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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지·옥·고에 사는 거인</h1>
<h2>전찬영 회원·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장</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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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href="https://www.flickr.com/gp/pspd1994/n8w653" title="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rel="nofollow"><img alt="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height="800" src="https://farm8.staticflickr.com/7908/47174135212_9be5e7f30d_c.jpg" width="534"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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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나 : 전공이 행정학이네요?</p>
<p>그 : 네, 로스쿨이 목표였는데 사회과학 학부에선 행정학이 가장 관련 있겠다 싶어서요. </p>
<p>나 : 잘 모르지만, 왠지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데….</p>
<p>그 : 실제는 안 그렇습니다. 되게 매력 있는 학문이에요.</p>
<p>나 : (믿기 어려워하며) 그렇다면, 매력 어필 좀 해주세요.</p>
<p>그 : 행정학과라 하면 사람들이 짐작하듯이 실제로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요. </p>
<p>근데 제 경우엔 이 공부를 하면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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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대화의 주제는 ‘행정.’ 그러나 정작 나의 관심은 반짝거리는 그의 눈빛에 가 닿는다. 대놓고, 행정이라는 말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한 영혼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중이다. 그 눈빛은 그 건조한 단어 속에서 그가 무언가 따뜻하고 가치 있는 것을 키워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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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2980b9;"><strong>그를 키워낸 것들</strong></span></p>
<p>그를 만난 날은 마침 청년참여연대(이하 ‘청참’)의 총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는 올해 청참 운영위원장을 맡게 됐다. </p>
<p>“청참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2017년에 참여연대 가입했고, 작년에 공익활동가학교에 참여하면서 참여연대에 푹 빠지게 되었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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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대학생 시절 안진걸 전 사무처장이 그의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강연이 끝난 후 그는 ‘저런 곳이라면 꼭 가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p>
<p>“나중에 청참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봤더니 ‘공익활동가학교’라는 게 또 있더라고요.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어요. 무엇보다 평소 궁금했던 것들이 커리큘럼에 모두 들어 있어서 좋았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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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평소 노동, 성평등, 인권, 장애인, 사회 다양성 등이 궁금했다던 20대 청년. 20대에 저런 것들에 도통 관심이라곤 없던 나는 그것들이 대체 왜 궁금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p>
<p>“개인적인 얘기고, 지금 생각해봐도 슬픈 기억이에요. 고등학생 때 피부가 갈라질 만큼 아토피가 무척 심했거든요. 은따, 은근히 따돌리는 것? 대놓고 그러진 않았지만 왕따 비슷한 걸 당했죠. ‘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아픔을 겪어야 되지?’ 그때 입은 상처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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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신영복 선생님은 말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관찰보다는 애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입장의 동일함과 좋은 마음씨 그리고 따스한 애정. 이 온기 어린 단어들이 그의 삶 안에서 입체적으로 구현된 것, 그게 바로 ‘행정’이다. </p>
<p>“행정학은 로스쿨 진학만을 위해 공부하기엔 아까운 학문이에요. 실제로 공부를 하다보니까 정부가 왜 있는 건지, 관료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의미가 뭔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많은 관심이 생겼죠. 그런 것들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정책 과정들을 분석하다 보니까 ‘좋은 행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게 됐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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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 교수가 ‘학문의 왕은 정치학’이라고 말했을 때, 정치가 세상을 바꿀지언정 그 세상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결국 행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던 그.</p>
<p>“그 정도로 매력 있는 학문을 제가 공부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공부하면서 얻게 된 고민과 생각들을 살아가면서 실현하고 싶고 그런 일들이 필요한 현장에 가서 열정을 쏟으며 일하고 싶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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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href="https://www.flickr.com/gp/pspd1994/zz1jt7" title="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rel="nofollow"><img alt="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height="333" src="https://farm8.staticflickr.com/7903/33350552468_d552b82276.jpg" width="500" /></a></p>
<p><span style="color:rgb(153,153,153);">지난 2월 16일, 청년참여연대 제5차 정기총회가 열렸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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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2980b9;"><strong>청년이라는 이름으로 </strong></span></p>
<p>청년참여연대는 2015년에 창립했다. 현재 후원회원과 활동청년을 포함해 약 400명 정도 규모이며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2,30대다. 그가 운영위원장을 맡은 올해 청참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p>
<p>“그동안 청참은 5개의 분과 체제로 나뉘어 있고 각 분과장들 중심으로 활동이 돌아갔어요. 그렇게 분과장들한테 책임이 몰리다 보니까 부담도 되고 분과 활동이 침체되는 경향도 있었죠. 그래서 분과라는 틀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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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F팀과 소모임 중심으로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청참의 올해 목표다. 또 총선이 있는 내년엔 다른 청년단체랑 연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p>
<p>대학 시절에도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행정학과 회장 등 많은 조직을 대표했는데 청참과 다른 게 있다면요?</p>
<p>“대학 때와는 좀 다른 종류의 어려움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대학 때는 함께 일할 집행부들이 탄탄했고 활동비 명목으로 재정적 지원도 받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청참은 구성원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청참의 경우 상근자 한 명에, 활동비 지원도 부족한 편이에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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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내부 사정을 다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이 조직이 만들어진 게 오히려 더 놀라웠다고 말한다. </p>
<p>“청년들이 이 조직에 매력을 못 느끼는 현실이에요. 예를 들어, 지난해 청참에서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청년들과 함께 하는 제주 4.3 기행을 기획했거든요. 근데 펀딩에 실패해서 결국 못 갔어요. 이런 좋은 활동이 있으면 청년들이 열의를 가지고 모여들 텐데, 그때 좀 슬펐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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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결국 모든 게 돈 문제인 거 같아 듣는 나는 맥이 빠졌다. 그런 좋은 기획이라면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알려 펀딩을 받는 방법도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에 자잘한 조언들만 늘어놓았다. 청년 의제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건 뭔가요?</p>
<p>“주거 문제죠. 저도 대학 졸업하고 지금은 반지하에서 살고 있거든요. 빛은 하나도 안 들어오고 창문을 열면 바로 지하주차장이에요. 많은 청년들이 ‘지옥고’ 즉 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고 있어요. 고시원 평균 넓이가 1.4평 남짓인데 청송2교도소의 독방은 2평이에요. 감옥보다 나을 게 없는 환경이죠. 근데 예전에 제가 이 문제로 열린 간담회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거든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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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 자리에 참석한 공무원들은 모두 4,50대의 아저씨들이었다. 청년주거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자들의 입에서 ‘청년들이 사회 기여하는 바는 적은데 호텔 같은 시설을 바란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p>
<p>“그만 좀 징징거려! 딱 이런 태도였어요. 실무를 맡고 있는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며 ‘아, 멀었구나’ 이 생각밖엔 안 들더군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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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행정학을 공부한 그가 제시하는 관료주의 문제의 해법은 ‘거버넌스’다. 대표적인 민관협력 사례로 ‘광화문1번가’가 있는데 그는 그곳에서 두 달 정도 일했다. 위에서 시키니까 그냥 와서 회의만 하고 가는 공무원들도 꽤 있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 길도 어째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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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span style="color:#2980b9;">불효자는 웃습니다</span></strong></p>
<p>참여연대를 알게 된 후, 청참이나 청년공익활동가학교 활동 등을 하면서 그전과 달라진 것들이 있나요? </p>
<p>“너무 많이 달라졌죠. 대학생활 동안은 루틴하게, 특정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대로만 움직였어요. 로스쿨 진학을 위해 아등바등 학점 따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근데 공익활동가학교를 수료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진짜로 고민이란 걸 했어요. 여러 사회 이슈들을 다루면서 생각보다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들도 많다는 걸 알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는 걸 깨달았죠. 이제야 진짜 저 자신을 찾은 것 같아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참여연대를 알게 되었더라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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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일찌감치 불효자가 되겠죠, 그의 말을 자르며 내가 대답했다. 대구에 살며 늘 보수우파 진영에 투표하는 부모님께 참여연대에 들락거리다가 끝내 로스쿨도 공무원 시험도 포기해 버린 아들은 어쩌면 불효자란 단어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가 그런 의미의 불효자를 양성하는 곳이라면 불효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 </p>
<p>“여러 경험들 끝에 꿈이 바뀌었어요. 세상에는 고통받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언제 공부해서 로스쿨에 가고 또 언제 인권 변호사가 되어서 세상을 바꾸지? 언제쯤 내가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깊어지면서 로스쿨을 포기했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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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정확하게 말하면, 바뀐 건 꿈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 고통받는 이들이 없는 세상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좋은 사회 시스템. 그의 꿈은 이것들로부터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p>
<p>“최근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일하게 됐어요. 조사위 일정이 끝나면 업무가 종료되는 계약직이에요. 그 안에 세월호를 조사하는 과가 있고 가습기살균제참사 문제를 조사하는 과가 있는데 저는 가습기살균제 쪽을 지원했고요. 평소 제가 하고 싶고 꿈꾸던 일이기도 하고 또 이 일을 하면서 배울 것도 많을 것 같아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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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가 지금부터 하려는 ‘공무’는 단지 조직을 관성대로 굴리는,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대표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한 개인이나 몇몇 집단의 이익이 아닌 한 사회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의 일상과 안녕을 지켜내는, 그야말로 ‘공공(公共)을 위한 업무’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를 보며 나도 행복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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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마지막으로 청참 홍보 좀 부탁드려요.</p>
<p>“청참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안전함’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생각이나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폭력적인 언어나 상황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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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2980b9;"><strong>지하방의 거인</strong></span></p>
<p>“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저를 이름으로 안 부르고 별명으로 불렀거든요. ‘아토피’ 이런 식으로. 근데 그 와중에 좋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겉모습 말고 제 내면을 봐 주는 친구들도 있었죠. 그런 친구들 때문에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어요. 아, 나도 또래 집단에 속할 수 있구나, 나도 이 사회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안도감을 그 친구들에게서 얻었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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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 경험은 그를 확장시켰다. 자신만의 상처에서 걸어 나온 그는 다른 이의 고통에까지 다다랐고 그 경계는 더욱 넓어져 뭇 시민들의 삶과 그들의 일상을 관리할 좋은 행정 시스템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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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자아의 경계가 당신이 느끼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면, 자신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계 안에서 수축할 것이다. 반면에 다른 이의 것까지 느끼는 이들은 확장할 것이며, 모든 존재에 공감하는 이들의 경계는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홀로 있지 않으며, 외롭지 않고, 자신이라는 섬에 발이 묶여버린 이들과 달리 취약하지 않다. </p>
<p><strong>-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strong></p>
</blockquote>
<p>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방엔, 체구는 작지만 그에게 속한 세상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는, 거인이 한 명 살고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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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p>글. <strong>호모아줌마데스</strong><span> </span></p>
<p>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9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기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p>
<p>사진. <strong>이한나</strong> 미디어홍보팀 간사 </p>
<p>녹취. <strong>조연우</strong> 자원활동가</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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