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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0주년 남북 공동행사가 어려운 진짜 이유, 그 숨은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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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0주년 남북 공동행사가 어려운 진짜 이유, 그 숨은 함의

익명 (미확인) | 월, 2019/02/25- 10:31

언론과 학계,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해 연일 부각시켰다. 같은 해 9월 개최되었던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남북공동행사와 관련한 합의를 해내었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를 위해 그해 12월부터 몇 차례에 걸쳐 장소와 규모 등이 담긴 계획안을 북측에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주 내용으로는 기념 음악회 및 축하공연 개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남북 주요 역사유적지 상호 방문, 남북 공동 학술회의 및 특별전시회 등을 남북 공동행사로 치뤘으면 하는 그런 내용이었고, 2주 정도 남은 지금의 이 상황에서는 이 가운데 일부만, 혹은 축소,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일정변경이나 공동행사의 불발까지 예상해야 되는 그런 의미의 공식발표가 지난 2월 14일에 있었다.

“3·1절이 약 2주 남았지만, 우리측의 제안에 대해 아직 북측의 구체적인 답이 온 게 없다”며 사실상 3·1절 10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규모 있게 치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공식 밝힌 것이 그것이다.

‘사실상’의 무산발표회견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중간 중간 브리핑을 통해서 “현재 정부 입장에서는 실현 가능하고 내실 있게 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설명하는 등 분위기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거짓위장 브리핑이 되어버렸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통일부가 이런 공식발표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 결정적 요인에 다름 아닌, 대한민국정부의 공식태도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북측의 태도문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북측의 문제이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왜 그렇게 바라봐야만 하는가? 3.1운동은 우리역사에 있어 꼭 통합적인 남북의 공통인식이 필요한 그런 역사의 큰 물줄기이다. 공산주의독립운동을 했건, 임시정부 중심의 독립운동을 했건 3.1운동을 빼놓고서는 일제독립 운동사를 얘기할 수 없어서 그렇다. 그런 의미를 갖는 역사가 100주년을 맞이했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의미’의 상징성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공동행사를 치를 데 대한 합의를 했고, 그렇다면 우리정부로서는 그 의미와 합의정신에 걸맞게 100주년을 공동으로 치를 데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야만 했다.

그것도 우리정부의 일방적인 노력과 구상만이 아니라, 즉 우리정부의 독자적인 100주년 기념행사가 아니었기에 상대가 있는 그런 공동행사로 100주년을 치르려고 했다면 그 상대방인 북쪽의 3.1절에 대한 역사적 인식,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3.1절에 대한 그들의 평가, 북의 항일역사 중에서 차지하는 3.1만세운동의 역사적 위상 등등을 면밀히 따져 그들의 역사학자와 충분히 협의하고, 상의하며 북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했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러한 노력은 없이(노력이 있었다면 미흡했다는 말이고), 즉 북과 합의된 남북공동 행사중심의 기획안은 전혀 보이지 않고, 우리정부의 일방적인 기획안과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행사, 그것도 이벤트 중심의 행사로 북을 움직이려 했다면 이는 정말 북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했는지, 했다면 그렇게밖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든지에 대한 궁금증만 증폭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3.1절 100주년이라는 그 역사적 사실과 당위의 중요성과 함께, 남북의 두 정상이 합의한 만큼, 그 행사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뭔지, 그것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면 토론하고, 북과 남이 3.1절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면 서로 치열한 토론과 그 인식에 대한 공통성과 차이성을 토대로 행사를 기획하고 ‘미완의 숙제’는 이후 남북의 학술교류 및 역사학자 교류 사업을 통해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 사업으로 승화시켜 나갔어야 했다.

그렇게 그 과정과 정확히 비례하여 공동행사가 준비되어졌었어만 했으나, 그렇지 않은 결과가 2월 14일 통일부의 발표였고, 더 나아가 남북공동행사를 우리정부가 주도해서 준비해야지 하는 그런 생각이 너무 앞서서 일방적으로 이런, 저런 행사 하자 그렇게 접근했다면 절대로 남북공동행사는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보는 남북 공동행사의 필요충분조건은 분명하다.

우선은, 남북 공동행사(기획안)의 그 삼빡함보다는 3.1절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같이 할 데 대한 노력이 부족하지 않냐싶다.

이유는 생각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남은 임시정부 중심의 독립운동 항일해방운동사를, 북은 김일성중심의 항일무장투쟁세력의 항일해방운동사를 각각 그 역사적 사실로 인식·이해하고 있으니 3.1절에 대한 역사적, 민족적 위상이 전혀 다르게 위치지어 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이 인식의 간격을 어떻게 메꿀지에 대한 작업이 선행되어졌어야만 했던 것이다.

둘째는, 첫 번째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문제의식으로 위의 그러한 문제의식이 그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이번 3.1절 공동행사는 북이 지난 2월에 발표한 <전체 조선민족에 보내는 호소문>에서 담겨진 그 4항 “4.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자!”였는데, 이에 대한 화답으로 3.1절 기념 공동행사를 남북해외가 함께 할 수 있음을 상상하고, “가칭) 3.1절 100주년 기념 전민족인 단합과 단결을 내올 데 대한 남북해외 공동행사”와 같은 그런 전민족대회를 기획해낼 수 있어야만 했고, 그 결과도 “가)3.1절 100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호소문”과 같은 것이 발표될 수 있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남북이 각각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위상을 달리 설정하고 있는 만큼, 그 역사적 인식의 통합과 통일을 위한 “가칭)남북역사학자대회”와 같은 그런 것을 열어 통합된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위상확립을 해내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셋째는, 정부와 관료들의 태도 및 자세문제를 짚어내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심에 과연 통일부를 비롯한 관련부처와 기관, 여당에서 3.1절 기념 남북 공동행사를 실제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제대로 있었냐 하는 그런 문제에 우린 좀 천착해야만 한다.

이유는 3.1절 10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가 부처 차원이거나, 또는 민간차원의 그 정도의 그런 합의사항 정도가 아니라 두 국가의 두 정상이 만나 합의한 최고위급 합의사항이다. 그렇다면 그 합의에 따라 각급의 집행단위는 이를 이악스럽게 달라붙여 실현시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이 그러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고,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나) 결과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어서 그렇다.

해서 얻는 교훈 또한 명확하다.

남북공동행사의 ‘사실상’무산은 남북의 두 최고지도자가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앞으로 우리 민족이 함께하고, 하나 되고, 통일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상징하고 있다.(부차적으로는 관료들의 태도와 자세변화 없이는 남북이 제아무리 좋은 의미에서 합의해내더라도 참으로 어려운 이행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면 교사한다.)

어떻게? 서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고집만 부린다면 정말 통합되고 통일된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하나 되는’과정이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각인시켜 주고, 단일민족이라는 그 ‘준엄한’ 역사성외에 지금은 체제, 역사이해, 삶의 형태, 사고방식, 생활방식 …. 등등 모든 분야에서 차이가 있는, 그래서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단 1m도 전진하기 쉽지 않음을 안내해주고 있어서 그렇다.

다시 말해 그러한 사실적 인식을 바탕 하지 않으면 하나 된다는 의미에서의 통합과 통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렇기에 비록 두 정상이 합의했더라도, 또 남북이 조약과 협정, 선언 등으로 합의하고 약속해내었더라도 열 백번 더해 반복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런 말이다.

이렇듯 ‘지나칠 수 없는’ 공동행사의 무산이고, 그런 만큼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너무나도 깊고 큰 것이어야 한다.

비록 두 정상이 합의했더라도(역설적으로 두 정상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질 수 없다는 것에서 정말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북을 진정성 있게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통 크게 하나 되는 연방연합의식과 민족대단결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정말 분단극복과 하나 된 남북통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뼈 속까지 각인되어져야만 한다.

특히, 정부와 관료는 정말 진정 함께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깨닫고, 심각한 교훈을 그렇게 찾았으면 한다. 민간도 절대 예외이지 않다.

 

통일뉴스, 2019년 2월 15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와 협의하여 일부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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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다른백년에 자유롭게 수시로 기고하시는 김광수 박사의 글로 다른백년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만절필동(萬折必東)과 그림책 <사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의는 지켜지고, 정도(政道)를 넘어서는 감동이 이번 선거에서 꼭 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도 예외 없이 그런 대의존중과 감동은 없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이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정치교본에 따른 선거의미보다는, 정파의 입장과 각 정당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현실의 문제로 더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례위성정당문제이다. 애초 선거법 개정을 통해 얻고자 했던 등가성의 원칙과 소수정당에 대한 배려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다수당이 되기 위한 이전투구만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선거를 정치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이기고지는 게임의 문제’, ‘이익의 문제’, ‘프레임의 개념’으로 이해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고, 이익이 걸려있다 보니 진영논리가 만들어져 네편·내편으로 나눠져 피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고, 더해서 우월적 프레임으로 도그마(dogma)하여 승자·패자를 분명히 하려하다보니 승패만 남게 되어서 그렇다. 그렇게 상대방을 죽여야만 내가 사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게 잔인하다.

연동되어져 진보와 보수를 떠나 과장된 언술과 정치적 선전선동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의도와 속임수는 다반사이고, 주의주장은 포퓰리즘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정도와 비(非)정도는 구분되지 않아 넘지 말아야할 선도 없다. 오직 있다면 유권자와 후보자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직립보행 진화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선거는 현실적인 문제이고, 권력을 향한 무한질주이다.

이를 위해 모든 정치세력들은 프레임 전쟁을 펼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는 세 개의 프레임이 작동한다.

정권심판 VS. 야당심판 VS. 적폐세력 부활저지다.

전자는 미00이, 중간 것은 민00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 것은 시민사회진영의 프레임이다.

과연 어느 프레임이 더 많은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게 되고, 승리하게 될까?

당연히 긴 시간과 역사적 관점, 운동적 대의측면에서는 적폐세력 부활저지가 보다 많은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내어야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 할뿐이고, 그 중심에 우리가(시민사회진영과 진보적 대중정당이) 왜 이번 선거를 전략적 사고로 접근해야하는지,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이 야당심판세력과 적폐세력 부활저지세력 간의 연대여야 한다.

이유는 지금의 현 정부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촛불시민항쟁으로 만들어진 정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당연히 적폐세력을 축출한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 선거는 적폐세력들 간의 부활노림이 최고치로 도달하고 있어 이들 세력의 부활을 막는 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당연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되고 있다.

해서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촛불시민항쟁 버전-2(version-2)이다. 그러니 각 정당들이 제아무리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심판이니, 여당심판이니, 대통령 국정전반에 대한 평가이니 하면서 떠들어 댄다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의미와 본질이 변할 수는 없고,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가 부정될 수는 없다.

똑 같은 적용으로 제 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후보전술의미가 커다하더라도 적폐세력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고, 연동하여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당선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다.(당선시키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오역하지 않았으면 한다.) 철저하게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복무하는 독자후보전술이어야 하고, 당선전략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준점과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이다. 여러 기준점을 상정할 수는 있겠지만, 함의되고 합의되는 지점은 ①친일세력 ②분단세력 ③보수수구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에 대한 입장정리문제이다. 여러 주장들이 난무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정당의 성격이 보수정당이라는 사실,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 정당이 보수수구세력은 아니라는 점, 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대해야 되는지가 분명해졌다.

다름아닌,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 있다면 이 당과는 연대의 관점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설명은 이렇다. 촛불시민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독자적 힘으로 적폐세력의 부활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위 ‘둘째’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려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촛불민의를 100% 반영해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부와 집권여당 민00에 의해 촛불민의가 일부 반영된 개혁입법이 그것조차도 적폐세력의 저항으로 좌절되고 있는 것도 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민00과도 연대해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과반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해야만 하는 당위가 충분히 발생한다.

그렇게 개혁입법을 완성시켜 낼 수 있는 동력이 이번 선거에서 마련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번 선거는 반드시 민00을 포함한 비(非)적폐세력들이 과반이상의 의원확보를 해내어야만 한다.

셋째, ‘첫째’와 ‘둘째’를 함의하는 선거전술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적폐세력 후보를 제외한 모든 당선 가능한 후보에 표를 집중해주고, 정당투표는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선택이 그 정답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다음과 같다.

각 정당들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민00은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서 자당 중심으로 과반이상을 목표로 하고, 반대로 진보적 대중정당은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는 동의하나 자당후보의 당선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나름 전략지구를 중심으로 후보를 내려할 것이다. 후보가 그렇게 대립한다.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위에서 확인한대로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이번 선거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조직적 강화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지역구에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없을 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민00 후보를 찍으면 되겠지만, 문제는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있을 때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셈법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 아니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 구축이라는 명분, 혹은 당원으로서 자당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의 의무를 다할 것이냐에 따라 그 선택지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했을 때 단일화가 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최종 투표선택을 해야 한다.

▪기준1: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 선거의 최고 당면목표는 누가 뭐래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이다, 그래서 이 관점에서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당위이다. 제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와 독자후보전술의 의의가 커다하더라도 이 선거의 의미를 뛰어넘어 설 수는 없다.

해서 감정적으로야 어느 교수의 심정대로 ‘민주당만 빼고’로 투표하고 싶지만,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집권당인 민00이 백번이고 비판받고, 또 역사적으로도 심판받아야 하겠지만, 위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에서 확인받듯이 민00이 적폐세력이 아님은 분명하고, 또 현실적인 측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민00만큼 촛불민심을 제대로 수용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상황은 이 당을 포함한 당선 가능한 모든 비(非)적폐세력의 후보들에게 전략적 투표행위를 해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선거당면목표에 반드시 부합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적폐세력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기준2: 위 ‘기준1’과 같은 기준으로 투표했다하더라도 투표할 기회는 한 더 번 남아있다. 다름 아닌, 정당투표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된 진보의 미래와 평화, 통일을 위한 여정은 계속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마련이 결코 포기되어져서는 안 된다. 해서 비례에 있어서만큼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취지에도 맞고, 또 민00으로는 한국사회의 근본개혁과 통일지향이 불가능함으로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들에 대한 전략적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한다.(여기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라고 복수화한 것은 유권자 각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지지정당 선호도 등에 따라 진보적 대중정당을 달리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

이렇게 이번 4.15 총선은 철저하게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으로 바라봐야 하고, 그러려면 비록 차선(혹은, 차차선)이라도 민00과 함께 적폐세력들의 발호를 막아내어야만 한다. 이것이 민00이 갖는 한계는 명백하지만, 민00을 버리고 갈 수 없는 명백한 이유이다.

그뿐만 아니다. 굳이 이번 선거가 아니더라도 민00과는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온전한 주권국가이고, 분단이 되어있지 않다면 시민사회진영은 위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민들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민00과 후보·정책연대 등을 그 핵심으로 하는 선거연대·정책연대 등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유럽등과 같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직접 창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를 지지하여 일반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숙명은 위와 같은 일반론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사회진영의 정치개입 방식과는 좀 다른 필연을 낳을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국가보안법 등이 존재하여 온전한 정치적 활동을 보장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법·제도의 측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운동방식이 정당정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전선적 조직운동이라는 그 측면 때문이다.

바로 위 2가지가 민00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보수수구이자 적폐세력의 본산인 미00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진보적 대중정당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적 책무라 할 수 있는 분단극복(=평화통일) 실현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이 존재하는 엄연한 상황하에서는 분단을 넘어서려는 그 어떤 정상적인 제도권 정치활동마저도 쉽지 않고, 그렇게 쉽지 않은 만큼 민00을 정치파트너 우군으로 함께 해야 할 전선적 원리가 발생한다.

해서 대한민국 정치는 광의적 개념으로 전선운동으로서의 정당운동도 함의하고, 좁은 의미로서의 제도권 정당운동으로서의 정치운동도 공존하는 그런 개념이 된다.

대한민국 정치의 숙명이 그렇게 규정되어진다.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강화를 주선으로 틀어쥐면서도 비(非)적폐세력인 민00과는 전략적 연대를 끊임없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운동적 요구가 그렇게 발생한다.

그래서 이번 4. 15선거는 현 정국하에서 민00과 함께 과반이상의 국회의원 획득과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원래의 조직적 목적이 충족되는 그런 수확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향후에는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분단극복을 위한 일상적 정치활동이 가능하게 되고, 촛불민의를 보다 일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확장된 정치 공간과 이후 선거에서는 보다 유리한 환경 속에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독자후보전술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이번 선거는 그런 선거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은 코르나19와 적폐세력들의 의도된 ‘낮은 투표참여전략’으로 조직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넘어설 묘책이 필요하다.

▪우선은 이 글 전반에 걸쳐 관통하고 있는 맥락,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을 떠나 크게 대의적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부터 투표허무주의나 무용론에서 빠져나와 차선(혹은, 차차선)이라하더라도 투표하고, 선거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을 반드시 투표장으로 안내하자.

구호는 다음과 같다.

‘4.15투표를 통해 적폐세력 청산하자!!!’,

‘촛불시민항쟁은 4.15투표를 통해 완성된다!!!’,

‘4.15선거투표 없는 적폐청산 없다. 투표로 적폐세력 심판하자!!!’

참여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그렇게 촛불시민항쟁을 계속 이어나가자.

 

민플러스, 2020년 3월 13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토, 2020/03/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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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금 개관한 수요공급에 대한 사고방식은 특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정식화된 케인스의 경제이론과 대조적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적 이단을 정식화한 케인스의 작품 배경은 1930년대 경제의 붕괴였다. 작품의 중심 주제는 수요와 공급이 조정에 실패하여 낮은 수준의 고용과 활동에서 균형을 이루게 된 양태였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형태로나 지금의 형태로나 시장경제가 자체적으로 수정하고 모든 자원을 가장 효율적인 용처에 배정하는 기대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불신할 이유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내가 방금 간략히 제시한 견해와 비슷하다. 노동력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시장경제는 완전고용을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방금 간략히 제시한 접근법이 케인스의 견해와 어떻게 다른지를 표시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제안한 대안적 시각에서 케인스의 교리와 이러한 교리가 제공한 정책적 처방들이 어떤 점에서 결함을 가지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케인스 이론의 첫 번째 제약은 그의 이론이 특수 사례의 이론이라는 점이다. 즉, 그의 이론은 수요와 공급이 조정에 실패하거나 고용과 활동의 위축된 수준에서만 조정을 이루는 많은 양상들 중 하나의 사례에 관한 이론이라는 점이다. 케인스의 이론이 다루었던 특수 사례는 세의 법칙148에 어긋나는 사례, 즉 공급이 그 자체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례이다. 일정한 가격의 고정성(마셜149과 그의 제자인 피구150가 연구한 임금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해 가능해진 저축의 생산적인 투자로의 전환 실패(결과적으로 퇴장(退藏))는 총수요의 유지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다. 유동적인 화폐시장 균형들의 성향에 대한 의기양양함이나 낙담과 같은 인간의 불안정한 기질의 영향은 침체를 확대하고 연장시킬 수도 있다. 신뢰 실패로 시작된 것이 자생적인 수정기제가 있을 수도 없는 실물경제 활동에서 쇠퇴로 마감될지도 모른다. 그 경우 정부는 재정정책 또는 직접적인 정부지출과 활동을 통해 부족한 수요를 만회하고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켜야만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수요와 공급이 상호조정에 실패하거나 침체된 활동 수준에서만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양상에 관한 하나의 설명과 하나의 이론이 있었다.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이 실패하는 많은 양상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앞의 초보적이고 추상적인 개요에서도 이미 시사하였다. 우리는 케인스가 자신의 일반이론을 출판하기 전 몇 년 동안 가끔씩 쓴 글들을 통해 시대의 위기에 대한 다른 대응들과 위기를 이해하는 다른 방식들을 고려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케인스는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이유보다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예컨대, 투자 부족보다는) 수요 부족을 강조함으로써 침체의 특징을 규정하려고 선택했다. 케인스는 수요 부족을 탓하고 재정확장 정책을 해법으로 요구하는 대응이 투자결정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주장하는 대응보다 정치적으로 더 매력적이고 따라서 이행하기도 더 쉽다고 생각하였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미국과 여타 선진국들은 금융위기를 겪었고 실물경제 활동에서 뚜렷한 쇠퇴로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이 1930년대에 케인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다루었던 경제적 붕괴만큼 심각하지 않을지라도 이 혼란은 이 시대의 표준적인 “경기순환”의 차원을 초월하였다. 나아가 이 혼란이 재정부양책과 통화확장 정책의 표준적 대응(케인스의 처방들의 취지와는 반대로, 재정부양책보다 훨씬 더 많은 통화확장 정책)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은 케인스가 직면했던 경제적 붕괴와는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격과 인과관계에서는 다른 붕괴로 곧 인식되었다. 혹자는 이러한 혼란상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금융 불안을 촉발하고 이러한 금융 불안이 이어서 실물경제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된 “대차대조표불황”151이라고 규정하였다.

미국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이 원하는 충분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중단했다. 수십 년 동안 소득과 자산의 급격한 역진적인 재분배가 나타났다. 역진적 재분배는 미국에서 경제성장의 잔여 전략인 저금리정책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통상과 금융 거래에서 나타난 무역 및 자본 적자로 보증된 특히 가계 부분의 부채와 신용의 과도한 팽창을 통해 상쇄되었다. 그 직접적인 원인들의 성격상 이러한 침체는 1930년대의 더 극단적인 위기가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경제의 공급측면에 대한 행동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침체는 케인스의 걸작의 표제와 상관없이 케인스의 교리가 적중하지 못한 것, 즉 수요공급간 상호조정의 실패들에 관한 일반이론을 요구하였다.

케인스 이론의 두 번째 제약은 그 이론이 구조적 내용이나 제도적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케인스 이론은 배교를 의도하였지만 영국의 정치경제학 전통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들 중 하나(즐겨 쓰는 설명 방식에서 제도를 심리학에 종속시키는 특징)를 과장하였다. 케인스 체제의 핵심 개념들(유동성 선호, 소비 성향, 장기적 기대상태)은 완전히 심리학적이다. 인간의 충동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유동적인 화폐시장 균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이렇게 활용함으로써 실물경제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유도한다.

제도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것을 우선시하는 것과 경제의 공급측면을 도외시하고 수요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케인스 교리의 심리학주의와 (한계주의 전통과 일치하여) 경제학을 생산이론이라기보다는 시장에 기초한 교환이론으로 파악한 견해 사이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용과 경제활동의 쇠퇴에 대한 실천적 대응이라는 흥미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찰해보자. 경제의 제도적 안배들이나 생산조직에 대한 어떠한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채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민간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정책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케인스가 말하는 총 수요의 부족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경제의 수요측면에 대한 더욱 효과적인 조치는 구조변화(경제적 기회와 능력에 대한 접근을 확장함으로써 경제적 편익의 일차적 분배를 쇄신하는 제도적 혁신)를 필요로 한다. 어쨌든 적어도 구조변화를 유발할 어떠한 시도도 회피하면서 수요 부족을 처리하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구조변화가 없어도 된다는 시각은 케인스와 그 추종자들에게 견해와 정책적 제안들의 초점을 수요에 맞추게 한 요인들 중 하나였다.

우리가 불황의 원인이 경제의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정을 알아낸 이상 우리는 시장의 제도와 생산의 안배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 접어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경제의 공급측면에서의 조치는 필연적으로 구조적인 조치이다. 북대서양의 부국들에서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이 그러했듯이, 비록 그 목적이 경제적 제도들을 개혁하기보다는 시장경제의 소위 표준적인 형태를 순수한 또는 좀 더 순수한 형태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조치는 구조적이다.

케인스 시각의 세 번째 결함은 다른 두 가지 결함에서 비롯된다. 케인스의 견해가 특수한 사례를 일반적인 해명으로 착각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구조적인 비전도 없이 취급함으로써 싹이 잘려 버렸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미완의 이론이다. 케인스 이론은 노동과 경제의 다른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활동 수준에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에 관한 이론[고전파 경제이론]보다 낫다. 그러나 케인스의 이론은 경제에서 영구적인 불균형이론보다 못하다. 이러한 영구적 불균형, 달리 말하면 붕괴에 대한 취약성은 내가 여기서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는 구조변혁을 통해서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케인스 이론은 내가 설명한 처음 두 가지 제약 때문에 그와 같은 이론이 될 수 없다. 첫째로 케인스 이론은 일반이론이 아니다. 케인스 이론은 노동과 자본의 상대적 권력들, 실물경제에서 금융의 위상 나아가 경제주체들의 문화와 의식의 더욱 무형적인 변형들을 통제하는 제도적 법적 안배들이 어떤 모습인지에 따라 가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될 임금의 하방경직성이나 퇴장성향과 같은 요인들에 결정적인 비중을 부여한다.

둘째로 케인스 이론은 시장경제의 대안적인 조직방식에 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케인스 이론은 실물경제 활동에서 붕괴들(공급과 수요의 상호조정이 자생적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붕괴들)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다소간) 경제조직 방식(어떤 경제조직방식이 실물경제 활동에서 붕괴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지 혹은 낮은지)을 공급측면에서도 수요측면에서도 구별할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론에서는 경제가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의 실패에 당연히 취약한 것인지 아닌지를 말할 근거가 없다. 어떤 특수한 가정들(예컨대, 임금인하에 맞서 임금을 방어하는 노동의 힘, 투자 결정을 통제하는 자본의 힘, 생산적인 투자에 저축을 유보하는 저축자의 힘 등에 대한 가정들)을 고려할 때, 여건들의 예측가능한 결합 때문에 완전고용은 항상 달성될지는 않는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결합에 대해서는 특수한 처방이 존재한다.

이와는 달리 내가 여기서 요약한 견해에 따르면 경제는 어떤 것이 일어날 때까지는 영구적 불균형(공급과 수요는 서로 조정하지 못하고 수요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반복적인 돌파구들을 위한 기제를 제공하지도 못한다) 상태에 있다. 여기서 말한 어떤 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구한 경제적 진화의 산물이고 또한 이러한 진화를 완성하기 위해 분권적 경제를 조직하는 제도뿐만 아니라 그 생산방식에서도 변화를 요구한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른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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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9/1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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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 2020/03/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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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하였고, 9월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였다. 이 한 달 동안 한국 언론은 조국 법무부장관후보에 대한 사상 유래가 없는 치열한 검증보도를 하면서 이번 사건의 핵심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검찰도 국회인사 청문회가 끝나던 그 시각에 조국 신임장관의 부인을 기소함으로써 또 다른 핵심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정치권과 언론, 검찰이 플레이어가 되어서 만든 조국 이벤트는 광화문과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주최 측 추산 2백만 혹은 3백만의 시민을 끌어내는 마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을 광장으로 호출한 블록버스터급 흥행성공에도 이벤트의 주역인 언론과 검찰이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검찰은 연일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 수사와 기소독점, 불공정한 검찰권 집행 등의 이슈로 궁지에 몰리고 있고, 언론 역시 부실한 사실검증과 편향된 보도, 의혹 부풀리기 등의 잘못된 보도관행으로 시민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조국장관은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론 검증 보도량 감당할 수 없을 정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네이버에서 후보자 신분이던 한 달 동안 관련기사를 검색한 결과 적게는 13만 건, 많게는 80만 건이 검색되었다고 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장관임명 직후인 9월 10~24일의 15일 동안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된 단독기사는 7개 종합일간지 99건, 7개 주요방송국 67건으로 총 16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단독보도 중 검찰 및 법조계를 출처로 하는 보도가 81건에 달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이렇게 많은 기사와 단독보도들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조국장관을 둘러싼 사건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정치권과 언론, 검찰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구체회되고 있다. 시민들은 지난 10년간 진행된 서울대 입시의 실태도 알게 됐고, SCI논문의 저자 적격성 기준도 알게 됐다. 동양대에서 조국장관의 딸이 어떤 봉사를 했고, 장관의 부인이 해명 과정에서 손을 떨었다는 사실도 안다. 심지어 장관 딸의 중2 때 일기장의 압수수색 과정과 압수수색에서 검찰이 먹은 식사메뉴까지 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의 의미와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추측한다. 이건 시민들뿐만 아니라 정작 보도를 하는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는 ‘추측 된다’ ‘알려졌다’ ‘의혹이 있다’로 도배되어 있다.

언론 보도는 경우에 따라 ‘사실(fact)’이 ‘진실(truth)’을 감추는 경우가 생긴다. 격투기선수 출신인 K씨와 평범한 일반인 L씨의 싸움을 상상해보자. K씨와 L씨는 우연히 만난 술자리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주먹다짐으로 벌였다. 당연히 격투기 선수 출신인 K씨가 L씨를 늘씬하게 두들겼는데, 이 과정에서 L씨도 저항하면서 K씨를 몇 대 때렸다. 다음날 기사에 L씨가 격투기 선수출신 K씨를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왔다면 어떨까? L씨가 K씨를 때린 건 팩트다. 그렇지만 사건의 실체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실보도가 아니며, 이런 뉴스가 바로 가짜뉴스다.

바람직한 보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있어야 한다. 진실보도는 사실성, 완전성, 균형성, 투명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진실보도는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사건을 분절화 파편화해서 퍼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최대한 모두 그려야 한다. 또한 진실보도는 이해당사자 모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담아야 하고, 취재원이나 정보 소스에 대해서 가능한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기자들은 조국장관에 대한 보도가 과연 이런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하고, 독자들 역시 이런 기준을 갖고서 보도를 접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조국장관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보도에 남발되고 있는 ‘의혹이 있다’, ‘전해졌다’, ‘짐작된다’, ‘예상된다’, ‘추정된다’ 등의 추상적 서술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보도가 가진 사실성은 끊임없는 사실확인, 팩트검증에 의해서 충족될 수 있다. 80만 건에 이르는 보도가 얼마나 사실확인, 팩트검증을 거쳐 작성되었는지 알 도리는 없으나, 보도된 내용 자체만 보아도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보도가 얼마나 보도의 완전성을 추구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조국장관 일가에 대한 수십만 건에 가까운 보도들을 통해 조국장관 부인의 손에 떨렸는지, 압수수색이 몇 시간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검찰이 짜장면을 먹었는지 한식을 먹었는지를 아는 것이 사건의 진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고, 이런 것이 단독이나 특종이라고 올리는 언론사들이 정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파편화되고, 분절된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들이 혹시 본 사건의 진실을 덮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마치 백대 때린 가해자를 폭행당한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부리려는 의도가 없기를 바랄뿐이다.

현재 조국장관 관련 보도에서 불편한 점은 균형성에도 있다. 우리는 검찰이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검찰의 행위를 공적인 행위 내지 중립적인 행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검찰이 기소를 하면 당연히 죄가 있으니까 국가가 나섰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해서 검찰은 소송의 당사자이다. 검찰이 사건 심판의 주체라면 굳이 재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검찰이 다 판결을 내리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언론 보도는 당연히 검찰의 주장과 동등하게 피의자에게 반론권을 제공하는 것이 정당하다. 사실 이런 검찰의존의 관행을 깨고 법원내지 공판 중심의 보도관행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계 내에서도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은 검찰의존적인 취재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몰고온 논두렁 시계보도의 참극을 겪고도 여전히 언론은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는 최대한 투명해야 한다. 보도의 내용은 언제나 검증을 통한 사실확인의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 사실에 대한 검증과 재확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취재원이 투명해야 한다. ‘관계자에 의하면’이 남발되는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다. 최소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이 드러나야 하고, 취재과정에서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모든 지식과 정보가 검증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룰을 가진 세상을 살고 있다. 아무리 확실하고 논리적인 지식 내지 정보라도 타인의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지식이나 정보로서 인정되어서 안 된다.

기자가 진실보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무한한 팩트 검증도 불가능하고, 사건 전체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해당사자들의 사이에서 균형잡힌 보도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계적 중립은 가능할지 모르나 균형의 추는 항상 모호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취재원을 밝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취재원이 공개에 동의를 해야 하고, 취재원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자에게 진실보도는 시지푸스의 바위와 같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조국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80만 건의 보도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80만 건의 보도가 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더 나아가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보루로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많은 시민들이 왜 기성언론을 불신하고 언론개혁을 이야기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휘두른 검이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되었듯이, 이제 검찰을 개혁하고 나면 그 다음 우리사회의 특권과 반칙을 뿌리 뽑기 위해 개혁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언론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정완규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원

화, 2019/10/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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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칼럼_181004(2)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칼럼_181004(4)통일뉴스
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목, 2018/10/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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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재개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 마련해야-정부 대화 재개를 위한 적극적이고 유연한 입장...
화, 2015/06/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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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06/2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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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비핵화를 위한 6+1 민간대화

울란바토르 프로세스

 

2015년 7월 23일(목) 오전 10시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순서

 

발표1. 한반도/동북아 갈등해소와 평화 수립에서 민간대화의 의의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발표2. 울란바토르 프로세스 발족까지의 배경과 구성

            정경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국제협력위원장

발표3. 울란바토르 프로세스의 향후 계획과 전망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질의응답

 

 

울란바토르 프로세스란?

‘무장갈등 예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for the Prevention of Armed Conflict, GPPAC)’ 동북아시아 위원회 주최로 2015년 6월 23일부터 24일까지 양일간 몽골에서 개최된 ‘울란바토르 프로세스 -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시민사회 대화’회의의 결과로 발족이 결정되었습니다. 역내에 군사적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지만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부재하다는 점에서 지역 내 시민사회 간 대화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된 것입니다.

 

>>> 관련 보도자료 보러가기 "울란바토르 프로세스 발족"

 

 

주최      참여연대   l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문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02-723-4250 [email protected])

 

 

수, 2015/07/1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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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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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잘 됐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이번 공동보도문이 나오지 않았다면…칼을 뺏던 사람들이 칼을 휘두르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야? 자존심이 있으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합의문은 잘 된 합의문으로 평가합니다
–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8월 4일 : 목함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 2명이 중상을 입으면서 시작된 남북간 준전시상태가 보름만에 해소되고 남북공동 합의문이 발표된 것에 대해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론 이는 대승적 차원의 시각이다. 남북이 합의한 공동보도문 내용은 청와대나 집권당이 대치 기간 중 쏟아낸 다짐과 비교하면 상당한 거리가 있다.

8월 24일 : 남북회담이 진행되는 도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무엇보다도 현 사태를 야기한 북한의 지뢰 도발을 비롯한 도발 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며 북한의 확실한 사과를 요구했다. 같은 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다시는 도발의 도 자도 꺼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8월 25일 : 남북회담의 대표였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면서 이번 회담은 “근본적으로 금번에 발생한 지뢰도발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 북한이 주체가 되는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 방지의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정 수뇌부의 공언과는 달리 남북공동보도문 어디에도 북한이 주체가 되는 사과나 재발방지의 약속은 없었다. ‘유감’이라는 공동보도문의 문구는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의 강경 입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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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남북협상엔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합의문의 문구보다는 일단 남과 북이 화해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게 대통령이 사실은 그날 24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전 정권들과는 달리 지뢰도발에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시하는 그런 식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큰소리를 쳤지.그런데 그럼 난 이번 협상은 결렬이다, 그렇게 되면 합의문 못 만든다 생각했는데, 결국 12시간만에 주어가 분명치 않은 어떻게 보면 유체이탈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거에요.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합의문구에서 좀 손해 보고, 이익 보고 이런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요.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김정은이 이런 합의에 개입을 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냈잖아요. 이것은 굉장히 실용주의적인 김정은의 협상태도를 증명해 냈다는 하나의 케이스가 될 수 있다…그런 면에서 좋은 기회가 된 거죠.
–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문가들의 말대로 남북 관계라는 것은 누가 이기고 졌는지를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애당초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 서로의 체면을 감안하여 합의사안에 대한 문구도 모호하게 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번 합의문이 그런 경우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왜 임기의 절반인 2년 반 동안 제대로 된 대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북한과 소모적인 신경전만 벌였던 것일까? 전문가들이 이번 합의를 만시지탄이라고 아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남북간에 합의하면 되는 겁니다. 얼마든지 가능했어요.그런데 그동안에 사람이 죽고 다치고, 주민들이 생업현장에서 뿌리 뽑혀가지고 무슨 난민 수용소 같은 데 피난을 가질 않나. 이런 것들이 국가적으로 아픔과 손실을 겪고 2년 반만에 왔다는 그 자체가 아쉽습니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이명박 정부 이후,그리고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꼬일대로 꼬여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나 ‘통일 대박론’을 내세웠지만 남북관계는 더 악화됐다. 정부는 수시로 응징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남북 간의 대화나 소통은 없이 간헐적 도발과 신경전만 지속됐다.

▲ 박근혜 대통령, 2014년 7월 16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

▲ 박근혜 대통령, 2014년 7월 16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

이렇게 수시로 남북 간의 군사적 마찰이 일어나다 보니 지난 20일 남북의 포격으로 대치 국면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미 국무부의 기자 브리핑 룸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이란, 시리아, 인디아, 파키스탄, 이집트 문제 다음에 겨우 6번째로 거론됐다.

더구나 미국 기자의 질문도 북한의 도발이 한미군사훈련 때면 으레 발생하는 도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링크).

현재 미국에선 내년 대선에 거의 모든 신경이 쏠려 있고, 중국은 위안화 하락과 주가폭락을 겪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한반도에서 긴장이 격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상황이 이번 남북 합의를 이끌어 낸 하나의 배경이 됐다는 진단도 있다.

미국 국방예산이 매년, 2013년부터 500억 달러씩 삭감되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잖아요.그런 점에서 한반도에서 새로운 군사개입의 불가피성이 대두되면 미국이 참 곤혹스럽습니다. 그래서 미국도 되도록 말로 풀어라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한국정부가 북한과 대화할 수 있도록 우선 미국이 강력한 방향제시를 했다는 거, 또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 이런 열병식을 앞두고 전승절 행사를 앞둔 상황에서 평화를 깨는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비공식적으로도 전달했고, 그러다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합의 바로 전날 환구시보에 열병식 행사를 저해하는 세력은 반드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이 나왔던 것이죠.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어떻게 대화 자리에 앉게 됐느냐? 그건 국제사회가 개입을 했다, 그런 추측을 우리가 하고도 남습니다. 전쟁위기로 가는 것은 미국과 중국, 국제사회 이익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계산들이 있었다고 보고,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강력한 개입으로 소위 무박 4일이라는 협상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죠.
–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26일) 새누리당 의원 전원을 초청한 오찬에서 이번 남북협상과 관련해 ‘끝까지 원칙을 지켰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이번 남북 합의가 대통령 임기를 절반이나 보낸 뒤에 사실상 최초로 이뤄낸 진전이란 점에서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이번 협상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는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절 자주 이뤄졌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협의를 다시 진행하기로 하고, 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 회담을 개최하기로 겨우 합의했을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남북 관계는 돌고 돌아 이제야 이전의 자리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수, 2015/08/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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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정리는 곧 업로드 예정입니다.※자료집은 아래 첨부파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수, 2015/09/0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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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 디자이너 1기 - 동북아과정
<새롭게 그리다,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상상>
 
 
평화교육 디자이너가 되어주세요!
어려운 평화 이슈, 색다르게 배워서 기막히게 풀어내기
평화가 껴안은 통일교육, 새롭게 해보기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상상하고 평화교육을 새롭게 디자인 해보기
새로운 내용으로 가득찬 참여연대 평화교육 디자인 과정의 평화디자이너를 모집합니다.
 
 
■ 모십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상상하고 새로운 비전으로 평화교육을 디자인 하고자 하시는 분
평화로운 한반도를 상상하며 남북화해-통일 관련 교육을 새롭게 하고자 하시는 분
새로운 상상이 필요한 평화활동가
새로운 방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평화교육을 디자인 하고자 하는 분
 
■ 프로그램의 특성
참여연대 평화교육 디자이너 과정은 1년 과정으로 1학기, 2학기로 구성됩니다.
- 2016년 봄학기에 개강할 2학기 과정은 ‘국제분쟁과 평화세우기’입니다.
매 수업시간마다 온라인 자료와 인쇄 자료를 제공합니다.
평화교육 디자인 과정을 수료한 참가들에게는 참여연대 평화교육 디자인 과정 교육안과 자료를
  제공하여 향후 평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평화교육 디자인 과정을 수료한 평화디자이너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소통의 기회를 마련합니다.
 
     ■ 강좌 일정 

 

 
날짜
순서
주제
강사
10.01
1
[상상하다] 평화교육 디자이너 되기
평화교육의 기본 지식과 개념
깊은 변화를 위한 평화교육의 원리와 방법론
한 세션의 구성과 진행 준비
이대훈
이미현
10.08
2
[배우다] 한반도 경계를 넘어 상상하기
분단 70년, 전환기의 동아시아
한반도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비전: 역사와 흐름
한반도의 위기와 평화 비전: 표준 교안 익히기
이태호
10.15
3
[그리다] 평화교육 디자이너의 가치와 태도
기본 소통 역량
민주적 참여적 비판적 교육의 원리와 방법
학습자의 평화의 가치 형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 소개
이대훈
10.22
4
[배우다] 평화를 준비하는가, 전쟁을 준비하는가
동아시아 군비경쟁 실상
군사동맹과 전쟁위기: 동북아의 군사동맹 실태
동아시아 군사기지와 그 영향력
군사동맹: 표준 교안 익히기
박정은
10.29
5
[그리다] 평화교육 디자인 방법 및 실습
표준 교안 사용하여 세션 구성하기
배움 촉진을 위한 다양한 실습활동 설명 및 연습
군비경쟁 주제에 따른 민주적 참여적 비판적 교육방법
군비경쟁 주제에 관한 보조 자료 익히기
이대훈
11.05
6
[배우다] 평화로운 한반도 상상하기: 가깝고도 먼 남과 북
- 북핵위기, 평화체제의 가능성, 남북한 인권문제, 남북화해협력
한반도 평화와 국제정세, 그 시사점
남북관계 현안과 통일: 표준 교안 익히기
서보혁
11.12
7
[배우다] 평화시민의 역할과 평화시민 되기
인권, 민주주의, 평화의 상관관계
평화적 시민의 가치와 사유
평화적 시민의 역할과 위상 표준 교안 익히기
이경주
11.19
8
[공유하다] 나의 평화교육 디자인 선보이기
교육 실습과 평가
보완할 점 찾기와 계획 세우기
이대훈
이미현
 
       ※ 매회 사전 필독 학습 자료가 있으며, 매 강의는 충실한 사전 학습에 기반 해서 진행됩니다.
 
■ 강사 소개 
이대훈 성공회대 평화학 연구교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이경주 인하대 법학과 교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 강좌 정보 
일 시 : 2015. 10. 1 ~ 11. 19 (목) 총 8회 오후7시 ~ 9시30분
장 소 : 참여연대 지하1층 느티나무홀
인 원 : 25명이내
수강비 : 20만원 (참여연대 회원 30% 할인)
 
강좌 신청하기 >>http://goo.gl/NrJQkf 
 
금, 2015/09/1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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