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보좌하며 자치혁신을 이끄는 보좌진의 배움터 ‘목민관클럽 보좌진 아카데미’가 2016년 12월 28~29일 1박 2일간 시흥시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28명이 참석한 2016년 4차 보좌진 아카데미에서는, 70만 미래도시를 향해 시민과 함께 꿈을 키워나가는 시흥시를 둘러보며 청년과 보육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00년의 역사, 100년의 미래
먼저 이명기 기획팀장의 소개로 시흥시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시흥은 ‘새롭게 일어나 융성하는 땅’, ‘때를 만나 일어나 발전하는 땅’이라는 뜻이 있다. 고구려의 기상이 깃든 ‘길게 뻗어 나가는 땅’이라는 뜻의 ‘잉벌노’, ‘늠내’와 그 의미가 통한다. 삼국시대 영토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시흥지역은 조선시대에 안산과 인천에 속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개편 과정에서 시흥이라는 지명과 만난다.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2014년 시흥은 지난 10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수도권 변방에서 산업화의 과정으로 급성장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사람과 공동체가 어우러진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생명을 품은 미래도시로 성장하고자 의지를 다진 것이다.
산업단지의 첨단화, 호조벌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물왕저수지와 갯골생태공원을 지나 오이도까지 700리(28km) 물길을 잇는 생태 축의 보전과 시민휴식처로의 개발, 배곧신도시 개발 등을 통해 2020년 70만 생명도시의 꿈을 꾸고 있다.
청년,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이번 보좌진 아카데미의 주제는 청년이다. 젊음과 패기의 상징이던 청년은 헬조선 시대를 맞아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를 넘어 취업과 내집마련, 꿈과 희망까지도 포기한다는 7포 세대라 불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기성세대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특히, 지역이라는 구체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청년의 이야기는, 인구절벽과 지역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그 길을 알려준다. 청소년활동가에서 청년활동가로 성장하여, 이제는 공무원 신분으로 시흥에서 청년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조은주 주무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청년은 미숙아가 아니다. 당당한 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조은주 주무관은 지역에서 활동을 해보니 청년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주민참여예산 등 시정참여 기회가 있을 때 청년들이 잘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을 직접 모아 주체적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활동을 해보고자 했다.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쓰레기를 치우고 동네 벚꽃길 안내지도도 만들었다.
이렇게 활동하다 보니 더 의미있는 활동은 없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공부를 통해 서울시 청년기본조례를 알게 되었다. 의원을 통해 조례가 제정되다 보니 정작 당사자인 청년을 비롯하여 많은 시민이 청년기본조례에 대해 잘 모른다는 한계가 있었다. 한 달 동안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지역사회 변화를 위해 주민발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조례제정운동을 벌이자고 결의했다. 처음 20명으로 시작했으나 중간에 10명으로 줄기도 했다. 주민발의를 위해서는 평소 잘 쓰지 않는 통반까지 정확하게 기재해야 했는데, 이런 형식화된 제도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3개월 안에 6천2백여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 7일 동안 3천 명의 서명을 받으며 청년들이 움직이니 지역사회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14,372명의 서명을 받아 원안 그대로 통과될 수 있었다. 14372, 잊을 수 없는 숫자다.
전국 최초로 주민발의 과정을 통해 제정된 시흥시 청년기본조례는 청년들이 공부하고 토론하며 만들었다. 조문 하나하나에 청년들의 고민이 녹아 있다. 청년의 범위를 거주뿐만 아니라 생활하고 있는 이들까지 포괄하였으며, 지역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청년의 참여확대와 연대강화, 청년의 학습권 보장 및 능력개발 지원 등의 조항을 신설하였다.
청년정책은, 청년을 삶의 흐름에서 바라보고 청년이 지역사회에서 자치, 자생,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청년이 사회가 규정한 좌절 담론에 갇히지 않도록,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지역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청년 스스로 지역사회를 이해하고 관계망을 형성하지 않으면 자립기반을 쌓기 어려우므로 지원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시흥시는 사회참여, 교육문화, 노동인권, 주거복지 4개 분야로 나누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각 분야를 종합하여 조정하는 청년정책위원회를 운영한다. 아울러 청년들의 지역사회 참여는 청소년 활동부터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 그래서 청소년과 청년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도 추진 중이다.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 만들기
이어 김윤식 시흥시장과 정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김 시장은 현재 본인의 고민을 풀어놓고 보좌진들과 교감하며 대안을 찾아보길 원했다. 주요 키워드 중심으로 정책 간담회 소식을 정리한다.
김윤식 시흥시장(이하 시흥시장) : 지방은 이미 겪고 있는 문제지만 수도권은 지금이 고민의 시작이다. 서울시 인구는 천만 명이 무너졌고, 인근 안양시도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작년 주요 키워드는 ‘지방의 소멸’이었다. 가까운 일본 사례가 많이 소개되었는데, 우리의 가까운 미래다. 질병관리, 대중교통, 인구문제를 가지고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시흥시도 보금자리 사업으로 당분간 인구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 이상은 힘든 상황이다. 인구분석을 해보니, 신도시는 어린 자녀를 둔 30~40대가 주로 입주할 예정이다. 당장은 신도시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한 젊은 층이 유입되겠지만, 인구절벽 시대에 더는 인구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구조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이다. 공무원 대상으로 1차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통해 의견을 모아 보았는데, 36건 중 24건은 추진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울러 토크콘서트를 통해 청년이나 아이를 둔 엄마 등 계층별 요구를 조사해 보기도 했다. 세종시가 모범사례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오늘 참석하신 보좌진들께서 좋은 의견을 많이 주었으면 한다.
윤금이 아산시 정책보좌관 :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는 여성 맞춤 도시여야 한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해야 하며, OECD 국가 최저 수준인 남성의 가사 분담률을 높이고 성별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정책도 필요하다.
시흥시장 : 임신기에 있는 엄마들을 위한 영양플러스사업, 좋은 아빠교실을 통한 양성평등, 육아분담을 공론화하고, 일하는 여성을 위한 반찬가게 등을 지원하고 있다. 가정단위에서의 고민과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 정시 퇴근을 위한 기업문화의 혁신 등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편화되어 있는 데다 한정된 예산의 한계로 인해 제한적 정책에 머물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시흥시만 하더라도 인구 당 공무원 수가 지방자치단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어린 자녀를 둔 공무원의 근무량과 근무시간을 배려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핀란드 네오볼라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고민을 나누고 지원해줄 센터가 시군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공공영역에서 지원해 준다고 한다.
윤정배 서울 성북구 정책보좌관 : 저도 부모지만 아이 낳고 키우기가 참 어렵다. 성북은 유니세프가 인증하는 아동친화도시이다. 10대 기준이 있어 인증을 받았는데, 뭔가 특별한 것이 부족해 보인다. 또한 아동친화라는 개념이 아이들이 행복한 도시인 건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수월한 것인지 개념이 헷갈리기도 하고, 어디에 방점을 두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내년에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자 아동수당을 지원하려고 하는데 청년수당처럼 보건복지부가 발목을 잡고 있다.
시흥시장 :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지방정부가 하는 것에 대해 격려는 못 해줄 망정 문제 삼는 것이 현실이다. 시흥시도 사업 중 14건 정도가 중앙정부의 ‘중복사업’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청년수당만큼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 실수령액이 90만 원인데, 수당개념으로 10만 원가량 지원하려고 했더니 반대했다. 이를 충분한 설명을 통해 해결했다. 이런 부분을 돌파하는 것도 자치의 힘이 아닐까 한다. 서대문구의 동복지허브화 사업은 중앙정부가 적극 벤치마킹하여 확산하고 있지 않은가.
서정순 서울 서대문구 정책보좌관 : 보육에 관해 관심이 많다.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직률이 높은 보육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초과근무수당제도나 비담임 주임교사제도 같은 경우는 참고하시면 좋겠다. 미래세대의 건강을 위해 영유아급식을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것도 적극 고려하면 좋겠다.
시흥시장 : 성북, 서대문 사례를 많이 배우고 있다. 교사의 질이 교육의 질을 담보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시흥은 사회 제반여건이 부족하다 보니 인근 안산시나 부천시보다 인구유출이 높다. 보육종사자의 처우 개선은 많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영유아식단은 생애주기별로 보더라도 매우 중요하다. 아동영양전문가를 통해 영양사를 두기 힘든 50인 미만의 어린이집을 컨설팅하고 있는데, 서로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시흥시는 보육의 한 분야를 공동육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시청의 두 번째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방식이다. 공동육아를 지원하니, 다른 곳에서 벤치마킹을 많이 한다.
한편, 국공립어린이집은 원장의 장기근속이 고민이다. 한곳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정체되는 경우 어떻게 순환할지 고민이다. 많은 저항이 있는데, 조례제정을 통해 4곳은 공개모집할 예정이다. 사실 영유아의 경우 가능하면 부모의 품에서 커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모육아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사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그런 점은 시흥시 사례를 참고하시면 좋겠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동안 창밖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배우며 나누는 지역 일꾼들이 있으니, 지방자치는 시간이 걸려도 미래는 밝구나 싶다.
교육도시, 생명도시
보좌진 아카데미 둘째 날에는 시흥의 다양한 혁신현장을 들렀다. 우선 배곧신도시로 향했다. 2016년 인구 44만 명의 도시에서 2020년 70만 명의 미래도시를 꿈꾸는 시흥시의 주요 전략중 하나는 교육과 생명, 사람이다. 시흥은 길게 늘어선 도시 특성상 중심 시가지가 발달하지 않았고, 교육과 의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진행된 사업 중 하나가 교육과 건강도시를 내세운 배곧신도시이다.
배곧신도시는 1985년부터 1996년까지 (주)한화가 화학성능 시험장으로 매립하여, 1997년 준공되었던 땅이다. 2006년 시흥시가 토지를 매입하였는데, 다양한 논의 끝에 2012년에 배곧신도시로 개발하기로 했다. 교육과 의료 때문에 빠져나가는 도시가 아닌 자족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것이었다. 서울대 캠퍼스는 학생들의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병원과 연구중심의 기능이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배곧’이란 ‘배우는 곳’이라는 순우리말로 1914년 주시경 선생이 조선어학당을 ‘한글배곧’으로 개명한 데에서 유래한다. 교육도시에 대한 시흥시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큰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생긴 갯골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주거와 산업단지로 수많은 갯벌이 매립되어 사라지는 사이, 잊혀 있던 공간 갯골은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시민의 자연휴식공간, 생태학습공간을 포함한 해양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10미터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니 더 넓은 갯골생태공원과 호조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생명과 사람을 품고 백년대계(百年大計) 교육을 통해 70만 미래도시를 꿈꾸는 시흥시에서 2016년 4차 보좌진 아카데미를 마무리했다.
글‧사진 : 목민관클럽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