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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글: 민양운(83/민양운)

화, 2015/06/30- 15:33 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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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마을에서 노는 언니, 민양운입니다.>

민양운(83/독문)

                                                                                                                       

안녕하세요? 83학번 민양운입니다.  88년도에 대전으로 이주하여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산 햇수보다 대전에서 산 햇수가 더 오래되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왜 대전에 왔냐구요? 흠흠, 아마도 운명이 아닐까요? 하하하하! 농담이 아니고요, 대전에서 와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만들었으니 운명이 아니고서야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에 왔을까 싶네요. 당시는 조직적으로 지역에 내려가던(이런 표현도 서울을 기준으로 둔 표현이네요) 막차를 탄듯해요. 제조업비중이 10%도 안되는 곳인데, 대화동공단에서 자취하며 3교대 공장생활을 하다가 90년도 초에 해고되어 지역 노동운동단체에서 활동하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습니다. 큰 아이는 스물 셋,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다가 군에 입대해 있고요, 둘째 아이는 스물한 살, 대부분의 청년백수와 비슷한 패턴으로 놀고 먹고 고민하며 우리 부부랑 함께 살고 있어요.

오십 인생 돌아보니 제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지었던 사건을 치자면 스무살에 만난 학생운동, 그리고 대전으로의 이주와 서른 후반에 만난 여성운동, 40대에 시작한 풀뿌리지역운동을 꼽게 됩니다. 제가 워낙 심성이 잔뜩 꼬여있던 아이라서 청년시기 학생운동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심술보 잔뜩 달고 나 자신만 아니라 주위사람들 못살게 굴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운동덕분에 나 자신과 나를 둘러 싼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를 가졌고, 나 자신과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은 인간이 된 거 같습니다. 진심으로 저를 돌봐줬던 모든 서강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1998년 서른 후반에 대전여민회를 통해 여성운동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여성운동의 여러 기류 중에서도 '행복한 페미니즘'류를 만난 덕분에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나를 인정하게 되었고, 훨씬 가볍고 편해져 더 자주 더 많이 웃고 행복해 지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전여민회는 부설기관을 달며 자기 몸집을 불려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고 분화와 연대를 통해 작지만 유연한 조직운동으로 더 다양한 지역의 여성을 만나는 방식으로 여성운동을 가꾸어왔습니다.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풀뿌리여성마을숲은 대전여민회 부서기관이었던 풀뿌리여성운동센터가 독립하여 만든 단체입니다. 저는 여성운동을 통해 차이는 곧 결별의 이유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여성들간의 연대와 자매애도 알았고, 자기 것을 움켜쥐고 몸집을 키우는 것 대신 가진 것을 내어 주고 지원해 주어 시작을 돕는 맏언니조직운동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운동 덕분에 저는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 새벽 5시면 마을부엌으로 출근합니다. 이 일은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지난 석 달 동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풀뿌리여성마을숲의 공동체경제활동 단위인 마을부엌에서 저는 매일 우리밀발효종빵을 반죽하고 굽는 작업을 합니다. 마을부엌의 출발은 2007년 제가 살고 있는 대전 중구 중촌동의 여성들과 만든 마을어린이도서관짜장에 있습니다. 임신,출산,육아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고군분투하던 동네엄마들이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고, 마을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마을공동활동을 통해 성장한 엄마들이 경력단절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나쁜 일자리 말고 마을활동도 하면서 돈벌이도 되는 일자리를 만들어보자고 하면서 2010년에 만들었습니다. 우리밀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마을부엌보리와밀은 1인 활동 마을기업으로 시작하여 인증사회적 기업이 되어 6인사업장까지 확장했으나 정부지원없이 자립하기에는 힘에 부쳐 지난 5월부터 공동대표 둘까지 비급여 자원노동을 보태며 회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가치있는 마을공동활동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마을부엌은 천연발효종 우리밀빵을 비롯하여 수제우리밀쿠키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 공간과 금요현미밥상 나눔, 천연발효종빵동아리, 반찬봉사동아리, 요리교실, 마을강좌, 지역제철농산물 꾸러미 공동구매, 공정무역커피 판매 등을 하는 마을활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 별명이 마을에서 노는 언니입니다.

여기서 마을은 주로 중구 중촌동, 목동, 대흥동 등 대전의 원도심 마을입니다. 도심한가운데에서 옥상텃밭농사를 시작한지 햇수로 치면 5,6년되는데 작년부터는 인근 목동성당 내 수도원텃밭도 함께 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텃밭음악회도 열기도 합니다. 마을어린이도서관짜장을 처음 문을 열 때 제가 사무국장이었는데, 지금은 4대 도서관 관장과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이 주축이 되어 그림책모임 등 소모임활동과 방학프로그램 등 엄마들이 직접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을도서관을 통해 전업주부들이 마을활동에 참여하는 만큼 성장하고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마을에서 공동활동 공간이 갖는 의미일거라 생각됩니다. 중촌동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마을공간으로는 마을공방자작나무숲속 공방이 있습니다. 200912월 문을 열렸던 마을까페 자작나무숲이 올 해 마을공방으로 전환한 것인데요, 마을까페에서 정기적으로 열었던 마을 장터에 참여하던 핸드메이드 주민작가 셋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데, 핸드메이드 주민강좌와 작품전시와 판매를 하면서 마을장터를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이외에도 제가 마을에서 하는 활동 중에는 마을학교기획, 마을축제 기획, 마을역사투어가이드도 있습니다. 저에게 마을은 삶터이자 일터이자 놀이터인 셈입니다. 생활세계에서 이웃과 함께 놀고먹고 떠들고 노래하며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도시에서 늙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습니다. 젊은 날 함께 한 친구들이 있어 추억을 나누고, 마을 구성원으로서 나이에 걸 맞는 또 다른 역할을 기꺼이 수행해 간다면 괜찮은 삶 같지 않나요?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하게 이런 활동이 바탕이 되어 올 해 5월 저는 풀뿌리현장을 가꾸는 여성운동가에게 주어지는 제1회 박영숙살림이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으로도 별 일이 없는 한 저는 이렇게 마을에서 살아 갈 것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환갑쯤에는 마을살롱을 차려 더 늙기 전에 살롱마담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좋은 음악과 문학과 술과 춤과 정치토론이 격렬하게 때로는 나른하게 진행되고,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떼로 몰려와 왁자지껄 함께하는 공간에서 예순초반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다음은? 하하하! 예순 인생이 쌓여 그 다음 삶을 만들어 가겠지요. 더 늙기 전에 제가 사는 대전 중촌동에 놀러오세요. 많은 것은 장담할 수는 없고 현미밥에 나물반찬 하나 올린 소박한 밥상은 차려드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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