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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 세월호 엄마들의 1박2일 밀양방문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 세월호 엄마들의 1박2일 밀양방문

익명 (미확인) | 화, 2015/09/22- 17:03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 세월호 엄마들의 1박2일 밀양방문

(사진 남어진 김태철)

 

500일동안 시댁에도 친정에도 다녀가지 못했고, 죄 지은 것 하나 없는데, 가족에게 친지에게 모두에게 죄인 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500일, 거리에서 싸우고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며 호소하고 투쟁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월호 엄마들,

입 험한 못된 이들의 한마디에 대못이 박혀 죽고 싶도록 괴로운 마음을 추스르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매일처럼 타야 하는 세월호 엄마들, 그  엄마들 열 분이 밀양을 찾았습니다.

 

지난 여름, 밀양 할매들과 함께 제주기행에서 만났던 세월호엄마들이, 밀양 할매들이 얼마나 잘 웃고 명랑한지, 그 기운을 받고 싶어서 오신 거라 하였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노란 티셔츠에 새겨진 그 한마디가 금세 할매들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이틀동안 밀양 곳곳을 할매들과 함께 누비며, 친정 엄마가 해 주시는 음식처럼 맛나고 정성스런 음식을 함께 나누며, 노래부르고 웃고 떠들며, 세월호 엄마들은 금세 친정집에 다니러 온 딸들처럼 음식 설거지를 맡아하기도 하였고, 소풍나온 여고생처럼 예쁘게 사진 찍으며 벌어진 밤송이에 밤을 주워 다람지처럼 밝아먹으며 가을의 햇살을 즐겼습니다.

 

500일의 투쟁, 너무나 보고 싶은 아이들, 끔찍한 세상과 짐승같은 권력에 맞서 싸워온 세월호 엄마들을 보듬어주신 밀양의 할매들, 맛난 음식과 포옹과 사랑의 나눔이 내내 넘쳐나던 1박2일이었습니다.

 

'또다른 친정이 생긴 것 같다'고 엄마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밀양의 가을 햇살이 좋았습니다. 세월호 엄마들에게 잠시나마 기댈 언덕이 되어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밀양과 세월호, 아픈 자들의 따뜻한 연대가 세상을 가득 채운 이 광막한 어둠 속에서 조금씩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며, 종주먹을 쥐고 '흔들리지 않게'를 외치던 그 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이, 물가 심어진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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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수현아빠 박종대 님의 글입니다.

이 글은 6월 22일 광주고법에서 진행되었던 P123정장 김경일의 항소심에서 제가 진술한 피해자 진술의 전문입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광주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진술이었던 만큼 문맥이나 논리 보다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아주 많이 지껄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산만합니다.

감안하고 읽어 주세요.

 
 

피 해 자 진 술

2015년 6월 22일 광주고등법원

한 많은 이 법원 201호 법정에 들어 선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분노했던 일들과 고생했던 일들만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2014년 5월 16일 이른 새벽, 대통령 박근혜는 유가족 대표들에게 연락하여 긴급한 면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부실구조, 무능한 구조, 사전 계획한 조문쇼 진행 등으로 인하여, 대통령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감정이 최악이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6월 4일 지방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여당의 수도권 후보들이 전패가 예상되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특별법은 만들어야 하고, 특검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상 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지만, (참사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신 유가족 여러분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약속하고 언론에 홍보 했습니다.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에게 “언제든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끌어안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뒤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중략)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게 보상을 하고, 사고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특별법안을 정부입법으로 즉각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국민과 유가족을 상대로 거짓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훨씬 더 지났습니다. 위 약속 중에서 지켜진 것이 과연 몇 가지나 될까요? 정부 입법이 있었습니까? 정부 입법은 3권 분립에 위배된다며 입장이 돌변했습니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제정을 방해한 특별법은 누더기 입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에는 함량 미달의 일베 위원 등을 추천했고, 지금도 출범을 강력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렸고, 국회에서 얼굴을 맞대었는데도, 악마의 미소를 지으면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열일곱 청춘들의,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꽃 봉우리들의 희생에 대한 민사 배상은 어떻게 처리 했습니까? 수도권에서 30여 평의 아파트도 살수 없는 황당한 금액을 책정해놓고, 국민들에게는 부모들이 마치 돈방석에라도 앉은 것처럼, 마치 돈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홍보하여, 국민들로 부터 부모님들을 이간시키고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어버이 연합이라는 늙은이 집단과, 일베라는 어린애 집단을 선동하여, 방금 자식의 상여를 메었던 애달픈 부모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더러운 욕을 먹이고 있습니다. 이런 더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원심법정과 이 법정이 진실을 100% 다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애초에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검찰의 강력하고 예리한 공격과, 사법부의 법과 양심에 의한 판단으로 최소한의 위안을 받을 정도의 수준은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새벽 내시부터 잠에서 깨어, 떨어지지 않는 눈을 비비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이 법정의 방청석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매우 참담했습니다. 304명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살인죄는 오직 선장 이준석만이 십자가를 졌으며, 희생자 김문익과 이묘희는 CR-7에서 그리고 식당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당시 살아있었음이 분명한데도, 함께 있었고 구조 의무가 있었던 피고인 박기호에게는 원심에서 선고되었던 살인죄마저도 무죄로 선고 되었습니다. 해경에 대한 재판 결과는 또 어떠했습니까? 사고 당시 123정에서 대공 방송을 책임졌던 김종인 부정장은 퇴선 방송 실시와 관련하여 전혀 실무 책임이 없습니까? VHF 통신을 책임졌던 박성삼은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은 실무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목포서, 서해청, 본청 상황실에서는 현장 상황과 전혀 일치되지 않고, 개념 없는 깜깜이 상황을 통제했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의무마저 전혀 시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해청장과 목포서장의 10시 7분의 대화는 또 어떠했습니까? 이미 세월호가 침몰하여 –68.9도인 상황에서, 더 이상 탈출이 불가능했던 상황인데도, 배수 작업을 논하면서 정 안되면 실내에서 못나오는 사람들을 밖으로 빼 나와서 바다로 뛰어내리게 하여 구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출입구가 봉쇄가 되어 승객들이 못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배를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유지시켜 놓고 그 이후 다른 조치를 취하면 될 것 같다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이 개념 없고 무능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목포서장과 서해청장, 해경 본청장 등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직무유기는 현재의 상황에서 왜 묻어야 하는 것이며, 형사 책임은 왜 논의하지 않는 것입니까? 사고 당시 관련된 해경들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목포서장은 3009함에서, 김종인은 123정 안에서, 각급 상황실에서 자신들이 인근 어선을 동원하기 위하여 SSB 통신을 애타게 하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애타게 찾았다던 서거차도, 동거차도, 조도의 인근 어선들은 사고 현장 바로 옆에 있었는데, 도착하는데 왜 한 시간씩이나 걸렸을까요? 한 시간이란 시간은 고속정으로 이동한다면 팽목항에서 사고현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아주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해경이 증거로 제출한 동영상과 사진의 진위 여부를 놓고 많은 토론과 함께 분석을 진행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결과 10시 7분 50초 및 10시 38분 6초를 전후로 한, 최소 두 개의 동영상이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제의 이 동영상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우리는 해경이 자신의 과실을 덮으려고 의도적으로 삭제했거나 은폐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천적으로 돌아가서 이 참사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졌습니까? 레이더 영상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그리고 파파이스 김지영 감독이 주장하는 280도 대회전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고 있습니까? 선원들과 이 자리에 있는 피고인이 사고 당일 왜 저렇게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을 했는지 국민들이 보고 믿을 정도의 의심은 해소 하였습니까? 승무원 강혜성은 선장의 고유 권한을 운운하면서, 세월호에 물이 들어오는 최후 순간인 10시경 까지 “선내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진행한 후 자신만 살아서 돌아 왔습니다. 정말 이 사람은 죄가 없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재판이 전혀 무의미 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주 승무원 강혜성이 증언한 부분을 살펴보면 세월호 CC-TV DVR은 좌현 벽면에 기대어져 있었고, RACK이라는 전용 BOX안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를 기반 하여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는 세월호가 전복될 때 절대 전원이 빠질 수 없었다는 것이 방증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검찰은 8:30:59에 CC-TV가 꺼진 이유를 전복과정에서 전원이 빠져서 녹화가 중단되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검찰은 이 부분을 명쾌하게 다시 수사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고를 유발한 선장과 선원들은 당연히 밉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해경조직이 구조를 개떡같이 진행한 것에 대해서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구조지시에 대한 휴대폰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입체적인 구조는 안중에도 없어 보입니다. 출동하는 30분 동안, 구조를 위해 세운 작전 계획도 없었고, 적절한 명령행위도 없습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사고 현장에 빨리 도착하려고 그물을 피하면서 전속항해를 했던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눈에는 그것마저도 마치 소풍가는 행위를 했던 것처럼 비추어 집니다. 그들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 참사현장을 체증한 것이 아니라, 해경의 활약상을 돋보이기 위하여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홍보영상을 촬영하였습니다. 그것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5초에서 7초씩 끊어서 촬영하였던 것입니다. 심한 것은 2~3초짜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구조행위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승객구조의 목적이 아닌 의도적으로 선원들만을 구조할 목적으로 출동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피고인은 도착 직후인 9시 37분 본청 경비과장과의 휴대폰 전화 통화에서 “밖으로 나와 있는 선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기관원, 갑판원 순서로 차례차례 구조를 진행했습니다. 선원들의 안전한 탈출을 돕기 위하여 구명뗏목을 터트렸습니다. 물론 거짓말로 판명되긴 했지만 행위 당사자인 이형래는 자신이 구명뗏목을 터트린 정황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 저 사람들을 다 구하려면 구명벌이라도 떨어 뜨려야 겠습니다. 제가 한 번 올라가 보겠습니다.”라고 보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김경일이 ‘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고, 제가 ‘예.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니, ‘그래, 알았다.’하여 세월호에 등선하여 구명벌을 터트렸습니다.”라고 진술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형래가 말한 “저 사람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선원들이 유일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있는 승객이 없는데, 바다에 뛰어 내릴 승객이 없었는데, 그 상황에서 승객의 탈출을 돕기 위해서 해경은 구명 뗏목을 터트렸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그림 1을 제시하며, 저 그림을 보아 주십시오.) 저는 판사님과 검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저 상황에서 구명벌이 바다에 떨어지면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승객들은 불행하게도 조타실을 통하여 탈출하지 않는 한, 저 구명뗏목을 도저히 탈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위치와 각도가 최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그림과 같이 누군가의 지시에 의하여 선수에 123정을 접안하는 바람에 이형래의 행위가 해석 불가한 이상한 행동이 되었을 뿐, 당시 고무단정 만을 이용하여 구조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본다면, 이형래의 진술은 매우 의미가 있으며, 최종 목적지는 선원구조에 있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그 뿐입니까? 그들은 선원들만 안전하게 전원 구조를 하였는지 확인하는 절차까지 거쳤던 것입니다. 바로 30여초에 해당하는 박상욱의 조타실 진입이라고 하겠습니다. 박상욱은 자신의 조타실 진입을 두고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조타실에 올라갔는데 아직 나오지 않은 승객이 있으면 나오게 하고, 승객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으면 입게 하고, 기적이나 벨이 있으면 벨도 눌렀을 것이고, 방송시설이 보였으면 방송을 했을 것입니다. 올라 갈 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올라가서 상황을 보고 상황에 맞게 도움을 줄려고 올라갔던 것입니다.” 또는“저희(123정) 홋줄도 풀고 조타실에 사람이 남아 있는가 하고 확인을 하고 내려 왔습니다.”라고 진술하였습니다. 조타실에 사람이 남아 있는가를 확인 했답니다. 통상적으로 조타실은 선원들만이 활동하는 공간이고, 승객들은 접근할 수 없는 공간임이 분명하며, “조타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란 상식적으로 “선원”들 밖에 없습니다.
박상욱이 조타실에 진입하여 비상벨을 누르거나 방송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 해경의 신체조건을 감안하고, 당시 기울기를 고려하고, 이후에 생존자들의 탈출행위를 감안할 때, 전혀 불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조타실 안에서 이동하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조타실에 진입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지난주 박상욱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조타실 출입문을 열면 곧바로 핸드레일에 홋줄이 고정되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홋줄이 고정된 핸드레일을 붙잡고 비상벨과 방송설비가 있는 부분까지 이동이 충분히 가능했고, 분명히 방송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지난 5월 22일, 이 자리에 있는 또 다른 피해자 가족 제삼열씨와 함께 제가 오하마나호를 직접 방문하여 검증한 후 내린 결론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사결과와 재판결과를 살펴보면 이런 이들의 주장에 대한 옳고 그름을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이러한 일방적인 진술들이 객관적으로 해명되고 정의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지금까지의 수사결과와 판단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피고인은 항소심이 마무리 되는 이 시점에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피고인은 사고 당시 123정내에는 의경을 제외한 실제 구조에 투입되었던 인원이 10명 뿐 이었다는 것을 내세워 자신의 과실을 덮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분명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피고인이 이 참사로부터 진정 용서받고 싶다면, 사고 당시 자신이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사고 이후 이를 덮기 위하여 한 자신의 행위가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었는지를 생각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과,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유가족과 국민과 언론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반성하고 용서부터 빌어야 합니다.
피고인은 이 사건을 인지한 후,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했어야 옳았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이동 시 123정 승조원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전파하고, 명확한 임무를 부여해야만 했습니다. 9시 37분, 사고현장에 도착하여 선원과 승객들이 밖으로 한명도 나와 있지 않았다는 현장상황을 본청 경비과장에게 보고한 이후, 승조원들에게 퇴선방송과 선내진입이라는 정확한 구조 명령을 내렸어야 했습니다. 이동 중 박성삼으로 하여금 세월호와 교신을 유지하여 현재 세월호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어야 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구조 계획을 수립하고 효율적인 작전을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도착 즉시 급하게 단정을 내릴 것이 아니라 세월호에 123정을 직접 접안하여 승조원들로 하여금 선내 진입을 하도록 하여 퇴선 유도를 했어야 했습니다. 부정장 김종인으로 하여금 퇴선명령 방송을 하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지난 주 증언한 강혜성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안내데스크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열려있었던 출입문 사이로 퇴선 방송만 흘러들어 갔었다면 매우 많은 승객들이 가족의 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었습니다. OSC로서 헬기와 교신을 설정하여 구조대원을 선내로 투입시켜야 했습니다. 한 번 이동에 20여분씩 걸리는 헬기 구조를 포기하고, 탈출하는 승객들을 바다로 뛰어내리도록 유도하여, 인근에 있던 둘라에이스호, 드라곤에이스호, 각 어선들로 하여금 구조하도록 유도했어야 했습니다. 박상욱이 조타실에 진입할 때 어떻게든 비상벨을 누르고 퇴선 방송을 하라고 명령 했어야 했습니다. 승조원 일부는 선교 쪽으로 가서 탈출 안내 방송을 하게하고, 일부는 현측 갑판으로 올라가서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하게 하는 등 동시에 선내 진입을 시킬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히 해야 될 행위들 중에서 피고인이 실행한 행위는 과연 몇 가지나 될까요? 이 자리를 빌어 장담하건데 단 한 가지라도 있었다면, 제가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이 재판부에 제출해 드리겠습니다. 불행하게도 피고인은 선원들을 구조한 행위 외에는 그 어떤 행위도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피고인은 사건 직후 123정 승조원들과 결탁하여 자신의 범죄 행위를 은익하려고 무단히도 노력을 하였습니다. “시차별 구조 상황”과 “침몰선박 관련 개인별 임무부여”라는 서류를 만들어 자신들의 행위를 과대포장하고 합리화 했습니다. 공문서를 찢고 다시 작성을 했습니다. 모든 해경 조직이 합심하여 “세월호 국정조사 관련, 현장 담당자가 답변할 사항”과 “담당자별 역할”을 만들어 국회 국정조사에서 조직적 은폐를 시도하고 위증을 했습니다. 이 나라 이 땅에 진정한 정의가 살아있었다면 피고인과 해경조직은 이건 외에 추가로 처벌과 비난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피고인의 범죄행위는 이미 작년 5월 말 감사원의 감사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윤곽이 밝혀져 있었고, 검찰은 지난해 6월 초 참고인들을 조사하고 수사하면서 피고인이 거짓 진술을 하고 있음을 이미 자백을 받은 상태였으며, 현재 국무총리이며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은 검찰 수사라인의 최고 정점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 사실을 보고받지 않았을 확률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과 해경 조직은 지난해 6월 말부터 시행되었던 국회 국정조사에서 계속해서 거짓 증언을 하고 있었고, 같은 자리에 있던 수사라인의 최고 책임자도, 위원회 위원장 심재철의원도 지금까지 그 건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침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현재 피고인은 반성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사고 직후 해경 윗선의 도움을 받아 구조와 관련된 거짓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5월 30일 19:04:18초에 주고받은 피고인의 카톡 메시지를 보면 “네. 고생하시네요. 최선을 다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영웅 대접 받아야 하는데 이 나라 언론이 한심합니다.”라고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또 다른 메시지를 살펴보면 “아마도 감사반이 하는 말이 세월호와 교신 못한 것과 선장 등 선원을 먼저 구조한 것에 대해서는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 했어. 참고해….”라고 대화를 했습니다. 이것이 반성입니까?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9시 37분경 본청 경비과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미 승객들 전원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피고인이, 승객의 안전 및 구조와 관련하여,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아니한 피고인의 행위는 결코 용서될 수 없으며, 법률이 정한 최고의 형으로 엄벌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호소합니다. 만약, 9시 37분에 승객들의 퇴선이 시작되기만 했다면 모두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에 그 누구도 이론을 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피고인이 연루되어 있는 이 사건은, 이 나라 최고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최고 권력 본인이 의심 받고 있는 7시간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잘못된 구조 시스템과 부실구조, 그리고 사고원인 조사 등과 관련한 특조위의 활동을 왜 저렇게 적극적으로 방해하는지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지율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는 이 나라 최고 권력이 위 부분만 명확하게 밝히기만 한다면, 본인의 업적으로 처리되어 오히려 지지율이 급상승할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재판부의 지혜로운 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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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st [6월22일] 광주 고법에서 마지막으로 한 피해자 진술입니다. appeared first on 4.16세월호참사가족대책협의회.

수, 2015/06/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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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끝내라? 그럴 수 없습니다!!

엄마아빠의 힘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합니다!!!

가족의 마음으로!!

피해자들의 선택과 호소에 힘을 모아 주십시오!!!

세월호 참사 후 526일 째입니다.

참사 후 피해자들은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이루는 것만이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것이라고 믿고 눈물을 애써 감추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습니다. 특히 아홉 분 미수습자들의 가족들은 알아보지도 못할 시신이나마 만져보고 싶은 당연한 바람 하나로 너무나 힘겹게, 힘겹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그 책임을 명시하기 위한 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며 그 의미와 목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미수습자 가족들의 상황에 대해 먼저 호소를 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 같습니다.

미수습자 가족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요구합니다.

아직도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미수습자 가족들은 배상신청을 할 수도 없고, 배상소송도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당연합니다. 자녀와 가족을 찾지도 못했는데 배상신청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미수습자들을 찾기 위한 선체인양은 결국 정부가 해야만 하는 일인데 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국회와 정부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을 모두 찾은 후에 배상신청이든 배상소송이든 결정할 수 있도록 특별한 조치를 시급히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겪고 있는, 가늠할 수도 없는 고통과 분노의 책임이 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반드시 그 분들에 대한 특단의 조처가 있어야 합니다.

배상청구소송을 선택한 이유와 목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월호참사 후 526일이 지났음에도 어느 것 하나 바뀐 것도, 밝혀진 것도 없습니다.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해내리라 기대했던 특별조사위원회는 최근까지 아무런 활동도 시작하지 못하다가 이틀 전에야 비로소 조사과제 5개를 채택했습니다. 그나마 앞으로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이에 우리는 배상청구소송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구체적인 위법행위 등의 책임을 우리가 직접 드러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재판을 통해 참사의 원인, 즉 침몰과 구조실패의 원인 및 구체적인 피해상황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와 기업 등 이 사회의 부당한 대응 등에 대해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수집한 모든 증거와 증언들을 제시하며 정부와 기업과 이 사회의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부족한 증거는 법원의 힘을 빌려 확보해 나갈 것입니다. 한마디로 배상청구소송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은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판결문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입니다.

소송 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원>이 맡아주셨습니다. 소송의 내용과 진행상황 등 자세한 사항은 <법무법인 원>의 이유정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02)3019-3951

소송에 참여한 가정(피해자 기준)모두 131가정입니다. 이 중 희생자 가정은 111가정(학생희생자 110, 일반인희생자 1)이며 생존자 가정은 20가정(학생생존자 16, 화물피해기사 2, 일반인생존자 2)입니다. 각 가정마다 가족들이 함께 참여했기 때문에 전체 원고인 수는 모두 425명(희생자가족 348명, 생존자가족 77명)입니다.

소송은 희생자가족과 생존자로 나누어 합니다. 이에 따라 잠시 후 12시 경, 희생자가족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생존자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 소장을 전자접수합니다.

청구금액은 각 가정 당 1억원입니다. 이유는 아직 참사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청구금액을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배상금액은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드러내기 위한 우리 가족들의 노력을 재판부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언론과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는 세월호참사 1주기 이후 본격적으로 배상청구소송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조사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참사 1주기 직전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과장된 배상금액이 모든 언론보도의 주요뉴스가 되어 전국을 뒤덮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배상신청을 할 경우 정부와 화해가 성립되어 소송 등을 통한 추가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우리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자식과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돈을 받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소송을 통해서라도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정부의 위법한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판결문에 명시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거듭 반복되는, 돌고래호 침몰과 같은 어이없는 참사를 막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언론에 호소합니다.

또 다시 마타도어에 시달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배상신청을 거부하고 소송을 선택한 피해자와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 끊임없이 반복되는 참사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단 한 명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 우리들의 진심을 왜곡 없이 보도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이 세상에 자식과 가족을 잃고 돈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구나 부모라면 어떻게 자식의 죽음을 돈으로 보상 받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526일 동안 ‘엄마아빠의 힘으로!! 가족의 마음으로!!’ 오직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이루어내기 위해 버티며 싸워왔습니다.

우리 피해자들과 똑같은 엄마아빠이자 가족인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우리가 선택한 길을 ‘엄마아빠의 힘으로!! 가족의 마음으로!!’ 응원하며 함께 동행 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2015년 9월 23일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16famil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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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9/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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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새만금 철탑 공사 현장에서 계속 충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산을 도와주십시오~

 

밀양 어르신들이 지난 월요일 군산에 다녀왔습니다.

군산시청 앞에서 매주 진행하는 ‘집단민원접수’ 행사에 참여하였다가 공사 현장에서 대치하는 세 군데 농성장을 들렀습니다.

함께 하신 밀양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신 말씀은 ‘옛날 우리랑 너무 똑같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군산 할머니들이 밀양 어르신들 보더니 금세 눈물을 흘리시고 맙니다.

 

차가 쌩쌩 내달리는 도로에서 포크레인을 붙잡고 노숙농성을 준비하며 기약없이 앉아계시는 어르신들이 밀양 어르신들을 끌어안고 서러움의 눈물을 훔칩니다.

 

한전 직원이 차량으로 치고 가버려서 뇌출혈을 일으키는 사고가 나도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저 아래 사진에서처럼 70대 80대 노인들에게 저런 막무가내의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합니다.

 

새만금 산업단지로 전력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관계자분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대안 노선도 있고, 지금 당장 345kV 송전탑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새만금 산단의 전력 수급은 별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밀양에서도 그러했듯이 한전의 태도는 그저 ‘낙장불입’ 그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밀양에서도 몸서리나게 당한 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되는 이 현실이 몸서리납니다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군산 새만금 철탑 문제가 너무 위태롭습니다. 어르신들이 계속 쓰러지고 폭행당하고 있습니다.

군산을 알려주시고 도울 길을 마련해 봅시다. 밀양도 지속적으로 도우려고 합니다.  (연락처 강경식 대책위 법무간사 010 8480 2260)

 

-----------군산에서 보내온 일일 상황 보고서 -------------------------

 

어제 72번 철탑 (군산시 신관동 42-155)에서 일하던 포크레인 2대를 주변 도로에서 주민들이 잡아서 앞뒤로 차와 사람으로 막아서 못 가도록 막은 상태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밤에 길에서 자려니 텐트를 쳤고, 오늘 낮에는 비가 와서 사람들이 그 텐트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오후 2시 20분경에 비가 오는 와중에 사람들이 적은 틈을 타서 군산시청이 들이닥쳐 행정대집행을 하였습니다.

먼저 버스 2대에 탑승한 주로 여경으로 구성된 경찰들이 와서 양쪽 포크레인 옆 천막에 각각 4명씩 있던 도합 8명의 할머니들을 잡아서 들어내고 군산시청이 동원한 사람들이 천막을 치워 버린 것입니다.

 

도로가에서 영업하는 불법 포장마차 철거와 똑같은 과정이라 보면 됩니다.

포장마차는 며칠씩 영업한 다음에나 철거하던데 군산시청은 단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역시 한전의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이번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옥구읍 주민 3명이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모두 여경들이 잡아서 끌어내는 과정에서 다친 것인데, 2명은 크게 다친 것 같습니다.

80세의 이양근 할머니는 여경들이 팔뚝을 잡고 비틀면서 끌어냈는데 어떻게 팔뚝을 잡아서 비틀었는지 팔뚝이 시커멓게 멍들고 화상을 입은 것처럼 수포가 생겼습니다.

 

70세의 김복순 할머니는 여경 4명이 팔다리를 잡고 길을 한참 끌고 갔다는데, 현재 심장에 이상이 있어 입원했습니다.

53세 양순애 씨는 병원에 실려갔으나 상태가 나아졌다고 바로 퇴원했습니다.

 

오늘 행정대집행은 워낙 숫적으로 상대가 안돼서 순간적으로 끝났고, 주민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 갔을 때는 모든 상황이 종료돼서 집행 당시의 사진은 없고 할머니들의 병원에서 찍은 사진만 보내 드립니다.

사진을 보십시오. 참 처참합니다.

 

어떻게 경찰까지 이럴 수 있습니까?
경찰은 2~30대 젊은이를 다루는 것과 7~80대 할머니 다루는 것을 똑같이 합니까?

10배가 넘는 인원으로 할머니들을 다루면서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써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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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07/0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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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 반대 촛불 200회 기념 및 6.11 행정대집행 1주년 기억 문화제 후일담> * 사진 장영식 박민혁

 

딱 24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바로 어제 이시간까지 우리가 느꼈던 기운이 아련합니다.

...

 

행사 당일전까지만해도 태풍 소식에 또 얼마나 모일 수 있을지, 펑크난 순서는 없을지, 걱정투성이였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 고통을 기억해주는 이웃이 사라진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후 3시, 위양마을사랑방 앞에서 부산민주공원풍물패가 풍악을 울리자, 덕촌할머니는 그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셨습니다.

 

모두가 순간 먹먹한 기분이 되고 말았지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마을을 뒤흔드는 풍악소리, 밀양이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가 아직 싸우고 있음을, 마음을 뒤흔드는 온갖 번민을 장쾌하게 찢어발기는 풍악소리 앞에 무릎을 꿇으시는 할매의 마음.

어제의 행사는 오래도록 기억남을 것입니다. 밀양역을 가득 메운 700여명의 참가자, 밀양이라는 외진 소도시에서 700명이 모이는 집회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서울, 부산, 울산, 거제, 대구, 청도, 강릉, 청주, 군산, 전주, 해남, 경주, 횡성, 부천, 인천, 고성, 콜트 콜텍, 스타케미컬, 기륭전자, 용산참사범대위, 마인드프리즘, 전교조,

 

밀양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밀양의 친구가 된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밀양을 찾았습니다.

밀양 할매들은 돼지를 두 마리나 잡아 수육과 싱싱한 간과 내장까지 썰어내었고, 고동국을 끓이고 겉절이를 무치고,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내와서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평밭마을 사라할매가 빨간마후라를 매고 전투기를 몰고 철탑을 박살내버리는 '빨간 마후라'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포복절도하며 환호하였습니다.


올리베따노 수녀님들이 어르신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아뢰어주었습니다. '우리 할매 할배들의 정의로운 싸움을 당신께서 기억해 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을 말입니다.

 

그 1년의 상처를 들춰내어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그사이 겪었던 힘든 이야기들을 풀어낼 때는 모두가 숙연해주었지만, 사회자 김덕진 님의 표현처럼 '기-승-전-연대'로 귀결되는 할매들의 당부는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강력한 요청이었습니다.

 

풍등에 우리의 그리움을 희망을 담아 띄워올릴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어딘가로 무언가를 떠나보낼 때는 늘 이렇게 눈시울이 더워질까요.

 

밀양의 밤하늘로 우리는 색색의 풍등에 지난 시절의 상처를 아픔을, 그리고 희망을 띄워올렸습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손길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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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7/2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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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영화 <암살>의 '가상의 서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현실의 역사'입니다.

 

밀양에 연대하는 이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만, 단장면 용회마을위 주민투쟁을 이끌어오신 구미현 어머님이 계십니다.

그 분을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분의 헌신적인 활동과 반듯하고 온화한 인품에 존경하는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분에게는 무언가 그 세대 어르신들과는 조금 다른 이지적이고 또한 단아한 기품이 느껴집니다.

 

최근, 영화 <암살>이 1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미현 어머님의 조부이신 일우 구영필 선생(1891~1926)이 영화 <암살>의 밑그림이 되는 '의열단'의 실질적인 주도자이자 배후였으며, 친가와 외가 전원이 만주로 이주하여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기지건설에 바쳤으며, 끝내 김좌진과 신민부가 만주 영고탑 지역에서 벌인 횡포에 맞서다 끝내 암살되셨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일우 선생의 일가는 제 과오를 감추고자하는 김좌진 신민부 세력에 의해 '일제 밀정'이라는 끔찍한 모욕을 뒤집어쓰고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구미현 어머님의 부친 구수만 선생은 광주학생의거로부터 시작하여 오랜 시간동안 지하활동을 하셨고, 거듭된 구속과 끔찍한 고문 끝에 육신이 거의 망가져 불우한 여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구미현 사모님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삶의 안정을 되찾았으나, 집 바로 뒷산을 지나가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맞서는 '밀양송전탑' 투쟁에 참여하여 끔찍한 국가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제, 90년을 기다려온 역사적 진실이 조금씩 세상 앞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가슴아프고도 놀라운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세요.

 

<한겨레21>이 광복절 특집으로 구미현 사모님 3대의 비극과 고통을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00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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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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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SKY&SEWOL, 2박3일의 제주 평화기행 후기> (사진 장영식)

 

활동가들은 긴 잠을 자고 있겠으나, 사흘간 미뤄둔 논일, 밭일, 집안일 때문에 어르신들은 아마도 오늘아침 일찍 일어나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행복한 콧노래가 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때 2박3일간의 순간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싱긋 웃을 지도, 찡한 눈물을 머금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지난 2박3일간의 제주 평화기행, 시작은 '밀양 할매들의 강정 연대'였습니다만, 판은 커지고 커져 1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그것도 쌍용차, 강정, 용산,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과 밀양 청도가 모두 뭉치는 유례없는 대규모 만남이 되고 말았고,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순간들을, 기억들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23일 아침, 제주공항에서 '우리는 서로 손잡았다'며 쩌렁쩌렁하게 외치던 순간부터 눈시울을 적시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흔하고 흔한 기자회견, 평화기행이었는데 말입니다.

 

지난 10년 사이,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가족을 동료를 잃고 거리에서 풍찬노숙하며 끔찍하게 싸워야 했고, 버텨왔던 이들의 만남이었고, 남다른 감회들이 자리했을 것입니다.

 

제주 4.3평화공원에서도 위락 관광단지로 또다시 육지의 착취를 견뎌나가야 하는 제주가 앓아왔던 70년의 끔찍한 고통과 살륙의 기억을 만났습니다.광치기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에서도 학살의 기억을 되새기며 우리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역사'의 존재를 호명

해보았습니다.

 

용산참사 유가족 김영덕 어머님은 첫날 노래자랑에서 남편을 잃은지 7년만에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만남'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순서에서 다들 많이들 눈물을 흘렸지요.

 

둘째날, 강정 미사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밀양할매들의 싸움의 결과로 공사 현장을 진입하는 트럭을 돌려보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평화의 미사를 드렸습니다. 강정댄스는 얼마나 유쾌하던지요. 젊은 지킴이들의 동작을 따라하던 할매들의 어설픈 춤사위도 눈에 생생합니다. '우리도 저거 만들어서 하자, 고마' 할매는 숨을 헐떡이며 부탁하셨습니다.

 

둘째날 밤, 화합의 밤의 대미는 세월호 어머니들이 장식해주셨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을 생각하노라면 제주도로 와서 아이들이 거닐던 곳을 다니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제주도로 오는 일 자체가 고통이었을 세월호 가족들이 '화합의 밤'에서 '잊지 않을게'를 함께 눈물범벅이 되어 부르던 시간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2박3일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옥쇄파압 당시 용역 깡패가 쏜 새총에 '중요부위'를 맞아 30분동안 겪었을 고통을 이제는 웃음으로 회고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러나 우리가 겪었던 폭력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우리는 또 그렇게 싸워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또 많이 울었는지, 2박3일이 꽉 찼습니다. 일주일은 더 될 것 같은 시간이었어요.

이 자리를 준비해주신 천주교인권위 김덕진 사무국장님, 딸기 혜영을 비롯하여 할매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자랑스러운 강정지킴이들, 번다한 일들을 맡아해주신 제주범대위와 강정마을회 일꾼들께, 아름답고 정갈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주신 성 이시돌 피정의 집 수녀님들과 일꾼들, 그리고 선뜻 큰 돈을 후원해주신 올리베따노 수녀회 수녀님들께, 그리고, 1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식사와 차량 비용을 후원해주신 많은 연대자들께,

 

2박3일을 함께 한 100여명의 MC SKY &SEWOL 식구들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밀양대책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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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08/2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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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대책위입니다.

 

2014610, 당시 밀양 송전탑 4개 움막 농성장에서 다큐멘터리 <핵마피아> 촬영 작업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6.11행정대집행 직전으로, 오랜 움막 농성으로 인한 피로에 더하여 경찰 공권력의 폭력과 주민 저항으로 발생할 수도 있을 불상사에 대한 우려 등으로 극도의 긴장 속에서 지내시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당시 이루어진 촬영의 적절성과 방식에 대하여 <핵마피아> 촬영팀 내부에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사과 요구가 있었으며, 이에 대해, 김환태 감독이 밀양대책위와 주민 어르신들께 사과문을 작성하여 보내왔습니다.

 

저희 밀양대책위는 지난 31, 어르신들 40여분이 참석한 공부모임’ 4강 강좌에서 이 사과문 내용과 그간의 과정을 설명드렸으며, 어르신들의 동의를 받아 밀양대책위 블로그와 페이스북 계정에 이 사과문을 게시합니다.

 

201632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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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밀양에 계신 여러분.

저는 <핵마피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김환태입니다.

 

지난 20146, 저는 밀양 현장을 담기 위해 <핵마피아> 출연자인 공혜원 씨, 야마가타 트윅스터 씨와 함께 밀양을 다녀왔습니다. 그 후, 저는 저희의 연대방식에 대해 문제가 있었다는 의견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 영화의 출연자인 공혜원 씨의 직접적인 문제제기와 그녀를 통한 다른 연대자 분들의 문제제기로 이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깨닫게 되어 저희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당시 저희는 밀양의 주요 현장들을 돌며 현장 촬영과 가수인 야마가타 트윅스터 씨의 공연을 진행했었습니다. 문제제기를 받고 돌아보니 행정대집행을 이틀 앞두고 극심한 긴장 상황 속에 계셨을 밀양 분들과 연대자 분들께 저희는 그저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이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때문에 미리 충분한 소통과 저희 연대방식에 대한 의견을 구했어야 했음에도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었습니다. 저희의 쫓기는 일정 속에 급하게 진행된 촬영과 공연이 현장에 계셨던 밀양 주민 분들과 연대자 분들께는 마음 불편하고 힘든 기억으로 남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밀양 연대자로서 활동하고 계신 공혜원 씨께서도 매우 난처하고 힘든 시간이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 다큐의 출연자인 공혜원 씨와 저로 인해 불편하셨던 밀양에 계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고민하고 미리 계획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 계신 분들께 연락드리고 상의하여 진정으로 현장에 계신 분들께서도 좋아하실 수 있는 연대활동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밀양의 대책위 분들과 많은 주민 분들, 연대자 분들께서 저희 영화 <핵마피아>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하고 또 감사드리는 마음뿐입니다. 부디 이 영화의 결과물이 밀양에 계신 여러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 과정을 담아가며 탈핵과 관련한 좋은 작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거듭 죄송하게도 이 글은 그날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 뒤늦은 사과의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를 놓친 사과를 받아주실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디 저의 마음이 여러 분들께 잘 전달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 다큐멘터리 <핵마피아> 감독 김환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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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3/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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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 흑두루미야 많이 먹고 건강히 날아가렴

해양서포터즈 천수만 흑두루미 먹이 주기 활동
  [caption id="attachment_196209" align="aligncenter" width="640"]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 천수만 흑두루미 먹이주기 활동                                                   ⓒ환경운동연합[/caption]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는 가로림만 벌천포 해수욕장 정화작업을 진행한 다음 날 천수만을 찾았다. 지금은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날아간 흑두루미의 먹이를 주기 위해서이다. 천수만은 새들의 보금자리였다. 우리는 흑두루미가 먹이로 먹을 수 있는 벼를 나눠주기 위해 먹이 장소로 이동하는 도중 다양한 새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우린 아침에 먹이활동을 끝내고 쉬고 있는 큰고니 무리의 아름다운 모습에 놀라고 자연의 법칙에 열을 맞춰 날아다니는 쇠기러기 군무가 경이로웠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해양서포터즈와 중앙사무처 활동가들은 잊지 못할 하나의 장엄한 기억을 마음속에 새겼다. 천수만 흑두루미 터줏대감이신 서산태안 환경운동연합 김신환 자문위원님은 매년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나눠주셨고 이번에는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와 활동을 함께 하기로 하셨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우리가 천수만에 도착하기 전날 허리디스크 문제로 입원을 하셨고, 대신 자녀분이 나와서 함께해주셨다. [caption id="attachment_196206" align="aligncenter" width="640"]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나누는 해양서포터즈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96205" align="aligncenter" width="640"] ⓒ환경운동연합[/caption] 우리가 나누는 먹이는 비단 흑두루미뿐 아니라 주변에 날아다니는 철새와 고라니 등 야생동물의 먹이가 된다. 뿌려진 벼를 따라 걷고 있으면 이미 맛있게 먹이를 주워 먹은 고라니의 배설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길 위에 끊임없이 먹이를 잇는 작업은 우리에게 경험해 보지 못한 큰 즐거움이었다. 내년 2월 무렵에 다시 올라올 흑 두루미의 먹이를 주는 의미도 있지만, 눈삽으로 퍼 나르는 벼의 재미는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해양서포터즈도 중앙사무처 활동가도 길 위에 가볍게 흩날려 떨어지는 벼 소리에 추위를 잊었다. [caption id="attachment_196207" align="aligncenter" width="640"] 흑두루미 눈으로 바라본 천수만 먹이길                                                                                   ⓒ환경운동연합[/caption] 두루미의 눈으로 바라본 천수만 볏길은 우리나라를 지나 러시아로 이동하는 흑두루미들에게 반가운 식사 장소가 될 것이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활동이 야생동물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우리의 활동이 앙상하게 날아오는 흑두루미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아닐까 생각된다. 하늘에서 바라본 천수만 볏길은 흑두루미들이 매년 그러하듯 날아가는 도중 잠시나마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중요한 중간지점이 될 것이다. 시민으로 구성된 환경운동연합 해양서포터즈는 현장에 방문하여 해양정화활동과 생태체험을 진행했다. 모든 체험을 종료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해양서포터즈 그리고 활동가들 모두에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는 확신이 생겼다. 환경운동연합은 내년에도 시민의 눈으로 시민과 소통하고 소중한 자연 보전의 필요성을 시민과 함께 자연의 시각으로 체득하는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수, 2018/12/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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