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과 사회정책
이숙진 | 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다양한 개인들이 만드는 다양한 가족
가족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가. 통상적으로 가족은 개인이 태어나서 속한 가족(출신가족)과, 새롭게 구성한 가족(출산가족)으로 구분되어지곤 했다. 최근에 가족은 그 역할과 기능의 변화와 더불어 가족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우려를 동반했다. 비혼과 이혼의 증가,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가족이 수행했던 돌봄 역할의 부재 등 신사회 위험요소는 가족의 위기로 이해되는 사회문제였다. 그러나 가족의 역할과 가족 구조의 변화를 검토한 다수의 논의들은 가족 위기가 곧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핵가족의 감소에 대한 해석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정상가족으로 여겨졌던 부부+자녀의 전통적 핵가족은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조손가족, 그리고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증가와 비혼, 미혼, 독거노인가구를 포함한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해 보편적이거나 초역사적인 가족형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핵가족의 위기가 곧 가족의 위기인 것처럼 불안해했지만 가족은 사라지지도 약화되지도 않았으며, 다양하게 변화하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에서 이와 같은 가족 다양화는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개인이 존재한다. 가족이 “정서적이고 물질적인 지지에 기반을 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상호간에 기대를 갖고 그들의 삶의 유형과 관계없이 상호 책임감, 친밀감과 계속적인 보호를 주고받는 구성체”라는 기든스(Giddens)의 정의에 기초하자면 1인가구는 가족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1인가구는 전체 가구 구성의 25%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안적 가족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장래가구추계에 의하면 부부+자녀로 구성되는 가구가 2015년 전체 가구의 32.4%에서 2030년에 22.5%로 감소하며, 1인가구는 2015년 27.1%에서 2030년 32.7%로 증가한다.(표 참조) 가족의 규모를 나타내는 가구원수의 감소와 1인가구, 한부모 가구, 조손가구, 무자녀 가구, 그리고 비혈연가구도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표> 2030년까지의 가구유형 추계(단위: 가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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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
2020 |
2025 |
2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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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부부+자녀 1인가구 비친족가구 |
3,178,917 6,059,333 5,060,551 224,640 |
17.0 32.4 27.1 1.2 |
3,703,937 5,650,818 5,876,740 237,401 |
18.6 28.4 29.6 1.2 |
4,264,424 5,263,759 6,560,883 240,599 |
20.4 25.1 31.3 1.1 |
4,756,167 4,892,087 7091,247 232,375 |
21.9 22.5 32.7 1.1 |
전체가구수 |
18,705,004 |
100.0 |
19,878,399 |
100.0 |
20,937,339 |
100.0 |
21,716,589 |
100.0 |
자료: 통계청(2010), 장래가구추계, 가구유형 및 가구원수별 가구에서 재구성.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한 가족의 다양화는 가족을 단일한 욕구를 가진 하나의 단위로 보기보다는 가족의 내부 구성에 주목하도록 하며, 이는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욕구와 생활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가족의 형태와 구성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양한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가족 다양화는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가족 관계와 가족구성원의 지위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각기 다른 가족 구성원의 지위에 기초한 사회정책의 설계는 곧 다양한 개인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며, ‘가족’이라는 집합체의 이름으로 획일화될 수 없는 개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가족의 평등권
혈연, 결혼,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정서적, 경제적 단위로서의 가족은 다양화되고 있다. 특정한 가족형태가 정상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모든 가족들이 가족으로서 동등하며, 가족형태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다. 동시에 특정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개인들의 권리 역시 보장되어야 하며, 그렇게 구성된 가족이 다른 가족에 비해 불이익과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로부터 출발해서 다양한 가족상황, 혼인여부 혹은 이와 관계된 임신과 출산 등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다.
외국의 차별금지 관련 법률들은 혼인여부(혹은 혼인상의 지위), 가족형태 혹은 가족상황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제3항에서도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사유로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을 규정하고 있다. 법률적 구속력은 없으나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가족구성의 권리를 포함한 가족의 형태, 가족의 구성과정, 그리고 가족구성원 및 가족의 책임과 관련된 상황’을 말한다.
가족구성권 즉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가족’이 부부 중심의 이성애 핵가족 이외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포함한다. 캐나다 온타리오 인권법은 ‘가족상황(family status)’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면서, ‘가족상황’을 ‘부모 자녀관계가 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부모 자녀관계’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즉 ‘혈연이나 입양이 아니더라도 돌봄, 책임, 계약과 유사한 관계를 지닌 상황’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 사례로 (입양, 위탁, 의붓부모를 포함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돌봄, 장애를 가진 친족이나 부모에 대한 성인의 돌봄, 그리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트랜스젠더로 구성된 가족들’을 포함한다. 다양한 가족상황은 다양한 가족구성의 권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다양한 방식의 가족 구성 권리에 대한 법적 보호와 제도화를 위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을 논의하고 있으나 입법 발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다양화된 가족 형태는 가부장적 이성애중심의 가족형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비혼 혹은 미혼의 1인가구 증가는 전통적인 핵가족으로부터의 변화임과 동시에 남성 1인 가장의 생계부양과 그에 의존한 가족관계를 변화시킨다. 가장인 남성노동자의 임금에 가족원 모두의 생계를 의존했던 핵가족은 가부장의 경제적 권력을 극대화했고, 억압적인 가족관계는 물리적 폭력으로 가시화되기도 했다. 여성들은 무임의 가사와 육아노동이 자신의 노후를 보장하지 않으며, 일과 가족의 양립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슈퍼우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는 비혼을 택하거나 출산을 피한다. 가부장적 ‘가족’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성별관계는 결혼의 지연 혹은 비혼, 이혼의 증가, 1인가구의 증가 등을 가져온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출신가족을 제외하고 누구와 어떤 가족을 구성할 것인가는 가족구성원의 수와 무관하게 기본적 권리이다. 이는 1인가구와 생활동반자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가족의 구성을 포함하는 것이며, 이들 가족들은 그 형태로 인하여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을 받거나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공적인 관계로서의 정책과 제도는 이를 고려해야 하며, 전통적인 핵가족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재설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을 어떻게 ‘주류화(mainstreaming)’해야 하는가: 가족과 사회정책
가족에 대한 정책적 접근, 즉 가족정책의 대상과 범주는 명확하지 않고 또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기도 하다. 가족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처인 여성가족부는 ‘가족정책은 가족구성원의 안정과 복지를 강화하고 가족생활과 관련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가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고 정의한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가족의 욕구 또한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기초하고 있다면 가족정책은 여성가족부에 제한된 행정일 수가 없다. 오히려 포괄적이기는 하나 ‘정부가 가족에 대해서, 가족을 위해 하는 모든 정책, 정부가 가족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위’로 정의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수도 있다. 한부모가족 혹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정책만이 가족정책이 아닌 것이다. 1인가구와 한부모에 대한 주택정책, 일과 가족생활의 양립을 지원하는 노동정책, 임금소득이 없는 가족구성원의 노후소득보장정책, 돌봄을 필요로 하는 성인들간의 돌봄서비스 정책, 가족구성원들의 평등과 분배적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조세정책 등등이 모두 가족에 관한 정책이며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가족형태에 조응하는 정책은 모든 정책에서 ‘가족’을 고려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OECD 가족통계는 특정한 가족형태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가족구조는 가족을 이루는 크기와 구성, 출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지표들, 혼인과 동반자의 관계(결혼, 이혼, 가족해체, 가족폭력 등)를 보여준다. 노동시장과 가족의 관계를 살펴보는 통계로 배우자 유무와 여성의 고용지위, 성별임금격차, 노동시간과 돌봄시간의 영역을 수집하고, 공공정책의 측면에서는 가족급여에 대한 공적 지출, 가족현금급여, 세제, 자녀부양, 아동보호 등을, 그리고 아동과 관련하여 건강, 빈곤, 교육, 사회참여 등의 통계적 변화를 담고 있다.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범주가 적어도 출산, 돌봄, 노동, 사회서비스, 조세, 보건건강, 문화, 교육 등의 영역이 된다. 일례로 OECD 가족통계는 싱글맘의 고용률이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고용률보다 낮고, 경제위기시에 이는 더욱 감소한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통계는 싱글맘의 자녀돌봄서비스, 고용지위, 일가정양립제도, 가족급여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작동하는 한국사회는 낮은 현금급여수준, 믿고 맡길 데 없는 보육서비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고용지위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즉 한부모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높으나 저소득 빈곤상태에 놓여 있게 되는데 이를 여성가족부의 행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출산문제 역시 가족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저출산정책으로 대표되는 보육정책은 2016년 현재 거의 14~15조에 달하는 정부재정이 보육과 유아교육에 투입되고 있지만 낮은 출산율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난과 결혼 지연, 여성들의 첫 자녀 출산연령증가 등이 있음에도 여전히 출산은 법률적 결혼관계만을 정상화시키고 있으며 주요 사회복지서비스 역시 이에 제한되고 있다.
OECD는 가족들이 변화하고 있다(Families are changing)는 현재진행형 수사를 통해 자녀가 없는 가족과 한부모 혹은 재혼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동이 증가함을 보고했다. 가족을 구성하는 주요한 통로가 결혼이지만 결혼과 무관하게 자녀를 출산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출산이 결혼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OECD 국가의 평균 40% 정도는 혼인 외에서 출산이 일어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이 매우 낮은 2-3% 수준이라는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그림 참조). 결혼 밖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고한 한국사회에서 결혼이 어려워지면 동시에 출산도 어려워지게 된다. 이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정책없이 전통적 핵가족의 환상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림> 전체 출산 중 혼인외 출산 비중(2014년부터 최근)
가족형태의 다양화와 크기의 변화는 주택공급에서의 정책적 변화도 요구한다. 2015년 현재 전체 아파트는 약 923만호에 이른다. 이 가운데 40제곱미터 이하의 아파트는 약8만3천여 가구로 전체 아파트의 약9% 수준이다. 이미 1인가구가 전체가구의 25%를 넘는 상황에서 주택공급 규모는 1인가구의 주거수요를 감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1인노인가구의 증가와도 연관된다. 노인의 일상생활적 특성을 감안한 주거형태와 돌봄서비스 정책, 그리고 평균수명이 늘어남과 동시에 남성노인의 일상적 재생산노동에 대한 사회적지지 및 교육체계도 가족정책이 고려해야 할 영역이 되었다. 전통적 가족이 부모세대에 대한 자녀들의 부양을 통해 노후가 보장되었다면 다양화된 가족형태는 이와 같은 가족의 역할이 지지되지 않고 있다. 1인 노인가구는 증가하지만 자녀세대는 자신들의 생계유지와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에 집중한다. 사회보장의 주요한 기능인 노후소득보장은 특히 미가입자이거나 연금가입기간이 짧은 전업주부 혹은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후불안을 가속화시킨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제도 역시 가족구조와 변화와 가족의 역할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가족정책인 일과 가족의 양립 역시 보다 거시적 의제인 노동시간 단축과 성별분업의 변화와 함께 논의될 때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욕구를 고려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이 유지되는 과로사회에서 가족생활은 부차적이거나 무시해도 되는 영역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며, 혹여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더라도 일과 가족의 양립이 여성만의 일로 여겨질 때 여전히 이중노동의 전담자는 여성의 몫이 될 것이며, 이는 불평등한 가족관계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가족구성원인 개인의 지위에 근거한 세제와 사회보장 수급방식은 여성의 고용률 변화와 연계되어야 하며, 더불어 돌봄의 가치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도 고려되어야 할 지점이다. 여성의 임금노동자화와 무임의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화가 동전의 양면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에서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은 늘 가장 복합적인 문제의 담지자가 되고 있다. 보다 평등한 사회로의 전환은 가족형태의 다양화와 평등한 성별관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으며, 이에 조응하는 사회정책적 대응이 사회복지 영역에서 우선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