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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2] 노동이라는 신화와 생활세계의 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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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2] 노동이라는 신화와 생활세계의 탈환

익명 (미확인) | 목, 2017/06/29- 11:50

노동이라는 신화와 생활세계의 탈환

 

한동우 | 강남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기이한 욕망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1)에서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는 하루 종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의료기기를 판매하지만 변변한 수입을 얻지 못하고 어린이집에 맡겨 놓은 아들을 데리러 갈 시간에 늦기 일쑤다. 결국 아내와 이혼한 후 아들과 함께 길거리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공중화장실 바닥에 아들을 눕혀야 했던 크리스는 배고픔보다 비참함에 눈물을 흘린다. 크리스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토머스 제퍼슨 토머스 제퍼슨2)은 미국독립선언문에서 “생명(life), 자유(liberty), 행복에의 추구(pursuit)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고유하고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로 규정하고, 정부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은 왜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이라 하지 않고 ‘행복에의 추구’라고 했을까?” 


‘가난한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을 살 수 있다’고 한 말은 참으로 고약하다. 강이나 바다에 제멋대로 살고 있는 물고기를 누가 누구에게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그렇고, 어떤 사람의 필요를 누군가 마음대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무엇보다도 결국 물고기를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물고기이지, 물고기 잡는 법이 아닌데도 말이다. 한 주거복지 토론회에서 어떤 교수가 “모든 사람에게는 안전하고 충분한 주거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주거는 명백한 권리입니다.”라고 주장하자, 그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시민이 이렇게 말했다. “말씀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만 제게 필요한 것은 주거권이 아니라 집입니다(Ferguson, 2015).” 물고기나 집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분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생산된다. 한국의 경우, 1인당 GDP는 2016년에 3만 달러에 육박하고 주택보급률은 103%를 넘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누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배고프다면, 그것이 물고기 잡는 법을 몰라서인가? 당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이 당신에게 행복을 추구할 천부적이고 양도불가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인가?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원한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단결하며, 실업자들은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한다. 평생 일하다가 은퇴한 노인들도, 갓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들조차 모두 일자리를 원한다. 아기를 낳은 사람은 경력단절여성이라는 괴이한 이름표를 단다. 현대사회에서 인간 실존의 삶은 일자리를 기준으로 구획된다. 노동자, 실업자, 알바, 비정규직, 취준생, 공시생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실용적인 인간분류목이 되었다. 애타게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노동은 인간의 삶과 세계를 만들고, 인간 자신을 생산하는 행위로서 인간의 유적(類的) 본질(맑스)’이라는 말이나, ‘노동은 주체와 객체를 통일하고, 대상에 자아의 고유한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대상 속에 자신을 외화하는 행위(헤겔)’라는 명제는 공허하다 못해 비아냥으로 들린다.


현대사회에서 일자리는 노동이라는 추상명사와 동의어가 되었다. ‘흙에서 왔으니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구약성서 창세기 3:19)’는 신의 언명을 저주로 받아들였던 인간은 노동을 숙명에서 의무로, 의무에서 권리로, 이제는 궁극의 욕망의 대상으로 바꿨다. 노동(work, arbeit)이라는 말은 초역사적이고 비규정적인 보편 개념이 아니다. 노동을 인간의 유적 본질로 파악했던 맑스도 한편으로는 가장 현대적 범주에서만 노동의 참된 의미가 드러난다고 함으로써 노동개념의 초역사성을 부정한다. ‘노동의 신성함,’ ‘노동권,’ ‘노동윤리’ 등의 개념들은 노동이라는 말의 사회적 추상성을 가장 높은 단계로 전제하는 것이다. 마치 사과, 배, 오렌지를 과일이라는 개념으로 추상하듯이. 노동개념의 높은 사회적 추상성은 인간의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일상 활동과 임금을 벌기 위해 타율적으로 강제되는 노동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와 자본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신화가 되었다.  


생산주의 패러다임에서 노동은 생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인간은 타율적으로 부여된 노동기회를 통해 임금을 획득한다. 노동은 상품처럼 시장에서 거래되며, 따라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생산의 세계에 속하지만, 화폐임금을 통한 소비는 규율을 결여한 탐욕과 쾌락의 세계에 속한다. 노동의 규율과 소비의 방종 사이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화적 모순이 발생한다. 윤리의 외피를 입은 노동의 비인간성을 위로하는 말은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면 된다는 것이지만 이건 헛소리다. 개같이 버는 사람은 정승이 어떻게 쓰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체제의 존속을 위한 자본주의 스스로의 선택이다. 노동은 생산을 위한 것이지만, 생산은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생산을 위한 소비가 필요하게 된다. 노동은 노동자의 욕망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기이하게 이식된 자본의 욕망이다. 

 

복지국가에서 재현되는 노동사회의 역설: 소외와 인정투쟁

사회가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조직화되며, 개인의 정체성이 시장에 복속됨에 따라 노동이 개인에게 내면화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는 노동사회이다(Heide, 2009). 노동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참여하는 사회도, 단지 노동시간이 긴 사회도 아니다.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나 시간만으로 노동사회를 판단해야 한다면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벽부터 저녁 어스름까지 논밭에 나가 일하던 전통사회를 노동사회로 불러야 할 것이다. 아로노위츠(Aronowitz, 1994; 1998)나 고르(Gorz, 1999) 등은 굳이 한국처럼 장시간 노동체제를 갖는 과노동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노동사회의 전형은 주당 평균 40시간을 노동하는 일반적인 사회이다. 노동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인의 정체성과 삶이 노동을 통해 구성되고, 노동윤리에 의해 규율되는 사회를 말한다. 노동사회는 노동의 관념은 넘쳐나지만 정작 일자리는 부족한 사회, 노동윤리와 신성함은 신화화되어 있지만 노동을 도구화하는 사회이다.  


노동사회에서 개인의 복지는 소비를 통해 실현되는데, 소비는 시장에서의 현금교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의 복지수준은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다. 시장 구매력은 노동을 교환한 대가로 얻는 임금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매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노동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는 현대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는 임금노동을 통해 노동자에게 내면화된다. 구매력에 따라 자신의 복지가 결정되는 노동자들은 일자리 상실의 공포 때문에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며, 경쟁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들 간의 경쟁은 일자리 공포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대는 일자리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노동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세계를 국가와 자본의 지배하에 방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 구조 속으로 투항시키고 있다.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한다는 윤리규범은 개인의 정체성을 ‘노동하는 인간’으로 구성한다.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것으로서의 노동은 노동윤리를 통해 타율의 범주 속으로 편입된다. 노동이 타율의 범주에 포함되면서 인간의 신체활동인 노동이 그 주체인 인간을 소외시키며, 급기야 노동을 하지 않는 실업이 인간을 소외시킬 정도로 노동은 개인에게 내면화되고 있다. 경쟁적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획득한 개인은 일자리가 갖는 상징성이 부여하는 일종의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을 소유하게 된다.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획득하는 것은 임금 뿐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다. 현대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는 임금이 높거나, 상징가치가 높은 일자리이다. 굳이 보드리야르(Baudrillard, 1991)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개인이 시장에서 소비하는 것은 생물학적 효율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음식물과 잠자리일 뿐 아니라, 그러한 상품에 부여된 상징이기 때문이다. 노동이라는 매개물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지 못하는 현대의 인간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빼앗겼을 때 심각한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상징소비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의 실존적 인정투쟁이다.


2017년 1월 19일 심상정이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를 기치로 정의당 대통령후보 경선출마를 발표했을 때 한국 진보정파의 현실적 한계가 어디인지 드러났다. 심상정은 노동개혁을 새로운 정부의 제 1의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하면서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든 노동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하고 자신의 노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그리고 이 선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의 1호 공약은 81만개의 일자리를 공공부문에서 만든다는 것이었다). 물고기와 물고기 잡는 법, 행복과 행복에의 추구 사이에서 한국의 진보정파가 차라리 길을 잃은 것이었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노동사회 패러다임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명백히 천명한 것으로 밖에 판단할 수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은 모두가 지지하는 시대적 교리가 된 듯하다.   


노동사회의 특성은 복지국가의 체제 내부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복지국가가 임금노동을 사회조직화의 기본 전제로 삼는다는 점, 복지국가의 제도적 급여들이 임금노동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복지제도의 수급자와 납세자 모두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유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는 노동사회의 특성을 복제한다. 노동시장정책은 물론, 고용과 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보험체계, 열등처우원칙이 관철되는 공공부조, 비공식 영역을 합리화함으로써 돌봄을 (재)상품화하는 사회서비스제도 모두 노동사회의 특성과 조건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시장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일자리에 따라 구성되지만, 복지국가체제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수급권의 종류와 여부로 구성된다. 정규직, 비정규직, 알바, 취준생으로 불리던 개인은 기초생활수급권자, 의료보호대상자, 장기요양 3등급으로 불리며, 급기야 사회보장급여 발굴대상이 된다. 발굴이라니. 


다니엘 블레이크의 가난한 장례식은 동네 사람 몇 명만 참석한 가운데 아침 아홉시에 시작됐다. 이웃이었던 케이티는 다니엘이 작성했던 상병급여 이의신청서의 내용을 유언처럼 읽는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서비스 이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사회보험번호도, 컴퓨터 스크린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자선을 받아들이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시민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다니엘과 사회복지공무원의 갈등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은 개인과 체제, 시민과 국가의 충돌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개인은 선하고 정부는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가 하는 말은 복지국가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제도에 의한 개인의 소외, 그리고 소외에 대한 개인의 인정투쟁에 관한 것이다. 다니엘은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 온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에게 말한다. “존엄함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오.”


복지국가는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하고 개별적인 사회 문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확장해왔다. 사회문제가 제도의 불완전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은 약이 없어서 병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회복지정책 관료들과 학자들의 마음속에는 습관처럼 ‘사각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어떠한 제도도 완전할 수 없기에 모든 제도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그래서 사회문제를 제도의 사각지대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지 못하며, 제도 자체의 확장성과 지속가능성만을 지향할 뿐이다. 사각지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의 틀이 아니라,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틀이다. 복지국가의 제도적 확장이 사회문제를 모두의 보편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국가의 책임과 권한을 통해 집합적으로 대응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도 자체의 완결성에 대한 믿음과 집착으로부터 발생하는 개인의 소외와 이에 대항하는 인정투쟁은 역사적 복지국가의 다른 얼굴이다. 

 

노동자의 시간: 노동과 여가의 이분법

2012년에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을 외쳤을 때, 사람들은 그 말의 의미를 성찰하기 보다는 문학적 감성에 취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언제 저녁이 없었던가? 어떤 대기업이 노동시간을 아침 일곱 시에서 오후 네 시까지로 정했을 때, 노동자들은 늘어난 저녁에 괴로워했다. 저녁은 늘었지만 새벽이 줄었기 때문이고, 늘어난 저녁에 할 일도, 그 시간을 충실히 떼울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시간은 아침과 저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시간과 노동하지 않는 시간으로 나뉠 뿐이다. 노동하는 시간은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킨 노동을 팔아 임금을 버는 시간이고,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는 다음 날 내다 팔 노동을 만드는 시간이다. 세상에 이처럼 강고한 이분법은 없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는 이탈리아 어느 도시에서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사람들과 싸운다. 회색양복을 입은 신사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희한한 계산법을 보여주며 시간을 저축하라고 한다. 자신들에게 시간을 맡기면 이자에 이자를 붙여 나중에는 엄청난 시간을 쓸 수 있다고 속이는 회색양복 신사들에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기꺼이 맡기고 있었다. 시간을 저축하면 더 부유해지고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던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시간을 저축할수록 바빠졌고 불행해졌다. “사람들은 시간을 저축할 때마다 다른 것을 잃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도 인생이 점점 가난해지고, 더 어두워지고 단조롭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삶 그 자체이며, 삶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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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생활세계는 노동하지 않는 시간(여가, leisure)에 만들어진다. 형식논리상 여가시간은 노동을 재생산하는 시간이다. 산업주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여가마저 소비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노동사회에서 소비는 생산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소비시장에 편입된 여가는 상품과 서비스의 형태로 교환되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노동을 만들어낸다. 좋은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들은 시장화된 여가영역에서 여가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소외를 극복하고 노동을 재생산할 수 있지만, 저임금 일자리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여가소비를 통해 노동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임금을 벌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선택은 장시간 노동이다. 이 때 임금은 늘어나지만 시간이 줄어든다. 장시간 노동으로 여가시간을 적게 확보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시간빈곤(time poverty)에 시달리게 된다(노혜진, 김교성, 2010).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주인공 애라는 신입사원 면접에서 자신에게 질문이 주어지지 않자 “제 소개를 할 준비를 해 왔는데 지금 해도 될까요?”하고 묻는다. 면접관은 거의 빈 칸뿐인 애라의 이력서 끝을 잡고 흔들며 “25번! 여기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금입니다. 이 분들의 시간을 뺏으려면 자신의 시간부터 스펙으로 채웠어야죠.”라고 말한다. 애라의 눈동자는 힘없이 풀리며 흔들린다. “저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노동을 교환하지 못한 노동자는 재생산노동 시장에 진입한다. 이들은 자신의 여가를 소비하는 대신 타인의 여가소비를 위한 노동자가 된다. 개인이 지출할 수 있는 여가소비 비용은 자신의 임금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여가시장에 고용된 노동자의 임금은 생산시장에서 임금을 벌어들이는 노동자의 임금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재생산영역에서의 일자리는 돌봄 등 주로 사회서비스 노동이 차지한다. 복지국가의 사회서비스전략이 이 부분에 집중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 등 제3자 지불방식에 의해 임금이 지급되는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허망하다. 재생산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노동을 재생산하는데 실패한 노동자들은 노동빈곤층(working poor)이 되거나, 노동시장 주변부에서 항상적 불안에 시달리는 프리케리아트(precariat)가 된다. 


버트란드 러셀이 유명한 에세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에서 하루 4시간 노동을 주장한 것은 1932년이었다. 당시 영국의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5시간까지 노동을 해야 했으며, 한편으로는 극심한 실업난을 겪고 있었다.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어서 실업자들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더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러셀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현재도 그대로 유효하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남는 시간이 허비될 것이라는 생각은 노동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편협한 윤리적 태도 때문이라고 러셀은 주장했다. 보드리야르(Baudrillard, 1991)가 현대사회에서 시간 ‘낭비’의 불가능성이 인간의 비극이라고 지적한 것과 일치한다. 생산을 통한 이윤창출만이 바람직한 행위라는 관념은 러셀의 20세기 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를 만드는 노동은 바람직하지만, 노동자들이 영화를 보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다!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윤리적 규율을 만들어 낸다. 시간을 아껴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모모』의 마을 주민들이 시간을 저축할수록 삶이 더욱 피폐하고 단조롭게 되는 것을 겪었듯이, 시간을 아끼는 것은 삶을 줄이는 것이다. 시간이 곧 삶이다. 


생활세계의 탈환: 탈노동과 생산력 복원

산업자본주의 이후의 빈곤은 개인의 생존과 삶의 조건을 결정지을 수 있는 생산력을 시장에 위임하여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하고, 가족과 지역은 소비-공동체로 전락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가족과 지역에 유보되어 있던 돌봄과 생산력이 시장에 위임되면서 생산과 소비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었으며, 생산하는 장소와 소비하는 장소도 분리되었다. 이때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소비를 위한 생산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소비가 된다. 인간의 삶과 복지수준은 온전히 소비능력에 의존하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인격성은 소멸된다. 맥도날드방식(McDonaldization)은 더 이상 패스트푸드 업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식품과 의복, 주거, 그리고 사회서비스 공급에 이르기까지 표준화된 생산체계와 규격화된 질 관리, 그리고 광역 물류(전달)체계가 철저히 관철된다. 


노동사회에서 노동과 여가로부터 소외된 개인은 생산과 소비과정에서 역시 소외된다. 인간의 실존적 자아정체성이 구성되고 삶의 행위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생활세계는 노동과 사회적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제도의 관료행정이 구성하는 상징세계(symbolic world, 체계)에 의해 식민화된다. 상징세계는 합목적적 경제이성(Gorz, 1999)에 근거하여 인간의 행동을 효율성 관점에서 통합하고자 한다. 한편, 생활세계는 개인의 행위를 구성원 간의 공유가치와 상호이해를 통해 조직함으로써 동일성을 유지한다. 사회복지의 사명은 개인으로 하여금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조직화되고, 노동윤리에 의해 규율되는 사회체제와 지배 패러다임을 변혁함으로써 경제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상징세계로부터 생활세계를 탈환하는 것이다. 


생활세계의 탈환은 시장에 위임된 개인과 가족의 생산력을 복원함으로써 내면화된 타율노동으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생산력 복원은 노동을 통해서 얻은 임금을 소비함으로써 개인의 복지를 이룰 수 있다는 신화를 전복하고, 인간 간의 상호의존과 지역 내에 배태되어 있는 역량에 대한 믿음을 조직화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복지국가가 노동의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 of labor)를 지향했다면, 새로운 복지체제는 사회의 탈노동화(delaborization of society)을 지향한다. 탈노동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 임금노동에 의존하는 정도를 급격히 줄이는 것이다. 당연히 노동시간을 줄어야 하며, 상대적으로 여가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노동시간 감소는 필연적으로 임금감소로 이어지지만, 늘어난 여가를 통해 복원되는 생활세계의 생산력이 임금상실분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완벽하게 통제된 기술사회를 지향해 왔지만, 새로운 복지체제는 해방된 사회를 지향한다. 새로운 복지체제 하에서 국가의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 자유를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들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화폐적 교환의 활성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 재화의 공유범위 다양화, 사회적 경제 등 시민사회의 자발적 경제결사체 활성화 등이 주요 정책 이슈가 될 것이다. 

 


1) 영화에서는 고의로 행복의 철자를 happyness로 틀리게 썼다.

2)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독립선언문에서 “생명(life), 자유(liberty), 행복에의 추구(pursuit)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고유하고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로 규정하고, 정부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참고문헌>

노혜진, 김교성(2010) “시간과 소득의 이중빈곤,” 『사회복지연구』, 4(12), 159-188.
Aronowitz, S. and J. Culter(ed.) 1998. Post-work: The Wages of Cybernation, New York: Routledge.
Aronowitz, S. and W. DiFazio, 1994, The Jobless Future: Sci-Tech and the Dogma of Work,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apolis Press.
Heide, H., 강수돌(역) 2009.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자본의 내면화에서 벗어나기』, 서울: 이후.
Ferguson, J. 조문영(역) 2015, 『분배정치의 시대: 기본소득과 현금지급이라는 혁명적 실험』, 서울: 여문책.
Baudrillard, J. 이상률(역) 1991, 『소비의 사회: 그 신화와 구조』, 서울: 문예출판사
Gorz, A. 1999, Reclaiming Work: Beyond the Wage-Based Society, Cambridge: Pol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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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 침해로 발생한 메르스 비극

누가 이 죽음을 책임져야 하는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 이찬진 변호사)는 오늘(7/22) 『알 권리 침해로 발생한 메르스 비극』 설명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메르스 발생 이후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비밀주의를 일삼은 행태를 지적하였습니다.

 

설명자료에서는 5/20일 첫 번째 메르스 환자 발생 이후 정부관계자들의 공식적인 발언을 통해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극단적 비밀주의는 메르스 전염 및 공포가 세계 유례없이 퍼지는데 일조하였고,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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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 침해로 발생한 메르스 비극

누가 이 죽음을 책임져야 하는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5/20일

'첫 번째 메르스 환자 확진' 언론보도 나간 후,

“환자가 거쳐 간 의료기관을 방문해 메르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정부 발표 <메르스 Q&A> 중

 

5/29일

“해당 병원 의료진 모두 격리했고 인근 공공 의료기관 동원해 안전하게 환자들 전원 조치했다. 전문가들과 여러 가지 조사 시행하고 있어서 현 상황에서 병원을 공개하기 곤란하다”-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5/30일 

“현재까지의 추세나 여러 추가 검사가 진행 중인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도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다”

“특정 병원들을 공개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만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만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5/31일

“첫번째 환자가 입원해 메르스가 확산된 병원을 휴원 조처한 상황에서 해당 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6/2일

"어떤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다고 해서 특정 병원을 가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전염병 확산 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지역이나 병원명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6/3일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며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투명하게 즉시 공개할 것”그러나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공개는 하지 않기로 함 -박근혜 대통령

“국민 입장에서 병원 공개는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하지만, 병원 공개에 따른 득과 실을 따져볼 때 결론적으로 실이 더 큰 것으로 판단했다”, “병원이 공개되면 메르스가 퍼진 것으로 오인돼 사람들이 가지 않을 것이고, 병원들은 메르스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병원들을 전부 공개하면 앞으로 치료를 할 수 없다”-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6/4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차 확인 -권준욱 중앙메르스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
박원순 서울시장 메르스 긴급 브리핑 이후 병원공개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6/5일

평택성모병원 공개

 

6/7일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한 메르스 환자 및 경유병원 24곳 공개

이렇게 정부가 메르스 발생 병원을 숨긴 5/20~6.6 17일 동안...

 

14번 환자

첫 번째 환자와 같은 시기에 평택성모병원에 입원

병원 비공개로 메르스 노총 사실을 모름

5/27~29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

이를 통해 감염된 환자 16명 사망

만약 14번째 환자가 병원정보를 알았다면?

 

16번 환자

첫 번째 환자와 같은 시기에 평택성모병원병원에 입원

병원 비공개로 메르스 노출 사실을 모름

5/25~27 대전 대청병원

5/28~30 건양대병원 입원

이를 통해 감염된 환자 11명 사망

만약 16번째 환자가 병원정보를 알았다면?

 

전 세계 유례없는 메르스 확산, 2015년 7월 22일 현재

186명 확진, 36명 사망

누가 이 죽음을 책임져야 하는가?

수, 2015/07/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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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요구에 역행하는 부실한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

지적 사항 반영 않고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근본적 대안 배제시켜

대책 내용 중 일부는 보건복지부 예산과도 일치하지 않아

 

정부는 오늘(12/10)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개최하여‘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심의, 확정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전통적 가족 개념에 기반하여 저출산의 주요원인을 ‘만혼 및 비혼'으로 보는 등 사회적 불평등과 젠더의식이 결여된 시대착오적인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OECD 최고의 노인빈곤율에도 공적연금보장수준 강화라는 근본적 대안을 배제시킨 이번 대책은 인구 고령화 가속으로 심각해지는 노인문제해결에 대한 정부의 해결의지마저 의심케 한다. 더욱이 확정한 제3차 기본계획 대책 내용 중 일부는 2016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과도 일치하지 않아 계획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시대의 추세에 맞게 다양한 가족에 대한 포용성을 제고한다면서 만혼과 비혼 경향을 저출산의 근본원인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저출산 요인을 줄이기 위해 대책이라고 내놓은 노동개혁 입법은 비정규직의 기간을 연장시키고 파견을 확대하는 내용 등으로 실상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양산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미 저임금불안정 노동 환경에 노출된 청년층이 더욱 증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목돈 부족으로 주택구입이 어려운 신혼부부 등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은 이미 높은 임대료로 서민 주거 안정 대책으로선 부적절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게다가 정부는 맞춤형 안심보육을 확립하여 돌봄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상은 대통령 공약이었던 ‘국가완전책임보육’약속을 파기하고 3-5세 과정의 보육․유아교육 재정 부담을 재정여력이 없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전가하여 국가책임을 회피하고 결국 보육대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수요자 맞춤형 보육정책은 경제활동을 하는 부모와 전업부모를 차별하여 갈등을 조장하고 가정 내 돌봄 당사자의 경력단절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대책들은 정부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성차별 등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개선의지가 없음을 방증한다.

 

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의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인인구는 과거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인빈곤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처럼 노인의 빈곤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정부는 주택연금 및 개인민간보험 활성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주택연금 및 개인민간연금은 상당한 가액의 부동산 보유 또는 여유자금을 전제로 하는바, 중산층 이하의 노인들에게 노후대비책이 될 수 없어 노후의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 있다. 실질적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초연금 및 국민연금의 보장수준 강화를 위한 내용은 빠져 있어, 국민의 노후대비의 국가 책임은 방기하고 개인책임을 더욱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드시 필요한 근로빈곤층의 국민연금 가입확대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최근 활동을 마감한 국회 산하‘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정부여당의 방해로 최소한의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계획은 공수표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노인연령 기준 재검토 계획을 다시 언급한 점으로 보아 전반적인 사회보장제도 퇴행 및 노인복지 축소가 우려된다.

 

게다가 정부가 발표한 제3차 계획에 담긴 일부 정책은 2016년도 보건복지부 예산과 일치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기본계획에서는 국공립어린이집을 16년~17년까지 150개소를 확충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예산에는 2016년에는 135개소 신축만 반영되어 있어 기본계획과 예산의 수치가 맞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서울시가 2016년도에 자체 예산편성을 하여 시행할 공립어린이집 200개소 확충 계획보다도 턱없이 미흡한 것이기도 하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의 설치 계획이 담겨있지만 2016년 예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것들은 지난 제3차 기본계획 시안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전혀 수정․보안 없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독거노인돌봄서비스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실상 수혜자 1인당 예산은 2015년보다 감소한 예산이 책정되었다. 이처럼 일관되지 않은 정부의 기본계획은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않을뿐더러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한다.

 

정부의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사회적 불평등 및 젠더의식에 대한 부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사회가 당면한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 해결에 있어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절실하다. 따라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 이찬진 변호사)는 현실에 맞지 않는 부실한 내용으로 포장만 그럴싸하게 하여 또 다시 국민들의 눈속임하는 수준의 기본계획을 내놓은 것에 우려를 표하고,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정의와 공평과세를 통한 세수증대, 돌봄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 확대, 공공임대주택 대량 공급 등 보다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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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12/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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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대통령 담화를 비판한다

메르스 책임은 외면하고 의료영리화의 포석인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통과만 강조

의료영리화 정책으로 더 큰 재앙 초래될 우려 커

 

오늘(8/6)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서비스산업육성’ 등을 강조하며 앞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 이찬진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부실한 대처로 수십 명이 생명을 잃고 대다수 국민들이 고통을 겪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반성과 공공의료강화 대책에 대하여는 일언반구조차 없이 도리어 국민의 삶과 생명을 외면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의 의료영리화 정책만을 강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되면 서비스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 교육 등 사회공공서비스 영역을 영리화함으로써 공공성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법안이다. 또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보험회사의 환자 유치알선 등을 허용하고 보험업과 병원을 연결시킴으로써 의료영리화의 도구로 기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법안은 의료법 제27조 위반 및 결과적으로 의료비 상승이라는 국민 부담과 빈부격차에 따른 의료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무고한 국민들의 목숨이 희생되었던 메르스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공공의료의 확충, 의료기관 양극화 해소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에도 정부는 경제 재도약이라는 명분으로 공공분야인 의료를 상업화, 영리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료부분의 민영화 추진 정책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정부의 막중한 책임을 회피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민간 시장에 방치함으로써 제2, 제3의 메르스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 제안 이전에 메르스 감염병 확산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대국민담화에서 주장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과 같은 의료민영화 포석이 되는 정책은 폐기하고 공공서비스 강화와 복지확대를 위한 대안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목, 2015/08/0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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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대통령 담화를 비판한다

메르스 책임은 외면하고 의료영리화의 포석인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통과만 강조

의료영리화 정책으로 더 큰 재앙 초래될 우려 커

 

오늘(8/6)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서비스산업육성’ 등을 강조하며 앞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 이찬진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부실한 대처로 수십 명이 생명을 잃고 대다수 국민들이 고통을 겪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반성과 공공의료강화 대책에 대하여는 일언반구조차 없이 도리어 국민의 삶과 생명을 외면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의 의료영리화 정책만을 강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되면 서비스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 교육 등 사회공공서비스 영역을 영리화함으로써 공공성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법안이다. 또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보험회사의 환자 유치알선 등을 허용하고 보험업과 병원을 연결시킴으로써 의료영리화의 도구로 기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법안은 의료법 제27조 위반 및 결과적으로 의료비 상승이라는 국민 부담과 빈부격차에 따른 의료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무고한 국민들의 목숨이 희생되었던 메르스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공공의료의 확충, 의료기관 양극화 해소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에도 정부는 경제 재도약이라는 명분으로 공공분야인 의료를 상업화, 영리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료부분의 민영화 추진 정책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정부의 막중한 책임을 회피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민간 시장에 방치함으로써 제2, 제3의 메르스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 제안 이전에 메르스 감염병 확산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대국민담화에서 주장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과 같은 의료민영화 포석이 되는 정책은 폐기하고 공공서비스 강화와 복지확대를 위한 대안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목, 2015/08/0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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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년 3월 2일(수) 오전 11시 / 장소 : 청와대 앞

 

20160302_기자회견_정부의초과보육확대규탄 (1)

 

[기자회견 개요]

- 사회 : 김영연(서울교육보육포럼 운영위원장)

- 발언 : 장미순(참보육을위한부모연대 운영위원장)

            김호연(공공운수노조보육협의회 의장)

            김남희(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김현정(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 기자회견문 낭독 : 박미수(인천보육교사협회 협회장)

 

[기자회견문]

보육교사에게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보라고?

- 초과보육 확대는 위법하고 보육의 공공성에 역행하는 것이다

- 어린이집 초과보육 확대 규탄한다

 

정부는 지난 2014년 초과보육(법정 교사대 아동비율 초과보육)을 금지한다고 밝혔으나 ‘반별 정원 탄력편성’이라는 명목 하에 지방보육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할 시・도지사의 승인을 얻으면 반별 아동 수를 늘릴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영유아보육법 상에는 교사 일인당 아동 비율이 만 0세는 3명, 만 1세는 5명, 만 2세는 7명, 만 3세는 15명, 만 4세 이상은 20명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지침으로 만 0세를 제외하고 만 1세는 6명, 만 2세는 9명, 만 3세는 18명, 만 4세 이상은 23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초과보육을 2014년부터 금지 하겠다고 밝힌바 있으며, 2015년 3월부터 국공립․직장어린이집의 초과보육을 전면 금지했고, 2016년부터 법인․민간․가정어린이집 등으로 확대하기로 하였는데 이번 지침을 통해 정부는 국민들과 한 약속을 전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무엇보다 영유아보육법 제52조에 의하면 초과보육은 도서․벽지․농어촌지역 등을 제외하고 금지하고 있으며, 예외적인 사항에 한하여 지방보육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법 개정 없이 보건복지부가 초과보육 허용하는 것은 위법하다. 그러나 정부는 지방보육정책위원회가 지역의 운영 여건을 고려해 초과보육을 허용할 수 있도록 꼼수를 쓰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여 시급히 대안이 필요한 상황으로 정부는 보육 공공성 투자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함에도 보육예산 지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기고, 실효성이 의심되는 맞춤형 보육제도를 실시하는 등 불안한 보육환경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시, 어린이집 내 CCTV설치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고 어린이집 관리감독의 책임을 국가가 아닌 부모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누누이 지적했지만 강행처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초과보육을 허용하려 하고 있다. 교사대 아동비율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들을 더욱 궁지에 몰고 아이들이 제대로 돌봄을 받기 어려워 아동 및 교사의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 결국 보육교사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보육의 질은 나빠지는 등 보육의 공공성은 훼손될 것이 뻔한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서서 보육의 질을 후퇴하는 정책을 시도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에 학부모․시민․노동자단체는 보육의 질 개선을 위한 정책에 역행하는 정부를 규탄한다. 또한 초과보육 허용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1. 교사대 아동비율 확대를 당장 철회하라. 
 
2.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의무 규정 신설하라. 
 
3. 보육교사 처우개선 및 노동환경 보장하라.
 

수, 2016/03/0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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