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하는 사람들]
한겨울 푸릇한 생명력으로
그대 입맛 되살리고저
전남 무안 생기찬공동체 박경희·서준일 생산자
서준일 생산자를 만난 곳은 ‘중앙통닭’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 앞이었다. ‘웬 통닭집?’ 갸웃거리며 들어가니 내부 풍광은 더욱 놀랍다. 고치다 만 오토바이 주변 바닥엔 손때가 덕지덕지 탄 공구가 널브러져 있고 다른 방에는 한살림 세발나물 포장지와 ‘운남농협세발나물공선출하회’라 적힌 박스가 허리께까지 쌓여 있었다. ‘공간이 사람 그 자체’라고 했던가. 서준일, 박경희 생산자가 거하는 공간은 현재 그들의 삶의 모습을 짐작케 했다.
“오토바이 수리 한 지는 30년이 더 되었어요. 형이랑 농약도 팔아보고, 농사도 수박, 양파, 마늘, 쌀 등 다양하게 지어봤죠. 근데 뭐 하나 제대로 풀려야 말이죠. 아내가 닭 튀겨 살림에 보태느라 애썼죠 뭐.”
2013년부터 한살림에 공급한 세발나물은 이들 부부에게 안정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여전히 남편은 오토바이 수리를, 부인은 통닭 장사를 함께 하고 있지만 마음은 훨씬 넉넉해졌다. 농약장사를 하던 그는 이제 운남면 작목반원들에게 친환경 전도사로 통한다.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만, 작물 또한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세발나물, 너 참 고맙다.
[이달의 살림 물품 ]
바다내음 양껏 들어찬 한겨울 밥상의 보물
한살림 세발나물
눈앞에 풀빛 양탄자가 길게 펼쳐졌다. 얼어붙어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앙상히 드러난 나뭇가지들, 무채색으로 덮인 한겨울 풍경을 뒤로하고 비닐하우스 문을 여니 넓게 펼쳐진 초록빛 세발나물밭 여기저기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꽃처럼 피어있었다.
“밟으면 안 돼요!” 푸른빛에 취해 서너 걸음 내디딘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발걸음을 채잡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진녹색 세발나물밭 위에 옅은 초록빛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세발나물이) 여리고 부드러워서 한 번이라도 밟히면 물품으로 낼 수가 없어요.” 박경희 생산자의 주의를 듣고 유심히 보니 발자국 속의 세발나물이 짜부라져 볼품없이 변했다. 몇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수고로이 농사 지은 세발나물이 200g짜리 두어 봉지 만큼 쓸모없게 되다니. 내 발이 이렇게 컸던가 새삼 원망스럽다.
한구석에 쌓여있는 세발나물을 한소끔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니 식감은 연하고 맛은 짭조름하다. 본래 염전 주변, 간척지의 논 등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자생하는 염생식물을 밭에 뿌린 것이라 그런지 땅속의 염분과 물을 쑥쑥 빨아들였다. “일반 땅에 심어도 그럭저럭 잘 자라긴 할 텐데 아무래도 본래 살던 환경을 맞춰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 뻘흙을 30cm 이상 깔아줬어요. 세발나물이 시들한 듯 보이면 가끔 바닷물도 떠다 뿌려주고 하고요.”
한살림 세발나물이 자라는 무안은 해남과 함께 전국에 세발나물을 공급하는 주생산지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운남면은 무안군에서도 세발나물밭이 집중된 곳이다.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다 바다였어. 이쪽은 한 50년 전에 간척한 곳이고 저쪽은 우리 초등학교 때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는데 이후 메운 곳이야.” 세발나물밭 주변 땅을 손가락질하며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진다. 한때 바다였고, 갯벌이었던 곳에서 자라는 세발나물이라 그렇게 바다내음을 품고 있었나 보다.
겨울을 제철로 하는 몇 안 되는 나물인지라 농사주기도 일반 작물과 다르다. 가을에 접어드는 9월 초순에 파종해 3월 말까지 네 차례 정도 수확한다. 마지막으로 수확한 후 그대로 놔두면 무릎 높이까지 자라 하얀색과 보라색이 섞인 별 모양의 꽃이 피는데, 여기서씨앗을 받아 그해 가을 다시 뿌린다.
“이게 세발나물 씨앗이에요. 진짜 작죠?” 그가 내민 종이컵 안에는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운 갈색 가루가 담겨 있었다.
채종과 파종은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5월 중순께까지 놔둬 길게 자란 세발나물 줄기와 꽃을 바닥에 놓고 큰 대나무를 갈라 만든 도리깨로 때리면 씨앗이 바닥에 떨어진다. 1mm 정도 크기의 체로 여러 번 쳐서 검불을 떨어내면 작은 씨앗들만 남는다. 워낙에 크기가 작아 살짝 젖은 모래 한 되에 씨앗 한 컵 정도를 섞어 뿌린다. 200평짜리 밭에 씨앗 세 컵이면 충분하다.
세발나물의 일 년 농사를 좌우하는 것은 파종 직후의 물관리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싹이 올라오기까지 평균 4~5일 정도 걸리는데 그때까지 땅이 마르지 않도록 수시로 물을 줘야 한다. “씨앗이 작아서 그런지 떡잎이 올라오기까지 공이 많이 들어요. 스프링클러로 밤낮없이 물을 뿌려줘야 하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세발나물밭에 듬성듬성 구멍이 뚫리죠.”
‘겨울에 자라는 작물이니 잡초나 병충해 피해는 적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쉬운 농사가 어디 있겠냐”며 손사래를 친다. “잡초도 있고, 진딧물이나 청벌레 같은 충도 있고, 균핵이나 곰팡이 같은 균도 있죠.” 잡초가 높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더욱 성가신 면도 있다. 파종하면서 두어 차례 김을 매주고, 수확할 때마다 보이는 잡초를 뽑아 줘야 한다.
병충해 방재도 만만찮은 일이다. 여름에 휴경할 때 물을 뿌려놓고 수증기로 고온소독을 해 균핵을 방지하고, 벌레가 생기면 돼지감자를 끓여 밭 이곳저곳에 뿌려준다. 파종 직전에는 은행나무잎을 삭혀 밭에 뿌려주기도 한다. 그래도 생기는 곰팡이는 물관리를 통해 최대한 잡는 수밖에 없다.
서준일, 박경희 생산자가 한살림에 세발나물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13년께로 올해로 4년째다. 한살림에 공급하면서부터 일은 재우 늘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두 번 인부를 사서 왕창 베고 시장에 냈었는데, 이제는 매일 조금씩 베고, 포장해 한살림에 올려보내야 한다.
“한살림 출하가 일주일에 다섯 번인데 매일 오전 수확하고 오후에 포장해 저녁 즈음 올려보내요. 겨울 작물이라 빨리 시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올려보내야 한살림 조합원들이 더 신선한 것을 먹을 수 있으니. 아내가 세발나물을 베면 내가 봉지에 담고 수확한 자리의 잡초도 뽑고 하죠. 매일매일 일해야 하니 아무래도 예전보다 고되긴 하죠.” 연신 툴툴대면서도 입가에 미소는 끊이지 않는다. 요새 세발나물 값이 자꾸 떨어지는데 한살림에 내는 가격은 일정하니 다행이다 싶은 얼굴이다. 한살림에서 세발나물을 볼 수 있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그 미소가 지워지지 않을지 싶다.
“자! 참이라도 좀 먹고들 합시다!” 워낙 밭이 넓은지라 너덧 명이 달라붙어 수확하는 데도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중간중간 쌓여있는 세발나물 더미를 보니 올 한 해 반찬은 걱정 없겠다 싶어 마음까지 든든하다.
겨울을 맛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 집 앞 골목에 피어오르는 군고구마 연기, 밤새 내린 눈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등. 이제는 겨울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하나 늘어날 듯 싶다. 밥상 위에 오른 세발나물의 짭조름한 맛.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입 안 가득 풍기는 그 바다내음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그 행복은 어느덧 날 풀린 봄까지 이어지리라 .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 / 한살림 소식지 568호 中
한살림 조합원이 귀뜸해주는
세발나물 맛있게 먹는 법
한살림 물품으로 처음 등장한 2013년 이후 세발나물은 조합원들이 장바구니에 꼭 담는 겨울철 인기품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새콤짭짤 입맛 돋우는 세발나물무침
재료
세발나물 200g, 참기름 1/2작은술, 볶은참깨 약간
(양념 : 된장 1큰술, 고추장 1큰술, 유기쌀 올리고당 1큰술, 다진마늘 1큰술, 토마토식초 1/2작은술)
방법
❶ 흐르는 물에 씻은 세발나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찬물에 헹군다.
❷ 양념장 재료를 잘 섞는다.
❸ ①의 나물의 물기를 빼고 양념장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린다.
❹ 참기름을 넣고 무친 뒤 볶은참깨를 뿌려 완성한다.
조혜경 한살림천안아산 조합원
담백하고 든든한 세발나물전
재료
세발나물 200g, 부침가루, 튀김가루, 현미유, 소금 약간
방법
❶ 세발나물을 씻은 후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한다.
❷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3대 1의 비율로 섞고 물에 개어 걸쭉한 반죽을 만든다.
❸ ①의 세발나물을 종종 썰어 ②의 반죽과 섞는다.
❹ 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살짝 달군다.
❺ ③의 세발나물 반죽을 팬에 얇게 펴고 약불에서 노릇하게 구워 완성한다.
황해영 한살림서울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