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한반도 전쟁위기 완화가 반갑잖은 미국 전문가들

지역

한반도 전쟁위기 완화가 반갑잖은 미국 전문가들

익명 (미확인) | 화, 2018/01/16- 14:47

한국 비무장지대에서 열린 지난 주 회담에서 남한은 북한의 다가오는 동계 올림픽 참여를 환영했다. 또한 남북한은 이산가족의 상봉 재개와 한반도 긴장 완화에 관해서도 논의했다. 이에 앞서 양측은 핫라인을 복구했다.

이러한 어른스러운 대화는, “노망난(dotard)” 미국 대통령 혹은 평양의 ”꼬마 로켓맨(little rocket man)” 등 경멸적 욕설 전쟁으로부터의 환영할 만한 전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 전문가들은 그들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오로지 단 한 가지만 걱정한다. 북한이 남한과 미국을 이간하는 데 이번 회담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C0A8CA3C00000160C016180A0001F840_P4
(이미지:연합뉴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스콧 스나이더(Scott Snyder)는 김정은의 접근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에게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수도 있을 만한 양보”를 받아들이도록 덫을 놓는 술책이라고 추측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직에 있었던 대니 러셀(Danny Russel)에 따르자면, “이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북한이 못되게 굴 때에는 나머지 다섯 국가가 연대를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법이다.”

우파 단체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Nicholas Eberstadt)는 “평양은 남한을, 북한에 대한 전 세계 차원의 비핵화 압력 규합에서 약한 고리라고 간주한다”고 경고하면서 서울이 이에 “놀아나지” 말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뉴욕타임스에 “북한에 대적하는 통일전선”이란 제목의 글을 기고한 윌슨센터의 로버트 리트바크(Robert Litwak)도 있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김정은의 의도를 경계해야만 한다.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추가 시간을 버는 술책이 그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단순히 경제적 이득을 얻어내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아니면 김정은의 접근은, 남한과 초강대국 후원자 미국을 이간시키려는 전적으로 전략적 시도일 수도 있다.”

리트바크의 모든 논의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말하는 ‘우리’란 그 자신 혹은 가족을 의미하는가? 그 자신과 트럼프 행정부인가? 미국 국민 전체인가? 미국 국민 전체와 남한의 모든 사람인가? 혹시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가?

그런 식의 모든 주장을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우리’를 명확하게 규정한다면 이렇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피하려는 모든 사람들이다.

남북한이 미국을 배제하기로 합의한다면 나로서는 대단히 기쁠 것이다. 워싱턴을 책임지고 있는 현 행정부는 의심할 바 없이 완전히 미쳤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 마이클 울프(Michael Wolff)의 최근 저서를 인용할 필요도 없다. ‘화염과 분노’의 내용 중 절반만 맞아도, 이전의 공식 기록 중 일부가 사실임을 간단하게 입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현재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극악한 인권침해 정권 중 하나이고 이를 이끄는 무자비한 지도자의 통치를 받고 있다. 김정은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0(아무 문제없음)에서 10(화염과 분노)에 이르는 대재앙의 잣대로 보자면, 나는 미국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인 “버튼”이 그리고 동북아시아에 어마어마한 참사를 가져올 수 있을 트럼프 행정부의 능력이 더 걱정스럽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벌어질 전쟁이 가져올 수 있는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는 북한에 대한 제한적 군사 타격을 실행할 수 있을지를 여전히 논의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 밖에서도, 아직도 케케묵은 냉전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에드워드 러트워크(Edward Luttwak) 같은 전문가들은 정부에게 폭격을 시작하라고 계속 촉구하면서 앞뒤 가리지 않는 언사를 한다.

이렇듯 워싱턴에 군사주의 열풍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이 주도하여 한반도를 전쟁의 벼랑 끝에서 되돌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1094340298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심벌.

남한 지도자들 깔보는 미국 전문가들

남북이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미국 전문가들은 거의 똑같이 이렇게 말한다. “어이, 남한 사람들! 우리를 잊으면 안 돼! 한국 민족주의 때문에 관점이 흐려지면 안 된다고! 유화책을 요구하는 폭력적인 북쪽 파트너의 계략에 빠져서는 안 돼!”

워싱턴의 ‘큰 형님’ 도움 없이는 남한의 지도자들이 정책을 만들 수도 없다는 식의, 그야말로 깔보는 태도이다. 사실상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과의 협상에서 그리고 역동적 상황변화 전반이 여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트럼프 행정부를 안심시키는 데에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남북대화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 데 대하여 트럼프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사실과 다를지는 몰라도 영리한 주장이다.)

솔직해지자. 북한은 당연히 워싱턴과 서울의 이간을 시도하고 있다. 여러분,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정학이다! 미국은 언제나 그렇게 행동한다. 1970년대 중국과의 데탕트란,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확실하게 이간하려는 워싱턴의 시도가 아니었던가?

이간의 정치가 북한이 시도하는 전부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북한은 사용할 수단이 별로 없는 허약한 국가이다. 경제 압박? 모잠비크와 비슷한 GDP 수준의 나라에게 할 일이 아니다. 군사 개입? 상당한 기간 동안 할 일이 아니다.

냉전 기간 동안 평양은 공산세계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으로 특이한 위치를 수단으로 중국과 소련 사이를 오갔다. 1989년 이후 북한은 일본, 미국, 그리고 남한과 별도의 관계를 맺고자 시도했는데, 이는 모두 불리해진 협상 지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스스로를 보위함과 동시에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켜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 맞다. 북한은 남한에의 접근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 지위를 개선하려는 중이다. 문제는 만일이 아니라 왜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숨 쉴 틈을 필요로 한다고 상상한다. 글쎄,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북한은 이미 그런 숨 쉴 틈을 확보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대가로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보다 진지한 협상에 여러 차례 실패했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북한이 다른 무엇을 원할 것인가? 남한의 전복? 어쩌면 이론적으로, 김정은 정권이 이른바 북한의 주체 이데올로기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확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북한 정권도 군사, 경제, 그리고 기술 측면에서 남한에게 완전히 압도당했음을 알고 있다. 대만이 중국 본토를 탈취하려는 상상과 같다.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인가?

첫째, 북한은 미국의 폭격을 원하지 않는다.

둘째, 북한은 정당성을 지닌 국가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는 북한의 지배 엘리트에게도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다.

셋째, 북한은 세계 경제와 자본에 접근할 수 있기를 원한다. 제조업과 농업의 재건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면 말이다.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협약을 통해, 세 번째 목표를 매우 제한된 범위 안에서 성취할 수 있다. 남한의 경영능력과 자본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하는 개성공단이 이러한 노력 중 하나다.

그러나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위 세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북한은 미국과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 맞다. 김정은의 남한 접근은 한미를 이간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는, 궁극적으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일 역동적 변화를 창출하려는 수단이다.

달리 말하자면, 최후의 협상은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한 중단 여부가 아니다. 핵무기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후의 목표는 국제적, 지역적 협상 테이블이며, 북한은 그 길을 지키고 있는 최대의 문지기를 대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다.

htm_201306041323920102011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강원도 최전방 까칠봉에서 3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 군 초소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올림픽, 안보, 그리고 인권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어조를 이미 누그러뜨렸다. 남한의 노력 덕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트럼프는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함으로써 “충돌이 없는” 올림픽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

군사훈련의 연기는 북한이 더 이상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북한이 또 다른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는가에 관하여 엇갈린 보도가 있어 왔다. 아마도 북한이 유일하게 고려하는 바는,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북한의 억지력이 향상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로켓 엔진 시험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다가오는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는 예상에 모두가 환호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는,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인종차별을 이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올림픽 개최를 보이콧했는데,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가 환영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이렇게 썼다. “미국이 ‘인권에 대한 범죄’라고 공언해 온 북한의 훨씬 지독한 인권침해에 대응하여, 세계는 평양의 참가를 허용하고 심지어는 이를 독려한다.”

그러나 둘은 유사한 상황이 아니다. 인종차별이 계속되는 시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해당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요인이었지만, 그곳에는 비무장지대도, 일촉즉발의 경계 태세도, 핵무기도 없었다. 또한 국제 반인종차별 운동의 일환으로서 남아공 내부의 강렬한 움직임이 올림픽 보이콧을 지지했다.

당시 헤리티지재단은 반인종차별 운동이 제안했던 전략에 특별히 우호적이지 않았고, 대신 남아공에의 무역과 투자가 궁극적으로 인종차별 시스템을 서서히 무너뜨릴 것이라는 “건설적 개입(constructive engagement)” 정책을 선호했다. 다행스럽게도 반인종차별 운동은 헤리티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편 한반도에서는, 의도적이든 우연에 의하든, 파국적 전쟁 위험이 높다. 그렇다. 북한의 인권침해는 지독하다. 그러나 군비축소 시기의 소련 혹은 핵 협약에서 이란과의 관계에서 보듯이, 핵무기의 위험이란 전쟁 회피에만 오로지 집중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만일 동계 올림픽에 북한을 초대해서 보다 큰 신뢰와 상호작용을 창출하고 관계국 모두를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도록 이끌 수 있다면, 이는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북한 내부에서 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없고 사실상 북한에 어떠한 비정부기구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헤리티지의 “건설적 개입” 주장은 인종차별의 남아공보다 오히려 김정은 정권에 훨씬 적용할 법하다.

2535E24A58B5B1C0067ED9
보수적인 헤리티지재단의 한 연구원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올림픽 개최 보이콧을 들어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가 환영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만 둘은 유사한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시사 잡지 디애틀랜틱(The Atlantic)에서, 로버트 칼린(Robert Carlin)과 조엘 위트(Joel Wit)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기반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할 수 있을 건설적 개입의 세 가지 가능성을 제안한다. 인권기구가 북한 내부에서 보다 용이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할 것, 뉴욕 주재 북한 외교관에 대한 여행 제한을 해제할 것, 아직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세 명의 미국인을 방문할 수 있도록 (북한에서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스웨덴 외교관의 접근을 평양에 요청할 것이다.

이제 요약해보자.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 및 동계 올림픽 참가를 제안한다. 물론 북한은 워싱턴과 서울의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핵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서로 위협하는 것에 비교하면, 통상적인 지정학적 행위이다. 전문가들은 “이간질”에 관해 걱정할 게 아니라, 지금 북한이 무기가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환호해야 할 일이다.

게임이 계속되고 다음번 대화가 시작되도록 해야 할 일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칼럼_181004(2)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칼럼_181004(4)통일뉴스
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목, 2018/10/04- 11:06
146
0
적자운영 뻔한 평창올림픽 경기장도 모자라, 올림픽 아트센터까지. - 올림픽 빌미로 476억 강릉 올림픽 아트센터 시설투자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의 사후활용방안도 제대로 수립하지...
목, 2015/10/29- 11:07
312
0

“여야 국회는 민생 올림픽을 열어라!” 

2월 국회 경제민주화 민생 입법 촉구 기자회견

여야는 조속한 경제민주화·민생 입법 처리로 서민·중소상인·자영업자 고통 줄여야

유통법, 적합업종법, 가맹법, 대리점법, 상가 및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우선처리하라

자유한국당도 적합업종 보호, 의무휴업 확대 등 공약 지키고 입법에 적극 나서라 

일시 장소 : 2018년 2월 5일(월) 오전 10시, 자유한국당 증앙당사 앞

 

청년·비정규노동자·중소상공인·자영업자·시민사회가 모인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와 연대단체들은 2월 5일(월) 오전 10시 자유한국당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가 2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민생 법안을 즉각 처리할 것을 촉구합니다. 특히 여당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책으로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처리에 의지를 보인만큼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도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하고 생계형 적합업종 보호, 복합쇼핑몰 등의 의무휴업 확대 등을 약속한만큼 서민 경제와 중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유통산업발전법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주택임대차보호법만큼은 최소한 2월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다가오지만 대다수 평범한 서민, 중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오히려 고조된 올림픽과 명절 분위기로 인해 경제민주화·민생 법안이 묻혀버릴까봐 걱정이 더 큽니다. 특히 이번 2월 국회는 6월에 있을 지방선거와 최저임금 인상 논의 전에 사실상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이번 국회에서 청년·비정규노동자·중소상공인·자영업자·시민사회의 요구가 담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올해 하반기까지는 경제민주화-민생을 위한 어떠한 개혁조치도 취할 수 없게 됩니다. 평창 올림픽이라는 전국민적인 이벤트를 통해 그 후폭풍을 잠시는 지연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서민경제와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파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다양한 지원대책을 내놓았지만 일자리 안정자금의 사각지대 해소, 카드수수료의 추가 인하 등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정부의 지원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만큼 재벌대기업, 카드사, 가맹대리본사, 임대인들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유통산업발전법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처리가 필수적입니다. 또한 높은 임대료 부담과 끊임없는 이사걱정에 시달리는 세입자·서민들의 안정된 주거생활을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최소한 위 7가지 법안은 이미 20대 국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되었고 상당 부분 사회적 공감대를 도출한 법안들인만큼 여야가 힘을 합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입니다. 끝.

 

▣ 붙임1 : 기자회견 개요

▣ 붙임2 : 2월 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할 경제민주화-민생 법안 7가지

▣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 붙임2 : 2월 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할 경제민주화-민생 법안 7가지

 

1.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

-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소상공인 지원대책으로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개정 요구가 커지고 있음. 특히 주요 도시의 중심상권은 이미 높아진 임대료와 보증금 등 부담으로 인해 5년 안에 폐업하는 임차인의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주변 상권도 급변하는 경제 상황과 과열된 상권 활성화로 인해 강제퇴거로 쫓겨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음. 

-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임차인에게 9년에서 최대 15년 이상의 장기임대차를 보장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법정갱신 보장기간이 5년에 불과해 임차인이 초기시설 투자금, 홍보비, 영업권 확보 비용 등을 회수하지 못한 채 계약 종료·해지되어 쫓겨나고 있음

- 상가임차인이 맘 편히 장사할 수 있도록 법정갱신기간을 최소한 10년 이상 보장하고 임차인이 임대차기간 중 임대인의 재건축, 개축 등의 요구로 퇴거할 시 이를 보상하는, 퇴거보상제를 도입해야 함. 환산보증금 적용기준을 폐지하고 보증금 규모에 관계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함.

 

2. 카드수수료 인하를 위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

- 카드사의 연간 매출액이 20조, 순이익이 2조에 달하지만 OECD 회원국의 평균 카드수수료율이 1.5%인데 비해 우리 나라는 여전히 2% 대로 높은 수준임. 특히 매출액이 큰 대형가맹점의 경우 오히려 매출액 5-10억원 사이인 일반가맹점보다 더 낮은 수준의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으며, 현금(체크)카드의 경우에는 조달비용과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5% 이상의 수수료율을 부담하고 있음.

- 지난 해 7월 영세 중소 카드가맹점의 우대수수료 적용범위를 영세업체는 매출액 기준 2억에서 3억, 중소업체는 3억에서 5억원으로 확대하였으나 실제 매출은 커도 영업이익이 적은 5억 이상의 소상공인에게도 추가적인 수수료 인하(2.5%→1.5%)가 필요함.

- 또한 모든 신용카드 가맹점이 카드수수료 협상을 위한 단체를 설립할 수 있도록 매출액 2억 이하 가맹점으로 제한하고 있는 협상 단체 설립요건을 개정할 필요가 있음.

 

3.  복합쇼핑몰 규제, 골목상권, 노동자 휴식권을 지키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 최근에는 대형유통 재벌들이 대형마트와 의류점, 제화점, 전자제품 판매점 등이 결합된 대규모 복합쇼핑몰 형태로 진출하면서 골목슈퍼뿐만 아니라 주변상권을 초토화 시키고 있음. 또한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상권과 주거 환경, 도시교통 등에 미치는 영향평가들을 객관적으로 시행하여 판단하기보다는 재벌업체들이 제출하는 “개발계획서”에 치우쳐 복합쇼핑몰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음.

- 따라서 초대규모(10,000㎡이상)인 복합쇼핑몰인 경우 유럽 및 일본에서처럼 도시계획단계에서부터 도심상업지역 입점규제와 엄격한 ‘상권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를 거쳐 필요한 경우 출점을 허가해주는 방식의 ‘허가제’정책이 필요함. 아울러, 도시계획을 이미 통과해 출점등록을 앞둔 복합쇼핑몰에 대해서는 입점단계에서 현행 등록제 수준을 ‘허가제’로 바꾸어 무분별한 개점을 막을 필요가 있음. 

- 복합쇼핑몰의 상권영향범위가 인접 지자체에 미칠 경우 인접지역의 지자체 단체장 및 인접지역의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와의 협의를 거치도록하고, 상권영향평가도 일반적인 상권피해범위(10~15Km)내 다양한 중소상인 업종에 대한 객관적 실태조사를 할 수 있도록 보다 엄격한 상권영향평가 시행지침을 마련해야 함. 

- 또한 골목상권과 서비스노동자들의 휴식권을 지키기 위해 백화점과 면세점을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시키고, 추석과 설날 명절 당일 만큼은 반드시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도록 하여야 함.

 

4.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제정

-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2006년 폐지되면서 재벌그룹 계열사의 식음료, 제과, 도소매 등 소상공인 사업 영역 진출이 활발해졌고, 그 결과 주로 생계형 소규모 사업체인데다가 부가가치 창출이 낮은 이들 영역의 특성상 소상공인들의 시장 매출과 점유율 하락 및 경영환경 악화가 두드러졌음.

- 현재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현행 적합업종제도는 대기업이 소극적으로 응할 경우 시간만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합의된 내용의 이행을 해태할 경우 그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 20대 국회 내내 중소상인단체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특별법을 통해 국가기관인 중소기업청이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적합업종에서 사업이양 등을 하지 않는 경우 형사, 행정적 제재를 수반하는 등 강력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3년째 국회산업통상위원회에 계류 중임. 

- 적어도 동반성장위원회에서 1년 이상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합의를 보지 못하거나 동반성장위원회 협의과정 중 긴급하게 임시로 적합업종 지정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행정처분으로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실행력을 담하는 방식의 적합업종 보호제도가 필요함.

 

5. 본사의 갑질 불공정 막기 위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

- 지난 12월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그동안 가맹점주들과 시민단체가 요구해 온 △정보공개서 등록 업무 지방자치단체와 공유 △ 가맹점사업자의 분쟁조정신청·서면실태조사 협조 등의 이유로 가맹본부에 대한 보복조치 금지 △가맹본부의 가맹점사업자에 대한 일방적인 영업지역 변경 금지 △ 신고포상금제 도입 △ 보복조치 금지 위반행위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적용확대 등이 도입되었으나 전체 현안의 일부에 불과하여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함.

- 특히 최근 2-3년 간 사회적 논란이 된 불공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부당한 필수물품 구입 강요 금지 △집단적 대응권 강화(가맹점사업자단체 구성 신고제 도입, 거래조건 협의 거부 시 제재,  단체활동 방해 시 제재, 협의 거부/결렬 시 가맹점사업자에 거래조건 일시중지권 부여 등) △가맹계약 갱신 요구권 기간제한 삭제 △오너리스크 배상책임 도입 △광고비·판촉비 부과 시 가맹점사업자 사전 동의권 등 도입을 위한 개정안 처리가 필요함.

 

6.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

- 2015년 12월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대리점보호의 핵심인 대리점사업자단체 교섭권 조항 등을 삭제하고 몇가지 불공정거래행위를 제재하는 내용만을 담았고, 지난 12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대리점 거래 서면실태조사 실시 △서면실태조사 신빙성 담보를 위한 과태료 도입 △서면실태조사 협조를 이유로 한 보복조치 금지 △신고포상금제 등이 도입되었으나 비슷한 구조를 갖는 가맹사업법과 비교해도 개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음.

- 여전히 일부 본사들이 대리점주들에게 밀어내기 등을 강요하고 있고, 유제품, 식자재, 자동차대리점, 주류, 이동통신 등의 업계에서는 밀어내기 후 반품거절, 대형유통점과의 가격차별, 직영점 출점으로 인한 영업지역 침해 및  부당한 거래거절, 계약갱신거절 등 대리점 본사들의 불공정행위가 계속되고 있음.

-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대리점 본사의 불공정거래행위 유형을 신설하고 계약갱신 요구권 기간을 신설하는 한편, 가맹사업법에 규정되어 있는 점주들의 단체구성권‧교섭권을 대리점법에도 도입하여 불공정 문제를 당사자들 스스로가 상생협약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함. 

 

7.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 국민의 절반 정도가 세입자인 상황에서 전월세 가격의 폭등, 급격한 월세 전환으로 인한 주거비 부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음. 문재인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공적임대주택 확대, 다주택자 규제, 임대차 등록제 유도 등의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세입자들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기에는 한계가 있음.

- 특히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2년으로 제한되어 있어 임대인이 높은 전월세 인상을 요구하더라도 집을 비워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이사비와 부동산 중개료 등도 서민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

- 이미 국회에 다양한 계약기간 보장을 위한 법안이 제출되어 있는만큼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해 세입자가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전월세 인상률을 제한하여야 함. 또한 현재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임대차 등록제를 의무화해야 함.

 
월, 2018/02/05- 09:11
175
0

중국의 CGTN (China Global TV Network)에 최근 실린,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일고 있는 남북 화해 분위기, 북한 측의 의도, 이에 대한 미국 측의 우호적이지 않는 태도 등에 대한 기사다. 번역문과 영문 원본을 전재한다.(다른백년 편집자)

 

조선인민공화국은 미국이 한반도 인근에 핵 항모전단을 파견함으로써 평양과 서울의 화해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수요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남북대화가 바람직한 결과를 맺고” 있지만, 워싱턴은 “남북이 함께 평화를 계획하는 시점에 한반도 인근에 핵 항모전단을 비롯한 전략자산을 전개함으로써 고의적인 상황 악화를 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리용호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을 준비 중이며, 2월과 3월에 걸쳐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이후 남한과 대규모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 외무상은 유엔 안보보장이사회가 남북 화해 과정을 환영하고 “주변 국가들”이 이를 저해하지 못하도록 해 줄 것을 요청했다.

 

평양이 보내는 “상반된 신호”

평양의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둘러싼 1년의 긴장 이후, 북한과 남한은 1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대화를 오랜만에 가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승인한 양측의 합의에 따르면, 북한과 남한의 선수단은 다음 주 금요일 개막행사에 함께 입장하며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하여 올림픽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난 목요일 북한 선수들이 남한의 도시 강릉에 위치한 올림픽 선수촌에 도착했고 인공기를 내결었다.

또한 140명 규모의 북한 삼지연 오케스트라는 남한에서 두 차례에 걸쳐 콘서트를 개최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은 평양의 대화 제안 의도를 의심하여 왔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서울과 워싱턴의 이간을 시도한다는 우려 속에서, 지난 화요일 백악관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Mike Pence) 부통령을 올림픽에 참석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간질”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 미국 언론은, 평양이 동계올림픽 개막을 단 하루 앞둔 다음 주 목요일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포함하는 건군 70주년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i

중국의 싱크탱크 차하얼학회(Charhar Institute)의 선임연구원 왕총(Wang Chong)은 북한의 동계 올림픽 참가와 열병식 준비에 관해 언급하면서, 평양이 “상반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를 상대로, 북한이 “평화를 애호하는 국가”이지만 동시에 자국 주민들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점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조셉 윤(Joseph Yun)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목요일 핵무기를 둘러싼 교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옵션이 여전히 고려되고 있지만 워싱턴의 군사 옵션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DPRK: US is ‘disturbing’ inter-Korean reconciliati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has accused the United States of “disturbing” the reconciliation process between Pyongyang and Seoul, by sending nuclear powered aircraft carrier strike groups in the vicinity of the Korean Peninsula.

In a letter sent to UN Secretary General Antonio Guterres on Wednesday, DPRK’s Foreign Minister Ri Yong Ho said “good results are borne in the inter-Korean dialogue,” but Washington is “seeking to intentionally aggravate the situation by introducing the strategic assets including nuclear powered aircraft carrier strike groups into the vicinity of the Korean Peninsula at a time when north and south of Korea are charting a course of peace together.”

Ri accused the US of preparing for “preemptive strike” against the DPRK and planning to conduct a large-scale joint military drill with South Korea, after the PyeongChang Olympic and Paralympic Winter Games in February and March.

The DPRK’s foreign minister called on the UN Security Council to welcome the process of inter-Korean reconciliation and discourage the “neighboring countries” from undermining it.

Pyongyang’s ‘mixed signals’

After a year of tensions on the peninsula over Pyongyang’s nuclear weapon and missile program, the DPRK and South Korea conducted rare talks in January to facilitate the DPRK’s participation in the PyeongChang Games.

According to the agreement between the two sides that has been approved by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 delegations of the DPRK and South Korea will march together at the opening ceremony next Friday, and the two sides will form a united women’s ice hockey team to compete in the Olympics.

On Thursday, the DPRK’s athletes arrived at the Olympic Village in South Korean city Gangneung, where the DPRK’s national flag was raised.

In addition, the DPRK’s 140-member Samjiyon Orchestra will hold two concerts in South Korea.

The US, however, has been suspicious about Pyongyang’s motives behind its overture for talks. Amid concerns that DPRK leader Kim Jong Un is trying to drive a wedge between Seoul and Washington, US President Donald Trump has decided to send his deputy Mike Pence to attend the games to prevent the DPRK from “hijacking” it, a White House official said Tuesday.

Flash plugin failed to load

Meanwhile, multiple US media outlets have reported that Pyongyang is planning to celebrate the 70th founding anniversary of its armed forces with a massive military parade next Thursday, just one day ahead of the opening of the Winter Olympics.

Commenting on the DPRK’s participation in the games and its plan to stage the military parade, Wang Chong, a senior fellow from Chinese think tank Charhar Institute, said Pyongyang is “sending mixed signals”. The country wants to tell the world that it is a “peace-loving nation,” but at the same time it does not want to “lose face” in front of its own people, he added.

Joseph Yun, US special envoy on the DPRK, said on Thursday that all options remain on the table for solving the nuclear standoff, but he does not think Washington is “close to” the military option.

월, 2018/02/05- 13:31
206
0

노희경 작가는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등단 이후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수작들을 선보이며 대선배 김수현 작가와 함께 현 한국드라마계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활동한 지난 20여 년 간은 국내 드라마사에서 제일 역동적인 시기였다. 데뷔 시기인 1990년대는 트렌디드라마가 처음 등장해 현대드라마의 주류문법을 완성했고, 중견작가 반열에 올라선 2000년대부터는 한류드라마와 막장드라마라는 두 가지 현상이 방송가를 지배했다.

 

200810201552122203341A_1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노희경 작가(사진)는 작품성과 시청률 양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시간 동안 드라마계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는 ‘표피성’이다. 트렌디드라마가 속도감 있는 편집,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 감각적인 배경음악 등 형식미 강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스펙터클화 하는 데 집중한 최초의 장르였다면, 여기에 스타캐스팅, 해외 로케이션, 화려한 세트 등이 더해져 외적 스케일을 한껏 키운 형태가 한류드라마였다. 그 변화의 끝에는 인간의 내면이 극단적으로 얄팍해지고 외적갈등만 자극적으로 부각된 막장드라마가 있었다.

노희경 드라마가 호평 받아온 이유는 이 극단적인 표피화의 시대를 거스르며 일관되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왔다는 데 있다. 외적 갈등보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중심에 놓고 그 감정을 심층까지 파고들며 점층적으로 고조시켜나가는 특유의 서사 방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강렬한 정서적 환기력을 이끌어냈다. 그녀의 스물세 번째 드라마인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러한 인간 성찰의 힘이 원숙의 경지에 도달한 노희경 최고의 걸작이다.

 

드라마에는 평균 연령 67세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관찰자 역할인 37세 박완(고현정)을 제외하면, 86세 최고령자 오쌍분(김영옥)부터 63세 막내격인 장난희(고두심)까지, 8명의 주요인물이 모두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이 노인들은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기보다는 노희경 인간 탐구의 최종성장형으로서 존재에 가깝다. 노희경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심층적 내면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고, 내면의 깊이가 한층 심화되는 것을 성장으로 그려낸다. 물론 이 자체는 그리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이미 ‘속이 깊다’는 말은 ‘어른스럽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과정을 통해 내면이 깊어지는가에 있다. 노희경 작가는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녀의 인물들은 대개 극 초반에는 상처와 결핍으로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가다가 곧 자신과 닮은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관계를 맺으며 성장해나간다. 이때 이들의 상처는 사회적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공동체 성장의 가능성으로도 확장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미혼모, 과부, 이혼녀, 장애인, 가난한 노동자의 아픔 등 그동안 노희경 작품에서 다뤄진 거의 모든 사회적 상처가 총망라되어 있다. 이 드라마가 노희경의 가장 원숙한 작품인 것은 인물들이 이러한 사회적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해가는 과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밀도 높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례는 ‘보수 꼰대’ 석균(신구)의 각성서사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온 그는 자신의 노고만 중시한 나머지 철저히 이기적인 괴물이 됐다. 어느 날 아침 아내 정아(나문희)가 떠나고 혼자가 되자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본다. 자신이 그녀를 평생 노예처럼 부리고 발닦개처럼 취급해왔음을.

아내의 상처를 알아보면서 그의 시선은 조금씩 확장된다. 습관대로 버스에서 우악스럽게 자리를 뺏고 보니 쫓겨난 소녀의 장애가 눈에 들어오고, 평소 아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쏟아낸 폭언들이 떠올려진다. 제일 심한 폭언을 퍼부었던 완이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지 죄를 지가 모른다는 거”라고 고백하는 그의 반성은 뼈저리다.

석균의 뒤늦은 성장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지닌 치명적 문제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석균처럼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말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태도다. 정부의 철학도 지배하고 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약자들의 인권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얼마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민생’으로 포장된 경제우선주의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가.

물질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뚝심 있게 인간의 가치와 연대를 존중하는 노희경 드라마의 윤리적 태도는 지금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이 젊은 거장의 또 다른 20년과 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월, 2016/06/27- 13:58
413
0

해운과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한국산업의 화두가 되었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세계적 규모의 금융과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과정이 겹쳐서 미증유의 산업구조적 변동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밀려오는 있다. 해운과 조선업뿐만 아니라, 해외건설, 석유화학, 철강 그리고 현재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반도체와 액정판넬 및 자동차산업까지 위기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전문가의 예언을 빌자면 수 년안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백 만명이 넘는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해운과 조선업의 구조조정이라는 현안은 단순히 해당 산업과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일 수 밖에 없다.

5008_5088_1317
지난 6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당정협의를 가졌다. (사진 출처: http://www.ss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5008)

다시 말하면 밀려오는 구조조정 문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의 원칙으로 해결하면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당장에 책임회피라는 미봉책으로 처리하면 한국경제가 재기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권이 벌리고 있는 구조조정 대책을 보면 무책임과 무능함 정도가 미봉책 수준이 아니라 역사적 범죄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재벌들의 족벌경영이 위기 키워

우선 해운산업을 들여다 보자.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여파로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고 무역의 물동량이 격감하리라는 것이 명확했다. 자연스레 한국내 해운업을 영위하는 300여 대부분의 기업은 이를 인지하고 사전적인 사업축소와 인원조정에 들어갔다. 덕분에 2015년 현재 해운협회에 등록된 150여개의 업체중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건전한 재무구조와 흑자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로지 재벌들이 운용하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만이 심각한 결손상태를 보이고 있고, 나아질 전망마저 보이질 않는다.

물론 컨테이너 중심으로 정기선을 운용해야하는 특수한 조건, 즉 전세계를 대상으로 적정 인프라를 유지해야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을 무시한 채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강요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실책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적인 책임은 기업을 운영하는 주주의 판단과 경영진의 능력의 문제였다. 한치 앞을 못 내다보고 무리한 용선계약을 맺은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이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면면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결국 재벌들의 무능한 족벌경영의 핵심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대마불사라는 환상을 하늘처럼 믿었던 데는 정부 관료와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지금이라도 양사의 자본지분을 결손액만큼 감자하고 채권액을 지분으로 전환한 후 양사를 합병하여 축소조정해야 한다. 이렇게 급한 불을 끈 뒤 시장에 다시 매각하는 것이 순리이다. 쉽게 말하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무능한 재벌들의 소유에서 분리시켜 냉정한 시장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20160612195054027vzfs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media.daum.net/news/view/print?newsId=20160612194609514)

이와 동시에 ‘롯데그룹 형제의 난’에서 보듯이, 지긋지긋한 재벌상속놀음과 무능한 경영에 국민경제가 멍들고 서민들이 고통받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번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단호한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이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을 이룬 배경에는 금산분리와 반독점법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결단의 역사가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재벌에 대한 타협없는 감시감독의 철퇴를 준비해야 한다 ( 박상인교수의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길> 참조).

정경유착의 다른 이름, ‘서별관회의’

조선산업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재벌에서 정권과 관료로 옮겨간다.

지난 수 십년간 한국 조선업이 세계 일등산업으로 효자노릇을 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1960-7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유럽의 조선업계는 스웨덴 ‘뮐뫼의 눈물’이 상징하듯이, 대부분의 일반선박 물량을 한국과 일본에게 물려주고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고기술 고부가가치의 크루즈선, 요트와 탐색선, 특수선 등으로 사업영역을 이동시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소를 폐쇄시켜야 했다.

유럽이 겪었던 고통의 과정을 이제 한국 조선업계가 받아 들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운업과 마찬가지로 보호무역주의 부활이 예견되고,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이야기되면서 일반 선박의 수요가 격감하리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때마침 터져나온 해양개발 특수가 한국 조선업계를 살려주었다. 지난 십 여년간 삼성조선이 필두로 수주하여 큰 수익을 올렸던 ‘드릴쉽’ 사업을 신호탄으로, 백 여척이 넘는 해양플란트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사실상 특수수요로 형성된 해양플랜트를 제작할 곳이 한국 외에는 없었다는 저간의 사정이 있다.

유럽은 인건비와 노동시장의 성격상 이를 수주하여 건조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싱가포르 조선업이 이를 감당할 만했지만, 우선 ‘반잠수시추선’으로 전문화되여 있었고, 건조 규모에서 일정 수요이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단순 조선에서 산업플랜트로 다변화 되었던 일본 조선업계 역시 고임금과 더불어 사업영역을 쉽게 변신하여 해양사업을 수익성있게 감당하기 어려웠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아지역은 기술수준에서 제외되여 있었다. 해양플랜트의 특수수요는 한국 조선업계가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기회를 극적으로 반전시켜 수 조원 손실의 악재라는 구렁텅이로 조선업계를 떨어트린 중심에는 대우조선, 그 중에 남상태와 고재호라는 조연 배우, 그리고 이명박근혜정권과 서별관회의라는 주연 배우가 있었다. 

청와대 본관 서쪽에 위치한 서별관에서는 비공개로 주요 경제·금융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이명박근혜시대의 ‘서별관회의’는 정경유착의 은밀한 장소였다 (사진 출처: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55035)

이명박 부인의 연고로 대우조선의 사장으로 임명된 남상태라는 인물. 그는 해양플랜트가 가지는 기술적 위험성을 무시하고 발주처의 적정 예가에서 20-30% 이상 저가로, 그것도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괄수주( 턴키방식)를 무모하게 감행한 자이다.

해양플랜트는 시담에서 수주 그리고 건조와 진수까지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자기 임기에는 진수와 인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예측할 수 없는 위험으로 회사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른 자이다. 이런 관행은 그의 후임자에게도 되풀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행위가 대우조선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리한 수주경쟁을 통해 경험과 양질의 조건을 갖추었던 타 조선업체, 즉 삼성조선과 현대중공업에게도 파급되어 적자수주가 일반화되었다. 한마디로 대우조선의 행태는 물귀신작전이였다. 사태는 여기서 멈추질 않았다.

대우조선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무능과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감행했다. 조선같은 수주산업의 분식회계 기법은 매우 단순하다. 재고와 기성고 부풀리기, 그리고 회수 불가능한 악성채권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우조선을 감독하고 견제해야 하는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이다.

악질적인 경영책임자, 이를 공모한 회계법인, 그리고 이를 눈감아준 산업은행로 이어지는 총체적 부패고리를 통해 전형적인 공범 행위가 이뤄졌다. 더구나 이들 뒤에는 정권 실력자와 출세에 눈 먼 경제관료들이 숨어 있었다. 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핵심들이다.

이미 서별관회의를 통해 5조원이라는 국민 세금이 흘러 들어갔고, 앞으로도 우선 10조가 넘는 돈이 들어가야 한다. 더큰 문제는 여기서 멈추질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다,

뼈를 깍는 구조조정과 책임자 처벌 절실 

눈을 다시 세계조선시장으로 돌려보자.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앞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완화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여 격감했던 신규 조선수요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일반 신규조선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중국도 열 개의 조선업체 중 7-8개의 업체가 극심한 수주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인건비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도 이미 조선산업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일반선박의 신규수요는 중국과 동남아 조선소를 채운 다음에야 남는 수요가 한국에 돌아온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한국 조선업이 목을 매는 해양플랜트 특수수요는 미국의 세일가스사업이 본격화되여 유가가 50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급격히 축소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해양플랜트사업을 발표하여 한때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Petrobras(브라질 석유공사)가 브라질 경제의 재앙으로 변했고,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비리혐의로 호세프 대통령까지 탄핵사태를 맞았다. 이미 발주되었던 계약도 시장환경을 구실로 취소되고 건조된 플랜트조차 인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유럽정상들이 지구환경회의를 계기로 2050년 이후에는 화석연료로 운용하는 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해양플랜트수요는 이제 가뭄에 콩나듯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유럽과 같이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선 중심으로 재편될 수 밖에 없다 (서울공대 교수들의 공저 <축적의 시간> 참조). 현재의 조선건조 시설과 규모는 너무 방대하다. 순차적인 전환과 축소 그리고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 첫번째 대상은 대우조선이 될 수 밖에 없다.

구조조정에는 반드시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고통이 무서워 이를 회피하면 더 큰 재앙이 닥치게 될 뿐이다. 썩어가는 다리는 잘라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이명박근혜정권하에서 사태를 책임져야 할 관료들은 썩고있는 다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라 !

대우조선소는 폐쇄하고,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나머지 조무래기는 법과 규정대로 처리하면 된다. 12조원에 달하는 구조조정비용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사용하고, 거제지역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책임 회피와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자들을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금, 2016/06/24- 18:03
167
0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6. 1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군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형 노동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시의 원인규명 작업, 책임자 처벌, 대안을 기대해 보지만, 이것은 서울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리라.

지난 6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던 그는 고용불안 때문에 피켓시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고,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손에 공구를 들지 않는 아버지 세대 메트로 출신 간부나 정규직 직원은 400만원의 월급을 챙겨도 자신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노오력’해야 했다.

그가 살았다면 1년짜리 계약은 갱신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정규직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소개서를 200번이나 써야 하는 지금의 대졸 백수 청년이 되진 않았을까?

그래도 19살의 젊디젊은 그는 이 사회가 만든 교육을 통해 정규직도 되고 관리자도 될 수 있다는 기성의 신화를 의문시할 수는 없었다. 현실을 그냥 감내하기에 그에게 ‘미래’는 너무 크게 열려 있었다. 불행히도 그에게 미래는 없었다.

노동비하/계층상승이라는 도그마는 이 사회 주류층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시간제, 위험 작업장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들에게 더 높은 보상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적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관행이고, 그 최대 수혜자들은 관료와 기업가들이다.

공기업 비용절감, 경영효율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어떤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다가 퇴직 후에는 공기업에 한자리 차고앉은 이 나라 고학력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복되는 도그마 유포 역시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경영자를 문책하지 않고 노동자부터 자르는 일은 가장 퇴영적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다.

메트로 노조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요 업무 아웃소싱으로 자식 같은 청년들이 저임금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모르는 체했고, 시민들은 자신이 비용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에 박수를 쳤기 때문에 청년들이 이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을 감수했고,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동 존중과 노동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김군은 정비공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대학 가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금, 2016/06/24- 16:58
222
0

지난 16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공식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300여 명의 하객들이 행사가 열린 서울글로벌센터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새로 출범하는 다른백년의 미래를 축하했습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다른백년 5인 이사들의 토크쇼. 김미경 PD의 사회로 열린 토크쇼에서 5인 이사들은 서로의 인연, 다른백년이라는 조직을 만든 이유, 향후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IMG_0055
다른백년 독수리 오형제, 5인 이사들의 토크쇼가 김미경PD의 사회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은 “내가 젊었을 때는 사병, 하사관의 입장에서 장교급 선생님들을 간판으로 모시고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내가 장교의 나이가 되고 보니, 사병과 하사관을 찾을 수 없다”며 “장교의 입장이 된 뒤에도 사병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원장은 ”앞으로 다른백년에 젊은 학자들, 활동가들이 더욱 많이 모여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활동이 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IMG_0068
16일 창립대회에는 300여 명이 하객이 참석해 다른백년의 출범을 축하했다. 하객들이 5인 이사들의 토크쇼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3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해오면서 항상 중립적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그런 직업적 태도를 통해 세상을 비판해왔지만, 그런 비판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와 프롬코리아팀의 북 공연은 행사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1
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왼쪽)와 프롬코리아 팀의 북 공연으로 출범식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행사는 오후 7시30분에 시작해 9시쯤 마무리됐습니다.

그리고 프레시안에서도 이날 행사를 상세히 다뤘네요. (“그 많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어디로 갔나”)

또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도 다른백년 출범식을 말하고 있네요. (‘시민’과 ‘주민’, 대화가 필요하다)

월, 2016/06/20- 14:40
368
0

<곡성>,<아가씨> 두 작품의 관람 가능 연령은 몇 세일까? <아가씨>는 여배우 김민희의 파격적 정사장면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19금이라 여길 듯 싶다.

그렇다면 <곡성>은 어떨까? 몹시 훼손된 신체가 등장하고, 일가족 살인과 같은 끔찍하고도 잔혹한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몇 세 관람이 적당할까? 정답은 15세 관람가이다.

15세 관람가, 만 15세 이상 관람을 권하는 영상물. 선정적, 폭력적 장면이 나올 수 있으나 청소년들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을 수준의 영상물을 가리켜 15세 관람가라고 부른다. <곡성>의 최종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이다.

08(2)
‘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이 개봉한 이후 과연 <곡성>이 15세 관람가가 맞는가에 대한 격론이 오갔다.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곡성>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긴장과 공포일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관객에게는 충격으로 흡수된다. 물론 <곡성>에는 존속살해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해 도구가 직접 등장하거나 살해 장면이 영화적으로 연출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는 점에서 찾자면 <곡성>에 연출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아마도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받는 장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을 보고 난 많은 관객들은 15세 관람가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는 영화가 무척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는 고백과도 같다. 비록 회칼이나 도끼로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끝내 마음을 졸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공포란 단순히 도구의 노출이나 장면의 재연이라는 물리적 현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등급은 이렇듯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곡성>보다 더 잔혹할 것도 없어 보이는 영화 <신세계>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 아마도, 범죄조직이 벌이는 범죄라는 점에서 좀 더 엄격하게 폭력성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세계>에 등장했던 정청(황정민)이 했던 대사, “들어와, 들어와”는 전 연령이 보는 T.V개그 프로그램 및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대사로 차용된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중 하나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가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패로디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모은 셈인데, 패로디의 원관념이 애당초 19세금이다. 영화의 장면이나 내용이 주말이면 방영되는 짜깁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패로디는 단순히 소개된 정도가 아니라 대중적 소비가 축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원관념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문화-놀이다. 19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패로디된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영화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061915102858761_3
어떤 영화가 19금이 되고, 또 어떤 영화는 청소년의 관람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문제적인 것은 대개의 한국 영화의 등급이 폭력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선정성에는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선정성에는 단순히 성적인 호기심 유발이 아니라 사회경제 및 정치적 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청소년 관람 불가, 즉 19금을 받을뻔한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묘사가 남북한 관계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천만관객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모두 11편이다. 이 중에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가장 많은 관람가는 15세 관람가였고, <국제시장>이나 <괴물>과 같은 작품은 12세 관람가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5세였는데, 왜 <국제시장>은 12세 관람가였는지 그리고 한편 동성애가 암시되는 <왕의 남자>가 지금 같았으면 과연 15세 관람가가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야 그래도 동의할 만 하지만 도대체 12세와 15세의 구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등급위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영화소비자들 역시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관객수를 몇 백 만 명씩 가늠하는 관람 등급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뉘고 구분되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검열은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진 단어라고 하지만 체감상 영화 등급제도가 검열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비단, 영화표를 사는 데 나이가 걸려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테다. <다이빙벨>과 같은 작품의 상영에 단지 프로그래머들만의 결정이 전부가 될 수 없는 상황도 여기서 멀지 않다.

무릇 추상적인 기준에는 그림자가 많다. 좀 더 투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창작자의 견해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야한다. 등급을 나누는 일이 권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 2016/06/14- 17:45
273
0

20대 총선결과를 만들어낸 민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14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사단법인 다른백년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주관한 ‘여론조사로 살펴본 20대 총선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IMG_0038

이날 행사에서는 다른백년 리서치팀의 신승배 교수, 정완규 교수, 강흥수 센터장 등이 분석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20대 총선 이후 최초의 전국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승배 교수는 정치효능감, 공동체의식, 기관만족도, 경제상황 인식, 정치상황 인식 등 다양한 변수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정완규 교수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유권자를 정당별 지지자로 구분한 뒤 각 지지자별 정당지지 이유를 분석했다.

IMG_0043

강흥수 센터장은 “오늘은 기초적인 분석결과만을 공개했지만, 향후에 보다 심층적인 분석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론조사분석결과는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디앤알(data & research)에 의뢰해 20대 총선 직후인 4월28일∼5월2일까지 실시됐다. 지역, 성, 연령별로 비례할당방식으로 표본을 추출했으며, 표본수는 전국 만 19∼69세 성인 남녀, 1173명이다. 

1

이번 분석결과와 분석보고서는 조만간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다.

화, 2016/06/14- 17:11
101
0

역사상 가장 중대한 군사계획이 바로 지금 벌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최근 쏟아지는 트위터 메시지와 섹스 관련 폭로, 온갖 조사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는 백악관의 변명 속에서, 누가 여기에 관심이라도 가질 것인가? 그러나 펜타곤의 현재 계획을 보면, (위험한 신종 변형의 모습으로) 21세기 판본의 냉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든다. 거의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도 못 하고 있지만 말이다.

미국 국방부가 안보에서 향후 스스로 어떤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던 2006년에 국방부는 단 하나의 미션을 최우선으로 보았다.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장기전’이다. 국방부가 4년에 한 번 발간하는 국방검토보고서 역시 2006년 발간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다가오는 상당 기간 동안 미국은 동맹 및 동반 국가들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이 전쟁을 치를 준비가 반드시 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중동과 아프리카 곳곳에서 게릴라를 상대로 적어도 7건의 충돌이 맹렬하게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펜타곤은 이 장기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장기전이 막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유라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기 위한 영구적 군사작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6,866억 달러의 펜타곤 예산 요청을 공개하면서 국방부 차관 데이비드 노키스트(David Norquist)는 “테러리즘이 아니라, 세계 최강국을 향한 경쟁이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핵심적인 도전으로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들의 권위주의적 가치에 합치하도록 세계를 바꾸길 원하며,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지구적 안보와 번영을 가능케 했던 자유와 개방의 질서를 대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물론 국제협약을 뒤집고 전 지구적 무역전쟁에 불을 붙이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가 “자유와 개방의 질서” 보존을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러시아가 현재 국제질서의 와해를 진정으로 추구하는지 아니면 그저 지금보다 덜 미국 중심적인 국제질서를 원하는지도 알 수 없다. 이 문제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으며, 단지 오늘날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을 언론에서 쏟아내는 상황을 목도해 왔어야만 했다. ‘미군이 다가오는 미래에 관하여 결정을 내렸다. 아시아와 유럽 및 중동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진출을 저지하는 삼면(三面, three-front)의 지정학적 싸움에 미군과 국가 전체를 동원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전략의 전환에 관하여 대통령으로부터 한 마디로 듣지 못할 것이다. 그는 광범한 전략적 사고에 필요한 넓은 시야를 결여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중국의 시진핑을 호락호락하지 않은 적수라기보다는 “친구이자 적(frenemies)” 정도로 바라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군 전략의 중대한 변화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펜타곤의 경전을 아주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펜타곤의 예산문서, 그리고 지역 사령관들이 이제 막 시작된 삼면전략의 실행을 총괄하면서 해마다 내놓는 전비태세보고서가 그것이다.

테러와의 전쟁_위키백과
테러와의 전쟁(이미지 출처: 위키 백과)

새로운 지정학적 체스판

미군의 전략이 중국과 러시아를 새롭게 강조하는 것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전 지구적 전략 등식을 현재의 최고위급 군 장성들이 어떻게 재평가하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911 이후 미군의 상급 지휘관들이 “대테러 장기전”이라는 세계전략 접근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때때로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장소와 오지에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대테러작전이 기본적으로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했으며,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그들의 군사력을 최신식으로 변모시키고 이를 통해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테러 장기전에 관한 이들의 열기는 식기 시작했다.

테러와의 장기전은 펜타곤 특수작전부대가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는 데 불을 붙였고 지금도 확대일로에 있다. 전체 미군 안에 현재 7만 명의 비밀부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테러와의 전쟁은, 육군 전차여단과 해군 항모전단 및 공군 폭격기 부대 등 미군의 “중무장” 부대들에게는 어떤 목적의식이나 실질적인 과업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 작전에서 공군이 중요한 지원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이들을 비롯한 지역에서 정규 부대는 거의 침묵하고 있었다. 경무장한 특수작전부대 병력이나 드론이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과 무기로 무장한) “대등한 상대”와의 “진짜 전쟁” 계획에는 최근까지 우선순위가 높게 부여되지 않았다. 범중동권과 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끝나지도 않을 싸움을 우선했던 것이다. 정규부대에 몸담은 이들은 이런 상황에 당황했고 심지어는 분노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나설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

펜타곤의 새로운 국가방위전략은 “오늘날 우리는 전략적 위축의 시기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며, 그동안 우리의 군사적 우위는 침식되어 왔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 무질서의 증대는 규칙에 기반을 둔 오랜 국제질서의 쇠퇴로 특징지어진다.”고 지적한다.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IS)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공격적 행위가 국제질서 쇠퇴의 원인이라고 최초로 지목되었다. 이란과 북한을 주요한 위협으로 거론했지만, 두 강대국이 제기하는 위험에 비교하면 이들은 분명 부차적이다.

이러한 전략 전환이, 값비싼 최신식 군사장비에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할 것과 함께 전 지구적 전략지도를 정규군 위주로 재편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은 전혀 놀랍지 않다. 테러와의 장기전 시기에는 지정학과 경계가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았다. 질서가 무너진 곳이라면 어디서나 소규모 테러리스트 조직이 활개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멀리 떨어진 전장으로 신속하게 병력(때로는 비밀작전부대를 포함하여)을 전개할 준비를 갖추어야만 한다고 믿었던 미군에게 국경이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지정학 지도에서 미국은 자신의 국경을 방어하려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적들과 대면한다. 따라서 이제 미군은 오래 전부터 매우 익숙한, 현대판 삼중의 대치 선을 따라서 정렬하는 중이다.

아시아에서 미국과 핵심 동맹국들(남한, 일본, 필리핀, 그리고 호주)은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긴 라인을 따라 중국과 마주한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스칸디나비아와 발트 해 국가들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루마니아, 동쪽으로는 흑해에서 카프카스 산맥에 이르는 선을 따라 러시아와 대면한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형성된 대결의 두 무대 중간에, 훨씬 사납게 요동치는 범중동권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미국은 이 지역의 두 핵심 동맹인 이스라엘 및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러시아의 거점인 시리아와 날이 갈수록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바싹 다가서고 있는 이란과 대치한다.

이것이 가까운 미래를 규정하는 전 지구적 전략지도라는 것이 펜타곤의 시각이다. 향후 주요한 군사 지출과 계획은 이들 라인의 안쪽에 위치하는 미국의 해군과 공군 및 지상군의 강화 그리고 이들 라인을 따라서 노출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약점을 겨눌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변화된 전략적 시각의 역학을 이해하는 데 육군과 해군, 공군과 해병대 사령부를 망라한 통합전투사령부의 전비태세보고서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보다 더 나은 방법이란 없다. 통합전투사령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둘러싼 모든 지역을 관할한다. 아시아의 모든 미군을 책임지는 태평양사령부(PACOM), 스칸디나비아에서 카프카스에 이르는 미군을 관할하는 유럽사령부(EUCOM), 미국의 대테러전쟁 다수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관리하는 중부사령부(CENTCOM) 등이 포함된다.

이들 상위 기관의 최고위 사령관들은 그들의 “관할구역”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관리들이다. 이들은 해당 지역에 파견된 어떤 미국 대사보다 (그리고 때로는 해당 지역의 국가수반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이들이 내놓는 진술 그리고 언제나 그 진술에 딸려 나오는 무기 구매 리스트는, 펜타곤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미군의 미래에 관하여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펜타곤_위키백과
펜타곤의 모습(사진 출처: 위키백과)

인도양-태평양 전선

태평양사령부의 사령관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Jr.) 제독은 오랜 기간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지난 3월 15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전비태세보고서에서 해리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지위에 관하여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북한의 핵무장이 초래하는 위험에 더하여, 중국이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가공할만한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해리스는 주장했다. “현대적인 최첨단 전투부대로 빠르게 변모하는 인민해방군의 변모가 인상적인 동시에 우려되며,” “인민군의 능력이, 확고한 자원 조달과 우선순위 설정에 힘입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의 군사력 제고에서 가장 위협적인 분야는 중거리탄도미사일과 전함이다. 중거리탄도미사일은 일본과 괌의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으며, 팽창하는 중국 해군은 중국 연안에서 미 해군에 도전할 수 있고 어쩌면 언젠가는 미국의 서태평양 제해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해리스는 “이러한 전함 건조 프로그램이 지속된다면, 중국은 잠수함과 호위함 급 이상의 전력에서, 2020년까지 세계 두 번째 해군력으로 부상하며 러시아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전력 증강에 맞서고 중국의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해, 최신 무기시스템 특히 정밀유도미사일에 훨씬 더 많은 세금을 지출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의 현재 및 미래 전력을 압도하고 공중과 해상에서 중국에 대한 미군의 군사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들 무기에 대한 투자를 엄청난 수준으로 증액할 것을 해리스 제독은 요구했다. “인도양-태평양에서 잠재적인 적대국을 저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핵심적인 군사력과 혁신의 가속화에 투자함으로써 더욱 치명적인 전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그는 단언했다.

예산에 담긴 해리스의 구매희망목록은 대단히 놀랍다. 그가 무엇보다 열정적으로 역설한 것은 차세대 전투기와 미사일이다. 펜타곤 용어로는 “반 접근 지역거부(anti-access/area-denial)” 시스템이라고 불리는데, 미군이 중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포대 및 여타 무기 시스템을 타격하고 중국 영토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무기 시스템이다.

해리스는 또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새로운 핵미사일의 보유도 개의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지상에서 발사하는 중거리핵탄두미사일을 금지하는 조약으로서 미국도 서명국의 하나인 중거리핵전력조약에 저촉되지 않기 위하여, 함선이나 공중에서 발사 가능한 미사일을 거론했던 것이다. (펜타곤의 핵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불가사의한 언어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자 한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중거리핵전력조약에 저촉되지 않는, 가공할 타격 능력을 계속 확대해야만 한다. 적대국의 반 접근 지역거부(A2/AD) 능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생존전술을 강요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해리스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방어선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과 남한, 필리핀과 호주 등 다양한 동맹 및 동반 국가들과의 군사연계 심화를 요구했다. 그는 태평양사령부의 목표가 “뜻이 맞는 동맹 및 동반 국가들의 네트워크를 유지하여, 원칙에 입각한 안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질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네트워크가 종국에는 인도까지 포괄하여, 보다 강력하게 중국을 포위하는 상황이 이상적이라고 해리스는 덧붙였다.

 

유럽 무대

지난 3월 8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증언한 유럽사령부 사령관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Scaparrotti) 장군은, 배경이 다르고 거주하는 행위자들도 다르지만, 유럽의 미래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에게 러시아는 또 하나의 중국이다. 스캐퍼로티의 설명을 들으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러시아는 자국 정권을 보호하고 주변국에의 패권을 부활시키며 전 세계적으로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국제질서의 변경과 나토의 분열 및 미국 리더십의 약화를 추구한다. …… 러시아는 변경 국가들에 개입할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이미 과시했다. 중동에서 특히 그러하다.”

오랫동안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판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러시아를 확실한 적대국가로 묘사하기를 꺼렸던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이러한 전망을 들을 수 없음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 및 정보 관리들에게, 러시아가 유럽에서 미국의 안보 이익에 대한 명백한 위협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러시아를 언급하는 방식은 냉전 시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스캐퍼로티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전략의 최우선 순위는 러시아가 우리의 동맹 및 동반 국가들에게 더 이상 공격적으로 나오거나 해로운 영향을 미치지 못 하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 작전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유럽 동맹국들을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군사적 대응옵션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유럽사령부의 러시아 억제 조치 중 최첨단 수단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여 만든 유럽억지이니셔티브(European Deterrence Initiative, EDI) 프로젝트이다. 초기에는 유럽수호이니셔티브(European Reassurance Initiative)로도 알려졌던 유럽억지이니셔티브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이른바 “최전방 국가”에 전개되어, 나토의 “동부전선”에서 러시아를 마주하고 있는 미군과 나토군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펜타곤이 지난 2월 제출한 구매희망목록에 따르면, 2019년 유럽억지이니셔티브에 할당되어야 할 예산은 약 65억 달러이다. 이 예산의 대부분은 최전방 국가들 안에 군수품을 쌓고, 공군기지의 인프라를 개선하며, 동맹국들과의 합동군사훈련을 확대하고, 미국에 주둔하는 병력을 이 지역으로 순환 배치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펜타곤이 우크라이나에 “고문을 파견하고, 훈련을 돕고, 장비를 제공”하는 작업에는 추가로 2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다.

태평양사령부의 해리스 장군과 마찬가지로, 스캐퍼로티 장군 역시 비용이 많이 드는 무기구매리스트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는 개량된 항공기와 미사일 및 여타 첨단 무기들이 포함되는데, 스캐퍼로티는 이들 무기가 러시아군의 현대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능란한 사이버전쟁 수행 능력을 지적하면서, 사이버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해리스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향후 유럽 전장에서 “사용가능한” 핵전력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시사했다. 말을 빙빙 돌려서 했지만 말이다.

중부사령부_중앙일보
중부사령부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트럼프 대통령(사진 출처: 중앙일보)

동방과 서방 사이 : 중부사령부

미 중부사령부는, 태평양사령부의 서쪽 경계에서 유럽사령부의 동쪽 경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 점점 더 불안이 심화되는 이 지역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관할한다.

중부사령부는 최근 역사의 대부분 시기에 걸쳐, 테러와의 전쟁 특히 이라크와 시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에 집중하여 왔다. 이전의 지루한 전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중부사령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범중동권으로부터 봉쇄하기 위한 새로운 냉전에 대비할 채비를 이미 갖추기 시작했다. 냉전이라는 한물간 용어를 부활시켰으며, 중단 없는 투쟁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중부사령부 사령관 조지프 보텔(Joseph Votel) 장군은 최근 상원 군사위원회 증언에서, 시리아의 이슬람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상대로 한 미군의 작전 현황에 집중했다. 그러나 보텔은 중국과 러시아의 봉쇄가 향후 중부사령부의 핵심 전략과제가 되었다고 단언했다. “최근 발간된 미국 국방전략보고서는 초강대국 간 경쟁의 부활이 우리 국가안보에 대한 주요한 도전이라는 점을 올바르게 지적했다. 우리는 이 지역 전체에 걸쳐서 강대국 간 경쟁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의 시리아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그리고 이 지역의 여타 핵심 행위주체들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러시아는 중부사령부가 관할하는 지역에서 점점 더 뚜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텔은 주장했다. 중국 역시 지정학적 영향력 제고를 추구하는 중이다. 경제 측면에서,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군사적 존재감의 확대를 통해서다. 인도양에서 중국이 운영하는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과, 홍해에서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건너편 지부티에 존재하는 중국 군사기지가 특히 우려스럽다고 보텔은 역설했다. 이러한 시설들은 중부사령부 관할구역에서 중국의 “전비태세와 군사력 진출”에 기여하며 향후 미군에 위협이 될 신호라고도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평양사령부 및 유럽사령부와 합동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기세를 꺾는 일은 중부사령부의 의무라고 보텔은 증언했다. “그들이 자리 잡고 있는 장소뿐만 아니라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에서, 이들 위협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채 보텔은 증언을 이어갔다. “어떻게 임무를 수행할지에 관하여 우리는 대단히 훌륭한 계획과 절차를 마련해 왔다.”

보텔의 언급이 무슨 의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공약을 통해, 이슬람국가와 탈레반이 패배하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및 시리아로부터의 미군을 철수하겠고 공언했지만, 중부사령부가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이들 국가에 (그리고 어쩌면 다른 국가에서도) 미군을 무기한 주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 점점 더 명백해 보인다. 테러와의 전쟁은 물론이고, 강대국 간의 지정학적 경쟁 격화가 예상되는 지역에 미군의 영구 주둔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파국으로의 초대

미군 지휘관들은 미국이 새로운 장기전에 들어섰다는 그들 주장의 후속 조치를 대단히 신속하게 취했다. 이들이 그린 봉쇄선의 윤곽은 아시아의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중동을 가로질러 동유럽의 옛 소련 영토 일부에 닿고 마침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이른다. 이 계획에 의하면, 신뢰할만한 동맹국들의 군대로 증강된 미국의 군사력은 봉쇄선의 모든 부분을 요새로 만들어야 한다.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가설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 규모로 벌이는 깜짝 놀랄만한 거대 계획이다. 다가올 역사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도를 넘은 미군의 시도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이 타당한 전략인지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인지가 다가올 미래에 제기될 의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려는 이런 식의 시도가 대항수단을 불러올 것이란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이버 공격과 다양한 종류의 경제전쟁 등의 수단이 활용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이 유일한 강대국으로 가기 위해 벌여온 전 지구적 차원의 시도라고 상상했다면,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세 개의 긴 봉쇄선에서 대규모 중무장 전력을 유지하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 드러날 것이며, 이는 국내 예산지출 우선순위와 충돌할 것이 분명하고, 어쩌면 징병제의 부활을 둘러싼 여론의 심각한 양분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워싱턴에서 제기되지 않은 진정한 질문은, 애초에 왜 그런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지 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도발 행위를 관리할 다른 수단은 없는 것인가? 삼면전략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은, 충돌과 오판, 긴장의 고조, 그리고 단순히 웅장한 전쟁준비에 끝나지 않고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다.

발트 해, 흑해, 시리아,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전 지구적 봉쇄선의 다수 지점에서 미군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이미 심각하게 대적하고 있다. 적대적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방식으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밀치고 있는 것이다. 양측의 이와 같은 대면은 어느 순간 화력을 동원한 전투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의도하지 않은 단계적 긴장 고조, 어쩌면 전면적 전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후에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는 핵무기의 사용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점점 확대하는 전략으로 미국 국민을 몰고 가기 전에, 아직까지는 계획으로서의 장기전이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실제 장기전으로 전환되기 전에, 워싱턴 관리들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 톰디스패치(TomDispatch)에 최초 게재된 글

** 글쓴이 마이클 T. 클레어는 햄프셔 칼리지의 평화와 국제안보학 교수이다. 톰디스패치(TomDispatch)의 정기 기고가이며 작가이다. 최근 저서로는 <마지막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주(The Race for What’s Left)>가 있다. 그의 저서 <블러드 앤드 오일(Blood and Oil)>의 다큐멘터리 영화 버전을 미디어 에듀케이션 파운데이션에서 구할 수 있다. 그의 트위터 계정은 @mklare1 이다.

일, 2018/04/08- 15:52
224
0

(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6. 1)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한 책을 검색해봤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세계 위인전 WHO?- 반기문>과 같은 어린이용 책 목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영어 연설문도 많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밑줄 그으며 학습해야 할 텍스트가 된 것이다. 간혹 성인용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를 읽어보다 그만두었다. 독자를 초등학생 취급하는 영웅담이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그에 관해 책을 쓰는 방식은 오직 한 가지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초인으로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1

그랬던 그가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최악으로 평가받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계속 남을 수도 있던 그가 대권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결과다. ‘포린폴리시’는 사무총장 후보 시절 미국 외교협회에서 문답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2010년 이렇게 썼다. “단조롭고 어색한 영어, 공허한 답변들은 나를 깊이 잠들게 했다. 후보 때의 낮은 기대를 감안하더라도 임기 3분의 2를 마친 지금 반은 최악이다.”

‘가디언’은 사무총장 되고 처음 워싱턴을 방문, CSIS에서 연설했던 때를 회상하는 기사를 2010년에 썼다. “세계적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수백명이 참석했다. 즉각 따분함과 실망감이 찾아왔다. 무미건조한 연설, 진부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되풀이되자 청중은 휴대전화와 블랙베리를 들여다보거나 허리를 굽힌 채 졸기 시작했다. 임기 4년째가 되어도 그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를 비판할 때 등장하는 용어는 항상 같다. 단조로움, 우유부단, 진부함, 소심함. 여기에 ‘어디에도 없는 사람’ ‘소재불명’ ‘무기력한 관찰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분쟁, 인도주의적 위기에 적시 대처하지 못해 재앙적 사태를 초래했다는 게 이유다. 반 총장 측은 ‘조용한 외교’를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막후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면 곤란하다. 사무총장은 군사력도, 경제력도, 정치권력도 없다. 그런 건 강대국 차지다. 사무총장은 국제 규범, 정의를 대변하는 자로서 도덕적 권위를 활용,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고, 국제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조용한 외교만 했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사무총장이 가진 유일한 자원을 내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은 결코 조용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반 총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그만하자 사무총장은 본래 잘하기 어려운 자리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한국인은 그가 국제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관심이 없다. 그저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에 만족했고, 그 만족 때문에 그를 대선 주자로 지지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가 국가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또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이면 내년 1월1일 그의 결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세계 최대 기구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10년간 지내자마자 한 국가의 최고 권력 5년짜리를 향해 다시 욕망을 불태울지 말지는 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최고 지도자 자격을 부여할지는 우리 시민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다.

국제사회가 평가한 그와 국내에서 알려진 그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는 겸손하나 소심하고, 성실하나 결단력 없는 사람이다. 그를 관료 출신이라고 할 때 단순히 경력사항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업무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관료란 주어진 목표를 잘 알려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란 자기 비전에 따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덕목을 보여준 적이 없다. 노르웨이 유엔 부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대로 그에겐 비전과 리더십이 없다. 내년 대선까지 그걸 갖추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은 당원, 지지자, 정당 지도자들과 갈등하고 경쟁하며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력, 이념·정책 없이 국가를 이끌어도 되는지 판단하면 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범위를 파악하지 않은 채 국정을 맡겨도 되는지 결심하면 된다. 정치 밖 인기로 정치를 하고, 정당을 사적 욕망의 수단으로 써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면 된다. 단기 대권 프로젝트라는 대선 지름길을 찾아내 정당 정치를 우회하고 그로 인해 정치적 퇴행을 무시할지 선택하면 된다. 정치가 좋아지지 않아도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반기문 문제는 반기문의 문제이기 전에 시민의 문제다. 공동체를 누가 대표하고 이끌지 시민이 숙의하는가의 문제이다.

수, 2016/06/01- 16:48
111
0

#장면 1: 영국 중부의 보스턴 시. 인구 3만 5천 여 명의 중소도시인 이곳에 거주하는 40대 중반의 제인 아주머니.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23일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1
지난 6월 23일 EU탈퇴를 묻는 영국민들의 국민투표 결과는 지역적으로 뚜렷이 대조됐다. 북서부는 잔류를, 남동부는 탈퇴를 선택했다. (이미지 출처: BBC)

10여 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 신규 EU회원국 시민들이 시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보스턴 시는 75.6%가 탈퇴에 표를 던져 이번 국민투표에서 최고의 탈퇴 지지율을 기록).

#장면 2: 런던안의 런던이라 불리는 ‘더 시티’. 금융산업 중심지인 이곳에서 일하는 35세의 폴. 하루에도 수차례 프랑크푸르트나 파리에 있는 동료들과 업무상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낸다. 폴과 함께 일하는 거의 모든 동료들이 EU 잔류에 표를 던졌다(더 시티는 잔류지지율이 75.3%로 최고를 기록).

BBC 방송이 현장 르포로 보도한 위의 두 사례는 양극화된 영국사회가 왜 EU 탈퇴를 선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BBC보도 참조).

바보야! 문제는 분배야

5월 초까지만 해도 EU잔류 지지가 거의 20% 앞섰다. 그런데 불과 6주 만에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걸까?

EU 탈퇴파가 이민문제를 과장하여 속인 전략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런던 같은 대도시는 사용되는 언어만도 200개가 넘는 개방적인 글로벌 도시다. 반면에 보스턴시 거주인의 2/3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다른 EU회원국의 시민들이 영국사람 보다 취업률이 높아 복지혜택 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2010년 경제위기 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중소도시 시민들은 이를 이민자 탓으로 돌렸다. 탈퇴파가 주장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를 도둑질한다는 선전이 먹혀든 것이다.

이번에 60%이상의 탈퇴 지지가 나온 잉글랜드의 북동부, 중부지역은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도시들이 밀집해있다. 과거 산업도시로 번창하다가 쇠퇴한곳이 많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경제위기까지 겹치고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세계화(유럽통합)로 번창한 곳은 EU의 단일시장을 당연한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긴다. 일자리를 잃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여긴 EU를 비난한다. 얼굴없는 ‘브뤼셀의 관료’로 표현되는 EU가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가 소득 재분배에 더 신경을 쓰고 조세 정책도 개편해야 했는데. EU 잔류/탈퇴뿐만 아니라 세계화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영국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모든 불만을 국민투표에 쏟아 부었다.

EU에서 나가는 영국: 장밋빛에서 먹빛으로

EU 탈퇴파는 유럽연합에서 나와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온갖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번창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탈퇴파 운동을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우리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더 호전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탈퇴가 결정된 24일 금요일 세계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졌다.

EU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장벽없이 이동하는 단일시장이다. 인구 5억 여 명(영국 포함)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은 EU의 핵심 브랜드의 하나다. 그런데 영국이 교역의 45%를 보내는 EU 단일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민을 통제하려고 할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나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은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단일시장을 유지하면서 다른 EU 회원국 이민이 사회 복지 체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몰려들면 이들의 복지혜택을 최대 7년까지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하지만 탈퇴 투표로 이번 재협상은 물거품이 되었다.

1
EU탈퇴파를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오는 10월 국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캐머론 총리가 물러나면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 뒤에 보이는 캐머론 총리는 영국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지난 100년 동안 최악의 총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연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은 J.K 롤링의 책 해리 포터처럼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주권을 되찾아 국경을 통제하고 이민을 줄이겠다는 그의 발언은 단일시장과 이민자 수 제한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곡했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캐머런의 절친인 그가 기본적인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HSBC 같은 다국적 금융기관은 벌써부터 런던 소재 일부 인력을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더블린 등으로 이전하려 한다. 더시티에 본부를 두면 나머지 EU 27개 회원국 시장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데 EU 탈퇴로 이런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

안타깝다. 브렉시트로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질 사람은 바로 서민이다. 탈퇴파를 이끈 보리스 존슨이나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부자이기에 경기 침체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리적인 영국 시민들이 정부 정책 수정을 다른 방식으로 요구해야지 자해와 같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우리의 운명은?

브렉시트는 EU에 아주 좋지 않은 시기에 터졌다.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은 터키에게 30억 유로(우리 돈으로 약 3조 9천억 여원)를 안겨주어 잠시 소강상태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물밑으로 들어갔을 뿐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이런데 영국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브렉시트라는 폭탄을 EU에 던져 버렸다.

미국과 함께 서구를 형성해 2차대전 후 국제질서를 함께 이끌어온 ‘유럽’이 브렉시트로 분열의 단초가 드러났다. 브렉시트를 가장 기뻐할 사람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위대한 러시아의 국제무대 복귀를 목표로 세우고 서구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에 계속하여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1
브렉시트 직후인 지난 25일 베이징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지지를 얻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판 ‘트럼프 현상’으로 불린다.

영국서 도화선이 된 신고립주의와 민족주의 바람이 미국으로도 불어가 더 강한 바람이 될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과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사회경제적 위치가 매우 유사하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었지만 기존 정치권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EU 잔류를 위해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결국 그의 불장난에 집(영국)이 타고 있다. 누가 이 불길을 크게 번지기 전에 제대로 끌 수 있을까?

한 정치인의 잘못된 판단이 해당 국가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혼돈을 주었다. 세계화는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라고 치자. 소득 재분배는 정부가 얼마든지 신경을 써서 세계화의 낙오자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영국의 국민투표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수, 2016/06/29- 10:13
153
0

‘남성영화제’는 없는데 ‘여성영화제’는 있는 이유에 대해 굳이 말해야 할까. 여성은 남성과 대비되는 생물학적 구분이 아니라, 남성이 대변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학적 여성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 건 아니지만(지금 한국의 대통령을 보라), 많은 여성은 새로운 가치를 구현한다.

최근 부쩍 잦아진 여성혐오 논쟁에서 드러나듯,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험난한 상황을 견뎌내 왔다는 뜻이다.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는 과정에서 어떤 남성들이 불이익을 받았을 수 있으나, 수천년간 여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려온 남성들이 ‘역차별’ 운운하는 건 넌센스다.

영화는 오랜 시간 남성의 영역이었다. 여배우를 ‘영화의 꽃’ 운운하며 받드는 척 하지만, 제작자, 연출, 기술 스태프 등의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혹 제작자 심재명, 오정완, 이유진, 감독 임순례, 변영주 등 ‘유리 천장’을 뚫은 이들이 있었으나 다수는 아니었다. 심지어 카메라 같은 기계에 대해선 여성의 접근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고 한다.

AKR20160513148100005_01_i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수잔 서랜든(왼쪽)은 남자의 턱시도를 영상시키는 의상을 입었고, 줄리아 로버치는 맨발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여성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드레스코드에 대한 상징적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제 영화현장에서도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5월 열린 제 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상징적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영화제는 지난해 구설을 겪었다. 칸영화제의 프리미어 상영은 엄격한 드레스 코드로 유명한데, 지난해 상영 당시 몇몇 여성 관객들이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가 입장을 제지당한 것이다. 칸영화제 측은 “신발 높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올해 몇몇 여배우들은 지난해의 소동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배우 수전 서랜든은 남성 정장을 연상케하는 의상에 단화를 신었고, 줄리아 로버츠는 아예 맨발로 레드 카펫을 걸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여성 감독들의 영화도 예년에 비해 늘었다. 21편의 경쟁작 중 3편이 여성 감독의 영화였는데, 특히 독일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르트만>과 영국 감독 안드레아 아널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호평받았다. 영화제에 참석한 여성 감독, 배우들은 작심한 듯 영화계의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말했다.

<머니 몬스터>를 연출한 배우 조디 포스터는 “대형 영화에 많은 돈이 흘러들면서 스튜디오 수뇌부는 위험 요소가 있는 인물을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게 여성은 위험 요소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여성이 이끄는 새로운 움직임이 목격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이 반가운 이유는 두 명의 남성 주인공이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들이 최근 한국영화에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정 분위기의 영화가 관객의 이목을 끈다 싶으면 너도 나도 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하는 것이 영화계의 속성이고, 영화의 장르가 그렇게 탄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의 한국영화는 그 정도가 심했다. 30~40대 남우 2명이 나와 얽히고 설키는 영화들이 대다수였다.

그 사이 많은 재능있는 여배우들을 만날 일도 드물었따. 이는 한국영화가 여배우만이 체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서, 가치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래서 다양성을 핵심으로 하는 영화의 활력을 스스로 놓아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다양한 여성 감독들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조짐은 독립영화계에서 먼저 보였다. 독립영화계 최대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에는 지난해 51편의 본선경쟁작이 선정됐는데, 그중 26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여성 감독의 수가 남성 감독을 넘어선 건 처음이었다. 여성 감독의 작품이 늘어나면서 영화의 소재와 주제도 이전에 비해 다양해졌다.

1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상단 왼쪽),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상단 오른쪽)는 여성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관점을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굿바이 싱글'(하단)은 여성감독의 영화는 아니지만, 여성들 간의 연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류 영화에서도 주목할만한 여성 감독들이 나오고 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초등 4학년 소녀들의 우주를 그려낸 수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선과 갓 전학와서 친구가 없는 소녀 지아는 금세 서로 친해진다. 학급에서 인기 많고 성적도 좋은 보라가 지아를 끌어들이면서 선과 지아의 관계엔 금이 간다. 중산층 이하로 보이는 선과 영국에서 살다온 상류층인 지아의 계급은 한눈에도 비교가 된다.

하지만 <우리들>의 장점은 둘의 갈등을 쉬운 계급갈등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계급 갈등, 파국적 사건이 없이도 맺어지고 또 깨질 수 있는 관계와 감정의 미묘함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현실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극적인 사건 없이는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계에 대안적인 서사의 빛을 던진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다수의 비판, 소수의 호평을 들으며 상영된 영화였다. 연홍은 정치 신인의 아내이자 중학생 딸의 엄마다. 남편의 국회의원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 딸이 실종된다. 남편과 그의 캠프 사람들은 선거전에 악영향을 줄까봐 실종 사건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연홍은 홀로 딸의 행방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딸의 비밀이 차츰 드러난다.

전형적인 스릴러물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비밀은 없다>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기대되는 전형들을 모조리 거부한다. 편집은 혼란스러우며, 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관객의 귀를 괴롭게 하는 아방가르드 펑크 음악이다. 마치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한 이같은 태도는 <비밀은 없다>가 폭로하는 기성 체제의 음험함에 이빨을 드러낸다.

더 많은 여성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여성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의 삶과 감정을 다루는 영화가 나와야 한다.

세상의 이목, 판단에 신경쓰지 않는 ‘이상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굿바이 싱글>은 그 사례다. 극중 톱스타인 고주연은 자신과 전혀 다른 처지에 있던 여중생 단지와 여성의 연대를 맺는다. 얼핏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굿바이 싱글>은 대중영화의 틀에서 이 연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는다.

관객이 남성들만의 영화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민한 영화인들은 한 발 먼저 감지했다.

월, 2016/07/04- 01:10
32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