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19년 11,12월호]

우리사회의 30년을 생각해 볼 책

글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

[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은 책방이음의 조진석 대표가 추천하는 ‘책 소개 코너’입니다. 책방이음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비영리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200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문을 열었으며,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수익금을 써왔습니다.

경실련을 창립된 지 30년이 되었다고 해서, 1989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에 대해서 발언하는 분들이나 중요한 이슈에 대한 책을 고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있는 김동춘 교수의 책을 골라보았다. 김동춘 교수는 박사과정생일 때부터 논문이나 짧은 글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했다. 보통은 20대에 전임교수가 아닐 때, 패기롭게 사회현실에 대해서 발언하고, 행동으로 옮기다가 점점 더 보수화되고, 사회적인 발언이 줄고, 논문이나 전문서를 써야 되는게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김동춘 교수는 지금도 사회적 발언을 이어오고 있고,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곳에 쓴 글들과 기존에 썼던 칼럼을 모아서 책을 냈다.

경실련을 창립하던 89년의 이슈는 아직까지는 민주화였다고 생각한다. 노태우 정권이 92년에 마감하기 때문에 그 무렵은 군부독재의 마무리 국면이었고, 그러다보니 민주화라는 큰 틀에서 사회가 격동을 치던 시기였다. 93년부터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슈들이 훨씬 더 커졌던 것 같다. 제도로서 국민들이 국민의 대표를 뽑는 제도가 안착되었다고 생각했고, 군에서 군사반란이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민간국민의 주권이 보장된 상태였다. 지난 25년 동안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과제를 갖고서 정책적인 실험을 했지만 아직까지 미진하고 사회개혁에는 이르지 못했다. 정치개혁에 있어서 여야의 교체는 틀이 잡혔지만, 경제•사회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편차가 커졌다. 경제적으로도 절대적인 빈곤층을 줄었다고 하지만, 상대적인 빈곤층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차이의 정도도 커졌다. 그래서 이제 교육은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자리잡은 것 같고, 새롭게 창업으로 재산을 축적 한다거나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부를 창출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

이렇게 꽉 막힌 사회에 대해서 보통의 사회학자들은 분석을 하는데 머무는데, 김동춘 교수는 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책 제목처럼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할지 본인의 논지를 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사회, 교육, 정치, 정의, 노동, 역사 등을 꼭지로 묶어놓았다. 현재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종합적으로 진단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실련 30주년을 축하하면서 앞으로의 과제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추천했다.

경실련을 출범했을 때 굉장히 새로웠던 것은 ‘시민지식인’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 뒤에 참여지식인 같은 얘기들이 나오지만, 보통 학계에 있는 지식인은 정부쪽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식인이 경제정의에 대한 시민단체를 결성해서 정책적인 부분을 제안했던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 이전의 거리에서 하는 투쟁이 아니라, 정책적 이슈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정부와 다툰다는 것이 새로웠다. 그런 흐름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던 게 경실련의 출범과 함께라고 본다.

이번에 소개할 <지민의 탄생>은 제목 아래에 ‘누구를 위한 지식인가, 지배지식동맹 vs 시민지식동맹’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지배지식동맹을 친정부적인 정부용역을 하거나 본인의 연구결과와 다르게 요구받는 결과를 바탕으로 지식을 생성하는 그룹이라고 얘기한다면, 시민지식동맹이라는 것은 본인의 연구 결과로 볼 때, 국가나 시장과 괴리된다고 해도 그것이 사실이기에 밝히고자 했던 지식인의 운동을 얘기한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황우석 사태다. 당시 황우석이 과학계에 가진 헤게모니가 있어서 과학자들도 적극적인 반대가 쉽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인터넷의 소통경로를 통해서 사실이 아닌 것뿐만 아니라, 반윤리적인 것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며 황우석의 연구 결과들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과 시민지식인 간의 충돌이 컸다.

두 번째는 4대강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은 ‘이게 운하냐, 아니냐.’ ‘농업용수를 비롯해서 강을 되살리는 사업이냐, 강을 파헤쳐서 강의 생명력을 끊는 사업이냐’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업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용역도 많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 사업도 많이 진행되었다. 또 국가적인 의제가 되다보니 이견을 표현했던 사람들이 정부 사업에서 배제되고, 반정부적인 집단으로 매도되는 상황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 연구자 그룹에서는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당시에 사업을 막지는 못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그당시의 나온 사실들이 거짓임이 많이 드러났다.

세 번째는 광우병인데 광우병의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졌는지는 고민을 해야 되지만,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는 적극적으로 발언 하고, 본인의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를 제시했던 수의나나 과학자 그룹에 대해 중요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삼성 백혈병 관련해서 반올림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다. 삼성은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썼던 위험물질로 인해 백혈병이 유발될 수 있다는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그리고 기업의 비밀이라며 물질에 대해서도 공개를 거부했다. 기업의 엄청난 자본으로 이 문제를 덮고자 했으나, 반올림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삼성과 피해자분들의 화해가 가능했다고 본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문제를 풀었어야 했는데, 국가의 의료인력이 연구나 조사가 엄밀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에서 ‘대항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조직되어서 백혈병을 유발한 사실을 밝히는 것에 공헌이 컸다.

책에 나오는 지배지식동맹이 단지 정권만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집단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지배지식동맹이 가진 단일적인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서 또 다른 헤게모니를 추구하기 보다는 시민들을 위한 지식을 만들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한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다. 그래서 지민의 탄생이라는 이름을 쓴 것 같다.

이 책은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이 준 충격과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한국사회의 내재적인 부분에 대한 페미니즘 학자들의 연구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여성들이 늘 노출되어있고,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여성 살인에 가까운 경험들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성들이 잠재적인 살해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사회이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강남역에 많은 여성들이 포스트잇을 붙였고, 현장에 가서 슬픔과 분노, 통감하게 되었다. 그 뒤에 여성들만의 시위, 집회 등도 결성되었고, 소라넷 폐쇄 운동, 미투 운동, 낙태죄 폐지 운동, 불법촬영과 편파수사에 대한 것들, 탈코르셋 운동, 스쿨 미투 같은 것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사회적인 논쟁의 장으로 나온 이야기들이다.

책에서는 사회에서 여성혐오와 페미사이드(여성살해)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른 혐오와 어떻게 다른지, 경찰이나 언론에서는 ‘묻지마 범죄’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여성혐오에서 나온 여성 살해로 이어졌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직시하자는 얘기가 담겨있다. 또 하나는 언론이 페미사이드 문제나 탈코르셋, 스쿨 미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온라인으로 매체의 소통경로가 커지면서 여성들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오히려 더 증식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이 책은 현재 한국 여성들이 페미사이드의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구조와 현상을 꼼꼼하게 11편의 글로 묶은 책이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담았는데, 이것은 여성만이 아닌 남성들이 귀를 열기를 바라는 강한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30년 전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잠재되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나오지 못했는데, 30년이 지나서 도달한 지점이 여기까지다. 마지막에 보면 ‘STOP Killing Women’이라고 ‘여성을 죽이는 것은 더 이상 안된다’는 구절로 마무리 짓는 것 자체가 2019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