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를 찾아가는 세상의 의사들은 모두가 존경스럽다. 현재 한국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대구로 모여든 의사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훈훈한 소식이다. 그들을 응원하고, 고마운 마음은 지나침이 없는 일일 게다. 새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의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고민해 봄 직한 소식이었다. 그래서 쿠바 의사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쿠바에는 누구나 가족 주치의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쿠바 의료시스템의 높은 의료적 성과는 비록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하여 이미 국제 사회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사실이다.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높은 의료복지를 갖추고 있는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에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따라서, 어떻게 제3세계 쿠바의 의료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의료적 성과를 낼 수 있었는가를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나의 질문은 첨단 의료시설은 고사하고 반세기가 넘는 미국의 금수 조치로 인해 만성적인 물자 부족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 쿠바에 정착된 의료시스템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된 사회적 잠재력은 무엇인가로 자연스럽게 향하게 되었다. 어쩌면 쿠바 역사의 한 축이 되어버린 사회주의 체제라는 큰 틀을 벗어 나서는 설명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물음이 계속되는 것일지도.
쿠바에는 콘술또리오(consultorio)라는 의료시설이 있다. 보통 국내에서는 진료소라고 알려져 있고, 우리가 가정의라고 일컫는 의사와 한 명의 간호사가 기본 의료팀을 이룬다. 쿠바 보건의료시스템의 가장 기본단위이자, 보건의료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해당 지역주민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비롯하여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자 관리는 물론 고위험군 질병을 앓는 주민이나 노인과 임산부, 신생아 등과 같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까지 진료소의 의료진들은 언제나 바쁠 수밖에 없다.
지역 골목의 곳곳에 포진된 진료소에서 공식적으로 담당하는 주민이 800여 명이 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1,000여 명이 훌쩍 넘고 있으니, 가정의와 간호사가 어지간히 바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그렇지만 노동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한국사회 출신이라서 그럴까. 내게 그들의 일상은 심지어 평화롭게 느껴지니 난감할 뿐이다.
진료소의 상급기관인 폴리클리닉(Policlinic)은 진료소 수준에서 불가능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할 때 가정의의 처방에 따라 방문하는 의료기관이다. 약 20~30여 개의 진료소를 총괄 지휘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지역 단위의 공중보건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가정의를 통해서만이 폴리클리닉을 방문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언제든지 지역 근처에 있는 폴리클리닉에서 필요한 의료조치를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가정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폴리클리닉을 찾는 이유는 수만 가지에 이를 테니 그 세세한 사정까지는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쿠바 진료소의 가정의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표현이지만 “가족 주치의”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소위 “가족 차트”를 기록하여 가족 구성원의 기본정보를 포함 질병 유무, 건강상태, 생애주기 등을 기록하여 전반적으로 지역 구성원들의 건강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의사의 방문이 요구되는 특별한 경우, 예를 들어 신생아나 암 환자 등과 같은 중증 질병을 앓고 있다면 가정의나 간호사의 가정방문은 필수적이다. 이 외에도 가정의와 간호사는 정기적으로 해당 지역의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지침도 마련되어 있다.
한국사회에서 개인 주치의를 갖는다는 것은 재벌들이나 유력 정치인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일 뿐 나 같은 ‘인민’들에게는 언감생심 주치의가 가당키나 할까. 나의 건강을 수시로 물어보고 살펴봐 주는 주치의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쿠바 사람들에게는 이미 일상이지만, 오며 가며 마주치게 되는 의사가 내 이름을 부르고, 가족의 안부를 묻는가 하면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관심을 받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호사이니 살짝 부러운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쿠바 보건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진료소와 폴리클리닉은 이른바 “일차의료”가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이미 발병한 질병을 다루는 임상의학 못지않게 예방의학을 더욱 강조하는 시스템이다. 결국, 질병의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예방하는 것이 일차의료 활동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떡하면 이 같은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가이다.
의료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건강추구와 의료행위는 단순히 근대적 의미의 의학적 측면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화적인 맥락이 고려된 총체적인 문화적 실천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 문화에서 진행되는 질병과 의료에는 그 문화의 사회적 역사적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기대어 보면, 보건의료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은 쿠바의 사회문화적 맥락은 물론 역사적 경험까지도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편에서는 낙후된 쿠바 의료시설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쿠바 의사들의 높은 사명감이나 헌신적인 인류애를 칭송하는 일에 머무는 것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약 2년 전 20년 경력의 베테랑 간호사이자 현재는 연구자인 동료와 함께 쿠바 진료소에 근무하는 가정의와 간호사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은 당시 작성한 현장 스케치의 일부이다.
진료소 앞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저 사람인가? 이 사람인가? 초조하게 엉덩이를 들썩이길 20여 분. 드디어 진료소 건물 아파트에서 남성 한 명이 진료소로 들어갔다. 드디어 가정의를 만나는 구나! 설렐 틈도 없이 남성은 다시 문을 잠그고 헬멧을 쓰고 뒤따라온 딸인 듯 보이는 여자아이에게까지 헬멧을 씌워 오토바이에 태우고 떠나려 한다. 깔마춤이라도 한 듯 어여쁜 노란색 오토바이와 노란색 헬멧을 쓴 모습이 영락없는 푸후(예쁜 곰돌이)를 연상케 했다. 흔히 의사에게 느껴지는 위압감이나 경직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있는 골목길 스쿠터 맨(?)이었다. 때마침 옆 건물에서 아이를 안고 나온 여성이 진료소로 들어간다. 달려가 들어보니 어딜 갔다가 올 테니 좀 기다리라는 눈치다. 우리는 애타는 마음에 혹시 의사 알레만이 아니냐고 다급하게 달려가서 외쳐본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처방전 용지가 없어서 근처 폴리클리닉에 간다며 곧 돌아온다는 말을 남긴 채 부르룽~ 스쿠터는 떠났다.
잠시 멍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가다듬고 결연하게 진료소 앞 나무 밑에 주저앉기로 했다. 가정의가 진료소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므로. 앗! 그러나, 우리는 앉기도 전에 다시 일어서야 했다. 여기는 쿠바! 진료소 앞의 우리가 궁금한 주민들이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가 궁금한 주민들을 맞이한다. 가장 먼저 다가와 긴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은 에밀리오(Emilio) 아저씨.
“처방전 용지를 가지러 갔다고?” “오토바이 타고 가던가?” “그럼 23번가에 있는 폴리클리닉에 갔을 거야. 가까우니까 금방 와.” “알레만? 잘 알지. 미션을 세 번이나 다녀왔어. 좋은 사람이야.”
에밀리오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뒤에서 서성이던 남성과 곧이어 등장한 여성 네나(Nena)가 말을 이어갔다. 감기로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인데 약이 독해서 얼마나 오래 먹어야 하는지 물어보러 왔단다. 남편을 따라서 진료소에 함께 산책 나오듯 나오셨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 그러지 말고 아주머니 집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하시지만, 가정의 알레만과의 면담을 미룰 수 없어 정중히 거절한다. 그러자 집의 주소를 알려주시며 언제든지 들르라는 당부를 하시고 자리를 떠나신다. 자신들이 사는 집을 스스럼 없이 알려주고, 문을 열어 집안으로 맞이하는 모습이 이제는 낯선 풍경이지만 우리에게도 이와 같았던 세월이 있었던 것 같다.
잠시 후 알레만이 돌아왔다. 진료소 문이 열렸지만 우리는 멀찍이 지켜볼 뿐 다가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디에서들 보고 있었는지 알레만이 진료소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방문자들이 줄줄이 진료소에 따라 들어갔기 때문이다. 진료소에 들어가는 주민들을 부럽게 지켜보며, 우리는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역으로 인터뷰를 당하고 있다. 진료소 앞을 서성이는 우리에게 궁금한 것이 많을 법도 한 일이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알레만이 진료소를 나선다. 안에는 여전히 몇 명의 주민들이 남아있다. 무조건 따라 뛰었다. 알레만은 사거리 건너편에 있는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가정의도 간호사도 없는 진료소에서 주민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간간이 하하 호호 웃는 소리도 들린다. 잠시 후 알레만이 진료소로 복귀한다. 뒤따라가 사진 찍은 것에 대해 사과하자 괜찮다며. 방금 방문한 집에 암 환자가 있는데 상태가 안 좋다고 아들이 전화해서 와 달라고 했단다. 아하! 가정방문은 이렇게 수시로 이루어지기도 하는구나! (···· 중략 ····)
가정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진료소는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다. 서로 안부를 묻고 정보를 교환하고, 간호사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혈압을 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가정의 알레만은 이 구역에서 단연 가장 인기 있는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여느 쿠바 사람다운 다정함은 물론 잘 웃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를 함께 지켜본 연륜 있는 동료는 저런 모습이 바로 “츤데레”의 매력이란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약 4주가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알레만은 결국 우리를 만나면 먼저 인사를 반갑게 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알레만은 언제나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진료소가 있는 건물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니,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 진료소를 찾는 이들은 모두 알레만의 이웃인 셈이다. 자신이 처음 가정의를 시작했을 때 돌보았던 신생아가 이제는 임산부가 되어 자신의 진료소를 찾는다며 으쓱한다. 알레만은 그 신생아와 함께 성장했고 삶을 공유했음이 분명하다. 쿠바 지역사회에서 가정의로 살아가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에 괜히 내가 흐뭇하다.
진료소에는 최첨단 의료시설은 물론 자랑할 만한 의료 기구도 별로 갖춰져 있지 않다. 간단한 소독기구, 주사, 약품 등과 같은 기본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알레만의 진료소에는 왁자지껄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는 소리,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의사실과 대기실의 분리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알레만의 진료는 정해진 틀 없이 어디서나 이루어진다. 약 한 달간의 진료소 추격전(?)을 통해 이제 인도 위에서, 아파트 앞에서, 때로는 오토바이 위에서 주민들과 얘기하거나 등에 손을 얹고 위로하는 듯 보이는 모습의 가정의 알레만과 간호사 글레이비스의 모습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쿠바 보건의료의 성과를 분석하는 단초는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과 구별되는 쿠바 지역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단 쉼표를 찍기로 했다. 고가의 최첨단 의료장비만이 좋은 의료의 시작이라는 우리의 믿음에도 쉼표가 찍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