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우리들이야기(4)]
‘삼시 세끼’보다 ‘함께 한 끼’를 하자!
조진석 나와우리+책방이음 대표
책방이음 폐점을 앞두고서, 처음 책방 문을 열 때가 생각납니다. 2005년 가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40평 남짓의 자그마한 책방이 생겼습니다. 퇴직금에, 지인들의 돈을 빌려서, 인문 분야와 예술 분야에 특화된 서점을 꿈꾸면서 문을 열었답니다. 엘피(LP)판을 팔고, 때론 중고 책도 팔고, 나중엔 전시장 대관으로 서점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2009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서점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 다시 서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비영리 공익서점을 표방했습니다. 책방이 상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만들고, 영업이익을 창출해야 운영 가능한 영리사업인 걸 모르는 이는 없지요. 그런데 ‘비영리’를 내세웠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점에서 책을 팔아서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서점에 들어오는 가격으로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비영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책 저자에게 주는 비용이 대체로 책값의 10%이고, 여기에 종이값과 인쇄비와 편집비 등 포함하면 책값의 40~60% 비용이 듭니다. 이 책이 도매상을 거쳐 책값의 평균 70% 금액으로 동네책방으로 옵니다.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은 현행 유통구조에서 도매상을 거치지 않습니다. 대체로 출판사에서 바로 책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달에 하루도 안 쉬고 22명이 매일 책을 사서 매달 1천만 원 수익을 내는 동네서점이 있다면, 이 중 700만 원은 책값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고서 남은 300만 원을 유지비로 써야 합니다. 임대료, 인건비, 카드 수수료와 세금을 포함한 기타 비용까지 이 금액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임대료가 싸고, 최저임금을 받고, 마른 수건을 짜는 심정으로 비용을 줄이고 줄이면 운영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도서를 정가로 판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이렇습니다.
여기에 복병이 있습니다. 현행 도서정가제입니다. 두루두루 알듯이 10% 할인, 5% 적립, 무료배송이 가능한 제도입니다. 배송비는 건당 2,500원 이상입니다. 이 제도하에서 1만 원 책을 판다고 하면, 할인으로 1,000원을 빼고 적립으로 500원 빼고 배송비로 2,500원을 지불하면 총 4,000원을 서점에서 부담해야 합니다. 6천 원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책은 7천 원에 동네책방에 들어옵니다. 1권 팔 때마다 1천 원씩 적자인 셈입니다. 동네책방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 도서‘정가(定價)’제라는 이름으로 활개 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제도로 이익을 볼 수 있을까요? 6천 원 이하로 책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밖에 없습니다. 그들을 위한 제도가 현행 도서정가제입니다.
그렇다면 책 가격을 높이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어볼 수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책값을 올리면 구매하는 사람이 줄고, 비슷한 책들로 형성된 가격대를 무시할 수 없기에, 책값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값에 반영하지 못한 수익 부분을, 도매상과 서점에 도서를 공급하는 퍼센트, 소위 공급률을 높여서 보전하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동네책방의 상황은 온라인서점처럼 하자니, 적자만 쌓이고 할인을 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찾아오지 않는 딜레마 상황이 2014년 현행 도서정가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제도가 문제가 많지만, 2014년 이전 상황은 지옥 같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10% 할인에 10% 적립할 수 있었고, 18개월 이상 된 책은 무한 할인이 가능했고, 당연히 배송도 무료였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도서전인 서울국제도서전에 가면, 18개월 지난 구간도서를 출판사 스스로 “책은 싸야 제맛”이라면서, 50~7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했습니다. 도서전은 할인의 무대에서 마음껏 신나게 먹고 노는 사육제(謝肉祭)였습니다.
2009년 책방 문 열 때가 다시 떠오르네요. 책 구하는 것이 어려울 줄은 독자일 때, 전혀 몰랐습니다. 출판사에 연락한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폐업한 책방 처리하기도 바쁜데, 무슨 신규 거래냐”. 맞습니다. 그 당시 폐업하는 서점이 속출했고, 심지어 폐업하고서 출판사에 줄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역의 서점이 폐업했을까요. 출판사는 책을 싸게 온라인서점에 공급하고, 구간도서는 도서전에서 판매하니, 누가 지역 서점을 찾겠습니까. 당연히 동네책방 주인이 남보다 비싸게 팔
아서, 독자들의 귀중한 돈을 강탈하는 도둑놈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독자가 찾지 않는 서점은 폐업합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고 적립률을 5% 줄이고 구간과 신간의 구분을 없애는 현재의 도서정가제로 바꾼 것입니다. 그 뒤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2014년 이전 가뭄에 콩 나듯 생기던 동네책방이 2017년 301곳, 2019년 551곳으로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현행 도서정가제가 문제점이 많습니다만, 그전 제도보다 동네책방에 도움이 되는 제도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할인을 더 많이 한다면, 할인을 할 수 있는 서점, 할인을 할 수 있는 출판사, 할인하는 책, 할인하면 더 많이 나가는 저자만을 위한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영세자영업인 동네책방, 1인 출판사, 독자가 소수인 책, 첫 책을 내는 저자의 자리는 현저히 줄어들거나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독일의 사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은 1888년 이래로 116년 동안 철저하게 도서정가제를 지켜온 나라이다. 이러한 제도가 생기게 된 것은 (…)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책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구입한 할인업자들이 정가의 40%까지 할인해서 독일 전역에 있는 독자에게 책을 판매하였다. (…) (반면) 지역의 책값은 운송비 때문에 대도시보다도 훨씬 비쌀 수밖에 없었다. 할인업자들의 할인 판매 유혹을 독자들이 뿌리칠 수 없었고, 지역서점에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할인업자들의 가격 파괴 행위는 지역에 있는 중소 서점을 어려움에 빠뜨렸고 할인업자들의 횡포로 인해서 결국 지역 서점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격을 고정시키는 안이 나오게 되었다. (…) 정가제는 베스트셀러 이외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유통시킬 수 있도록 했고, 또 소매 서점과 도매상에 표준화된 공급률로 도서를 공급함으로써 양 업체들 모두 적정한 수익을 얻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도서 시장의 안정화를 이루는데 기여했다.” pp.205 ~ 206, 『독일 출판을 말하다』, 산과글, 2020.
이제 할인으로 책의 품질을 다운사이징 하기보다는 질적인 고양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고민합시다. 이런 고민을 깊게 해주는 독자들의 필독서로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동네책방 생존탐구』, 『독일 출판을 말하다』를 추천합니다.
[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은 책방이음의 조진석 대표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책방이음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비영리 공익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200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문을 열었으며,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수익금을 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