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은 내가 창조하는거다’ 가르침의 삶
장영란(77/국문)
정선임: 안녕하세요.장영란선배님!
3년 전 무주에 있는 선배님 댁을 방문하여 하루 밤을 보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배님 댁에서의 1박2일은 짧은 시간이였지만 소박한 삶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 이런 거로구나”하며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 둥지를 틀러 나가기 시작하니 좀 줄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안을 둘러보니 뭐가 그리 많은지요. 선배님 댁은 정말 있어야 할 것만 있는 단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삶의 모습이였어요. 선배님 집이야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장영란: 먼저 간단 소개를 해야겠지요. 77학번 장영란입니다. 96년 서울을 떠나 98년 무주에 자리 잡고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때 작은애가 돌도 채 되기 전이었는데 지금은 사회복무요원이랍니다. 부부는 농사를 짓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지내니 네 식구가 하루 세끼 함께 먹으며 살았습니다. 징글징글하지요? 이렇게 4식구가 365일 24시간 붙어 지내는 우리 집은 평수로 15평. 시골집이다 보니 양 옆으로 헛간이 있긴 하지만 작은집입니다. 집이 작으니 적게 지닐 수밖에 없네요. 후배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놀란 게 아마 안방 때문일 텐데……. 아무것도 없고 뒷벽에 대나무 활대 하나 결려 있습니다. 아궁이로 불을 때는 구들방인데 아궁이 자리 위로 반다지 벽장이 있어 옷가지와 이불을 거기다 넣어놓으니 불편할 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방. 이건 무슨 대단한 철학이 있어 시작된 게 아니라 구들방에 종이장판이라 뭘 놓으면 그 자리에 곰팡이가 피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놓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살다 보니 좋데요. 사람이 잠자는 방이 고요하고 걸리적거리는 게 없으니까요. 또 손님이 오시면 그 방에서 모여 이야기 나누기도 좋고요.
정선임: 선배님 제가 찾아뵈었을 때 명상요가를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장영란: 명상은 했지만 요가쪽 명상은 아니고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을 했어요. 명상하는 분이 동네로 이사를 오셔서 명상이 뭔가 한번 배워보자 하고 시작을 했는데……. 한동안은 열심히 했어요. 아침저녁으로. 3년 이웃들과 명상모임도 하고요. 한데 안하던 사람이 하려니까 억지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올해는 명상모임도 쉬면서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상을 하면서 뭐 깨달았냐? 그럴 리가. 다만 세계관이 바뀌었지요. 죽음이 무언가? 지금 이 생, 그리고 나. 생각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도 한 거지요. 그러면서 전에는 이게 옳아! 이런 절대선 기준이 강했다는 걸 알았지요. 아마 그래서 운동권과 잘 맞았던 것 같네요. 명상을 시작할 무렵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 돌아보니 내가 생각하는 게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내 삶은 내가 창조하는 거다’라는 가르침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창조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이자. 이게 요즘 마음입니다. 혹시 명상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나비랑북스에서 나온 책 <옴니>를 권해 드려요.
정선임: 그리고 김광화선생님의 요즈음의 근황도 알고 싶습니다. 대학 안간 청소년들과 함께 즐거운 도모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장영란: 우리 남편 근황은 질문자의 개인 관심사인 것 같은데요? 우리 부부는 거의 모든 삶을 함께 하니 그냥 내 이야기로 풀어가도 괜찮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더니 어느덧 대학도 다들 안 갔어요. 그 덕에 돈 걱정 없이 살았지요.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옆에도 산. 첩첩 산에 살다 보니 사람이 아주 귀하지요. 아이들이 많이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이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삶을 알려 동지들과 만나려고요. 삶을 쓰는 일이 그래요. 어딘가에 연재를 하고 그 연재한 걸 모아서 책이 되려면 몇 년 거기에 집중해야 하더라고요. 이 책은 우리 4식구가 몇 년을 집중해서 얻은 보석이지요. 그 덕에 유유상종. 아이들 친구들이 생겨났고,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났습니다. 이제는 학교 안 간다고 하면 ‘아! 홈스쿨링 하는구나!’ 하고 이해하는 사회문화도 만들어졌고요. 이렇게 우리 아이들 자랐는데, 문제는 연애와 결혼이에요. 그래서 우리 부부가 다시 ‘며느릿감 사윗감 기르기’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이 사회에 젊은 청년들 가운데 시골서 농사짓고 살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을 응원해 며느릿감 사윗감 풀을 만들어야겠구나. 우리 아이들이 시골서 살고 싶어 하느냐고요? 맞습니다. 이상하지요? 저이가 복이 많구나! 이렇게 넘어가 주세요! 자식들과 동지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 아이들은 고군분투해야 할 때가 많답니다. 아직 개척기니까요. 그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큰애가 스물다섯까지 집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서울로 올라가 청년공동체 생활을 3년 했어요. 혼자서 고요히 살던 아이가 한 방에 넷씩 살고 한 집에 열 명 남짓 복작거리는 곳에서 살려니 어땠을까요? 여하튼 그 덕에 신랑감을 찾았네요. 올 5월에 어느 산골에서 친구들이 꾸려준 결혼식을 했어요. 결혼식도 젊은이들답게 1박2일을 하데요. 힘도 좋아라~~ 우리는 밤에 도망 왔지요. 지금은 전남 누구네 빈 집에 살면서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들 땅을 찾고 있답니다. 큰애 덕에 도시서 사는 청년들을 여럿 만나보았는데요, 시골서 살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제법 있어요. 뻔히 내다보이는 규격화된 삶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보고 싶은 거지요. 그러려니 자본의 간섭이 약한 시골에서 몸 움직여 살고 싶다. 또 대안교육이 십년 이십년 흘러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기도 하구요. 요즘 귀농학교에 19살, 스무 살 청년이 수강을 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겠지요. 어느 날 남편이 나서데요. 20대 젊은이 가운데 지금 시골서 사는 이들을 모으고 있어요. 요즘 시골에 스무 살 젊은이가 살고 있냐고요? 있긴 있어요. 다들 그리움이랄까 여하튼 마음이 통해 지금 작은 모임을 하고 있답니다. 아직까지는 주먹 안에 들어갈 작은 눈덩이지만, 앞으로 청년유랑단을 만들 예정이에요. 누군가 불러주면 달려가 ‘시골서 사는 20대 청년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고 있답니다.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선임: 제가 찾아뵈었을 때는 직파법으로 논농사를 지으셨던 것 같은데 농사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선배님 가족이 함께 쓴 ‘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연달력 제철밥상’의 책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장영란: 하룻밤 자고 갔는데 유심히 보셨네요. 우리 남편은 논을 사랑해요! 상주 들판 사람이라 벼농사 짓던 유전자가 강한 듯해요. 논농사 지으며 한쪽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여러 해 하더니 직파를 하고 있습니다. 직파가 뭐냐? 논농사를 잘 몰라도 모내기는 아시지요? 모내기는 못자리에서 벼의 싹을 길러서 그 모(벼 싹)을 논에 심는 일을 말해요. 우리는 손으로 모내기를 십년 이상 했어요. 아. 힘들어라.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허리가! 직파는 모내기 없이 볍씨를 논에다가 바로 흩뿌리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농사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몇날 며칠 새벽부터 저녁까지 할 일이, 한 시간 볍씨 훌훌 뿌려가지고 되니까요. 물론 말같이 쉬운 건 아니에요. 일단은 벼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벼만이 아니라 논에서 사는 여러 가지 풀까지도 잘 알아야 해요. 일만 쉬운 게 아니라 벼가 달라요. 벼가 활개 치며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답니다. 농사법도 농부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어요. 직파는 벼를 좀 더 자연스럽게 길러보고 싶다는 거지요. 유치원부터 대학에 유학까지 공들여 자식을 기르는 집이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학교에도 안 보내고 그냥 놔두니 저 알아서 크는 집이 있는 것처럼요. 올해 논농사가 잘 되면 나중에 쌀을 팔까요? 논에서 활개 치고 자란 쌀을요. 논에 직파를 한다면 밭은 자연농법을 합니다. 기계로 땅을 갈지 않고요, 되도록 땅이 스스로 살아나게 하는 농사입니다. 풀은 호미로 일일이 다 매요. 유기농은 농약 비료를 안 주는 농사라면 자연농법은 기계 비닐 이런 것까지 쓰지 않는 농사에요. 온갖 기계와 기술이 발달한 지금에 맞지 않지요? 뭐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직접 해 보면 식구들 먹을거리를 이것저것 조금씩 심어 가꾸기에 좋아요. 이렇게 자연에 맞추어 자급자족하는 농사 이야기가 바로 <자연달력 제철밥상>입니다. 귀농계 베스트셀러라 ‘귀농의 정석’라는 별명이 있지요. 혹시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꿔 볼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시골 밥상에 관해서 여러 군데 글을 쓰고 책도 여러 권 냈어요. 산골서 식구들과 살면서 하기 좋은 일이 글 쓰는 일이더라고요. 돈도 들어오고, 십만 원 이십만 원 이 돈이 도시서는 푼돈일 수 있지만 시골서는 쏠쏠해요. 또 나도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생겨 농사도 더 열심히 짓게 되더라고요. 그 사이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까지 생겨나서 글 쓰고 사진 찍어 언론사나 출판사에 보내는 게 다 집안에서 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해까지 한겨레신문에 “숨 쉬는 밥상‘ 연재를 마치고, 요즘에는 꽃 이야기를 쓰고 있답니다. 꽃은 꽃이되, 벼꽃, 콩꽃, 고추꽃, 호박꽃 이런 우리를 먹여 살리는 농작물의 꽃 이야기이지요. 남편과 둘이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착착 잘 되네요. <아이들은 자연이다>때 집중해서 몇 년 공동 작업할 때를 떠올리게 되네요. 그때도 참 좋았지요. 부부로 여러 해 살면서도 둘이서 정신세계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교감을 나눠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식물 하나하나에 관해 혼자라면 살피지 못할 여러 면을 둘이기에 서로 묻고 새로운 각도에서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늘 밥 먹고, 콩 먹고, 오이 먹고 살지만 그 식물들이 어떻게 꽃을 피워 자손을 번식시켜 가는지? 모르잖아요. 내 몸을 이루는 벼와 콩에 대해 그 생명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져요. 기독교에서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뭔 말인지 이해가 가지요. 그래서 곡식 꽃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을 하나하나 모으고 있답니다. 또 이렇게 모인 사진으로 동영상(곡식 꽃 하나에 3분, 5분짜리)도 시나브로 만들고 있어요.
정선임: 마지막으로 서강민주동우회에 하고픈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장영란: 멀리 살다 보니 민동 모임에 가지 못한지 오래네요. 민동 사무국이 다시 꾸려져서 반갑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할 마음을 딱 먹었는데, 이런 인터뷰를 해 달라고 하네요. 하라는 거라도 고분고분 하기로 했는데 이런 질문이 떡 달려있네요. 제대로 참여도 안 하는 사람으로 주제넘은 이야기라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한마디 해 볼까요?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전여농이라는 단체를 아세요? 전국여성농민연합회. 우리나라 농민운동이 다시 일어나면서 전농(전국농민연합회)이 생겼지요. 그때 농촌여성들의 자주적인 활동을 위해 따로 여성농민연합회를 만들었으니 전농과 커플 조직입니다. 전여농은 투쟁투쟁! 농민운동에 열심인 조직인데요, 여기서 몇 년 전 토종씨앗 운동을 시작했어요. 지금 토종씨앗 모임인 씨드림이 바로 전여농 덕에 만들어진 모임인데요, 농촌여성들이 우리 토종씨앗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걸 모으고 실험 재배하는 일을 하면서 모임이 새롭게 바뀌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뭔가에 대항하는 모임에서 뭔가를 창조해나가는 모임으로.
민동 역시 태생이 투쟁 투쟁이잖아요.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출신학교로서 부담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민동 회원들이라서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민동 식구들은 피붙이 같아요. 그냥 학교 동창이 아니라 사촌 육촌 같다고나 할까요. 다들 자기가 하고픈 대로 맘껏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가운데 혼자라서 못한 그 하고픈 것. 투쟁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민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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