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0억 4,200억 2,734억
이른바 ‘최순실 예산’으로 정당과 언론 등에서 제시한 금액입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최순실이 관여한 예산일까요? 비록 모든 것이 처음인 초짜 활동가이지만, 최순실과 관련된 예산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서를 들여다봅니다.
너무나 많은 분량에 차마 이렇게 출력해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예산안은 무척이나 두껍고 복잡합니다. 여러 자료들 중 ‘2017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Ⅱ-1)’을 살펴보았습니다. 총 5권에 페이지 수만 4,355페이지. 다루고 있는 사업은 300가지가 넘습니다.
4,335페이지에 달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설명자료 첫 페이지
차은택이 주도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사업 부분을 펼쳤습니다. 우선 903억 6,500만원에서 1,278억 2,700만원으로, 1년 사이 무려 374억 여원(41.4%)이나 예산이 늘어난 것이 눈에 띕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7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II-1) p.213
‘사업목적’을 읽어봅니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조성을 통해 융합형 인재양성, 아이디어의 구현과 창업, 사업화 및 해외진출까지 긴밀하게 연계되는 문화콘텐츠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구조 구축‘
멋지게 들리긴 하지만, 무엇인지 잘 감이 오지 않습니다.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 세부사업들을 살펴봅니다. 문화창조벤처단지 구축 및 운영, 문화창조아카데미 조성 운영 및 콘텐츠 개발, 문화창조융합벨트 글로벌 허브화 등 등 온통 있어 보이지만 실체를 짐작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내용을 찾아보기 위해서 문화창조아카데미, 문화창조융합벨트 등 관련 사이트를 들여다보아도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이트. 차은택이 관여하며 예산이 26억에서 171억으로 뻥튀기된 의혹을 받는 K-Style Hub 소개가 눈에 들어온다.
ⓒ문화창조아카데미 사이트. 이른바 컨텐츠 인재 양성기관으로, 이미 2016년에 34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수강생은 단 45명 뿐이며, 2017년 문체부 예산안에 309억 원이 요구된 상태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에 다른 사업의 예산서를 열심히 읽어봅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VIP’ 라는 글자가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옵니다. ‘VIP 말씀’, ‘VIP 지시사항’ 등등..
ⓒ 문화체육관광부 - 위 자료, p.505
영어로 중요인물을 뜻하는 VIP는 누구일까요? 혹시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정부 공식문서인 예산안에 '대통령'이라는 우리말도 쓰면서, 굳이 VIP라는 영어 보통명사를 또 사용한 이유는 대체 무엇을까요? 혹시 이 VIP가 대통령이 아닌 진정한 실세, 최순실의 그림자였던 것은 아닐까요?
내친김에 예산서 안의 'VIP'를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정부의 많은 사업들이 VIP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VIP 말씀을 근거로 수많은 사업들이 시작되고 예산을 늘리고 있었습니다. 중앙행정기관 17개 부서의 ‘VIP’ 언급 횟수를 찾아봤습니다.
묘하게도 ‘최순실 예산’과 관련해 강하게 의심받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미래창조과학부의 예산서에서 많은 수의 ‘VIP’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체 예산안 ‘VIP’ 언급 546회)
마침 최순실의 측근 차은택이 CF감독이고 그와 관련해 많은 콘텐츠 사업에 손을 뻗쳤다는 언론의 보도가 생각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을 ‘콘텐츠’라는 키워드로 살펴보았습니다. 예산에서 프로그램이 ‘콘텐츠산업 육성’인 것들의 예산만 찾아보니 2016년 대비해서 22.7%가 증가했습니다. 4,950억이었던 예산이 6,075억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콘텐츠산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몰랐던 숨겨진 VIP의 이익을 위하여 이 예산이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예산서에는 그러한 내용이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예산은 근본적으로 국민이 낸 세금입니다. 국민들이 낸 세금을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곳에 쓰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VIP가 임의적으로 세금이 어디에 쓰일지를 결정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VIP가 국민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물론 지금 의심받고 있는 예산들 모두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분명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이른바 ‘순실’한 예산도 존재할 것입니다. 여태 믿었던 것들이 부정되고, 소문이라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증명되는 상황을 우리는 지금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첫 발은 나라예산네트워크에서 시작된 예산강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예산에 숨겨진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관련 예산을 한번 파헤쳐 보자면 시작한 결과로, 조금씩 예산에 숨겨져 있던 최순실, 차은택의 그림자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10월 24일 최순실 관련 예산을 처음 파헤친 보고서입니다. 전체 보고서는 나라살림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불과 열 명 남짓한 예산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수만 쪽에 달하는 정부 예산서를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나라예산네트워크의 활동에 작은 관심과 지원을 요청드리는 이유입니다. 나라예산네트워크는 문제예산을 지적하는 토론회와 문제예산 관련 국회 청원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바로보기)
여러분의 작은 참여를 통해서 더 많은 ‘순실’한 예산을 앞으로도 찾아내고, 예산을 제대로 쓰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나라예산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정부 예산안을 강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