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 항소부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항소심으로서는 첫 무죄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를 인정하는 1심 판결은 2015. 5. 광주지법에서 4명, 2015. 8. 수원지법에서 2명, 2016. 6.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2명, 그리고 2016. 8. 청주지법에서 1명 등 최근 들어 예전보다 빈번히 선고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번 판결은 첫 항소심 판결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27쪽의 판결문을 통해 법원은 더 이상 국가가 이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다수의 국민이 보편적 입장을 공유하게 된 이 시국에서 소수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장철준 교수님의 깊이 있는 칼럼을 통해 살펴봅니다.
그들을 다시 정당한 민주시민의 자리로
: 다시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을 바라보며
[광장에 나온 판결] 광주지방법원 2016노1668 병역법위반 (재판장 김영식 판사 유병호 강화연)
장철준(단국대학교 법과대학)
소수자의 권리와 양심적 병역거부
헌정의 위중을 논할 시점에 무슨 양심 논란인가 되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저 복잡한 비위의 흑막을 꿰뚫고 직시하여야 할 인권 문제가 여전히 곳곳에서 반향을 기다리고 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일자리와 소득, 세금 등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하고, 수많은 을들의 호소 덕분에 갑에 대한 불평등의 성토 또한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어서 서로 간의 경중을 가리는 것조차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나마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동조를 이끌 수 있는 문제들은 다수라는 규모에 담긴 변혁의 잠재성에 기댈 수 있어 희망적이다. 하지만 대중의 일상 밖에 있는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는 특별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의 것으로 삼기 어렵다. 다수 대중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이것이 여전히 귀찮거나 불편한 인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삶을 누리기 위한 경제적 조건에도 그러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것과 관련 없는 그들 마음 속 생각과 신념의 자유에까지 대중의 공감이 미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잘 이루어지는 사회를 향해 우리는 선진국이니 성숙한 시민이니 하는 말로 칭찬하는 데 익숙하면서도, 정작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드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소수로 전락하지 말아야 하고, 적어도 겉으로는 남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은 삶이라 가르쳐 온 대가일지 모른다. 자신이 언제든 그 소수가 될 수도 있음을 잊은 채 말이다.
굳이 이 시점에 양심적 병역거부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이 주제에서 위와 같은 갈등 구도에 대한 제도적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법적 논란은 결과의 면에서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있지만, 법 해석의 변화와 함께 점차 우리 사회 다수의 인식 속에 긍정적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10월 18일에 선고된 광주지방법원 합의부의 병역법 위반 항소심판결(2016노1688)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진전된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간의 다른 판결에서 언급을 생략하거나 논의를 피하였던 헌법적 주제들을 과감하게 직접 검증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각종 경험적 통계자료와 외국 법제와의 객관적 비교를 근거로 대법원 판례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물론 한 달도 안 되어, 문제의 핵심에 해당하는 대체복무제에 대해 침묵한 채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반복한 다른 항소심판결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광주지법에서 제기하고 논증한 본질적 헌법 사항은 상급심과 헌법재판소에서 반드시 재검증 절차를 밟게 될 것이므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의 쟁점은 병역법 제88조 제1항,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부터 3일 이내에 입영하지 아니하는 경우” 처벌한다는 규정에서 ‘정당한 사유’에 양심의 자유가 포함되는지 여부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은 이 정당한 사유에 “질병 등 병역의무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유에 한정될 뿐”이라 하여, 양심에 의한 자발적 입영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주지법 항소심 판결은 이 대법원 판례의 쟁점을 반박하며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다. 먼저 우리나라가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에 명시된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의 보장을 이제 우리 사법에서도 실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규약 범위 안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고 판시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을 근거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국제법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각종 대체복무제도를 입법하여 이 문제의 해결에 힘쓰고 있는 국제사회의 전향적인 법적 조치를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참고로 지금까지 대법원은 규약의 어디에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이란 개념을 인정하는 명문 규정이 없고, 규약 제정 과정에서 이 권리의 포함을 두고 반대하는 국가들이 있었으며, 그 수용 여부를 개별 국가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로 규정된 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줄곧 반대의 입장에 있었다.
또한 항소심판결에서는 현행 병역법 체계에서 신체등위, 학력, 연령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한 다양한 병역처분을 내림으로써 병역의무를 구체적으로 배분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미 우리 법체계에서도 병력 자원을 합목적적으로 사용하고 이를 통해 실질적 평등을 제고하며 사회통합까지 이루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기존 입장에서조차 완고한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였던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의 사유로 내세운 헌법상 권리가 병역법 조항의 “입법목적을 능가하는 우월한 헌법가치를 가진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의무 이행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이러한 점들을 함께 고려한다면, 유독 한 해 600명에 달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만 별도의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실형을 부과하는 현행 법체계는 불공정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민주시민과 양심의 자유
판결에서 광주지법이 제시한 변화된 국민의식 결과(대체복무제 도입에 약 70% 이상이 찬성)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먼저, 여전히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게 하는 안보 논리의 불합리성이다. 남북의 대치가 엄존한 상황논리를 배경으로 연 600여 명에게라도 더 집총행위를 시킴으로서 우리 국방력의 유지와 개선 목표에 봉사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현대전의 전자화·기계화 된 군사기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면 도무지 동의하기 힘든 사항이다. 연 40조원에 육박하는 국방예산과 첨단무기를 운용하며 세계 9위의 국방력을 자랑하는 우리 군을 오히려 폄하하는 편협한 생각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주장의 본질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헌법이 명하는 국방 의무의 면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집총을 매개로 한 병역을 할 수 없다는 것 뿐이다. 국방 의무를 반드시 총으로 수행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제의 각종 변형된 병역의 모습은 이를 이미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종교적 믿음에서, 혹은 개인의 신념에서 사람에 대한 살생의 병기를 멀리 하겠다는 마음의 법을 따르고자 한다. 그 법을 어기는 것이 자신의 전 인격을 부인함과 동일한 정도의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며, 인격의 파멸을 선택하기보다 차라리 자발적 병역법 위반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이유에서이다. 만일 병역 대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체의 방법을 국가가 지정해준다면 그것이 군 생활보다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 회피의 수단으로 파급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혹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법 위반의 길을 가게 하라는 주장을 내뱉기도 한다. 많은 경우 여기에는 “시키는 대로 군대 갔다 온 나는 양심도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라는 자조의 뒷말이 달리곤 한다. 헌법의 양심(良心)을 오해한 까닭이다. ‘양심의 자유’에서의 양심(conscience)이란 도덕적이고 착한 마음 그 자체보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신념’에 더 가깝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개인의 신념은 때로 여럿이 모여 역사를 변혁하였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경우 국가에 의하여 탄압받거나 다수의 생각에 억눌리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과거 서로 다른 신의 뜻을 명분으로 한 오랜 살육의 투쟁을 끝내면서 역사는 공존과 관용의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이는 한 사람의 신념이 옳고 다른 이들의 생각이 그를 수 있다는 자유주의 사상으로 발전하여 법치주의를 통해 그 한 사람의 신념이라도 보호하는 제도를 취하기에 이른다. 이 오랜 고통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오로지 개인의 헌법적 권리 차원에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익의 차원에서 공익과 사익의 형량을 통해 기본권 보장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적 사고방식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우리 민주주의의 주역인 시민으로서 소중한 참여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할 것인지를 우리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한결같이 밝혀온 대로, 여기서는 대체복무의 수용과 그 제도적 디자인을 담당할 입법의 역할이 중요하다. 격의 없는 토론과 소통을 통해 거부자들이 겪고 있는 정확한 현실이 공유되어야 하며, 사회적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입법적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사법부 입장에서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제도를 두고 법적 판단을 내리는 일이 만들어진 제도의 합헌성·합법성을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껏 우리 입법부가 이들 소수의 권리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변화된 태도를 촉구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제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또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는 시민들이다. 시민은 자유의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공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고, 또한 참여하여야 한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봉사하겠다는 이들에게 약간의 관용을 발휘하여 온전한 참여의 주체인 시민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면, 이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선택지를 택하여야 한다. 관용의 부재로 인하여 범법자, 전과자의 멍에를 질 수밖에 없는 이들로부터 시민적 참여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성원의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민주주의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헌법은 우리의 참여의 자유 증진을 목표로 하고, 실제 든든한 보장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군대 가기 싫어 양심 타령 하지 말라”는 오해의 푸념을 마냥 나무랄 수도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말 속에 많은 이들이 함께 맡았던, 결코 잊을 수 없는 고난의 군대 냄새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반응에 공감하면서도, 이 문제는 모멸과 억압,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인내의 경험으로 점철된 병영 환경과 문화 자체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어색한 답을 제시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