엇일까요.</p> <p>지난 1월 17일에 선고가 나온, 제주4·3사건 수형 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 재판은 어두운 과거사를 대하는 현대 사법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바가 많습니다. 법적근거나 절차가 불분명한 '군법회의'를 빌미로 무고한 제주도민들에게 내려진 70년 전의 유죄판결을 법원이 바로잡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이 되돌아봤습니다. </p> </blockquote> <p> </p> <h1>실체적 진실에 충실한 역사적 판결</h1> <h2>[광장에 나온 판결] 제주4·3사건 생존 수형자 18명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 제갈창 판사, 2017재고합4)</h2> <p> </p> <p><img alt=""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447/585/001/3826…; style="width:139px;height:183px;" /></p> <p><strong>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strong></p> <p> </p> <p>판결문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e5f1EfF2Lh-FxnK0wZzppqwmmRTIjFkJ&quot;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 / 다운로드]</a></p> <p> </p> <p>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는 2019년 1월 17일 ‘제주4·3군법회의’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사건(2017재고합4)에서 모두에게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재심 청구인들은 70여 년 만에 억울한 ‘전과자 낙인’을 지울 수 있었다. 판결문조차 없는 사건에 대해 재심개시 결정을 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거니와 공소기각 판결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선고 당일에 즉각 환영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는 이 판결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p> <p> </p> <p> </p> <p><strong>탄압, 항쟁, 그리고 대학살</strong></p> <p> </p> <p>이 사건 판결의 의미를 따져보기 위해 우선 ‘제주4·3’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국무총리소속 4·3위원회는 2003년 공식 보고서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p> <p> </p> <p>해방 직후부터 제주도 밖에서는 치열한 좌·우 이념대립 속에서 1946년 ‘대구 10월 사건’ 등 인명이 희생되는 큰 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제주도는 미군정청 공보관인 케리 대위가 신년사에서 “육지와 달리 불행한 소요사태가 없었다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제주신보』, 1947. 1. 1.)이라며 감사의 말을 할 정도로 평온했다.</p> <p> </p> <p>하지만 1947년 3·1절 기념식 때 다른 지방에서 온 응원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된 사건은 제주도를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뜨렸다. 경찰 발포에 항의해 대대적인 ‘민·관 총파업’이 벌어졌고, 이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며 검거 선풍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4·3무장봉기가 벌어질 때까지 1년간 무려 2,500명이 구금되었다. 그 무렵 미군 감찰반이 “제주도 유치장은 최악이다. 3.3평의 한 감방 안에 35명이 갇혀 있다”고 보고할 정도로 유치장은 차고 넘쳤다. 무장봉기 한 달 전인 1948년 3월에는 경찰에 의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탄압의 국면’이었다.</p> <p> </p> <p>그러자 ‘항쟁의 국면’이 펼쳐졌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경,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일제히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이를 신호로 약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내 경찰지서 12곳을 동시에 공격했다. 또한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 습격해 살해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조국의 통일독립”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무장대는 5·10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해 주민들을 산으로 올려 보냈다. 결국 제주도는 3개의 선거구 중 북제주군 갑구와 을구 2곳의 선거가 무산되었다.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의 2개 선거구만이 무효화된 것이다.</p> <p> </p> <p>곧이어 참혹한 ‘대학살의 국면’이 전개됐다. 군·경 토벌대는 ‘해안선에서 5㎞ 이외의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하라’는 명령과 함께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중산간마을을 불태웠고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였다. 특히 토벌대가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약 4개월 동안 벌인 이른바 ‘초토화작전’ 때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치른 희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을을 포위한 군인들은 다짜고짜 집집마다 불을 붙였고 불기운에 놀라 뛰어나오는 주민들을 70~80대 노인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p> <p> </p> <p>해변마을로 소개(疎開·강제 이주)한 사람들의 희생도 컸다. 토벌대는 가족 중에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며 수시로 학살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고통의 시간이 짧으니 그나마 괜찮은 경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토벌대는 걸핏하면 ‘무장대 지원 혐의’가 있다며 총질을 했다. 야수로 돌변한 토벌대에 의해 글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여성들의 수난도 컸다. 이러한 행위의 책임은 당시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었던 미군에게 있다.</p> <p> </p> <p>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살극이 재연됐다. 제주도내에서는 이른바 ‘예비검속’으로 1,000명 가량의 목숨이 희생됐고, 또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2,500여 명의 제주도민이 인민군에게 쫓기며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했다. 이처럼 7년 7개월간 벌어진 사건의 전개과정은 ‘탄압의 국면’, ‘항쟁의 국면’, 그리고 탄압이나 항쟁이라는 용어를 무색케 하는 엄청난 ‘대학살의 국면’이 중첩되면서 차례로 펼쳐졌다.</p> <p> </p> <p>이로써 4·3무장봉기 당시 무장대 숫자는 350명에 불과했으나, 희생자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 가량인 무려 3만 명에 이르렀다. 중산간마을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는 등 재산피해도 컸고, 육체적·정신적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p> <p> </p> <p> </p> <p><strong>4·3군법회의 수형인, ‘불법 계엄령’과 ‘유령의 국방경비법’에 의해 희생</strong></p> <p> </p> <p>그렇다면 이번 재심사건과 관련 있는 ‘4·3군법회의’는 무엇이며, 수형인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형무소에 감금됐던 것일까? 필자는 1988년부터 ‘제주4·3사건’에 대해 공부해오며 피해자 및 유족 약 7천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중에는 4·3군법회의 피해자들의 유족도 있었고, 구사일생 살아 돌아온 4·3군법회의 수형인도 있었는데 이들의 증언은 한결같았다.</p> <p> </p> <p>유족들은 “말이나 소에게 먹일 꼴 베러 들녘에 나간 아버지와 형이 지나가던 군인들에게 잡혀 트럭에 실려간 후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하던데 그 후 행방불명되었다”거나,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면 살려준다’는 삐라를 보고 내려왔는데 주정공장에 가뒀다가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수형인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갔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형인들이 6·25전쟁 전에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가 거의 유일한 근거였다. 엽서에는 형무소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p> <p> </p> <p>그러던 중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인 1999년 9월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4·3특위 부위원장 추미애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수형인명부를 발굴해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전모가 밝혀졌다. 같은 해 12월에는 재미학자 고(故) 이도영 박사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직후 대전형무소 등지에서 수형인들이 집단학살 당하는 사진과 문서를 찾아냄으로써 희생사실이 확인됐다. </p> <p> </p> <p><수형인명부>에는 ‘4·3군법회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2,530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4·3군법회의’라 함은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 등 두 차례에 걸쳐 마치 열렸던 것처럼 허위로 자료에 기재된 군법회의를 가리킨다.</p> <p> </p> <p>1948년 12월의 제1차 군법회의 때는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여서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일제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적용했다. ‘4·3계엄령’은 헌법의 규정과 달리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선포되었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는 1949년 6~7월에 열린 것처럼 <수형인명부>에 기재돼 있는데, 이때 끌려간 사람들은 1948년 가을 계엄령이 선포돼 무차별 학살극이 벌어지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을 에는 듯이 추운 겨울에 한라산 기슭으로 올라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1949년 3월경 “하산하면 죄를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소위 선무공작 삐라를 보고 내려온 피난민들이었다. </p> <p> </p> <p>그런데 제2차 군법회의 시기인 1949년 6월~7월은 계엄령이 해제된 때라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수 없었지만 무리하게 국방경비법을 적용했다. 국방경비법은 기본적으로 군법(軍法)이므로 대개의 조문은 “군인 및 군속으로서~”로 시작되는데, 제32조(소위 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만은 “여하한 자로서~”로 시작된다. 이를 근거로 군인 및 군속이 아님에도 민간인을 역시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제32조와 제33조를 적용해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이다.</p> <p> </p> <p>학살극을 피해 은신했다가 하산한 피난민들을 느닷없이 ‘이적죄’와 ‘간첩죄’ 혐의를 씌워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방경비법 자체가 제정 주체도 모호하고 법률 호수도 없는 유령법이라는 점이다. 일부 법령집에는 국방경비법이 ‘법률호수미상(法律號數未詳)’으로서, 1948년 7월 5일 ‘공포’됐고, 같은 해 8월 4일부터 ‘효력 발생’했다고 슬그머니 끼워놓았다. 그리고 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국방경비법을 제정한 것처럼 표기했다. 그러나 1946년 12월 12일 개원식을 가진 미군정기 조선과도입법의원은 1947년 5월 6일 제1호 법률(Public Act)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1948년 5월 19일 제12호 법률을 제정한 후 이튿날인 1948년 5월 20일 해산되었는데, 조선과도입법의원이 제정한 12개의 법률은 국방경비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국방경비법은 실체가 없는 유령법이고, 유령법이기에 법률 호수조차 없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서종철·김정무·전부일 등 제주 주둔군 장교들조차 “군법회의 없었다” 증언</strong></p> <p> </p> <p>백보 양보해 계엄령이 합법적으로 선포된 것이고, 국방경비법이 실제로 제정·공포된 법률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당시 군법회의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허구의 재판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수형인들이나 심지어 수형인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호송했던 경찰 출신들조차 “형무소에 도착하니 간수나 형무소장이 죄명과 형량을 알려주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p> <p> </p> <p>군법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증언은 피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제1차 군법회의가 열렸다는 1948년 12월 제주 주둔 제9연대 부연대장이었던 서종철(국방부장관·초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역임)은 “군법회의를 열었던 기억이 없다.”라고 증언했고, 제9연대 군수참모였던 김정무(준장 예편, 육사2기 동기회장 역임)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4·3위원회에 증언했다. 증언 내용은 모두 캠코더로 녹화했다. 제2차 군법회의 당시 제주 주둔 제2연대 1대대장이었던 전부일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증언했다. 무려 2,530명이 군법회의를 받았다고 하는데, 주둔군 간부들조차 부인하고 있는 건 군법회의가 허구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군법회의는 ‘구색 맞추기’…주둔군 교체기에 형무소로 보내</strong></p> <p> </p> <p>제9연대의 초기 작전은 주로 ‘무장대로 여겨지는 젊은 청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전개한 ‘초토화작전’ 때에는 젖먹이부터 노인,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무차별 총살했다. 그렇다면 이 때 왜 일부 젊은이들은 총살하지 않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냈는가? 젖먹이 아기와 노인들은 ‘죄질이 무거워’ 즉결총살했고, 젊은이들은 그 보다 죄가 가벼워 징역형을 선고해 형무소로 보냈다는 말인가? 젊은이의 ‘죄’가 젖먹이의 ‘죄’보다 가벼워 총살대신 징역형에 처했다는 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p> <p>이는 ‘구색 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군법회의가 구색 맞추기임을 증명해줄 구체적인 사료는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런 자료가 있다 해도 비밀해제 되지 않았거나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식에 비춰 구색 맞추기 외에 다른 설명은 불가능하다. </p> <p> </p> <p>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내졌던 것일까? 제1차 군법회의(1948년 12월) 수형인들은 대개 1948년 11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 여름철에 끌려간 사람들이다. 증언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들녘에 촐(꼴) 베러 갔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갔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이라 무차별 총격을 가하지 않을 때여서 9연대 군인들은 일단 청년들을 붙잡아 주둔지인 제주농업학교에 설치한 ‘천막 수용소’에 가뒀던 것이다. 그리고 1948년 12월말 제2연대와 교체하기 위해 제주를 떠나게 되자 천막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낸 것이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1949년 6~7월) 수형인들은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으로 숨었던 사람들이다. 1948년 가을부터 초토화작전이 벌어져 무차별 학살극이 본격화되자 주민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기슭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던 중 무장대 세력이 약화된 1949년 3월 이후, 토벌대는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전단지를 비행기로 살포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전단지를 본 후 나무에 옷가지를 매단 이른바 ‘백기(白旗)’를 들고 내려왔다. 이때 토벌대(제2연대)는 하산한 주민들을 일단 ‘주정공장’에 감금했다. 주정공장은 당시 가장 넓은 공간이어서 많은 주민들이 그곳에 수감됐다. 제2연대는 1949년 여름 제주에서 철수하게 되자 주정공장에 감금했던 사람 중 젊은이들을 전국의 형무소로 보냈다.</p> <p> </p> <p> </p> <p><strong>담당 변호사와 판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까닭</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에서 피고인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김세은 변호사에게 참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필자는 군법회의의 부당성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하고 글을 써 왔지만,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지고 무죄판결과 다름없는 공소기각 판결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죽기 전에 가슴 속에 묻어뒀던 한을 마지막으로 토로하는 자리쯤으로 생각했다. 두 변호사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여겼던 이 재심사건을 맡아 열정을 다해 헌신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p> <p>재심개시 결정을 내리고 이어 공소기각 판결을 한 제주지법 제갈창 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필자는 재심개시 결정 전에 임재성 변호사의 요청을 받아 소위 ‘전문가 증언’을 하였다. 변호사는 필자에게 “통상적으로 판사들은 전문가 증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20~30분이면 끝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갈창 판사는 정말로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 했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나중엔 마이크를 끈 채 질문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필자의 증언은 2시간이 넘게 진행됐다.</p> <p> </p> <p><수형인명부>에는 한 사람당 달랑 한 줄씩 이름, 본적지, 형량, 복형장소가 적혀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판결문은 없다. 판결문 등 재판기록이 있어야 원 판결이 잘못됐는지 여부를 따져 볼 수 있을 텐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재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그동안 ‘내가 본 자료’와 ‘내가 들은 증언’에 대해 법정에서 성실히 증언할 뿐이었다. 그런데 판사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아! 형식적인 재판이 아니구나!’라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p> <p> </p> <p>제갈창 판사는 4·3군법회의가 판결문조차 없지만, 군인들이 실질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했으므로 재판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4·3군법회의가 절차상 하자가 많고 검찰이 시간, 장소, 방법 등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심개시 결정과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실체적 진실에 따라 재심결정을 내렸고,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한 것은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다.</p> <p> </p> <p> </p> <p><strong>검찰의 결단도 높이 평가해야</strong></p> <p> </p> <p>검찰은 처음엔 공소사실을 진술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소장변경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추측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수형인명부에 적힌 대로 제1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겐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제2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게는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를 옮겨놓을 뿐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 피고인들이 형무소에 가서야 죄명과 형량을 간수나 형무소장으로부터 듣는 등 처음부터 ‘허구의 군법회의’였으므로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p> <p>그럼에도 검찰의 마지막 태도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검찰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은 무죄구형의 성격을 띤 ‘공소기각 요청’을 했고,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이번 재심사건은 1심 법원의 판결만으로 확정되었다. 이전 정부라면 검찰의 태도가 어땠을까? 만일 검찰이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또한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각각 불복해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최종 결과도 가늠하기 어렵거니와 수형인들의 맺힌 한은 어떻게 풀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정부가 적어도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묻지 않는다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수준에는 도달했다는 증거이다.</p> <p> </p> <p>지난 2월 7일 이번 재심사건 청구인 중 한 명인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인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이 난 지 불과 20여 일 지났을 때이다. 살아계실 때 확정판결이 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실감나는 소식이었다.</p> <p> </p> <p> </p> <p><strong>‘4·3특별법’ 개정해 군법회의 결과 무효화해야</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은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4·3특별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함을 웅변해 주고 있다. 개정안에는 ‘4·3군법회의 무효화’ 조항이 포함돼 있다. 4·3군법회의를 무효화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아 형무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지금까지 장수하면서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무죄’이고, 형무소에 수감 중 6·25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에게 학살당한 분들은 여전히 ‘유죄’로 남는 큰 불합리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p></div>
목, 2019/02/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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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총선넷은 무죄다”

-법원은 헌재의 위헌 결정 존중해 무죄 판결하는 것이 당연해

부당한 유권자 처벌 예방하려면 선거법 재개정해야

  [caption id="attachment_235286" align="aligncenter" width="640"] ⓒ오마이뉴스(2016)[/caption]  

◯10/18(수) 오후 3시 40분, 서울고등법원에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2016총선넷) 활동가 17인에 대한 공직선거법 재심 1차 공판이 열릴 예정입니다(2022재노70). 2016총선넷 활동가들은 이번 재심에서 법원이 활동가 17인의 유권자 운동이 정당했음을 확인하고, 위헌적 법조항에 근거한 유죄 판결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2016총선넷에 대한 1차 수사와 재판에 이어 정당한 유권자 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 헌법소원에서 2022년 위헌,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김선휴 ·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가 변호인을 맡아 재심 청구를 진행했고, 지난 8월 재심개시가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2016총선넷은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패나 비위를 저지른 낙선 대상자와 주요하게 추진되어야 할 정책과제 등을 선정하기 위한 시민 투표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유권자 운동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선거시기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유권자 운동을 불법행위로 몰아 검경의 무리한 표적수사와 기소가 있었고, 법률의 위헌성에 애써 눈감은 법원에서 관련 활동가들은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중 일부 활동가는 선거권까지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되었던 해당 조항(공직선거법 103조 3항, 90조 1항, 93조 1항)에 대해 2022년 7월 헌법재판소는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재심을 청구한 결과 지난 8월 재심이 결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번 재심에서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하고 2016총선넷 활동가들의 권리 구제와 모든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두고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한편 법원이 재심을 개시하면서도 91조 1항(확성장치 사용제한) 위반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이유로 들어 재심 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것은 유감입니다.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마이크와 스피커 등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처벌한 것이 과연 합당한지도 다시금 따져봐야할 일입니다. 집회 등에서 확성장치는 집회의 진행을 위해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범위에서 사용되는 의사표현의 수단이자 표현의 자유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및 개정 선거법에 따라 비록 미흡하나마 선거운동 기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의 개최가 허용되었는데도, 해당 조항으로 인해 유권자들은 마이크와 스피커 없이 집회를 진행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입니다.

◯유권자들은 지난 4년간 국회가 보여준 정치와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자들에 대해 평가하고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있고, 그 의견은 누구든지 기간과 장소, 방법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재심 결정의 계기가 되었던 헌법재판소의 선거법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은 이런 유권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끊임 없는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입니다. 그럼에도 국회는 위헌 결정 취지를 반영해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기는커녕, 유권자운동을 불합리하게 규제하는 독소조항들의 적용 기간만 소폭 단축하거나 모임 인원 수에 상한을 두는 등 턱없이 미흡한 대안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 바꿔야 한다는 핑계로 충분한 논의조차 거치지 않고 졸속처리했습니다. 다가오는 총선 등 중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또 다시 위헌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는 엉성하게 개정된 현행 선거법으로는 2016총선넷 사례처럼 또다른 억울한 유권자 처벌 사례를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기국회 내에 다시 한 번 선거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끝.

 

20231017

201총선시민네트워크

화, 2023/10/1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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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총선넷은 무죄다”

-법원은 헌재의 위헌 결정 존중해 무죄 판결하는 것이 당연해

부당한 유권자 처벌 예방하려면 선거법 재개정해야

  [caption id="attachment_235286" align="aligncenter" width="640"] ⓒ오마이뉴스(2016)[/caption]  

◯10/18(수) 오후 3시 40분, 서울고등법원에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2016총선넷) 활동가 17인에 대한 공직선거법 재심 1차 공판이 열릴 예정입니다(2022재노70). 2016총선넷 활동가들은 이번 재심에서 법원이 활동가 17인의 유권자 운동이 정당했음을 확인하고, 위헌적 법조항에 근거한 유죄 판결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2016총선넷에 대한 1차 수사와 재판에 이어 정당한 유권자 운동을 가로막는 선거법 헌법소원에서 2022년 위헌,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김선휴 ·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가 변호인을 맡아 재심 청구를 진행했고, 지난 8월 재심개시가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2016총선넷은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패나 비위를 저지른 낙선 대상자와 주요하게 추진되어야 할 정책과제 등을 선정하기 위한 시민 투표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유권자 운동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선거시기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유권자 운동을 불법행위로 몰아 검경의 무리한 표적수사와 기소가 있었고, 법률의 위헌성에 애써 눈감은 법원에서 관련 활동가들은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중 일부 활동가는 선거권까지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되었던 해당 조항(공직선거법 103조 3항, 90조 1항, 93조 1항)에 대해 2022년 7월 헌법재판소는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에 재심을 청구한 결과 지난 8월 재심이 결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번 재심에서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하고 2016총선넷 활동가들의 권리 구제와 모든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두고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한편 법원이 재심을 개시하면서도 91조 1항(확성장치 사용제한) 위반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이유로 들어 재심 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것은 유감입니다.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마이크와 스피커 등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처벌한 것이 과연 합당한지도 다시금 따져봐야할 일입니다. 집회 등에서 확성장치는 집회의 진행을 위해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범위에서 사용되는 의사표현의 수단이자 표현의 자유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및 개정 선거법에 따라 비록 미흡하나마 선거운동 기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의 개최가 허용되었는데도, 해당 조항으로 인해 유권자들은 마이크와 스피커 없이 집회를 진행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입니다.

◯유권자들은 지난 4년간 국회가 보여준 정치와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자들에 대해 평가하고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있고, 그 의견은 누구든지 기간과 장소, 방법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재심 결정의 계기가 되었던 헌법재판소의 선거법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은 이런 유권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끊임 없는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입니다. 그럼에도 국회는 위헌 결정 취지를 반영해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기는커녕, 유권자운동을 불합리하게 규제하는 독소조항들의 적용 기간만 소폭 단축하거나 모임 인원 수에 상한을 두는 등 턱없이 미흡한 대안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전 바꿔야 한다는 핑계로 충분한 논의조차 거치지 않고 졸속처리했습니다. 다가오는 총선 등 중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또 다시 위헌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는 엉성하게 개정된 현행 선거법으로는 2016총선넷 사례처럼 또다른 억울한 유권자 처벌 사례를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기국회 내에 다시 한 번 선거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끝.

 

20231017

201총선시민네트워크

화, 2023/10/1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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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_웹홍보물_회원확대캠페인02_이정보모르고뽑지마오.jpg

 

[회원확대 캠페인 ②] 이 정보 모르고 뽑지마오!

국회가 지난 4년간 한 일, 유권자 선택을 위한 정보로 알려드려요.

참여연대의 흔들림 없는 권력감시운동.
이번에는 4.13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정보 제공활동으로 이어집니다. 

지난 4년간 유권자와의 약속 제대로 지켰는지, 
누가 서민을 울리는 법을 만들려고 했는지
누가 국민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낱낱이 기록했어요.

 

정치권력에 맞선 참여연대의 감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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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활동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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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3/3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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