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25일 사망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세례명 임마뉴엘)이 317일간 사투를 벌이다 지난 9월25일 운명했다. 유족으로 부인 박순례(율리안나), 딸 백도라지, 아들 백두산, 딸 백민주화.
고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후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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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은 47년 8월24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태어나 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고, 법대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71년 시위 혐의로 제적됐고, 73년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다. 1980년 중학대학교에 복교했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을 맡았고, 그해 5월8일 박정희 유신잔당 장례식 및 5월15일 중앙대의 대규모 집회를 주도했다. 80년 8월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81년 3.1절 특서로 가석방됐다. 이후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가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 협의회 의장과 전남연합회장, 전국부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등을 맡으며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2016년 9월25일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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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25일 성명을 내고 “살인적인 물대포 직사는 이유를 불문하고 위법적인 국가폭력이라는 법원의 판결에도 대통령은 물론 경찰청장의 사과조차 없었다”며 “살인폭력을 인정치 않으면서 진정성 없는 사과 한마디로 끝났으면 더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이 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김영호)도 성명을 내고 “전국의 농민들은 백남기농민의 죽음을 한국농민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전농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민주주의 죽음”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집회 시위를 경원시하고 참여한 시민들을 적을 소탕하듯이 대해 왔고, 경찰의 물리적, 폭력적 집회 방해 행위는 민주주의와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에 마련됐고, 유가족과 대책위는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등이 마련되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26일 긴급 중집을 열고 ‘백남기농민대책위’의 투쟁계획에 전조직적으로 복무하기로 결정하고, 박근혜 정부의 반민중성, 반민주성, 반인권성을 대중적으로 알려나가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조문 △지역과 현장에 분향소 설치 △추모 현수막 및 추모리본 착용 △매일 저녁 7시 추모 촛불 참여 △백남기 농민 특검 촉구, 책임자 처벌 서명운동 전개 △투쟁기금 모금(농협 023-01-495121 한국가톨릭농민회) 등의 지침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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