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와 지은씨의 잃어버린 15

 

[caption id="attachment_217872" align="aligncenter" width="640"] ©환경운동연합(2021)[/caption]

 

"얘 너는 이런 거 안 쓰니?"

안산에서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핀잔이 따라왔다. 제품을 화장대에 툭 던지셨다. 롯데마트에 들르셨다고 했다. 2007년 지은(가명)씨가 신림동에 살 때의 일이었다.

"아마도 광고를 보시고, 정말 좋은 거라 생각하셨나 봐요."

그녀의 기억은 생생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6개월이 되던 어느 봄날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고통을 안겨준 잃어버린 15년의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옥시의 가습기살균제와의 질긴 악연은 너무나 평범하게 찾아왔다.

지은씨는 무해하다는 가습기살균제 홍보문구가 납득이 안 되었다. 남편에게 하소연했지만 반응은 심드렁했다. 지은씨가 3차례나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광고에 넘어간 수많은 이들처럼, 그도 아내와 아이를 위한 거라며 뚜껑을 열었다.

2007년 4월부터 그녀와 아이들은 제품에 노출되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둘째였다. 아기 방은 2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는데, 하필이면 가습기 바로 아래에 아이 침대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재우며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다. 포근했을 엄마의 시간이 독이 될 줄은 몰랐다. 둘째는 그전까지는 특별히 아프지 않았다. 젖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동그랗던 아이 얼굴이 늘어난 볼 살로 네모난 모양이 되어 흐뭇했던 순간이었다.

한 달쯤 되었을까. 제품을 몇 번 사용하고 나서였다. 아이가 이상하게 기침을 했다. 수증기가 너무 많나? 지은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 아빠도 건강에 좋다 하고 친할머니가 사 온 거니 믿어 보자며 되뇌었다. 시어머니가 우선인 남편에게 서운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난했던 병원행의 시작

 

하지만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새벽이었다. 젖을 먹이려고 아이 방에 들어갔는데, 둘째의 작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응급실로 향했다. 서둘러 집을 나서는 긴박했던 상황에도, 그녀의 심경은 복잡했다. 혹시나 증상이 제품 사용 초기부터 있었던 게 아닐까. 아이는 이미 알고 있던 걸까. 미간을 찌푸리며 몸부림을 치면서 표현을 했는데, 내가 못 알아챈 건 아니었을까. 지은씨는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둘째는 급성폐렴과 기관지염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아프니 평범했던 일상이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건 순간이었다. 아이는 숨을 잘 못 쉬었고 자꾸 토해냈다. 약은 물론이고, 잘 먹지도 못했다. 배변도 어려웠다. 유아용 변기에 앉혀놓으면 10분을 힘만 주고 있었다. 자다가도, 앉아 있다가도 기침과 구토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이불을 다 빨아버려서 더 이상 여분이 없을 지경이었다. 냄새가 배겨 버려야 할 때도 있었다. 이때만큼 이불을 많이 산 때도 없었다.

퇴원해서 집에 오면 또다시 숨을 못 쉬고, 다시 입원하기 일쑤였다. 그 작은 머리에 큰 바늘을 꽂고, 10가지가 넘는 입원 검사를 해야 했다. 의료진은 혈관을 찾기 어려워 가녀린 몸을 바늘로 찔러댔다. 하지만 움직일 때면 종종 바늘이 꺾여 혈관이 붓곤 했다. 다시 빼고 꼽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아이는 자지러졌다. 대체 이 고통과 절망은 언제 끝날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둘째는 한번 기침이 나면 고열에 시달렸고, 숨을 쉬기 힘들어했다. 인천 만수동으로 이사를 간 후로는 길병원에서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증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주삿바늘과 링거를 달고 살았다. 항생제에 의존해야 했다. 2008년 연말에 그녀는 담당 의사에게 물었다.

 

"교수님 우리 아이는 언제까지 입원해야 하나요?"
"음 차도가 없네요. 어쩌겠어요. 계속 입원해야지요."

 

너무도 태연했던 그 말은 상처로 다가왔다. 병실은 주로 6인실을 썼다. 잦은 재입원에 형편이 어려워졌다. 오가며 만나는 병실 사람들과 인사도 하기 싫었다. 우울한 나날이었다. 한편으론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줘서. 오직 아이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의 정성 덕인지 아이는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성장기를 거치며 건강은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고통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열이 날 때면 마치 열 경련 증상처럼, 환각이 들린다며 두려움에 떤다. 아토피와 알레르기를 비롯해 다양한 질환들도 말썽이다.

지은씨 또한 피해자다. 가슴이 늘 갑갑했다. 원인도 모른 채 아이한테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녀가 진단을 받은 건 2018년 10월경이다. 언젠가 둘째 아이가 입원했을 즈음,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기침과 발작으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급성천식이었다. 자연적인 천식이라면 치료를 받고 이미 나았을 법도 한데 아직 차도가 없다.

 

누가 봐도 나는 피해자인데

 

지은씨 가족이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은 건 최근의 일이다. 2020년 3월 피해구제특별법이 개정되고 나서다. 지난해 연말 둘째는 폐렴과 천식으로, 지은씨는 천식피해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 또한 험난했다. 2018년 피해 신청을 했을 때는 인정받지 못했다. 각종 서류준비도 힘들었지만, 결과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평범한 가정주부라고 말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나서야 병의 실마리를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피해자단체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넉 달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자회견 참여는 간단하지 않다. 마치 마음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제 고통이 진행 중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미 지나버린 과거도 아니고, 그것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힘이 들어요.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어도 마찬가지고요."

아픔이 일상처럼 되다 보니,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망가진 그녀의 인생 뿐 아니라, 투병으로 사라진 아이의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그저 먹먹하다. 숨 막히는 고통은 여전하다. 아이의 앞날과 치료비도 걱정이다.

지난 15년 동안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자산은 줄고 부채는 갈수록 쌓여갔다. 괴로운 나머지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커져버린 남편과의 갈등은 결국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들었다. 가정경제 여건이 나빠지다 보니, 그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TM을 비롯한 서비스직에 근무했다. 취업할 때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혹시나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무리하다 보니 몸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갔고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자유롭게 숨을 쉬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요."

 

그녀의 소망은 간단했다. 덜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아이를 돌보는 평범한 일도 힘이 든다. 이러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흘러버린 세월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가해기업의 배상은 그저 최소한의 도리로 보였다.

 

다시 시작된 항소심, 결과는 어디로?

 

[caption id="attachment_217871" align="aligncenter" width="640"] ©환경운동연합(2021)[/caption]

 

지난 7월 13일 CMIT/MIT 원료를 사용한 가해기업 임직원들에 대한 항소심이 열렸다. 고등법원에서의 두 번째 준비기일이다. 앞서 지난 1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아온 SK와 애경 등 가해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원심 재판부는 동물실험 등이 없었음을 비롯해 제품사용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 부족했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판단은 피해자들과 학계 전문가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과학적 방법론상 연구의 불가피한 한계점을 잘못 이해한 면이 있고, 10여 개의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해 판단하기보다는 개별 연구의 미비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심 판결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법정의 온도는 차이가 있었다. 판사는 검사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소명을 요구했고, 검사는 혐의입증에 번번이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가해기업 변호인들은 항소심 첫 날부터 공세적이었다.

"CMIT/MIT 가습기살균제 사건 관련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과 책임주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형사사법의 대 원칙 아래 이뤄져야 합니다."

가해기업측 변호인은 검찰이 옥시(PHMG)와 SK, 애경(CMIT/MIT) 등의 제품을 무리하게 하나로 묶었다고 주장했다. SK와 애경등의 제품사용과 질병들의 인과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검찰이 후자의 제품만 단독 사용한 피해에 대한 충분한 입증을 못했다고 강변했다. 그러므로 가해기업 입직원들이 섣불리 유죄라고 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폈다.

2019년 8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청문회를 열었다. 증인으로 나온 SK케미칼의 최창원 전 대표이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판결이 나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또한 "전부 자신이 책임을 안고 가겠으며, 국민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피해자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가해자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양상이다. 고등법원이 1심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는 피해구제 포털에 따르면, 7월 23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는 7505명이고, 이 중 1679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지원대상자는 4177명이다.

 

*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노란리본기금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