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1월 3일 학자와 교사 등의 전문가와 대부분의 국민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중등 역사교과서와 고등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검인정 구분고시를 확정 발표했다. 애초에 교육부는 11월 2일까지 이 구분 안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11월 5일 확정고시 한다고 일정계획을 밝혔다. 무엇이 그리 조급했는지 애초 일정계획보다 이틀 앞당겨 확정고시를 마무리했다. 전문가들의 우려와 비판도, 반대하는 국민들의 절대적 수적 우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설문조사의 통계도, 연일 계속되었던 학부모와 학생들의 집회도 정부의 결정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국정교과서와 관련해서 정부는 두 귀를 틀어막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내달리는 폭주기관차와 같았다.
절차를 무시하고 폭주기관차마냥 돌진하는 정부
11월 3일 전후해서는 인상적인 특종기사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확정고시 직전인 11월 2일 찬성의견서 제출을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새누리당 각 도당 의원실과 일선조직에 공지했고 이들 의원실마다 최소 100명 이상의 찬성서명과 의견서를 모으라는 지침이 중앙당 차원에서도 내려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같은 날 밤 여의도에 있는 한 인쇄소에서는 동일한 내용의 찬성의견서 수만 장이 인쇄되어 곧바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 전달되었다고 한다. 이런 낯 뜨거운 일들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점점 확산되는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정부·여당을 조급하게 만들기는 했던 모양이다.
여론을 거슬러 국정교과서를 발행을 결단할 수밖에 없는 정권 내면에 대한 분석은 차치하고 이런 조급함은 정책의 심각한 절차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 물론 정책은 때때는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거스를 수 있다. 사람의 생각 하나하나가 다른 마당에 정책으로 연결되는 정권의 정치적 결정이 항상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국민들의 의사를 수반하는 여론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 관리란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만큼 투명하게 정책의 목적과 절차를 공개하고 설명함으로 끊임없이 여론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헌데도 정부는 여론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관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따른 정당성을 여론에 호소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문제는 정부가 설명하는 이런 정당성이 무척이나 저열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에 대해서 주체사상을 담고 있다거나 한국전쟁과 분단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게 있다는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경제성장과 기업 발전에 대해 부정적인 서술을 다루기 때문에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좌편향 되었고 따라서 국정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2009년 교육부가 배포한 교육과정과 그에 따른 해설을 보면 북한을 이해하고 평화통일을 학습하기 위해 주체사상과 수령체제,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함께 교수하도록 지침을 둔 바가 있다.
또한 대부분 지목된 편향사례들이 이미 교육부의 수정명령에 따라 수정이 완료되었음에도 다시 이를 문제제기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제발전 이면에는 부정부패와 재벌비리, 정경유착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다는 단순한 서술을 경제성장과 기업발전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며 편향사례로 지목하고 있다. 이렇듯 국정교과서의 명분이 도저히 여론을 설득할 수 없도록 허술하다보니 정부에서는 도무지 여론을 관리할 방법이 없고 이는 결국 상식 밖의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귀결되었다. 구시대적 역사교육으로의 회귀라는 치욕은 물론이고 인권적 측면에서도 정부의 공공연한 정보은폐와 밀실행정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파괴되는 좌절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집필진을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가?
결국 정부는 국정화 확정고시 이후 대부분 역사전공 교수들이 국정화 자체에 반대하거나 국정교과서 집필 및 협력 거부를 선언한 가운데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공모했고 지난 11월 20일 집필진을 확정했다. 이에 합당한 전공자들이 집필진으로 구성되었는지 전 국민적인 관심이 몰렸고 국민들은 이를 알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정부는 집필진 명단에 대해 집필진이 공개를 원치 않고 집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집필이 완료될 때까지 비공개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이는 정상적인 행정절차라고 보기 힘들뿐더러 국민의 알 권리를 파괴하는 처사다. 정부가 여론의 설득을 통해 정상적인 정책절차를 거쳐 국정교과서를 제작하려고 했다면 정부는 집필진을 확정한 즉시 공개했어야 한다. 그래야 집필진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의견수렴이 가능하고 이후에 집필을 시작하든, 집필진을 교체하든, 또는 국정화 고시를 철회하든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집필 완료 후 집필진을 공개한다는 정부의 원칙은 결국 국정교과서에 대해 어떠한 논의의 여지, 타협의 여지,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리고 집필이 끝나는 대로 집필진을 공개한다는 걸 이제 와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이 확정된 지난 11월 20일 오후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중등 역사교과서 집필진 명단과 고등 한국사 역사교과서 집필진 명단, 편찬심의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 명단을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정부가 집필진에 대해 비공개 원칙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청구처리기한을 꽉 채운 후 비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한 이유는 정부의 집필진 비공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알 권리를 파괴한 것은 물론 정보공개청구를 비공개할 경우 위법의 소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라 정보공개법) 제9조는 비공개 대상 정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정보공개법은 제9조에 명시된 사유의 정보가 아니면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집필진의 소속이 포함된 명단은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6호에 개인에 관한 사항에 포함된다. 이에 따르면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의 일부를 위착 또는 위촉한 개인의 성명·직업은 비공개 대상 정보에서 제외하고 있다.
다만 해당 조항 5호에는 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에 관한 사항,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을 이유로 비공개할 경우에는 의사결정 과정 및 내부검토 과정이 종료되면 청구인에게 공개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비공개해 청구인이 불복절차로 정보공개거부취소 소송을 하게 되면 정부는 업무에 초래될 현저한 지장을 받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근거로 집필진이 자신들의 명단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비공개한다는 지금 정부가 대고 있는 핑계가 얼마나 유효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