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아시아생각] 홍콩 우산운동, 그 이후..

지역

[아시아생각] 홍콩 우산운동, 그 이후..

익명 (미확인) | 화, 2016/09/20- 14:54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 아시아생각] ①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2016 아시아생각] ② 쯔위 덕 본 차이잉원 "대처 존경한다"? 

[2016 아시아생각] ③ 미국-러시아의 시리아 임시 휴전 합의, 그러나...

[2016 아시아생각] ④ 수치의 '막후정치', 버마의 앞날이 불안하다

[2016 아시아생각] ⑤ 피플파워+30, 독재자의 처자식은 뭘하고 있을까 

[2016 아시아생각] ⑥ 필리핀 선거에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 

[2016 아시아생각] ⑦ 광주인권상 수상 막은 말레이시아 정부 

[2016 아시아생각] ⑧ 땅은 우리의 삶, 필리핀 할라우강에서 온 선주민의 호소

[2016 아시아생각] ⑨ '세계인도주의의날'을 기억해야 하는 진짜 이유

 

홍콩 우산 운동, 그 이후…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웡익칭 전 홍콩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 간사

 

 

"명운자주(命運自主),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홍콩 우산 운동(umbrella movement)의 대표적인 구호다. 당신이 부자든지 가난하든지에 상관없이 모든 개인은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참여하거나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9월 4일, 우산 운동 이후 처음 치러진 홍콩 입법회(Legislative Council Election) 선거에서 이 우산 운동의 정신은 얼마나 반영되었을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 정치는 친중국파(pro-establishment)와 범민주파(pro-democracy)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2014년 우산 운동 이후, 범민주파 일부 급진 세력은 '본토파(localist)'라는 새로운 그룹을 등장시켰다. 본토파는 우산 운동과 전통적인 민주파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들의 평화로운 접근이 민주주의 투쟁의 실패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홍콩 사회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관광객과 방문객, 이주민이 급증하면서 불만이 퍼져갔다. 홍콩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한 본토파를 지지했다. 본토파는 폭력적인 행위를 포함해 더 호전적인 저항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범민주파의 분열은 이번 선거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전통 민주파 내에서 협력은 실패하고 오히려 후보 간의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또 신진 세력인 본토파의 등장은 이번 지역구 선거에서 범민주파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각각의 범민주파 후보들에게 표가 나뉘어 오히려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되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홍콩 우산 혁명 주역인 네이선 로(羅冠聰·23)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주석이 지난 4일 입법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자 환호하는 지지자들. ⓒAP=연합뉴스 
 

 

보장된 거부권

 

지난 선거에서 등록된 유권자(유권자로 등록된 18세 이상 영주권자)는 지역구 1표, 직능 대표 1표를 포함 1인 2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홍콩 입법회는 지역구 35석, 직능 대표 35석 등 모두 70석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직능 대표는 직선제(5석)와 간선제(30석)의 혼합 방식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직능 대표 30석 대부분이 특정 기업 및 사회 분야 위원회가 선출해 사실상 친중국파에 배정된다. 이로 인해 범민주파는 입법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최소 의석(24석, 3분의 1) 확보를 목표로 했다. 이번 선거에서 범민주파는 지역구 19석, 직능 대표 11석을 포함하여 총 30석을 획득하여 입법 거부권을 보장받았다. 반면 친중국파는 지역구 16석, 직능대표 24석을 포함하여 총 40석을 얻었다. 

 

지난 6월, 시민 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의 공동 설립자 베니 타이 이우팅(戴耀庭·Benny Tai Yiu-ting) 홍콩대학교 법대 부교수는 홍콩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썬더고(雷動計劃·'ThunderGo’ scheme)' 캠페인을 론칭하였다. 이 캠페인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주기적인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의 지지율에 대해 정기적으로 알리는 것이었다. 이는 이길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표를 집중시키고 이길 가능성이 낮은 후보에게 가는 '사표'를 줄이는 '전략적 투표’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썬더고’ 캠페인은 유권자들의 참여도가 낮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히려 '자발적 전략 투표(民間配票·voluntary strategic voting)'가 이번 선거에서 더 효과적이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전략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같은 선거구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공동체, 특히 우산 운동 이후 발전된 소셜 미디어 내에서 유권자들이 범민주파 후보자들에 대한 선호도를 분석하고 토론한 후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식이었다. 몇몇 유권자들은 전체 범민주파 당선을 위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도 했다. 

 

항쟁은 길에서 의회에서 함께 하는 시대 

 

유권자들은 직능 대표제도와 갈수록 강화되는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선거를 통해 홍콩 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입법회 선거는 홍콩 반환 이후 가장 높은 5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시민들은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입법 거부권 확보와 함께 홍콩 의회에 새로운 '의회 문화’를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입법회' 역할과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인식은 지난 2010년 홍콩-선전-광저우를 잇는 광선강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반대하면서 높아졌다. 당시 수만 명의 시민들은 입법회 건물을 에워싼 채 생방송으로 예산 심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의회 내에서는 범민주파 의원들이 민간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와 시민 단체 의견을 바탕으로 고속철도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 활동을 펼쳤다. 비록 고속철도 건설 예산안은 통과되었으나 많은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 반대 시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10년 고속철도 반대 시위는 새로운 사회 저항 움직임이 거리에서 의회로 이동하게 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의회에서 홍콩의 미래를 토론하다 

 

이번 선거에서 홍콩의 독립을 지지하는 본토파 후보자들은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후보 중 3명만 당선되었다. 많은 의석은 전통 민주파 후보자와 홍콩주민의 '자결권(民主自決democratic self-determination)'을 추구하는 사회운동가들이 차지했다. 

 

홍콩 자결권을 중요시하던 사회운동가 출신 당선자 중 대표적 인물은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추 호이딕(朱凱迪·Chu Hoi-dick)과 우산 운동의 주요 학생 지도자였던 네이선 로(羅冠聰·Law Kwun-chung), 대학 강사 라우시우라이(劉小麗·Lau Siu-lai)이다. 이들은 전통 민주파와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슬로건인 '민주 자결’은 우산 운동의'명운자주’와 일맥상통한다.

추 호이딕은 당선 직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홍콩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믿어야 한다"고 인터뷰하였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저항을 포함한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든 홍콩 사람들의 사회적 참여를 통해 지역 동네의 발전과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는 아래로부터의 접근 방식이다. 

 

비록 많은 사람이 우산 운동은 실패했다고 하지만 우산 운동은 홍콩 시민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유권자들의 높은 참여율과 유권자들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의회 구성원과 함께 변화하는 시민사회는 친중국 정부에 맞서 저항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우산 운동 아래 뿌려진 연대와 희망의 씨앗을 홍콩 사회 곳곳에서 자라나게 할 것이다. 

 

* 프레시안에서 보기 >>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지난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대표적인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난데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도 같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마지막 대통령과 그의 후임이자 역시 군인 출신 대통령의 장남이 공교롭게 둘 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에서 유출된 문서를 정밀 분석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씨의 아들 노재헌의 이름과 동일한 영문명 ‘Ro Jae Hun’을 발견했다. 하지만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정밀 검색을 통해 이 사람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면서 제출한 홍콩 거주민신분증을 찾아냈다. 신분증에 기재된 생년월일과 증명사진을 확인한 결과 ‘Ro Jae Hun’이란 사람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과 동일인임을 최종 확인했다.

2016040402_01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 3곳 설립

노재헌 씨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는 모두 3개다. 세 회사의 이름은 ‘원 아시아 인터내셔널’(One Asia International), ‘GCI 아시아’(GCI Asia), ‘럭스 인터내셔널’(Luxes International)이다. 세 회사는 모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2012년 5월 18일 같은 날 설립됐다. 노재헌 씨가 이사이자 주주인 동시에 실소유주(Beneficial owner)로 등재돼 있다. 1달러 짜리 주식 한 주만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다. 특이한 점은 자신이 소유하는 페이퍼 컴퍼니인 ‘GCI 아시아’를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럭스 인터내셔널’의 주주로 해 놓는 등 지배 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해 놨다는 점이다. 페이퍼 컴퍼니 관련된 서류 곳곳에 노재헌 씨의 자필 서명이 등장한다.

2016040402_02

노재헌 씨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지 약 1년 뒤인 2013년 5월 24일 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원 아시아 인터내셔널’과 ‘GCI Asia’의 경우 첸 카이(Chen Kai)라는 중국인에게 이사직과 주식을 양도했고, ‘럭스 인터내셔널’은 김정환이라는 사람에게 이사직을 넘겼다.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노재헌 씨와는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016040402_03

조세도피처 회사를 3개나 만든 이유는?

뉴스타파 취재진은 노재헌 씨가 무슨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을 만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회사 설립 서류에 남아 있는 단서를 토대로 홍콩 일대를 탐문 취재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2012년 페이퍼 컴퍼니 설립 당시 노재헌 씨가 관련 서류에 기재한 주소지(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홍콩의 최고급 주택가인 미드 레벨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아파트에는 현재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이 아파트의 홍콩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한 법인이 2010년 7월에 3,400만 홍콩 달러(약 50억 원)에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재헌 씨와 이 법인의 관계는 무엇인지, 아파트의 실소유주가 노재헌 씨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어 노재헌 씨가 페이퍼 컴퍼니의 실제 사업 주소라고 기재된 홍콩 사무실도 찾아가 봤지만 해당 사무실은 현재 비어있는 상태였다.

복잡한 단계 거쳐 페이퍼 컴퍼니 설립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는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다. 홍콩의 중개 사무소가 설립에 필요한 서류 작업 등을 해서, 이를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의 홍콩 지점으로 보냈다. 모색 폰세카 홍콩 지점은 그 서류를 모색 폰세카 버진아일랜드 지점으로 보냈고, 버진아일랜드 지점은 자사 사무실 주소를 노 씨의 페이퍼컴퍼니 주소지로 등재했다. 이렇게 노재헌 씨의 유령회사가 만들어졌다.

2016040402_04

뉴스타파 취재진은 각 단계를 모두 확인해 봤다. 먼저 홍콩의 중개 사무소에서는 고객의 서류 작업만 도울 뿐 어떤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모색 폰세카 홍콩 지점도 방문했지만 본사 데이터가 유출된 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인 취재가 시작된 탓인지 ‘기자들로부터 어떤 질문도 받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지막 단계인 모색 폰세카 버진 아일랜드 지점 건물에는 노재헌 씨의 회사 외에도 수천 개의 페이퍼 컴퍼니가 등록되어 있다.

노 씨 조세도피처 회사 용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국의 전직 대통령 아들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사실이 확인된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는 ICIJ와 공동으로 진행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Offshore Leaks)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전재국 씨가 해당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싱가포르에 있는 아랍 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전두환 일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고, 전재국 씨는 가족을 대표해 아버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았으나 계속 내지 않고 버텼던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년이 된 지금까지 1,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이 미납된 상태이다.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 역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비자금 은닉이나 탈세 목적은 없었는지에 대해 조세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취재기자: 이유정
촬영기자: 김남범
편집: 윤석민

월, 2016/04/04- 11:01
511
0

노재헌 연관 홍콩 페이퍼 컴퍼니 7곳 나와…BVI 회사와 연결

노재헌 씨와 연관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7곳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추가로 확인됐다. 특히 그 가운데 2곳은 뉴스타파가 모색 폰세카의 유출문서에서 발견한 노재헌 씨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 페이퍼 컴퍼니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홍콩에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것이다.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전혀 사용하지 않고 친구와 지인에게 넘겼다는 노재헌 씨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추가로 발견된 노재헌 씨의 홍콩 페이퍼 컴퍼니들은 인크로스나 SK와도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노재헌, 인크로스, SK가 홍콩과 BVI 페이퍼 컴퍼니들을 통해 의문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발견한 노 씨 연관 홍콩 페이퍼 컴퍼니는 7곳이다. 이 가운데 4곳은 노재헌씨가 직접 주주나 이사로 현재 등기되어 있거나, 예전에 등기되어 있던 곳이다. 2곳은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유했다. 1곳은 의문의 인물인 김정환 씨를 통해 노재헌 씨와 연결됐다. 뉴스타파가 새롭게 발견한 노 씨의 페이퍼 컴퍼니 7곳의 주소는 모두 동일하다. 노 씨와 관련된 홍콩 페이퍼 컴퍼니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Global i Consulting : 2009년12월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2) Shine Chance : 2010년 3월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3) Luxe Life : 2012년 5월 25일 설립. Luxes International(버진 아일랜드)이 주주. 현재 주주는 인크로스 4) 인터내셔널
5) Inno-Pact : 2012년 5월 25일 설립. Luxes International(버진 아일랜드)이 주주. 현재 주주는 인크로스 홍콩.
6) Incross Hongkong : 2013년 5월 27일 설립. 김정환이 이사.
7) One Asia C&L : 2014년 9월 1일 설립. 노재헌이 이사. 노재헌 첸카이가 주식을 9대 1로 소유. 현재 이사는 김정환
8) K-entertainment : 2014년 9월 26일 설립. 노재헌이 주주 겸 이사

BVI의 페이퍼 컴퍼니가 홍콩 페이퍼 컴퍼니의 주주

뉴스타파가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 3곳을 설립한 것은 2012년 5월 18일이다. 세 회사의 이름은 GCI Asia, One Asia, Luxes International이다. 이로부터 불과 1주일 뒤인 2012년 5월 25일, 노 씨는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 2곳을 만든다. 주식이 1주 뿐인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다 .이 두 회사의 주주는 노 씨가 일주일 전 버진 아일랜드에 만든 페이퍼 컴퍼니 중 한 곳 , Luxes International이다. Luxes International의 주주는 노 씨의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GCI asia다. GCI asia의 실소유주가 노 씨이기 때문에 노 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두 단계를 거쳐 두 회사를 새롭게 소유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의 홍콩 등기부에 노 씨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이 회사의 설립 관련 서류에 기재된 서명이 노 씨의 서명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소유주임을 숨긴 채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회사의 이름은 Luxes Life, Inno-Pact이다.

201604080201_01

201604080201_02

201604080201_03

의문의 인물 김정환 통해 인크로스 자회사에 주식 넘겨

이 두 회사의 이사직은 2012년과 2013년 차례로 김정환 씨에게 넘어간다. 김정환 씨는 2013년 5월 24일 노 씨의 버진 아일랜드 유령 회사 Luxes International의 이사직을 넘겨 받는 인물이다. 김 씨는 노 씨로부터 Luxes International의 이사직을 넘겨 받은 지 불과 사흘 뒤, Incross Hongkong을 설립한다. 그리고 나서 노 씨로부터 물려받은 홍콩의 유령회사, 즉 Luxe Life의 주식을 다시 Incross Hongkong에 넘긴다. 나머지 한 회사, 즉 Inno-Pact는 Incross International에 넘긴다. 그러니까 노재헌 씨는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홍콩에 또다시 유령 회사를 만들었고, 이 회사들은 김정환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크로스의 홍콩 현지 계열사들에게 넘어간 것이다.결국 어떤 계좌나 자산을 비밀리에 인크로스쪽에 넘기기 위해 복잡한 지배 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201604080201_04

SK 벤처 운용사 대표 첸 카이와의 또 다른 연결 고리 발견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와 SK와의 연결 고리도 추가로 발견됐다. 중국인 첸카이는 노재헌 씨의 버진 아일랜드 컴퍼니인 GCI Asia와 One asia의 이사직을 넘겨받은 인물이다. 첸카이가 SK 홍콩 현지 법인의 관계자라는 4월 6일자 문화일보 보도가 나가자, SK 측은 첸 카이가 SK텔레콤의 벤처펀드인 CVC의 운용을 담당하는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실토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첸 카이가 노재헌 씨의 또 다른 홍콩 페이퍼 컴퍼니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노재헌 씨는 2014년 9월 홍콩에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One Asia C&L을 설립했다. 3개월 뒤 2014년 12월, 이 회사의 지분을 9대 1의 비율로 첸카이와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올해 1월 16일에는 이 회사의 이사직을 김정환이라는 인물에게 넘긴다. 이와 함께 첸카이가 지난해 4월 인크로스의 홍콩 자회사인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지분 1%를 넘겨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201604080201_05

 

노재헌 씨와 SK 측은 노 씨와 첸카이가 스탠포드 동문으로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뿐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둘의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나는데다 단순한 친구 관계라고 보기에는 사업상 얽힌 부분이 너무 많아 보인다. 결국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얽힌 노재헌씨와 SK, 인크로스의 삼각 관계를 이어주는 인물이 바로 첸카이와 김정환인 것으로 추정된다.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 7곳은, 모두 똑같은 주소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주소는 인크로스의 홍콩 법인인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주소와 일치한다. 주소가 일치하고, 노재헌과 김정환, 첸카이 등 몇몇 인물들이 이사와 주주를 번갈아 맡는 이 페이퍼 컴퍼니들은 어떤 목적으로 설립됐을까? 단순한 사업 상의 목적이었다면 대체 왜 이렇게 많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왜 그렇게 복잡한 관계로 엮어 놓았을까?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SK와 인크로스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

뉴스타파는 노재헌 씨와 김정환, 첸카이가 연관된 페이퍼 컴퍼니를 시각화 툴로 정리했다. 각각의 노드를 클릭하면 관계망이 펼쳐진다.


취재 : 심인보, 이유정, 정재원

 

금, 2016/04/08- 21:15
427
0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3개나 만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혹시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았을지도 모르는 비자금과 관련된 것일까? 아니면 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된 일일까?

아버지 노태우의 비자금?

노재헌 씨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사실상 유령회사인 자본금 1달러 짜리 페이퍼 컴퍼니 3개를 만든 시점은 2012년 5월이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형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8개월 뒤인 1997년 12월, 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풀려 나온 노태우 씨는 추징금을 갚아나가기 시작한다.

2016040403_01

추징금을 갚는 방식은, 노태우 씨가 비자금을 맡겨둔 사람을 지목하면 검찰이 수사를 벌여 돈을 추징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태우 씨가 누구에게 비자금을 맡겨두었는지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람이 노태우 씨의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씨다. 신명수 씨는 해표 식용유로 유명한 신동방그룹의 회장이다. 노태우 씨는 이런 방식으로 2011년 말까지 추징금의 90% 가량인 2,397억 원을 97차례에 걸쳐 납부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부터는 추징금을 더 이상 내지 않았다. 낼 돈이 없다면서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씨가 추징금을 마저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날선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여론의 관심도 높아져 갔다.

이 시기에 뜻밖의 변수가 생긴다. 2011년 3월 노재헌 씨의 부인이자 신명수 전 회장의 딸인 신정화 씨가 홍콩 법원에서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 신정화 씨는 재산 분할을 위해 노재헌 씨의 재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이 사실은 2011년 12월 국내 언론에 보도됐고, 국내 언론들은 노재헌 씨에게 흘러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노태우 비자금이 이혼 소송을 통해 드러날 수도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태우 비자금이 노재헌 씨에게 전해졌을 수도 있다는 의혹은 이전부터 있었다. 동생과 사돈에게는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주면서 아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2016040403_02

노재헌 씨가 조세도피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 3곳을 만든 시점은 바로 이 때부터 5개월 뒤인 2012년 5월 18일이다. 남은 추징금 납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과 이혼 소송 때문에 비자금 상속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남아있던 돈을 숨기기 위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것은 아닐까? 페이퍼 컴퍼니를 동시에 3곳이나 만들고, 한 회사를 다른 회사의 주주로 등록하는 등 추적하기에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 역시 은밀한 돈을 감추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에 부합하는 정황은 또 있다.

노재헌 씨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지 1년 뒤인 2013년 5월 21일,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에 회사를 설립한 한국인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사흘 뒤 노재헌 씨는 페이퍼 컴퍼니 3곳의 이사직에서 동시에 사퇴했다. 페이퍼 컴퍼니가 보도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이후 뉴스타파의 폭로 등에 힘입어 검찰이 전두환 일가에 대한 수사를 벌이자, 노태우 씨는 넉 달 뒤 남은 추징금 231억 원을 완납했다. 그러나 이 돈은 노태우 씨나 노재헌 씨가 내지 않았다. 동생 노재우 씨가 150억 원, 사돈 신명수 씨가 80억 원 이렇게 나누어 냈다. 만약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아버지의 비자금을 숨기는 게 노재헌 씨의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2016040403_03

노재헌 씨의 비자금 상속 여부와 관련해, 노재우 씨 측으로부터 흘러나온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징금 납부를 둘러싸고 노태우, 노재우, 신명수가 공방을 벌이던 당시 나온 얘기다. 당시 노재우 씨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이 모 변호사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노태우 씨의 자택의 별채 부지가 노재헌 씨 명의로 되어 있다며 이 부지의 구입자금이 아버지 노태우 비자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등기부 등본 상에는 여전히 노재헌 씨가 불과 35살이던 2000년에 이 땅을 사들인 것으로 되어있다. 당시 시세는 10억 원이 넘었다. 이 밖에 대구 지묘동의 60평짜리 아파트와 30억 상당의 강원도 평창 고급 별장 역시 노태우 씨의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2016040403_04

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가 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재헌 씨는 ‘인크로스’라는 IT기업의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며 최근까지도 주요 주주이자 등기 이사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07년에 설립되었고, 그동안 대부분의 매출이 SK와의 거래 관계에서 발생해왔다. 2009년에는 200억 대의 매출을 올린 SK 계열사 크로스엠 인사이트를 단돈 40억 원에 인수했다. 이 인수로 연 93억 원이었던 인크로스의 매출은 360억 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2010년에는 매출 490억 원에 이르는 SK 계열사인 이노에이스를 인수 합병하는데, 지분 절반 이상을 매수하는 데 든 비용이 60억 원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인크로스의 성장 과정이 SK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거라는 점, 그리고 최태원 회장의 처남인 노재헌 씨가 주요 주주라는 점 때문에 인크로스가 사실은 처남을 앞세운 최태원 회장의 위장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왔다.

2016040403_05

그런데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0년 홍콩에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한 흔적이 나온다.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대표는 노재헌 씨였다. 홍콩은 노재헌 씨에게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준 중개 회사가 있는 곳이다.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시점도 노 씨가 인크로스 인터내셔널 대표로 재직하던 시기와 겹친다. 만약 노재헌 씨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가 인크로스와 연관된 것이라면, SK 최태원 회장과의 연관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노재헌 “개인적인 사업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 만들었을 뿐”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노재헌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했다. 노 씨가 상임 이사로 재직 중인 한 비영리 법인을 통해 열흘에 걸쳐 여러 차례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이 없었다. 인터뷰를 요청한 지 열흘 만에 노재헌 씨는 인크로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전해왔다. “홍콩에서 살면서 사업 준비 차 1불 짜리 회사를 몇 개 만들어 두었는데, 이혼하고 결국 아무 것도 못했다. 대체 왜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 노재헌 씨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노 씨의 답변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조세도피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같은 시기에 회사를 세 곳이나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홍콩에서 만난 조세도피처 회사 설립 대행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조세도피처 회사들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법인 명의의 계좌를 만들어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추가 질의를 위해 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노 씨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월, 2016/04/04- 11:00
425
0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 아시아생각] ①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2016 아시아생각] ② 쯔위 덕 본 차이잉원 "대처 존경한다"? 

[2016 아시아생각] ③ 미국-러시아의 시리아 임시 휴전 합의, 그러나...

[2016 아시아생각] ④ 수치의 '막후정치', 버마의 앞날이 불안하다

[2016 아시아생각] ⑤ 피플파워+30, 독재자의 처자식은 뭘하고 있을까 

[2016 아시아생각] ⑥ 필리핀 선거에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 

 

광주인권상 수상 막은 말레이시아 정부

[아시아 생각] 말레이시아 선거 개혁 운동과 출국 금지

 


마리아 친 말레이시아 버르시 2.0 대표

 

 

보통 말레이시아 법상 여행 제한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이 제한은 1967 수입세법 104조와 1967 부패법 38A(1)에 명기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민법 1959/63 상 개인의 여행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법의 해석이란 움직이는 과녁과도 같다. 2016년 5월 15일,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 찰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이민국은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여행 제한 상태라고 전했다. 여행 제한 명령은 내무부가 있는 푸트라자야(Putrajaya) 지역에서 전달되어 온 것이다. 

 

내무부 차관인 다툭 누르 자즐란(Datuk Nur Jazlan)이 나에게 여행 제한 사유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는 나중에 출국 금지는 "헌법에 반하는 죄를 저지른 자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선동, 종교, 인종, 국내 평화, 조화, 국가 안보에의 위협이 되는 자를 말한다"고 설영했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 선거 개혁을 위한 시민 단체 연합 버르시 2.0이 주최한 반정부 집회. ⓒ버르시 2.0 
 

말레이시아 정권의 초대형 부패를 가능케 한 악법들

 

내가 출국 금지된 이유는 광주 인권상 수상밖에 없다. 버르시 2.0(Bersih 2.0)은 2016 광주인권상 공동 수상자였고 2016년 5월 18일, 광주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 NGO(참여연대)도 내가 버르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터였다.

 

광주인권상은 명망 있는 인권상이다.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버르시 2.0이 선거 제도 개혁을 위해 힘써왔다는 것과 변화를 위한 운동으로 사람들을 결집한 우리의 능력을 명백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공동 수상자인 베트남 누옌 단 쿠에씨는 베트남의 민주주의를 위해 힘써온 저명한 활동가로 그 또한 출국 금지 상태였다. 그는 국가 안보를 저해했다는 혐의로 구금되어 있다.

 

이 상을 수여하지 못하도록 나의 출국을 금지한 것은 어쩌면 잘된 일 일지도 모른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출국 금지 조치로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전 세계 사람들은 광주인권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부의 조치는 개인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비쳤다.

 

나에 대한 출국 금지 조치는 광범위하게 비판받았다. 채널 4가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총리가 무역 회의 참석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사실을 방송했던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마침 내가 출국 금지를 당한 때와 같은 시기였다.  

 

나에 대한 "시의적절한" 출국 금지는 국영 기업인 '말레이시아 개발유한공사(1 Malaysia Development Berhad, 1MDB)'와 관련된 거대 규모의 부패 사건이 한창 논란이 될 때였다. 1MDB는 지난 5년간 110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졌다. 이로 인해 1MDB의 돈이 흘러 들어간 최소 7개국과 기금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몇몇 국제 은행 계좌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큰 규모의 부채는 "심각한 경영 실패" 탓이라는 정부와 국회 감사위원회의 궁색한 변명으로 이어졌다. 1MDB의 전 최고 경영자였던 다툭 샤흐롤 아즈랄 이브라힘 할미툭(Datuk Shahrol Azral Ibrahim Halmitook)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지만 자문위원이었던 국무총리, 이사회의 이사들, 그리고 재경부 장관은 무죄로 판명 났다.

 

1MDB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제거 당했다. 비판에 대한 두려움과 더 많은 부패 사건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진 나집 국무총리는 절박한 몸짓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1MDB를 조사하라는 말레이시아 반부패위원회를 해산시켰고 자신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검찰청장과 국무부총리를 해임했다. 또한 주요 국회의원들의 보직을 이동시켜 국회 감사위원회의 조사를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는데 여기에는 감사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실로 이동시키는 것이 포함되었으며 정보접근권을 침해하는 악법 통과 등이 포함된다.

 

말레이시아 밖으로 출국하는 것이 금지된 것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출국이 금지된 사람들을 살펴보자. 전 UMNO 회원인 다토 카이루딘 아부 하산(Dato Khairuddin Abu Hassan)과 그의 변호사인 마티아스 창(Matthias Chang)은 타국 경찰들에게 1MDB를 조사하라고 고발했다는 혐의로(2015년 9월 18일), 국회의원 토니 푸아(Tony Pua)는 1MDB를 비판했다는 이유로(2015년 7월 22일), 그리고 버르시 활동가인 히샤무딘 라이스(Hishamuddin Rais)(2015년 12월 4일)까지. 

 

우리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1MDB와 말레이시아의 거대한 부패에 대해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버르시 2.0은 4번째로 열린 집회에서 누구로부터도 규제받지 않고 있는 부패와 권력의 남용, 그리고 공공 기관의 형편없는 거버넌스를 제한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개혁을 촉구했다. 우리는 또한 국무총리 개인 통장에서 발견된 7억 달러에 해당하는 돈(심지어 그 돈은 이후 10억 달러로 늘었다)을 이유로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어떻게 말레이시아가 이렇게 슬픈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은 말레이시아를 급속도의 경제 성장, 민주주의의 모델, 그리고 특히 이슬람 국가들 사이의 중재를 촉진시키는 국가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 시민 자유, 경제, 사회적, 문화적 권리는 절벽에 가까스로 매달린 것과 같다. 권력에 오른 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란, 재판 없이 구금하는 것과 고문을 허용하는 국내안보법(Internal Security Law)과 같은 억압적인 법 그리고 사형제와 긴급법령 같은 제도를 악용하고 활용하는 것에 달려있다. 이 법들은 2015년, 반테러법과 같은 더 끔찍한 법들로 대체되었으며 이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테러분자로 의심되는 자를 재판 없이 2년 동안 가둘 수 있으며 구금 기간 동안 어떠한 사법적 재검토도 허용되지 않아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48년 제정된 선동죄는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MDB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악용된다. 100명이 넘는 활동가들과 야당 정치인들이 이 법에 따라 조사받고 괴롭힘을 당했으며 기소당했다. 이 법은 자유 발언을 효과적으로 형사 처벌했으며 야당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끊었다. 이 법에 따라 기소되고 500달러 이상의 벌금을 받으면 다음 선거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을 교체하자"와 같은 문구, 국무총리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 헌법에 대한 학문적 의견 등은 모두 선동적이라고 해석되었으며 만약 기소된다면 벌금형을 받거나 구속되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자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사이의 삼권 분립이 위태로워졌다. 법의 해석은 자의적이며 법치는 존중받지 못한다. 활동가들이 경찰 조사를 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서다가 체포된다.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가 테러를 방지한다는 목적 아래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국무총리가 안보 지역을 선포하고 영장 없이 사람들을 체포하고, 수색하고, 붙잡을 수 있도록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국가안보위원회는 또한 안보기구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 법 집행부와 공공기관의 권력 악용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말레이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이나 국가 기구의 몰락이 최근의 현상이라거나 나집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950년부터 우리는 인종 간의 분열을 일으키는 정치, 재정적 지원과 의존, 불공정한 선거와 미숙한 거버넌스에 기반을 둔 권력을 붙잡고 있었던 여당 연합에 의해 지배당했다. 우리는 단수 다수 대표제 시스템을 받아들였지만 2013년 선거에서 목격했듯이 이 시스템은 대표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여당 연합이 48%의 표를 얻었을 때 야당은 52%의 표를 얻었지만 충분한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서 여당이 되지 못했다. 야당 후보자들은 사기와 부당한 비례 대표제로 인한 조작, 게리맨더링, 선거명부의 부당한 변경, 표 매수, 불법 유권자 양성 그리고 심지어 폭력과도 맞서야 했다. 

 

말레이시아의 실수와 약탈은 국무총리로부터 그 다음 국무총리까지 이어져 내려갔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유지하는 방법이 여당 연합인 National Front (Barisan Nasional) 당뿐이라고 믿었다. 다만 나집 총리의 유일한 차이점은 더 영악하게 권력을 공고화시켰으며 더 많은 자원을 약탈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말레이시아 국민이 이러한 억압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국가 기금의 잘못된 운영과 부패 때문에 국가 재정이 심각한 손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상품소비세 지급, 통행료 인상, 그리고 보조금 삭감 등의 방식으로 이 비용을 메우고 있다. 2016년 장학금 예산이 23%나 삭감되면서 전체 교육비도 크게 줄어들었다. 건강보험 예산도 2016년 7,400만 불이 삭감되었으며 이에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 하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변화에 대한 희망  

 

우리에게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을까? 이러한 슬픈 상황에도 나는 여전히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점점 더 많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시민의 힘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버르시 집회는 길에서 열리는 집회와 인종 차별적 정치 그리고 무관심에 대한 공포를 깨트렸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사회적 집회는 주로 국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들이었으나 지난 10년 동안은 더 거대한 정치 참여와 대변을 촉구하는 것들이었다. 2015년 마지막으로 열린 버르시 집회에서 50만 명의 시민들은 시민의 승리가 될 민주주의 개혁을 위해 국무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다. 변화의 잠재력은 누군가에게는 재앙의 조짐이다. 

 

국가는 강력하고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오랜 길을 지나왔다. 나는 새롭고 더 확대된 집단과 연대하려는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직 설득되지 않은 집단들에게도 다가가고 차이점을 일단 접어두는 성숙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같이 공정하지 못한 독재 체제를 바꿔야 한다. 나는 그것이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을 위한 자극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우리의 투혼을 알리는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의 투쟁을 강화시킨다. 비록 이번에 버르시 2.0이 한국에 가지 못했지만, 말레이시아 정부의 탄압에 맞서 우리가 느낀 연대 의식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 상을 받도록 연대와 지지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버르시 2.0은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의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프레시안에서 보기 >>

수, 2016/06/08- 17:34
370
0

땅은 우리의 삶, 필리핀 할라우강에서 온 선주민의 호소

한국수출입은행의 돈이 가져온 비극의 시작 

 

존 알렌시아가, 할라우강을 위한 민중행동 (JRPM)

 

 

 

필리핀 파나이섬에 사는 선주민 투만독(Tumandok)과 일롱고(llongo)는 한국정부의 대외협력기금(EDCF)로 지원되는「필리핀 할라우강 다목적사업 (2단계)」(이하 할라우댐 프로젝트)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 수출입은행과 필리핀 정부가 차관계약을 맺은 할라우댐 프로젝트는 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인 2016년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형댐 건설에 대한 국내외 반대로 종료 마지막 해인 2016년 3분기가 다되도록 할라우댐 공사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는 댐이 건설되면 쌀농사를 위한 관개에 사용될 뿐 아니라 도심과 인근 마을에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고, 지역에 전기 공급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등 프로젝트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과장해왔다. 그러나 사실 할라우댐 프로젝트는 강제이주, 위협과 협박, 환경 파괴, 인명 손실과 같은 여러 쟁점들이 산적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할라우댐 건설 반대하는 투만독 사람들

 

할라우댐 프로젝트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부키드논(Bukidnon)으로도 알려진 투만독 사람들이다. 이들은 할라우와 파나이강가에 조상 대대로 거주해왔으며, 선주민 그룹 중 가장 큰 그룹으로 일로일로(Iloilo)주와 카피즈(Capiz)주에 94,000명의 투만독이 흩어져 살고 있다.

 

지난 2000년, 세계댐위원회(World Commission on Dams)는 최종권고안을 발표하며 "대형 댐들은 선주민과 부족민의 삶, 생계, 문화, 그리고 영적인 부분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쳐왔다."고 밝혔다.

 

2011년 10월, 투만독 사람들은 제 8회 총회를 개최하며 할라우댐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고지대 마을들과 일로일로주, 카피즈주 소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투만독 1000여명이 모였다. 그들은 이 대형 댐이 투만독 공동체와 그들의 생계수단, 환경을 파괴하여 결국은 투만독에 대한 문화적 말살(cultural ethnocide)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할라우댐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할라우댐은 직·간접적으로 칼리녹주의 16개 고지대 마을에 영향을 끼친다. 댐이 건설되면 이 중 가랑안(Garangan), 마사로이(Masaroy), 악칼라가(Agcalag) 3개 마을은 완전히 침수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댐 건설로 17,000명의 선주민들이 영향을 받을 거라고 밝혔다.

 

"우리의 농지는 침수될 거예요. 우리의 생계수단과 집 역시 파괴될 겁니다.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 

- 로미오 카스트로(Romeo Castor)1)

 


할라우댐 사업 지역에 거주하는 선주민 ⓒ JRPM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 침해

 

할라우댐 프로젝트는 3개의 댐 건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할라우 메인 저수지와 방수정은 대부분 카스트로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조상 토지(ancestral domain)에 건설될 예정이다. 로미오 형제인 네스트로(Nestor)는 메인 저수지 공사를 위한 도로 건설로 1 헥타르에 이르는 땅을 빼앗겼다. 그러나 커피 농장과 과실나무에 대한 보상으로 고작 1천 8백 페소($38) 밖에 받지 못했으나 필리핀 관개청(NIA: National Irrigation Administration) 은 토지수용으로 18만 페소($3,832)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투만독은 각 지방정부기관과 할라우댐 프로젝트를 찬성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차례 괴롭힘 당하거나 위협, 협박의 위험에 처해있다. 프로젝트에 찬성하는 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댐 반대활동과 토지수용 건으로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며 뇌물을 받을 수밖에 없게 하거나 이 지역에 배치된 정부군과 경찰은 투만독이 사람들을 조직하여 캠페인 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억압하고 있다. 투만독 사람들의 삶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필리핀 신인민군(New People's Army) 역시 할라우댐 프로젝트, 정부군과 경찰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댐 주변지역을 지키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정부군을 향해 신인민군이 두 차례 저격하여 정부군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지법과 국제법을 위반한 할라우강 프로젝트

 

한국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는 할라우댐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필리핀 현지 법과 국제법을 준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들을 어기고 있다. 선주민 인권 보호를 위해 2007년 유엔은'UN 선주민인권선언'을 채택하였고, 그에 앞선 1997년 필리핀 정부는 선주민 권리법(IPRA : Indigenous Peoples Rights Act, 1997)을 제정하여 선주민의 권리를 보호해왔다. 그러나 필리핀 관개청과 선주민청 (NCIP: National Commission of Indigenous Peoples)은 이 두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자유의사에 따른 사전인지동의 (FPIC: Free Prior Informed Consent)'과정을 고의적으로 위반했다.

 

2011년 11월, 필리핀 관개청은 '할라우강 다목적사업 프로젝트(2단계)'에 대한 타당성 조사 보고서를 한국수출입은행에 제출했다. 그러나 타당성 조사 시 진행되었어야 할 FPIC 절차는 타당서 조사 보고서 제출 이후인 2012년 1월부터 5월까지 진행되었다.

 

FPIC 절차 위반의 문제 뿐 아니라, '사전인지동의' 과정은 할라우댐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첫째, '자유로운' 동의는 없었다. 관개청은 프로젝트에 반대하거나 찬성하기 주저하는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등"인센티브"제공하여 이 과정에 관여하였다.

 

둘째,'사전' 협의 역시 없었다. FPIC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 이미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제출되었다. 관개청은 프로젝트의 장점만 부각하여 알리고 웨스트파나이(West Panay) 단층의 존재나 지역사회 침수와 같은 위험요소,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알리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선주민이 "잘 알고" 동의를 했다고도 볼 수 없다.

 

관개청은 웨스트파나이(West Panay) 활단층의 존재에 대해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서 조차 거짓말 했다. "이 단층들은 휴면상태에 있으며 움직임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1948년 파나이섬 최악의 지진 중 하나였던 Lady Caycay 지진에 반한다. 이 지진은 웨스트파나이 활단층에 의해 발생했을 뿐 아니라 55개 이르는 파나이 교회가 파괴되는 등 광범위한 피해를 끼친 지진이었다.

 

할라우강 하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과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협의를 진행한 적이 없다. 2014년 8월, 한국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이 프로젝트의 실행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이 지역에 처음 방문했다. 당시 주요 인터뷰 대상자였던 일로일로주 Dueñas 시장은 할라우댐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협의한 적이 없으며 2014년 8월에서야 주정부 사람들이 프로젝트 발표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대표들을 만났다고 밝혔다.

 

 

선조 묘지와 신성 장소에 대한 모독을 멈춰야

 

필리핀대학교 졸업생인 Mar Anthony Balani와 Jude Mangilog은 할라우댐 프로젝트로 인해 투만독의 조상 묘지와 신성한 장소들이 훼손될 것이라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절멸의 정치: 파나이 섬의 투만독 선조 묘지와 할라우강 다목적사업(2단계)」2)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5개의 투만독 묘지들과 칼리녹주, 일로일로주에 위치한 하나의 성지가 할라우 대형 댐과 접근도로의 건설로 인해 파괴될 거라고 주장했다. 


미국 식민지 시절, 투만독은 위생적인 이유로 묘지 쓰는 것을 저지 받았다. 그 이후 그들은 조상들에 대한 존경심과 이곳에 그들의 혼령들이 살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하고 의식을 행해 왔다.

 

"우리의 묘지를 파괴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관행(Cultural Practices)을 침해하는 입니다. 선조 묘지는 우리 가문의 번창과 전통을 상징합니다. 이 묘지들은 우리의 돌아가신 가족들과 조상에 대한 존경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입니다."
 

- 익명의 투만독-


"우리는 우리 조상을 존경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곳을 훼손하고 댐 건설에 동의 한 사실을 안다면 분명 분노할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다시 한 번 댐에 의해 익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 조상들이 존중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투만독 사람들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 익명의 투만독 -


피해지역을 설명하고 있는 피해지역 선주민 ⓒ JPRM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과 도전들

 

할라우강을 위한 민중행동(JRPM)은 투만독과 하류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의 할라우댐 프로젝트 반대 운동을 위해 2013년 3월 발족했다. JRPM은 당사자들을 위한 연대와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국내 뿐 아니라 국제단체들과의 연대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부터 지속되어온 싸움은 댐 건설을 지연시키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이 성과는 국내 지역 단체와 국제 연대의 노력의 결과다. 특히 공감, 국제민주연대,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 녹색 ODA센터, 참여연대 등 한국 단체의 연대가 없었다면 우리의 반대운동이 한국수출입은행이나 한국사람 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우리 모두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할라우댐이 우리에게 가져올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위협이 심각하여 이 프로젝트를 반대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대형 댐이 있는 마닐라 도심지역 대부분의 지역사회가 경험한 것과 같이 만약 할라우댐이 수문을 열어 물을 방출 할 경우 할라우강 하류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백만 명이 넘는 일롱고 사람들은 모두 침수 당할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할라우댐 프로젝트를 위해 필리핀 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빌린 차관으로 부채에 시달릴 것이다. 원금 89억 2천만 페소(약 2억달러)와 원금에 대한 이자 5억 페소(약1천1백만달러)까지. 이 프로젝트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오로지 공사를 시행하는 한국 기업뿐이다. 댐이 건설되기 시작하면 선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역시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7월16일에서 18일까지 약 3일 동안 국제연대미션(International Solidarity Mission)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프로젝트 반대를 위한 우리의 결의를 강화하고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으로 개인들과 단체로부터 지원과 지지를 확대했다. 우리는 참가자들과 함께 우리의 요구와 권고를 확정했다.

 

우리의 요구: 

 

1. 우리는 필리핀 정부와 관련 기관, 정부군이 투만독의 조상 토지(Ancestral domain)에 대한 권리와 의사 결정 과정을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투만독 사람들은 정부, 관련기관, 군의 강요나 뇌물, 약속 등 그 어떤 구애 없이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 '진짜' 자유의사에 따른 사전인지동의 과정이 실행되어야 한다. 


2. 우리는 교외지역 군사화 중단과 필리핀 정부군, 경찰과 특수부대, 선주민 지역에 있는 무장단체(paramilitary groups)를 포함한 경계부대 철수를 요구한다. 또한 할라우댐 프로젝트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 선주민에게 행해진 인권 침해 현황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한다.


3. 우리는 필리핀 정부가 할라우댐 프로젝트 실행과정에서 발생한 선주민과 피해자들의 재산피해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한다. 


4. 우리는 두테르테(Duterte) 정부가 투만독의 조상토지(Ancestral domain)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형 댐과 조림 프로젝트 등 모든 개발 프로젝트를 재검토 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투만독 사람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5. 마지막으로 우리는 할라우댐 프로젝트에 차관을 제공하는 한국정부가 선주민 공동체와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제기된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기금을 철회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권고:


1. 우리는 독립적인 타당성 조사를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 타당성 조사에는 댐의 구조 건전성,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하류지역을 포함한 댐에 의해 직·간접적 영향 받는 선주민 공동체들의 사회, 경제적 영향 평가까지 포함해야 한다. 


2. 우리는 대형 댐을 대체 할 수 있는 옵션과 대안에 대한 철저하고 포괄적인 평가를 시행하기를 권고한다. 특히 위험이 덜하고 농경 지역에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소형 댐의 가능성에 대해 특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관개 시설의 복구 또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는 할라우강과 파나이강 댐 프로젝트가 세계댐위원회의의 권고안, 사전인지동의 등과 같은 국제기준과 한국수출입은행의 세이프가드(Safeguards)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형 댐 프로젝트로 영향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한국 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에 선주민들의 고통을 알리고 지원 중단 요청 등 도움을 줄 것을 호소한다. 한국 국민의 세금은 투만독과 일롱고, 필리핀 사람들 전체의 삶과 미래를 위협하는 대형 댐 건설이 아닌 다른 프로젝트에 더 유용하게 쓰여야만 한다.

---------

1) 로미오 카스트로는 할라우댐 프로젝트로 인해 자신의 땅을 잃게 될 상황에 처해있다. 로미오의 땅에는 40미터에 이르는 조정지 댐(afterbay dam)이 건설될 예정이다. 

2) Necropolitics: Panay’s Tumandok Burial Grounds and the Jalaur Multipurpose Project Phase II (JRMP II)

 

* 허핑턴 포스트에서 보기 >> 

화, 2016/08/02- 19:17
35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