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기선 제주방송지부 조합원
6일 오후 3시 제주도 오라삼동 제주방송 JIBS 앞마당에 50여명의 조합원들이 우비를 걸치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투쟁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제작 환경과 근로조건 개선 그리고 신사업 투명성 확보를 내걸고 파업 투쟁을 벌인지 20일이 지났다. 이는 제주도의 유일한 지상파 방송인 JIBS가 제대로 방송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네 차례 나오던 뉴스는 저녁 ‘820뉴스’만 나오고 이마저 녹화분이다. 또 자체 편성 프로그램 8개 중 2개만 겨우 내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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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제작 현장을 떠난 57명의 조합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개국한 JIBS에 신입으로 입사해 13년 동안 광고국에서 일해 온 전기선 조합원은 “도민들에게 더 다가가기”위한 다짐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KNN에서 일하다가 제주방송으로 온 전 조합원에게 JIBS의 방송 제작 환경의 어려움은 몸으로 다가왔다. 전에는 4명이 일했었는데 여기서는 혼자 일 했고, 광고 편집실조차 제대로 있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 온 것이다.
이날 제주방송지부 성명에 따르면 폭우 등 재난 상황에서 인건비 문제로 중계차가 멈춰야 했고, 수익이 안 되는 프로그램 제작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조합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회사 내 씻고 쉴 곳 하나 없으며, 지하 편집실에는 공기 청정기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어느 한 여성 조합원은 유산 후 3일 만에 출근을 하기도 했고, 임신을 해도 조근과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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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3시 집회를 마치고 회사 로비에서 피켓 농성 중인 전기선 조합원을 만나 파업 투쟁을 이야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파업 들어갈 때 심정은 어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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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구나. 지난 13년 동안 회사는 노동자들을 홀대했다. 광고 시장이 어렵고, 방송 환경이 변화한다는 등 더 허리띠를 졸라야 한다며 고통 분담만을 강요했다. 14차례 교섭했지만 달라지지 않아 실망이 컸다. 부현일 지부장을 조합원들에게 ‘지금이다. 투쟁이다’라고 했을 때 이제 참지 말고 목소리를 내자고 조합원들이 외쳤다.”
-파업 기간 중 다양한 연대 투쟁을 했는데
“사실 투쟁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부끄러웠다. 여미지 식물원 조합원들은 7년 동안 투쟁을 했다. (우리는) 제주도민을 대표한다면서 이제야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여미지 식물원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였지만 사장이 바뀌면서 노동자 탄압이 이뤄졌다. 7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고, 파업 참여자들이 해고됐다 열악한 환경 속에 싸워왔던 것이다. 그리고 해안 환경 정화 활동을 하기도 했다.”
-파업 투쟁 동안 주위 동지들과 관계는
“방송사 특성상 정말 자기 일만 한다. 정말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 같이 끊임없이 자기 분야에 일을 하다보니 제작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 파업 조 편성은 부서별로 묶인 것이 아니라 서로 섞여 있어 좋았다. 함께 땅바닥에 앉고, 목소리를 높여 노래도 부르고, 올레길도 걸고. 서로 개인의 어려움과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평상시에 없었던 소통의 문이 열렸다”
-파업 지도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서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한 번도 파업을 해보지 않았는데. 첫 투쟁 아닌가. 1, 2주 지나면서 투쟁의 결속력은 더욱 높아졌다. 굳건히 노조 깃발 아래 서 있을 것이다. 지도부는 파업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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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들어가니 집 분위기는 어떤가?
“맞벌이라 사실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다. 사측과 잘 해결해서 금요일에 12시에 들어오는 일 좀 없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저녁의 있는 삶을 원하는 것이 가족들이고 나 역시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장으로 돌아가면 더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게 노력하겠다. 제주의 신음 소리, 작은 목소리들을 귀담아 듣고 전달할 수 있게 하겠다. 귀를 열고 목소리를 크게 내자. 그리고 도민에게 더 다가가는 방송사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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