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의 논리와 문제점

 

남찬섭 ㅣ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서론

정부는 지난 2016년 3월 29일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 제1차 회의를 개최하여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재정건전화 방안을 결정, 발표하였다. 이 방안에 따르면, 현재 우리사회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사회보험지출의 급격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동시에 최근의 저성장·저금리 추세로 사회보험 적립금의 운용수익률이 저하하여 사회보험 적립금의 고갈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사회보험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 있으므로 당면한 사회보험의 재정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강도 높은 재정건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단에 기초하여 정부는 재정추계 및 기금운용방식의 재편과 사회보험 관리운영의 효율화를 뼈대로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기획재정부, 2016a, 2016b).
정부가 이번에 사회보험과 관련하여 내놓은 방안은 작년 말에 발표한 「2060년 장기재정전망」에 포함된 대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정부는 사회보험과 관련하여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으면서 기존의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하는 개혁이 긴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기획재정부, 2015a, 2015b).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기조가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기조와 같은 거시적 환경변화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하고 있으며,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기조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복지적 조치에 대해서는 세대간 부담전가로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사회보장을 포함한 사회복지제도의 존립근거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하여 사회연대를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데에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사회복지제도의 목적과 수단을 전치시켜 사회보장을 포함한 사회복지에 대한 잘못된 여론을 조성할 수도 있는 시각이다.
아래에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이어 정부방안에 내재한 논리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해보기로 한다.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의 주요 내용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의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및 최근의 저성장·저금리 기조에 대한 대응을 배경으로 하여 강도 높은 재정건전화 방안을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이 방안이 적용되는 제도는 4대 공적연금(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과 국민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의 7대 사회보험으로서 이들 제도를 대상으로 한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은 크게 통합재정추계제도의 도입, 사회보험기금 운용체계 재편, 사회보험 관리운영 효율화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이 중 마지막의 사회보험 관리운영 효율화는 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기존지출구조의 합리화에 해당하는 것이며 앞의 두 가지가 중요하다.
통합재정추계제도의 핵심은 기존에 제도별로 별도로 이루어지고 있던 재정추계에 대해 거시변수와 인구변수를 공통적으로 적용하여 제도 간 재정추계결과를 비교가능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각 사회보험별로 재정추계결과와 재정안정화 계획을 연계시켜 강력한 재정안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미 통합재정추계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연합뉴스, 2016.04.27.) 올해에 중기재정추계(10년)를 실시함과 동시에 장기재정추계(70년)에 필요한 추계모형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사회보험기금운용체계 재편 역시 통합재정추계제도 도입과 유사한 의도를 가진 것인데, 각 사회보험의 기금운용정보를 상호공유하고 투자공조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기금운용수익률을 높여 기금고갈시점을 연장시키려는 것이 그 핵심의도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4월에 사회보험자산운용협의회를 출범시키고 기금운용공조체계를 가동시키고 있다(연합뉴스, 2016.04.20.).
이와 같은 정부 대책의 핵심내용은 결국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저출산・고령화 및 저성장·저금리 추세 →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 위협 → 미래세대 부담 증가 우려 → 재정건전화 조치 필요 →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위한 통합재정추계제도 도입 → 통합재정추계결과를 반영한 재정안정화 방안 수립 및 사회보험기금 운용체계 재편 → 사회보험기금 고갈시기 연장, 미래세대 부담 완화’라는 논리로 요약할 수 있다. 2015년 말에 발표한 「2060년 장기재정전망」에 인구감소 대응 및 중장기 성장률 제고 등을 시나리오 내지 방안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지만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출산율 제고대책 등도 재정건전화의 틀 내에서 추진케 되어 있어 정부대책의 기조는 재정건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처럼 재정건전화 틀에 기초한 정부대책은 사실상 거시적 환경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그에 대해 사회보장제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많은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방안의 문제점

저출산・고령화의 영향

저성장·저금리 기조는 정부도 문건에서 명시하는 바와 같이 최근의 기조라고 말하고 있다. 즉 저출산·고령화 흐름과 비교하여 저성장·저금리 기조는 좀 더 가변성이 있는 것이다. 저성장·저금리 기조 역시 장기화할 수도 있지만 이는 생산가능인구의 양적 변화와 관련성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 및 저성장・저금리 기조는 저출산·고령화 흐름으로 단순화하여 볼 수 있는 것이며 정부는 이 흐름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우리사회의 저출산·고령화는 그 속도 면에서 대단히 시급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즉, 한국사회는 고령화 사회(’00년)에서 고령사회(’18년)로 이행하는 데 18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26년)로 이행하는 데 8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또한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내년인 2017년부터는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비관적인 전망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까지 진행된 인구학적 변화가 미칠 영향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예컨대, 최슬기, 2015 참조) 그렇다고 해서 장기적인 영향을 그처럼 부정적인 것으로만 고정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초래하리라 예상되는 변화를 기정사실처럼 고정시켜 놓고 그에 대한 재정적 적응만을 사회에 부과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시도는 사회변화에 대한 제도적 개입의 가능성을 차단할 우려가 있다. 사회변화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제도적 개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제도적 개입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왜냐하면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경우 사회구성원들이 적응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폴라니, 2009). 제도적 개입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변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우리는 변화의 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다른 나라의 예를 살펴보면 고령화로 인해 재정지출이 증가하더라도 지출의 총규모보다는 재정지출증가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재정지출이 증가해도 생산가능인구에 대한 복지지출과 노인인구에 대한 복지지출 간의 균형이 잘 잡힌 국가들은 국가채무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또 생산가능인구에 대한 지출과 노인인구에 대한 지출 간의 균형이 반드시 노인인구비중과 연동되지 않는 것 또한 외국사례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즉, 다시 말해서 노인인구비중이 높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노인인구에 대한 지출이 생산가능인구에 대한 지출보다 많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외국의 사례는 고령화의 영향을 부정적으로만 예상하는 것보다는 노인인구에 대한 지출과 생산가능인구에 대한 지출 간의 균형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 개입과 개선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과 연관하여 정부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것으로 ‘복지지출 자동증가론’이라 할 수 있는 담론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간 정부는 현재의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2050년에는 복지지출이 GDP의 22%로 증가하여 현재의 OECD 평균수준에 도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예컨대, 박형수·전병목, 2009). 이와 유사한 정부유관기관의 추계는 그간 몇 차례 발표된 바 있지만 이들 장기추계의 공통점은 현행 제도의 지출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50년 또는 60년 후의 지출수준을 추계한다는 데에 있다. 이는 장기추계모형이 가진 기술적으로 불가피한 점일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한 단점은 사실상 장기추계의 효용성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을 정도의 것들이다. 현행 제도의 운영방법이나 지출구조가 변화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장기추계를 한 관계로 대단히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박형수·전병목(2009)의 연구에서 노인에 대한 복지지출은 공적연금의 지출 증가 등으로 인해 2050년에 GDP의 12%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 데 비해 보육 등 가족지출은 2050년에도 GDP의 0.3%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상당히 비현실적인 전망이 도출되고 있다. 이런 식의 전망대로라면 한국은 노인인구비중이 높고 복지지출은 중간수준이면서 동시에 복지지출이 대부분 노인에게 투입되는 高노령화-高노령지출 유형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비현실적인 추계결과를 무비판적으로 공표하여 고령화의 영향을 대단히 부정적인 것으로 시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정부의 행위는 변화에 개입하려는 동기와 의지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개입동기 저하야말로 저출산・고령화 흐름에 대한 대응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

 

미래세대의 부담

정부를 비롯하여 우리사회의 주류여론은 저출산·고령화 및 저성장 추세로 인한 재정건전성의 악화는 곧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물려주는 것이라는 데에 아마도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데도 현 세대가 복지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은 세대이기주의이며 나아가 결정권이 전혀 없는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이라고까지 간주한다. 하지만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논리는 여러 가지 허점을 안고 있다.
우선 세대의 개념이 그리 명확하지 않다. 정부와 주류여론이 말하는 세대는 엄밀한 개념정의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직관에 기초한 세대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직관에 기초한 세대개념이 반드시 유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세대개념은 가족 내에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어 이해하기에 매우 쉽다. 즉 사회구성원들 대부분은 그가 속한 가족 내에서 세대가 명확히 구분됨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30년 내지 60년 이후에 경제활동을 할 사람들을 미래세대라고 상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흔히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사회구성원들을 연령별로 보면 모든 연령대에 대단히 촘촘히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어 사회전체를 기준으로 할 경우 세대의 구분은 쉽지가 않다. 30년 내지 60년 이후에 경제활동을 할 사람들을 미래세대라고 간주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가족 내에서 구분되는 세대를 단순히 시공간적으로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30년이나 60년 후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연속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둘째, 더 중요한 무제는 미래세대 부담전가라는 논리가 미래세대를 마치 계층의 구분이 없는 단일한 집단인 것처럼 전제한다는 데 있다. 이는 다시 이른 바 현세대에 대해서도 계층의 구분을 무시하는 태도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현세대나 미래세대나 계층이 존재한다. 즉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정 세대(그런 특정 세대를 구분해낼 수 있다고 한다면)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서로 다른 수많은 구성원들의 집합이며 그 세대 이후에 오는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은 편익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담에서도 나타난다. 다시 말해, 특정 세대가 삶을 살아가는 특정 기간에 사회경제적 부담이 그 세대 내 계층 간에 골고루 배분되지 않듯이 그 세대 이후에 올 미래세대 역시 그 세대가 살아가는 기간에 발생하는 혹은 그 앞 세대가 그들에게 물려준 사회경제적 부담이 계층 간에 고루 배분되지 않는다.
그런데 미래세대 부담전가 논리를 펴는 정부는, 마치 특정 세대를 다른 세대와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추상화해놓고 이렇게 추상화된 세대가 그들 내부에서 사회경제적 부담을 골고루 배분하여 그 부담을 총체적으로 짊어지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래세대도 추상화된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마치 미래세대가 그 내부적으로 부담을 골고루 배분하여 이전세대에서 내려온 부담을 총체적으로 짊어질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세대를 추상화하여 상정하는 관계로, 현재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 간에 다양한 형태의 부담이 계층 간에 어떻게 배분되는지 그리고 향후 고령화에 대한 대응에서 계층 간의 배분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등에 관련된 논의는 전적으로 생략한 채 추상화된 미래세대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 판단이 주체는 대개 정부이다.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추진방안에 포함된 통합재정추계제도 도입은 과학의 이름을 내걸어 정부의 판단을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부담은 모두 거부되고 나아가 이를 위해 복지지출의 억제나 합리화 등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특정계층에게 부담을 강요하는 선택을 하면서도 이를 미래세대의 부담완화로 합리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사회경제적 편익과 부담이 계층별로 서로 다르게(그리고 이 서로 다른 것이 대개는 공정하지 못한 성격을 가지면서) 배분될 때 그것이야말로 미래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선택이다.
셋째로 정부가 피하고자 하는 부담의 전가라는 개념도 매우 모호하다. 사실상 모든 세대(세대를 구분할 수 있다면)는 그 세대가 살아가는 시대에 무언가를 남김으로써 후세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경우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준다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상품이 결코 될 수 없고 원래부터 존재했던 자연(생산수단으로서의 토지)과 관련된 행위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그것들이 반드시 부담인지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즉, 모든 세대는 무언가를 남기기 때문에 그것은 미래에 자산이 될 수도 있고 비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미래세대는 이전세대로부터 부담뿐만 아니라 자산도 물려받을 수 있다. 만일 미래세대에 물려주는 것을 모두 부담이라고만 가정하고 현 세대에서의 지출감소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 세대가 제도조정을 통해 미래세대에 물려줄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케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부의 논리가 현 제도의 운용방식에 변경이 없다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에도 변화가 없다고 혹은 변화가 없어야 한다고 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현세대와 달리 공공복지지출이 증가하여 보육에 비용이 들지 않고 공교육의 확대로 교육비가 감소하고 공공주택의 증가로 주택비용이 감소하면 미래세대는 시장임금 중 많은 비중을 보육과 교육, 주거비에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경우에는 국민부담률이 지금보다 증가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공적연금 급여수준의 상승을 미래세대의 기여금 증가로만 연결시키는데 이 역시 현 세대의 삶의 방식을 미래에 그대로 투사한 결과이다. 공적연금의 급여수준이 상승하면 미래세대는 공적기여금 외에는 사적부양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되므로 실제로는 기여금의 상승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현 세대의 삶의 방식에 변화가 없다고 전제하고 이를 미래에 그대로 투사하여 장기경제전망을 하는 관계로 정부는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사회투자보다는 적립금 규모를 늘려 기금고갈시점을 늦추려는 대안을 추진하게 된다. 정부의 이런 기금고갈시점 연기 시도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정부 스스로 시도한 경제전망결과가 제도변경이 없는 상태에서의 어떠한 시도도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결과를 산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행한 장기경제전망 가운데 기금고갈이나 국가채무 증가의 결론이 나지 않은 전망이 단 한 가지라도 있었는가? 아무리 기금고갈시점을 연시시켜도 정부추계대로라면 언젠가는 또 다시 기금고갈시점이 도래하게 되어 있다. 오히려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비용을 집합적으로 조달할 것인가의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훨씬 지속가능성이 있는 대안이다.

 

사회보험 재정건전화의 실현가능성과 가치

정부는 적립금 규모의 증가를 위해 자산운용체계를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투자정보를 공유하는 등 자산운용공조체계를 갖추어 수익률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을 1%p 증가시킬 경우, 연금보험료율은 1.8%p 낮추는 효과가 있으며, 기금고갈시점을 9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논리 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수익률을 장기에 걸쳐 꾸준히 증가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방안은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이겠지만 실제로 수익률을 그처럼 장기적으로 꾸준히 1%p 증가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김우창, 2014; 이찬진, 2015). 한 추정에 따르면 40년 동안 연평균 1%p의 초과수익률을 달성할 가능성은 5.7%이며 2%p의 초과수익률을 달성할 가능성은 0.079%로 거의 현실가능성이 없다(김우창, 2015). 또 미국의 뮤추얼 펀드 중 1985년부터 2014년까지 운영된 223개 가운데 이 30년의 기간 동안 연평균 1%p 이상 초과수익을 낸 곳은 단 한 군데에 불과하였으며, 2%p 이상 초과수익을 낸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김우창, 2015). 이는 초과수익을 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한 수익률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따라 위험도 증가한다(이찬진, 2015). 예컨대 수익률이 1%p 증가할 경우 정부 주장대로 기금고갈시점이 9년 연장될 수도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손실확률은 무려 10.37%p나 증가하기 때문에 기금고갈을 9년 늦추려다 오히려 기금고갈을 앞당길 확률이 더 높다. 게다가 아무리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려 해도 그것이 주가지수나 경제성장률을 장기적으로 초과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김우창, 2014).
수익률 증가를 통해 적립금 규모를 증가시켜 재정건전성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는 통합재정추계제도를 도입하여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사회보험의 재정안정화 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장기재정추계는 추계모형에 따라 이루어지고 이 추계모형은 기본적으로 추계가 이루어지는 현 시점의 제도적 구조와 운용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인구변수와 거시변수(성장률 등) 및 제도별 특이변수(전역률, 실업률 등)를 양적으로 조정하여 장기전망을 하게 된다. 이는 마치 1946년 한국사회의 시점에서 그 당시의 제도적 구조와 운용방식을 그대로 고정시켜 놓고 추계에 투입되는 몇 가지 변수를 양적으로 조정하여 70년 후인 2016년의 한국사회를 전망하는 것과 같다. 1946년 시점에서는 분단이나 경제위기와 같은 정치경제적 격변은 고사하고라도 작은 제도적 변화도 예측할 수 없고 따라서 이들이 추계모형에 반영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2016년의 한국사회 모습을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추계모형으로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진단하려는 것은 장기전망을 정부, 구체적으로는 경제부처에 독점된 진단에 근거하여 사회보험의 운영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는 사회보험제도의 존립근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사회보험은 재정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통합과 사회연대를 위해 운영되는 것이다.
정부는 항상 재정추계는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의 전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장기전망의 목적은 그러한 전망을 회피하기 위해 현행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장기전망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현행 제도를 그 가정에 맞추어 재단하려는 엉뚱한 처방을 내놓고 있으며, 그 기준은 항상 재정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말로는 장기적 시야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장기적 시야로 바라보아야 할 인구변화나 생산성 증가를 소홀히 취급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정부는 항상 장기(長期)를 단기화(短期化)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정부는 사회보험의 본질을 재정안정과 맞바꿈으로써 미래의 부정적 전망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구성원들의 집합적 노력이나 제도적 개입의 여지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앞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이지만 이것이 30년이나 40년 후에도 지속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재정건전화를 이유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지출을 억제하는 것이야말로 제도적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위험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사회보험이 재정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말하는 정부야말로 저출산・고령화 흐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논의 및 결론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 중인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의 주요 내용과 그것에 내재된 논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부의 재정건전화 방안은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전적으로 재정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며, 그것도 대단히 부정적인 재정전망에 기초한 것이고 또 미래세대와 미래세대의 부담에 대한 매우 단순한 개념화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보험제도의 본질적 목적을 살려 저출산·고령화 흐름에 대응하게끔 사회보험의 제도적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전망된 장기추계결과를 사회보험에 부과하고 있다. 또, 장기(長期)를 주기적으로 단기화(短期化)하여 미래세대의 부담을 내세워 재정규율만을 강조함으로써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라는 거시적 변화에 개입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을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방안은 사실상  ‘인구학적 정치’, ‘장기재정추계의 정치’, ‘장기(長期)의 단기화(短期化)의 정치’, ‘미래세대 부담의 정치’라 할만하다.
폴라니(Karl Polanyi)는 사회변화에 있어서 변화의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사회변화의 속도와 그 변화에 사람들이 적응하는 속도 간의 비율이 사회변화의 최종적인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이다(폴라니, 2009: 172). 사회구성원들이 사회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개입하려는 제도적 노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노력을 통해 사회변화를 사회구성원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고 사회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을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계층 간에 공평하게 부담하게끔 조정할 때에만 우리는 사회변화의 속도를 늦출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변화의 내용과 결과까지도 장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위험에 처하였거나 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간에 연대(連帶, solidarity)를 형성하는 제도이다(피에터스, 2015). 연대 형성의 구체적인 방법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서비스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재정안정을 위해 연대형성을 희생시키는 것은 저출산・고령화에 대처하기 위해 더욱 더 필요한 집합적 노력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회보험을 비롯한 사회복지제도의 본질을 훼손하는 정부의 재정건전화 방안은 중단되어야 한다.