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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여느 주말의 새벽,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 박경근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경근 조합원은 ‘마필관리사’로 공공기관인 마사회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직업이지만 마필관리사는 이제 갓 목장에서 온 어린 말을 경주마로 키워내는 일을 하는 직업이다. 말을 길들이고, 훈련시키고, 관리하고, 레이스를 준비하는 마필관리사들의 업무는 말그대로 마사회의 핵심업무이지만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국내최초 말 마사지사 타이틀을 획득했을 만큼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자부심을 가졌던 쌍둥이 아들의 아빠 박 조합원은 15년을 일했던 부산경마공원에서 세줄짜리 유서를 남기고 그렇게 떠났다.

마사회 - 인마주 - 조교사 - 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인한 저임금, 노동착취
‘마필관리사’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중에도 그 상황이 특히 더 심각한 변형된 간접고용 사례다. 한국마사회는 비정규직 비율이 81.9%(알리오 공시)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공기업으로 악명 높다. 그런데 마필관리사의 경우 이 통계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변형된 비정규직 고용형태다.
공기업인 마사회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고, 처우와 업무에서 사실상 마사회 통제 하에 일하면서도, 사용자는 마사회가 아니라 개인 마주(말 주인)이기 때문이다. 마사회 소속이던 마필관리사들은 개인마주제가 시행 이후 간접고용 노동자로 전환되었다 마주는 조교사에게 경주마를 위탁하고 조교사는 또 다시 기수·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구조다. 그러나 조교사도 경마를 통해 상금을 얻는 사업자일 뿐, 모든 노동조건은 마사회가 정한 기준에 따른다. 다단계 착취 구조다.
비용절감과 책임회피를 위해 비정규직을 남용한 마사회의 간접 타살
왜곡된 고용 구조에 이어진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마필관리사들은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그러나 원청 공공기관인 마사회의 대응은 노조 탄압이었다. 비조합원에게는 성과급을 많이 주고 조합원에게는 성과급을 적게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필관리사를 대표하는 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인 역시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유령취급 당했다. 고인이 오랫동안 저항하고 치열하게 싸워왔음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을 바꾸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고 박경근 조합원의 죽음은 비용절감과 책임회피를 위해 비정규직을 남용한 마사회의 책임이다. 더 참담한 것은 6년 전인 2011년에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마필관리사가 목숨을 끊은 이후 두 번째 죽음이라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5월 29일(월) 오전 11시, 한국마사회 부산동구지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경근 조합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마사회를 규탄했다. 양정찬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 위원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열살난 쌍둥이 두 아들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을 만큼 고통이 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돌아가시기 전날 밤, 부인에게 전화해 '조교사로부터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의 폭언을 들었다'고 했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박배일 전국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박경근 조합원의 죽음은 한국마사회가 시행한 착취구조에 의한 것이므로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한국마사회에게 있다"고 말한 뒤 "가족들과 말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많았던 그가 죽음을 선택할 때는 얼마나 큰 탄압과 고통이 있었겠는가"라며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인천국제공항 방문과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 이후, 한국마사회도 “상생일자리TF”를 구성하여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인력의 정규직 전환 대책 마련할 것이라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의 착취구조에 대한 사회의 경고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사용자인 한국마사회는 그동안 이를 묵인, 방조해 왔다. ‘상생일자리TF’ 발표 이후에도 비정규직 당사자와 대화에 나서지도 않았다. 이번 비극에 대해 한국마사회가 보여주는 태도는 그 간의 비정규직 남용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정책을 전환하는지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
화려한 경주뒤에 감춰진 죽음의 착취구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한국마사회는 ‘지금 당장’, 죽음의 착취구조인 하청-재하청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마필관리사를 포함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에 나서야 한다. 고인의 요구였던, 열악한 노동조건, 처우를 개선하고 노동탄압 중단에 나서야한다. 노동조합과 직접 대화에 나서야한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노조 부산지역본부 석병수 본부장은 "박경근 조합원의 명예회복과 문제해결을 위해 공공운수노조는 끝까지 싸울 것이며 그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목숨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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