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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동 10월 산행 의상능선-산에 가는길, 받으러 가는 길

화, 2015/10/27- 21:08 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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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동 10월 산행 의상능선 - 산에 가는 길, 받으러 가는 길



 오늘 산행기에서 의상능선에 대한 정보나, 의상능선과 관련된 지식을 기대하셨다면 실망하실 것입니다.

오늘 제가 쓰고자 하는 것은 산에 관한 내용도 역사에 관한 내용도 아니고 함께 오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산행을 다녀왔으면서도, 지난 산행에 관해서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의상능선이라는 것과 용혈봉이라는 이름 뿐입니다.
한 때 GPS라는 별명을 갖은 적이 있을 만큼 길눈이나 지리에 밝은 편이었는데도 민동산악회 식구들과 등산을 갈 때면 <방심 혹은 먹통 상태>가 됩니다.
연락은 늘 이주섭군이 챙기고, 등산코스는 조민재군이 챙기고, 올라가서 먹을 것은 또 조민재군이 챙기고, 오며 가며 알아야 할 것도 조민재군이 챙기고,
민서는 내내 모두가 챙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동산악회에 재작년 11월인가 불암산 등반에 처음 나갈 때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제가 종교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선후배중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자폐인 아이를 데리고 가면 민폐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보기완 달리 눈치를 보는 편이라, 유일하게 잘 아는 사람인 윤주원선배에게 형 꼭 와야 한다고 몇번이나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년여 만에 주원이형은 이제 객원주자가 되고 저는 정규군이 되었습니다.   

 

첫 불암산행은 늦가을이라 젖은 낙엽아래로 살얼음이 얼어 춥고 미끄러웠습니다.
미국에서 11년 살다가 대충 옷가지나 싸 가지고 온 터라서 등산장비도 없었지만, 유목민처럼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터라 ㅎㅎ
절대 짐을 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미끄러워서 안된다고 종부형이 먼저 아이젠을 벗어주시고, 주원이 형이 아이젠과 스틱을 양보하고,
평생 처음 뵌 근주형이 장갑을 벗어주시는 바람에 매우 불편했습니다. 두어번 더 산행하도록 안 산다는 신념을 지키면서 버티다가,
갈 때마다 매번 이 사람 저 분의 양보를 거절하는데 한번도 성공을 못해, 이제는 거의 완전군장을 구비하게  되었습니다.

 

간이의자도 민서를 먼저 앉히시고, 컵라면 끓일 물이 모자랄 때도 의당 민서 먼저, 바베큐를 할 때도 맨 먼저 구어진 고기는 제 아이를 줍니다.
그런 것들은 이제는 하도 익숙해서 당연한데, 가끔 저와 민서가 가장 뒤에서 오르나 싶으면 아무말 없이 기다렸다 저희 뒤를 따르는 후배들을 느낄때면,
많이 익숙해졌는데도 콧등이 시큰해 질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당연히 받아도 되는 것을 받을 마음으로 매달 첫번째 일요일을 기다립니다.
배려하는 마음, 사랑해주는 마음, 아껴주는 마음에 조금도 의심이 없으니 받는 마음에도 부끄러움이 안 생깁니다.

 

10월 산행기에 산행얘기는 없고 개인적인 얘기만 써서 좀 민망하네요. 주섭이가 산행기를 써달라고 했을 때, 잘됐다 생각했습니다.
자주 보는 사람끼리 정색을 하고 감사를 표현한다는 것이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어색하기 십상이라 진지하게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항상 예뻐해 주시는 종부형, 근주형,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임정태, 헌신-조민재선생, 좀 안다고 막 해도 막 받아주는 선배 같은 주섭이, 소리 안 나게 돌아가는 레이다 최원호,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은석이와 원배….이 자리를 빌어서 생각할수록 울컥하게 되는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장정미(82/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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