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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1] 영국 복지 체험기: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국민기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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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1] 영국 복지 체험기: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국민기초선

익명 (미확인) | 금, 2016/07/01- 16:19

영국 복지 체험기: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국민기초선

 

김형용 ㅣ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높은 생활 비용, 더는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최소한의 복지

어찌 보면 영국은 사회 전반이 비용 문제를 두고 매일 전쟁을 치른다. 뉴스에서는 연일 높은 주택 가격과 에너지 요금, 대학등록금 인상, 국민건강서비스(NHS) 재정 적자와 서비스 축소, 캐머런 정부의 환상적인 긴축재정 등이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정점에 이른 브렉시트 국민투표 논쟁도 탈퇴요구 측이 이민자로 인한 공공서비스 부담 등 경제적 손실을 강조하고 나오자, 잔류요구 측이 유럽연합 탈퇴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비용이 가구당 연 4300 파운드(약 7백만 원)에 달한다며 싸우는 식이다. 모든 것이 비용으로 계산되는 이기심과 공공선, 가히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의 나라이다.

 

나에게도 영국 생활의 관건은 일단 높은 비용 문제였다. 1년 체류 계획을 가지고 집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일은 이사하자 마자 날라오는 각종 고지서였다. 수도요금이 450 파운드 (78만 원), 텔레비전 수신료 145 파운드 (25만 원),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카운슬텍스, 즉 거주하는 순간 지방정부가 주택자산에 부과하는 주민세 1,068 파운드 (183만원)이었다. 도모지 믿을 수 없는 금액에,  나는 곧바로 카운슬 (지방정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세금이 제대로 부과된 것 인지부터 확인하였다. 나의 경우 20평 규모의 작은 플랏 (연립주택)이라 아주 낮게 책정된 것 (B band)이며, 뒷마당이 있는 좋은 집에  사는 경우(G, H band)는 2,744 파운드 (470만 원) 정도는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10년 무사고인 나에게도 자동차 보험료 1300 파운드(223만 원), 한 달 전기료 120 파운드 (20만 원) 고지서를 받은 후에야 이 모든 비용을 체념하듯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이후로부터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영국식 생활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비용 문제는 가계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도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영국은 2009년 국가 부채가 GDP의 65.8%에 달하자, 국민들은 복지보다는 어려운 국가 재정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보수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보수-자민당 연정은 2010년 집권한 후 1500억 파운드(270조원)가 넘는 정부 부채를  2019년까지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 과감한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부문 일자리 수는 2009년 637만1천 명에서 2015년 12월 기준 534만7천 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불과 6년 만에 100만 명 이상의 공공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각종 복지는 마가렛 대처 시대보다도 급격히 축소되어, 복지 예산은 지난 5년간 150억 파운드(25조7천억)나 줄었다. 영국재정연구소 (IFS)의 부처별 예산분석에 따르면, 소득보장과 복지급여 업무를 총괄하는 고용연금부의 예산은 이 기간 동안 35%가량 감소하였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방행정부 예산은 46%나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자민 연정이 집권 초기부터 긴축에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회정책이 있는데 바로 교육과 건강이다. 캐머런 정부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다른 정부 부처의 예산은 평균 20.6%나 삭감한다고 하면서도, 교육과 건강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실제로 사회보장의 핵심인 NHS의 예산은 같은 기간 6.2% 증가하였고, 일반 공립학교 예산은 3.0% 증가, 그리고 무상보육 확대 정책에 따라 미취학아동 예산이 39.1%나 증가하였다. 물론 교육과 건강 부문 예산이 충분하였던 것은 아니다. 교육부의 시설 투자 등 자본지출 예산은 41.2%나 줄어들었고, 16 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투자도 크게 감소하였다. 특히 대학등록금 상한선을 9천파운드로 인상한 2010년 이후 영국 대학생은 졸업시 평균 4만 파운드 빚을 지고 있다. NHS는 증가하는 수요에 훨씬 못 미쳐 잉글랜드만 올해 벌써 23억 파운드 적자가 발생하였고, 가디언지 등 많은 언론들이 재정문제로 인한 환자 조기퇴원, 불충분한 정신보건 서비스, 의료 인력의 낮은 처우 문제 등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장애인과 빈곤 아동의 생계 급여 마저 대폭으로 삭감하는 캐머런 정부가 정부 예산의 가장 거대한 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교육과 건강 만큼은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영국민의 소비지출 구조를 통해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영국통계청에서 실시하는 가계동향조사를 보면(2014), 영국민이 교육과 건강에 지출하는 비용은 가계소비지출의 단지 2%와 1%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영국민이 가장 많은 소비지출을 하는 분야는 교통(14%), 주택에너지(14%), 여가(13%) 순이다.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이 철도와 에너지 기업을 다시 국유화 하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영화 이후 교통요금과 전기 가스 요금이 가계 지출의 약 30%나 차지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국가가 주민 생활에 필요한 일반적인 서비스를 시장에 맡긴 결과, 가계가 파탄난 것이다. 반면 여전히 지방정부가 그 책임을 맡고 있는 교육 분야는 단지 주당 9.8파운드(1만6천원) 그리고 중앙정부의 NHS가 책임지는 건강 및 의료에는 7.1파운드(1만 3천원) 밖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 자녀교육에 많은 비용이 예상되는 30~49세 가구주 가구의 경우도 교육비는 주당 10.2 파운드에 불과하며, 학생가구 비중이 높은 30세 미만 가구의 경우가 주당 25.7 파운드를 지출할 뿐이다. 한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교육은 소비지출의 10~13%, 그리고 건강의료는 6%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이 자녀교육비와 그리고 건강의료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과는 비교되는 지점이다. 보편적 복지와 생계의 관계는 이렇게 분명하다.

 

보편적 복지는 우리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와 우리가 얼마나 기본적인 혜택을 받을 것인지의 밸러스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영국재정연구소(IFS)도 사회정책의 재정건전성이란 국민의 욕구가 재원에 의해 제약되는 것을 의미함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보편적 복지에 재정건정성 기준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왜냐면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는 서비스를 판매해서 수익을 올리는 비지니스가 아니라 매년 결정되는 국가 예산에 의해 그 양과 질이 조정되는 것이다. 즉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에 속한다. 영국인들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비용과 혜택에 대한 명확한 연관 고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때문에 시민들은 교육과 건강까지 재정건전성 기준을 적용하거나 시장에 내맡긴다면 그들의 삶은 더욱 더 고위험과 고비용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비근한 예로, 2015년 NHS에 대한 국민만족도는 60%로 나타나 5년 전 70%에 비해 크게 떨어졌고 일반의(GP)에 대한 만족도는 1983년 서베이가 시작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주목할 부분은 39%나 되는 응답자가 정부의 불충분한 재정지원을 불만족의 이유로 꼽았다는 것이다. 영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사회정책인 NHS에 대한 공격은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 : 카운슬텍스의 변명?

도대체 지방 정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길래? 이러한 질문을 갖게 한 카운슬텍스는 불과 한 달 만에 ‘이 정도는 부담해야지’  라는 비용으로 바뀌었다. 일단 모든 서비스에 비용이 붙은 사회에서, 쓰레기 수거와 각종 공원 이용 만으로도 내가 거주하는 카운슬 공공기관의 이름을 끊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 자녀가 다니는 공립 초등학교의 경험이 그 비용을 충분히 상쇄하였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쓰레기 수거, 교통, 경찰 서비스 등 주민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중에서도 지방정부의 주요 세출기능은 교육(34%), 주택(19%), 사회서비스(16%)이다. 이 비용의 약 80%는 중앙정부의 보조금이지만, 자체세입인 카운슬텍스는 지방정부에 납부하는 유일한 세금으로 지방정부마다 그들이 정하는 주민 편익의 수준에 따라 다른 금액을 독자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영국민은 지역의 카운슬텍스가 자신이 받는 공공서비스 혜택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세금과 편익의 인과관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는 정부간 사무구분이 불명확하고 지방정부의 과세자주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 공교육에 대한 만족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결코 교육 수준이 높거나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다. 특히 부모들은 학업 성취도 측면에서 영국 공교육의 붕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반면 만족의 이유는 지방정부 공립학교인 커뮤니티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적절한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특수한 교육적 욕구, 장애, 학업발달 수준, 부모 참여 등에 대한 교육의 기본선은 각종 법령지침에 의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었고, 학교 현장에서 그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먼저 외국인인 나의 자녀의 경우 카운슬에서 배정한 학교 측은 일주일 후 등교할 것을 권했다. 그동안 한국어 통역교사를 섭외해 놓겠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적응하려면 선생님들이 아이를 잘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따라서 한국어 통역교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배정된 학급에는 두 명의 담임 교사가 있었고, 이와는 별도로 두 명의 보조 교사가 번갈아 가면서 학생들의 학업을 도왔다. 또한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은 언어 교사와 하루에 2시간 이상 분리 수업이 진행되었다. 매일 4-5명의 교사가 있는 셈이라, 걱정하였던 외톨이 시간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장애 아동은 어떻겠는가 생각해 보면, 한국의 통합교육이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부모와의 소통도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매주 학교 뉴스레터가 이메일로 보내졌고, 정기적 면담 이외에도 각종 부모참여 행사 참여가 거의 격 주로 있었다. 발달장애인, 소아암 아동 등을 위한 자선 행사 뿐 아니라 지역 프로젝트가 교사 학생 부모의 협업 하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외부로 견학 수업의 경우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의 부모가 동참하게 하였다.

 

영국에서 느낀 보편적 교육은 단지 무상급식이 아니었다(급식은 무상이 아니었으므로), 그 어떤 학생도 교육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고려된 참여의 체계였다. 물론 학교마다 인종 및 계층에 따른 분리 그리고 공교육의 학업 수준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이에 캐머런 정부는 모든 공립 초등학교를 중앙 정부 통제의 효율적 학업중심 아카데미로 전환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아이들이 관심에서 멀어지는 우려가 현실화 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이들은 여전히 카운슬텍스를 더 납부하더라도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지방정부 서비스에서 공교육은 항상 3대 기능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공교육에 대한 이용자 만족도가 75%로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높은 수준이다.

 

NHS : 최상이 아닌 최선의 국민건강서비스

영국 복지의 대명사인 NHS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료한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1948년 도입 당시부터 견지 되어 온 3 가지 원칙 즉 국민 모두에게, 지불 능력이 아니라 임상적 필요에 의하여, 의료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다. 실제로 진료비, 수술비, 입원비, 앰뷸런스 등 모든 의료서비스가 무상이며, 약제비가 일부 부과되어 현재는 8파운드로 한정되어 있지만 이 또한 노인과 학생은 면제된다. NHS에 대한 다른 시각은 의료 소비자의 불만들로서 긴 대기시간, 상급 접근성 문제, 의료진의 낮은 수준, 일률적 보장성 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고열이 나도 감기로는 의사조차 만나기 힘들고, 게이트키퍼인 GP(동네 일반의) 를 만나기 전에는 다른 전문의를 만날 수 없고, 대부분의 의료진은 외국계이며, 값비싼 치료약은 처방되지 않는다 등의 부정적 시각이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 부정적 내용이 사실인지 아니면 이 또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지였다. 그리고 우연히 영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 중에 손가락을 다쳐서 이 참에 NHS의 현장을 확인해 보려고 하였다. 일단 GP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고, 당일 두 시간 후 예약이 잡혔다. 예약한 시간에 찾아가서 곧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으며, 이 영국계 의사는 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다시 GP에 와서 진료받는 것은 시간이 걸리니 골절이 의심되는 경우 곧바로 종합병원 응급실(A&E)에서 치료까지 마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하고 의뢰서를 써 주었다. 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였을 때 응급환자 말고 가벼운 사고 환자들만 접수하는 곳이 따로 있었으나, 긴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방문하였을 때 같은 장소에서 접수 후 곧바로 체크업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과 진료까지 총 시간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되었다. 나를 감동하게 한 것은 이 날 걸려 온 GP 의사의 전화였다. 전일 응급실 방문했다가 되돌아 간 사실을 통보 받은 의사는 자기 환자가 미치료된 것으로 알고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즉 게이트키퍼인 GP에서 상급병원 진료까지 환자 치료정보가 공유되고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체계였다. 일단 내 경험으로 보면 NHS를 공격하는 대기시간, 의료진 수준, 상급 접근성 등은 모두 문제가 없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응급실에서 접수할 때 병원까지 온 교통수단을 확인하면서,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경우는 되돌아 가는 길에 무료로 택시를 불러준다는 것이었다.

 

다만 GP에 엑스레이실도 없다는 것과 한국 동네에 흔한 정형외과 등 전문클리닉이 별로 없어 종합병원까지 간다는 것은 역시 소비자로서 매우 불편한 지점이다. 공공서비스로 의료가 제공된다는 것은 누구나 건강권을 보장받는 확실한 장치이긴 하지만, 동네 슈퍼마켓과 같은 시장 영리의료에 익숙한 나에게는 좋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신속하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이에게 통제된 접근성은 NHS의 가장 큰 불만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영국도 NHS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NHS 헌장은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원칙에 더불어 의료전문성, 환자중심성, 유관기관 파트너쉽, 재정효율성, 대중책무성이라는 원칙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원칙은 일부 민영화로 나타났고, 현재 민간 병원과 민간 의료보험이 10% 이상의 의료공급을 점유하고 있다. 반면 NHS는 위기에 놓여 있는데 95%의 병원, 80%의 앰뷸런스, 46%의 정신건강센터가 적자상태이다. 캐머런 정부는 NHS 예산을 지킬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기만 하였기 때문이다. 보수-자민 연정의 2010-2014 기간 동안 NHS 예산 증가는 연성장률로 바꾸어 보면 0.8%에 불과하고, 이는 1948년 NHS 탄생 이후 가장 작은 증가세였다. 심지어 세계경제위기 시기인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도 연 6.7%의 증가세를 보였다. 의료 수요증가에 따른 충분한 재정적 원조가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NHS 성과지표인 ‘98%의 환자를 대기시간 4시간 이내 진료’라는 지표도 95%로 낮추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HS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전국민의 의료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NHS 무상의료는 의료서비스 품질, 충족률, 효율성 측면 모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영국은 GDP의 8.5%를 건강 부문에 지출하고 있으며, 이는 OECD 평균 8.9%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은 6.9%은 미국은 15.4%이다. NHS 예산은 2016년 기준으로 1164억 파운드이며, 1인당 2천 파운드(340만 원) 수준이다. 그리고 NHS 예산은 일반조세에서 98.8%, 개인이 1.2%을 부담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의료가 무상으로 주어지는데, 한국의 의료 비용 지출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공공의 효율성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지점이다.

 

기본적인 삶의 영역에서 확고한 공공서비스

공공서비스는 국민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보편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비용을 공동으로 국가에 내는 것이다. 영국 복지국가의 탄생인 베버리지 보고서는 그 보편적 욕구에 부응하는 정책을 다섯 가지 기둥들 소득, 건강, 고용, 교육, 주거 정책으로 보았고, 개인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동일한 급여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지향하였다. 가난한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복지는 오히려 빈곤 덫을 야기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동일한 혜택에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베버리지가 강조한 원칙은 국가와 개인 간의 협력이었다. 개인은 그 부담의 원칙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국가는 개인 부담에 따른 혜택을 책임지는 것이다. 양자에게 모두 관통하는 것은 국가기초선 또는 복지기준선이다. 영국의 복지는 최상의 서비스 또는 최고의  성과와는 거리가 있지만, 아파도 병원에 못 가거나 장애를 이유로 학교에서 소외되는 이들은 없다. 베버리지에서 한참을 후퇴한 현재의 영국임에도 그렇다. 불현듯 한국의 사회서비스 정책이 떠오른다. 삶을 유지하는 기본적 영역에서 기초선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은데, 각종 여가 및 음악교습까지 유망 사회서비스를 바우처로 발굴한다는 보건복지부 정책은 도대체 왜 계속되는 것일까.

 

 

참고

비용 문제는 경제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한국 보수 언론 대부분은 캐머런 정부의 긴축을 허리띠를 졸라맨 국가 재건이라고 칭송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 언론들은 캐머런 정부가 2009년 -5.9%의 경제성장률을  2%대로 회복시켰고, 1,592억 파운드에 달하던 정부 재정 적자규모를 822억 파운드 수준으로 줄였으며, 실업률도 5% 이하로 떨어지면서 11년 만에 최저치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의도적 왜곡 또는 정치적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비교 시점이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여 과감한 양적완화가 진행되던 때이기 때문이다. 비교 시점을 이전 정권인 신노동당 12년(1997-2009)을 평균으로 볼 때 최근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낮고 실업률도 높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여 공무원 수가 준 것이 아니라, 알짜배기 국영기업인 로얄메일(우체국), 공립 대학준비과정(sixform college)를 민영화하고, 또한 일부 국유화되었던 로이드뱅크의 일자리를 다시 민간일자리 통계로 바꾼 결과일 뿐이다. 이를 두고 작은 정부 정책으로 인하여 민간 시장이 활성화되었다는 주장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당초 보수-자민 연정은 재정 긴축과 함께 그 해결 방식으로는 공정한 사회 즉 능력 있는 자가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시스템이라고 하였으나(캐머런 총리의 보수당 연설, 2010), 그러나 정작 현실은 서민 부담이 가중되는 부가가치세 20% 인상, 설탕세 도입, 장애인 및 아동복지 급여 삭감, 주택 수당 삭감, 지방정부 돌봄서비스 삭감, 그리고 법인세 대폭 인하  등이었고, 오로지  2020년까지 시간 당 9.35 파운드(약 1만 6천 원)로 인상하는 최저임금 정책만이 그나마 공정한 정책이었다. 재정 긴축은 법인세 인하(28%에서 20%) 등 자유시장에게 줄 선물을 위한 정치적 명분일 뿐이다.

 

 


 

참고문헌

Crawford, R & Keynes, S. (2015). Ch.7. Options for futher departmental spending cuts. IFS Green Budget 2015. Institute for Fiscal Studies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2015). A Report on the Living Costs and Food Survey 2014.
Appleby, J & Robertson, R. (2016). Public Satisfaction with the NHS in 2015. The King’s Fund.
The Office of the Deputy Prime Minister(2005). New Localism- Citizen engagement, Neighborhoods and Public Services: Evidence from Local Government.  http://www.theguardian.com/society/2014/jun/17/nhs-health
OECD(2015). OECD Health Statistic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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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11)
영국인들이 제레미 코빈을 좋아하는 이유?

좌파 공화주의자, 반왕정주의자, 급진주의자, 강성 좌파, 신념에 투철한 자, 구식 좌파, 반전주의자, 공산주의자.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요? 올해 영국 노동당의 당수가 된 제레미 코빈에 대한 수식어들입니다. 영국 노동당에서도 가장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진보적 인물이 당수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세계가 주목했고,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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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영국 노동당은 80년대에 국유화 등의 강경 사회주의 노선을 지속하다가 대처에게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했지요. 그러다가 97년 토니 블레어가 중도노선인 ‘제 3의 길’을 제시하며 정권을 되찾게 됩니다. 이후 13년간 노동당 정부가 통치하다가 지난 2010년 선거에서 패배해 보수당이 집권하게 됩니다. 노동당에서는 선거 패배 이후 토니 블레어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밀리반드의 당수 선출이 유력했지만, 이변이 일어납니다. 당내에서 좌파로 간주되던 동생 에드워드 밀리반드가 노조의 지지를 받아 출마했는데 처음엔 꼴찌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속도로 형을 추격하더니 결국은 1.3% 차로 승리했습니다. 별명이 ‘레드 에드(Red Ed)’였으니, 노동당으로선 이 때 이미 상당히 진보색체를 강화한 셈입니다. 하지만 노동당이 올해 총선에서도 보수당에 패배하면서 에드워드 밀리반드는 당수직을 사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선거에서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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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좌파 의원에서 노동당 당수로
코빈의 승리는 에드 밀리반드의 승리보다 훨씬 큰 충격이었습니다. 에드 밀리반드는 당내에서 좌파로 분류되면서도 대체로 주류에 속한 반면, 코빈은 철저한 비주류였기 때문입니다. 후보 등록을 위해서 35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해 주어야 하는데, 등록 직전까지도 15명에 불과해서 출마를 아예 못할 뻔 했습니다. 선거 흥행을 위해서 좌파 후보도 하나쯤 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코빈을 별로 지지하지도 않는 의원 20명이 서명을 해 주어서 간신히 출마했지요. 이 사람들은 나중에 크게 후회를 했다고도 합니다.

코빈은 노골적으로 사회주의자를 표방하고, 500번 넘게 당의 입장에 반대를 했습니다. 이라크 전쟁도 반대했지요. 제 3의 길 노선에 대해서는 줄곧 비판적이었습니다. 군주국인 영국에서 왕정 페지론자이기도 합니다. 여왕과의 첫 공식 대면에서 무릎을 꿇지 않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레미 코빈의 등장으로 노동당은 중도 노선에서 완전히 탈피했습니다. 공약도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보수당에서 3배나 오른 대학등록금의 철폐, 완전 민영화된 철도의 공영화, NHS(국가무상의료시스템) 민영화 중단, 에너지 산업 공영화 등을 내세웠습니다. 그가 구성한 그림자내각(쉐도우캐비넷-집권후의 장관등를 사전에 임명하는 제도)도 화제입니다.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수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총 31명 중 16명이 여성인데요, 여전히 내무/외무 장관 등 주요 직책이 남성이라는 비판에, 코빈은 우리 내각에서는 교육과 복지가 주요 직책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최근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제레미 코빈 열풍의 대강입니다. 영국 노동당이 진보적 입장을 강화하고 있고, 당내에서 철저하게 비주류였던 한 무명의 좌파 의원이 당원과 일반인 참가자의 지지에 힘입어 당수로 선출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전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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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옆짚 아저씨의 친절한 정치
민주주의 선진국이고 제법 심각하기도 한 영국인들에게 제레미 코빈에 대해 물으면 ‘그의 정책이 진보적이라서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코빈은 누구의 말도 잘 들어준다’, ‘격의없이 사람들과 이야기 한다’, ‘그는 약속한 것을 지킬 것 같은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노선에 앞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신뢰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연설 스타일도 꽤나 충격적입니다. 논쟁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부터 토론과 연설 교육에 중요하고, 대학에는 전문적인 클럽이 있습니다. 정치인을 꿈꾸는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문화를 접하지요.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몸짓, 상대를 적절히 비꼬는 풍자,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표현들을 여기에서 습득합니다. 잘 만들어진 한 명의 배우처럼 말이지요. 코빈은 달랐습니다. 그의 연설은 언제나 참 차분합니다. 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옆 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여기서 ‘그는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며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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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빈은 또 수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노동당 연례 컨퍼런스에서 입고 나온 그의 자켓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가 초선의원이던 시절에, 보수당 소속의 한 의원은 코빈이 누추한 차림으로 방송에 나오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했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례한 요구이기도 한데, 코빈은 ‘의회는 패션쇼장이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대꾸했을 뿐이죠. 지금도 이런 서민적인 옷차림과 온화한 태도는 많은 호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노동당 연례 컨퍼런스에서 그는 특이한 연설을 하나 합니다. 노동당이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당원들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한 대목을 옮겨볼까 합니다.

인신공격에 지친 시민들을 위하여
“우리가 새로운 정치를 위해 해야 하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당수 선거에서 이것을 대해 누차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개인적 비난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존중하십시오. 당신이 대우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우하십시오. 동의하든 안하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논쟁하십시오. 나는 어떠한 무례한 행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사회를 보살필 수 있는 더 친절한 정치(kinder politics)를 의망합니다. 모든 당원들에게 당부합니다. 누구에게든 인신공격을 하지 마십시오. 인터넷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치를 정치로 다시 가져옵시다.” (제레미 코빈의 동영상 보기 ☞클릭)

영국에서는 제레미 코빈이,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도 이런 변화에 열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단지 그들의 노선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을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덮어버린 샌더스, “누구에게든 인신공격을 하지 말라”는 코빈을 보면서, 한국의 진보가 배워야 할 것은 정치를 다시 복원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존하는 정치를 비꼬고 비난하는 것만큼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것도 없고, 정치 혐오보다 진보에게 더 해로운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글_이관후 (연구조정위원 / [email protected])

월, 2015/11/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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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 9월 16일, 영국 의회

매주 수요일이면, 영국 하원에서는 야당 대표가 총리에게 질의를 하는 “총리 질의응답’(PMQS Prime Minister’s Questions) 시간이 있다. 질문 수는 6개로 영국 의회 정치에서 오래된 전통이다. 2015년 9월 16일, 질의에 나선 이는 노동당 대표로 당선된 제레미 코빈이었다. 그의 첫 PMQS 질의였다.

이 날은 돌풍을 일으키며 압도적인 지지율로 노동당 대표에 당선된 ‘강성 좌파’코빈과 캐머런 총리와의 첫 대결이었다. 기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코빈이 총리에게 날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뭔가 격돌의 현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캐머런) 총리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려 4만 건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먼저) 2만 5천명이 이 나라의 주택 위기에 대해 이메일 답장을 주셨고
그 가운데 마리라는 여성의 질문을 대신 묻겠습니다
– 제레미 코빈의 총리 질의응답 발언 중

▲ 2015년 9월 12일 노동당 대표 당선 후 제레미 코빈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그가 노동당 대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2015년 9월 12일 노동당 대표 당선 후 제레미 코빈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그가 노동당 대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코빈은 첫 PMQS 준비를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캐머런 총리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무엇이냐는 이메일을 보냈고, 이후 4만 건의 답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답장을 골라, 대신 읽어나가는 방식을 취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보내온 주택공급 부족에 관한 질문, 세금공제 축소에 대한 우려를 담은 이메일 답신 내용을 그대로 읽어 내려간 것이다.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라’는 코빈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2. 1983년, 런던 이즐링턴

제레미 코빈은 전국공무원노조 생활을 거쳐 런던 지방의원으로 일한 뒤 1983년 33살에 런던 북부지역 이즐링턴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이후 이즐링턴 지역에서 8선을 하며 32년 동안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 제레미 코빈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주로 자전거로 출근하는 등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하다.

▲ 제레미 코빈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주로 자전거로 출근하는 등 검소한 생활로도 유명하다.

‘채식주의자’, ‘자전거족’, ‘평화주의자’,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채식을 즐겨 먹는 그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 가운데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는 ‘아웃사이더’ 일 것이다.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권 집권이후 보수당을 닮아 점차 보수화되고 있는 노동당의 주류노선에 맞서 원내 투표에서 500차례 이상 반대표를 던진 탓이다.

1983년 33살에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30여 년 동안 그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지역민과의 끊임없는 소통이었다. 노동당의 대표가 된 지금까지도 그는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지역구 주민과의 한달 치 대화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다.

지역구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돕고 ,
그도 지역 주민들을 도와줬죠
누구든지 말만 해봐요.
그 사람의 배경이나 피부색에 상관없이 그는 발 벗고 나서줘요
– 런던 이즐링턴 제레미 코빈 지역구 주민

3. 2015년 10월 7일 맨체스터

영국 보수당의 전당대회가 열렸던 맨체스터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1948년 시작된 영국의 무상의료체계인 NHS(국민건강보험)를 일부 민영화하려는 보수당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영국 전역에서 모여든 수만 명의 시민들은 보수당 정부의 긴축 재정과 복지 삭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1948년 시작된 영국의 무상의료체계인 NHS에 대한 영국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세계인들에게 자랑할 정도였다.

▲ 지난 10월 7일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국민건강보험(NHS)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 지난 10월 7일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국민건강보험(NHS)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캐머런 보수당이 추진하고 있는 긴축재정은 영국의 시민사회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대중들의 현실에 코빈은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하고 직설적인’ 목소리로 대중을 적극 대변했다. 의료와 교육 등 공공 지출을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해마다 오르는 요금 인상의 해결 방법으로 철도와 에너지의 재공영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4. 2015년 10월, 런던 서삼웅씨 가정

런던 교외에서 운수업을 하고 있는 서삼웅 씨, 그는 30년 전 영국에 유학 왔다가 영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런던에 정착했다. 그는 런던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수입에 비해 비싸진 물가 때문에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막내 딸 취업이 걱정이다. 케이 팝을 좋아한다는 막내 딸 현아(재스민 서)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현재 직장은 없다. 지난 한 달 동안 약 30곳에 입사 지원을 했지만 아직 한 군데에서도 연락을 못 받았다고 한다.

▲ 영국에서 30여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서삼웅 씨. 정치에 관심이 없던 그의 가족은 최근 어려워진 경제상황과 제레미 코빈 열풍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영국에서 30여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서삼웅 씨. 정치에 관심이 없던 그의 가족은 최근 어려워진 경제상황과 제레미 코빈 열풍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지난 2010년에는 대학등록금을 최대 3배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한 등록금인상법안이 통과됐다. 영국의 상당수 대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많게는 우리 돈으로 1억 원 가량의 빚을 지게 된다. 값비싼 등록금에, 취업난까지 영국의 젊은이들의 삶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아가 최근 부쩍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빚으로 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에는 또 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코빈이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교육에 대한 청년들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졸업 후에는 엄청난 빚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지금 영국 (보수당) 정부는 국민들이 이런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노동당은 반대합니다.
– 제레미 코빈 연설 중

현아 또래의 20대 젊은 층이 정치에 관심을 다시 갖게 만든 것도 제레미 코빈이 만들어 낸 중요한 현상 중 하나다. 코빈이 노동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후 젊은 층의 노동당 가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5. 59.5%의 압도적 지지율, 코빈과 노동당은 성공할까?

30년 비주류 아웃사이더였던 제레미 코빈의 정책은 좌편향에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 유권자들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그를 선택했다.

세계 신자유주의 중심국가인 영국에서 코빈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코빈의 신드롬은 단순히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영국 사회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코빈 정치 열풍으로 한창 뜨거운 영국을 <목격자들>이 현장 취재했다.


취재작가 : 박은현
글 구성 : 김근라
연출 : 서재권, 장정훈

월, 2015/10/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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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11)
영국 신사 제레미 코빈의 친절한 정치

좌파 공화주의자, 반왕정주의자, 급진주의자, 강성 좌파, 신념에 투철한 자, 구식 좌파, 반전주의자, 공산주의자.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요? 올해 영국 노동당의 당수가 된 제레미 코빈에 대한 수식어들입니다. 영국 노동당에서도 가장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진보적 인물이 당수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세계가 주목했고,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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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영국 노동당은 80년대에 국유화 등의 강경 사회주의 노선을 지속하다가 대처에게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했지요. 그러다가 97년 토니 블레어가 중도노선인 ‘제 3의 길’을 제시하며 정권을 되찾게 됩니다. 이후 13년간 노동당 정부가 통치하다가 지난 2010년 선거에서 패배해 보수당이 집권하게 됩니다. 노동당에서는 선거 패배 이후 토니 블레어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밀리반드의 당수 선출이 유력했지만, 이변이 일어납니다. 당내에서 좌파로 간주되던 동생 에드워드 밀리반드가 노조의 지지를 받아 출마했는데 처음엔 꼴찌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속도로 형을 추격하더니 결국은 1.3% 차로 승리했습니다. 별명이 ‘레드 에드(Red Ed)’였으니, 노동당으로선 이 때 이미 상당히 진보색체를 강화한 셈입니다. 하지만 노동당이 올해 총선에서도 보수당에 패배하면서 에드워드 밀리반드는 당수직을 사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선거에서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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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좌파 의원에서 노동당 당수로

코빈의 승리는 에드 밀리반드의 승리보다 훨씬 큰 충격이었습니다. 에드 밀리반드는 당내에서 좌파로 분류되면서도 대체로 주류에 속한 반면, 코빈은 철저한 비주류였기 때문입니다. 후보 등록을 위해서 35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해 주어야 하는데, 등록 직전까지도 15명에 불과해서 출마를 아예 못할 뻔 했습니다. 선거 흥행을 위해서 좌파 후보도 하나쯤 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코빈을 별로 지지하지도 않는 의원 20명이 서명을 해 주어서 간신히 출마했지요. 이 사람들은 나중에 크게 후회를 했다고도 합니다.

코빈은 노골적으로 사회주의자를 표방하고, 500번 넘게 당의 입장에 반대를 했습니다. 이라크 전쟁도 반대했지요. 제 3의 길 노선에 대해서는 줄곧 비판적이었습니다. 군주국인 영국에서 왕정 페지론자이기도 합니다. 여왕과의 첫 공식 대면에서 무릎을 꿇지 않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레미 코빈의 등장으로 노동당은 중도 노선에서 완전히 탈피했습니다. 공약도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보수당에서 3배나 오른 대학등록금의 철폐, 완전 민영화된 철도의 공영화, NHS(국가무상의료시스템) 민영화 중단, 에너지 산업 공영화 등을 내세웠습니다. 그가 구성한 그림자내각(쉐도우캐비넷-집권후의 장관등를 사전에 임명하는 제도)도 화제입니다.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수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총 31명 중 16명이 여성인데요, 여전히 내무/외무 장관 등 주요 직책이 남성이라는 비판에, 코빈은 우리 내각에서는 교육과 복지가 주요 직책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최근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제레미 코빈 열풍의 대강입니다. 영국 노동당이 진보적 입장을 강화하고 있고, 당내에서 철저하게 비주류였던 한 무명의 좌파 의원이 당원과 일반인 참가자의 지지에 힘입어 당수로 선출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전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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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옆짚 아저씨의 친절한 정치

민주주의 선진국이고 제법 심각하기도 한 영국인들에게 제레미 코빈에 대해 물으면 ‘그의 정책이 진보적이라서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코빈은 누구의 말도 잘 들어준다’, ‘격의없이 사람들과 이야기 한다’, ‘그는 약속한 것을 지킬 것 같은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노선에 앞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신뢰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연설 스타일도 꽤나 충격적입니다. 논쟁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부터 토론과 연설 교육에 중요하고, 대학에는 전문적인 클럽이 있습니다. 정치인을 꿈꾸는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문화를 접하지요.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몸짓, 상대를 적절히 비꼬는 풍자,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표현들을 여기에서 습득합니다. 잘 만들어진 한 명의 배우처럼 말이지요. 코빈은 달랐습니다. 그의 연설은 언제나 참 차분합니다. 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옆 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여기서 ‘그는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며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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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빈은 또 수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노동당 연례 컨퍼런스에서 입고 나온 그의 자켓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가 초선의원이던 시절에, 보수당 소속의 한 의원은 코빈이 누추한 차림으로 방송에 나오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했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례한 요구이기도 한데, 코빈은 ‘의회는 패션쇼장이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대꾸했을 뿐이죠. 지금도 이런 서민적인 옷차림과 온화한 태도는 많은 호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노동당 연례 컨퍼런스에서 그는 특이한 연설을 하나 합니다. 노동당이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당원들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한 대목을 옮겨볼까 합니다.

인신공격에 지친 시민들을 위하여

“우리가 새로운 정치를 위해 해야 하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당수 선거에서 이것을 대해 누차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개인적 비난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존중하십시오. 당신이 대우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우하십시오. 동의하든 안하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논쟁하십시오. 나는 어떠한 무례한 행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사회를 보살필 수 있는 더 친절한 정치(kinder politics)를 의망합니다. 모든 당원들에게 당부합니다. 누구에게든 인신공격을 하지 마십시오. 인터넷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치를 정치로 다시 가져옵시다.” (제레미 코빈의 동영상 보기 ☞클릭)

영국에서는 제레미 코빈이,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도 이런 변화에 열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단지 그들의 노선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을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덮어버린 샌더스, “누구에게든 인신공격을 하지 말라”는 코빈을 보면서, 한국의 진보가 배워야 할 것은 정치를 다시 복원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존하는 정치를 비꼬고 비난하는 것만큼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것도 없고, 정치 혐오보다 진보에게 더 해로운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글_이관후 (연구조정위원 / [email protected])

월, 2015/11/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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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사람은 없고 사업만 있다?

저성장시대의 도래와 함께 도시 발전 패러다임이 개발에서 재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2015년 7월 이후 도시재생특별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됨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여러 지자체에서는 도시재생 관련 조례를 제정한다거나 전략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국내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국내에서 진행 중인 도시재생에 사업은 있지만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행정, 전문가, 개발업자는 있지만 주체인 주민은 빠져있다면, 정부 예산이 투여된 사업이 끝나고 난 뒤에도 과연 지역 재생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영국의 도시재생 사례들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지난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진행된 ‘2015 목민관클럽 영국·스페인 정책연수’의 내용을 바탕으로 영국의 도시재생 정책과 사업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 더불어 국내 주민참여 도시재생 정책에 주는 시사점도 짚어봅니다.

영국의 주민참여 도시재생 사례

가장 먼저 소개할 영국의 주민참여 재생 사례는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빌더스(CSCB, Coin Street Community Builders)입니다. 코인스트리트는 런던 템스 강변 남쪽 사우스 뱅크 지역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1974~1984년까지 10년간의 개발 반대 운동으로 민간 개발업자의 개발 계획을 포기시키고, 1985년 비영리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CSCB를 설립하여 스스로 재생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빌더스(CSCB)에서 운영하는 주거단지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빌더스(CSCB)에서 운영하는 주거단지

CSCB의 특징은 ‘커뮤니티 중심 도시재생’이라는 점인데요.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 주체들은 개발 초기 런던 시로부터 부지를 저렴하게 구입하여 임대주택·공원·산책로 등 공공시설을 개발하고, 공장·재래시장 등 기존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수익시설로 운영하였습니다. 또한, 코인스트리트에서는 지역 내외의 다양한 전문가를 확보하여 이사회를 구성하고, 주민대표 그룹·사회적경제 주체·개발회사·전문가·지역의회 의원·행정을 포괄하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모임 또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토지 이용을 비영리로 제한함으로써 부동산업자의 무분별한 개발을 예방하고 토지 매입과 개발을 위한 자금을 융자하는 등의 지역 커뮤니티의 토지 매입 및 개발을 지원하는 런던 시의 정책적 지원입니다.

자산 관리(Asset Management)를 통한 공동체 이익 창출 사례로는 해크니 개발 협동조합(HCD, Hackney Co-operative Developments)과 패딩턴 개발 트러스트(PDT, Paddington Development Trust) 사례입니다. 먼저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이하 HCD)은 1982년에 설립하여 런던 해크니 달스턴(Dalston)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개발회사이자 공동체이익회사(CIC, Community Interest Company)입니다. HCD의 주요 사업은 지역 내 자산을 활용한 공간 임대 사업으로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소기업, 봉사단체, 협동조합 등으로부터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토지 및 사무실을 제공해왔습니다. 임대비용은 대여 건물의 관리 및 유지 보수에 사용하고, 세입자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훈련 및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데 쓰입니다. 이와 더불어 HCD에서는 지역 내 주요 광장인 질레트 광장의 오픈 스페이스 관리와 문화예술 프로그램 운영도 맡아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도 기여합니다.

▲해크니개발 협동조합 건물 입구

▲해크니개발 협동조합 건물 입구

▲질레트 광장 내 리테일 숍

▲질레트 광장 내 리테일 숍

다음으로 패딩턴 개발트러스트(이하 PDT)는 1997년 설립하여 패딩턴과 북부 웨스트민스터 지역에서 시민과 지역단체 기업을 위해 일하는 자선단체이자 사회적기업입니다. PDT 역시 HCD와 유사한 방식을 통해 스토센터(Stowe Center) 등 몇 개 건물을 임대하여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교회 재건 프로젝트, 공원관리소 에너지센터 전환프로젝트 등 자산기반 프로젝트들을 통해 공동체 이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PDT는 지역 사회 자원봉사 중간지원조직이자 앵커조직으로서 지역 주민들을 자원봉사원으로 조직하고 공간·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지역사회 자원봉사 허브(Community Volunteer Hubs)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PDT 대표인 닐 존스톤씨는 “주민들을 교육하여 그들이 직접 이웃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지역 사회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 지역사회 변화에 있어서 무척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패딩턴 개발트러스트 대표 닐 존스톤씨(왼쪽)

▲패딩턴 개발트러스트 대표 닐 존스톤씨(왼쪽)

마지막으로 소셜라이프(Social Life)는 커뮤니티 참여 재생 사례로서 주민참여 재생에 있어서 전문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12년 설립한 소셜라이프는 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으로부터 독립하여 만들어진 사회적기업으로 커뮤니티 참여를 통한 지속가능한 도심 지역 재생을 위해 연구 컨설팅과 사업을 실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소셜라이프에서는 지역 재생에 주민들의 목소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합의형성 워크숍, 딜리버리티드 워크숍 딜리버리티드 워크숍(deliberated workshop, 소셜라이프에서 하는 워크숍 방법 중 하나)을 엽니다. 논의할 논제가 있으면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해야 할 목표(target)를 다 알려주지 않고 부분만 알려준 다음 지난 번 나온 결론과 다른 관점을 줌으로써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개발된 테크닉입니다. 또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 설문 등을 하며, 필요한 경우 주민들로 하여금 다른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커뮤니티 오거나이저(Community Organizer)로 교육하여 의견을 청취하기도 합니다. 소셜라이프에서는 지역 재생에 있어서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소셜라이프 니콜라 베이컨 공동대표(오른쪽)

▲소셜라이프 니콜라 베이컨 공동대표(오른쪽)

영국 주민참여 도시재생의 특징 – 사람·지역사회·공동체

영국 도시재생 사례들로부터 지속가능한 주민참여 재생을 위한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재생 사업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입니다. 코인스트리트, HCD, PDT 등의 사례에서와 같이 지역 커뮤니티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자산을 취득 및 운영하고, 자산을 활용한 커뮤니티 개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장기적인 지역사회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젠트리피케이션 등 재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예방하려고 합니다.
둘째, 재생 사업에 있어서 인적 지속가능성입니다. 코인스트리트에서는 지역 내외의 전문적인 혁신가들을 모아 이사회를 구성하는 등 조직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있고, PDT의 경우 자원봉사자 교육 및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 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로컬리티의 커뮤니티 오거나이저 사례와 같이 주민역량강화 교육과 인력을 양성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재생 사업의 인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셋째, 재생 사업의 제도적 지속가능성입니다. 앞서 살펴본 지역주권법(Localism Act)과 같은 제도를 통해 비영리단체 또는 공동체에만 토지이용을 허가하거나 건물과 토지 매입시 공동체에 우선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 마을계획, 커뮤니티 부동산개발 등의 지역사회 공동체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지요.
넷째, 재생 사업의 방법적 지속가능성입니다. 소셜라이프 사례에서 본 다양한 워크숍 기법들, 사회적지속가능성 프레임 워크 등 주민참여재생을 실현하는 기법들을 통해 많은 주민들이 재생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으며, 재생사업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문제를 합리적인 논의과정을 통해 해결해간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도시재생 정책과 사례들은 주민참여와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국내 도시재생 정책과 사업에서 무엇을 중시해야 하고, 어떤 요인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기본적으로 영국 도시재생 정책과 사례들은 무엇보다 사람과 지역사회·공동체를 중시하고 있으며, 사회적·경제적·문화적·환경적 재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본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참여’, ‘커뮤니티 중심 개발’, ‘자산 관리와 활용’, ‘다양한 사업 모델 활용’, ‘공동체 수익 창출’,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의 융합’ 등의 특징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의 재정적·인적·제도적·방법적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보여줍니다. 비록 제도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수십 년 동안의 도시재생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와 시사점은 걸음마를 하며 첫걸음을 내딛는 국내 도시재생 현실에서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글_장우연(전주시 정책연구소 연구원, 희망제작소 전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참고문헌
• 양도식, 영국도시재생 정책의 실체, 2013
•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2013
• 이은애, 도시재생-사회적경제 아카데미 강의자료,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2015
• 전영우, ‘서울시 파견 공무원의 2년간의 영국 시민사회 견문록’, 영국 스페인 연수 결과보고서
• 전은호, “Locality: 마을 자산 관리의 모델을 찾아”,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2014
• CSCB, Coin Street Community Builders 발표자료, 영국 스페인 연수 결과보고서
• HCD, Hackney Co-operative Development 발표자료, 영국 스페인 연수 결과보고서
• Social Life, 소셜 라이프 발표자료, 영국 스페인 연수 결과보고서
• Social Life, Design for Social Sustainablity, 2012

금, 2015/11/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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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로 인한 위협은 매우 현실적이며, 이에 항상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국민에게 안전하게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안보라는 명목으로 인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존 달후이센(John Dalhuisen), 국제앰네스티 유럽국장

국제앰네스티는 유럽연합(EU) 14개국의 테러 대응조치를 인권적으로 분석한 종합 보고서 <위험할 정도의 과도함: 계속해서 확산되는 유럽의 ‘공안 정국’>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최근 유럽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는 새로운 법률을 통해 유럽은 공안정국 상태를 영구적으로 끌어가고 있으며, 인권을 매우 위험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 보고서는 2년간 EU 회원 1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국제적 및 유럽 규모의 테러대응계획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신규 법안들이 사람들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고, 유럽 사회가 오랜시간 힘겹게 마련해온 인권 보호 장치들을 해체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 Alexander Koerner/Getty Images

© Alexander Koerner/Getty Images

많은 국가의 반테러 조치는 법치주의를 약화시키고, 행정권을 강화하고, 사법적 통제를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며 무절제한 정부의 감시 프로그램에 모든 사람을 노출시키는 내용으로 발의, 시행되었다. 특히 외국인과 민족, 종교적 소수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최근 파리부터 베를린까지 끔찍한 테러 공격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유럽 정부는 과도하고 차별적인 법률을 급히 무더기로 도입했다.

-존 달후이센

존 달후이센(John Dalhuisen) 국제앰네스티 유럽국장은 “이런 식의 테러 대응 방식은 각각을 놓고 봐도 걱정스러운데, 전체를 두고 보면 무절제한 권력이 오랜 시간 당연하게 누려 온 자유를 짓밟는 불안한 모습이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은 테러 대응 조치를 이용해 막대한 권한을 공고화하고, 특정 집단을 차별적인 방법으로 표적으로 삼고, 보호를 가장해 인권을 박탈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자유가 예외가 되고, 규칙을 두려워하는 사회로 변해갈 위기에 처했다.

-존 달후이센

테러 대응조치를 조사한 유럽연합(EU)의 14개국가

테러 대응조치를 조사한 유럽연합(EU)의 14개국가


국가비상상태 선포하며, 집회 금지, 소수자 차별, 사회 비판 가로막아


많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거나 보안국 및 정보부에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기 쉽게 만드는 개헌안 및 법안을 거의 아무런 사법적 검토 없이 통과시킨 경우가 많았다.

  • 헝가리: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공공집회를 금지하고, 심각한 이동의 자유 제한, 자산 동결 등 광범위한 영역의 행정권을 부여하는 새로운 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소동을 진압하는 데 무장한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 프랑스: 국가비상사태를 5회 갱신하며, 시위를 금지하고 영장 없이 수색할 수 있는 권한 등 다양한 인권침해적 조치를 표준화했다.
  • 영국과 프랑스: 이동을 통제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하는 등의 임시 비상사태 조치가 평시의 일반법에 포함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일부 국가는 테러대응법을 소수자와 인권옹호자, 정치활동가를 탄압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

  • 폴란드: 외국인만을 차별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등의 권한을 영구적으로 강화시켰다.
프랑스: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에게 최루탄 가스 발사했다. © JEAN-SEBASTIEN EVRARD/AFP/Getty Images

프랑스: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에게 최루탄 가스 발사했다. © JEAN-SEBASTIEN EVRARD/AFP/Getty Images

프랑스에서 2015년 파리 유엔 기후변화회의 개최를 앞두고 경찰이 ‘비상사태’를 이용해 환경운동가들을 가택연금시켰다.

무차별 집단감시로 도청, 통신네트워크 감시 제재 없이 수행


EU 회원국 중 다수가 무차별 집단 감시를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보안, 정보부에 인권침해적 권한을 부여하면서 “감시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대표적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집단 감시 권한을 인정하거나 더욱 확대해, 수백만 명의 정보를 대량 수집하거나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통제되지 않은 표적감시 역시 대폭 확대됐다.

  • 폴란드: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도청, 전자 통신 감시, 통신 네트워크 및 장치 감시를 3개월간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비밀리에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감시 프로그램 폭로에 관한 취재를 보조하던 브라질 국적 다비드 미란다는 2013년 영국에서 환승을 하던 중에 ‘테러 세력’이라는 이유로 붙잡혔다. 다비드는 “간첩” 및 “테러” 혐의에 관련됐다는 의심을 받고 구금, 수색을 당했으며 9시간에 걸쳐 심문을 받았다. 다비드의 휴대전화, 노트북, 외장 하드 드라이브 등의 소지품은 압수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비디오 감시를 안내하는 표지판 © ROLAND WEIHRAUCH/AFP/Getty Images

공공장소에서 비디오 감시를 안내하는 표지판 © ROLAND WEIHRAUCH/AFP/Getty Images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생각’마저도 ‘범죄’


조지 오웰 소설 속 ‘생각 범죄’의 현대판처럼, 이제는 사람들이 실제 범죄행위와의 연관성이 극도로 미미한 행동만으로도 기소될 수 있다. 반테러 조치의 예방에 더욱 초점을 맞추면서, 정부는 “사전 범죄 예측”에 투자하고 이동의 자유와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 통제 명령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혐의나 유죄 판결 없이도 가택 연금이나 여행 금지, 전자발찌 착용 등에 처해졌다. 이러한 경우 그 증거는 주로 비밀에 부쳐져, “사전 범죄”로 지목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제대로 변호할 수 없게 된다.


난민과 소수집단에 ‘테러범’ 낙인

특히 고정관념에 기반한 자료수집으로 파악된 이주민과 난민, 인권옹호자, 활동가, 소수집단은 새롭게 부여된 권한의 주된 표적이며, 테러에 대해 매우 막연하게 규정하고 있는 법률을 노골적으로 악용하는 대상이 된다.

EU 국가 다수가 난민 위기와 테러 위협을 연관지으려 하고 있다.

지난 11월, 헝가리 법원은 사이프러스에 거주하는 시리아인 아흐메드 H에게 “테러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 “테러 행위”는 국경 경비대와의 충돌 과정에서 돌을 던지고 확성기로 발언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노부모를 모시고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피난을 가는 중이었다. 아흐메드는 돌을 던진 것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현장 영상에는 그가 군중을 진정시키려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아흐메드의 부인 나디아는 국제앰네스티에 “우리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혼자서라도 딸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다하려 하고 있지만 매우 힘들다. 아흐메드가 그립고 걱정된다”고 말했다.

헝가리에서 "테러혐의"로 구속된 시리아 난민 아흐메드 © Private

헝가리에서 “테러혐의”로 구속된 시리아 난민 아흐메드 © Private


표현의 자유 위축효과-인형극 소품,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이유로 어린이까지 무더기 기소


안보 위협이나 “극단주의자”로 낙인찍힐 것에 대한 두려움은 표현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오싹한 효과를 일으켰다.

스페인에서는 인형극 배우 2명이 “테러 미화” 혐의로 체포, 기소되었는데, 풍자 인형극을 공연하던 중 한 인형이 무장단체를 지지하는 내용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프랑스에서도 “테러 옹호”라는 유사한 혐의가 어린이를 포함한 수백 명을 기소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페이스북에 댓글을 단 것과 같이 폭력을 선동하지 않은 것도 “범죄”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2015년 프랑스 법원은 이 “테러 옹호” 혐의로 385건의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피고인 중 3분의 1은 미성년자였다. “옹호”가 성립하는 구성요소의 정의는 극도로 광범위하다.
스페인에서는 인기 뮤지션이 선왕인 후안 카를로스에게 생일 선물로 케이크 폭탄을 보내겠다는 농담을 포함해 올렸던 여러 개의 트윗이 문제가 되어 체포, 구금되었다.

차별적인 조치로 무슬림과 외국인, 또는 그렇게 간주되는 사람들은 매우 부당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국가와 관련 부처가 차별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 “용인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더욱 늘고 있다.

금, 2017/01/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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